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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호세아 14장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2024-03-08 12,213 何西阿书 何西阿书第十四章 何西阿书14章 任性召罪 一生把神放在首位 做个智慧的通达人 要归向耶和华你的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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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西阿书14章-何西阿劝告以色列人
  • 1 以色列啊,你要归向耶和华你的 神;你是因自己的罪孽跌倒了。
  • 2 当归向耶和华,用言语祷告他说:“求你除净罪孽,悦纳善行;这样,我们就把嘴唇的祭代替牛犊献上。
  • 3 我们不向亚述求救,不骑埃及的马,也不再对我们手所造的说:‘你是我们的 神。’因为孤儿在你耶和华那里得蒙怜悯。”
  • 4 “我必医治他们背道的病,甘心爱他们;因为我的怒气向他们转消。
  • 5 我必向以色列如甘露;他必如百合花开放,如黎巴嫩的树木扎根。
  • 6 他的枝条必延长;他的荣华如橄榄树;他的香气如黎巴嫩的香柏树。
  • 7 曾住在他荫下的必归回,发旺如五谷,开花如葡萄树。他的香气如黎巴嫩的酒。
  • 8 以法莲必说:‘我与偶像还有什么关涉呢?’我耶和华回答他,也必顾念他。我如青翠的松树;你的果子从我而得。”
  • 9 谁是智慧人?可以明白这些事;谁是通达人?可以知道这一切。因为,耶和华的道是正直的;义人必在其中行走,罪人却在其上跌倒。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호세아》 1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앞서 나눈 12장의 주제와 매우 비슷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주님을 믿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호세아》 14:1)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고 배반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외치시는 말씀이며, 이 사람들은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진 자들입니다.

네가 불의함(죄악)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왜 이스라엘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넘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마치 할머니가 외출했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거나,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골반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 아니며, 넘어지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한가하게 일부러 넘어지고 싶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 이집트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셔서 복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그들은 망가지고 넘어졌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좋은 날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단 살기 좋아지면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우 큰 난제를 안겨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날, 복된 날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사람은 좋은 날을 살게 되면 도리어 죄악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살기 좋아지니 죄지을 시간이 생긴 것입니다. 이는 중국 옛말에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음란한 생각이 난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극도로 고생하며 노예로 살 때는 매일 일하느라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어디 음란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어도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큰 난제를 안겨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려 하는데, 축복을 받고 나면 사람은 죄를 짓고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만약 넘어지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잘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도 난처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의문으로 남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가정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고 나서 곧바로 잊어버렸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소그룹 목회자로 섬기더니, 다음 날 갑자기 교회를 떠나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부유해졌을 때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이것은 매우 중대한 시험이자 평가 기준입니다. 평소에 할 일 없을 때 모임에 오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이 바쁠 때도 시간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믿음에 달린 문제입니다. 일이 바빠지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손에 1억 위안이 쥐어져서 그것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유하지 않을 때는 시간을 내기 쉽지만, 일단 부유해지면 시간을 내는 것이 좀 버거워집니다. 예를 들어 집에 부동산이 100채가 있는데 아직 30채가 나가지 않았다면, 매일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고 계약서를 쓰는 것이 최우선 순위가 됩니다. 다른 일은 다 미뤄도 집을 세놓는 일은 미룰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저에게 성경공부 올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소 다섯 마리를 샀거나 밭을 사서 못 온다고 하는 것과 같은데, 그 전제는 모두 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매우 하찮은 자리에 두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속에 참으로 많은 탄식이 나옵니다. 일이 터지면 저에게 와서 섬겨달라고 하는데, 말을 세게 하면 안 되고 약하게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저를 너무 난처하게 만드니 속으로 “오 하나님 맙소사!” 하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진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니 온갖 엉망진창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쨌든 항상 일이 터집니다. 이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평생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저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비록 가끔 멍청해질 때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시간에는 맑은 정신을 유지합니다. 어떤 형편, 어떤 상황이든 나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저는 그분을 첫 자리에 둘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은 다 내려놓을 수 있어도 제 하나님만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지혜입니다. 저는 일찍이 이런 일들을 다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손가락 다섯 개도 필요 없이 발뒤꿈치 하나로도 다 계산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의지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오직 우리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복을 받는 데도 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향해 목청 높여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셔야 합니까?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나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더 기가 찬 것은 사람이 도리어 콧대를 세우며 “내가 당신과 이런 거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되묻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일생의 모든 일에 대한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몇 달 전 어떤 사람이 신장결석에 걸렸는데, 우리 동역자가 그를 데리고 기도했더니 가시 달린 결석이 소변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말을 꺼내면 기분 나빠하며, 제가 끝도 없이 자신에게 빚진 것을 상기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빚진 것인데, 나중에 또 신장결석이 생기면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럽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자기의 죄악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도를 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죄악으로 인해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도를 지키십시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호세아》 14:9)

죄인이 여호와의 말씀에 걸려 넘어질 때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신해 몇 마디 하소연을 한 것뿐이며, 사실 하나님은 제 하소연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넘어진 후에 귀신에게 땅바닥에 짓눌려 짓밟히고 비벼진 후에야 서서히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다

귀신에게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고 지옥에 사는 것처럼 고통받고 눈물 흘리며 비참해집니다.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면 결코 편할 리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호세아》 14:1-3)

그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지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를 도와 죄악을 제하시고 깨끗하게 하옵소서.” 그러면 성령께서 오셔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고 마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해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더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고아처럼 되어 오직 하나님께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선한 행실을 받아달라고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돈을 너무나 사랑하다가 결국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마치 미얀마 북부 사기 조직에 갇힌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건져달라고 울부짖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이렇게 하여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제사를 드리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얼마나 간단한지 보십시오. 위아래 입술만 움직여 수송아지 대신 입술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바치는 수송아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송아지를 드리는 그 마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느라 수송아지를 드릴 시간도 없고, 매일 겪는 것이 고통뿐이며, 걸핏하면 사기를 당합니다.

며칠 전 심방을 갔는데, 어떤 자매님의 남편이 이전 교회에서 매우 어리석고 나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그 교회의 ‘선지자’라는 사람은 제가 보기엔 ‘선치(先痴-먼저 바보가 된 자)’였습니다. 선지자와 바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선치가 이 형제에게 “큰 사업을 할 사람”이라고 하니, 이 형제가 혹해서 사업을 하다가 엄청난 돈을 날리고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혔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최근에 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내온 메시지를 보니 다단계 회사에 감금되었거나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흉한 일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는 구약 성경의 어떤 선지자가 특정인에게 큰 사업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지 의아합니다. 그런 구절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선치는 돈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렇습니까? 선지자 발람조차도 감히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몰래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수송아지 대신 입술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이상 앗수르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넓게 내다보면, 세계 정치 속에서 약소국들은 매우 힘겹습니다. 줄을 서지 않아도 안 되고, 줄을 서면 더욱 안 됩니다. 역대 모든 약소국은 약소국으로서의 지혜가 있어야 했습니다. 줄을 서든 안 서든 얻어맞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약소국은 앗수르에 구원을 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땅바닥에 짓눌려 짓밟히고 수치를 당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세상 열강은 그 누구도 진정으로 구원해 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사람의 육안으로 보면 돈과 열강을 의지할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호세아》 14:3)

우리는 더 이상 열강에게 구원을 청하지 않으며, 이집트의 말을 타지도 않습니다. 결국 자신마저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고 있는데 무슨 말을 타겠습니까? 또한 손으로 만든 우상을 향해 “너희는 우리의 신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소용없고 금송아지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앗수르 사람들에게 멸망당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앗수르는 매우 잔혹한 민족으로,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일제시대 왜놈들이 우리를 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매우 간단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가 소 한 마리를 드릴 테니 하나님은 나에게 어떻게 해 주십시오”라고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자기가 만든 우상에 더 이상 기대를 걸지 마십시오. 이전에는 돈을 의지했지만 돈이 소용없었고, 권력을 의지할 때 권력이 소용없었으며, 세력을 의지할 때 세력도 소용없었고, 자기 두 손의 능력을 의지할 때 두 손의 능력도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께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께로 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처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주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비극입니다. 사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교회에는 갔지만, 섬긴 것은 금송아지였습니다. 그곳의 선지자는 당신이 큰 사업을 할 사람이라 했지만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혹은 환상을 보고 이 사업을 해야 한다고 해서 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로 본전도 못 건지고 쫄딱 망했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다 허황된 짓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마지막 구절의 말씀처럼 “하나님, 우리는 고아입니다. 고아가 주 여호와께 긍휼을 얻나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육신의 아버지를 찾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빽을 쓰려면 좋은 아버지 빽을 써야지, 금송아지 빽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죄악으로 넘어져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전히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 “우리를 구해주시면 나중에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넘어진 이런 사례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 세대가 얼마나 순전한 복음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이 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배도한 병을 고치시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 혹은 하나님께 구원받았던 사람은 평생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기로 선택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옹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넘어져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는 것을 보실 때, 우리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억 개의 발로 밟아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마귀의 나라에도 구호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명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수많은 귀신들이 억만 개의 발로 밟아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병이 들기 시작합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머리도 아프고 온몸 구석구석 병이 납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밥 먹고, 소변보고, 숨 쉬고, 물 마시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등 어디에 문제가 생기든, 어떤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견디기 힘듭니다. 자동차와 같아서 아무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달리다가 멈춰 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은 머리에 든 병, 머리에 혹이 나는 것입니다. 최근에 보니 많은 형제자매들의 뼛속에 가난의 영이 있고, 머릿속에는 온통 라오마(세상적/맘몬의 영)의 체계가 가득 차 있어서, 이쪽에서 기도하면 저쪽 머리에서 혹이 솟아오릅니다. 터지고 나면 피고름이 쏟아져 나오고 냄새도 지독합니다. 나중에 보니 사람 몸에 여기저기 혹이 나고 온몸에 날 수도 있는데, 보면 바로 라오마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 병이며, 가장 치명적인 것은 머리의 병, 머릿속에 든 라오마의 혹입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났음이니라 (《호세아》 14:4)

우리 하나님,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셔서, 우리가 언제든 그분께로 돌이켜 부르짖기만 하면 우리를 고쳐 주십니다. 어디서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살 공간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악함을 따지자면 다 진멸당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고 그분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위아래 입술을 움직여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우상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의 배도한 죄를 고쳐 주십니다.

배도란 생명의 도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 어떤 아이가 두통과 구토, 복통으로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기도하는데 아이의 목소리에서 제멋대로 구는 고집이 묻어났습니다. 사실 그 아이를 섬긴 지 하루이틀이 아닌데, 그 고집은 배도의 병입니다. 여러분이 걸린 것도 다 배도의 병입니다. 그 아이의 집에서는 위장 감기인 줄 알고 기도하며 하루 종일 씨름했지만 별 효과가 없길래 제가 아이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어쩌면 그렇게 미련하냐?” 제멋대로 굴면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꼬마는 그 말을 듣고 배도의 죄를 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제멋대로 구는 방자함은 죄이며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고집과 방자함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사람은 왜 배도합니까? 생명의 도를 저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머리가 발뒤꿈치에 달렸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기도할 때 합곡혈을 누르라고 했더니, 자기는 머리가 아픈데 왜 합곡혈을 누르냐는 투였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왜 엉덩이에 주사를 놓느냐고 따져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말문이 막히고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다는 말을 듣더니 즉시 제발 엉덩이에 주사를 놓지 말아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네 말을 듣겠습니까?

저에게 와서 두통 기도를 받을 때는 합곡혈을 누르는 것인데, 네가 무슨 권리로 제멋대로 고집을 부립니까? 이제 우리는 이 생명의 도를 깨닫기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여러분 속이 잘못되었고, 그 안에 잘못된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생명의 도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놓으신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별명을 하나 지어주어야겠습니다. 바로 ‘바보멍청이’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돈을 사랑하면 온갖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너무 사랑하다가 미얀마 북부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며칠 전 미얀마 북부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났는데, 그곳에서 장사를 하다가 중국 정부가 알고서 돌아오지 않으면 호적을 말소시키겠다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돈 벌기 쉬웠다며 보이스피싱 단지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식당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 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아 돌아와도 신장이 털려 있기도 합니다. 재수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번성하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에브라임이 다시 말하기를 내가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호세아》 14:5-8)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제가 무슨 복을 받았길래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되었는지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조상 묘에 무슨 좋은 기운이라도 돌았는지, 비록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제가 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섬길 기회를 얻었는지 감탄할 따름입니다. “정말 너무 좋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든든한 의지처가 생긴 기분입니다. 제 모든 문제의 해답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으며, 제 모든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채워집니다. 이번 생애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택하심을 입을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번성하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호세아》 14:5-6)

제가 감탄하며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느낌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마치 러시아 사람이 보드카를 한 잔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켜는 그 순간과 같습니다. 눈보라 치는 추운 날 땅콩 한 접시를 두고 보드카 한 잔을 단숨에 털어 넣으면, 눈을 질끈 감고 표정은 몹시 괴로워 보이지만, 이어서 터져 나오는 감탄과 함께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 온몸이 짜릿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이렇게 짜릿하고 시원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 결코 우상과 엮일 일이 없습니다. 모든 필요가 다 채워졌는데 또 우상을 모셔다 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보멍청이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형통의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맘몬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며, 오직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리석어서 선지자가 자기를 큰 사업가라 했다고 그대로 믿어버립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지자는 바보였고, 결국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예언을 한 것입니까? 실은 귀신이 헛소리를 한 것인데, 사람이 그것을 믿고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최고의 복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원하십니까? 첫째,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건강 문제인데, 건강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늙어서 마비되어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고, 노후의 다른 모든 걱정도 전혀 없습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신에게 짓눌려 침대에 누워 마비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괴롭힙니다. 그것은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사람이 선택을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저는 가장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을 얻은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삶의 모든 필요가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즉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일상의 먹고 마시고 자는 모든 것이 다 채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반신반의하겠지만, 저의 대답은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에게 축복을 쏟아부어 주시는 것을 볼 때 제 마음은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정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선택은 번영이며, 사람의 모든 필요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선택을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면, 그 뒤에 따르는 축복은 정말 엄청납니다.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과 네 창고와 네 은행 계좌와 네 반죽 그릇까지 모든 것이 복을 받게 됩니다. 핵심은 당신이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 총명한 자가 되라

우리 하나님은 복잡하게 꼬아놓지 않으시고, 매우 복잡한 것들을 지극히 단순하게 만드신 후에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믿지 않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호세아》 14:9)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인해 넘어지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한 진노를 거두셨기에 우리의 배도한 병을 고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선택임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이것이 하나님의 도임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고 굳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그 길은 참된 길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는 굽은 곳이 없으므로 의인은 그 길로 행할 것이요,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다 죄이며,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다 죄이므로,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호세아》의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며,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의 도를 끊임없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 안에서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리고 위를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를 끊임없이 깨닫고 알아가기 시작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도는 영적 전쟁의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저는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것이 매우 정교하고도 심오한 지혜임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손의 칼에 의지해 사는 것은 저주이며, 자기 능력을 의지하는 것 역시 저주를 받아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힘입어 살아야 하며, 귀신은 능력을 의지합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그런 귀신이 패망을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최근에 저는 여로보암의 배후에도 귀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면 영적 세계의 미얀마 북부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것은 목숨이 위태로운 일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사람이 사망의 땅으로 속아 넘어가면 땅바닥에 짓눌려 비벼지게 됩니다. 뼛속에 여전히 라오마가 있거나 자기 능력을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뼛속에 여로보암의 체계가 남아있다면, 하나님이 가판대를 맡겨 관리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관리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관리하면 망하게 되며, 반드시 깊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히 관찰해보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외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여로보암의 방식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또한 더 이상 제멋대로 굴지 말고, 자기 두 손과 능력에 의지하여 살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 저주받은 삶입니다. 축복과 저주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큰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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