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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누가복음 24장 – 너희 마음이 미련하고 믿는 것이 더디도다!

2021-03-24 31,417 路加福音 信心 落实 得胜 死里复活 坚持 圣灵的大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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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加福音24章-耶稣复活
  • 1 七日的头一日,黎明的时候,那些妇女带着所预备的香料来到坟墓前,
  • 2 看见石头已经从坟墓滚开了,
  • 3 她们就进去,只是不见主耶稣的身体。
  • 4 正在猜疑之间,忽然有两个人站在旁边,衣服放光。
  • 5 妇女们惊怕,将脸伏地。那两个人就对她们说:“为什么在死人中找活人呢?
  • 6 他不在这里,已经复活了。当记念他还在加利利的时候怎样告诉你们,
  • 7 说:‘人子必须被交在罪人手里,钉在十字架上,第三日复活。’”
  • 8 她们就想起耶稣的话来,
  • 9 便从坟墓那里回去,把这一切的事告诉十一个使徒和其余的人。
  • 10 那告诉使徒的就是抹大拉的马利亚和约亚拿,并雅各的母亲马利亚,还有与她们在一处的妇女。
  • 11 她们这些话,使徒以为是胡言,就不相信。
  • 12 彼得起来,跑到坟墓前,低头往里看,见细麻布独在一处,就回去了,心里希奇所成的事。
  • 13 正当那日,门徒中有两个人往一个村子去;这村子名叫以马忤斯,离耶路撒冷约有二十五里。
  • 14 他们彼此谈论所遇见的这一切事。
  • 15 正谈论相问的时候,耶稣亲自就近他们,和他们同行;
  • 16 只是他们的眼睛迷糊了,不认识他。
  • 17 耶稣对他们说:“你们走路彼此谈论的是什么事呢?”他们就站住,脸上带着愁容。
  • 18 二人中有一个名叫革流巴的回答说:“你在耶路撒冷作客,还不知道这几天在那里所出的事吗?”
  • 19 耶稣说:“什么事呢?”他们说:“就是拿撒勒人耶稣的事。他是个先知,在 神和众百姓面前,说话行事都有大能。
  • 20 祭司长和我们的官府竟把他解去,定了死罪,钉在十字架上。
  • 21 但我们素来所盼望、要赎以色列民的就是他!不但如此,而且这事成就,现在已经三天了。
  • 22 再者,我们中间有几个妇女使我们惊奇;她们清早到了坟墓那里,
  • 23 不见他的身体,就回来告诉我们,说看见了天使显现,说他活了。
  • 24 又有我们的几个人往坟墓那里去,所遇见的正如妇女们所说的,只是没有看见他。”
  • 25 耶稣对他们说:“无知的人哪,先知所说的一切话,你们的心信得太迟钝了。
  • 26 基督这样受害,又进入他的荣耀,岂不是应当的吗?”
  • 27 于是从摩西和众先知起,凡经上所指着自己的话都给他们讲解明白了。
  • 28 将近他们所去的村子,耶稣好像还要往前行,
  • 29 他们却强留他,说:“时候晚了,日头已经平西了,请你同我们住下吧!”耶稣就进去,要同他们住下。
  • 30 到了坐席的时候,耶稣拿起饼来,祝谢了,擘开,递给他们。
  • 31 他们的眼睛明亮了,这才认出他来。忽然耶稣不见了。
  • 32 他们彼此说:“在路上,他和我们说话,给我们讲解圣经的时候,我们的心岂不是火热的吗?”
  • 33 他们就立时起身,回耶路撒冷去,正遇见十一个使徒和他们的同人聚集在一处,
  • 34 说:“主果然复活,已经现给西门看了。”
  • 35 两个人就把路上所遇见,和擘饼的时候怎么被他们认出来的事,都述说了一遍。
  • 36 正说这话的时候,耶稣亲自站在他们当中,说:“愿你们平安!”
  • 37 他们却惊慌害怕,以为所看见的是魂。
  • 38 耶稣说:“你们为什么愁烦?为什么心里起疑念呢?
  • 39 你们看我的手,我的脚,就知道实在是我了。摸我看看!魂无骨无肉,你们看,我是有的。”
  • 40 说了这话,就把手和脚给他们看。
  • 41 他们正喜得不敢信,并且希奇;耶稣就说:“你们这里有什么吃的没有?”
  • 42 他们便给他一片烧鱼。(有古卷加:和一块蜜房。)
  • 43 他接过来,在他们面前吃了。
  • 44 耶稣对他们说:“这就是我从前与你们同在之时所告诉你们的话说:摩西的律法、先知的书,和诗篇上所记的,凡指着我的话都必须应验。”
  • 45 于是耶稣开他们的心窍,使他们能明白圣经,
  • 46 又对他们说:“照经上所写的,基督必受害,第三日从死里复活,
  • 47 并且人要奉他的名传悔改、赦罪的道,从耶路撒冷起直传到万邦。
  • 48 你们就是这些事的见证。
  • 49 我要将我父所应许的降在你们身上,你们要在城里等候,直到你们领受从上头来的能力。”
  • 50 耶稣领他们到伯大尼的对面,就举手给他们祝福。
  • 51 正祝福的时候,他就离开他们,被带到天上去了。
  • 52 他们就拜他,大大地欢喜,回耶路撒冷去,
  • 53 常在殿里称颂 神。

서론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을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24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념하고 축하할 만한 날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묘사하고 있으며,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묘사된 사건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일이지만, 글자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 일 자체를 기록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명백한 일을 누가는 반복해서 기록했는데, 사람들은 읽으면서도 그것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누가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누가복음》 24장 25-2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24:25-27)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가 너무 더디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우리가 너무 더디 믿는다》입니다. 사람이 너무 더디 믿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정말 너무 더디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자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제가 다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대학을 졸업한 석사와 박사인 우리는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고 나서야 ‘아, 뜻이 이렇게 분명한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실 정말 그렇습니다. 화인명정신학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실제적인 진실이며 매우 분명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읽고 또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읽은 것일까요? 저도 매우 놀랍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이 한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매우 실제적인 일을 한 것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에 따라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모두 치료를 받았습니다. “모두 치료를 받았다”는 이 말씀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제가 “모두 치료를 받았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허풍 떠는 것 아닙니까? 허풍도 정말 크게 떠시네요. 그렇게 허풍을 떨다가 거짓말이 터져 버리면 어떡합니까?” 사실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로잡힌 자가 자유를 얻고, 억압받는 자가 자유롭게 되며, 오늘 이 복음이 여러분에게 전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61장 1절에 바로 위에서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치유와 해방은 복음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인데, 왜 이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어떤 때는 이것은 은사주의 교단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것은 극단적인 은사주의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머리에 혹이 난 겁니까, 아니면 머리에 물을 부은 겁니까?” “방언으로 기도한다고요? 어떻게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왜 그렇게 겁을 먹고 있습니까? “나는 차라리 천국에 가고 싶지, 이단과 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이단입니까? 자신이 이미 이단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다니,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이 한 일은 많은 사람이 직접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해방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더디 믿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많은 사람이 저와 함께 섬기며 수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했으며, 그들이 본 일들이 모두 매우 충격적이고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직접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받고도 탈락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일을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탈락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저는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도 사람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고, 심지어 나사로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도 보았는데도 여전히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께서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받고, 셋째 날에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자신의 귀로 여러 번 들었지만, 그래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어떻게 곧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인데, 여러분이 그것을 다른 모양으로 바꾸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이 사람들, 몇몇 여인들과 제자들이 만약 나라면 그들처럼 더디 믿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일 하루 종일 예수님 곁을 맴돌며 차를 내오고 물을 떠다 드리고, 날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면 어떨까요?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받고 셋째 날에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다.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받고 셋째 날에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다……” 저는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밤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의 주님께서 셋째 날에 죽음에서 부활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둘째 날 밤이니, 무덤 옆에 천막을 치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것을 직접 보아야겠다.” 그때 큰 돌이 옮겨지고 천사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하늘과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휴대폰을 하나 꺼내서 화웨이든 샤오미든 상관없이 예수님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처음으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증언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얼른 더우인에 올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더디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대에 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살지 못했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지만,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더디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본 사람이 한두 명뿐입니까? 정말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몇몇 여인들은 왜 향품을 가지고 갔을까요? 마치 무덤에 성묘하러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려고 했던 것입니까? 중국인이라면 종이와 향도 조금 준비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해 보니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나의 주님께서 부활하셨구나. 주님께서 전에 나에게 말씀하셨지.”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누가 우리 주님의 시신을 가져간 거지?” 사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몸을 가져가신 것입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시니(《누가복음》24:3-7)

이 말씀이 바로 귓가에 들리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은 세 번 말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더더’도 나서서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더더’는 죽음에서 부활하는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본보기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결국 이 여인들의 마음이 열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세마포만 한곳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며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보고서 “와! 나의 주님께서 부활하셨구나!”라고 하면 얼마나 쉽게 믿을 수 있습니까? 믿기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돌아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매우 무감각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런 말씀을 전하는 데에는 제 자신을 책망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너무 더디 믿었습니다! ‘더더’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디 믿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마음속으로 일어난 일을 놀랍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중 두 제자는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에 제자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누가복음》24:13-25)

그들은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몸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이 어디로 간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더디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더딘 믿음에 대해 한 가지 말해 보겠습니다. 최근 우리는 정욕의 영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문득 정욕에 관한 일이 성경에 한 번 또 한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욕의 영에 관한 말씀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성령은 정욕을 거슬러 싸우고, 정욕은 성령을 거슬러 싸운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얼마나 분명하게 말했습니까? 여러분 중 몇 명이나 믿고 있습니까?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은 한 가지 일만 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에 따라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더디 믿지만 않는다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도 그들과 같아서 너무 더디 믿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교회에서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과 똑같았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가고 평일에는 소그룹에 가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성경과 맞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당시 그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왜 이것은 예수님과 같지 않지?” 제가 책을 잘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은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왜 교회는 그렇게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후에 제가 나와서 교회를 세웠을 때에도 저는 매우 더디 믿었습니다. 보통 더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고 사람들이 오겠어? 그렇다면 구운 닭, 구운 오리, 햄 소시지 같은 것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을 하려면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금 생각해도 우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인데, 누가 구운 닭이나 구운 오리, 햄 소시지를 필요로 합니까? 먹을 것이 부족합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들리시면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들리신다고 해서 정말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수 있을까? 나는 왜 보이지 않지?”라고 의심했습니다. 사실 저의 더딘 모습은 베드로와 그들과 같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제게 한 방 크게 깨닫게 하시는 일을 주셔서 단번에 정신을 차리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 안의 모든 의문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계속 걸어왔습니다. 원래 하루만 투자하면 깨달을 수 있었는데, 결국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어쨌든 오랜 세월이 지나서라도 이 깨달음이 열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 제자들은 무덤을 들여다본 후 엠마오로 향했고,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십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한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 더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사실 마음이 열린다는 것은 믿음이며, 믿음은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왜 사람의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요? 사실 그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예수님을 무엇 때문에 믿습니까?” 그러면 상대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후에 천국에 가게 되니까요.” 보십시오. 이렇게 분명한 일, 곧 예수님께서 그동안 계속 행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2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승리하면 되는데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승리의 핵심 아닙니까?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몸을 마귀에게 바치는 데에는 얼마나 능숙합니까! 바쁘고 또 바쁘게 살다가 결국 돈을 크게 잃습니다. 왜 그렇게 더디 믿습니까? 바로 사람의 불신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아직 특별히 믿음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믿기 시작하고 자신을 드리기 시작하면 작은 승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드리면 더 많은 승리를 얻게 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바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겨자씨만 한 믿음 이외의 것은 모두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은 아주 작은 믿음입니다. 사실 큰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됩니다.

‘각각’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 ‘각각’은 예수님의 동생이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각각’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더 대단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고 하셨는데, ‘각각’에 이르러서는 겨자씨만 한 의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잘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믿을 수 있습니까?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매우 낮습니다. 만일 기준을 그렇게 높게 정하셨다면 아무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각각’ 자신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각각’이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해서 그를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형제자매이며 누가 내 어머니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자매요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너무 더디 믿지 마십시오. 더디 믿으면 나중에 매우 곤란해집니다.

온전한 신앙 체계를 세워 더디 믿지 않게 하라

후에 우리는 ‘각각’의 가르침 중 많은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서로 대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조금 대립하는 정도가 아니라 개념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이 말씀은 모두 익숙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섬기면서 볼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복종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귀신에게 억압받아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이 어떻게 복종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를 대적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대적할 수 있습니까?

또한 ‘각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언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것은 내가 잘못 구한 것인가? 저것도 내가 잘못 구한 것인가?” 모든 것이 잘못 구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감히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말들은 정말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너무 더디 믿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누가 자신의 형제자매인지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형제자매가 됩니다. 무지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너무 더디 믿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온전한 신앙 체계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 왜 그렇게 많은 의문과 혼란이 생기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과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저는 자주 매우 혼란스러운 질문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입니다. “믿음은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왜 사람의 열매를 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믿음과 행위에 억지로 연결해야 합니까? 굳이 이렇게 말해야 합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제가 작은 묘목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십 년이면 나무가 되고 백 년이면 사람이 된다는 말처럼,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듬해에도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나무를 베어 버리겠습니까? 그러면 영원히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묘목이 충분히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들이여, 선지자가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너무 더디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누가복음24:26)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이 길을 달려가기 시작합시다.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시다. 만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반드시 죽음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감각한 상태를 바꾸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분명하게 말씀하는지에 따라 우리도 분명하게 믿읍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그렇게 더디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동생이 말한 것은 매우 빨리 믿습니다. 이것을 무슨 믿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동생을 믿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습니까? 어쨌든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실제로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동생도 믿지 않습니다. 만일 훗날 예수님에게 형이 나타난다고 해도, 저는 그가 예수님의 형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왜 그런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길은 자신을 드리는 길입니다. 몸을 드리는 것이 승리의 핵심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렇게 승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렇게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귀신이 화를 냅니다. “아니, 어떻게 너희가 이것을 이렇게 분명히 깨달았지? 그러면 안 되는데!” 다행히 제가 귀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마주했다면 귀신 얼굴을 만들어 보였을 것입니다. 귀신을 화나게 할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 걸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려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누가복음24:28-35)

이제야 이 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더디 믿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다시 열어 영계의 운행과 영계의 진실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이 승리의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 알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왜 섬기다가 가짜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한 번 열린 눈이 왜 다시 닫혔을까요? 원래 열려 있던 마음이 왜 다시 닫혔을까요? 왜 그렇습니까? 모두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믿는다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과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고 마음도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열렸다가 다시 닫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름을 지을 것이 그렇게 없습니까? 꼭 가짜 사람들의 이름을 지어야 합니까? 야고보라고 하거나, 베드로라고 하거나, 바나바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야고보라는 이름만으로 부족한지 베드로를 더하고, 그래도 부족한지 바나바까지 더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what’s your name?” “제 이름은 Barnabas Peter James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도 부족하다면 “제 이름은 Barnabas Peter Jude James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긴 이름을 한 줄로 늘어놓을 바에는 차라리 바울의 이름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는 정말 바울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애터미로 가 버렸습니다. 정말 웃음거리입니다. 사업을 잘 운영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애터미가 여러분이 짜고 있는 하나의 천막이라면 잘 짜면 됩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사실 주님께서는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마음속으로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진실로 믿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까요?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얼굴을 마주하고 계신 것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제 손을 통해 행하신 이 놀라운 일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지극히 선하며, 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지 매우 큰 감동을 받습니다.

비록 저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도 보지 못했으며, 예수님께서 제 옆에 앉아 계시고 제가 구운 생선 한 조각을 드리자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아 제 앞에서 드시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의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언젠가 제가 주 예수님처럼, 주님께서 열어 주신 이 영광스러운 길을 달려갈 때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하나 모두 신실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에 따라 그대로 믿습니다!

정말 보아야만 합니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어도 믿기를 선택합시다! 오늘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동물은 어떤 형상대로 지음받았습니까? 천사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사람과 천사 중 누가 더 큽니까? 사람이 더 큽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용이 몹시 화를 냈습니다! 화가 나서 죽으려고 합니다! 용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다. 듣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더 말해 주겠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선악을 분별하는 열매를 먹었고, 믿지 않는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읍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새롭고 완전히 새로운 여러분과 저를 다시 빚으시며,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갖게 하십시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제게 나타나 주십시오!”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저는 헛된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어느 날 한 불쌍한 사람을 섬기고 나서, 제 곁에 있던 형제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제가 예수님께서 당신 뒤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까? 예수님께서 정말 그의 뒤에 서 계셨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불쌍한 상태로 살아야 했겠습니까?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주 예수님께서 제게 나타나신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사진이 있습니까? 사진도 없는데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너무 더디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믿음의 길이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길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형편없는 책들이 한 무더기씩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천국을 여행했다고 말합니다. 천국에 갔다면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그 사람이 여전히 예전의 그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더더’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고 해도 여전히 ‘더더’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동생도 ‘각각’일 뿐입니다. 도대체 이런 엉망인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걷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나타나신 일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 가운데 한 사람이 흰 옷을 입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제 옆으로 와서 앉았는데, 여전히 흰 옷을 입고 머리도 덮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주 예수다.” 그런데 그의 동작이 별로 점잖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원숭이처럼 걸핏하면 배를 긁고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저는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조심하기로 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혹시 잘못 판단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분명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마귀가 나를 속이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마귀는 내게서 떠나라. 가짜 예수는 나가라!” 그러자 그 흰 천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늑대의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흰 천을 뒤집어쓰면 제가 당신을 예수님이라고 믿을 줄 알았습니까? 그러자 그것은 분노하며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악한 영을 예수님으로 착각합니다. 진짜 손오공과 가짜 손오공의 이야기를 들어 보셨지요? 어느 날 손오공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가짜 손오공을 만났습니다. 무공도 진짜 손오공만큼 뛰어났습니다. 두 손오공이 치열하게 싸우니 정말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가짜 예수는 가짜 손오공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믿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보지 않고도 믿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이겠습니까!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누가복음》24:49)

당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오백 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기도하러 남은 사람은 백이십 명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삼백팔십 명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보았고, 감람산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나중에 무엇을 했을까요? 무슨 대단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본 후 집으로 돌아가 소 다섯 마리를 사고 땅 한 덩이를 사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이 백이십 명은 그곳에서 성령께서 임하시고 능력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능력을 받은 후에도 많은 사람이 ‘더더’와 ‘각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향한 길에는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하고 끊임없이 믿음을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 화인명정신학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이를 위해 태어나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죽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이 부활의 길에서 우리를 떠나게 할 수 없으며, 죽음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에서 우리를 떠나게 할 수 없습니다.

굳게 맹세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호만 외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자신을 1분 드리면 1분이 10분이 되고, 10분이 1시간이 되며, 1시간이 10시간이 되고, 10시간이 하루가 되며,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주가 됩니다. 저는 계속해서 견딜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고, 제가 지켜야 할 믿음을 지켰으며, 제가 싸워야 할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루를 견디면 하루를 견디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사람의 체면도 세워 주고 저 사람의 체면도 세워 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면 됩니다. 마침내 하나님을 뵙고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것이 제 평생의 견딤이며, 제 생명의 집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마음이 영원히 닫히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의 깨달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한 걸음씩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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