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 사도행전 19장 -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하라!

2023-09-27 61,009 使徒行传 使徒行传第十九章 使徒行传19章 圣灵充满 方言祷告 医病赶鬼 受圣灵的洗

相关经文

使徒行传19章-保罗在以弗所
  • 1 亚波罗在哥林多的时候,保罗经过了上边一带地方,就来到以弗所;在那里遇见几个门徒,
  • 2 问他们说:“你们信的时候受了圣灵没有?”他们回答说:“没有,也未曾听见有圣灵赐下来。”
  • 3 保罗说:“这样,你们受的是什么洗呢?”他们说:“是约翰的洗。”
  • 4 保罗说:“约翰所行的是悔改的洗,告诉百姓当信那在他以后要来的,就是耶稣。”
  • 5 他们听见这话,就奉主耶稣的名受洗。
  • 6 保罗按手在他们头上,圣灵便降在他们身上,他们就说方言,又说预言(或译:又讲道)。
  • 7 一共约有十二个人。
  • 8 保罗进会堂,放胆讲道,一连三个月,辩论 神国的事,劝化众人。
  • 9 后来,有些人心里刚硬不信,在众人面前毁谤这道,保罗就离开他们,也叫门徒与他们分离,便在推喇奴的学房天天辩论。
  • 10 这样有两年之久,叫一切住在亚细亚的,无论是犹太人,是希腊人,都听见主的道。
  • 11  神藉保罗的手行了些非常的奇事;
  • 12 甚至有人从保罗身上拿手巾或围裙放在病人身上,病就退了,恶鬼也出去了。
  • 13 那时,有几个游行各处、念咒赶鬼的犹太人,向那被恶鬼附的人擅自称主耶稣的名,说:“我奉保罗所传的耶稣敕令你们出来!”
  • 14 做这事的,有犹太祭司长士基瓦的七个儿子。
  • 15 恶鬼回答他们说:“耶稣我认识,保罗我也知道。你们却是谁呢?”
  • 16 恶鬼所附的人就跳在他们身上,胜了其中二人,制伏他们,叫他们赤着身子受了伤,从那房子里逃出去了。
  • 17 凡住在以弗所的,无论是犹太人,是希腊人,都知道这事,也都惧怕;主耶稣的名从此就尊大了。
  • 18 那已经信的,多有人来承认诉说自己所行的事。
  • 19 平素行邪术的,也有许多人把书拿来,堆积在众人面前焚烧。他们算计书价,便知道共合五万块钱。
  • 20 主的道大大兴旺,而且得胜,就是这样。
  • 21 这些事完了,保罗心里定意经过了马其顿、亚该亚,就往耶路撒冷去;又说:“我到了那里以后,也必须往罗马去看看。”
  • 22 于是从帮助他的人中打发提摩太、以拉都二人往马其顿去,自己暂时等在亚细亚。
  • 23 那时,因为这道起的扰乱不小。
  • 24 有一个银匠,名叫底米丢,是制造亚底米神银龛的,他使这样手艺人生意发达。
  • 25 他聚集他们和同行的工人,说:“众位,你们知道我们是倚靠这生意发财。
  • 26 这保罗不但在以弗所,也几乎在亚细亚全地,引诱迷惑许多人,说:‘人手所做的,不是神。’这是你们所看见所听见的。
  • 27 这样,不独我们这事业被人藐视,就是大女神亚底米的庙也要被人轻忽,连亚细亚全地和普天下所敬拜的大女神之威荣也要消灭了。”
  • 28 众人听见,就怒气填胸,喊着说:“大哉,以弗所人的亚底米啊!”
  • 29 满城都轰动起来。众人拿住与保罗同行的马其顿人该犹和亚里达古,齐心拥进戏园里去。
  • 30 保罗想要进去,到百姓那里,门徒却不许他去。
  • 31 还有亚细亚几位首领,是保罗的朋友,打发人来劝他,不要冒险到戏园里去。
  • 32 聚集的人纷纷乱乱,有喊叫这个的,有喊叫那个的;大半不知道是为什么聚集。
  • 33 有人把亚历山大从众人中带出来,犹太人推他往前,亚历山大就摆手,要向百姓分诉;
  • 34 只因他们认出他是犹太人,就大家同声喊着说:“大哉!以弗所人的亚底米啊。”如此约有两小时。
  • 35 那城里的书记安抚了众人,就说:“以弗所人哪,谁不知道以弗所人的城是看守大亚底米的庙和从宙斯那里落下来的像呢?
  • 36 这事既是驳不倒的,你们就当安静,不可造次。
  • 37 你们把这些人带来,他们并没有偷窃庙中之物,也没有谤讟我们的女神。
  • 38 若是底米丢和他同行的人有控告人的事,自有放告的日子(或译:自有公堂),也有方伯可以彼此对告。
  • 39 你们若问别的事,就可以照常例聚集断定。
  • 40 今日的扰乱本是无缘无故,我们难免被查问。论到这样聚众,我们也说不出所以然来。”
  • 41 说了这话,便叫众人散去。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도행전》 19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사도 바울이 주의 도를 전하기 시작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베드로는 언급되지 않아 베드로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주의 도가 크게 흥왕하여 이김’이라고 한다면 다소 빗나간 면이 있으며, 주제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주의 도를 듣게 함’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의 이 장을 기록할 때, 기록된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 유대인과 헬라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주의 도를 듣게 해야 한다는 주제를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주의 도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사도행전》 19:1-2)

아볼로라는 사람은 후대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자주 전했습니다. 그에게는 말을 매우 잘한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누가가 기록하기를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회개의 세례를 매우 중요하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성령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은 성경을 조리 있게 잘 설명하지만, 그것은 주의 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 즉 성령 충만 혹은 성령 세례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의 도의 핵심 구성 요소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아볼로처럼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던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는 매우 우연한 일이었고, 누가가 그렇게 기록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누가는 이 사람들이 아볼로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지도 않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실제로 아볼로와 사도 베드로의 방문으로 인해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의 세 파벌로 나뉘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이미 온전히 깨달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큰 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 제자들을 만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은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화인 사명 신학 교회에 처음 오셨다면, 저희 역시 여러분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묻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핵심 요소를 없애 버렸는데, 이는 온당치 못합니다. 성령을 받았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며,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받고 방언 기도를 하는지 등 수많은 문제들이 뒤따라 나옵니다. 비록 성경에 상세한 과정이 다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도 바울이 이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행전》 19:3-7)

여기서 모든 사람에게 주의 도를 듣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주의 도에는 도대체 무엇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사실 단순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요소, 즉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것, 다시 말해 방언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먼저 밝혀두지만 이것이 바울의 창작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4-8)

제가 이 말씀들을 다시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분들은 이제 막 제 성경공부를 듣기 시작하여 앞뒤 맥락을 잘 모르기 때문이므로 몇 마디 덧붙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에게는 이것이 이미 아주 기초적인 지식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본문은 나중에 온 사람들을 위해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물었을까요? 그것이 우리 신앙의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며, 사람이 주를 믿고 능력을 얻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능력을 얻고 표적과 기사가 따르기를 원한다면, 방언 기도와 성령 충만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저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세례만 받았다면, 주의 도는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수많은 교회가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이 이 핵심 요소를 없애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이 방언을 말했고,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방언 기도를 했습니다. 어떻게 방언 기도를 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성경 전체를 찾아보아도 방언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명확히 설명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방언 기도가 바로 믿음의 훈련임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방언으로 기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입을 열면 악령이 들어올까 봐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모독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고작 이런 일 하나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아볼로와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동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은 아볼로의 방식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전해 준 이 논리 체계입니다. 방언 기도는 사실상 믿음의 훈련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함께 방언으로 기도할 때 제게 어떤 느낌이 있습니까? 무언가가 제 입을 통제합니까? 아닙니다! 만약 무언가가 여러분의 입을 억지로 통제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가증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은 결코 그렇게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사도행전》에서 귀납하여 정리한 것이며, 성경에 온전히 부합하는 신학 체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로 전하는 도를 확증하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사도행전》 19:11-12)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보다 방언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방언 기도는 비록 작은 은사이지만 매우 중요한 은사입니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는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도는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바로 증거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표적과 기사는 성령 강림과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믿지 않고 오직 회개만 믿으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깁니다. 저는 그러한 도는 온전한 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바로 아볼로의 논리를 믿고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변증할 때는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말을 잘했습니다.

한번은 목회자 모임이 끝난 후 제가 차로 그분을 집까지 바래다 드렸습니다. 가는 길에 그분이 가슴에 통증이 있다며 기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기도해 주어 가슴 통증이 나았는데도, 그분은 교회로 돌아가서 제가 전하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도’는 올바른 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올바르지 못한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방식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결국 어느 쪽이 성경의 가르침에 더 부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치유와 축사는 화인 사명 신학 체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성령 충만, 방언 기도, 치유와 축사는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이처럼 능력 있는 복음이기에 우리는 어떠한 환경을 만나든, 어디를 가든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질문합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바울이 귀신을 쫓아냈다면 우리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상황에서 귀신을 쫓아내셨다면 우리도 그대로 합니다. 비록 아직은 부족할지라도 언젠가는 예수님과 바울을 더욱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사도행전》 19:13-15)

이 일의 원인은 매우 간단합니다. 사실 이 사람들에게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믿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믿지 않았다면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치대로라면 그들에게도 약간의 믿음은 있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이며, 앞서 말한 성령 충만이 없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언급이 드물고(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했습니다.

귀신은 바울도 알고 예수님도 압니다. 다만 우리 형제자매들을 잘 모를까 염려될 뿐입니다. 말씀처럼 귀신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을까요? 바로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방언 기도를 아주 많이 하기를 권면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 귀신이 반드시 알아봅니다. 얼마 전 치매를 앓고 계신 90세 노인을 사역했는데, 그 노인에게 붙은 귀신이 올라오자마자 저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능력이 대단하구나! 감히 나에게 도전하려 해?" 결국 잠시 사역하고 물러나왔는데, 그 가족들이 잘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귀신을 쫓아낼 담력이 없다면 귀신은 그것을 틀림없이 압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면 귀신도 반드시 여러분을 두려워합니다. 먼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을 때 표적과 기사가 우리가 전하는 도를 확증해 줍니다. 우리가 전하는 도로 귀신조차 쫓아내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귀신에게 쫓겨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전한 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이요, 바울은 귀신을 쫓아내는 바울이었으며, 주의 도는 분명히 귀신을 쫓아내는 도입니다!

바울이 날마다 말씀을 나누어 유대인과 헬라인이 다 주의 도를 듣게 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 도를 듣고 주의 도를 보게 하려면, 주의 도가 진정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따르는 표적과 기사로 확증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행전》 19:8-10)

제가 이 구절을 읽을 때 여기에 '변론(강론)'이라는 단어가 두 번 쓰인 것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맞지 않는 듯했습니다.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강론(변론)하며 사람들을 권면한 것은 논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믿지 않고 마음이 완악하여 바울에게 온갖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고, 심지어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도에 비방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령을 받고 능력을 얻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표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에도 문제가 없으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며 억눌린 자를 해방하는 데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권면하기 위해 매우 애썼습니다. 사실 사람들과 말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던지는 까다롭고 괴상한 질문들에 답해 준 것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도는 이치에 맞고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증할 수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바울과의 논쟁에서도 이기지 못하자 도리어 하나님의 도를 비방했고, 이에 바울은 그들을 떠났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계속 논쟁하지 않고 제자들을 그들에게서 따로 떼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입장에 서야 하며, 결코 이러한 표현에 혼란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논쟁하지 마십시오. 논쟁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믿고 싶으면 믿고 싫으면 그만입니다. 마음이 완악한 자들이 고생을 자처하겠다면 얼마간 고생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이는 사람의 말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는 것이고 불신은 안 믿는 것이지, 논쟁을 통해서는 사람의 믿음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변론했다는 구절에 대해, 저는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모르지만 영어를 조금 알기에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 'discuss(토론하다)'를 썼지, 변론이나 논쟁이 아니라 토론과 나눔이었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행전》 19:10)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주의 도를 듣게 한 것이지, 사람들과 기싸움을 하거나 맞붙어 대결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주의 도를 들었다는 것은 날마다 주의 도를 토론하고 배웠음을 뜻합니다. 그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고 오직 구약 성경만을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도 예수님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고, 거기에 전하는 도를 확증하는 표적과 기사가 더해졌습니다.

당시 그곳 사람들은 모두 주의 도를 듣고 바울이 행하는 표적을 보았으며, 마술과 주술을 행하거나 점을 치는 책들을 모두 가져와 바울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마술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책들의 값은 은 5만이나 되었는데, 당시의 은 5만을 연간 3%의 인플레이션으로 계산한다면 오늘날 수백억 원 이상의 가치에 달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나누어 유대인과 헬라인이 모두 주의 도를 듣게 하는 것, 이것이 바울의 변함없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인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고, 자기 동족이자 한 집안인 유대인들도 주의 도를 얻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당시 학술 토론을 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두란노라는 유명한 교수나 학자가 세워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헬라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와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바울에게 개방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바울은 2년 동안 끈기 있게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주의 도를 듣게 한다는 주제가 이 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주의 도를 듣고, 주의 도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로마에 있는 사람들도 주의 도를 듣게 하다

바울은 왜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을까요?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도 주 예수님의 도를 믿고 따르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으로 묘해서 무엇을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행전》 19:20-21)

바울은 이 시기에 《로마서》를 썼는데, 그 서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명확하게 논술하고 요약했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 유대인과 율법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로마로 가서 로마인들에게 전함으로써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습니까? 주의 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가 녹음 파일을 웹사이트에 올려놓자, 사람들이 클릭하여 들어와 함께 기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바울은 예루살렘과 로마의 사람들도 주의 도를 듣게 했습니다. 주의 도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포로 된 자가 자유케 되고 억눌린 자가 놓임을 받는 역사를 보게 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포로 된 자를 해방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복음이겠습니까? 비록 교회 안에 선지자가 있고 복음 전하는 자가 있으며 교사와 사도가 있다 할지라도, 포로 된 자를 해방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지 못한다면 큰 의문표를 던져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의 논리 체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여겼으며, 온 땅과 땅 끝까지 다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 도를 듣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 목표는 우리 세대에서는 아주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바울이 품었던 이러한 원대한 포부가 있습니까?

우리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이불 속이나 냄비 속, 베개 속에 숨겨두어서는 안 되며, 땅속에 묻어두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구원과 하나님의 큰 능력을 땅 끝까지 전하여 모든 사람이 주의 도를 듣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중화권(화인) 사람들에게는 유대인과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이어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전하는 도를 확증해 주시니, 우리는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제 마음에 깊은 감회가 듭니다!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지만,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오직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울로부터 물려받은 사명입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화인 사명 신학이 전하는 복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참된 도임을 듣고 깨달을 때까지 전해야 합니다.

주의 도가 크게 흥왕하다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흥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크게 흥왕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그분을 찾고 그분의 마음을 깨닫는 자가 있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보배처럼 여기시며 택하셔서 주의 도가 크게 흥왕하고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 세대에 행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19:20)

이 말씀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얼마나 흥왕했는지 한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습니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을 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너희도 보고 들은 것이라” (《사도행전》 19:23-26)

그곳에서는 집집마다 신상을 샀고 가격도 따지지 않았으며, 돈을 아끼려고 싼 신상을 사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여신의 은 신상을 만들어 당시 큰돈을 벌고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가 너무나 흥왕한 나머지 이 사업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은 신상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와 마술에 관한 책과 아데미 여신의 논리가 담긴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그들은 우상 신상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하나님의 도가 해결해 주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포로 된 자를 해방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에, 에베소 온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우상을 섬겨왔기에 아데미 신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컸습니다.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사도행전》 19:27-28)

이 사람들은 아데미와 에베소 사람들을 하나로 엮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은장색에게 이용당해 착취당한 꼴이었지만, 아직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의 한 자매의 가족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차가 살짝 긁히는 경미한 접촉사고가 났는데 차 안에서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그 집안에 온갖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우상들을 섬겨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분은 오히려 우상을 섬기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로 목숨까지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핑계도 잘 댑니다. 하지만 차가 세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골절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 안의 논리가 에베소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데메드리오의 말 한마디에 선동당해 은장색에게 이용당하면서도, 그것을 에베소 사람으로서의 자존심과 결부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동이며, 인간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도행전》 19:29-31)

이것은 마치 대형 경기장에서 거대한 집회를 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끌고 들어가 규탄 대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들어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실상이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사도행전》 19:35-41)

이 구절은 당시 주의 도가 얼마나 크게 흥왕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와 해방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도를 얻었다면 누군가의 의문이나 반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표적과 기사가 우리를 확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어나 귀신을 쫓아내고 원수 마귀를 짓밟아야 합니다.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알 뿐만 아니라,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사도 바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다 이루지 못한 사역을 이어받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로마로 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여 모든 사람이 주의 도를 듣게 하며, 마귀의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지 다른 것을 의지할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 사도 바울이 다 이루지 못한 사역을 완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기묘하신 분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만약 모든 일이 다 끝났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최근 제 마음속에 매우 강한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 다스리도록 남겨두신 영역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에게 맡기신 영역이 있었으며, 시대를 거쳐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완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사역을 끈기 있게 감당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전례 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교회를 세워 마귀조차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일으키사, 저와 같이 이 세대 가운데 동일한 중심을 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과 계획을 온전히 이루어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