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한 가지 관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번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가 그 사람은 평생 이렇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내 인생은 정말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점을 쳐서 알아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직접 살아 내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기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관념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선택해야 하고, 미래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가 야곱과 같으면 야곱에게 일어난 일이 그에게 이루어지고, 누가 요셉과 같으면 요셉에게 일어난 일이 그에게 이루어집니다. 영으로부터 난 것은 영이고, 육으로부터 난 것은 육입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무엇을 하는가
사람은 죽기 전에 무엇을 합니까? 사람은 죽기 전에 자주 탄식합니다. “내 평생이여!” 어떤 사람은 평생 먹고 마시며 놀고, 어떤 사람은 평생 고생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평생의 끝에 이르러 아주 단순한 소망을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막힌 상태 속에서 살아가면서 부러워하는 것이 그의 가치 체계를 나타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머릿속에 온통 쓰레기 같은 생각만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늙어서도 돌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 안에 있는 이 모든 가치 체계가 바로 그 사람이 선택하는 기준입니다. 모세가 한 이 긴 말씀을 읽고 난 후에 여러분은 ‘나는 누구를 선택해서 닮을 것인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요셉을 선택하겠습니다. 요셉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레위는 선택해야 합니다. 레위에게 주신 축복, 요셉에게 주신 축복,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모두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과 요셉과 모세를 닮았다면, 늙은 후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눈이 흐려지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신명기》 34:7)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오늘부터 인생과 죽음에 대해 매우 지혜로운 관점을 갖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반응은 매우 정상적이었습니다. 모세의 소망은 애초에 이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모두 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세와 같지 않고, 요셉과 같지 않으며, 야곱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같기 때문에 그 결말이 매우 비참합니다. 인생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지, 아니면 마귀가 여러분과 함께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의 관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특히 노인에게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그 안에 있는 생각이 그런 악한 영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인들은 죽기 전에 자신이 죽은 사람을 보았다고 하거나, 어떤 이상한 것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늙어서 정신이 흐려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영적인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본 것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왜 그는 그런 것들을 보았을까요? 그런데 모세는 죽기 전에 왜 그런 것들을 보지 않았을까요? 사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고, 사명이 없는 사람은 귀신의 임재를 불러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33장과 34장을 기록하여 미래 세대에게 ‘네가 누구를 닮았는지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약속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라. (《신명기》 33:1)
모세는 성경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기적을 행하고, 매우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게 됩니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첫 부분을 택하였으니 곧 거기에 율법을 세운 자의 분깃이 준비되어 있음이라. 그가 백성의 수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납달리여 너는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자라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보다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을 기름에 담글지로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신명기》 33:21-25)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도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명기》 33:26-29)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축복하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관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나타나시며, 어디에서 광채를 발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여호와께서 세일에서 오셨다고 말합니다. 세일산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매우 황량한 큰 협곡처럼 민둥산입니다. 바란은 광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매우 황량하고 광야와 같으며 민둥한 곳에서 나타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막다른 길에 이르러 세상 일에 더 이상 소망을 두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 일에 소망을 가득 두고 있다면 바벨탑을 오르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시기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여호와의 산, 야곱의 하나님의 전을 오르고 있다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와 세상 일에 대한 소망을 잃어야 합니다. 우리가 찾는 소망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가 되시면, 그분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앞에서 우리의 원수들을 영원히 몰아내십니다. 어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일이라면, 세상의 일은 세일산처럼, 바란 광야처럼, 벌거벗은 시내산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율법을 선포하신 것이 선별하고 연단하여 성도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단순히 신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그분께 속한 성도들을 가려내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가려내십니까? 광야와 황량한 세일산과 민둥한 시내산을 사용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애굽으로 데려가 400년 동안 종살이하게 하셨지만, 400년이 지나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소망과 세상에 속한 가치 체계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닮고자 한다면, 성도로 선별되는 법을 배우고 수많은 시험 가운데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처럼 사람과 하나님을 상대로 씨름하여 모두 이길 수 있다면, 성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 세상의 가치 체계가 특별히 강하고 견고하다면,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읽어도 반드시 엉망으로 읽게 되고,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매우 깊은 비밀이 담겨 있고, 강력한 가치관이 들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 안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읽고 그냥 지나갑니다.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많은 것을 꿰뚫어 볼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보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 되어 있는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가 야곱의 모습을 지니고 하나 되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왕이 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처가 되십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하나님 때문에 우리 발아래 굴복할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그들의 높은 곳을 밟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돈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반드시 돈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과 거처와 전쟁의 힘이 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며,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하늘의 이슬과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하시며,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모세는 선포했습니다. 여러분이 받으려면 반드시 야곱의 성품을 지녀야 합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열두 지파를 축복하여 선포하다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에 대해 철판에 못을 박듯 확정적으로 판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열두 지파에 대한 관점입니다. 여러분이 르우벤과 같다면 대략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고, 여러분이 유다와 같다면 대략 유다와 같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레위와 같다면 레위에 대해 말한 이 부분과 같을 것이고, 여러분이 베냐민과 같다면 베냐민에 대해 말한 이 부분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레위인
그러므로 야곱은 죽기 전에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판결을 내렸지만, 레위 지파는 그러한 판결에 대해 깊이 회개했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시므온의 악습을 계속 이어 갔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시므온과 같다면 모세는 여러분을 상대하기도 싫어하고, 어떤 판결도 내려 주기 싫어할 것입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사실 둘째였고, 르우벤은 그들이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단호하게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원래는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시므온은 본성이 매우 잔인한 사람이었고, 사명도 별로 없었으며, 안에 경쟁과 질투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왔을 때 요셉은 형 시므온을 애굽에 남겨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거의 일 년 동안 감옥에 있게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회개할 기회를 갖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시므온을 바라보는 관점도, 모세가 시므온을 바라보는 관점도 좋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시므온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적인 가치 체계를 지닌 채 그곳에서 경쟁하고 악한 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시므온을 건너뛰었습니다. 첫 번째는 르우벤이고, 두 번째는 유다이며, 세 번째가 되어야 레위였습니다. 시므온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므온처럼 경쟁하고 질투하며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없애 버리기를 좋아하며, 늘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는 본래부터 저주 가운데 축복이 없는 상태를 이어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시므온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다. 자, 시므온은 건너뛰었지만 나머지 열한 지파에 대해서는 선포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온 이스라엘에 대한 전체적인 선포이기도 합니다.
레위 지파에 대한 선포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여 주의 우림과 둠밈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나이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신명기》 33:8)
우림과 둠밈이 경건한 자에게 있다는 것은, 레위가 회개한 후 경건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레위인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지파가 되었고,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맛사에서 레위인을 시험하셨고, 레위인은 그 시험을 이겼습니다. 레위인은 세속적인 관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기 형제를 인정하지 않았고 자기 자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이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언약을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형제자매입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우림과 둠밈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나이다.” 다시 말해 우림과 둠밈은 점을 치는 물건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정을 도우시도록 하는 도구였습니다. 마치 나무 두 조각을 합쳐 놓은 것과 같았고, 땅에 던져 앞면인지 뒷면인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우림과 둠밈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나이다.” 즉 레위인들이 죄에서 회개한 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레위에 대해 내린 판결을 읽어 보면 사실 매우 혹독합니다. 야곱과 시므온은 비교적 잔인했습니다. 소의 힘줄을 끊어 버리는 등 잔인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레위 지파에 대해 판결할 때에는 레위가 경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레위와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가운데 흩어질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들은 미래를 미리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레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지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맛사라는 곳에서 레위인을 시험하셨다는 뜻입니다. 온 이스라엘 지파가 그곳에서 소란을 피우고 떠들썩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믿는 기이한 지파였습니다. 사실 모세 자신도 레위인이었고, 모세와 미리암과 아론도 모두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물을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신명기》 33:9-10)
레위인은 또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레위인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그의 재산에 복을 주시며 그의 손으로 하는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그를 미워하는 자를 꿰뚫으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신명기》 33:11)
이 말씀을 읽으면 ‘레위인은 왜 이런 사람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레위인은 세속적인 관념에 따라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레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의 언약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원칙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그는 자기 부모를 보지 못하고, 형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 자녀도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이 무엇이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다른 표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부모이며 누가 내 형제자매이며 누가 내 자녀인가?” 무슨 뜻입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레위인의 관점입니다.
《출애굽기》 32장 25-26절에서 모세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그러자 레위인들이 모두 왔습니다. 레위인들이 온 후 모세는 그들에게 허리에 칼을 차게 하고 진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게 했습니다. 삼천 명이나 죽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출애굽기》에서는 그들이 자기 형제들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여기서 레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시험을 받으며, 주님을 가장 크게 여기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혈육의 정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의 무리임을 보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육친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사람일 수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정말 이런 사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잘못 이해하지 마십시오. 모세는 잘못 알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히 알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고 싶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면 왜 그렇습니까? 자기 집안 식구가 여러분을 묶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어떤 자매의 부모가 “너는 결혼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 자매는 괴로워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결혼할 사람을 찾아봐”라고 말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부모가 압박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있는 많은 묶임과 억압은 흔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묶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하나님의 법도를 야곱에게 가르치고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며, 동시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향을 피우고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의 제단에 드립니다. 여전히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정말 레위인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레위인이 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여러분이 재정과 손으로 하는 일에서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원한다면 레위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원수의 원수가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꿰뚫으셔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레위인이라면 원수가 여러분 앞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모세가 레위인에 대해 한 말은 매우 훌륭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레위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레위인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유대인인 것은 아니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리스도인인 것도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고 거짓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참된 유대인이 있고 거짓된 유대인이 있습니다. 참된 레위인이 있고 거짓된 레위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오늘부터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레위인은 실제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앞부분에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레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이로다.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야곱에게 가르치고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것이다.” 이해했습니까? 이것이 레위인입니다. 오늘 우리가 레위인이 되려면 반드시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논리적으로 들으면 매우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가정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가정은 잘 돌보았지만 하나님도 잘 섬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제 재정에 복을 주셨고, 제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아 순조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손으로 하는 일을 기뻐 받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일어나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과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실 저는 자신을 위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레위인의 모습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요셉에 대한 선포
땅과 거기에 가득한 보물과 가시덤불 가운데 계신 이의 은혜를 얻을지어다. 이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구별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신명기》 33:16)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구별된 자의 정수리에”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그 축복들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땅과 그 안에 가득한 보물을 얻고, 가시덤불 가운데 계신 주님의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구별된 자의 정수리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면 돼. 이렇게 되거나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반드시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보통 사람과 달랐고, 아브라함도 그 시대의 보통 사람과 달랐으며, 이삭도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요셉도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요셉은 보통 사람과 정말 달랐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요셉이 된다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묵상하기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아이였습니다. 그의 관점과 생각,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가 소 떼의 처음 난 것에게 위엄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요셉은 자기 아버지처럼 장자가 되기를 갈망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결국 요셉이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그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집안에서 큰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을 이어받고,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어받기를 추구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다수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만 그렇게 합니다.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의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과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로 말미암으며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이며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이며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가시덤불 가운데 계신 이의 은혜로 말미암을지로다 이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구별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신명기》 33:13-16)
요셉을 닮으면 요셉의 축복을 받는다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 야곱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요셉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바울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나면 야곱과 같은 사람을 선택할 자격이 있고, 요셉과 같은 사람을 선택할 자격이 있으며, 바울과 같은 사람과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선택할 자격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정말 믿는다면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후에 요셉은 실제로 장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의 족보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장자가 된 현실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의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땅, 여러분이 서 있는 그 땅이 모두 여호와께 복을 받습니다. 하늘의 보물과 이슬을 얻습니다. 보십시오. 이 말씀은 모두 요셉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땅의 기름진 흙이 여러분을 위해 내고, 하늘의 이슬이 여러분에게 주어집니다. 또한 땅 아래에 감추어진 샘물을 얻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태양이 익게 한 아름다운 열매를 얻고, 달이 자라게 한 보물을 얻으며, 옛 산의 지극히 귀한 것과 영원한 산의 보물을 얻습니다. 땅과 그 안에 가득한 보물을 얻고, 가시덤불 가운데 계신 주님의 은혜를 얻습니다. 이 모든 복이 요셉의 머리에 임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한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원저우 사람들의 교회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원저우 사람들의 교회에서는 “태양이 익게 한 아름다운 열매와 달이 자라게 한 보물을 얻기 원하네”라는 찬양을 즐겨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 찬양의 제목은 ‘부흥의 불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것이 ‘내가 이런 것들을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요셉이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어떤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해했습니까?
《신명기》를 기록한 모세는 《창세기》도 기록했습니다. 그는 요셉을 기록하면서 그 이야기를 매우精彩하게 묘사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애굽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마음속의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소망은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것을 이루셔서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10년 동안 노예로 살았습니다. 자기 몸조차 자기 것이 아니었는데,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안에 있는 믿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형들에게 애굽에 팔려 간 사람이 놀랍게도 형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남다른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애굽에 팔려 갔을 때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17세라면 얼마나 어린 나이입니까? 부잣집 도련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팔려 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17세에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대장금》을 보면 궁궐 안에서 궁녀들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가 나오는데, 그것은 매우 잔혹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나중에는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사람은 고난의 자리에서 자기 아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큰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의미 있게도 둘째 아이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받는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라고 지었습니다. 그들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지 9년이 지나서야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9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실 그 전 13년 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고, 이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랐습니다. 후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지도 않았고 아버지를 애굽으로 데려와 자신의 영화를 누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에서 한 사람 아래에 있고 만 사람 위에 있는 총리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이 혈육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을까요? 왜 아버지를 애굽으로 데려와 여행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에게 기회가 있어 요셉을 만나고, 하늘에서 요셉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정말 물어봐야 합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제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을 만나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야말로 눈물을 쏟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겠습니까.
이 사람은 매우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기쁨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부모님을 만나 뵙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요셉이라는 사람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에 자기만의 논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논리 체계는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요셉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요셉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레위인의 육친을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더 철저하고 더 강합니다. 그 결과 그는 소 떼의 처음 난 것에게 위엄이 있었고, 그의 뿔은 들소의 뿔과 같아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땅 끝까지 받아 버렸습니다. 이 뿔은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입니다. 에브라임은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고난받는 곳에서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내가 겪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요셉이 되기를 갈망하고,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모든 가치 체계를 극복하기를 갈망하며, 우리 안에 있는 육체에 속한 모든 감정과 육체의 정욕을 이기기를 갈망하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이 되는 것이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간단하면서도 어렵습니다. 무엇이 어렵습니까?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세속적인 관념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간단합니까?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진 흙과 땅 아래에 감추어진 샘물과 태양이 익게 한 아름다운 열매와 달이 자라게 한 보물을 얻고 싶다면 요셉이 되십시오!
요셉을 본받아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다
그 부분에는 ‘영원한 산의 보물’과 ‘옛 산의 지극히 귀한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요셉 안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의 안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관념이 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념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념은 우리가 땅의 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면 살아 있는 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고, 많은 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잊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노예로 사는 일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비록 매우 고되지만 여전히 기쁘게 노예로 살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안의 감정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고, 장차 하늘에 영원히 있는 집을 찾아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때 반드시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들소의 뿔로 민족들을 땅 끝까지 받아 버리는 것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뿔은 권능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가치 체계이다
여러분의 선택의 근거는 여러분 안에 있는 가치 체계입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얻게 되는 것이 부패한 것이라면, 그것은 여러분 안에서 선택한 가치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성경을 읽을 때 어디에 이르러야 합니까? 우리 안의 가치 체계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하나님께 속한 가치 체계를 세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이 죽기 전에 선포한 말씀은 모두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셉과 같기를 선택하면 요셉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레위와 같기를 선택하면 레위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여러분이 시므온과 같기를 선택한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주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생명과 죽음, 복과 화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중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관념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모세가 한 지파에 대해 판결하면 그 지파는 영원히 그렇게 된다는 관념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점을 보고 ‘내 인생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운명은 점을 쳐서 정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살아 내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에 대해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내용이었고, 어떤 것은 좋지 않았으며, 어떤 것은 길었고, 어떤 것은 길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미리 알려 주신다면, 우리가 그 일을 뒤집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는 한 가지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동기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기는 여러분의 인생을 철판에 못을 박듯 확정하여 평생 그렇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가 이러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시면서, 여러분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요셉과 레위와 야곱을 닮기를 선택할 수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여 닮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나 하셨다고 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그대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예언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2천여 년의 역사 동안 하나님을 버리고 열방 가운데 이리저리 흩어져 저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축복도 어떤 것은 이루어졌고 어떤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판결은 미래에 대한 철판에 못을 박은 듯한 판결이 아니라, 한 지파 전체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야곱과 요셉을 닮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주신 약속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영으로부터 난 것은 영이고, 육으로부터 난 것은 육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이스마엘에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에서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그의 열두 지파에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요셉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으로부터 난 것이 철판에 못을 박듯 정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과 갈망이 그것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