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스가랴서》 11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을 읽으실 때 참 난해하고 혼란스럽지 않으셨나요?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그분의 양 떼를 먹이시는 걸까요, 아니면 먹이지 않으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양 떼를 죽게 내버려 두시려는 걸까요, 아니면 살리시려는 걸까요?
사람은 왜 읽다 보면 혼란스러워질까요? 사람 안에 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먹이시는 걸까요, 아니면 먹이지 않으시는 걸까요?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사실, 여러분이 화인 사명 신학의 정수를 깨달았다면, 이 장을 읽으면서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장의 주제는 바로 “어리석은 목자와 잡힐 양 떼”입니다.
지난 장 요약
지난 장의 내용과 연결해 보면,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목자들에게 발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선한 목자를 찾기란 너무나 어렵고 드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양 떼를 돌보실 것이기에, 지난 장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이긴 백성이 돌아오리라”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목자들은 싸우기를 원치 않고 그저 먹고 마시며 즐기기만을 원하는데, 그렇다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십계명에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고,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리라.”
그러니 하나님께서 먹이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먹이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며 사랑을 베푸시고,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시며, 심지어 하나님께서 등을 떠밀어 더 빨리 멸망하게도 하십니다.
이 일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기뻐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으며, 야곱을 축복하시고 에서를 저주하셨음을 봅니다. 그들이 둘 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을 지닌 자라야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러니 야곱이나 이삭이라 할지라도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는 에서나 이스마엘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자비와 은혜가 넘치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지난 장의 요약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멸망당한 자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 속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표준과 같으니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매우 명확한 이치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처럼 되겠습니까?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저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처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장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파멸되었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수풀이 엎드러졌음이로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스가랴》 11:1-3)
이 광경이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하는 자는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죽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실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 얼마나 풍성한 은혜가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사람은 왜 자주 혼란에 빠질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고, 돈을 사랑해도 금세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해집니다.
저와 제 동역자들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돈 벌 생각만 하면, 그만 머리가 멍해지고 바보처럼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목사님도 그런 생각을 하세요?”라고 묻습니다. 에이, 순진하긴요, 어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머리가 혼란해지므로, 얼른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목자
이 세상에 어리석은 목자가 많을까요? 많습니다! 사실 저는 매일 스스로에게 ‘바보같이 굴지 말자!’ 하고 경각심을 줍니다. 바보가 되면 큰일입니다. 어리석은 목자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어리석은 양들을 먹이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괴한 일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싸우느라 몹시 힘들었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아서, 누구를 목양하든 온 힘을 쏟았습니다. 초기 사역 시절의 목양을 돌아보니 헛된 목양이 참으로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야 저는 점차 새로운 습관을 들였습니다. 바로 지혜로워져야겠다는 것, 지혜로운 목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양들을 택하고, 양들을 지혜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어리석은 목자들은 참 특이합니다. 이 구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 스가랴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유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로다’ 하고 그들을 먹이는 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스가랴》 11:4-5)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양이 얼마나 멍청해야 이렇게 되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에는 하나의 “황금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리석은 양은 목양을 통해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목자는 어리석은 양만 골라 먹이지만, 지혜로운 목회자는 반드시 지혜로운 양을 먹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은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잘해주면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해치려 하고 팔아넘기려 하면 자기를 끔찍이 아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으로 놀랍고 지금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예전에 제가 한 자매를 목양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늘 조건 좋은 부자 남편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작고 형제들은 더 적었기에, 미혼이면서 눈에 찰 만한 형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제게 “목사님, 저는 그리스도인에게 시집가야겠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자매님에게 맞는 사람이 없으니, 저기 1만 명 모이는 교회에 가보세요. 여자친구 없는 형제가 천팔백 명은 될 테니 거기서 골라보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그곳으로 갔고, 나중에 실제로 결혼하여 아이도 여러 명 낳았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지옥의 귀신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녀가 저를 떠올렸습니다. 왜일까요? 그 교회 목회자는 목양을 하지 않았고, 구역장과 목회자도 그녀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저 헌금 걷는 데만 신경 썼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가 우울증에 걸리자 그들은 자매에게 “교회에 나오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결국 그녀는 저를 찾아왔고, 저는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온전하게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다 낫고 나더니 다시 원래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계속 우리 쪽에 머물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목자는 양을 팔아넘기면서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꼭 알아야 합니다. 만약 목회자에게 재앙이 임하는 것을 본다면 절대 불쌍히 여기지 말고 멀리 피하십시오. 하나님께 왜 그러시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목사님, 만약 훗날 목사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요?”라고 묻는다면, 저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결코 이중 잣대를 대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목자는 양을 팔아넘깁니다. 양을 잘 먹이고 돌보는 데 애를 쓸 생각이 전혀 없고, 그저 양을 살찌워서 팔아 돈을 벌 생각뿐이기 때문입니다. 양을 판 목자는 심지어 “내가 부유하게 되었은즉 여호와는 찬송을 받으실지로다”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들을 먹이는 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이 어찌 목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잃어버린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예전에 어떤 자매가 한 교회로 갔을 때, 저는 “자매님에게 딱 맞는 교회를 찾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육신을 위하는 목회자가 육신을 위하는 양을 먹이는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나중에 그녀를 살진 양으로 팔아넘겨 훠궈로 삶아 먹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샤부샤부나 양고기 훠궈를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리에 온통 ‘涮羊肉’이라고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온 거리에 무슨 양고기를 솔질(刷)한다는 거지? 어떻게 양고기를 닦는다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국어 실력이 모자라 사람들에게 “왜 다들 양고기를 닦고(刷)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들이 “이건 데쳐 먹는(涮) 양고기야.”라고 하더군요.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자신의 명성을 쌓고 싶을 뿐, 공을 들여 양을 먹이고 돌볼 생각이 없는데, 거기에 억지로 시킨다고 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누구에게 밉보일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만큼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게 양 한 마리를 보내주시면, 세상에, 저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목양합니다! 혹자는 어떻게 목양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맛있는 것이나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악한 행실을 다루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목자의 재앙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스가랴》 11:8)
하나님께서 한 달 사이에 세 목자를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어서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온전히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완전히 어두워지리라
(《스가랴》 11:17)
여러분께 꼭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이것이 매우 위험부담이 큰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만 교회를 세운다면 큰일이 납니다.
어리석은 목자는 반드시 재앙을 겪게 됩니다.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목회자가 되는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목양할 수 없습니다.
작은 목자로 섬기는 분들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제 자료를 가지고 교회를 목양하는 분들도 모두 조심하십시오. 어리석고 무지하면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목자가 되면 재앙이 임합니다. 곧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온전히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완전히 어두워지리라” 하셨습니다. 지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스가랴》 11:15-16)
《출애굽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실 그들은 대단히 유능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자들이었으며, 중간 리더들도 그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고라 일당은 250명의 장로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땅을 갈라 큰 구덩이를 만드시고 그들을 묻어버리셔서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목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이번 성경공부 전에 제가 한 자매님과 통화하며 목양할 때, 자매님이 말하기를 자신의 직업상 예수 믿는 자매들을 돌보아야 할 일이 많은데 그들에게 온갖 질병이 너무 많아 큰 혼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성경공부를 들은 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울까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방법을 찾으십시오. 결코 함부로 분별없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은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잡혀 죽을 양 떼는 멸망한다
이 어리석은 목회자들은 양들을 어디로 이끌었습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에 교회를 결혼정보업체로, 식당으로, 자선단체로, 온갖 잡다한 것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양들이 여전히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모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적고 고라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이는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적고 바알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 엘리야 시대에 그는 자신과 같은 뜻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보지 못했지만,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사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오직 나만 남았거늘, 하나님이여, 이 시대가 얼마나 황폐한지 보옵소서!”라고 탄식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목회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곳을 결코 진정한 교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여러분이 따르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게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교회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을 알고,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팔려 가면서도 알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잡혀 죽을 양 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양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그대로 끌고 가다가 팔아넘기는 것이고, 둘째는 양들을 지혜롭게 만들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추고 하나님의 도를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어떤 자매가 질문을 많이 하자, 그녀를 맞이한 사역자가 왜 그렇게 질문이 많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여러분을 잘 알아야 저 자신을 맡길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의 작은 목자에게 맡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따라야지, 사람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작은 목자가 건강식품, 온라인 대출, P2P 투자 같은 것을 권유한다면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있다면 제게 와서 물어보십시오. 제가 그 목회자는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조치할 것입니다. 물론 제게 알리셔도 괜찮습니다! 잡혀 죽을 양 떼는 멸망합니다.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멍청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이 땅의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각기 그 이웃의 손과 그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스가랴》 11:6)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누가 어리석으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의 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 의지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하여 스가랴는 잡혀 죽을 양 떼, 곧 양 떼 중 가장 곤고한 양들을 먹였습니다. 곤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보처럼 하나님의 도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니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버려두고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멸망할 양들입니다.
묻겠습니다. 고라 반역 무리를 따른 자가 많았습니까, 아니면 모세를 따른 자가 많았습니까? 당연히 고라 반역 무리를 따른 자가 많았습니다! 광야에 엎드러져 쓰러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라 일당을 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라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나는 손도 대지 않았소. 그들은 하나님께 침을 당한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저 멸망하도록 방치하신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을 들어 멸망시키셨습니다.
내가 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스가랴》 11:10)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이 모두 파기되었습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을 하나님께서 폐기하셨으니, 바로 그날에 폐기되었습니다!
곧 그날에 폐기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스가랴》 11:11)
참으로 처참합니다. 광야에 엎드러져 쓰러진 이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여러분도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양들은 매우 가증스럽고, 무지하며 비참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앙망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존귀한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스가랴》 11:12-13)
그들은 정말로 주었습니다!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스가랴》 11:14)
하나님의 언약도 파기되었고, 정도 끊어졌으며,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곤고한 양들에게 무슨 영광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은 목자를 품꾼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당시 스가랴가 겪은 경험입니다. 스가랴가 와서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달라”고 하니, 그들은 은 삼십 개를 모아서 주었습니다.
묻겠습니다. 목자가 고용된 사람입니까? 목자는 품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품꾼으로 여긴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예수님도 유다에게 팔리셨는데, 그들에게는 돈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한 목자를 일으키시리니, 그는 잃어버린 자를 돌보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바로 이 잡혀 죽을 양 떼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요? 이런 자들이 멸망하지 않으면 누가 멸망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여러분은 절대 이런 방식을 취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목회자를 따르겠다”라고 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따르십시오. 만약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저 행운을 빌 뿐입니다! 남에게 속아 넘어가면서도 모를 것입니다! 잡혀 죽을 양 떼는 반드시 멸망하며, 결국 누구에게 팔리겠습니까? 마귀에게 팔립니다! 여러분께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도살당할 양이 아닙니까?
어떤 목회자가 형제자매들을 세뇌하며 “양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 그저 양 떼를 따라가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자매가 제게 나눠준 이야기인데, 만약 고라의 양 떼를 따라간다면 고라 반역 무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도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이 하나님의 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도가 아닌지, 어느 곳이 하나님의 교회이고 어느 곳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지를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회에 몹시 충성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이 과연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부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되고자 한다면 제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아예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목자가 될 것이며, 어리석은 목자는 반드시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만약 양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혜로운 양이 되십시오. 잡혀 죽을 양 떼가 되지 마십시오.
어떤 자매가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목회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녀가 제게 나누기를, 많은 목회자들이 결국 비참한 삶을 사는 반면, 오히려 교회에서 이것저것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은 꽤 잘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목자가 되려면 어리석은 목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양이 되려면 어리석은 양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가랴가 이러한 광경을 보았을 때, 온 땅에 곡하는 소리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온 땅에 가득한 곡하는 소리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파멸되었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수풀이 엎드러졌음이로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스가랴》 11:1-3)
이 구절은 무엇을 묘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무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목회자들,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도살당할 양 떼를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신다고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살당할 양이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목자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양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이 장을 읽는 데 이해가 되십니까? 명확해졌습니다!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이긴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고 하셨지만, 그러한 사람은 적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어리석은 목자와 잡힐 양 떼”를 말하며, 이처럼 비참한 광경에 대해 우리는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며 천 대까지 인자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까?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제가 도살당할 양 떼가 되었다면, 회개할 기회가 아직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당연히 있습니다! 속히 돌아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천 대까지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에서 요구하는 바가 많은 이유이며, 이로 인해 어떤 이들은 귀찮아하고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여러분, 결코 모임에 나오는 것이 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섬기고 형제자매를 섬기는 것이 제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라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제게는 필요 없고, 하나님께도 필요 없으며,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리석은 양이 되고, 어리석은 목자가 될 뿐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