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深入理解罗马书第十章的疑问解答
2019年03月20日分享录音
Q:《罗马书》10章19节,我再说,以色列人不知道吗?先有摩西说,我要用那不成子民的,惹动你们的愤恨。我要用那无知的民,触动你们的怒气。你们指的是什么?
A:很多人信主信主,就不是一个信心的路了。刚刚经历神的人,他就觉得和神之间的关系是在蜜月期。只是有的人觉得其他时间就不是了,其实人跟神的关系一直在不断地进深,所以我们跟神的关系一直是蜜月期。有的人觉得现在不是蜜月期,好像和夫妻关系很相像。
比如10%的家庭亲亲热热,40%的关系水深火热,剩下的50%是不冷不热,这是一个很好的描述。今天你和神的关系是水深火热,还是不冷不热呢?最后死在旷野的基督徒,和神的关系是水深火热的状态,你觉得怎么样?所以,摩西写的你们是指在旷野里的基督徒。
Q:心思意念定意要战胜体贴肉体的感觉,奉耶稣基督的名,命令他们离开。可是当自己做了这样的决定之后,魔鬼诱惑的声音还是在耳边萦绕。
A:你要想让魔鬼不在你耳边萦绕,这是很难的。比如说你在街边走,有人在大街上吆喝,你喜欢也好不喜欢也好,都会听见。神不会把这个声音挪走,但是神会成为你心中的力量!你遇到这个事儿的时候,别斥责这个东西,奉耶稣基督的名,不是命这个东西退下去,而是刚强起来,让神成为我的力量,我要得胜,这次我肯定要得胜!你会发现一会儿就好了,感觉就会越来越有力量!
Q:恩典的问题,《圣经》上说神是烈火,神是审判人的神。为什么以前的教会说神是圣诞老人?
A:以前的教会都是胡说。你观察那些胡说的人受的咒诅有多深,你就会知道他们是在胡说。《圣经》白纸黑字,他读你也读,需要人家说吗?如果你不好好在悟性上学习认识神,听以前教会说的,跟他们走圣诞老人的路,你会经历他们该经历的。愿神怜悯你!
Q:在医治释放的时候,悟性是指什么呢?
A:悟性指我们头脑里认为的东西,我们头脑有很多的观念。《圣经》白纸黑字写得非常清楚,我们信的这位神,要在悟性上很清楚。我们头脑中很清醒,我要有命定。我来到这个世上,活着就是虚空,所以我要寻找一个有意义的活法,就是命定。命定就是我为神活着,成为一个传福音报喜讯的人,不断地使被掳的得释放,被压制的得自由,那你就厉害了!悟性上就是指头脑中很清楚,我在干什么。
Q:我家里养了几年的盆栽,最近才知道它叫观音竹,这是当灭之物吗?
A:我不太清楚,你想丢就丢掉,想留着就慢慢留着。我觉得基督徒的家庭最好干净一点,不给自己带来困惑。有的东西看得难受,难受留着干啥呢?我们要知道一件事儿,当灭之物的层次也是很低的,如果是一个有命定的人,谁养这玩意儿?
Q:老师讲求神的国神的义,老师再给我分享一下。
神的国与得胜之路的探讨
A:神的国就是神作王的地方,神的命令可以畅通无阻,照着神的话行的地方就是神的国。我们求神的国和神的义,神的义就是我们不是靠着行为,乃是信靠神,那种义是神的义。神认为你是一个义人你就是一个义人。神的国在地上的体现就是教会,建立荣耀教会、耶稣基督的身体,那就是求神的国。神的国是释放被掳的和被压制的。所以我们靠着神的灵赶鬼,神的国就降临了。求神的国和神的义,就是照着神的话去落实神在我们身上的命定。
Q:哪些是当灭之物?
A:第一跟偶像有关的都是当灭之物。第二属于神的占为己有,就会成为当灭之物。比如当纳的十分之一,在他手里,就成了当灭之物。
Q:因为人心里相信,就可以称义。口里承认,就可以得救。得救和得胜有分别吗?
A:心里相信,口里承认的人,应该是一个得胜的人。人所有的问题就是不信。有人说我信,他的信是什么呢?我给大家举个例子,直到今天有的教会觉得建立教会需要钱,需要钱就需要人,有人才能奉献,所以我就得惧怕会友。他也相信,但相信的是人。
我们心里相信的是耶稣基督从死里复活,也就是说神的福音本是神的大能,所有问题的答案都在耶稣基督里。也就是说很多人得医治得恩典得释放,那都是因为教会得胜的缘故。
保罗说,口里承认,就可以得救,很多人就片面的说。有的人说我口里承认,心里相信了,但还是那个屌丝样,到具体的事儿处理的时候又不信了。比如说,面对自己的家人,你真的会让他经历神吗?你为他祷告,就觉得自己不行,那你靠的是自己的能力。所以一个真正相信神的人,他是一个得胜的人。
Q:什么叫做仅仅得救?
A:我想得胜和得救不能分开来看,得胜和得救实际上是一个意思。我们人如果完全信靠神,怎么能不得胜?因为不是依靠势力才能,乃是依靠神的灵方能成事。如果我们不信靠,不仅仅抓住神,总觉得自己不行,神也不行了,怎么得胜的呢?人有的时候就会害怕,你不要害怕,啥事也不会发生,但是人就会不信。
进到迦南地的以色列人,是不是得救呢?神使他们得胜,使他们得地为业。得救和得胜是我们一生要持守的路,不要走着走着就变得玩梗、悖逆。人信着信着就歪了,这是普遍的想象,信着信着就靠行为了,觉得自己做得不错。所以要不断地进入到完全,那是得胜的心志。
火中抽出来的一根柴,本来是要被灭掉的,因为神的怜悯,没有被灭掉。后来人不想得胜,继续走不信的老路,又被烧掉。所以火中抽出的一根柴,是神再给你一次机会。如果人要想做一个惧怕胆怯的人,没有信心的人,这就是要丢到硫磺火湖里面去。你如果说我天生胆小,不是胆小,是不信。
【2019년 03월 20일 나눔】
이 복음은 보배입니다
오늘은 《로마서》 10장을 성경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도 여전히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지만, 그 주제가 이미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10장 15절에 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우리는 이 말씀을 이 장의 주제로 삼겠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며,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면, 영생과 존귀와 영광과 썩지 아니하는 복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사람들로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람은 믿을 수도 없고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0:15)
《성경》은 아주 흥미로운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그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사람의 발걸음이란 한 사람이 평생 걸어온 길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매우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명이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지만, 바울이 말한 능력의 복음은 전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복음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도덕경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을 모두 없애 버린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지만, 참된 지식과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저를 매우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오래전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저는 스스로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제 아내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진통제를 아주 많이 먹고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실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했지만,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목회자에게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제 아내의 병은 그 자리에서 나았습니다. 통증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었을 뿐인데, 제 머릿속에 한 가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보배롭구나!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보배를 얻어야겠다.’ 이것은 모든 지혜로운 사람이 가져야 할 개념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좋은 것이 아닌지를 압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누나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어머니가 또 거의 돌아가실 것 같고, 손가락이 전부 파래졌으며, 호흡도 곤란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잠시 섬겼고, 이번에도 어머니가 나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드나드셨습니다. 이 복음은 정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고, 육체는 무익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그의 영이 몸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완전히 죽게 되는 것은 악한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영에 대한 개념을 세워야 합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러분이 저에게 “그때 당신은 정말 믿었습니까, 믿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헌금도 하지 않았고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후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세례를 받을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그들은 저에게 십일조를 드릴 것인지 물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일은 사실 꽤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수업을 해 주었고 저도 그 내용을 이해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매우 갈등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월급은 아주 적었습니다. 한 달에 천 위안 남짓 받았는데, 그중 백여 위안을 헌금하면 거의 저축한 돈 전부를 드리는 셈이었습니다. 헌금하고 나면 저축할 돈이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이 고민되었습니다.
저는 걸어가면서 계속 갈등했습니다. 길을 절반쯤 걸었을 때, 제가 알게 된 이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은 보배이시며, 저는 평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나는 이미 십일조를 드렸는데 왜 아직도 복을 받지 못하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서 헌금하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헌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헌금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저는 제가 꽤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혜로운 점은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했고,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그때 저는 하나님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고, 특별히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밖에도 제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늘과 땅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을 찾고 찾아다닌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중에 저는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시며,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을 내가 만나게 하며 나를 구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려 거역하고 말대꾸하는 백성에게로 향하였노라 하였느니라.(《로마서》 10:20-21)
하나님께서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길을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제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하나님이 보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주님을 믿는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었고, 하나님께서도 계속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당시 교회의 설교는 정말 별로였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보물창고를 열고 싶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지만, 우리는 그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시 저는 아직 젊은 이십 대였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겪게 될 출생과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필요한 날이 너무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았고, 하나님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의 질병은 모두 기도하여 나았습니다. 의료비만 해도 큰돈을 절약했습니다. 한 목회자의 어머니는 이십 년 넘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과 잠시 기도하고 제 설교 녹음을 한 편 들려드렸더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다시 효과가 없게 되어, 그분은 꼭 저를 찾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시 그분과 기도하자 그분은 또 잠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한 후에도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 여전히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돈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돈 문제로 저와 크게 다투고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 자매가 2년 전에 저를 찾아왔을 때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우리 가운데 왔을 때는 온몸에 귀신이 들려 있었고, 상태가 매우 위급했습니다.
그 자매는 영적 세계에 대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 문제 때문에 떠나갔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면 언제나 하나님을 선택할 것입니다. 사람은 왜 돈 때문에 이상한 결정을 내릴까요? 돈이 그 사람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은 사람을 매우 어리석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시 제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이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을 꼭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사실 이 자매는 자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여기서 예언하겠습니다. 앞으로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 정도의 능력으로, 집안 살림만 돌보는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귀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무엇으로 대적하겠습니까?
오늘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것은 그들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사명을 가진 사람들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통해 약간의 은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헌금하지 않았나?’ 이것이 바로 행위 중심입니다.
헌금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형제자매들의 헌금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은 형제자매들에게 헌금이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도 십일조를 드리는 문제를 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도 어렵겠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후, 하나님을 선택하겠습니까, 돈을 선택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만나게 하셨고, 하나님을 구하지 않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시작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 후, 다음에 무엇을 하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만일 돈이 보배라고 생각한다면 돈을 선택하고 작은 일상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배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밭과 집과 아내와 자녀와 이 모든 것, 곧 작은 일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듣고 싶으면 들으십시오. 듣지 않겠다면 저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상에만 만족하며 사는 것은 귀신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교회를 세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날부터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고, 교회가 극도로 황폐했을 때에도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돈이 없어도 하나님만 계시면 됩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 싶다면 계속 사람의 기쁨을 구하십시오. 작은 일상에 만족하며 살고 싶다면 서둘러 그렇게 사십시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서 돈을 붙잡으십시오. 제가 섬기면서 경험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제 안경을 몇 개나 떨어뜨렸는지 모를 정도로 저를 놀라게 했고,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한 사업가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 교회 형제 한 사람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이 사업가는 한 번의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졌고, 그의 아들도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이런 상황을 보고 갑자기 마비되어 몇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돈을 들여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이 사업가는 친구를 통해 저를 찾아왔고, 저는 그와 함께 그의 아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다음 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저에게 500위안을 던져 주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정말 그 돈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지금 어떻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선택할 때 돈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그의 아내는 지금 40대입니다. 앞으로 나이가 계속 들수록 하나님이 필요한 날이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제가 여러분과 《성경》을 나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일은 참 이상합니다. 이 사업가는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도 갚지 않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그 형제가 돈을 받으러 가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깨닫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보배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여러분이 평생 아름답게 살고, 평생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평생 멋지고 풍성하게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봅니다. 정말 매우 멋진 길이었습니다.
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저를 따라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는 매우 열심이었고, 나중에는 교회에서 지도자 역할도 맡았습니다. 당시 이 부부는 연애 중이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돈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그렇게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니?”라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닭다리를 뜯어 먹는 것이 옥수수빵을 먹는 것보다 낫잖아요.” 돈이 있으면 닭다리를 먹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옥수수빵을 먹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은 거꾸로 되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옥수수빵을 먹고, 돈 없는 사람이 닭다리를 뜯어 먹습니다.
후에 그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었지만, 저는 제가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닭다리를 먹는 것이 옥수수빵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아이는 남자 쪽 부모에게 15만 위안의 예물을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부부가 한 달에 적게 벌어도 합쳐서 8천에서 9천 싱가포르 달러는 벌잖아. 그러면 한 달에 중국 돈으로 5만 위안이 넘고, 1년이면 60만 위안이 넘는데, 15만 위안의 예물이 왜 필요하니? 그렇게 하지 마.” 저는 이렇게 해서 그녀의 생각을 막았습니다.
당시 남자 쪽 어머니는 암 환자였습니다. 이 부부는 저와 함께 섬기면서 많은 귀신을 쫓아냈고, 많은 영적인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들은 교회를 떠나 비교적 “균형 잡힌”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 남자의 부모도 돈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이 교회에서 그렇게 열심히 섬기다가 일을 지체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남자의 어머니의 암은 제가 섬기며 기도하여 나은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사람이 평생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며 살고 싶다면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평생 걸어온 길은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길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문제가 생깁니다. 사명이 없다면 비극입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지 않음에 이르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경험한 후에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지 않음에 이르거나, 하나님을 믿는 데서 시작하여 돈을 믿는 데 이르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여러분을 묶어 두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누구도 묶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심을 다해 여러분에게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사명이 없다면 그가 살아 내는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 되고, 비극은 사명이 없는 사람들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보배이십니다. 저는 평생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지만, 하나님만은 굳게 붙잡겠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섬기면서 저는 많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정말 많은 사람의 큰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돌아서서 저를 마치 짐을 내던지듯 내팽개쳤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런 일을 왜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괜찮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저의 사명입니다. 저는 그렇게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애쓰고도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굳게 붙잡기만 하면 무엇이든 견딜 수 있습니다.”
한 자매가 매우 흥미로운 행동을 했습니다. 저를 따라 집을 사서 돈을 벌었고, 저에게 함께 인테리어를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테리어에 돈이 조금 더 들어가자 마음이 매우 불편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다른 곳에 가서 섬기려고 합니다”라는 핑계를 대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집을 살 당시 그녀는 그 집이 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정말 저를 위한 것이라면, 나중에 그 방에 왜 2인용 큰 침대를 꼭 놓으려고 했을까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누구도 묶어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자매의 진짜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를 속이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돈을 탐하지도 않고, 남의 집을 탐하지도 않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가진 대로 하고, 없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평생 복음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설령 이런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을 섬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에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참된 지식으로, 더 이상 자기 의를 세우지 마십시오
마음속에 믿는 것이 입으로 말하는 것이 됩니다. 마음속 핵심 이익이 돈이라면 입으로도 그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로마서》 10:1-2)
저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참된 지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된 지식을 따르지 않았고, 늘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거역하고 말대꾸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어. 보세요, 나도 헌금했고 정해진 시간에 예배에도 참석했어요.” 늘 이런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온종일 부르시는 거역하고 말대꾸하는 백성입니다.
사람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분명 하나님을 경험했는데도 자신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실을 아주 빨리 잊어버리고, 곧바로 행위로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보세요, 제가 하나님을 위해 이것을 했습니다.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매번 아주 시간을 잘 지켰습니다.” 그것이 당연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이런 것들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제가 이것들을 했으니 제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이런 은혜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매우 괴로워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요구하는 대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저는 결코 말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방식이 너무 듣기 싫다고 할 것입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지만 참된 지식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로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은 그리스도이시니, 이는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10:4)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이미 구원받았어요.”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되묻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까?” 입으로만 말하는 것으로는 정말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나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에 따라 우리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는 어떻게든 이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모든 사람이 다 치유받은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치유받지 않았습니까? (참조 《사도행전》 5:16) 그런데도 그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은 모두 그분의 제자들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2천여 년이 지난 후에 여러분이 저에게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제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현장에 있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것을 감히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한 자매의 어머니는 다리가 자주 시큰거리고 아팠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다리를 위해 기도해 보세요”라고 하자, 그녀는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안 됩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엄마 다리 안에 쇠붙이가 하나 들어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리 안에 쇠붙이가 하나 들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데, 살아 있는 사람을 고치지 못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만일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습니까? 믿는다면 어려운 일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의 능력과 비슷한 정도라면 하나님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발전한 수준이라 해도 하나님의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그렇게 높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얼마 전 한 목회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내의 귀가 3개월째 아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30년 동안 목회했는데도 자신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다른 어린 양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일이 아닙니까? 어떤 특별 집회에서는 손을 얹기만 하면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집니다. 그러나 일어나면 여전히 예전과 같습니다. 전에는 허리가 아팠던 사람이 일어나도 여전히 허리가 아픕니다. 이런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것을 모릅니까?
그 후 저는 전화로 그의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15분 만에 귀의 통증이 모두 나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그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못 하네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믿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씩 실제로 이루어 내 왔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말씀도 많지만, 저는 그것을 이루어 가는 길에서 힘써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로마서》 10:14-19)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핵심은 사람이 믿음을 선택하느냐, 믿지 않음을 선택하느냐에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으면 잘못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참된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이라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5-9)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전할 때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며,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길을 가다가 완고하고 거역하는 백성이 되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이생의 염려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 하나님이 사람의 평생 가장 필요한 보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돈이 있을 때 귀신에게 그렇게 비참하게 지배받았는데, 나은 후에는 귀신에게 지배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까? 그렇게 많은 교회를 찾아다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제 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 사명의 길을 걸으십시오
오늘날 기독교회의 간판을 달고 있다고 해서 모두 교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죽은 후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비할 데 없이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이방인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또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을 내가 만나게 하며 나를 구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하였느니라.(《로마서》 10:20)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아직도 도덕의 길을 걸어야 합니까? 여전히 행위 중심의 길을 걸어야 합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왜 거역하고 말대꾸하는 백성이 되려고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앞에서 저는 많은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 개념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사명이 있는 이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행위 중심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충분히 좋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끝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모습과는 아직 아주 먼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의입니다.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도 예수님의 모습과는 아직 아주 멉니다.
가족의 축복이 되기 위해 힘써 추구하십시오
최근에 우리는 《힘써 추구함》이라는 책 한 권과 찬양 한 곡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평생 힘써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단지 은혜를 받는 차원에만 머문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복을 받고 싶다면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축복을 전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의 가족입니다. 자신의 가족 가운데 하나님을 전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집안에서 처음으로 주님을 믿은 사람이라면, 가문이 복을 받도록 하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형제자매들은 정말 심각합니다. 가족이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할머니가 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어요.” 무엇을 믿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단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습니까? 그들을 사명이 있는 복음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순수한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을 나타내며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이 순수한 복음을 믿기만 하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이해한다면,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관심과 같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