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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전서 1장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024-01-31 48,566 哥林多前书 哥林多前书01章 哥林多前书第一章 献上生命 看淡生死 有智慧的羞愧 使用从神来的权柄

相关经文

哥林多前书01章-祝福和感谢
  • 1 奉 神旨意,蒙召作耶稣基督使徒的保罗,同兄弟所提尼,
  • 2 写信给在哥林多 神的教会,就是在基督耶稣里成圣、蒙召作圣徒的,以及所有在各处求告我主耶稣基督之名的人。基督是他们的主,也是我们的主。
  • 3 愿恩惠、平安从 神我们的父并主耶稣基督归与你们。
  • 4 我常为你们感谢我的 神,因 神在基督耶稣里所赐给你们的恩惠;
  • 5 又因你们在他里面凡事富足,口才、知识都全备,
  • 6 正如我为基督作的见证,在你们心里得以坚固,
  • 7 以致你们在恩赐上没有一样不及人的,等候我们的主耶稣基督显现。
  • 8 他也必坚固你们到底,叫你们在我们主耶稣基督的日子无可责备。
  • 9  神是信实的,你们原是被他所召,好与他儿子我们的主耶稣基督一同得份。
  • 10 弟兄们,我藉我们主耶稣基督的名劝你们都说一样的话。你们中间也不可分党,只要一心一意,彼此相合。
  • 11 因为革来氏家里的人曾对我提起弟兄们来,说你们中间有纷争。
  • 12 我的意思就是你们各人说:“我是属保罗的”;“我是属亚波罗的”;“我是属矶法的”;“我是属基督的”。
  • 13 基督是分开的吗?保罗为你们钉了十字架吗?你们是奉保罗的名受了洗吗?
  • 14 我感谢 神,除了基利司布并该犹以外,我没有给你们一个人施洗,
  • 15 免得有人说,你们是奉我的名受洗。
  • 16 我也给司提反家施过洗,此外给别人施洗没有,我却记不清。
  • 17 基督差遣我,原不是为施洗,乃是为传福音,并不用智慧的言语,免得基督的十字架落了空。
  • 18 因为十字架的道理,在那灭亡的人为愚拙;在我们得救的人,却为 神的大能。
  • 19 就如经上所记:“我要灭绝智慧人的智慧,废弃聪明人的聪明。”
  • 20 智慧人在哪里?文士在哪里?这世上的辩士在哪里? 神岂不是叫这世上的智慧变成愚拙吗?
  • 21 世人凭自己的智慧,既不认识 神, 神就乐意用人所当作愚拙的道理拯救那些信的人;这就是 神的智慧了。
  • 22 犹太人是要神迹,希腊人是求智慧,
  • 23 我们却是传钉十字架的基督,在犹太人为绊脚石,在外邦人为愚拙;
  • 24 但在那蒙召的,无论是犹太人、希腊人,基督总为 神的能力, 神的智慧。
  • 25 因 神的愚拙总比人智慧, 神的软弱总比人强壮。
  • 26 弟兄们哪,可见你们蒙召的,按着肉体有智慧的不多,有能力的不多,有尊贵的也不多。
  • 27  神却拣选了世上愚拙的,叫有智慧的羞愧;又拣选了世上软弱的,叫那强壮的羞愧。
  • 28  神也拣选了世上卑贱的,被人厌恶的,以及那无有的,为要废掉那有的,
  • 29 使一切有血气的,在 神面前一个也不能自夸。
  • 30 但你们得在基督耶稣里是本乎 神, 神又使他成为我们的智慧、公义、圣洁、救赎。
  • 31 如经上所记:“夸口的,当指着主夸口。”

《答疑解惑》

서론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는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로 고린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신을 통해 원격으로 섬겼지만, 이 편지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전해진 후 그들은 바울이 전한 참된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습니다. 이어서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고, 바울에게 온갖 나쁜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바울이 행한 일들이 모두 돈을 탐하고 재물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들에게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고, 단 1전의 이득도 취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표현대로라면 바늘 하나 실 한 올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 마귀가 정말 교활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뒤이어 두 편의 편지를 더 썼고, 총 세 통의 편지를 써서 고린도 사람들을 이 거짓말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입니다. 1장을 마무리하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의 주제는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31)

1. 고린도 사람들의 문제

고린도 사람들의 문제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사람이 능력을 숭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대단하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소프트웨어도 개발할 수 있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며, 수많은 책까지 썼으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말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잘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 얼마나 능력을 숭상하기 쉬운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다른 것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지혜를 숭상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육적인 것들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이렇게 행하니 예수님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리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 그 사명이 밥을 먹여줄 수 있느냐고 의심합니다. 혹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을 본받아 살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따집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논리 체계는 하나님의 임재를 단번에 날려버렸는데, 이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 지역의 교회 전체가 세상처럼 변해 버렸고, 세상의 문제들이 교회 안에도 다 들어와 교회가 세상과 똑같아졌으니, 이것이 어찌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린도전서 1:11-12)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겼고, 교회 안에 수많은 분쟁과 파벌, 갈래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한 무리는 자신이 바울에게 속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학식이 높고 과거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으니,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양전닝을 사사한 것처럼 대단한 인물입니다. 또 다른 무리는 자신이 아볼로에게 속했다고 말합니다. 아볼로 역시 대단한 사람으로 그만의 무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베드로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를 게바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에게 속했다고 했을까요? 당시에 분명 베드로가 그곳에 갔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유대인인데 이방인 교회에 가서 무엇을 했겠느냐고, 그곳이 부정하다고 꺼리거나 외식하지 않았겠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에 가서도 한바탕 설교를 했습니다. 이른바 스승은 많되 영적 아비와 어미는 많지 않은 격입니다. 설교를 마치고 돈을 챙긴 뒤 훌훌 털고 떠났으니, 사실상 행사 뛰듯 돈을 벌러 온 것입니다. 뭔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지 않으면 돈을 줄 수 없으니, 그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돈을 걷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화려한 언변을 쏟아내니 많은 형제자매들이 엄청나게 숭배했습니다. 과거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것에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고, 베드로에게 헌금을 늦게 하면 손해를 본다고 여겼으니, 오늘날까지도 교회 안에 이런 악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분명 누군가는 베드로에게 바울의 말이 맞는지, 아니면 베드로의 말이 맞는지 물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라면 당연히 자신의 말이 맞다고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부족하고, 자신 베드로가 다 아는 전문가이며 바울은 잘 모른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난장판이 되었고,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병들어 기도해도 효과가 없고, 문제가 있어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며, 교회가 온통 귀신의 소굴이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인간의 능력을 숭상하면 이렇게 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의 설교 역시 저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고취시키는 이야기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가 예전에 예루살렘 미문 곁을 지나다가 앉은뱅이를 고쳤던 이야기를 전할 때도 엄청난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라는 한마디에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섰던 일 말입니다. 그러니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베드로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는 하지만, 오직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려서는 돈을 끌어모을 수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리저리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교회의 사역은 설교 한 편 멋지게 전하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뽐내는 것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 같은 사람은 인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자랑하지도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며 여러분과 함께 섬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만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제가 행하는 사역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능력을 숭상하는 것을 반대해 왔습니다. 아볼로가 성경공부를 잘 인도한다고 해서 자신이 아볼로파라고 자랑하거나, 게바가 대사도라고 해서 게바파라고 자랑하는 이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거나, 대소변을 보지 못하거나, 혹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고통당할 때 베드로를 불러도 나타나지 않으며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즉, 고린도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속아 넘어간 이유는 뼛속 깊이 능력을 숭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도 분명 이런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권면하고 붙잡아 주려 해도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안에는 결코 함부로 행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엉뚱하게 행하다가는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제가 쫓아냈던 귀신들이 다 되돌아오면 제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세상의 하찮은 일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예수님을 본받아 그 헌신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뼛속에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가장 큰 장점은 생사를 초월하여, 산다는 것 자체를 온전히 꿰뚫어 보았다는 점입니다. 꿰뚫어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꿰뚫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돈을 좇게 되고, 돈을 좇다가 결국 더러운 오물까지 뒤집어쓰게 됩니다. 금으로 도금하려다 온몸에 오물을 칠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능력을 숭상하는 결과입니다.

사람이란 참 묘합니다. 왜 우리 중의 형제자매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예전에 참 둔하고 무능하여 마흔 살 무렵에 실직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고 훈련시키고 온갖 애를 써서 마침내 그를 바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자 조금 능력이 생기더니 곧바로 걸음걸이부터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능력이 생겨 이제는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걷는 모습조차 마치 등에 날개가 돋아날 것처럼 굴었습니다. 실직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요즘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자만심에 부풀어 오른 것이며, 드디어 세상을 사랑할 자격이 생겼다고 여긴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의 큰길가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하여 제가 깜짝 놀라 서둘러 섬기며 믿음을 세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믿음이 생기더니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서는 대뜸 저에게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죽네 사네 하던 사람이, 어떻게 오늘 갑자기 저의 스승이 된단 말입니까? 사람이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이며, 교만하여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조금만 부풀어 오르면 하나님을 밀어내 버리게 되니,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지에서 비롯된 교만의 팽창을 나타내는 곡선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지할 때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쳐나면 그것이 바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무슨 일을 조금 해냈을지라도 파멸할 날이 머지않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완전히 망하기 전에 먼저 그 헛된 자신감을 꺾어 놓으려 합니다. 그러한 자신감은 가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많은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의 무지한 교만과 거짓 믿음을 깨부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깨부순 후에야 비로소 정상적인 믿음으로 돌아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 말을 듣고 나서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전에는 자기가 다 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하고, 진정한 믿음을 따라 다시 일어나 지식과 명철을 따라 새롭게 시작하게 하면 일이 순조로워집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조 원대 규모의 기업을 맡아서는 경영할 줄도 모르면서 허풍만 떨다가 결국 기업을 파산시키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전에 가졌던 능력이란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사실 처음부터 능력 따위는 없었고, 전부 허상이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 될 것이나, 하나님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결코 어리석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평생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여러분 또한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언제든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고, 돈이 좀 많다고 생각하며—사실 그리 많지도 않아서 수천만 위안도 안 되는데도—스스로 자만하여 대단한 줄 알면 끝장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고 나서 저주를 받을까 봐 가장 두렵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헌금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았는지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합니다. 사람이 세상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신의 헌금을 바라보기 쉬워서, 마치 헌금하는 것이 대단히 위대한 일인 양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을 돕는 일이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태어 드리는 것이라고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도와 교회를 세울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문제와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축복을 담아내지 못하는데, 다시 말해 그릇의 덕이 너무 얕은 것입니다. 틈만 나면 교만해져서 분수를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나중에 손해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손해를 보지 않고서야 바울의 말을 들었겠습니까? 교만해져서는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바울이 쓴 편지를 보면서 바울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단 말인가 하고 의구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2. 고린도 사람 중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음

바울은 참 대단합니다. 저는 다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그의 말투도 꽤 날카로워서, 입을 열자마자 고린도 사람들의 그 작은 교만을 바늘로 풍선을 찌르듯 콕 찔러 바람을 빼버렸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린도전서 1:26)

그들의 무지로 인해 계속 교만해지지 않도록 바람을 좀 빼준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논리입니다. 제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당시, 저는 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이전에는 스스로 꽤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도 잘하는 수재였고 점치는 법도 배웠으며 <주역>을 공부하는 것도 일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고린도 사람들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 고린도 사람들은 능력을 숭상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능력이 부족할수록 능력을 더 숭상하게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고 여기고, 능력이 없을수록 작은 능력 하나만 생겨도 그것을 숭상하게 됩니다. 저는 젊은 시절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 제 두 팔로는 운명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두 손의 능력으로 운명을 개척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때 운명의 풍파에 시달리다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았고, 그 이후로는 다시 집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이 말씀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4)

저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여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감히 제 자신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제 자신은 의지할 만한 존재가 못 되며, 저는 제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울에 달아보아도 고작 육칠십 킬로그램 남짓인데, 고기 무게로 따져도 남들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혜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논리로서, 이제부터는 결코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여기서 목이 터져라 외치며 말씀드리는 것은, 능력을 숭상하지 말고 하나님을 숭상해야 하며, 자랑하려거든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능력을 숭상해서는 안 되며, 능력을 숭상하는 순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자신을 부족하다고 할 때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위가 높아질수록 체면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겨, 제가 그가 쓴 글이 아무 소용없다고 하면 곧바로 상처를 받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제가 쓴 글이 쓸모없다고 한다면, 저는 유용한 글이란 어떤 것인지 함께 깊이 토론해 볼 것입니다. 저는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시험 삼아 겨루어 보아도 좋습니다. 만약 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여러분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제 뼛속에는 내가 부족하다는 논리가 박혀 있습니다. 만약 잘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요,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할 뿐입니다. 저는 본래 죽어 마땅한 자였고, 과거에 거의 죽을 뻔했으나 20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덤으로 수많은 해를 더 살아왔으니 감히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논리는 나는 할 수 없으나, 나의 하나님은 반드시 행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수 있음을 의지하여 오늘까지 꿋꿋하게 버티며 뛰어왔습니다. 지난 세월 교회를 세워갈 때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를 떠나면서 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전히 꿋꿋이 살아서 힘차게 뛰고 있으니, 그 사람이 알면 몹시 화가 날 것입니다.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데 무슨 상처를 받겠습니까? 사실 저는 20년 전에 이미 멈추었어야 마땅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렇게 여러 해를 더 살아왔고,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이 그 말을 한 뒤로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활발히 사역하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만, 사실 저도 스스로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뛰게 하시니 계속 달려가며 화인명정신학을 창립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훗날 제가 죽고 나면 누가 이것을 계승할지 걱정하지만, 그것은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누가 여러분에게 침을 뱉거나 온갖 모욕을 주더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또 얼마간의 생명을 더 얻은 것입니다. 얼마 전 코로나19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마치 만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숨이 넘어가려다가도 넘어가지 않고, 몇 년 동안 이리저리 고비를 겪으면서도 끝내 숨이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집안에서는 이미 장례 준비를 다 마치고 많은 사람이 유산을 나누어 가질 생각만 하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죽지 않는 격입니다.

3. 분쟁의 근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쓴 이유는 그 안에 수많은 분쟁이 있어 암투를 벌이고 서로 헐뜯으며, 선거까지 치러가며 도대체 무엇을 뽑으려 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분쟁의 근원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분쟁으로 가득 찬 교회들이 저의 이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분쟁의 근원은 바로 사람의 능력과 지식을 숭상하는 데 있습니다. 게바가 참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랑하려거든 게바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그는 단지 어부에 불과했습니다—그가 이토록 대단하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 덕분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수십 년 전에 이미 두 다리를 뻗고 눈을 감았을 터인데 어찌 오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8-29)

그러므로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점은 바로 자신의 의를 세우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비교하기 시작하면 쉽게 분쟁에 빠집니다. 바울, 게바, 아볼로를 비교하는 것은 플라톤, 로마 황제, 대단한 정치가들, 소크라테스, 헤겔, 칸트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능력을 지극히 숭상하기 쉽습니다. 만약 근육질에 무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도장을 차린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도전하러 도장 깨기를 올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능력을 숭상하기 때문입니다. 분쟁은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하기 때문에 생겨나며, 결국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능력을 숭상하는 곳에는 반드시 분쟁이 있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숭상하는 곳에는 분쟁이 거의 없어야 마땅합니다. 모두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데 무엇을 다투겠습니까?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만약 누군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기법이 정말 엉망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불쾌해할 것입니다. 그 말이 그의 자존심의 뿌리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분쟁이란 곧 파당을 짓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게바가 더 능력이 있다고 여기고, 다른 이는 아볼로가 더 능력이 있다고 여기며, 또 어떤 이들은 바울이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바로 마귀의 궤계에 넘어간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능력을 숭상하는 육적인 생각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놓고, 곁에서 표도 사지 않고 구경거리를 즐깁니다. 마귀들이 떼를 지어 교회 안에서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서로 사랑하며 싸우는 것이라 포장하지만 사실은 서로 미워하며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돈과 관련이 있으며 함정이므로, 결코 다시는 능력을 숭상하지 마십시오.

배우려거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비록 여러분이 보잘것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만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됩니다. 제 예를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참으로 잘해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말단 직원으로 일할 때,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일하고 열심히 배우며 날마다 발전하고자 온갖 궂은일과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상사가 골치 아픈 일을 맡겨도 감사함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제 위의 직속 상사가 떠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자 총괄 책임자가 저를 그 직속 상사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을 때 또다시 목숨 걸고 일하며 배우고 성장해 나갔으니, 그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의 부서장이 떠나게 되었고, 제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급여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 역량이 점차 커지자, 다른 대학교가 설립되는 것을 보고 더 높은 직급에 지원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떨어졌지만 저는 합격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음

많은 사람이 저더러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찌 이토록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선대해 주셨습니다. 만약 과거에 제가 자신의 의를 세우고, 능력을 숭상하며, 사람을 우러러보고 그런 것들을 부러워했다면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회를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베드로가 행한 표적은 대단하여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나 걷게 되었지만, 그가 그 후에 또 다른 일을 행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유대인은 표적을 좋아합니다. 여러분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제쳐두고 오직 표적만을 구한다면 유대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표적을 구합니다. 어떤 이가 저도 표적을 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기에, 제가 그럼 한번 구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수많은 표적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십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 모습은 그들의 삶 모든 방면에 나타납니다. 헬라인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숭상했으나, 결국 많은 것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됨을 발견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 역시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의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고, 이방인과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며 소크라테스를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어찌 예수 그리스도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표적만을 논했고, 결국 교회 전체가 그런 모습으로 변해 버렸으니,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논리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단해 보이던 자들이 결국에는 다 초라해졌으며, 사회주의의 철권 앞에서도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모든 돈을 자신의 힘으로 벌었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는데, 고린도 사람들은 바로 이 두 개의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근본 바탕이 바로 이러한 것들을 숭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숭상하는 순간 망하게 되며, 표적도 지혜도 다 사라지고 사람마저 둔하고 미련해집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도 미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숭상한다면 그 뼛속에는 여전히 세상의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열 마디만 나누어 보아도 여러분 내면의 근본 바탕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결국 뼛속 깊이 숭상하는 것은 강자 문화입니다. 에서는 칼을 믿고 살았는데, 그것은 가인의 논리 체계이기도 합니다. 가인은 성을 쌓고 그 이름을 에녹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단한 자들이었고 온갖 대장장이의 조상이었으니 여러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자 문화는 결국 무너집니다. 역사 속 초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자결했습니다. 초패왕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용없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결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들은 유대인이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이 지혜를 찾는 것이 모두 부끄러운 일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1-25)

사람이 왜 우울증에 걸리겠습니까?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라멕은 모두 공포증, 즉 정신 질환에 걸렸는데 자신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의지해서는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암세포 하나만 보내셔도 사람은 죽을 지경에 이르고, 우울증을 일으키는 작은 악령 몇 마리만 보내셔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립니다. 이 세상은 영적 세계입니다. 인간의 하찮은 수단을 의지하여 이리저리 애써 보아야 정신 질환이나 신경증에 걸리거나, 암이나 온갖 질병을 얻을 뿐입니다. 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플 때 기도하여 깨끗이 낫는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작용도 없습니다.

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함

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까요?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은혜의 빚을 졌습니까? 이 말씀은 영적 세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영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화인명정신학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영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늘 세상적인 논리로 살아가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해방 전과 해방 후를 오가듯 끊임없이 곤고함을 겪는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돌아갈 자리는 해방 전이 아니라, 천지가 창조되기 전의 철저한 혼돈과 공허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 보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 보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이유는 그분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으면, 마귀는 멀리서 보고 예수님이 오신 줄 압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 악한 영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며, 어떤 영들은 우리 발밑에 밟혀 마치 개미를 밟아 죽이듯 밟힙니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얼마나 강력하십니까!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 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히면 어쩌나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철저히 멸시하셨기에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체계의 문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가 말씀드리는 이 논리 체계를 따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음부의 권세를 이기셨으므로,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분을 본받아 이 길을 걸어간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여러분과 저에게도 주실 것이며, 우리는 모든 마귀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더 이상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죽을 듯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작은 일 하나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전서 1:27)

육에 속한 사람은 이것을 어리석은 도리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며,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들이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분명히 경험했습니다. 과거에 한 무술 고수가 치유와 사역을 받으러 왔는데, 갑자기 제 앞에서 권법을 쓰며 위협하여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에 무술 실력까지 뛰어났으니, 저를 땅바닥에 눕혀놓고 깔고 앉기만 해도 저는 숨이 막혀 죽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가 저를 향해 다가오는데, 주먹 한 방이면 저를 쓰러뜨릴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손을 치켜들자마자 바닥에 털썩 쓰러져 버렸고, 저는 오히려 그가 다치지나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저의 하나님이 참으로 강력하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고, 담대함이 더욱 커져서 점점 더 강한 귀신들을 쫓아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제부터 저 역시 그분을 본받아 제 생명을 바치고 생사를 초월할 것입니다. 이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를 사용하여 마귀 원수를 짓밟을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 오면 하나를 쓰러뜨려, 모두 우리의 패배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 영적 권세는 실로 강력하며 참으로 대단합니다.

6.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탁월한가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여러분 안에 있던 귀신은 불법 거주자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여러분의 모든 허물을 씻어내고 귀신을 쫓아내어 여러분은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 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할 권리도 있고 세상을 사랑할 권리도 주어지는데, 많은 사람이 해방을 얻은 뒤 다시 세상을 사랑하러 돌아가 결국 귀신을 다시 불러들이고 맙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 오는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루를 살더라도 담대히 살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강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훨씬 뛰어넘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얻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봅니다. 한두 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별일 아닐 수 있지만, 언젠가 그것으로 인해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안에서 크게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이 영적 세계에서 원수 마귀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늘 두려움이 가득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댄다면, 그것은 귀신에게 짓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모든 이들이 믿음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고린도 교회의 논리 체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논리 체계는 매우 가증스러우며,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칩니다. 이제부터는 돈이나 사람의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자랑하려거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십시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고린도 사람들의 길을 걷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대로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셨다면, 그것은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결코 자신이 불의한 재물로 하나님을 돕는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 바치고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근본적인 논리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심을 알고 그분을 본받는다면,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될 것이며, 실로 강력한 자가 될 것입니다. 지폐를 세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으나, 여러분은 반드시 그 기회와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이 논리 체계를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사람은 실로 나약하여 아무것도 견뎌내지 못하며, 작은 감기 바이러스 하나에도 거의 죽을 지경이 되는데 다른 질병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자랑하려거든 오직 주 예수님만을 자랑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수치를 감당하고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알게 되며, 이 길은 능력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수치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전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주제를 제가 명확하게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참으로 가슴 벅차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우리의 능력과 지혜가 되기를 원하며, 우리 안의 논리 체계가 온전히 변화되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이 하찮은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실로 위대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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