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2019年04月03日分享录音
Q1:我凭着所赐我的恩,对你们各人说,不要看自己过于所当看的。要照着神所分给各人信心的大小,看得合乎中道。(《罗马书》12:3)这句经文怎么理解?
保罗在《罗马书》12章之前,就写了这个论证。有一些人神造他的时候,他就是一个有信心的人,这是一个很神奇的事,我想这些话是对的。为什么呢?因为人都是神造的,我们要知道,神造了一些彰显他荣耀的器皿,也造了一些彰显他愤怒的器皿,这是保罗在《罗马书》里清清楚楚地写的。但有的人却说,你造我成这样的,你怪我做什么?难道把你造成那样,你就是那样吗?
其实不管神把你造成什么样子,如果你听了神的话,愿意来选择信靠神,神就会照你所信的赐恩给你。所以,我们不能把责任推给神。但是神在造我们的时候,的确是不同的人在各个方面有不同的天分,但是有一样不会改变,就是我们每一个人对我们自己的信心要负责任。
信心可能有大有小,天分可能有多有少,但是没关系,你就把神给你的一千块,两千块,或者五千块都用好了。神没有说,我给你五千块你赚一千就行了,或者我给你两千块你要赚五千。其实两千赚两千,五千赚五千,一千赚一千都是一样。
有一件事大家一定要知道,信心是我们的责任,这是《圣经》讲得清清楚楚的。所以不要因为``要照着神所分给个人信心的大小,看得合乎中道"这句话,就把自己没有信心推给神.
虽然这些是神给的,难道不也是我们的责任吗?如果我们常常把自己看的很高,好像要为神死的样子,然后真的轮到要为神摆上的时候,信心又没有了。这种人的状态不稳定,不合乎中道。
飞机一定要有良好的稳定性人才敢坐。如果你坐飞机,一会儿高一会儿低岂不吓人?同样的,人的信心也要有稳定性。一个人的信心不应该是忽大忽小,一会儿有一会儿没有的。
所以不管神造我们的时候,我们是什么样子和状况,有一样可以很确定的是,我们身上都有神荣耀的形象。只是有的人信,有的人不信,有的人渴慕,有的人不渴慕而已。
Q2:``炭火堆在他头上"是什么意思?
如果你不知道炭火堆在头上是什么意思,你烧一堆炭火放在头上,你就知道了。就是人会很烫,很难受。是神拿火烤还是自己拿火烤?其实是神拿火烤。我们弟兄姐妹一定要知道,要开始知道信靠神,不要自己伸冤。为什么不要自己伸冤?因为伸冤很痛苦,如果你想活得很痛苦,愿意这样做就做。
但是如果你要想不痛苦,你就不要整天老想着自己替自己伸冤。你的冤神难道不知道吗?你的事难道神不能掌管吗?对神要有信靠的心,你要知道神是可信靠的神。千万不要自以为是,以为自己能够掌管些什么。又有谁知道,有人冤枉你一把,不是对你最好的造就和考验呢?
Q3:圣徒缺乏要帮补,客要一味地款待。这句经文不太懂
圣徒就是在教会里的弟兄姐妹,他们缺乏你要帮补。帮补这件事耶稣有讲,他没有吃的时候,你给他一点吃的;他没有穿的时候,给他一点穿的。有的人就问,如果他欠了一亿的赌债,或者是他投资破产,你要不要帮补?不用,因为那样的帮补不了。
耶稣怎么说呢?他没吃的时候给他吃的,没穿的时候给他穿的,这是帮补。有一件事很确定,他刚好在你面前缺乏,又有谁知道神要透过这个缺乏的弟兄姐妹,来考验你是不是把钱财看透。如果你把钱财看透了,你还会不会很小气?我告诉你们,看不透钱财的人都是些很愚蠢的人。要记住我说的话,看透钱财,做一个聪明人。
我经常看见很多愚蠢的人看不透钱财,为了小恩小惠,钱财利益,丑恶的嘴脸显露出来,狼牙也显露出来。圣徒缺乏要帮补,不是让你给他大鱼大肉,有点吃的就可以了,饿不着。
我们要清楚一个问题:圣徒缺乏有几种可能,一个可能是神要考验你。另外一个,就是这个圣徒活在贫穷的咒诅当中。你如果不帮补,他明天吃不上饭,他如果吃不上饭,你却让他禁食祷告,那叫帮补吗?那不叫帮补。他如果因你的缘故,能够活下去,然后你为他祷告,破除他身上贫穷的咒诅,让他开始活出兴盛,这样岂不是神的美意吗?
客要一味地款待,这里我们要清楚,这个``客"不是大街上的客人。那个时候使徒保罗都是走遍各地去传福音。耶稣派这些门徒去传福音的时候,对这些门徒说,你进一个家里,如果那家的人欢迎你,你就住在那里,如果那家人不欢迎你,你就跺跺脚上的尘土,他的罪就跟你没关系了。
客要一味地款待,不是整天做大鱼大肉给客人,我们不效法这个世界,这里是指家里来了需要招待的、从远方而来为神摆上的客人,他们为了福音的缘故走遍各地,我们要款待他们。款待并非小器地对待,不是随便给一口水喝,或者随便给一点吃的。是给他们像样的接待,这话是合乎道理的。
保罗写给罗马教会,这些教会要接待一些人,如果接待了一个异端邪教怎么办?那其实跟你的接待没有关系。即使你不接待,该被迷惑的照样还是会被迷惑,怪你自己不认识神。如果你心里对神的话很清楚,即使接待了他们,你也不会受到迷惑。
Q4:《罗马书》12章18节,若是能行,总要尽力与人和睦是什么意思?
若是能行,要尽力与人和睦,我们不要摆出一副随时想与人打架的样式,能和睦就和睦。为什么呢?因为人和人之间的争吵和冲突不过是利益而已,一般这些问题都和钱有关。钱能够解决的问题都是小问题。
其实和睦这件事,实际上是让我们不为这些利益的东西去和人争啊,抢啊,打啊,这不是一个好的做法。如果你看透了钱财还会去争夺吗?如果说是为了福音的缘故争竞,就如保罗写《加拉太书》一样,他与人和睦了吗?没有与人和睦。为什么?因为那些人传假福音。所以保罗写《加拉太书》写的很有情感,大家要小心,不要为世上的东西和人争竞。
Q5:为什么雅各遇到那么多不好的事情,先把金银和雕像埋在树下,怎么不砸碎?
砸碎和不砸碎不重要,破除人心里的偶像才重要。当灭之物是很败坏人的,首先要除去我们心思意念里面的偶像,砸不砸碎这只是一个行为,这事不太重要。
Q6:爱人不可虚假,恶要厌恶,善要亲近。我们知道不要识别善恶,怎么理解?
这题挺难回答,是不是保罗在识别善恶呢?你们认为是这样吗?大家一定要知道识别善恶是什么?识别善恶的本质是按人的标准去判断事物的对和错。比如说约瑟被出卖,如果他按照识别善恶的本质来判断这些事,他的哥哥做这件事太对不起他了,有机会一定要好好报仇,按照人自己的意念判断,那就叫识别善恶。
但是约瑟会不会很痛苦?会很痛苦。他会不会想起这件事?会想起。但他如果说他将来也要把他哥哥给卖了,那就是以恶报恶。我们做基督徒的人,爱人不可虚假这是关键。所以我们不要作恶,要作恶以成善,或者说作恶以成义。保罗在前面已经讲了,我们该做的事要合乎情理和道理。
神所喜悦的事,我们该做的都要去做。神不喜悦的事不要去做,这个和识别善恶关系不大。有一些人他不做恶事,但脑子里有很多的挣扎。他明明知道他要好好善待他的领袖,但是他却不是,他偏偏找领袖的过错什么的,那叫行善吗?那不叫行善,那叫恶,是邪恶。
我们不要把恶要厌恶,善要亲近叫做识别善恶。以属世的道德标准和喜好分辨事物叫识别善恶,神所喜悦的我们要亲近,神所厌恶的我们要厌恶,这和识别善恶没关系。
Q7:不要自已伸冤,宁可让步,听凭主怒。”很多人在翻转家人的过程中,凡事忍让,怎样可以让人变被动为主动?
其实不是自己可以伸冤就能翻转家人。伸冤是什么?是报仇,我们报什么仇啊?人家占了我们的便宜就算了,但是我们翻转家人这件事跟别人占我们的便宜没有关系。在翻转家人的过程中,让家人知道我们真的非常爱他们。
我们爱家人需要和他们计较吗?我们不要和家人闹得好像仇人一样。是因为我们爱他们,所以要改变他们里面的价值体系,让他们经历神。比如说他们在病痛中很辛苦,我们说带他们祷告,或许说让他们经历一下神迹不好吗?这样有问题吗?没有什么问题。但有些人说我不要祷告,疼痛就让他忍着呗。伸冤、让步和翻转家人一丁点关系也没有,该主动的就主动做,该怎样就怎样。翻转家人和申冤是两回事。
这章很多话会误导弟兄姐妹,比如说,听凭主怒,追求与人和睦,它不是一个道德规范,大家不能僵化地去落实这些东西,如果僵化地去理解和落实,保罗也没有做好自己所说的。如果你读保罗写的书信,他天天和哥林多人、加拉太人沟通,他不是为自己自私的动机,他是为了福音和神的国的缘故才这样做。
2019년 04월 3일 나눔
서론
《로마서》 12장은 앞의 11장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한 장 한 장 쌓아 온 내용이 이제 이 장에 이르러 바울이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이 말씀을 처음 들으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면 앞 장의 말씀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11장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3-36)
우리는 이제 더 높은 영적 차원에 서서 《성경》을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 모두의 영적 차원을 높이기 위해 매우 애쓰고 있습니다. 이 차원이란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오늘 믿는 이 하나님, 우리가 오늘 믿는 이 복음, 그리고 우리가 오늘 행하는 모든 일을 바울이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논한 관점, 곧 믿음으로 말미암고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며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관점과 연결하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여러분에게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여러분이 이렇게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 믿음 안에는 매우 중요한 관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에도 저는 한 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작은 귀신을 찾고 싶지 않았고,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크신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세상에서 정말 가장 크신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께로 돌아갑니다.
그분은 또 우리를 이처럼 은혜롭게 대하시고,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에게 매우 큰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고,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광을 나타내며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면 계속 그 사람과 다투고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형제자매들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근본적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을 걷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 세대를 본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방해가 됩니다. 나중에 저는 세상을 본받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세대를 본받는 길을 선택합니다.
최근에 제가 과거에 직접 섬겼던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해 보았는데,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는 사람을 매우 깊이 해칩니다.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를 가진 사람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저 자신도 놀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는데 제게 와서 나았습니다. 그런데 나은 후에는 곧바로 예전의 길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가 도대체 무엇인지 반복해서 분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을 하나씩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의 주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자.’ 이 주제를 정한 이유는 《로마서》 12장 전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믿음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그분을 찾으러 가겠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일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들의 모든 가치 체계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칠팔십 년에 기초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칠팔십 년 동안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여러분과 싸우려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 칠팔십 년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한 종류는 세상을 본받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 더 지혜롭습니까? 물론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본받는 쪽이 더 지혜롭습니다.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늘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와 대적하더라도 하나님과 대적하지 마십시오. 누구의 기쁨을 구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만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목회자라는 일을 하면서 매우 처참하게 목회하는 목회자도 수없이 많습니다. 저에게 목회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 글자로 표현하겠습니다. ‘통쾌하다!’ 때로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릴 때도 있지만 여전히 매우 통쾌합니다. 제 마음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자주 봅니다. 이 뜻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을 보십시오. 이 4대에 걸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에서 올라갔습니다. 계속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졌습니다! 그들은 ‘아, 하나님을 안 지 오래됐지만 별것도 아니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몸에 귀신을 지닌 채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거의 해방되고 나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별것도 아니네. 나는 이미 그가 하는 일을 배웠어.’ 그러나 여러분이 확실히 배우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2012년에 2011년보다 훨씬 나아졌고, 2013년에는 2012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날마다 새로워지며 계속 변화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저는 매우 유명한 목회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말 때문에 웃음이 터질 뻔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치유와 축사, 우리도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했습니까? 온갖 질병을 얻었고, 많은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해봤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은사주의도, 치유와 축사도 우리도 다 해봤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귀신을 쫓아냈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흥미도 없어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예전에 제가 강의하고 있을 때, 한 매우 사랑스러운 어르신이 제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귀신을 쫓는다고요?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이미 쫓아냈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강의를 듣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또 어떤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지 오래돼서 좀 서툴러졌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든 마음의 새로워짐이 멈추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도리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제 신학적 관념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되지 못했다면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까지 아직도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섬김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족에게 있는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직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저를 소개해 주었고, 저는 그에게 우리의 전체적인 신앙 체계를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의 체계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체계이지, 결코 변하지 않는 체계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적지 않게 알고 있지만 여전히 아주 멉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어야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알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일은 좀 어렵네!’ 그러나 《성경》은 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그것을 해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이삭은 몸을 온전히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친히 어린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삭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판 이야기를 보십시오. 우물 하나를 파면 물이 나왔고, 또 하나를 파도 물이 나왔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실 블레셋 사람들도 이삭의 우물을 빼앗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마음이 매우 다급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오는 것을 보니 빼앗으러 가지 않았겠습니까? 이삭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내 것을 빼앗아도 나도 당신과 다투지 않겠다며 다시 파러 갔습니다. 그런데 또 판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그렇게 계속하다가 마침내 더 이상 빼앗으러 오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은 모두 이렇습니다. ‘당신이 내 것을 빼앗으면 나는 당신을 축복하겠다.’ 여러분이 이삭과 같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싸우고 빼앗아야 합니까? 여러분이 이삭과 같은 사람이라면 직장에서 상사를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듯 두려워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이삭과 같은 사람이라면 돈이 부족할까 걱정해야 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어 더 이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자주 본다면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 세상에서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정말 믿습니까? 누군가 여러분의 우물 하나를 빼앗아 갔다면, 집에 돌아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힘들어하겠습니까? 그들을 축복하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해도 개의치 마십시오! 문제는 우리 안에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물을 빼앗기고 집에 돌아와 하나님께 원망하며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제가 그토록 애써 우물을 팠는데 그들이 빼앗아 갔습니다. 저를 도와 그것을 되찾아 주십시오!”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물을 빼앗겨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도량이 크신 분인지 알았습니다!
두 논리 체계의 차이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하나의 체계가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에는 또 다른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저의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은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제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마침내 그분을 찾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이 세상의 체계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체계는 늘 사람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보다 자신을 높여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을 중용에 맞게 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돈을 잃으면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이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이런 상태에서 흔들립니다. 이 세상의 논리 체계는 우리에게 철저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런 문제들을 끊임없이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됩니까? 사람은 성공한 모든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돌리고, 실패했거나 잘되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권세도 없고 힘도 없어서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모함했고, 내 이익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보잘것없게 되었다…’ 모든 문제가 다른 사람 탓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보다 자신을 높여 보지 마십시오.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잘하고,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잘 배워서 하십시오.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향상되어 하루하루 더 나아져야 합니다.
오늘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굳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체계는 굳어 있습니다. 세상은 갑자기 어떤 것을 발명하여 그것만 의지하면 평생 돈을 벌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있어도 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고, 밖으로는 계속 하나님을 경험하며, 안으로는 계속 새로워집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보다 자신을 높여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자신을 마땅히 보아야 할 만큼 보고 실제로 일을 하면서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중용에 맞게 보아야 하며, 더 이상 세상의 논리 체계로 자신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적인 수행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함께 예수님의 몸을 세워 가며, 각자 자기 직분을 따라 서로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은 자신이 대단해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작은 왕국을 세우며 자기만의 작은 세력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가 있습니다. 예전에 그녀는 지역 교회에서 제 설교와 성경공부를 틀어 주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설교인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작은 세력을 세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듣기로는 그녀에게 헌금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형제자매들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온전하게 합니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고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로마서》 12:6-7)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섬기는 사람은 섬기는 일만 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일만 하며,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각자 자기 직분을 따라 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그 책임의 범위 안에서 일을 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관리하기 좋아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
오래전에 한 자매가 자기에게 맡겨지지 않은 양을 목양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자기 양을 목양할 때는 그저 두어 가지 방법만 대충 사용하고 끝냈습니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목양할 대상이 아닌 새 사람이 오면 매우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시 그 두어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능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본분에 속한 일을 잘해야 합니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면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만 하면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가 빼앗으려 하고, 남을 따라 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끼어들면 일을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부동산 투기를 하고, 다른 사람이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 주식 투자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자신을 정확하고 합당하게 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남을 따라 함부로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우리의 하나님은 모든 일을 질서 있고 체계적으로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런 문제들을 여러분은 천천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잠시 후에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일 뿐 아니라, 믿음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얼마나 주셨는지를 탓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앞의 몇 장에서 말한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칠팔십 년을 기준으로 하는 논리 체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 가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자주 거짓된 것을 행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참조 《로마서》 12:9-10)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사랑은 진실해야 하며, 형제를 사랑하면 서로 친밀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면 서로 양보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런 모습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전에 저는 기독교인 기업가들을 교회에 초대하여 나누게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눔이 끝나자 한 자매가 곧바로 달려가 그 사람과 명함을 교환했습니다. 마치 그 사람과 조금이라도 관계를 맺으면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부자를 알아 두면 앞으로 언젠가 이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거짓되게 행동한다고 하나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귀신조차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거짓되게 행동하면 반드시 귀신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서로 친밀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면 서로 양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겠지요?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지, 이익을 취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2:11)
마음에 열심이 없이 주님을 섬기면 매우 힘듭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섬기면서 게으른 사람을 많이 만났고, 게으른 목회자도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웹사이트에 제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보세요. 당신은 이것도 비판하고 저것도 비판하는데, 사람에게 약함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열심을 품고 항상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자신의 몸을 드렸다면,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이며,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해방받을 때에는 매우 뜨겁지만, 다른 사람이 해방되도록 섬기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생각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받았고,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을 섬길 시간이 없을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밤늦게까지 사람을 섬기면 내일 직장에는 어떻게 가요?” 저는 과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직장을 잃을 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더 좋은 직장을 마련해 주셨고 급여도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제가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이 근심으로 여러분을 찌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온전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뜻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더 이상 염려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로마서》 12:12)
이것은 자신을 온전히 드린 사람에게 나타나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의 이익이 조금 손해를 볼 수 있을 때에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로마서》 12:13)
속임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사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다만 여러분은 누가 성도이고 누가 손님인지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14)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이익에 손해가 생겼다고 다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이익을 취했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저는 그 사람이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영적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복음에는 축복과 저주가 함께한다는 것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득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저주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로마서》 12:15-16)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체계를 제거하는 것은 여전히 조금 어렵습니다. 사람은 돈이 조금만 생겨도 교만해지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두 나쁜 습관이며 세상의 체계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7-19)
여러분이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말씀에 따라 행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족한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조금 억울한 일을 하더라도 그냥 당하십시오. 억울한 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루 종일 복수하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이익을 취했다고 생각하거나, 여러분을 해쳤으니 스스로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청원하러 다니는데, 한 번 청원하기 시작하면 십 년, 심지어 이십 년씩 계속합니다. 그러면 삶이 정말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오늘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조금 잃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습니까? 우리의 집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의 나라도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며, 우리의 어떤 것도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헛되고 헛된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늘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 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조금 취했다고 오랫동안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면 병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일생을 꿰뚫어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0-21)
사람은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이익을 얻는 것입니까, 손해를 보는 것입니까? 사람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을 헛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면 돈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재물에 묶여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모두 돈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몇만 위안을 더 썼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사실 더 쓴 것도 아닌데, 자신은 더 썼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모두 하찮게 여긴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손해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하찮게 여길 수 있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그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멋지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이 작은 것들을 굳게 움켜쥐고 있다면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병들지 않는다면 누가 병들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의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든 이익을 얻든, 이 세상과 세상의 일은 모두 지나가 버립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붙잡으면 세상이 근심으로 여러분을 찌를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자녀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이런 일들이 모두 근심으로 여러분을 찌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교사가 전화 한 통만 해도 부부가 함께 무너집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모두 꿰뚫어 본다면 그것이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녀 교육을 위해 평방미터당 14만, 15만 위안이나 하는 학군 주택을 샀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정말 그 학교 때문에 미래가 생기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학교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나중에 그 학교가 이전하면 여러분의 집값도 떨어집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돈을 모두 써 버리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별난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대를 본받고 싶어 한다면 이 세상은 반드시 근심으로 여러분을 찌를 것입니다. 이것이 집집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경전을 읽으니 당연히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늘 경험하고 이 세상의 일을 하찮게 여긴다면, 부족함이 하나도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얻기만 하려는 논리 체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는 헌신의 논리 체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이 시대와 앞으로 올 세대의 복이 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섬기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이 여러분을 위해 섬긴다 해도 여러분이 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분이 제 성경공부를 듣고도 여전히 이런 것들을 고집스럽게 추구한다면,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예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매우 많은 근심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면, 환난을 만나더라도 마음속 소망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환난을 겪는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막겠습니까? 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결론
형제자매 여러분, 제 말을 한마디 권면으로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사람의 일생을 꿰뚫어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을 모두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알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본질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노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마는 여러분의 돈을 속여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이 필사적으로 다시 돈을 벌면, 노마는 또다시 그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한한 죽음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죽을 때까지 그 안에 머물다가 죽은 후에는 다시 마귀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는 일생 동안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라 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일을 모두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을 산 제사로 드리고 주님을 위해 살며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