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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상)

2020-01-25 22,600 讲道 信心 死亡 福音 荣耀 大能 管教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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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새해의 가장 좋은 선물 하나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다》입니다. 지금은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입니다. 춘절 기간 동안 우한 폐렴이 이미 온 세상을 뒤덮었고, 작은 코로나바이러스 하나가 사람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정말 연약합니다! 예로부터 인류는 전염병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렇다면 전염병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전염병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점점 성경에서 묘사한 마지막 시대의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정말 심각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우리가 매주 공부하는 《다니엘서》에는 마지막 시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여기에 《요한계시록》의 내용까지 더하면 정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극히 교만하여 제멋대로 행하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전염병(또는 죽음)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요한계시록》 6:7-8)

전염병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네 생물이 “오라”라고 말했기 때문에 청황색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 말 위에 탄 자는 음부이며, 그 이름은 사망입니다. 그는 땅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죽이는데, 검과 흉년과 전염병과 땅의 짐승을 사용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는 네 마리의 말이 나옵니다. 첫 번째 말은 이기고 또 이기는 흰 말입니다. 두 번째 말은 붉은 말인데, 그 위에 탄 자에게 권세가 주어져 땅에서 평화를 빼앗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며 큰 칼도 받았습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네 생물이 “오라”라고 말하자 검은 말이 나왔고, 그 위에 탄 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이 네 마리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네 마리의 말은 영계의 영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늙은 말’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영계의 이 말과 상대해 왔기 때문에 그를 잘 알고, 그도 저를 잘 압니다. 《요한계시록》 6장 1절부터 8절까지는 바로 이 늙은 말을 말합니다. 첫 번째 말은 ‘말 큰형님’, 두 번째 말은 ‘말 둘째’, 세 번째 말은 ‘말 셋째’, 네 번째 말은 ‘말 넷째’입니다. 사실 말 넷째가 가장 작습니다. 오늘 제가 조금 자랑을 해 보자면, 이 늙은 말은 제 손에 패한 자입니다. 이 늙은 말이 사람을 공격할 때 사람은 빼앗기고, 아무 이유도 없이 죽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겉으로는 전혀 죽을 것처럼 보이지 않다가 다음 날 숨이 끊어져 죽기도 합니다.

죽음에 관해 확인해 보면,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 장기부전을 일으킬 정도는 아닙니다. 사람이 장기부전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늙은 말이 사람의 영을 붙잡아 가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이 늙은 말은 거의 패배한 적이 없는데, 왜 우리 손에 패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앞부분은 모두 승리하는 교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교회를 세워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매우 조심스럽게 건축하며, 사람이 말한 것들은 모두 단계적으로 배제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하는 에너지를 생각해 봅시다. 고압 전기를 다루는 사람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순식간에 감전되어 쓰러질 수 있습니다. 원자력이나 핵발전을 다루는 사람도 조심하지 않으면 방사성 물질 때문에 죽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도 소프트웨어를 함부로 작성하면 안 됩니다. 대충 하지 않고 매우 세심하게 작성해도 몇 가지 오류는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보잉 737 MAX는 지금까지도 운항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잉사는 이 보잉 737 MAX의 소프트웨어에 생긴 아주 작은 문제 하나 때문에 많은 주문이 취소되었습니다. 이 일이 에너지와 연결되는 순간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가 추락하고 사람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사람을 죽음에서 살릴 수 있으므로, 사람은 특별히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만드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로켓을 발사할 때 그 안에 사람이 없다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발사하는 것 위에 사람이 타 있다면, 예를 들어 비행기처럼 그 안에 사람이 있다면 로켓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비행기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동창이 한 명 있습니다. 그는 시험 비행 중인 비행기를 직접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비행은 처음부터 착륙 직전까지 모두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착륙하는 순간 비행기가 뒤집혀 버렸습니다. 위가 아래가 되고 아래가 위가 되어 바닥을 갈며 불꽃이 튀었고, 시험 비행사는 그대로 갈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알고 보니 프로그래머가 착륙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0과 1을 반대로 입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영계의 늙은 말을 이길 수 있었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중국인 사명 신학의 창시자로서, 지난 여러 해 동안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며 끊임없이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중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데, 그것은 정말 하나님을 위한 고난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 사도 바울이 받은 고난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겪는 고난을 혼동하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여러분을 징계하여 깨닫게 하기를 원하시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욥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철저히 징계를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직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야 제가 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기본 개념을 체계적으로 논술해 왔습니다. 오늘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다》를 말씀드릴까요?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기본 개념들을 반드시 매우 체계적으로 논술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정리해 왔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 친구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가 몇 년 전에 알게 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에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 쓰레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은 책을 썼는데, 제가 쓴 책들이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제가 말을 마치자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저를 모르시는 겁니까?”라고 하자, 그는 종교개혁을 한 사람은 마르틴 루터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종교개혁이 마르틴 루터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와 같은 많은 사람도 종교개혁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고 계시기 때문이며,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왜 우리가 올바르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했고, 많은 현상을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렸지만 우리에게 기도를 요청한 후 모두 나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처럼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에 큰 능력이 있는 복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필요합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연말연시에 우리는 카드를 뽑는 소프트웨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저는 동역자들에게 카드를 뽑아 주었는데, 그중 한 명은 우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뽑아 준 카드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자매가 자신의 동역자에게도 카드를 뽑아 주었는데, 역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카드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 관한 말씀이 《시편》 91편에 나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정말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치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시편》 91:1-7)

이 말씀은 정말 좋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기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어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엄격하게 하나님의 능력 있는 교회를 세울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영적인 어둠의 권세를 공격하고 전염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까?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다 이루어졌느니라. 그러나 내가 돌보는 자는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니라.” 소를 잡아 제사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소제로 드리는 것은 돼지의 피를 드림과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도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마음에 가증한 것을 기뻐하였은즉 나도 유혹을 택하여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히려 나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형제 곧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희의 기쁨을 보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이사야》 66:1-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주님의 종들을 일으켜 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주옵소서. 주님, 이 시대에 밝은 빛처럼 나타나셔서 주님의 도와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때 주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신지 알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형제자매가 두려워하고 떠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엄격하고 진지하게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교회를 통해 땅의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를 통해 주님의 진리를 나타내시고 우리 모두가 세움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탄식하신다.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냐?”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까?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사야》 66장의 마지막 부분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고, 가증한 자들을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곳의 벌레는 죽지 않고 불은 꺼지지 않으며, 모든 혈육 있는 자가 그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이사야》 66장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안식할 곳이 어디냐?”라고 탄식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안식할 곳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할 곳을 찾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마치 하나님께 안식할 곳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안식할 곳은 바로 우리가 세우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리가 영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안식이며 우리의 안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 안식입니다.

오늘날 신약과 구약의 성경 전체를 한 가지로 요약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이며 가장 깊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뜻은 교회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 깊은 갈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장막과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을 통해서든 모두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영원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하나 됨이 하나님의 안식이며 우리도 안식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안식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에게 짓밟히는 것을 보시며 마음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며 우리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시편 91편의 말씀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을 뜨고 교회들의 상황을 바라봅시다. 우리 자신의 과거 상황도 돌아봅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 안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과 인간적인 것들을 모두 교회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원하시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그곳의 백성과 하나가 되실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교회를 보고도 왜 그런지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을까요? 때로는 온갖 이상한 논리를 찾아내어 자신의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증명하려 하지만,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흰 종이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여러분도 읽고 저도 읽습니다. 어떻게 읽어도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이미 말씀해 주셨지만, 우리는 듣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전염병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없습니다. 입으로만 말할 뿐입니다. 중국 동북 지방에 “2전짜리 주전자처럼 모든 것이 망가졌는데 주둥이 하나만 멀쩡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는 예배도 있고 제사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모두 자기 뜻대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고, 소제로 드리는 것은 돼지의 피를 드림과 다름이 없으며,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도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마음에 가증한 것을 기뻐하였은즉 나도 유혹을 택하여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히려 나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이사야》 66:3-4)

제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지 않거나 조금만 하고,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은 잔뜩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성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자기 뜻에 따라 교회를 세우기 때문에 교회에는 하나님의 임재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도 없습니다.

제가 초기에 교회를 세울 때 교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들으러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하려면 통닭과 오리구이와 장조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돈도 내고 힘도 썼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많아졌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뿐 아니라 제 사업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욥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 햄 소시지로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치는 말씀이 있습니까? 통닭과 오리구이로도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수치를 당하고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는 망신당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다가 수치를 당한 분들에게 권면합니다. 제 설교를 들을 수 있다면 제 충고를 한마디 들으십시오. 수치를 당하면서도 자기 의를 내세우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기 시작하십시오.

며칠 전 한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여러 번 왔습니다. 오늘 왔다가 한동안 지나면 떠나고, 또 한동안 지나면 다시 왔다가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왔을까요? 캐나다에 있는 그의 아이가 열이 나서 우리에게 사역을 요청한 것입니다. 저는 이상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도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을 배우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면 아이가 열이 났을 때 스스로 기도하면 끝날 일 아닙니까? 우리에게 와서 기도를 요청했으니 기도해 주기는 했습니다.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오늘부터 떨리는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합시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돌보는 자는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떠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목회자로 얼마나 오래 사역했는지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입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목회자인데, 교회에서 자신의 이론을 많이 말합니다. 모두가 같은 성경을 읽는데도 그는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없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암이 거의 전신으로 퍼졌고,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렇게 고집하고 있습니다. 저도 정말 탄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탄식하실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항암치료를 해야 합니까? 해야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 제가 사람으로서 들어도 탄식하게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또 한 목회자는 아주 흥미로운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 큰 현수막을 걸어 놓고 “방언기도 금지”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방언기도를 금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나중에 그는 횡령죄로 정부에 체포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감옥에 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맞서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과 맞서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엄격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성경을 엄격하게 읽었다면 어떻게 몰랐겠습니까? 전자 성경에서 “방언기도”라는 몇 글자만 입력해 읽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방언기도가 가져오는 혼란은 상당히 많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엄격하게 읽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엄격하게 읽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도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전염병이 닥치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사람이 주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한 형제에게 위 안에 딱딱한 덩어리가 있는 자매를 섬기게 했습니다. 저는 곁에서 듣고 있었는데,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온갖 이론을 늘어놓는데 거의 국어 선생님 같았습니다. 말은 아주 잘 다듬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모두 지식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이어받아 그 자매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위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는 문제가 아니었고, 마음속의 딱딱한 덩어리가 문제였습니다. 제가 물어보니, 밖에서 큰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모두 사 버렸고, 남편은 도박으로 빚을 졌으며, 평생 마음이 편하지 않게 살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자매의 마음속에 맺힌 것을 풀어 주자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고, 위의 덩어리도 부드러워졌습니다. 그 후 기도하니 곧 나았습니다.

최근에 저를 매우 힘들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가 몇 년 전에 우울증에 걸렸는데, 저에게 긴 이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와 함께 기도하자 나았습니다. 그런데 나은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태도가 없었고 매우 독선적이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무엇인가를 들었는지 다시 부정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주님을 믿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영적인 아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믿는다고 말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해 보면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고, 안에 어느 정도 떠는 태도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믿지 않음은 인류 문제의 근원》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반드시 잘 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한 목회자의 아내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 교회의 한 자매가 데려왔는데, 온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제가 섬긴 후 병이 나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그녀의 남편은 목회자이니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매에게 우리가 이단인 것처럼, 자신이 정통인 것처럼 부정적인 말을 잔뜩 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체면 때문입니다. 만일 나라면 “아, 이것은 보물이구나. 내가 잘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신학 체계는 상당히 악합니다. 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는데 제가 그를 낫게 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설을 맞아 고향에 갔을 때 그 사람의 외할아버지가 걷지 못하고 다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저에게 전화하여 외할아버지와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의 집에는 현지 교회의 전도자 몇 명도 와 있었습니다. 제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기도한 후 그분은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두 시간 후 상황을 물어보려고 전화하려 했는데, 그들이 저를 차단해 버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신학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닮지 않은 사람을 도리어 정통이라고 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어떤 교파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방언기도에 대해서는 부인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2천 년 전의 성경과 2천 년 후의 성경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새로운 성경을 하나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정말 모순입니다. 사실 믿지 않는 문제는 예로부터 있었습니다. 사람 안에는 늘 자기만의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성전에 들어가셨지만, 성전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던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 안에 자기만의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시자 오히려 그분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맹인의 눈이 보이게 되자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맹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어떻게 죄인이 되겠습니까? 내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당신들은 모른단 말입니까?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내 눈을 뜨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말했습니다. “너는 죄인이다. 입 다물어라!” 정말 이상합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머리에 물이 들어간 것 아닙니까?

기독교 안에서 믿지 않는 가르침은 매우 널리 퍼져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제자들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야고보에게 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이며, 바리새인 기독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에게 속한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오자 베드로는 두려워하여 거짓된 행동을 했고, 바나바도 함께 외식했습니다. 야고보에게 속한 사람들이 왔을 때 베드로가 외식했다면, 야고보가 직접 왔다면 얼마나 더 심하게 행동했겠습니까?

그 후 교회는 점차 변질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인도 아래 능력을 잃어버렸고 규례가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높이고 할례를 지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능력도 없고 매우 가난해졌으며, 남은 것은 완곡한 말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논쟁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조차 그들과 논쟁하여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논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우리 가운데 한 형제를 섬기면서 저도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 형제도 자기만의 이론을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과 논쟁할 수 없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전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이론입니다. 사람의 이론으로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면 아무리 자기 논리로 설명하려 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미혹되도록 하셔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미혹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흔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행함이 있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믿음일 뿐이며 행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바리새파 기독교인이라서 “행함이 없으면 어떻게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저와 논쟁하려 한다면, 저는 항복하겠습니다. 여러분과는 논쟁할 수 없습니다. 행함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사람을 잘 섬길 수 있느냐,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얼마나 있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을 여러분은 잔뜩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역대 어느 선지자도 야곱이 사람을 속였다고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회자는 《창세기》 27장을 설교하면서 야곱이 사람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요셉에 대해서는 요셉이 교만하여 자신의 꿈을 나누었기 때문에 고생을 자초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다윗을 비판하고, 유다에 대해서는 유다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잘못된 비판과 판단이 적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비판하는 비평가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을 닮았느냐고 물으면 닮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 분뿐인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능력이 충만한 복음을 능력이 없는 복음으로 만들어 놓고도 그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미혹되도록 하셔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들에게 임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되며, 완전한 체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는 복음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것이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쓰레기를 제거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의 때입니다. 믿음의 변혁을 추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의 전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충만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교회에 충만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이 시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교회이며,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복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믿지 않는 태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태도로 바꾸기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은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입니다

능력이 없는 교회를 세웠다면 이때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만물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일을 영적인 말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영계에 대해 많이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 하나가 《영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우리 중국인 사명 신학 공동체에서 설계한 과정의 첫 번째 수업은 영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악한 영도 없고 귀신도 없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계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악한 영에 대해서도, 귀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면 귀신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귀신이 어디 있어요!” 예를 들어 치매를 앓고 있던 제 어머니 안에 있던 귀신도 오랫동안 제 매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신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그날 밤 귀신에게 사로잡혀 온몸이 매우 이상해졌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제 누나가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제 매형은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낮에는 나에게 귀신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더니, 왜 밤에는 이렇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거지?”

영계는 얼마나 실제적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만물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므로 모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영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악한 영을 창조하셨고 천사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는데 왜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을 한 무리 찾으시는 데 있습니다. 귀신을 두려워하느냐 두려워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인지가 문제입니다.

며칠 전 저는 겁이 많은 한 사람을 섬겼습니다. 그는 제야에 집에 혼자 있으면서 두 다리를 떨 정도로 무서워했습니다. 섬긴 후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염병 뒤에는 늙은 말이 있습니다. 늙은 말이 승리하는 핵심은 사람이 육신에 속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전염병도 하나님께서 풀어놓으신 것이고, 늙은 말도 하나님께서 풀어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우리가 오늘날 익숙하게 보아 온 현상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병원의 치료 효과는 미미하고, 많은 상황에서 의사들도 속수무책이며, 사망률은 점점 높아지고 사람들은 오히려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악한 영을 쫓아낸다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모두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모두 고침을 받았다》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제가 가장 만족하는 설교 중 하나입니다. 원래부터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을 미혹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이런 질병들이 모두 악한 영이 역사한 결과라고 믿습니까?

우리가 어떤 교파 사람들을 마주할 때 타협하고 외식하겠습니까? 한 교회가 서로 뚜렷하게 나뉜 두 파로 갈라진 적이 있습니다. 한쪽은 방언을 말하는 것을 찬성하고, 다른 한쪽은 방언을 말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런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처럼 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장막을 세웠고,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세운 후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장막과 성전에 충만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처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신약 성경의 주제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면 늙은 말을 이기고 전염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은 마지막 때 큰 환난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이 144,000명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우 적은 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우리가 마지막 날에 이 재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 권면합니다. 엄격한 사람이 되기 시작하십시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은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3-4)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세워지는 것을 봅시다. 지난주에 저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며, 우리를 위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힘쓰고,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쓰레기를 힘써 제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랍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기를 사모하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를 사모하기 시작합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장막을 세우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과 동역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 이 시대의 축복이 됩시다.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복음을 회복하고 복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합시다. 이것이 얼마나 고귀한 사명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고귀한 섬김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오늘 우리는 영광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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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静安稳
新的一年一定要竭力对付属肉体的恶习,因神的话语而战兢!!
恩典
老年痴呆症,小脑萎缩都是因为背后有邪灵做的吗?不是身体的疾病吗。把鬼赶出去身体就痊愈了吗
网站小助手
留言:老年痴呆症,小脑萎缩都是因为背后有邪灵做的吗?不是身体的疾病吗。把鬼赶出去身体就痊愈了吗 回复:老年痴呆,小脑萎缩,之类的词汇是人们解决不了这些问题,还要给患者一个解释,就弄出个名词来。其实,谁也证明不了那是什么理论。是的把鬼赶出去,真的会好很多。
@恩典: 老年痴呆症,小脑萎缩都是因为背后有邪灵做的吗?不是身体的疾病吗。把鬼赶出去身体就痊愈了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