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我讲的是《创世记》24章,主题是《神为有命定的人预备通达的道路》。我觉着比以往任何一次查得更好。大家在预备问题之前,我先自问自答一个问题:你说亚伯拉罕的仆人求印证,是否合乎《圣经》呢?很多人都在求印证。曾经有一个姐妹,她所在教会的牧师为了撮合,就对这个姐妹说:你就是神为某某预备的。女孩就问:你怎么知道的?牧师就说:我昨天做梦,神说你应该嫁给他。结果嫁给这个男人以后,发现不太对劲。在结婚之前,他们也都求印证,也得着了这些印证,但是后来发现这些印证都是很扯淡的。还很困惑:为什么亚伯拉罕的仆人求了印证,到了我这怎么就不好使了呢?是不是神搞错了?求印证这事通常我们华人命定不教。
其实仆人求不求印证不重要,这不是关键,关键是有一个利百加。是神感动老仆人在那求这个印证。结果你就把印证这事当真了。很多印证是魔鬼导演的,因为神造这些东西,就是要让人被迷惑。你如果被迷惑了,活该呀!印证完了,才发现是个悲剧。咱们当中有没有印证婚姻的?印证完了才发现不太对劲,可是生米已经煮成熟饭了。印证本身就是很扯的事。原因是求印证这事本身不是《圣经》的主轴,命定才是《圣经》的主轴。没有命定,即使你有了印证,也是一个很扯的印证。如果真的想求印证,还是求一个有命定的印证比较好。命定比印证更准确!只有有了命定,神才会赐给你印证,神才会赐给你通达的道路。
最近大家在客栈上面提出很多问题。我鼓励大家去客栈上多提问题,因为在那里,我不知道是谁提的问题,你提问题提得安心,我回答得也安心,免得我伤人。
Q1:孩子从小到大,从来没有打骂过,是老好人吗?
这个问题好啊!有的孩子不需要打骂,你打他干啥?如果孩子犯浑,你不揍他,你不是老好人,而是在惯孩子,在败坏孩子。
Q2:家人总拿封建迷信、五行八卦、属相配对跟我思辨,有没有高招应对?
你可以多反问几个为什么,然后说:我没听懂,你能不能多解释一下?有没有实际的例子说明?一定要多问,不要直接否定人家。直接否定不是上道的事。
Q3:以撒在他的妈妈死了以后,直到利百加来了才得安慰。是以撒没有看透生死吗?没有看透他妈死的这件事吗?
以撒是撒拉年老的时候生的,撒拉127岁的时候,以撒已经37岁,撒拉跟以撒的关系是非常亲密的。不管是否看透了生死,自己的妈妈离世以后,人想念自己的妈妈是很正常的。虽然理性上告诉我们,人早晚有一死,就是那么回事,但是就是掰不过来那股劲,一直等到利百加来了才得安慰。那是因为以撒和妈妈的关系,亲密到忘记了谈恋爱的程度,所以妈妈的死,对他的影响还是很大的。这时候利百加再带着奶妈底波拉一来,以撒一下子就缓过神来了。他有没有看透生死呢?有。怎么可能没看透呢?但是那股劲还掰不过来,这也是一个非常正常的事。
Q4:以撒也是一个很有命定的人,有命定的人应该是看透生死的人,那以撒为什么因母亲离开而没有安慰了呢?然后娶了利百加就有了安慰了呢?
大家问的问题挺好。利百加的命定的那种深度应该超越了以撒。以撒是个很有命定的人,他应该是看透生死的。但是看透生死就不难过了吗?自己的妈死了一样难过。我妈死了,我也难过。为什么娶了利百加就有安慰呢?如果利百加整天在那作、在那闹,那以撒就更闹心、更不得安慰了。为什么《圣经》说了这句话?是凸显了利百加的命定和对人活着的这件事的看法。利百加打发雅各离开家,到他舅舅拉班家,后来利百加死了,雅各也没回来。利百加会觉得遗憾了吗?没觉得。利百加是一个非常厉害的一个女人。我鼓励大家琢磨一下,为什么《圣经》上面专门说利百加成了以撒的安慰?说明利百加对人生人死的看法上,应该更加超越以撒。但是,我也不太理解的一件事是《圣经》上在说耶稣家谱的时候,没有说以撒从利百加生雅各。但是事实上,利百加还是一个非常奇妙的女孩子。
Q5:怎么知道自己是一个有命定的人?
这个问题非常好。怎么才知道?看你看重啥。如果整天看重的东西都是那些鸡毛蒜皮的事,像个农村老娘们似地,他不可能是一个有命定的人。其实,利百加也是个村子里的人。一个有命定的人不是不知道,他是很清楚知道自己追求的是啥。如果自己追求的那些东西都不是上档次的事,那可悲剧了。这个人给我一个脸色,那个人看我一眼、瞪我一眼,那不都是悲剧了吗?如果你照着《圣经》慢慢琢磨,然后渴望做这样的人,当有一天发现你所面临的问题都已经变小的时候,你就知道自己是一个有命定的人了。
Q6:老师好,亚伯拉罕的仆人也算是有命定的人吗?
亚伯拉罕的仆人有没有命定我可不知道,但是,亚伯拉罕的仆人有可能从亚伯拉罕得着二手的。他说:我主亚伯拉罕的神那。他如果是有命定的话,就会说我的神。我想,应该还是二手的成分多一点。
Q7:老师,以撒和利百加都是有命定的人,他们会为彼此的婚姻操心吗?
没读懂。在旧约《圣经》,主耶稣还没有降世为人。也就是说,在旧约《圣经》,尤其是《创世记》,所有的都围绕着耶稣基督会降世为人,成为我们的救赎。旧约里说,你的后裔要如同天上的星,海边的沙这样多,你的后裔要得着仇敌的城门。大家要留意,那个后裔,如果按照希伯来文的说法,有单数和复数的表述。你的后裔,是指着一个人,那个人是谁?是耶稣基督。也就是说,他们不太清楚说这话是啥意思,但是觉得特别好,就特别想成为耶稣家谱里的那个人。
后来耶稣基督来了,使徒保罗所描述的婚姻观就改变了,变成了在《哥林多前书》第七章里所描述的。旧约《圣经》里,亚伯拉罕、以撒、雅各他们这些人都是渴望成为耶稣家谱里的那个人,希望他的后裔要得着仇敌的城门,那是指着耶稣基督说的。耶稣基督既然来了,婚姻的观念就变了。所以,在耶稣基督之后,也没人再关心谁有命定、没命定,嫁人、娶人,那个已经过了,旧约都是指向耶稣基督,耶稣基督指向耶稣基督的身体,荣耀的教会。所以,我们的命定是建立荣耀的教会。
Q8:身边的家人一生都想依靠别人,不想脚踏实地地做事,一直想找个有钱的男人养。这样,要如何把她带到命定里?
其实,命定是很难要求的,都是人自己的选择。你不能说我要求你有命定,你就有了命定。她脑袋里装的都是这些东西,你怎么讲她都听不进去。所以,命定好像不是你给她讲她就有,你不讲她就没有。但是我们可以成为他们的祝福。能够跟他们分享一点就分享一点。分享什么呢?就是让他们开始经历神。或许他可以得着一点二手的恩典,我们就成为他们的祝福。至于他们有没有命定,那是他们自己的责任和选择。
Q9:老师,为什么神让亚伯拉罕离开本地、本族、本家,亚伯拉罕还要回去为儿子娶亲?
这事可以理解,因为利百加在那儿。他让他的仆人回去给他儿子娶亲,是因为神让他这么想的。
Q10:老师,对付肉体就是脱去兽的属性吗?恢复神荣耀的形像才叫人,对吗?
对。如果一个人活在肉体当中,跟一个兽没有什么差别。一个有神形像的人,他最重要的那个形像就是给出去。兽的形像是啥?得着自己要得着的。
Q11:老师,现在神医治了我的身体,都挺好的,就差找到工作。以前病没有好,面试挺好通过,现在不过有点灰心,感觉你在说我,没有工作总感觉家里人看不起我,是神在熬炼我吗?
不是,是你真的需要改变,需要对付自己身上的毛病。不是熬炼,熬炼的人不会觉得自己家里人看不起自己,不会有这些感觉。神医好了你的身体,自己脑袋里的垃圾还得除掉。
Q12:老师,利百加是个有命定的人,为什么《圣经》在雅各逃到拉班处时,利百加为什么说一日丧你们二人呢?
如果雅各不走,以扫把雅各杀了,然后再把以扫杀了,那不是一日丧失二人吗?大家千万别以为有命定的人即使有事也没关系,事还不得要去解决吗?她解决的办法就是打发雅各去他舅舅拉班家。
Q13:老师,我体会最深刻的一句话,就是人自私看不到别人的需要。我一直就会看到自己的需要,看不到别人的需要,我一直想要有命定,但我一点也不明白什么叫命定。老师我也想要有命定,要从哪方面深刻理解命定,走命定的路?
非常好的问题。如果一个人想要有命定,他的前提是能看透人生人死,知道人活着是虚空的虚空,很多事情就变得毫无意义,他就得寻求一个有意义的活法。就是人为什么活着,为什么来到这世上,到底人活着是怎么一回事,这就叫命定。每个人追求不一样的命定,但不一定是合乎《圣经》的。如果你寻找的是要成为很多人祝福,那就是合乎《圣经》的命定,然后你就会看见神奇妙的作为。
但是人看不透就会变得自私,人愚蠢就以为想得着就能得着。有的人想有命定,但骨子里还是想得着什么东西。如果你真的想得着,还不如得着点永恒里的祝福。人如果没有永生,活着活着就死了,死了以后被丢到地狱里,那是个悲剧,只是人不知道。
Q14:老师,以撒也有命定,他也知道雅各是有命定的人,而以扫不在乎命定,不在乎长子的名分,为什么非要把长子的祝福给以扫,激化兄弟俩的仇恨呢?
你的问题有点很传统观念啊。是以撒非要给以扫,激化兄弟俩的仇恨吗?没有。这些东西跟以撒做什么或者不做什么关系不太大。《圣经》里记载这个以扫要杀雅各,那是以扫自己先出卖了长子的名分,后来以扫又想得着祝福,结果这祝福被雅各得着了。以撒能做什么?那都是以扫自己的选择,至于是不是以撒给他祝福,好像不是那么重要,重要的是这事是神导演的。
我们千万别停留在这种观念里。就像如果你家里有两个儿子关系不好,你也管不了。雅各和以扫的关系,连以撒都管不了,你能管呀?更何况四千多年过去了,我们来管这事吗?更管不了。
如果我们是有命定的人,我们就不大在乎这些。以撒不在乎,利百加也不在乎。不是说让他们兄弟俩和好,而是各有各的追求,各有各的命。千万别以为把关系调和好了就好了,调和好了干啥?我可以跟大家说,两个不合一的教会在一起合一不了;两个属肉体的人在一起合一不了;一个属肉体的人和一个属灵的人也合一不了。只有两个有命定的人才能够合一。如果一个教会跟耶稣合一,另外一个教会也跟耶稣合一,这两个教会就天然地合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4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놀라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며, 왜 살아야 하고 왜 죽어야 하는지, 또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인의 사명 신학의 유래는 《창세기》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리브가, 다말, 라합, 룻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여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매우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여 놀라운 일을 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이 장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는 사람을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하신다》입니다. 왜 이 제목을 사용했을까요? 이 장의 마지막 부분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가 그 원수의 성문을 얻을지어다 (《창세기》 24:60)
이 말은 앞 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리브가는 사명이 있는 여인이었다
이삭이 아내를 맞이한 일은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지만, 그들은 리브가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과 사명이 없는 사람이 결혼하거나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를 찾는 목적은 서로 다릅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사람의 생리적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하지만, 리브가는 사명을 위해 남편을 찾았습니다. 성경에는 사명이 있는 여인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리브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리브가는 집에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과, 그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삭이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리브가는 정말 대단한 소녀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들은 뒤 날마다 집에서 자신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며, 자신이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삭에게 시집가고 싶어 했습니다. 가족들은 그 말을 듣고 그녀가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빠 라반도 그녀를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먼 곳인 데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집을 간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테니 이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리브가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그녀의 유모 드보라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드보라도 매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이미 결혼할 나이를 지나 사명이 있는 사람과 다시 결혼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친딸처럼 여긴 리브가에게 소망을 두고 날마다 사명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후에 야곱이 리브가의 오빠에게서 돌아왔을 때 드보라가 죽었고, 야곱은 드보라를 장사하고 그녀를 위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되었으니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5:8)
드보라가 없었다면 리브가도 없었을 것이고, 리브가가 있었기에 후에 에서와 야곱이 있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품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손이 움직여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이 자기 종에게 고향과 친족에게 가서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우리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어떤 사람이 사명을 위해 날마다 간절히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문득 생각이 나서 자기 종을 보내 그 사람을 데려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가 있는 곳까지 가는 전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이런 남편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사명이 없어서 돈 많은 남편에게 시집가는 것만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날마다 부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실제로 소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에게 시집가고 아내를 맞이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온라인 연애가 실제 만남으로 이어져 성공했고 결혼 후에도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배우자를 찾는 일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명이 있는 여인 리브가입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이르되 이 소녀로 우리와 함께 며칠, 적어도 열흘을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이에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종의 사람들을 보내니라 (《창세기》 24:55-59)
리브가는 그날 바로 종을 따라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며칠 더 머물게 하려고 했지만, 리브가는 하루도 기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는 이 날을 여러 해 동안 기다려 왔고,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형통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녀의 집 문 앞 우물에 오게 하셨고, 그녀가 물을 길으러 나오는 순간 만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에 내가 그의 코에 고리를 꿰고 그의 손목에 팔찌를 끼우고 그 앞에서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찬송하였나니 이는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손녀를 그의 아들에게 아내로 주셨음이니이다 (《창세기》 24:47-48)
늙은 종은 리브가를 만났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팔찌까지 끼워 주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종이 기도하며 구한 것이 바로 리브가가 간절히 사모하던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대대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로 리브가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에게 사명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녀가 어릴 때부터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만 그 말을 마음에 받아들였고, 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사명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리브가는 정말 놀라운 여인이며, 우리가 배우고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형통한 길을 예비하십니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시집가고 싶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녀가 이삭에게 시집가고 싶어 했던 것은 이삭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삭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이 일은 다말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다말 역시 매우 특별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하시다
아브라함이 자기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을 내 허벅지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세기》 24:2-4)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땅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사명이 있는 여인이 있었다면 이삭이 그곳에서 결혼했을 수도 있습니다. 후에 성경에 나오는 룻은 모압 여인이었는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모압 여인이라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롯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사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출신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합은 여리고 여인이었고, 룻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족에게 가서 아들의 아내를 맞이하게 하신 것은 고향 때문이 아니라, 리브가가 한마음으로 이삭에게 시집가기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길을 예비하십니다. 첫 번째 일은 아브라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문만 통과하면 나머지 일은 쉽게 해결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일은 꽤 어려웠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아들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사진도 없었는데, 그림을 하나 그려 가지고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자기 주인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하며 그 딸을 시집보내 달라고 해야 했을까요? 듣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종이 그에게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온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세기》 24:5)
그때는 위챗도 없었고 영상 통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 딸이 시집오겠다고 동의하게 하려니 정말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데리고 갔다면 이삭은 잘생겼고 돈도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와 서로 선택하려 했을 것이고 일이 매우 복잡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삭을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별을 보고 달을 기다리듯 아브라함의 아들과 결혼하기를 바라며, 사명이 있고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고 원수의 성문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여자가 이삭이 맞이할 아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사명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삭을 데리고 갔다면 고향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자를 데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삭은 재벌 2세였고 한 세대의 족장이었으며, 아브라함의 명성도 컸기 때문에 모두 아브라함의 집안으로 시집가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리브가가 아무리 오랫동안 기다려도 소용이 없고, 자칫하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아들을 데려가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 모두 리브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장을 나눌 때 저는 아들을 고향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핵심은 모든 이야기가 리브가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사명이 있는 여인을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가는 일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이 가로채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위해 예비하신 첫 번째 관문,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관문이었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는 말라 하였더라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로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창세기》 24:6-9)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이 있는 여인을 위해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어느 갈림길을 만나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가서 마침내 리브가가 물을 긷던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줄곧 이 종의 길이 순탄했던 것이 아브라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리브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없었다면 야곱도 없었을 것입니다. 종의 길이 형통했던 것은 단지 아브라함 때문이 아니라, 리브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자매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명이 있는 자매들을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하시며, 마음에 품은 소원까지 이루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창세기》 24:26-27)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리브가를 순조롭게 찾은 것이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일이 이루어졌는지도 몰랐습니다. 그곳에 리브가라는 사명이 있는 특별한 여인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믿음으로 길을 걸어왔고, 이는 정말 이야기가 되려면 우연이 겹쳐야 한다는 말처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늙은 종은 가는 내내 속으로 주인이 혹시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을 맞선 자리에 데려가지도 못하게 하고, 오히려 그곳에 가서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늙은 종은 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괜찮아. 주인 아브라함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으니까. 그동안 집안의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주인에게 복을 주셨으니, 주인의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는 일도 아무 여자나 데려가도 문제가 없을 거야.’
그가 이르되 저녁때에 이르러 성읍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에 내가 그 우물 곁에 서 있다가 낙타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내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내게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 여자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가 되리이다 내가 이같이 하여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세기》 24:11-14)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아브라함을 따라 평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갔고, 그 후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함께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태어날 때에도 늙은 종은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 이삭은 서른이 넘고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회를 리브가를 위해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아내를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리브가는 마침 성인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너무나 놀랍게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으니 그는 브두엘의 딸이요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이더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따우며 처녀라 남자가 가까이하지 아니한 자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 한 후에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러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길었더라 (《창세기》 24:15-20)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절묘할 수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리브가가 낙타에게 물을 먹일 생각을 하다니, 이렇게 간단한 일이 사명이 있는 결혼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준비된 것이 아니라, 리브가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두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천천히 깊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형통한 길을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형통한 길을 주시는 것이지, 오늘 갑자기 사명을 주셔서 길을 여시는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 사명의 흔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갈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길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에서 오랫동안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셨고, 그곳에 형통한 길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형통한 길이 없다면 그 원인은 오직 우리 마음에 품은 것이 조금 수준 낮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이 있는 결혼은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하나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은 사명을 말하고 있으며, 사명 밖에는 복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명이 있는 생각과 습관을 기르기를 권합니다. 여러분 안에 사명이 있으면 사람의 삶에 대해 전체적인 관점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사명을 가지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고, 마지막에 영생에 들어가는 일을 중요하게 보게 됩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사명을 갖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기 위해 살아가다가 결국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거나, 세상을 한 바퀴 돌아 결국 외로움과 수고와 근심만 얻고 형통한 길은 없이 험난한 길만 남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자매 여러분이 사명이 있는 습관을 기르기를 권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여 이삭에게 사명이 있는 아내를 데려온 것처럼 말입니다.
사명이 없는 나쁜 습관을 절대로 기르지 마십시오. 평생 살아 있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헛되이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다 읽은 뒤에는 좋다고 생각하며 자기 아들을 리브가 같은 아내와 결혼시키고 싶어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사람을 잘못 찾을 뿐 아니라 온갖 고민에 빠지고 결국 비극이 됩니다. 이 종이 우물가에 도착한 것은 기도한 직후였고, 바로 그때 리브가가 나타났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는 한 이야기를 연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편의 연극 전체가 하나님의 안배 가운데 있었습니다. 모두 리브가가 유모 드보라의 가르침을 받아 사명이 있는 습관을 길렀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자신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을 갈망하고 자신이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던 것은 정말 좋은 습관이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 세대의 필요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된다는 말을 입으로 외치는 것이 실제로 실천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한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일은 한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사오니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리이다 내가 한 소녀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내게 마시게 하라 하여 그의 말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 여자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가 되게 하소서 내가 이같이 하여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세기》 24:12-14)
사람의 필요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리브가는 늙은 종이 빨리 물을 마시고 가기만을 바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속으로 늙은 종이 더럽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시간을 빼앗지 말고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낙타에게도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머릿속에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눈이 멀거나, 눈에 필터를 달고 흑마를 백마로 보게 됩니다. 막상 결혼하고 나서야 자신이 마음속의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리브가가 낙타에게 물을 먹이는 작은 일조차 하지 못했다면, 사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결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을 축복하기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원수의 성문을 얻지 못합니다. 원수에게 성문을 빼앗기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작은 일부터 이 세대의 필요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이 세대의 필요를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기도하면 많은 병이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밖에는 여전히 병든 사람이 수천수만 명 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년 치유와 축사 집회를 열고, 사명 신학 세미나도 개최해야 합니다. 사명 신학 세미나는 사명 밖에는 복이 없다는 관념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필요를 보고, 이 세대의 교회가 얼마나 황폐한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각종 바리새인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뜻은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길로 치우쳤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피를 흘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일어나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이 세대의 필요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와서 치유와 축사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헌금을 하더라도 자격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헌금을 하겠다고 해도 반드시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을 기대하거나 돈을 받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은 이 세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든 우리는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섬김을 베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여러분에게 주어 저주에서 벗어나 복된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사명을 전하여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형통한 길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이 장에 이렇게 많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는 것은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자주 우연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리브가는 별을 보고 달을 기다리듯 오랫동안 기다렸고,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만일 그날 그 기회를 놓치고 늙은 종의 낙타에게 물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면 모든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혹은 막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이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곳에 와서 복만 받으려 해서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수 없고 원수의 성문도 얻을 수 없습니다. 비극을 피하는 것만도 다행일 것입니다.
낙타가 물을 다 마시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 사람들에게 알리니라 (《창세기》 24:22-28)
늙은 종은 시간과 힘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고 곧장 우물로 갔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리브가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사실 리브가가 우물로 갈 때 늙은 종도 우물로 가고 있었습니다. 종이 우물가에서 소리를 질러서야 리브가가 물동이를 들고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장소와 인물이 모두 그렇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으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리브가는 늙은 종이 온 목적을 알게 되자 매우 흥분하여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빠 라반은 여동생의 손에 금 코걸이와 금 손목고리가 있는 것을 보았고, 리브가의 말을 듣고 더욱 놀랐습니다. 그는 곧장 우물가로 달려가 늙은 종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라반은 정말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여동생이 날마다 간절히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과연 복된 사람이었고,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그녀의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었습니다. 라반이 사명을 이해했는지와 상관없이 사실 그는 아무것도 몰랐고 돈만 알았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지만, 이것이 매우 좋은 말이며 승리하는 삶이 될 것이라는 점은 알았습니다. 늙은 종은 라반과 리브가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한 뒤, 간신히 하룻밤을 머물렀고 아침이 되자 리브가를 데리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이르되 이 소녀로 우리와 함께 며칠, 적어도 열흘을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세기》 24:55-58)
리브가는 그때 당장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머니를 끌어안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울지도 않았습니다. 리브가는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 바로 떠났습니다. 사명을 위해 가족과 함께 지체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날을 별을 보고 달을 기다리듯 오랫동안 기다렸고, 마침내 그날이 왔으니 하루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순식간에 반쯤 식어 버렸을 것입니다. 정말 시집간 딸은 쏟아 버린 물과 같다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사실 리브가는 가족과 여러 해를 함께 살아 보았지만 결국 그 정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가족이 어떠한가에 따라 상처받지 않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자신의 미래의 남편 사이에 세워진 언약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의 미래의 남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언약을 세우셨고, 그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사실 리브가도 그 의미를 특별히 잘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간절히 바랐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유모 드보라와 함께 떠났습니다. 후에 드보라와 리브가는 야곱을 가르치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모세 시대까지 이르렀고, 모세는 《창세기》 24장에 기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리브가와 그녀의 유모의 입에서 전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속 전해지며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어떻게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여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 일대에도 전해졌습니다. 후에 라합과 다말과 룻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명이 있는 특별한 여인이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위로가 된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이르되 들에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세기》 24:63-67)
왜 리브가는 이삭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리브가가 사명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명으로 인도하고 영원한 소망으로 인도해야만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을 아주 사소한 일들 속으로 데려가면 위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교제한다면 저는 여러분이 세상에 속한 소망을 품고 있을 때 자주 그 위에 찬물을 끼얹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속한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 가져가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을 사명이 있는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와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환해졌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만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우리의 절망감은 세상에 속한 소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을 묘사할 때 자주 ‘시골 아낙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아주 사소한 일들을 따지고 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계속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골 아낙네라도 사명이 있는 특별한 여인이 되어 영원 안에서 소망을 품기 시작한다면, 갑자기 사소한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날마다 따지고 들던 것들이 무지하고 아무 가치도 없으며, 사람을 매우 타락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지하고 교양도 없으며 입만 열면 그런 사소한 일들을 말합니다. 게다가 성질도 매우 급하고 고집도 세며 체면도 중시합니다. 아무 일이나 뒤죽박죽 끌어모아 일을 크게 만들곤 합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보통 사람을 세상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로 데려가지 않고, 영원한 사명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면 세상의 많은 일이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됩니다. 원래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말하는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며 죽겠다고 소동하고, 할 일이 없으면 농약을 마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수준이 너무 낮아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둠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수준을 높이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명이 있어야 수준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에 사람들을 이렇게 섬겼습니다. 사람을 사명으로 인도하면 그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유모 드보라를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삭과 이야기를 나누면 이삭의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이삭도 사명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어머니가 죽은 일에서는 계속 그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리브가와 드보라가 와서야 위로를 얻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어떤 사람이 사명이 없는 여자와 결혼하여 날마다 소란을 피우고, 지식과 교양도 없으며,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문제를 일으키기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정말 비극이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른 사람의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울고불고하며 죽겠다고 소동하고, 할 일이 없으면 농약을 마시는 그런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면 그나마 끝이지만, 마신 양이 부족하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고생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위로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 형통한 길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연출하신 아름다운 일들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아름다운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결혼은 사명이 있는 결혼이었고, 영원 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하늘과 땅에서 사명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 리브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창세기》 24장 성경 본문
24:1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을 내 허벅지 밑에 넣으라.
24: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24:5 종이 그에게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온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는 말라 하였더라.
24: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로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24:10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마리를 끌고 떠났으며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렀더라.
24:11 그가 저녁때에 성 밖 우물 곁에 낙타를 꿇리고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를 기다리더라.
24: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24:13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사오니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리이다.
24:14 내가 한 소녀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내게 마시게 하라 하여 그의 말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 여자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가 되게 하소서 내가 이같이 하여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24:15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으니 그는 브두엘의 딸이요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이더라.
24: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따우며 처녀라 남자가 가까이하지 아니한 자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24: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24:18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더라.
24:19 마시게 하기를 다 한 후에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4:20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러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물을 길었더라.
24:21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24:22 낙타가 물을 다 마시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24:23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24:24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24:25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24:26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24: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 사람들에게 알리니라.
24:29 리브가에게 오라비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금 코걸이와 금 손목고리를 리브가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였다는 것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달려가 우물가에 이르렀더라.
24:30 앞 절과 같음
24:31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24:32 그 사람이 집에 이르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주며 그 사람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24:33 그 앞에 음식을 차려 주었으나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말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24:34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24: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그를 창대하게 하셨고 양과 소와 은금과 남종과 여종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으며,
24:36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늙은 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24:37 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땅의 여자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24:38 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24:39 내가 내 주인에게 말씀드리되 혹시 여자가 나를 따라오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 하니,
24: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 길을 형통하게 하시리니 네가 내 족속 중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24:41 네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 네가 내 맹세에서 벗어나리니 그들이 네게 여자를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에서 벗어나리라 하시기로,
24:42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내가 행하는 길을 형통하게 하옵소서 하며,
24: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가 물을 길으러 나오면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24:44 그의 말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 물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신 자가 되리이다 하였더니,
24:45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 우물로 내려가 물을 긷기에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하였더니,
24:46 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에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였나이다.
24:47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에 내가 그의 코에 고리를 꿰고 그의 손목에 팔찌를 끼우고,
24:48 그 앞에서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찬송하였나니 이는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손녀를 그의 아들에게 아내로 주셨음이니이다.
24:49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좌우간에 행하게 하소서.
24: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24:51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24: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24: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비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었더라.
24:54 이에 그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24:55 리브가의 오라비와 어머니가 이르되 이 소녀로 우리와 함께 며칠, 적어도 열흘을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24: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24: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24: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24: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종의 사람들을 보내니라.
24:60 그들이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가 그 원수의 성문을 얻을지어다.
24:61 리브가와 그의 여종들이 일어나 낙타를 타고 그 종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24:62 그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주하고 있었더라.
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24: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리더라.
24:65 종에게 묻되 들에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24: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