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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20장 - 범사에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노라

2023-10-04 45,853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二十章 使徒行传20章 应当警醒 劝勉门徒 多人跟随 做人的仆人

相关经文

使徒行传20章-保罗再访问马其顿和希腊
  • 1 乱定之后,保罗请门徒来,劝勉他们,就辞别起行,往马其顿去。
  • 2 走遍了那一带地方,用许多话劝勉门徒(或译:众人),然后来到希腊。
  • 3 在那里住了三个月,将要坐船往叙利亚去,犹太人设计要害他,他就定意从马其顿回去。
  • 4 同他到亚细亚去的,有庇哩亚人毕罗斯的儿子所巴特,帖撒罗尼迦人亚里达古和西公都,还有特庇人该犹,并提摩太,又有亚细亚人推基古和特罗非摩。
  • 5 这些人先走,在特罗亚等候我们。
  • 6 过了除酵的日子,我们从腓立比开船,五天到了特罗亚,和他们相会,在那里住了七天。
  • 7 七日的第一日,我们聚会擘饼的时候,保罗因为要次日起行,就与他们讲论,直讲到半夜。
  • 8 我们聚会的那座楼上,有好些灯烛。
  • 9 有一个少年人,名叫犹推古,坐在窗台上,困倦沉睡。保罗讲了多时,少年人睡熟了,就从三层楼上掉下去;扶起他来,已经死了。
  • 10 保罗下去,伏在他身上,抱着他,说:“你们不要发慌,他的灵魂还在身上。”
  • 11 保罗又上去,擘饼,吃了,谈论许久,直到天亮,这才走了。
  • 12 有人把那童子活活地领来,得的安慰不小。
  • 13 我们先上船,开往亚朔去,意思要在那里接保罗;因为他是这样安排的,他自己打算要步行。
  • 14 他既在亚朔与我们相会,我们就接他上船,来到米推利尼。
  • 15 从那里开船,次日到了基阿的对面;又次日,在撒摩靠岸;又次日,来到米利都。
  • 16 乃因保罗早已定意越过以弗所,免得在亚细亚耽延,他急忙前走,巴不得赶五旬节能到耶路撒冷。
  • 17 保罗从米利都打发人往以弗所去,请教会的长老来。
  • 18 他们来了,保罗就说:“你们知道,自从我到亚细亚的日子以来,在你们中间始终为人如何,
  • 19 服侍主,凡事谦卑,眼中流泪,又因犹太人的谋害,经历试炼。
  • 20 你们也知道,凡与你们有益的,我没有一样避讳不说的,或在众人面前,或在各人家里,我都教导你们;
  • 21 又对犹太人和希腊人证明当向 神悔改,信靠我主耶稣基督。
  • 22 现在我往耶路撒冷去,心甚迫切(原文是心被捆绑),不知道在那里要遇见什么事;
  • 23 但知道圣灵在各城里向我指证,说有捆锁与患难等待我。
  • 24 我却不以性命为念,也不看为宝贵,只要行完我的路程,成就我从主耶稣所领受的职事,证明 神恩惠的福音。
  • 25 “我素常在你们中间来往,传讲 神国的道;如今我晓得,你们以后都不得再见我的面了。
  • 26 所以我今日向你们证明,你们中间无论何人死亡,罪不在我身上(原文是我于众人的血是洁净的)。
  • 27 因为 神的旨意,我并没有一样避讳不传给你们的。
  • 28 圣灵立你们作全群的监督,你们就当为自己谨慎,也为全群谨慎,牧养 神的教会,就是他用自己血所买来的(或译:救赎的)。
  • 29 我知道,我去之后必有凶暴的豺狼进入你们中间,不爱惜羊群。
  • 30 就是你们中间,也必有人起来说悖谬的话,要引诱门徒跟从他们。
  • 31 所以你们应当警醒,记念我三年之久昼夜不住地流泪、劝戒你们各人。
  • 32 如今我把你们交托神和他恩惠的道;这道能建立你们,叫你们和一切成圣的人同得基业。
  • 33 我未曾贪图一个人的金、银、衣服。
  • 34 我这两只手常供给我和同人的需用,这是你们自己知道的。
  • 35 我凡事给你们作榜样,叫你们知道应当这样劳苦,扶助软弱的人,又当记念主耶稣的话,说:‘施比受更为有福。’”
  • 36 保罗说完了这话,就跪下同众人祷告。
  • 37 众人痛哭,抱着保罗的颈项,和他亲嘴。
  • 38 叫他们最伤心的,就是他说“以后不能再见我的面”那句话,于是送他上船去了。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2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은 바울의 사역의 여정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바울은 앞으로의 사역이 많은 제한을 받게 될 것임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감옥에서 수많은 서신서를 썼지만, 얼굴을 맞대고 직접 가르치고 섬기는 사역은 이번 장에서 거의 농축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다소 조급한 마음도 묻어납니다. 사실 이러한 조급한 심정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보니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없으면, 그들은 여전히 귀신에게 짓밟히고 심지어 귀신에게 사로잡혀 끌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사역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지난 세월 동안 바울을 통해 수많은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여러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끊임없이 순회하며 언제든지 제자들을 권면하였고, 자신의 일생의 사역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35)

저는 한참을 찾은 끝에 마침내 이번 장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바로 “범사에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범사에 모든 사람에게 본을 보였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실제로 어떤 열매와 본보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리자면, 지난 수년 동안 저는 바울의 사역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제게서 종종 바울의 사역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바울을 본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사역에서도 바울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며, 여러분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기대하는 바입니다.

절대로 사역을 하다가 중간에 낙오되지 마십시오. 교회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흔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을 하다가 손을 놓고 내팽개쳐 버렸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의를 세우기 시작하거나 고난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재물을 탐하여 엉뚱한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저와 같이 사도 바울을 본받고, 우리 주 예수님을 본받아 눈물로 섬기는 일이라도 아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자들을 권면함

바울이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제자들을 권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권면했는지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 그 비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기록된 그의 말은 서신으로 전해진 것 외에도 많았습니다. 바울은 매우 직설적이고 강한 어조로 말했으며, 제자들을 간절하고 엄하게 권면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바울의 참된 전수를 받는다면, 여러분의 입술도 매우 예리해지고 언어 스타일도 매우 날카로워질 것입니다. 현대어로 표현하자면, 바울은 분명 매우 날카롭고 직설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어투는 매우 강했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제자들을 권면하는 과정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은 바로 그들의 육에 속한 것들이었습니다.

육에 속한 것들을 다루려면 반드시 두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 둘째, 오직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육적인 선호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을 담아야지, 듣는 사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쌀쌀맞거나 모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에는 사랑이 없고 오직 트집 잡기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비록 강하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으며, 제자들을 권면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였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자신들의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지만, 바울은 그들에게서 실오라기 하나도 취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일 년 반 동안 머물면서 아무것도 탐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두 손으로 직접 일하여 자신과 동역자들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고, 바울을 그렇게 말한 것이 온당치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권면으로 인해 돌이키기 시작했고, 갈등을 수반한 변화를 겪은 후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이 올라섰습니다. 그들과 바울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권면하는 바울의 태도, 동기, 그리고 방법은 모두 우리가 본받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직접 보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섬김을 받는다면, 제게서도 바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말을 엄하게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반드시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트집 잡지 않으며, 비록 여러분이 선악을 분별하는(선악과를 먹는) 태도를 보일지라도 제 육신의 선호에 따라 여러분을 섬기지 않습니다. 바울은 제자들을 권면할 때 에베소의 장로들과 목회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누가는 당시 바울의 말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사실 바울은 다른 교회 성도들에게도 이와 같은 말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 논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즉, 제자들을 권면하여 하나님의 도를 삼가 지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자신의 선호와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길입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그들을 위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때로는 그들이 알츠하이머(치매)를 향해 달려가는 길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육신을 위하는 삶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결과는 결국 치매에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의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며칠 전 요양원에 모셨는데, 가족들이 차마 마음이 아파서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당일 밤, 할아버지가 부주의하게 밖으로 나가셨다가 넘어지셔서 눈썹 부위가 크게 찢어져 여섯 바늘이나 꿰매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차를 몰고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소독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보낸 사진을 보고 마음이 몹시 착잡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와 교제하거나, 제가 여러분을 양육하고 권면할 때 “장차 치매에 걸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헛소리로 여기거나 억울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지 여러분이 지금 가는 그 길을 계속 간다면 치매에 걸릴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요즘 치매는 흔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치매라는 말을 거의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해서 쉴 틈도 없이 일했기 때문에 치매에 걸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 노인들은 퇴직금이 꽤 많이 나오니, 가족이나 요양원에서는 몇 년이라도 더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몇 년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퇴직금은 많이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해 욕을 하거나 횡설수설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저 자원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제자들을 권면하는 일을 수없이 해왔습니다. 권면할 때 저는 말을 아주 매섭게 합니다. 두 동역자가 한 자매를 데리고 훈련을 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매의 우울증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급히 개입하여 바로잡고 치료해 준 뒤, 두 동역자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엉터리로 사역했던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다가는 더 많은 사람들의 우울증을 재발시킬 뿐입니다.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동역자는 제 말을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겠지만, 괜찮습니다. 제자들을 권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름

저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자매들은 제가 나이가 들어서 곁에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를 따르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저를 따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치매에 걸린 사람이라면 따라다녀서 무엇하겠습니까?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할 텐데, 멀리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 자체가 사역하고 제자들을 권면함으로써 맺어진 결과입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사도행전》 20:1-4)

바울이 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닌 것은 그들을 권면하고 그들에게 모본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이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면서 쓴 돈은 누구의 돈이었겠습니까? 그 시절은 고사하고,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기차표 한 장을 사려면 보름치 월급이 들었고, 왕복하면 한 달 치 월급이 다 날아갔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사도행전》 20:13)

바울이 왜 걸어가려고 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뱃삯 한 장을 아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를 건너야 해서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까지 걸어간 뒤,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가려 한 것입니다. 그 길에서 훈련해야 할 제자가 있었거나, 아니면 뱃삯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이런 사람을 따르면 결코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바울을 본받는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예전에 한 자매님이 제가 세 들어 살던 집으로 찾아와서 묵을 방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일단 대충 지내보자고 하며, 좀 비좁아도 괜찮고 정 안 되면 나는 길거리에서 자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을 본받고 싶고, 모든 일에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싶으며,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다 알아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이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온종일 먹고 마시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양육을 내팽개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사역을 하다 보면 양육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고, 심지어 양육이 과연 필요한가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저는 여전히 말해야 합니다. 부디 귀담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길을 계속 걷다가는 결국 치매로 가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가 직접 훈련시킨 사역자들이 새벽 두세 시까지도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밤중에 전화가 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섬겨야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봐 베란다로 나가거나 화장실에 숨어서 사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제 마음에는 감사가 넘칩니다. 이처럼 기꺼이 저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걷고자 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떤 목회자들은 사역을 하다가 곁길로 빠져 다른 일을 하러 가버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권면은 이것입니다. “누구를 거역하더라도 하나님을 거역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역할 담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거역할 담력이 없으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이토록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으니, 여러분도 이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원치 않으신다면 여러분 자신의 길을 가십시오. 저는 절대로 도덕적으로 여러분을 옭아매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 겸손하며 눈물로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사도행전》 20:19)

바울이 한 이 말씀을 읽고 저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되 모든 일에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중에 제가 《성경》을 찾아보니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모세, 바울, 그리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쓴 《출애굽기》에는 모세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에 이르러서는 거기에 “눈물로”라는 말이 더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을 섬길 때 모든 일에 겸손하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범사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겪어야 하고, 마땅히 겪어야 할 고난도 겪어야 하며,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마땅히 감수해야 할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고, 더 많은 시험을 받으며, 심지어 일부 제자들과 죄인들에게 대적을 당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고 자신을 너무 아낀다면, 결코 겸손해질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 겸손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대적을 당해도 상관없이 자신을 한 덩이의 개똥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배신을 당해도 개의치 않고 그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되 모든 일에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으며,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섬김은 마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저의 본보기였고, 저는 바울을 본받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제가 들려드린 설교 음원 중에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는 품꾼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열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분명 안 하겠다고 하겠지만, 저는 합니다. 아침 8시부터 일해서 저녁에 한 데나리온을 받아도 저는 기쁨으로 받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결코 그 한 데나리온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며, 일하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습니다. 저는 본래 죽어 마땅하고 죽을 수밖에 없던 자였으나, 하나님께서 저를 사망의 문턱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부터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의 여정을 돌이켜볼 때마다 제 눈시울은 붉어집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작은 것을 드리는 것에 대해 계산하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따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고, 우리의 생명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삶이 좀 나아졌다고 해서 조금 섬겨놓고 스스로를 자랑한다면 그것은 범사에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눈물을 흘리게 됩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바울이 흘린 눈물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자신이 억울해서 흘린 눈물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범사에 겸손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피곤해도 상관없습니다. 바울이 순교했을 당시의 나이는 대략 지금 제 나이쯤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미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나이는 늙은 것이 아니며, 젊은이들보다 더 활력이 넘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본보기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바울을 본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섬기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이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천사들도 환호할 일입니다. 모든 일에 겸손으로 주를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본보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겸손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겸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헛소리입니다! 바울처럼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한 사람은 사실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척하는 것이 거짓 겸손이며,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 결코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함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행전》 20:20)

하나님을 섬기고, 특히 제자들을 섬길 때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의 제자들과 자신이 훈련시킨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그들’은 다릅니다. 제가 《마태복음》을 강해할 때 자주 ‘너희’와 ‘그들’을 구분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들’의 무리에 속해 있다면 저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너희’의 무리에 속해 있다면, 우리는 숨기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입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말을 돌리는 이유는 마음속에 걸림돌이 있어서, 말을 꺼냈다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직접 훈련시킨 사역자들은 모두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부딪히는 데 명수들입니다. 여러분도 본받기를 원한다면, 영혼의 유익을 위해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말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무너져 내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타고난 죄성과 그 안의 귀신들을 하나하나 다루어왔습니다. 매 순간이 충돌이었고, 매 순간이 눈물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도 괴롭고 저 역시 괴롭습니다.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섬기는 도중에 상대방이 전화를 끊어버려 마음이 조마조마하지만, 그저 묵묵히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내면에 힘이 되어 주셔서 강건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사흘이 지나면 낯을 두껍게 하고 다시 그 사람에게 괜찮은지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섬겨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숨김없이 말하지만, 여러분 안의 논리 체계와 제 안의 논리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에 반드시 원망이 생길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섭섭하게 대하면 계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한다.” 좋은 사람(호인)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좋은 사람은 리더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더더욱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매우 가증한 일입니다. 사람의 뜻을 위한다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가면 마귀도 여러분을 가만두지 않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특히 우리 가운데 목회자들이 저와 함께 길을 걸어오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제 앞에 낱낱이 드러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때로는 “당신은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눈을 흘기며 눈빛으로 저를 찔러 죽일 듯이 쳐다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섬기다 보면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감사하게도 매번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있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여러분의 말이 매섭더라도, 상대방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지각이 열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특히 우리의 섬김이 열매를 맺고 그의 진정한 성장을 보며 그 걸림돌을 뛰어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차별하지 않음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사도행전》 20:21)

바울이 대단한 점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온 목적은 그들의 빚을 갚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러는 걸까? 나이도 지긋한데, 할 일이 없어서 이러는 걸까?” 아닙니다! 제가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와서 그저 맛있는 것이나 먹고 마시며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돼지와 다를 바 없으며, 아니면 아미산의 원숭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손오공(대사형)이 될 것인지, 저팔계(이사형)가 될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서호에 가든 동호에 가든, 만리장성에 가든 그저 사람 구경만 하다가 올 뿐이며 참으로 무의미합니다. 저는 그저 몇 사람이라도 섬기고 싶을 뿐입니다. 사람 구경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녹초가 되고, 모처럼 번 돈을 호텔비로 다 날리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호텔비가 평소 9월에는 방 하나에 120위안 하던 것이 연휴만 되면 580위안으로 뜁니다. 9월에 다녀오면 10월에는 안 가도 되지 않습니까? 왜 굳이 연휴에 몰려서 가려고 합니까? 가뜩이나 가난하면서 돈을 함부로 쓰니,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바울을 본받기 시작할 수 없겠습니까? 범사에 사람들에게 본이 되십시오. 섬김을 받는 사람이 촌사람인지 아닌지 가리지 마십시오. 저는 시골뜨기를 섬길 때도 하나님을 섬기듯 대하고, 비록 고위층 인사라 할지라도 똑같은 원리로 섬깁니다. 저는 청소부를 섬길 때도 하나님을 섬기듯 대했습니다. 관료든 기업가든, 저는 청소부를 섬기듯이 똑같이 섬깁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헌금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며, 부유하든 가난하든, 귀하든 천하든, 신분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섬기듯 사람을 섬깁니다. 우리 가운데는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구별이 없으며, 대도시 출신이든 시골 출신이든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도를 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함께 사역하다 보면, 어떤 사람의 다리와 발이 퉁퉁 부어 있을 때 그의 발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무좀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대로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고귀해서 냄새나는 발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만 하면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사도행전》 20:22-23)

바울은 각 성마다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성령께서도 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기어코 가려고 했을까요? 결박을 당하거나 죽는 것은 그가 고려하는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성령께서 그의 행차를 막으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그곳에서 그가 그런 일을 겪게 될 것임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며, 만약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아꼈다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앞으로 어느 곳을 가든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를 해치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바울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너무나 유명했고, 유대인들은 모두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역이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저 역시 이 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려 하지만, 바울의 경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영원 속에 살아가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좋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한 사람의 논리가 그저 살아남는 이 사소한 일에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덜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돈은 얽매임이 됩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재물을 탐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에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야고보와 베드로 같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 체계였습니다. 비록 그는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을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여겼습니다.

이 여정은 한 가지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바로 왜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한 청년(유두고)이 창문에서 떨어졌을 때, 바울이 그 위에 엎드려 안으니 그 청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은 3층에서 떨어졌으니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이 손을 대자 다시 살아났고 사람들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바울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음을 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함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바울이라는 사람은 분별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단 그에게 일을 맡기면, 안 하겠다고 하면 안 하지만, 하겠다고 하면 철저하고 반듯하게 해냈습니다. 이것이 배움과 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큰 차이점입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하다가 말다가 하며 늘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이후,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일하여 교회를 세우는 직무를 완수했습니다. 바울은 명목상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실제로는 온 교회의 사도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의 사명(직무)에 충성하십시오. 작은 일에도 충성하고 큰 일에도 충성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제가 강해한 《사무엘상·하》를 들으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충성스러운 제사장을 찾으시며, 주 예수께 받은 직무를 감당할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제가 주 예수께 받은 직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우게 하시고, 사도 바울의 신학을 회복하게 하셨으며, 양육의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전진하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사명(命定)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이를 위해 살아갑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저 먹고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제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성경을 미친 듯이 읽으며 이것이 보물인지 확인하고자 했고, 결국 이것이 보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셨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다메섹의 그 빛을 본 적도 없고 눈이 먼 적도 없습니다. 단지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역자로 부르셨는지 묻지만, 저는 잘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 길을 계속 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저를 부르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섬김도 참으로 유별난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냈을 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택하셨는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제가 섬기기를 좋아하며 《성경》에서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완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살아가는 것에는 큰 흥미가 없으며, 오직 주 예수께 받은 직무를 완수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재물을 탐하지 않음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사도행전》 20:33-34)

바울이 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돈은 어디서 났습니까? 바울 자신이 직접 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탐하는 사람은 결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돈을 벌면 투자 포트폴리오부터 짜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평생 물질적으로 남긴 것은 많지 않았지만, 수많은 영적 자산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기술도 있고 능력도 있으며,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충성된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하나님을 섬기는 충성된 마음이 바로 바울의 핵심 비결이자 영적 기술이었습니다. 그는 재물을 탐하지 않았는데, 그 자신이 곧 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조금만 일하면 돈이 주머니로 들어왔기에 애초에 돈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돈보다 귀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우리 동역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제게서 많은 이득을 챙겨갔다고(이용해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득을 챙겼으면 챙긴 거지. 내 자신이 곧 돈이고, 나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 말을 배워서 자신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기 전에 “너희는 시험 점수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다!”라고 격려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큰 도전을 받고 시험을 아주 잘 치렀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돈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긴다면, 돈을 우상이나 하나님처럼 떠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다스릴 줄 알고 스스로가 돈보다 가치 있음을 안다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더욱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사역을 하고 있으며, 이것을 양육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모두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학 시험을 본다면, 여러분이 점수보다 더 귀한 존재임을 알게 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일자리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사역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사역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보배입니다. 이런 말씀으로 격려를 받는다면 왜 재물을 탐하겠습니까? 생각만 하면 돈 생각뿐이고,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만 나옵니다. 여러분이 저를 본받는다면 결코 돈이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십 년을 살고도 여전히 빈털터리로 사는 이유는 머릿속이 더러워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익한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돈 버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빚을 많이 져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핑계로 삼지 마십시오. 근본을 따져보십시오. 여러분이 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돈보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면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마땅히 이렇게 수고해야 함을 앎

내가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35)

여러분의 온몸이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돼지에 비유하는 욕이 아니라,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돈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가치를 창출하려면 육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나 이 수고는 마땅한 것입니다. 제가 기쁨으로 사역하는 이유는 마땅히 이렇게 수고해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랑을 하자면, 일반적인 목회자들과 비교할 때 저는 혼자서 세 사람에서 열 사람 몫의 일을 해냅니다. 인테리어 같은 육체노동도 전문 기술자보다 제가 더 잘합니다. 저는 손도 빠를 뿐만 아니라 두뇌 회전도 빨라서 혼자서 여러 사람의 몫을 감당하곤 합니다. 저는 제 동역자들도 저와 같기를 바랍니다. 사실 그들도 저에게 훈련을 받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렇게 수고해야 하며, 이는 결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예전에 한 대형 교회의 뇌암에 걸린 목사님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 병에 걸렸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형 교회에서 50여 개의 구역(소그룹)을 관리하느라 3년마다 구역장을 교체해야 하고, 매년 10여 명의 신입 리더를 양성해야 하며, 일주일에 단 하루밖에 쉴 수 없어서 병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자신을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제가 왜 3년마다 구역장을 바꿔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구역장들이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 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이어서 그들이 매주 한 번씩 구역 모임을 인도해야 하고, 주중에는 교회에 와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평신도 성도들이 쏟는 시간만 해도 그 교회의 구역장들보다 훨씬 많지만, 그 목사님이 말한 것과 같은 번아웃(소진) 증상을 겪지 않습니다. 그것은 번아웃에 걸릴 만한 목사가 번아웃에 걸릴 만한 구역장들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왜 번아웃이 없습니까? 저에게는 명확한 논리가 있고, 일에 대한 원리가 있어 일할수록 더욱 생명력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고와 섬김 속에서 기쁨을 누리며, 섬김 자체가 곧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에게도 안식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가장 바빴고 매일 제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에게 제가 20대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지만 뇌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겼기 때문이며, 이러한 수고는 제가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하기를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좋아했고, 직장에 다닐 때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목회자가 되어서는 사역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평생을 참으로 기쁘게 살아왔는데, 그 누가 제 마음속의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연휴 때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여 일 년 중 그 짧은 기간에만 기뻐하고 나머지 시간은 늘 찌푸린 얼굴로 살아가니, 어찌 암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이든 사역자든 동역자든, 이러한 수고가 여러분에게 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본받다가 치매에 이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고 나서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복음》 20:1-16)

우리는 일하는 것이 은혜요, 섬기는 것도 은혜이며, 직업도 은혜요, 수고하는 것도 은혜이며, 고난을 받는 것 또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렇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꿰뚫어 깨닫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결코 뇌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선악과를 먹고 따지는) 태도가 병을 부르는 것입니다. 게으르면 암에 걸릴 수 있지만, 일해서는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른 자에게 병이 많다’는 이치입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섬겨보았는데, 그들의 머릿속에는 쓰레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제가 그 뇌암에 걸린 목사님을 섬기러 갔던 이유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목회하는 교회에 탐방 및 교류차 방문했다가 몇 가지 표적을 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한 치과의사 구역장은 목 보호대를 차고 허리에는 굵은 복대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물어보니 온몸에 수시로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여 누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눕기만 하면 다리에 전류가 흘러 마치 220볼트 전기가 몸에 연결된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도해 주자 즉시 나았고, 또 다른 반신불수 구역장도 데려와 기도해 주었더니 감사하게도 즉시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저 역시 어떻게 나았는지 신기하여 그들에게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시 귀신이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붙어 있어서, 그는 그곳에 20kg이 넘는 쇳덩이가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섬겨 낫게 하자,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자기 교회에 이런 능력이 있다면 진작에 부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속으로 ‘나는 이런 능력이 있은 지 수년이 지났어도 대형 교회로 부흥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숫자만을 보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참된 제자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뇌암에 걸린 절친한 목사님을 섬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일을 하려고 하면 졸음이 쏟아져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집에 가서 섬기자 그의 영적·정신적 상태가 즉시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체면을 몹시 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위챗(WeChat) 연락처를 남겨주며 다음에 이런 증상이 다시 나타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지만, 결국 다시는 연락해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저의 섬김이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병의 뿌리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목회자가 저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일의 달인’을 만나면 압도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쓰든, 사역을 하든, 인테리어를 하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든 그 어떤 것도 저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일주일에 하루밖에 못 쉬어서 뇌암에 걸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향해 선악을 따지고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는 ‘이러한 수고는 마땅한 것이다’라는 견고한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느냐고 묻습니다.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원해서(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한다”는 이 세 글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모든 일에 “기쁨으로 자원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본을 보임

제가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며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과 동역자들이 이것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자 한다면 마땅히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고난을 받으며, 덜 먹고 덜 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깨어 근신해야 함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20:29-32)

제가 드리는 말씀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깨어 근신한다면, 사나운 이리에게 물어뜯기지 않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끌려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되지 않고, 평생 오직 하나님의 충성된 용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

바울은 우리에게 참으로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을 온전히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그를 본받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이며, 풍성한 상급과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잘 모른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기업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99년도 아니고, 70년도 아니며, 999년도 아닌 영원한 기업입니다. 바울을 본받기 시작하십시오. 살아있는 동안 번성하며, 이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빛 가운데 밝게 비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십시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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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明国
今天听刘牧师讲谦卑是指人对神的谦卑,纠正了一直以来的错误概念。 之前听刘牧师讲创世纪里的塔玛时就翻转了一直以来所接受的信息。 这真是醍醐灌顶,就看见之前肉眼看不见的。 感谢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