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8장을 나누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제단의 불이 땅에 쏟아지리라"입니다.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시고, 일곱 나팔을 불기 시작하다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기는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일곱째 인을 떼고 일곱 나팔을 불 때, 이 땅은 결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이기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만약 이 세상에 여전히 소망을 두고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일곱 나팔이 불릴 때는 정말로 온 땅의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릴 것이며, 하나님께서 오시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인류 역사는 느릿느릿하고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일곱 나팔이 불릴 때 제3차 세계대전의 도래와 맞물린다고 말씀드렸지만, 지금 보면 처음 네 나팔이 불리는 것은 제3차 세계대전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단의 불이 이 땅에 쏟아지는 것이며, 수많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제3차 세계대전은 기껏해야 인재(人禍)일 뿐입니다.
재앙이 터지기 전에, 저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이기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재앙은 결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재앙에는 분명 '눈'이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실 때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으니 이 땅에서의 이 반 시간은 꽤 긴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이길 준비를 하고, 내면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셨고, 또 반 시간을 기다리셨는데, 이는 과연 몇 명이나 이기는 자가 될지 보시기 위함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인을 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만약 십사만 사천 한 명이라 한들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 몇 개 더 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반 시간을 기다리셨고, 그 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세 천사가 남은 나팔을 불려고 할 때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외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땅의 백성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백성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육에 속한 논리라면 완전히 망한 것이며, 바로 땅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하늘의 백성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재앙이 닥칠 때 과연 기회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몇 가지 계산법으로 증명하여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일곱 나팔의 때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일곱째 나팔, 곧 마지막 나팔이 불릴 때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처음 6일 동안 일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 논리를 이 땅에 투영해 보면 인류 역사도 이와 같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6천 년을 주셨고, 제7천 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시는 천년왕국입니다.
지금 인류 역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6천 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으신다면 제가 셈을 해 드리겠습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아브라함까지 약 2천 년의 시간,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약 2천 년의 시간(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약 1천 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금까지 약 2천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두 합치면 거의 6천 년이 다 되어 갑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유대력이 우리가 쓰는 역법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대략 일곱 번째 천 년은 천년왕국일 것이므로, 우리는 이 일곱 나팔의 시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이기는 자입니까? 만약 우리 머릿속에 여전히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 선악을 분별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다면, 일곱 나팔이 불릴 때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제단의 불이 이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불덩어리처럼 보일지라도 땅에 쏟아지면 마치 거대한 산과 같으며, 그 흐름의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이기는 백성에게 인을 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이긴다면 장차 올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재앙은 전무후무한 것으로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눈앞의 의식주와 일상적인 소소한 일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겠습니까? 재앙이 닥칠 때, 굳이 이 일곱 나팔까지 갈 것도 없이 병원에만 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팔은 아직 불리지 않았지만, 이미 그 사람 개인의 '일곱 나팔'이 불려 온몸에 호스를 꽂고 사람다운 꼴도 없이 그 어떤 행복 지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이며, 우리로 하여금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일곱째 나팔이 불릴 때는 일곱 대접의 재앙이 따릅니다. 만약 일곱 인의 시간이 균등하게 분배된다면, 일곱째 나팔은 모두 일곱째 인의 시간 안에 압축되어 있고, 일곱째 나팔의 시간 안에는 또 일곱 대접이 가득 채워져 있으니,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기도가 제단에 드려지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요한계시록 8:3-4)
성도들은 무엇을 기도할까요? 그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저는 이전에 일부 그리스도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경제를 위해 기도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성경>에서 그런 내용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경제 상황이 가장 좋았다고 나옵니까? 아합과 이세벨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의 경제가 가장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합 왕과 이세벨이 다스리던 그 이스라엘의 경제를 원하십니까? 그 경제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기도하는데, 선거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까? 저는 정말 의아합니다! 어쨌든 저는 그런 것을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구합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자주 여러분에게 "장차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일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암에 걸려 내일이라도 죽는 줄 알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진심으로 이 세상의 삶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면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그러자 어떤 이는 의아해하며 "선생님,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보다 훨씬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것들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낍니다.
제가 기도하는 것은 형제자매님들이 이기는 자가 되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뿐입니다! 저 또한 끊임없이 변화되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저는 더 이상 이 땅의 평안을 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땅의 평안은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형제자매들이 "평안하다! 자매님 평안하세요! 형제님 평안하세요!"라고 말할 때 갑자기 재앙이 닥치는 그런 모습이 결코 되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을 볼 때 때로는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모든 성도의 기도가 제단에 드려집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란 누구입니까?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자들입니다. 귀신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알고, 하나님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아십니다. 이것은 두 체계, 두 나라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여러분은 땅에 속한 사람입니까,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까?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의 일을 구하고, 땅에 속한 사람은 땅의 일을 구합니다.
저는 형제자매님들의 시야가 쥐구멍만 보듯 좁아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시야를 좀 더 넓히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삶을 산다면, 일곱 나팔이 불려도 두렵지 않고 칠백 개의 나팔이 불려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꿈들을 다 무너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일곱 나팔이 불리기 전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위해 평안을 구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십시오. 이 예루살렘은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나 지리적인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시온산,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은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교회를 위해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을 위해 평안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조차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예루살렘 지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에 있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날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으나 기회가 없었습니다.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여 음부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일곱 나팔의 때가 되면,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하나님께서는 하늘 제단의 불을 땅에 쏟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는 각국이 서로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으며,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전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미사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가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 속에서 이 세대가 겪는 한 과정일 뿐이며, 바로 일곱째 인을 떼기 전의 상황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고 나면 삶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제단의 불이 땅에 쏟아지다
제단의 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도들이 구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는 재앙이 따릅니다! 이 재앙은 세상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지, 이기는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구원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온종일 세상의 일만 바라보고 머릿속에 온통 세상일만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것은 재앙을 불러오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님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을 보십시오. 대입 수능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는데, 수능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치 수능을 잘 보면 평생이 잘 풀릴 것처럼 여깁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 이민자들 중에서 꽤 성공하고 유력하다고 평가받던 사람이 하이킹을 갔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들은 다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에 온통 세상적인 것만 가득 차 있다면, 경고하건대 이 일곱 나팔은 여러분을 위해 불릴 수도 있습니다. 그 일곱 나팔은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재앙을 쏟아부으실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머릿속에 온통 육에 속한 것, 세상에 속한 것, 선악을 분별하는 것들만 가득 차 있다면, 그때 가서 제가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이 <요한계시록>을 헛되이 읽은 것 아니겠습니까?
첫째 나팔: 우박과 불과 피가 땅에 쏟아지다
그 우박이 쇠붙이인지 얼음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제단의 불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박이 축구공만 하든 탁구공만 하든, 어쨌든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왜 피가 섞여 있을까요? 제단 아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피 흘려 순교한 영혼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어느 때까지 우리의 원한을 갚아 주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불과 우박에 섞어 땅에 쏟으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요한계시록 8:6-7)
이것이 과연 우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일까요? 어쩌면 그 가운데 아합처럼 포도원을 빼앗는 자도 있었겠지만, 그 포도원마저 불타 버렸습니다. 누군가는 이 거리의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사들여 사업을 개발하려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막 야자수 농장을 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때마침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 나무의 3분의 1과 땅의 3분의 1이 완전히 불타 버리고, 인류가 생존을 위해 의지하던 것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제단의 불을 쏟지 않으시더라도, 우리가 평소 눈으로 관찰하기만 해도 작은 결론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과 필요한 자원 등은 사실 모두 세상적인 것들이자 세상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런 것들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마치 천안문, 단문, 오문은 그대로 서 있지만 그것을 지은 사람들은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나팔이 불릴 때 땅의 3분의 1과 나무의 3분의 1이 불타오르니, 이 얼마나 거대한 불길이겠습니까! 그것이 누구에게 닥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전히 세상의 것들에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이기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땅의 것들과 단절해야 합니다! 땅의 3분의 1과 나무의 3분의 1이 불탔다면, 우리는 자기 논리 체계의 3분의 1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제 노후 대책은 어떡합니까? 저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고 능력이 많으신데 여러분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시며 큰 능력을 가지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아,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먹여 살리실 수 있구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따르면 "지금 수입이 없는데 어쩌지? 무슨 수를 내야 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인데, 우리가 세상에 너무 심하게 오염되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땅의 3분의 1과 나무의 3분의 1이 사라졌는데, 여러분이 산 그 땅과 나무가 포함되었습니까? 포함되었다 한들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부터 별 의미도 없던 것들입니다. 불탄 3분의 1의 나무가 여러분의 것이든 아니든,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만약 이 논리 체계가 올바로 세워진다면 사람이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정 살길이 없다면 80일 동안 금식 기도하다가 숨을 거두어도 그 또한 좋은 일입니다.
둘째 나팔: 불붙는 큰 산이 바다에 던져지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요한계시록 8:8-9)
최근에는 좁은 해협 하나 때문에 세계 경제가 온통 어지러워졌습니다. 사실 인간은 매우 연약하고 경제 또한 매우 취약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논리 체계일 뿐입니다. 해협을 통제하겠다고요? 둘째 나팔이 불리자마자 불타는 큰 산이 떨어집니다. 부디 히말라야산만큼 크지 않기를 바라지만, 바다의 3분의 1이 피로 변합니다. 거기에는 인도양, 태평양, 북극해가 포함되지 않았겠습니까? 바다의 생물도 3분의 1이 죽어 나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3분의 2를 남겨 두셨을까요? 일곱 인의 때에는 4분의 1이었는데, 왜 나중에는 3분의 1이 되고, 더 나아가 2분의 1이 되며, 마지막에는 아예 100퍼센트 전부 멸망시키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회개하며 깨닫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이것은 살길이 아니구나!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 일본, 필리핀, 중국, 대만은 바다에서 서로 세력권을 나누고 있지만,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불붙는 큰 산이 떨어져 바닷물이 온통 피로 변하고, 잡아 올리는 물고기가 전부 죽은 물고기라면, 아이고, 정말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이렇습니다. 이 땅에서 분주하게 일거리를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존재입니까? 이번에는 불타는 큰 산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결코 땅이나 바다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전혀 안전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저 육신으로 사는 것에만 집착하고 소망을 품는다면 끝장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곱 나팔은 분명 여러분을 향해 불리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사람은 이 땅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육신이 맞이할 유일한 종착지는 유골함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이 그저 목숨 부지하는 것에만 소망을 두고 땅의 것만을 위해 산다면, 일곱 나팔이 불릴 것도 없이 그의 인생 나팔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지금 나라들마다 서로 빼앗고 싸우며 역사를 들먹입니다. 200년 전에는 이 땅이 어느 나라 땅이었고, 300년 전에는 저 나라 땅이었으며, 400년 전에는 또 다른 나라 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예전에는 영웅호걸들이 영토를 넓혀 오늘날의 국토가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실제로는 어떠합니까?
예를 들어 러시아 극동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넓힌 위대한 장군을 숭배하지만, 중국인의 눈에는 그가 악인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웅도 그들의 눈에는 악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대단히 자랑스러워합니다. 이런 논리 체계는 전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논리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바로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릴 줄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분의 백성이 회개하고, 이 더러운 세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세계 평화와 경제 회복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멈추게 해 달라고만 구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음에 세상의 것들을 품은 채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좋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관념을 바꾸지 못한다면 이기는 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셋째 나팔: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 물들의 근원에 떨어지다
첫째 나팔은 땅의 3분의 1과 나무의 3분의 1에 떨어졌고, 둘째 나팔은 바다에 떨어졌으며, 셋째 나팔은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의 근원에 떨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마실 물이 없어집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요한계시록 8:10-11)
이 사람들을 죽게 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이기는 백성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그럼 하나님의 백성은 무슨 물을 마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께는 당연히 방법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물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때가 되면 여러분은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는 필시 하늘을 찌를 듯이 간절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미지근하고 데면데면하게 기도할지 몰라도, 그때가 되면 자녀의 대학 입시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대학에 가도 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마실 수가 없으니, 그때가 되면 여러분의 기도는 지극히 절박해질 것입니다.
똑똑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한 가지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곧 그분의 백성을 빚으시고, 이생에 품은 인간의 헛된 꿈을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으로 살아가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삶은 더 비참해지며, 이 세상에 소망을 두면 둘수록 더욱 큰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세상에 둔 여러분의 소망을 깨뜨리셔서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우리 하나님만을 소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은 3분의 2 중 어떤 이들은 깨어나 생각할 것입니다. "아, 이것이 <요한계시록> 8장에서 말씀하신 것이구나! 어서 회개하고 속히 이기는 자가 되어야겠다!"
넷째 나팔: 해와 달과 별의 3분의 1이 타격을 받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요한계시록 8:12)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타격을 받을까요? 결코 사람이 친 것이 아니며, 칠 수도 없습니다. 새총으로 태양을 맞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 옛이야기에서 활을 쏘아 태양을 떨어뜨렸다는 신화를 보며 신기해하지만,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와 달과 별들이 타격을 받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광대한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손에 쥔 푼돈은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믿기는 참으로 어려워합니다. 손에 돈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하며 그깟 돈 때문에 이리저리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손을 뻗어 해와 달과 별들을 치실 수 있는 분인데, 이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해와 달과 별들을 치실까요? 우리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여러분 하나를 먹여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진정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만약 3분의 1의 영역이 어두워져 낮과 밤 모두 빛을 잃는다면,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 왕을 치실 때 어둠의 재앙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바로 왕의 온 땅이 어떻게 어두워졌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둡게 하시고자 하니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인간이 감히 하늘을 이기겠다고 큰소리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손바닥으로 칠 필요도 없이 손가락 하나만 살짝 튕기셔도 인간은 끝장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망을 두기 좋아하는 이들이여, 비록 지금 여러분의 일상이 풍요롭고 즐거울지라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온종일 불안에 떨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가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안락한 삶이 결국 멸망으로 치닫는다면, 여전히 돈과 부동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소망을 두시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것들은 결코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해와 달과 별들을 치시는 이유는, 이제부터 우리가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돈이나 재산이나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려 하심입니다! 더 이상 불안해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먹여 살리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 말을 잘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돈이 매우 많았지만 대변을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남편과 이혼하면서 수백만 위안의 위자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변을 전혀 보지 못하는 병에 걸려 참으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대변보는 것 하나를 살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돈으로도 생명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머릿속의 어리석은 고정관념들을 깨끗이 치워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왜 그토록 돈을 사랑합니까? 우리의 삶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둘 수는 없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번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합니다.
남은 세 나팔: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8:13)
비록 해와 달과 별들이 타격을 받고, 바다가 큰 산에 무너지고, 땅이 불타고, 물의 근원이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충분한 고통을 겪지 않았기에, 남은 세 나팔은 바로 이들이 고난을 겪을 차례임을 알립니다. 그러므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지구를 돌며 날아다니면서 지나는 곳마다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독수리의 외침을 듣고 오히려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네. 아직 남은 나팔이 있다고? 에이, 신경 쓰지 마! 먹을 거 먹고, 놀 거 놀고, 갈 데 가자!"라고 반응합니다. 인간의 반응이 다 이렇습니다.
방금 어떤 분이 댓글로 "저희 오빠가 뇌경색으로 마비되어 9일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는데, 기도해 드린 후에 대변을 보았습니다"라고 올렸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을 때 "아,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떡하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하이킹을 갔다가 곁에 있던 사람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는 것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참으로 기이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그 일이 자신과는 무관하며 자신에게는 결코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오는 것일까요?
독수리가 하늘을 맴돌며 큰 소리로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외치지만, 사람들은 "설마 그렇겠어?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리가 없지. 난 괜찮아!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고 나쁜 짓도 안 했으니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악한 짓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매우 악한 사람도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르며, 둔한 사람도 자신이 둔한 줄 모르고, 죽어 가는 사람도 자기가 죽을 줄 모르는 법입니다. 세상은 이렇습니다.
앞서 일어난 환경적 재앙으로 고통을 겪은 것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이제는 사람이 직접 고난을 겪을 차례입니다. 다음 장에 이르면 사람들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오직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은 언제쯤 세상적인 것들을 온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까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관점과 생각이 결국 여러분의 최종 결말을 결정짓습니다.
독수리는 여전히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인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돌보십니다. 비록 땅의 상황은 지극히 참혹할지라도, 이기는 자들은 결코 그처럼 비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재앙은 그분의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자들에게 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땅에 속한 사람입니까?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