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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로마서 8장 - 제1부 -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도다

2019-02-20 62,097 罗马书 十字架的救恩 圣灵 圣灵的帮助 我们的软弱 控告 方言祷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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罗马书08章-在圣灵里的生活
  • 1 如今,那些在基督耶稣里的就不定罪了。
  • 2 因为赐生命圣灵的律,在基督耶稣里释放了我,使我脱离罪和死的律了。
  • 3 律法既因肉体软弱,有所不能行的, 神就差遣自己的儿子,成为罪身的形状,作了赎罪祭,在肉体中定了罪案,
  • 4 使律法的义成就在我们这不随从肉体、只随从圣灵的人身上。
  • 5 因为,随从肉体的人体贴肉体的事;随从圣灵的人体贴圣灵的事。
  • 6 体贴肉体的,就是死;体贴圣灵的,乃是生命、平安。
  • 7 原来体贴肉体的,就是与 神为仇;因为不服 神的律法,也是不能服。
  • 8 而且属肉体的人不能得 神的喜欢。
  • 9 如果 神的灵住在你们心里,你们就不属肉体,乃属圣灵了。人若没有基督的灵,就不是属基督的。
  • 10 基督若在你们心里,身体就因罪而死,心灵却因义而活。
  • 11 然而,叫耶稣从死里复活者的灵若住在你们心里,那叫基督耶稣从死里复活的,也必藉着住在你们心里的圣灵,使你们必死的身体又活过来。
  • 12 弟兄们,这样看来,我们并不是欠肉体的债去顺从肉体活着。
  • 13 你们若顺从肉体活着,必要死;若靠着圣灵治死身体的恶行,必要活着。
  • 14 因为凡被 神的灵引导的,都是 神的儿子。
  • 15 你们所受的,不是奴仆的心,仍旧害怕;所受的,乃是儿子的心,因此我们呼叫:“阿爸!父!”
  • 16 圣灵与我们的心同证我们是 神的儿女;
  • 17 既是儿女,便是后嗣,就是 神的后嗣,和基督同作后嗣。如果我们和他一同受苦,也必和他一同得荣耀。
  • 18 我想,现在的苦楚若比起将来要显于我们的荣耀就不足介意了。
  • 19 受造之物切望等候 神的众子显出来。
  • 20 因为受造之物服在虚空之下,不是自己愿意,乃是因那叫他如此的。
  • 21 但受造之物仍然指望脱离败坏的辖制,得享(享:原文是入) 神儿女自由的荣耀。
  • 22 我们知道,一切受造之物一同叹息,劳苦,直到如今。
  • 23 不但如此,就是我们这有圣灵初结果子的,也是自己心里叹息,等候得着儿子的名分,乃是我们的身体得赎。
  • 24 我们得救是在乎盼望;只是所见的盼望不是盼望,谁还盼望他所见的呢(有古卷:人所看见的何必再盼望呢)?
  • 25 但我们若盼望那所不见的,就必忍耐等候。
  • 26 况且,我们的软弱有圣灵帮助;我们本不晓得当怎样祷告,只是圣灵亲自用说不出来的叹息替我们祷告。
  • 27 鉴察人心的,晓得圣灵的意思,因为圣灵照着 神的旨意替圣徒祈求。
  • 28 我们晓得万事都互相效力,叫爱 神的人得益处,就是按他旨意被召的人。
  • 29 因为他预先所知道的人,就预先定下效法他儿子的模样,使他儿子在许多弟兄中作长子。
  • 30 预先所定下的人又召他们来;所召来的人又称他们为义;所称为义的人又叫他们得荣耀。
  • 31 既是这样,还有什么说的呢? 神若帮助我们,谁能敌挡我们呢?
  • 32  神既不爱惜自己的儿子,为我们众人舍了,岂不也把万物和他一同白白地赐给我们吗?
  • 33 谁能控告 神所拣选的人呢?有 神称他们为义了(或译:是称他们为义的 神吗)。
  • 34 谁能定他们的罪呢?有基督耶稣已经死了,而且从死里复活,现今在 神的右边,也替我们祈求(有基督......或译:是已经死了,而且从死里复活,现今在 神的右边,也替我们祈求的基督耶稣吗)。
  • 35 谁能使我们与基督的爱隔绝呢?难道是患难吗?是困苦吗?是逼迫吗?是饥饿吗?是赤身露体吗?是危险吗?是刀剑吗?
  • 36 如经上所记:“我们为你的缘故终日被杀;人看我们如将宰的羊。”
  • 37 然而,靠着爱我们的主,在这一切的事上已经得胜有余了。
  • 38 因为我深信无论是死,是生,是天使,是掌权的,是有能的,是现在的事,是将来的事,
  • 39 是高处的,是低处的,是别的受造之物,都不能叫我们与 神的爱隔绝;这爱是在我们的主基督耶稣里的。

《答疑解惑》

2019년 2월 20일 성경공부 녹음

 

서론

《로마서》 8장을 저는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에 대한 내용이며, 세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말하는 이 세 가지 주제는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리의 신학적 관념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미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믿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치유와 축사 사역을 하는 일에 있어서, 제가 담대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알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가장 잘하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나 특별한 선택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이미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관념을 세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이 이미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관념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7장에서는 우리가 죽을 몸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은 7장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4-25)

오늘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이 두 구절은 사람이 육신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사실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까요? 우리는 자기 안에 생각하는 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좋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율법이 말하는 그 좋은 일을 사람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오히려 모두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사실 사람은 매우 괴롭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행하고 싶은 선은 행하지 못하고, 행하고 싶지 않은 악은 도리어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에 속한 사람의 곤혹스러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면, 반드시 한 가지 곤혹스러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도 여전히 정죄가 있을까요? 만일 여전히 정죄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롭게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치유와 축사 사역을 하면서 아주 큰 실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죄를 자백했습니다. “주님, 저를 치유해 주세요!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치유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므로 나의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갔다. 마귀는 물러가고 떠나라!” 그러자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3개월 만에 치유되었고, 어떤 사람은 1년 만에 치유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1분 만에 치유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계속 붙들기만 하면 됩니다. 생명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죽을 우리 몸도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23절에 이르면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구속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우리의 몸이 속량된다고 말할까요? 오늘 우리는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은 죽은 후의 복음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복음입니다. 몸이 치유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복음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별 볼 일 없이 살고, 온몸이 병으로 엉망이 되어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에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고 이리저리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고 합시다. 죽은 뒤에는 또 “나는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일까요?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정하시고,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르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 좋지만 조금 어렵습니다. 이어서 여러분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르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3-4)

치유받는 것은 복음의 유익 가운데 하나이다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먼저 한 가지 개념을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구원 안에 병 고침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이 관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가운데 몸에 질병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의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라고 권면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구원의 유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래 육신에 속하고 육신은 연약합니다. 우리가 육신 가운데 살아가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답을 얻지 못한다면 병이 들었을 때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몸이 치유되지 않고 억압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저는 고통과 질병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기쁜 것처럼 가장할 뿐입니다. 대장암 수술 후에는 매우 고통스럽다고 들었습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고 매일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지냅니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저 자신도 고열이 나면 정말 죽을 만큼 괴롭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기분이 좋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치유를 받아 몸이 편안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이 병에서 치유되는 것이 복음의 유익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제 논증을 살펴보십시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첫 번째 열두 제자를 훈련하여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한 뒤에 왜 또 병을 고쳐야 할까요? 어떤 병을 고치는 것일까요? 몸의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우울증과 정신분열도 고칩니다. 이러한 병도 사람을 매우 괴롭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제자를 훈련하여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고, 두 번째로는 칠십 명의 제자도 보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몸의 질병을 치료해야 할까요? 육신은 무익한데 육신을 치료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라면, 그냥 병들어 죽으면 되지 않을까요? 천천히 병들도록 내버려 두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병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만일 누군가 병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에게 조금 주겠다고 할 때 받겠습니까? 어떤 목회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말을 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병이 하나님께서 주신, 변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받아 보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결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이름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래리라. (《신명기》 28:58-59)

다시 말해 질병은 저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를 자유롭게 하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몸은 정말 연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치유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에서 치유되는 것이 복음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우리 몸을 다시 살게 하며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함께 구속받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무덤에 묻힌 채로 있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셨으며 천사가 변해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날마다 자라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무덤에 묻히셨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몸이 죽음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에는 우리의 몸이 치유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것이 제가 논증하는 첫 번째 내용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간판을 걸어 둔 장소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교회를 세울 때 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지 자주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날 한 교회의 맨 뒷줄에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무대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대 조명에 커다란 박쥐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생물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눈빛이 매우 사납고 토끼만큼 컸습니다. 눈을 깜빡이자 다시 보이지 않았지만, 잠시 후 또 보였습니다. 저는 매우 궁금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교회를 지배하는 마귀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마침 제 친구가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그 친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것은 모두 가난이었습니다. 이런 교회가 어떻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간판을 걸어 둔 장소가 교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교회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영이 계신 곳이 교회입니다. 두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그곳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면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계시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라고 불리는 곳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계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로잡힌 자가 자유를 얻고 억압받는 자가 해방됩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행한다면,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우라

어떤 사람들은 자주 잘못된 인도를 받아 이런저런 말을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교회가 치유와 축사 사역을 이렇게 잘하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어떤 은사가 있거나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며 경외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거나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노골적으로 엉뚱한 말을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큰 현수막을 걸어 방언기도를 금지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정말 대담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아닙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성경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무엇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수요일에는 신약을 공부하고 금요일에는 구약을 공부합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여러 해가 지났고, 성경공부 자료만 해도 거의 50권 넘게 작성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성막을 세웠습니다. 성막을 완성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와 성막 전체를 가득 채웠습니다. 왜 성막 전체가 가득 찼을까요?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성막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준비를 했고, 솔로몬은 다윗이 그린 설계와 하나님께 받은 계시에 따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운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가득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와서 병이 치유되고 자유를 얻는 것은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승리하는 교회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한 일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정죄하는 습관이 없고, 사람들에게 날마다 죄를 자백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서 하루 종일 죄를 자백하라고 가르친다면, 마치 자백해야 할 죄가 끝없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속죄 제물이 되지 않으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곳이 교회일까요? 이러한 곤혹스러움을 가진 형제자매 여러분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잔뜩 늘어놓고, 들어 보면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여 큰 혼란이 생긴다면, 한 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십시오.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역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계시는지 물어보십시오. 여러 가지를 물으면 그는 설명하고 또 설명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건물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왜 우리 가운데서 치유를 받습니까? 이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신의 아들로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 되셔서 속죄 제물이 되셨고, 육신 안에서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르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3-4)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르라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여러분은 더 이상 무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셨으므로, 여러분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도리어 했습니다. 귀신이 우리 몸 안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상황이 있다면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한 번은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어떤 자매가 이렇게 타이핑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선악을 분별하고 싶지 않은데, 머릿속에는 늘 선악을 분별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귀신을 쫓아내면 해결됩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께서 항상 여러분을 충만하게 하시도록 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도리어 하며, 우리의 생각과 뜻 가운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순종한다면, 한 가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귀신이 한 것입니다. 또는 《성경》 원문으로 표현하면 여러분 안에 있는 죄가 한 것입니다. 죄와 귀신은 기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다면 필요한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귀신을 쫓아낼까요?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면 죽을 우리 몸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것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죽는 것이요 영을 따르는 자는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6-7) 이 말씀이 얼마나 분명합니까! 육신을 따르지 마십시오. 육신을 따르면 병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왜 병이 들까요? 육신을 따르기 때문이 아닙니까? 육신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육신을 따르면 많은 귀신을 불러들이고, 귀신에게 지배를 받아 병이 들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찾아와 기도를 요청합니다. 우리가 기도해 주면 자유를 얻지만, 집에 돌아가 다시 육신을 따르고 또 병이 들어 다시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고생합니다. 이게 무슨 생각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정말 충분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치유해 달라고 기도한 뒤 다시 돌아가 육신을 따르지 마십시오.

한때 폐암 환자 한 명이 1년 넘게 저와 함께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 1년여 동안 몇 번이고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상태가 나빠지면 우리에게 기도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더럽고 불결한 것들을 많이 토해 냈고, 놀랍게도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좋아진 뒤에는 다시 육신을 따랐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성령의 일을 따르지 않고 오직 육신의 일만 따랐습니다. 육신의 일이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고, 놀고…… 그의 상태는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고, 나빠졌다가 다시 좋아지기를 반복했습니다. 1년이 지나자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우리 가운데 요구 수준이 너무 높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제가 요구한 것은 높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성령을 따르기만을 요구했습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하고,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는 육신을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령의 일을 생각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떠나기로 선택했고, 일주일 후에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령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이것을 사명신학이라고 부를까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려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 세대의 축복이 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의미가 없는데 육신을 따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먹고 마시다가 병들고, 입원하여 치료받느라 돈을 쓰고, 병이 나으면 다시 나와 돈을 벌고, 돈을 벌면 먹고 마십니다. 그들의 배가 곧 그들의 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전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인색한 사람이거나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성령의 일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기적이고 인색한 상태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르며 성령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일이 참으로 힘들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잘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고난을 겪더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병이 있으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병에서 치유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병들었을 때 우리가 데리고 기도하면 그도 치유받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미 육신 안에서 죄를 정하셨으므로 우리는 이미 속량받았습니다. 질병을 만들어 내는 마귀는 우리 몸 안에서 불법 거주자가 되었습니다. 마귀에게는 더 이상 권리도 몫도 지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에게 나가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왜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혹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 가운데서는 질병이 모두 치유되는데 어떤 교회에서는 치유받지 못할까요? 그들에게 잘못된 신앙 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치유받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심지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치유해 달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귀신의 말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이 아주 나쁜 하나님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신 분입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으면 치유받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이 전하는 관념은 매우 이상합니다. “왜 나는 치유받지 못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병들기를 원하시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죽을 우리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몸이 속량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오늘 우리는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귀신이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은 불법이며, 귀신은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은사이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권세입니다. 나는 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병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그 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몸이 속량되는 것임을 마음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우리 몸을 다시 살리셔서 승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아들의 신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광이고 우리의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우리를 치유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따르고, 육신을 따르는 악한 습관을 버리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에 따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 율법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 믿고 받았으면 반드시 받는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우리 마음에 거하실 수 있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성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한 단락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1장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워 있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13)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보물을 구하듯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열려라 참깨”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나를 충만하게 해 주세요. 성령으로 나를 충만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자신의 영으로 여러분을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임하실 때 첫 번째 증거는 방언기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신의 방언기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내 방언기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당신의 방언기도는 배운 것입니다.” 이것이 큰 혼란을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바울도 이런 가르침을 한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3)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방언기도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느낌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제 방언이 엉터리라고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믿으면 그것은 방언이고, 믿지 않으면 방언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신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일 하나도 이루지 못하시겠습니까?

저는 조금도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방언으로 자주 기도하는 우리는 사실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믿으시겠습니까?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것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 증명해 보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지 믿음으로 여러분에게 말할 뿐입니다. 믿고 받았으면 반드시 받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0-11)

믿음이 핵심이다

의와 믿음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라도 믿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죄의 역사로 인해 죽지만, 우리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의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믿고 싶고 믿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이 상관할 일입니까?”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믿습니까?”라고 물어도 “나는 믿습니다. 당신이 상관할 일입니까?”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그 혼란 가운데 머물지 마십시오.

한 자매는 자주 혼란에 빠졌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걸까? 나는 믿음이 없는 것 같아!” 그러다가 곧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이 혼란에서 벗어나 믿음의 효력을 확실히 알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고 받았으면 반드시 받습니다.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육신은 귀신에게 순종하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영에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우리를 이 죽을 몸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이 이루신 구원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초기부터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오는 사람은 모두 치유를 받습니까? 예외는 없습니까?” 저는 예외가 한 명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몸의 구속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육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활비를 내야 하고 집세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집세를 내지 못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가운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가 보기에 우리 가운데 온 월급을 다 쓰던 사람들이 풍성함을 얻었습니다. 중학교 졸업장도, 고등학교 졸업장도, 대학교 졸업장도 없는 사람들조차 오늘날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반드시 육신을 따르는 방법으로만 얻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충족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르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4)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신명기》 28:1-13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한 가지를 믿기로 선택합시다.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라고 믿읍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더 이상 우리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이 세대의 축복이 되기를 원하시므로 우리도 이 세대의 축복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 제자도 아니고 두 번째 제자도 아니지만, 마침 2019년의 이 세대에 속한 제자가 되었으니 우리도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이런저런 필요가 부족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

우리 가운데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혜롭고 총명하며 존귀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조금 어리숙한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정말 과장이 아닙니다. 이 자매가 제게 연락하여 다음 주에는 집세를 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와 함께 기도하며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자매는 집세를 제때 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비교적 풍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뒤마다 직장에 많은 주문이 들어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실까요?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느낌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온몸의 털이 곤두섰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따뜻한 기운이 몸을 흐르는 것을 느꼈어요…… 차가운 바람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어요……” 이런 느낌, 저런 느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은 느낌에 따라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임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느낌이라는 미혹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미혹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이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하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이 세대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신학이 가진 관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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