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摩西年间,在摩西、约书亚和迦勒几个人中,谁比较合神心意呢?亚伦还经常惧怕百姓,以色列那么多人,都是天天犯罪吗?神带领的咋都是这种百姓啊?这些以色列人在后面都改了吗?
这是一个好问题啊,在以色列人中,只有摩西、约书亚和迦勒合神的心意。其他人都死在了旷野,是不是很可怜?这些以色列人太没有眼光了。
其实我告诉大家,以色列人死在旷野,是为我们做了一个好的示范。你比如说像拿达和亚比户在神面前被神的火烧死的事,他们一下就嗝屁了。为什么会这样呢?因为神就是要把这个故事写在《圣经》里,好让我们读到后,对神有敬畏的心!
那你说这以色列人也挺倒霉呢,就被神用了。那你要怎么样呢?神就愿意这么干,咱们先别管那些人,先管好我们自己。读了这些故事以后,心想:神啊!怜悯我,不要让我跟以色列人一样。要让我像约书亚、迦勒和摩西一样,能在神的家中尽忠。
神在亚当和夏娃的时候,就能一直看到未来。那神在未来看到了什么呢?就像亚当和夏娃吃识别善恶树的果,还有亚伯被该隐杀掉,这些神全都知道,神在创世以前就能够看到未来。那神为什么还要让事情发生呢?你得知道神真的没太在乎这事。那神在乎的是啥?神在乎的是在亚伯拉罕那个年代,能够有更多像亚伯拉罕、以撒、雅各和约瑟这样的人,后来就又有了摩西、约书亚和迦勒。
后来我明白了,其实神就是要把宝贝挑出来,把垃圾烧掉。在田地里头有一个名贵的珠子,然后这人就变卖了所有的,来买这块地。为了啥?不是为了那块地,是为了那个珠子。就如神正在这个世代选宝贝是一样的。
在六十万以色列的军兵中,就选出来了俩个人,三十万分之一的概率,确实不太多。宝贝本来就不多呀,是不是?但愿大家都能够做神眼里的宝贝。
Q2:老师,怎么样才能让自己长记性呢?
人得了神诸多的恩典,能记住的却不多。之前写了几百条,过一段时间就能记住几十条。我告诉你,人的记性是个属灵的事儿,因为人的记性跟人的价值体系紧密相关,就是人会选择性的记忆。这是很神奇的。
人想记的都能记住,不想记的一会儿就忘了。比如说人被冒犯的事,他能记一辈子。那个癌症患者的记性可好了,谁冒犯他,那都能记得牢牢的。你的记性决定了你的未来,就有人专门记人家的恶,那像我就不太记人家的恶。
那怎么才能让人长记性?要重新建立我们里面的价值体系,重新建立我们里面属灵的这些真理。让我们开始知道为什么而活,有的人他就是为自己活。人的记性是跟人的价值体系有关,你要让我说神的恩典,那我如数家珍。我要跟你讲过去这些年的故事,我应该讲个三天两天也没啥问题。
但是有一件事我不会忘。当年曾经穷困潦倒,我不知道未来在哪里。我走进教会,神的灵安慰我,后来神为我开辟道路。让我开始更多地认识他,然后一点一点地活到今天。我永远不会忘记神在当年是怎么拯救的我,所以一定要建立正确的价值体系。
记性是有选择性的,因为人天生就有一个观念。就像那个人的癌症好了,然后还告诉我:那像你这么信主咋活?因为他已经有这么个观念了。我带他祷告,他经历神的恩典了。然后还说:那这么信主,怎么怎么活呢?奇怪吗?因为他里面有一套自己的东西。跟他里面观念不调和的,他都拒绝接受。
Q3:老师,摩西的律法到底怎么运用呢?好像有些要守,有些不用守,我不是太明白,是读出神的心意不用在行为上守吗?
用行为你是守不住的,用行为守就不是福音了。你用行为怎么守?要用信心来守。因为守住神的律法,没有神的能力你是守不住的。那怎么才能得到神的能力?要有信心。所以,所有的问题都是因为不信的缘故,有信心就好办了,不信那就麻烦大了!
我要告诉你,基督徒如果连律法的高度都超越不过去,那你做基督徒干啥?基督徒可不是说不用守律法了,基督徒是超越律法的。基督徒如果连律法的高度都达不到,那就不是白做基督徒了吗?信靠神就能达到。
我问你,如果你相信买房子,买了就是赚了,哪怕万人摇号你也会去,大家知不知道在哪里万人摇号?之前那些买房子的人都去哪了?其实不是人都没影了,还是那些人。只不过现在他们相信买了就是赔了,所以就没影了。如果认为买了就是赚了,就都来万人摇号了,那现在人们都认为买了就是赔了。这就是一个信心的问题,整个市场的信心都垮掉了。
你认为《旧约》的要求很高吗?其实要求很低的。《新约》要求高吗?《新约》的要求高。《新约》不是将牛羊献上,而是将自己献上。如果你把自己都献上了,你还会跟神计较吗?就会不计较了。因为我们今天走的路,就是耶稣基督的路。
Q4:老师,该怎么样效法耶稣孝敬父母呢?我对于孝敬父母这件事特别困惑。比如父母的言行不符合圣经的真道,我还要继续孝敬父母吗?他们说那些明显悖逆的话,对我来说是识别善恶吗?还是说我要为他们带来传道的机会?我自己的高度不够,我在言语冲突的现场,当如何行,才是符合神的心意呢?
其实孝敬父母,没有说要你孝敬到“他们让你杀人你就杀人”,那叫孝敬吗?他们让你违背神的话你就违背神的话,那叫孝敬吗?这不是孝敬。其实在我们整个的生活当中,你照顾父母是一回事,但是你不能道德绑架人家,要求人家非得做出你要的那个样子。但是你该尽的责任你还不知道吗?该尽的责任你是知道的。
能不能跟爸爸妈妈把关系处理好?他们玛门就玛门呗,跟你有什么关系呢?其实也没关系。他们做他们的事,你该好好孝敬就好好孝敬他们。在孝敬父母这件事上很多人都缺少智慧,你要先把关系搞顺了。
如果他要求你杀人,那你怎么办?其实很多事儿一想就知道,他让你杀人,那肯定是不行的!他让你做这个做那个,你不该做的事就照样不做,那跟孝敬有什么关系呢?没有关系。
家里的老人需要照顾,那照顾一下是很正常的。你问的这个困难点在哪儿?是唯唯诺诺,唯命是从就是孝顺吗?不是,千万不要以为孝顺是这样。
所以我们这些弟兄姐妹,可以把这个问题带回去,再好好地去琢磨一下。人家有人家的观点,你为什么要给掰过来呢?是不是?你做好你的本分,就完事了。他也不能够辖制你,他辖制你,你也可以不允许他辖制,你被辖制不是孝顺。
Q5:老师,这是关于《哥林多后书》的问题,保罗说更喜欢夸自己的软弱,让基督的能力覆庇我。这里的软弱指哪些?是指自己不能做的神来做的吗?请老师举个例子。
你比如说哥林多人这么对待保罗,我问你,保罗难受不难受?难受。那保罗不能佛系一点吗?他不能,因为那是他牧养的羊,所以他难受。他难受是不是软弱?是软弱。那他难受得很辛苦的时候怎么办呢?这个时候他只有祷告。
我可告诉你,哥林多人的翻转从根本上来说,不是保罗写了一封信,是神在属灵的世界里帮助保罗。神为了使保罗得安慰的缘故,神就在哥林多人身上做了一个奇妙的工作。咱也不知道神是怎么做的,哥林多人就改变了,突然间就想明白了,这真是很神奇的事。
保罗的软弱,绝对不是像我们得癌症的那种爱世界,爱金钱的软弱。是他在面临困难的时候,在他里面辛苦的那种软弱。但是他更喜欢夸自己的软弱,让基督的能力覆庇他。所以他在跟哥林多人讲那些话的时候,就是在讲他自己。
Q6:老师,为什么说被冒犯是太好了?
被冒犯是太好了,被冒犯一下就知道你能不能被冒犯。如果你没有试过你不知道,一旦被冒犯,脸色就变了,你为什么变了脸色呢?如果你行得好,岂不蒙悦纳,你若行得不好,你变脸色有什么用呢?所以说被冒犯,是一个很好的检验,看看我们到底怎么样啊。
在这个全世界都有一个行业,叫质量检验监督局。监督啥呢?监督这市场,这是政府的职能,那管控你得有指标啊,一化验才知道甲醇和水银这些重金属都过多,这都得需要化验。这个化验是一个很复杂的过程,需要非常昂贵的设备。那怎么办呢?只有这昂贵的设备一检验,才知道是合格还是不合格。
所以这个被冒犯就是一个很昂贵的检验设备,一冒犯才知道,这个人的心胸像个花生米,脑袋像个核桃仁,一检验结果就出来了。结果这个人的心胸是花生米和核桃仁,那不能去冒犯。所以说这个人不能被冒犯,实际上是心胸太小了。
Q7:老师,心口不一要怎么对付?
其实人心口不一,也不一定非得要对付。要对付的不一定是心口不一,因为心口合一了以后,还不一定对呢。心里想啥就说啥,那是挺合一的。如果你看着邓小平,直接就说:你咋这么矮呢?我问你那结果会怎么样?这不是讨人嫌嘛。心口合一不?是心口合一。他真的是挺矮的,你说的是真话,但是讨人嫌,是不造就人的。
所以说这个心口不一不太重要,重要的是啥呢?重要的就是把我们里面那个价值体系,什么东西对我们重要?什么东西对我们不重要,我们要整明白。
你比如说现在你成了一个爱神的百姓了,结果耶利哥城里的人来抓那以色列的探子,你想的是我得心口合一,你就说:就在草堆里去抓吧,耶利哥人一抓就抓着了,那你的麻烦就大了。所以说别追求要心口合一,我们要追求有神一样的逻辑体系。
Q8:老师,如何才能克服马马虎虎的作事风格?我该怎样扭转马虎的习惯,训练循序渐进的作事习惯呢?
人马马虎虎肯定会遭罪,你马马虎虎就把钱给人家了,那不就被骗了嘛。你马马虎虎就做了一个投资,那钱不就没了嘛。你马马虎虎盖了一栋房子,房子就都塌了。人马马虎虎建了一座桥,那桥就垮了嘛。
如果你是法官,发现你在十年前判的案子判错了,就会认为你是收了贿赂故意判错的。即使十年以后也会把你抓起来的,这是很正常的事,你得负责任。所以说你马马虎虎判一个案子,马马虎虎建一个楼,楼十年以后塌了,会有查这是谁签的字,然后就把人给抓起来,所以我们要知道马马虎虎做事是有风险的。
那怎么能改掉我们这些风险呢?你如果说马马虎虎驾车,如果车毁人亡,那你就倒霉了,规定不能闯红灯,你闯一次、闯两次红灯都没事,你就养成了习惯,心想谁说不能闯红灯呢?那你就等着吧,出来混,迟早要还的。所以要训练自己,做事不要马马虎虎,人为什么要做吃亏的事儿呢?
我们今天的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명기》 16장을 다 읽고 나면 ‘이거 사람을 너무 번거롭게 하고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일 년에 세 번씩, 어떤 사람은 100킬로미터를 걷고, 어떤 사람은 2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합니다. 물론 집이 성전 바로 옆에 있다면 문만 열고 나가면 되니 아주 편리하겠죠. 그래서 저는 ‘성전 옆에 있는 집값은 분명 천문학적으로 비쌌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겠습니까? 편리하니까요. 문만 나서면 바로 성전이니까요.
그렇다면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요? 아이고, 계속 걸어서 성전에 가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일 년에 세 번이나, 모든 사람이 모여 수백만 명이 예루살렘에 바글바글 모여듭니다. 이 생활이 얼마나 번거롭고 북새통이겠습니까? 저한테 물으신다면 저는 이런 피크 시즌은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 일 년에 세 번 이렇게 하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중국의 춘절 대이동은 일 년에 한 번이지만, 이스라엘은 일 년에 세 번입니다. 춘절 이동은 모든 사람이 다 고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사람이 다 가야 했으니, 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말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이거 사람 고생시키는 것 아닙니까?” 네, 고생시키는 것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머리가 지끈거리시나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명기》 16장이 궁극적으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너는 평생토록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참 대단합니다! 저는 너무나 신기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정말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본인 이야기라고 해서 저와 선악을 분별하지 마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참 특이한데, 저는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암에 걸려 4기 항암 치료 중이었는데, 항암을 계속해도 죽고, 안 해도 의사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찾아왔고, 저는 그를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에 있던 암이 기적처럼 나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기적처럼 낫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적처럼 낫는 것은 쉽지만, 사람은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잊어버리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차라리 천천히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천천히 낫는 게 낫습니다. 사람이 고생을 좀 해봐야 합니다. 지금 고생을 좀 더 해야 나중에 고생을 덜 하게 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따라 주님을 잘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럼 제 생활은 어떻게 하라고요?”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머릿속에 닭똥이 찼나, 돼지똥이 찼나, 소똥인가 개똥인가.’ 제가 말했습니다. “병이 나았으니 이제 잘 살아가셔야죠. 십일조와 헌금 드리는 법도 배우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헌금을 내라고요? 좋아요, 200위안 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그 돈은 그냥 항암 치료하고 방사선 치료해 준 의사에게 주는 편이 낫겠습니다.”
저는 참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관두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아들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보아서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리니,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파라오(바로 왕) 아닙니까? 파라오처럼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말리지 않습니다.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2년 뒤에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참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못 오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이고, 지난 2년 동안 누우면 숨이 안 쉬어지고, 앉아 있으면 잠이 안 와서 계속 앉아서 잠을 잤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저를 찾아오면 제가 또 주님을 잘 믿으라고 요구할까 봐 무서웠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제 손을 통해 그를 구원해 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도덕적으로 억압하지 않을 테니 뭘 두려워합니까? 피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기도해 드릴게요.” 제가 참 못났죠. 그 아들 때문에 또다시 나선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고 나서 나았습니다.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고 숨도 쉴 수 있게 되어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주례를 섰는데, 그 부부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제 아들이 선생님을 따라 이렇게 주님을 믿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요?”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스스로 죽을 길을 파는 것 아닌가?’ 좋게 말하자면 태어날 때 머리가 어디 끼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거나, 어릴 때 문에 머리가 끼었거나, 자라면서 세상에 짓눌려 버린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영적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도 그 사람과 비교하면 오십보백보이며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돌아서면 곧바로 잊어버리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저 사람을 천천히 고쳐주셔서 정신을 좀 차리고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고생을 좀 더 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고, 칠칠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고,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번거롭습니까? 번거롭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번거로움이 낫습니까, 아니면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 치료받는 고생이 낫습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키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우리를 번거롭게 하실까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도 잊어버리는데,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잊었습니까? 다 잊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병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교훈을 얻고 기억해야 합니다. 평생토록 영원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다가 폭풍 기도를 따라 한 뒤 나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니 사장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장을 보고 나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장이 야근하라고 하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을 기억한다고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 사람은 차라리 고생을 좀 더 해보는 편이 낫습니다.
2. 여호와께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어젯밤에 꿈을 꾸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주님을 믿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며, 이런 일 저런 일로 고통을 겪습니다.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파서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을 찾아야겠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매일 괴로운 사람, 빚진 사람, 공부가 안 풀리는 사람, 취업이 힘든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저 역시 그렇게 주님께로 걸어왔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한가해서 주님을 믿으러 오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뭅니다. 사람은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당시 취업이 되지 않아 막막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를 어떻게 인도해 내셨는지, 당시에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 겪었던 그 고난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영원히 잊지 마십시오. 평생토록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처음에 주님을 믿을 때는 얼떨결에 믿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주님을 믿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특별한 택하심일 것입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신명기》 16:1-8)
우리는 어릴 때 ‘고난을 되새기며 현재의 행복을 감사하는(忆苦思甜)’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고난을 기억하고 단맛을 생각하고 나면 속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비지밥을 드셔보셨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시절 우리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는 ‘두부비지’였습니다. 두부를 살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저를 태우고 가서 비지 한 대야를 사 오셨습니다. 그게 얼마나 맛이 없었겠습니까? 거기에 산나물 조금 넣고 소금기만 돌게 해서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을 되새기는 밥이었습니다.
유월절은 바로 이러한 기억과 기념입니다. 어떻게 기억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월절은 가장 큰 명절입니다. 한번은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마침 유월절 기간이었는데, 중국의 설날처럼 정말 떠들썩하고 성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 안에서는 유월절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거처, 하나님의 처소,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만 드려야 합니다.
먼 길을 걸어옵니다. 일주일 동안 걸어야 한다면, 일주일 전에 미리 출발해야 절기 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소 떼와 양 떼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 제물로 바칩니다. 이때 절기를 지키며 제물을 먹되 누룩 넣은 빵은 먹지 않고, 그 제물은 당일 밤에 다 먹어야 하며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처음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왜 사람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가?’ 사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잡수셔서 무엇하겠습니까? 겉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훈을 얻고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먼 길을 걸어와서 제사를 드리고, 그것을 자기 배 속으로 넣으니 얼마나 번거로운 일입니까? 이것은 사람의 기억력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화인 사명 신학’은 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 신학입니다. 왜 번거롭게 할까요?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공부를 합니다. 금요일에 성경공부를 마치고 노트 정리도 다 못 했는데 주일 설교가 다가옵니다. 월요일 저녁에는 또 기도회가 있고, 화요일에도 기도가 이어집니다. 수요일이 방금 지난 것 같은데 또 성경공부가 시작됩니다. 마치 주마등처럼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 시간을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쓰지 않고 숏폼 영상이나 보며 낭비한다면 무엇을 얻겠습니까? 열이 나거나, 변비에 걸리거나, 목과 허리 디스크가 생길 뿐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 사명 신학에 온 지 수년 동안 의료보험 카드에 돈이 잔뜩 쌓였습니다. 한 번도 쓸 일이 없었고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의료보험 카드에 항상 돈이 없었는데 말이죠.”
사람들은 아플 시간은 있고,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칠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번거롭게 시간을 드릴 여유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번거롭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고 충만합니까! 세상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든가, 아니면 하나님에 의해 번거로움을 겪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훈련받고 헌신하면 축복을 얻게 됩니다. 반면 세상에 휘둘리면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마사지 숍을 전전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30세부터 50세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퇴근하면 마사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이 굳어버렸거든요.” 하지만 마사지를 받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해서 효과가 있었다면 진작 나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매일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듯 매일 하나님을 기억하자고 말입니다. 저는 이미 몇 년 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병원에 가서 무엇하겠습니까? 이 사명 신학 안에 들어왔는데 병원에 갈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애굽에서 억압당하고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휘둘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해 주셨고, 그 이후로 우리는 평생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왜 저는 이렇게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할까요?
알고 보니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나니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았고, 오직 ‘병드는 것’만 지체되었습니다. 돈 버는 일조차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것도 지체되지 않고, 병드는 것, 재앙을 만나는 것, 수많은 골치 아픈 일들만 막아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살아가면서 은혜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살다 보면 원래 그런 줄 압니다. 원래 그렇기는커녕 본래라면 재앙이 임하고, 질병의 고통을 겪고,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마땅한 인생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가문 안에서 영향력을 세우고 강건해지십시오. 가문 안에서 아브라함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된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많은 고난과 번거로움을 줄여주실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모임에 갔는데 14명이 큰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옛 친구를 보았습니다. 어릴 적 이웃사촌으로 함께 등하교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그가 온몸에 병이 들어 몹시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의 손을 잡고 어깨를 짚어주었는데, 다음 날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다! 어깨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는데, 네가 한번 만져준 뒤로 아프지 않더니 오늘 아침에도 전혀 통증이 없어.”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너는 모를 거야. 우리 아버지가 7년 동안 전신마비로 누워 계셨고, 어머니도 7년 동안 마비로 누워 계셔서 내가 14년 동안 부모님을 수발했어.” 아이고,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강건해지고 기개를 가지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가문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브라함과 같은 존재가 되십시오.
마비된 부모 한 분을 모시고 또 다른 한 분을 모시는 삶이 얼마나 고단합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힘들지 않겠습니까? 정말 힘듭니다. 저는 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도 허리 마비 증세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마비되지 않게 지켜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14년 동안 마비된 어르신을 돌보아야 했다면 저 역시 다 망가졌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삶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주님이 저를 번거롭게 훈련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기꺼이 절기를 지키며, 제 평생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대가는 기꺼이 치르겠습니다.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병원 신세 같은 것은 결코 원치 않습니다.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추간판 탈출 같은 고통도 전혀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주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100킬로미터, 200킬로미터라도 기꺼이 걷겠습니다.
하나님! 평생토록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오직 주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저를 훈련시키고자 하신다면 주의 뜻대로 행하시고 저를 온전히 자유케 하옵소서.” 형제자매 여러분, 시간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다면 시간을 어찌 바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바쳤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시간은 바치지 않습니다. 그럼 그 시간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아프고 재앙을 겪는 데 쓰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며 기뻐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에게는 일 년에 세 번의 긴 명절이 있습니다. 집에서 성전까지 100킬로미터라고 할 때, 차를 타고 간다면 조금 가다 쉬고, 테이블 펴놓고 바비큐를 해 먹으며 가는 드라이브 여행처럼 간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십시오.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걸어도 3일 내내 걸어야 겨우 100킬로미터 남짓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안배하심이 더없이 훌륭하다고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신명기》 16:9-12)
유월절을 잘 지키고 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두 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간다’는 굳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한다면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많은 분이 이런 믿음이 없을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그냥 편히 들어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압니다. 그런 가난하고 찌든 삶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세입자들에게 정말 잘해줍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싱가포르에서 셋방살이하던 시절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방을 빌리면 방에서 요리하는 것을 집주인이 몹시 꺼려서 맹물에 끓여 먹는 것밖에 못 했습니다. 그래서 간장을 조금 붓고, 돈이 없으니 대용량 닭 날개 한 봉지를 사서 먹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먹고 나니 나중에는 닭고기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질려버린 것입니다.
닭고기를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닭고기 냄새만 맡아도 닭똥 냄새가 났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달걀을 너무 많이 먹으면 달걀 냄새에서 닭똥 냄새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와 우리 가운데 거류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데리고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저는 기꺼이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칠칠절까지 며칠을 계산하든 간에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유월절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칠절이 찾아옵니다. 가는 데 7일 걷고, 돌아오는 데 7일 걷고, 거기서 7일 머무르면 21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돌아와서 유월절 지킨 지 2주가 지나고 다시 49일을 세면, 결국 한 달 남짓 지나서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합니다. 갈 때 또 7일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고,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성전 옆에 사는 사람만 횡재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록 7일을 걸어갈지라도 그 어떤 일도 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영적인 일에 쏟는 시간이 전임 목회자보다 더 바빠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일상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지체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암에 걸리는 일만 지체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일만 하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매일 일하는 것이 좋은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무한 경쟁 속에서 쥐어짜이는 느낌을 받아보셨습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일을 덜 해서 그렇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 손의 칼에 의지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내 문제를 당신이 해결해 줄 겁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는데 그것으로 부족합니까? 종 되었던 시절을 기억하십시오. 조금의 돈이라도 안 벌면 안달이 나는 사람처럼 굴지 말고, 일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일은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게으르자는 것이 아니라, 일할 때는 성실히 하되 하나님 앞에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노비, 가사 도우미까지 다 데리고 함께 절기를 지키십시오. 그들에게 일을 시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4.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고 당신을 기쁘게 하심을 기억하라
세 절기 중 두 번째를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명기》 16:13-17)
초막절이 얼마나 좋습니까! 초막절은 7일 동안 이어집니다. 온 백성이 다 모여 예루살렘 주변에 수백만 명이 가득합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온 산과 들에 장막이 가득하고,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놀며 다 함께 텐트에서 생활합니다. 즐겁지 않겠습니까? 즐겁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런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집이 훨씬 편하겠지만 캠핑은 위생도 불편하고, 텐트 안에서 일어서기도 힘들어 기어 들어갔다 기어 나와야 하며 밖에는 모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것은 결코 부담스러운 짐이 아닙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다 거두어들인 후의 축제입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일하는 기계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름 수련회 같고 캠프 같으며 온갖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우리 중국인들을 유태인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를 유태인으로 만드셨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들 초막절 지키러 가면서 생수 한 트럭씩 떼어다 팔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최근 장강에서 등불 축제가 열렸는데, 음료수를 대량으로 떼어다 팔면 돈 벌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가득한 것과 같습니다. 300만 명이 모이면 거기서 도매하고 소매하며 돈 벌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은 벌었을지 몰라도 기쁨은 얻지 못하고 바가지요금만 씌웁니다.
초기 복음 전파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복음이 아시아로 들어오면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시골 교회는 추수철만 되면 예배를 취소합니다. 예배드리고 싶다고 언제든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댁 밭도 추수해야 하니 예배를 취소해 버립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이것이 우리 동양인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입니다. “내가 추수하지 않으면 농작물이 밭에서 썩어 문드러질 텐데 어쩌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썩지 않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당장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골 교회들은 갈수록 축복이 줄어들고 결국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초막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 초막절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소출과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힘입으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에서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노력으로 사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한들 멧돼지를 따라잡을 다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에서보다 더 빨리 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명분을 의지하고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지, 돈을 더 벌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더 많이 해서 돈을 더 벌겠다고 시간을 다 빼앗겨 절기를 지킬 시간조차 없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쁘게 하심을 기억하며 초막절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참으로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쁨이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얼굴에 풍파와 피로가 가득해서야 되겠습니까?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찌들고, 없으면 없는 대로 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의지한다면 그렇게 인생의 풍파에 찌들어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5. 온전히 공의를 따르라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면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음을 기억할 것이고, 칠칠절을 지키며 과거에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며,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지극히 공의롭고 정직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되며 재판을 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의 재판으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신명기》 16:18-20)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재판장으로 세움을 받았다면 온전히 공의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저주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돈을 의지해 살아가면 돈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공의가 무슨 대수냐? 나는 돈으로 사는데! 이게 다 진짜 금과 은인데 내가 안 받으면 바보 아닌가? 받아야지.’ 뒤뜰로 들여보내 회계 담당자에게 챙기게 합니다. 은괴도 받고, 금괴도 받고, 위안화도 받고, 달러도 받아 집에 산더미처럼 쌓아둡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워야 합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돌아오자마자 굽은 재판을 하여 저주를 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이 땅에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9천억이니 1조니 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리 소식을 들으면 간담이 서늘합니다. 100위안짜리 지폐로 100만 위안을 묶어놓으면 보통 체격으로는 무거워서 제대로 들지도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야 합니다.
돈을 인쇄하는 사람들도 참 짓궂습니다. 제일 큰 단위가 100위안짜리라 100만 위안만 묶어도 수십 킬로그램에 달해 몹시 무겁습니다. 단위를 더 크게 찍어내면 좋겠지만, 너무 크면 가짜 돈(저승 돈) 같아질 테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공의를 따라야 합니다. 왜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심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기보다 눈앞의 금은보화를 의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금은보화를 의지하기 시작하면 “예루살렘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냥 집 문 앞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라고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제단을 쌓고 주상을 세우는 것을 보고 풍요를 추구하며 따라 합니다. 정작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마음속에는 오직 금은보화뿐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듣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잊고 눈에 돈만 가득 차면 영적 맹인이 되고 맙니다.
6.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라
여러분은 기꺼이 하시겠습니까?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되 빈손으로 가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일, 번거롭습니까?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번거롭고 귀찮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오직 화인 사명 신학만이 우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러한 말씀을 담대히 선포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헌신하기에 전혀 번거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요구와 그분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려야 함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온전히 생명을 얻고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고, 풍성한 삶을 살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깎아먹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이제 확실히 마음에 새기셨습니까? “나는 평생토록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리라. 평생토록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매일 스스로를 일깨워 학자의 귀를 가지고 더 이상 맹인이 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