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别人夸奖我,我很高兴,其实内心的想法是想说谢谢,但是说出来的却是那些虚头巴脑的话,让别人很尴尬,我也感觉不对劲。我想照顾别人的感受,但说着说着就变成了批评,甚至开始挑毛病,使对方很生气,自己也感觉不对劲儿,不舒服,为什么我说出来的和真实想表达的不一样,该怎么改?
这个问题很好,在我们身边,把事情说不清楚的人可多了,我妈得了老年痴呆,为了让她的头脑更灵活,我就在白板上写:飞机每小时八百公里,汽车每小时八十公里。接着我就问她:飞机每小时多少公里?她不加思索地说:四十。这白板上写的很清楚,你就照着念不行吗?我又问:汽车每小时多少公里?她说:两百。我又问:到底是多少公里?她就语无伦次,一会儿说四十,一会儿又说六十。
老年痴呆就是个鬼,等我把她身上的鬼赶走以后,她很快就恢复了正常,头脑也很清楚了,我问她:为什么要胡说呢?她说:我心里明白是八百,可是嘴巴说出来的却是四十。我就恍然大悟,以后就不再责怪她了,原来她的嘴巴是被鬼控制住了,也就是说人说话被鬼控制是一件非常要命的事儿。
那到底要怎么解决这个问题呢?第一,是赶鬼;第二,赶完了鬼以后,她心里头还得明白。等她心里明白了以后,我又问:飞机一小时飞多少公里?她就脱口而出:八百。这不是很正常吗?但当她心里不明白的时候,一问:飞机每小时多少公里?她说:四十。我一听就知道是鬼来了,因为这么简单的问题,我不相信我妈会说错。
那有的人不知道灵界的事,遇到这种情况,就以为这个人又糊涂了,其实她里面特别难受。所以,当你看到老人糊涂的时候,可千万别说“他又糊涂了”。听明白了吗?因为背后是鬼,这样的状况是比较普遍的。
还有一种就是悟性不通,悟性不通的人特别容易被鬼辖制。我给大家举个例子,我这个人喜欢做事有计划,当看到人家写的东西不太对,我就得纠正,就得教。但让人匪夷所思的是,有用的东西他不写,没用的东西反而写一大堆,我指出他的问题时,他不但不改正,反而还生我的气,你不觉得很奇怪吗?
其实原因很简单,就是因为人悟性不通,他不知道这计划应该写成啥样,即使写错了,还误以为他写的对。尤其是宗教情结比较重的人,很多东西都是说不明白、说的不清不楚的。像我这样的人,说什么都能说得清清楚楚。为啥?因为我知道我哪里不清楚,然后给他搞清楚。
所以说,头脑里的东西,你要给它梳理干净,一说出来都是清清楚楚的。想要说清楚就得练,让你在悟性上真清楚、明白是怎么回事。后来我总结出一个规律,就是:你好像清楚,好像不清楚,你说出来的肯定是不清楚。如果你说出来的是不清楚的,你脑袋肯定是不清楚的。你别跟我说:其实我明白,但是我一说就说错了。你要知道什么叫真明白,是不是?真明白它就不走板了。
凡说话不动脑,信口开河的人,说出来的话都不是他真正想要说的。那什么样的人容易被鬼辖制呢?就是那些悟性上好像清楚,好像不清楚的人。我再给你举个例子,有个人考大学没考好,第二年接着考,第二年又没考好,第三年接着考,反正年年都考不好,那种人我们管他叫“大学漏”。因为他就住在我们家边上,也认识,我问他:为什么会这样呢?他说:老师,我也觉得很奇怪,我啥都会,但一考就考砸了。那是咋回事呢?他以为他知道,其实是不知道,他以为他清楚,其实是不清楚。
请大家记住我说的话,如果你能够说清楚的就是真清楚。我教你们一个方法,假如你要去面试,首先要学会写稿子,因为面试那些问题都是标准问题,标准问题有标准答案,你只要把写稿子练好了,肯定没事,肯定过。
有一个姐妹,她在一家公司干了半年后,就得过试用期,结果她没过,没过就得再接着整试用期。那再接着整试用期的时候,我就让她录了一下她怎么答辩的录音,一听录音就发现她拉长音的问题特别明显,我就让她不断地调整音调,还让她写稿子,写完还是不对,再接着调整稿子,然后再练。她练完了就发给我,我就纠正她,就这样不断地调整、练习,结果答辩的时候就顺利通过了。为啥?讲得跟广播员似的,很清楚,这回明白了吗?
所以,养成写稿子的习惯很重要。我曾经把我讲的稿子打印出来,以前没有平板,我就用电脑打字,每篇稿子大约有五千到七千字,还有一万字的,现在我也是坚持写稿子。我打印出来的稿子多厚呢?大概高度有十个厘米,A4的纸。有喜欢来我办公室瞎说的人,我就把我写的稿子拿出来给他比划一下,所以说我说东西能够说清楚,因为我喜欢写字。听明白了吗?我写完了就接着念,反复对比,反复考察,人懒是不行的。
Q2:老师,"因此我们常为你们祷告,愿我们的神看你们配得所蒙的召,又用大能成就你们一切所羡慕的良善和一切因信心所做的功夫",所羡慕的良善说的是什么呢?
回答这种问题的时候,大家要找样板,那个样板是谁呢?那个样板就是耶稣,耶稣看见瘸腿的,就医好了他,这叫良善。耶稣不是把走路很正常的为了卖拐,为了卖轮椅给他整瘸了,给他忽悠瘸了,耶稣不干这事。把人忽悠瘸了,那不叫良善,那叫邪恶。使瘸腿的可以走路,瞎眼的可以看见,大麻风的得洁净,死人从死里复活,这叫耶稣基督所行的良善。听明白了吗?
有的教会很有意思,我说这话肯定很多人受伤,因为他们常常这么干。教会里有个人得了癌症,牧师会说:这是神的良善,这是神给你的恩典。你可以这么给他说:牧师啊,也愿你多得这种恩典。如果那么多人都希望他得这恩典,你说那牧师能不得吗?肯定也得着这个恩典。
这一切因信心所做的功夫是啥呢?很简单,一切因信心所做的功夫就是神迹。这神迹是啥神迹呢?瞎子看见,瘸腿走路,大麻风的得洁净,因为这是有《圣经》为据的。是不是?贫穷的人有福音传给你们,贫穷的要成为富足。这回你明白了吗?
Q3:老师,这些宗教的人,他们从头到尾都不知道自己有问题吗?这样糊里糊涂,做了蠢事岂不是很冤?怎么才能知道自己被宗教的灵骗了?
人被宗教的灵辖制,有一个非常明显的特点,是什么呢?就是喜欢玩表面功夫,心里头啥也不明白。就像有的姐妹,她身材也火辣,穿着高跟鞋,走起路来英姿飒爽,但是一脑子稀屎,也有没有装稀屎的。就是说,做表面功夫是很容易的,是吧?但是脑袋里清清楚楚的不多。为什么会这样呢?因为要想把事整清楚是很辛苦的,但是,做为一个牧师,不想下功夫学习,就想忽悠一下大家,每个月还照样拿薪水,这简直太好了!
所以说这些宗教的人,只做了一个外表,玩了一个操作,比如说,他每个主日都去教会,但他真的知道去教会干啥吗?不知道。你问他信主信啥?不知道。你问他为什么信耶稣?他的回答是:信耶稣得永生。你问他信耶稣信的啥?啥不知道,没几个能说得清楚的。你说这不是很悲哀的事吗?有一些人,自己不清楚还喜欢瞎说,你虽然不清楚,但别人把你推到那个份上,你不说不行,是不是?有个做牧师的,他教会的弟兄姐妹得了癌症,他到医院去看望,还不得说点安慰的话吗?这安慰的话他不是按照神的话说,而是按照他自己的意思乱说,有时候乱说行,有时候就不行。
就拿做销售人员来讲,你乱说,有时候顾客比你傻,所以你也能拿到单,如果顾客比你聪明,你就拿不到单。是不是?问题不就来了吗?所以,不清不楚的人也活着,你看在圣殿里侍奉神的那些人活得也挺好,是不是?啥问题也没有,不过就是招点报应而已。
所以说,悟性不通,好像知道好像不知道,就跟他考大学考好多年考不上似的。小学就没读好,中学也没读好,一直啥都模模糊糊,啥都晕晕乎乎,到死的时候只知道一件事儿,就是觉着自己拥有真理。什么时候人才能够变聪明啊?是不是?宗教就是玩的一个表面功夫,所以我们一定要在悟性上要弄清楚。
Q4:老师,我一直害怕坟地,我的固有想法就是人死了就住在那里,继续过日子,而且他们还能穿墙什么的。这个想法就是从小养成的,主要来源是看鬼片和农村传说。我知道这完全不合乎《圣经》的逻辑,来到教会以后,我害怕的程度从百分之九十降到了百分之五十,请你在悟性上教导我,好吗?
你要问我,从坟地走过去害怕不害怕?害怕。可是我第一次走过去了,啥事也没发生,其实啥事也不会发生。第二次又走过去了,啥事也没发生。我就在想:我是个活人,怕死人干啥呀?他活着的时候我都不害怕,死了我怕他?我告诉你,害怕的人都是悟性不通。我这个人,也不是天生的胆大,但我喜欢琢磨:他都死了,还能干点啥呢?啥也干不了。
有的人很在乎这个床死过人,那个屋子以前死过人,这我都不大在乎。什么我昨天做了一个噩梦,前天又做了一个很脏的梦,大前天又做了一个啥梦,这些我都不在乎,你也很少听我给你讲这玩意儿,我不是没有做过,但这东西能忽悠我吗?像一般的大忽悠,就是说他要卖拐,他也不能把我忽悠瘸了,是不是?他卖轮椅,他也不能把我忽悠瘸了。为啥?因为我持守我脑子里的逻辑。是不是?
再比如说有人要下葬,没有人敢去拿那个骨灰盒,我去拿,不过就是一把灰,有什么好害怕的?有人看见尸体就害怕,你到卖猪肉的摊上,那全是猪的尸体,是不是?那人咔嚓咔嚓一砍,跟猪肉一样。是不是?
你说人死了,躺在棺材里有什么好怕的?我就经常过去看一看,我看完了,他能起来吗?肯定起不来。所以我跟你讲,我的悟性好,悟性好了以后,很多东西就不怕了。但是我跟你讲,我怕人,当你出其不意的时候,忽然间冲出来一个满脸都是血,满脑子都是刀疤的,身上还纹着左青龙右白虎,腰上纹了一条带鱼。我怕那个。我不跟他比划,别整完了那刀疤到我脑袋上来了,我不想要这个,我就赶紧躲了。
其实,人都是被很多的谎言给骗了,如果你家里有人不太怕,就到坟地去溜达几圈,啥事也没有就回家了,下次好像好了一点了,再去溜达几圈回家。但是千万别到那儿就喊叫说:有鬼吗?出来一个我看看!可千万别扯这个犊子啊。
那鬼不住在坟墓里,鬼是飘在空气当中,其实你不是在坟地那里怕,而是在家里就应该怕,因为鬼真的可以到处走,不是那个人死了就变成鬼,是这空气中掌管着幽暗世界的魔鬼。所以你一害怕,鬼肯定来找你,为什么你害怕?因为你接收了魔鬼的谎言,你一害怕鬼就来了。我告诉你,不怕鬼的鬼不大来,怕鬼的鬼肯定来,你就会越来越辛苦。
Q5:老师,我这边被宗教的灵捆绑的人多,报应都来了,活得很惨,可是他们啥也听不进去。这些人听了华人命定神学,就识别善恶,有一个听了还睡不着觉的,我觉得服侍不了,有什么办法吗?
我问你,神要用灾祸报应他,你能解决啥呀?真的解决不了。我想就我们这小样的,也别跟神作对了。恨神的人神必追讨他的罪,自父及子直到三到四代,三到四代全加在他身上,让他生不如死。是不是?我告诉你,如果他是一个好好追求的传道人,咱就好好整;如果他没有追求,还跟你抬杠,你能躲多远就躲多远,他活得惨,那也是神的作为。
Q6:老师,你再讲讲宗教的灵,比较隐性的表现可以吗?
比如说,我穿上那个大主教的袍子,手里拿个主教的杖,就是那个大棍子,再戴上那个主教的帽子,五分钟就可以做主教,说那些主教说的话,这个就叫做表面功夫。他里面装的全是属世界的东西,所以说讲宗教的人,你会发现他讲的,好像是明白,好像是不明白。但其实他没讲明白,你不可能听明白。听明白了吗?所以说这个宗教的人,隐性的表现就是特别表面化。宗教的人全是无知的人,他会莫名其妙的相信某种东西,带来的悲剧叫做无知。人为什么会啥也不清楚就瞎整呢?就是相信某种东西。
现在人特别相信出国留学,出完了国回来以后发现很多海归都很烂。有没有?原来很多人到国外也没干啥,就是在餐馆里去做工也没上学。其实国外的教育真的好吗?也不一定,就是个盲目。有的人盲目相信学位,但是后来发现有很多有学位的人,最后只能开个滴滴,有的甚至连滴滴也开不好。我们要开始把这个隐藏的无知暴露出来,我不行,我很烂,没关系,我可以慢慢学,是不是?
宗教的灵还有一个特点,比如说,我带人祷告,我问他:“眼睛好点了吗?”他说:“还不行,眼睛还是看不清。”我说:那继续再祷告。祷告了好几遍以后,我说:“眼睛怎么样了?”他说:“还不行。”我就有点奇怪,怎么能不行呢?每次都行了的呀。这次怎么就不行了呢?我说:“对比刚才,现在怎么样?”他说:“那是比刚才好多了。”嗨!比刚才好多了。我问他:“你为啥这么说呢?”他说:“我觉着应该比这快吧?”我就在想,你是希望我一摸眼睛“啪”一下就好了,是不是?人眼睛虽然好了,但心眼还没好,是不是?问题就来了,人不想下功夫,就想被圣灵一充满就什么都知道了,神不是这样的神。
Q7:老师,《帖撒罗尼迦前书》第二章里面,我保罗有一两次要去,只是撒但阻挡了我们。保罗被撒但阻挡,这是怎么一个状况?
你问的问题也挺好,应该是保罗没讲,那就讲一讲我自己的经历,这撒但怎么拦阻呢?给你举个例子,刚订好的航班被取消了,机票就废了,刚订好的船票,船沉了。
各种各样的状况特别多,那还有一种,如果那天我要讲道,但身体极其的难受,非常的辛苦,浑身没有劲儿,心里就开始挣扎,到底讲不讲?如果我克服了身体的难受,把那篇道讲出来,那肯定是给魔鬼的一次重创。我给魔鬼一拳,牠也给我一拳,就这样,所以拦阻是我们明明可知的。
每一次重大突破之前,都是一场恶战。尤其是像我们经历特别明显。每一次在神学上有突破,身体所遭受的那股劲儿是很辛苦的,也是很难用语言讲出来的。所以,每一次的争战,到最后都是一个突破,都是一个得胜。
Q8:老师,我的悟性不通,就是想问人死了后,灵魂去哪儿了?
人活着的时候,他的灵都是不咋地,那死了以后,他灵魂去哪儿?灵魂去地狱了。听明白了吗?他不可能在世上飘荡。我告诉你我的解读,这个理论根基不是特别的清楚。这人死了以后,附在这个人身上的鬼去哪儿了?跳到别人身上去了。那跳到别人身上,那这个人的灵魂去哪儿了?有的回耶稣那里去了,有的回到地狱那里去了。那这个人,活着的时候,住在他身上的那个鬼,跑到别人身上去了。
那还有没有一些别的东西,漂浮在这空中呢?也有。因为鬼其实可以住在人身体里,也可以漂在空中。有个女孩儿,是青楼女子,名叫小青。后来死了。怎么死的呢?因为她被一个大户人家弄去,活得很辛苦,别人也看不起她,她就上吊自杀了。她身上的这个鬼,就叫小青。其实那个鬼跟那个小青什么关系也没有,就是原来住在她里面的鬼,那个鬼就是空中的这些邪灵。这回听明白了吗?
Q9:老师,请问如果信徒说相信神的话,并照着神的话活,但不接受医病赶鬼,这是宗教吗?
他照着神的话活,他照着神的哪句话活呢?他都不相信医病赶鬼,可是耶稣就是个医病赶鬼的人,是不是?耶稣不但是个医病赶鬼的人,也是个医病赶鬼的神呢,他如果相信神的话,要成为别人的祝福,看见有病的不能祝福他,这样能成为别人的祝福吗?这种东西就叫做宗教。
他其实是不明白神的话,但他觉着他相信神的话。你觉着你相信神的话,和你真的相信神的话,那不是一回事儿。你问他神的话怎么说的,他说不清楚,还觉得:我就不接受医病赶鬼。为啥呢?没有为啥,因为《圣经》上没有医病赶鬼。你看人的逻辑很奇怪:我相信《圣经》上的话,但是我不相信医病赶鬼。那就是对《圣经》不了解,他肯定没读神的话,所以,这是很奇怪的现象。
Q10:老师,主要在我们身上得荣耀,是我们照着做了主做的,我们也要在他身上得荣耀,那指什么?
耶稣基督的身体是教会,我们在他身上得荣耀,就是整个教会得荣耀。听明白了吗?我们做了主做的,主就在我们的身上得荣耀。整个教会的弟兄姐妹都非常的合一,就是我们在他身上得荣耀。可能我解释的不是那么准确,但我觉得主的荣耀是我们的荣耀。我们的荣耀也是主的荣耀。这回能听得懂吗?
我给你用一个比较浅显的话来讲,主的荣耀是我的荣耀,我的荣耀是主的荣耀。我们的主在我们身上得荣耀,我们也在主身上得荣耀,就是主耶稣从死里复活的能力在我们身上。
Q11:《圣经》上所谓的鬼是指魔鬼,不是指人死了说的真正的鬼,是吗?
对了,就是指魔鬼。鬼分为两种:一种叫地上的污鬼,一种是堕落的天使。你问我地上的污鬼是从哪里来的?我也不太清楚,应该都是神造的。还有一些是堕落的天使,那神造这些干啥呢?就是干肮脏活的。
Q12:老师,人被鬼辖制,心里刚硬,他又走不出来。那不是就被魔鬼操控吗?没办法得救了吗?因为他不能自主听到真道,这种人就注定不能翻转了吗?
我跟你讲,人走不出来,你还是你自己,你为什么走不出来呢?因为人不信。听明白了吗?就是他跟鬼非常的合一。我见过跟鬼非常合一的人,他一听真道,就接受不了,一听那些谎言,他立刻就接受,人就这样。
不是人拣选人,是神拣选人。听明白吗?在传统的教会,如果她老公不信主,她就特别相信神可以帮助她老公信靠主,就拼命为他老公祷告,有一天他老公信主了,哎呀,这个高兴啊!其实不是真信,是玩了一个幌子。
大家千万别再干这事儿,以为你拼命为你家人祷告,他就可以信主,不是这么回事。《圣经》上其实没有这么讲过神学,人要听了就相信,那就很简单了,是不是?人要听了不相信,那你怎么弄都没用。
Q13:老师,如何区别被神拦阻还是被撒但拦阻?
你问这个问题要干啥?其实不用管。这事儿能走得通,咱就走,走不通就走不通。所以,不管是被神拦阻也好,被撒但拦阻也好,我们总觉着撒但跟神平起平坐。我告诉你,不是!神掌管宇宙万有,包括撒但。神造万物各按其时成为美好,其中就包括鬼。为啥?那些鬼不过是仆役,不过是个仆役的灵。就这么回事。所以说,神拦阻,或者神派一个鬼拦阻,我们不用纠缠这些东西。你最好是在悟性上,好好地认识神。
Q14:老师,我记得你之前讲过《撒母耳记》,扫罗交鬼的妇人,从地里上来的那个是鬼,不是撒母耳,是吗?
对,我有讲过这个。那个是与生俱来,一直陪着撒母耳走完人生的鬼,也就是说撒母耳一辈子的事儿,牠都知道。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데살로니가후서를 나누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를 몹시 곤혹스럽게 만드는 한 가지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인데, 선한 사람은 좋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은 오히려 장수하며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관찰해 본다면 분명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데살로니가후서는 누구에게 쓴 것일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다 쓰고 난 후 바울은 아직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시 데살로니가후서를 썼는데, 아마 데살로니가전서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보충을 한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보충을 통해 그는 어떤 질문에 답하고자 했을까요?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겪고 있던, 오늘날 우리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과 같은 혼란에 대해 답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보충 설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이 구절을 다 깨달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 역시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이러한 혼란에 직면해 있었고, 바울은 계속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이 주제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데 왜 박해를 받는가? 저 유대인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도리어 참된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박해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믿음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요? 바로 사람이 박해와 환난을 겪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이러한 박해와 환난이야말로 믿음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일로 고난받는 것도 믿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리거나 온갖 희귀병에 걸렸는데, 그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킵니다. 그렇다면 그것과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은 같은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일일까요? 헷갈리지요.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헷갈렸습니다.
오래전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 간증 단편 영상을 찍었는데, 우리는 교회에서 상영하는 그 영상을 보러 갔습니다. 다 보고 나서 저는 멍해졌습니다. 그 영상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비인두암에 걸렸는데, 그 간증 영상은 그가 암에 걸렸을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환난 속에서 어떻게 인내와 믿음을 지켰는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저는 '이게 대체 무슨 간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이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 안에서 저는 하나님이 저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치유받지 못했을까요? 이 일로 인해 저는 수많은 조사를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참되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일들에 미혹되지 않기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그것이 저주로 인해 받는 고난인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는 고난인지에 따라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까이서 관찰해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그런 영상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과 저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뚜렷한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사람과 가까이 접해보면, 그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이상할까요? 하나는 보응(심판)이고 하나는 영광이며, 하나는 보응을 자초한 것이고 하나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교통사고나 다른 재앙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만 하기를 좋아해서, 이런 것들이 모두 박해를 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환난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깊이 연구하면서 수년이 흐른 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킴"이라는 이 일에 대해 저에게 증거가 되어줄 핵심적인 인물을 찾았는데,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후 이삭도 찾아보고 야곱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박해를 받았을까요, 안 받았을까요? 야곱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의 형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했다고 합니다. 훗날 야곱이 겪은 이러한 환난들은 그의 믿음 때문에 겪은 환난이었습니다.
그 후 더 연구해 보았습니다.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한 일 말입니다. 성경에는 매우 완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설명합니까? 연구하고 또 연구해 보니, 야곱의 집안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의 몸에 바쳐진 물건(우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영광스럽지 않은 일입니까? 영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훗날 저는 야곱을 통해 한 가지 개념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박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잘못 행해놓고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념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키는 것에는 본보기를 찾아야 합니다. 신약에 오면 그 본보기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다가 감전되거나 독살되어 돌아가셨습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분명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병들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훗날 저는 성경에서 저주에는 뚜렷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4절까지에 나오는 저주들이 바로 그것인데, 애굽 사람들의 질병을 그들에게 더하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더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하십니다. 알고 보니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것들을 나타낸다 한들, 여러분 내면의 혼란과 깨달음이 해결되었습니까?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참아내고,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킨다면, 단언컨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의 그릇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 행하는 표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시는 명백한 증거가 되며,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환난을 겪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환난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그 사람들의 박해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막 세워진 몇몇 성도를 박해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들이 들어와 그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공의의 하나님이신가?'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 사실을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영원히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박해했으니, 그 저주가 깊지 않겠습니까? 저주가 참으로 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박해했을까요? 이유도 매우 간단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바로 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외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리고 또 외치기를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크게 외쳤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 자리에서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런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고, 그분은 걸림돌이 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떨어지는 자는 반드시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언컨대 훗날 수많은 심판과 환난을 겪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박해했던 자들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환난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그 유대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친 것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그런 대단한 믿음이 나온 것일까요? 훗날 제가 이 일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제가 연구한 답은 '그들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또 다른 주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로마인이 박해하여 죽인 것이 아닙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분을 놓아주려 했으나,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회당과 성전 안에서 매우 열심을 내던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이 정말 깨달았을까요?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탄에게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 배후에는 종교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영이 가져오는 이러한 부패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저 세상을 열심히 사랑할 뿐, 이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겠습니까? 무슨 보상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습니까? 아무 보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종교의 영은 참으로 가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깨달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종교적 규례를 만들어 그저 형식적으로 행할 줄만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과 규례만 다룰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저는 한 가지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했을까요? 저는 형제자매들이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 안에서 "주여, 주여!"라고 외치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바로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 아닙니까? 대제사장들이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배후에 종교의 영이 있었던 것이며, 종교의 영은 마귀의 영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환난을 내리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보셨습니까, 못 보셨습니까? 못 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까지 저도 눈으로 직접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듯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들에게 명백히 나타나 있으며, 바로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저를 매우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는가 하면, 이 사람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께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성경공부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 교회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면 제가 올라가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쪽 교회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고, 그는 저와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해서 성경공부를 함께했습니다. 치병과 축사와 같은 몇몇 신학적 관점에서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니던 교회에는 치병과 축사는 없고 목사를 쫓아내는 일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종일 목사를 바로잡으려고만 했습니다. 제가 "자네 지금 뭐 하는 짓인가?"라고 물으니, 그는 "나는 우리 교회의 파수꾼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키고 지키다가 결국 암에 걸렸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것이 심판입니까, 아닙니까? 심판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가 보니, 그는 제 좋은 친구였기에 그곳에서 끄집어내 주고 싶었습니다. 암이 치유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 내면의 종교적 집착을 치유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충성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를 붙잡아 이끌어 왔습니다. 제가 그를 섬긴 것이 소용없었던 것은 아니며,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자기 길을 가려 했습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고 기어코 그 길로 갔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간곡히 권면해 보았자 도리어 저를 미워할 뿐이었습니다. 계속 그 파수꾼 노릇을 하겠다니 지켜볼 수밖에요. 그런데 맙소사, 암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변을 보듯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는 제게 지난 3일 동안 매일 밤 사망의 영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찾아와서 기도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동역자들을 데리고 그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곳으로 조문을 갔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가장 해칩니까? 종교적 집착이 사람을 유독 해칩니다. 이 종교적 집착은 그리스도인들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위병들을 돌아보면, 그들의 광기야말로 바로 종교적 광신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원로 간부들을 박해하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약간의 박해를 받는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도리를 전하기만 하면 박해를 받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들이 박해하면 박해하는 것이고, 저는 그런 무리에 섞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복음이 대단히 순수하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박해는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누가 박해합니까? 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인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종교적 집착을 품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또 저의 다른 친구 한 명도 종교적 집착이 매우 강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저는 바른말을 그대로 해주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선지자가 하는 말은 늘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여, 조심해야 하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주님을 너무나 순수하게 믿고 있어서 그 누구도 자기보다 순수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자기는 반드시 복을 받을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 창고에 불이 나서 수백만 위안의 피해를 본 것도 정상적인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박해를 받는 것이 집 창고에 불이 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암에 걸렸고, 연이어 터졌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그는 결코 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며,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환난을 겪은 것이 아니라 분명 저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환난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사실 그가 암에 걸린 것은 저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복음을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전해도 저주를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그 역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저에게 반박했습니다. 제가 그를 섬긴 사역이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열매가 있었지만, 제가 이 말을 해주었을 때 그는 듣기 싫어했습니다. 사람은 저주를 받을 수는 있어도, 자신이 저주 가운데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분명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까닭 없이 사람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해석을 보십시오. 같은 구절을 두고도 그는 자신이 까닭 없이 저주받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 까닭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길게 말씀드린 까닭은, 우리에게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여러분이 계셔서 저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외롭습니다. 왜일까요? 종교의 영은 결코 우리의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가장 잘하는 일은 교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지만,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자로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전통 교회가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교회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히면 이렇게 됩니다. 들 수 있는 예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에도 종교의 영이 있을까요? 종교적 집착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언제 다 바뀔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같이 몸에 짙은 종교적 집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곳에서 종교 개혁이나 변혁을 추진한다면, 그들은 목숨 걸고 달려들 것입니다. 바뀔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여러분을 이단으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예들을 통해 여러분은 실상이 이러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를 하나님께서 보응하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룟 유다는 보응을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반드시 보응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후 그는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고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신약성경에 아주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창자가 온 땅에 흘러나왔습니다. 목을 매달았는데 어찌하여 창자가 터져 흘러나온단 말입니까? 보응입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보응입니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1:6-9)
하나님은 참으로 엄위하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이라 전파하는 자들은 사람을 몹시 타락시키지 않습니까? 그러나 보응이 임하기 전까지는 겉으로 다 좋아 보입니다. 그 사람도 그곳에서 수년 동안 파수꾼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야 암에 걸렸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자기가 보응을 받을 줄 몰랐고, 암에 걸린 후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보기에 사람들은 다 멀쩡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유대인들도 당시에는 목이 쉬지도 않았고 큰 소리로 외쳤으며 힘차게 팔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단언컨대 보응을 받았고,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참된 복음을 믿으십시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만 대충 듣고 넘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흐리멍텅하게 믿거나 제가 전하는 것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듣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몇 마디 도전적으로 묻는다 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묻는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오늘날 저 역시 형제자매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워져서 성경을 상고하며 제 말이 그러한가 아니한가 분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는 신약성경이 없었고 구약성경만 있었습니다. 구약성경만으로도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과연 무엇인지 검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0)
제가 묻겠습니다. 간증이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의자 몇 개 날랐다고 "오, 참 생명력이 넘치네" 하는 것이 간증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마다 한 시간 일찍 와서 의자를 정렬해 놓았다고 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 한 자매님이 암에 걸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그 자매님은 암에 걸릴 만한 성격적 문제가 꽤 심하겠군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즉각 반박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자매님은 믿음의 생명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생명이 그렇게 훌륭한데 암에 걸립니까? 암에 걸릴 정도로 훌륭하다면 계속 그렇게 훌륭하시라고 하십시오." 제가 이 말을 하자 상대방은 저를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귀담아듣는다면, 암에 걸려 우리 가운데 왔을 때 제가 "이것은 저주입니다"라고 말할 때 "아, 이것이 저주구나" 하고 깨달아 곧바로 치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응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치유받고 은혜를 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 일을 그토록 명백하게 밝히며 저주인지 보응인지 설명할 수 있었는지 감탄할 따름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 아마도 지면의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데살로니가에서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창세기를 수없이 가르쳤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명기 역시 수없이 가르쳤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를 받은 역사 또한 수없이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전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며 인애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의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이 '3, 4대까지'라는 말을 두고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부모님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그 위의 조상들의 저주를 끊어야 하고, 또 그 위의 증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이름도 모르는 윗대 조상들까지 끊어야 한다고 법석을 떱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합니까? 해결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그런 내용들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주를 끊는답시고 무엇을 끊고 혼의 결박을 끊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끊기는 무엇을 끊습니까? 또 사람에게 치유와 축사를 해주고 나서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3, 4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3, 4대를 어떻게 다 계산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에게 보응하십니까?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4절까지를 자세히 보십시오. 그것이 다 보응이며, 전부 보응에 관한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속에서 만국과 만민 중에 흩어져 떠돌았고, 소수의 유대인들은 중국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다가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중한 일입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도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그저 흐리멍텅하게 맹목적으로 믿는다면 보응을 자초하게 됩니다. 저는 이를 대신해 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려는 일을 제가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핵심은 여러분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참되게 하나님께로 돌이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보응이 참으로 많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보응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착오가 없으시며 귀신조차도 착오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만이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일까요? 귀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보응받아야 할 자에게는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보응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직 보응을 받지 않은 자들은 어찌 되느냐고요? 그것은 조만간 닥칠 일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닥칠 일입니다. 덩샤오핑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니 결코 하나님과 장난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고, 깨달음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종교적 색채가 짙으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저주를 받아놓고도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착각하니,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주 안에서 영광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또한 주 안에서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1-12)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맹인을 만지니 맹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또한 주 안에서 영광을 얻으며, 하나님의 능력의 확실한 증거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귀신도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행하는 표적은 맹인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던 자를 맹인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 또한 일종의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해야 합니다. 행하지는 못하면서 말만 한다면 그것이 껍데기뿐인 찻주전자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선을 이루어야지, 사모하는 재물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믿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댓글을 남겨보십시오. 믿음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이루어내는 역사는 표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분명하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백히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우리가 박해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이들이 우리를 대적해도 상관없으며,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편지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사모하는 모든 선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어야 하며,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 또한 나타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것을 믿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이 우리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목사님이 모두 치유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못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제가 전하는 것은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것을 만들어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저는 온전히 믿습니다.
당시에 열 명 중 한 명이 치유받았을 때도 저는 모두가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 명은 어찌 된 것이냐고 묻겠습니까? 그 후 계속 믿고 나아가니 열 명 중 다섯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더 믿고 나아가니 열 명 중 여덟, 아홉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모두가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처음에 한 명만 치유받았을 때는 나머지 아홉 명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깨달음에서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훗날 저는 핵심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치유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치유받지 못하는 자들은 제가 아직 명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훗날 한 가지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고지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고 또 올라가십시오!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열 명 중 다섯 명이 여전히 치유받지 못합니까? 저는 계속 올라가고 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더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아직 치유받지 못했다면 저는 한 가지 이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적 높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충만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충만하시다면, 만약 저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고, 하나님에 대한 저의 앎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시는 것과 같다면 분명 모두가 치유받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서는 암도 다 치유받습니다.
물론 모두 치유받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보응(심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해독제를 주는데 여러분이 저곳에서 독약을 먹는다면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신해 여러분이 받을 보응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확실한 간증이 있으며, 우리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영생을 구하고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생으로 여러분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빚지지 마십시오. 결코 "그것은 너무 극단적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극단적이지 않은 것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말에 "왜 그렇게 단정적이냐? 3이 될 수도 있고, 4나 5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계산기를 눌렀는데 1 더하기 1이 3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고장 난 계산기이니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착각하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 어찌하여 그렇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저는 감히 그렇게 묻지 못합니다. 저는 오직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라고 말할 뿐입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고, 고생을 좀 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고생을 겪고 나면 저는 "회개해야겠다"고 말합니다. 박해받는 것은 박해받는 것이고, 제가 자초한 고난이라면 회개합니다. 하지만 때로 저라는 사람은 허물이 많아서 회개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불완전하나 저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저는 자주 실수하지만 저의 하나님은 결코 착오가 없으시며, 심지어 귀신조차도 착오가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토록 강력한 능력의 증거가 있음에도 우리가 믿는 믿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이토록 강력한 능력의 증거와 훌륭한 간증이 있는데도 우리가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인내하지 못한다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께 경각심을 일깨워 드립니다. 하나님을 대충 건성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마음과 영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헛되이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얻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도록 주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큰 은혜를 받고 나서 돌아서서는 마침내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얻었다고 여깁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보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저 자기 안위만을 챙기며 살아가면 보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길입니다.
이제 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고 그분 또한 우리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설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예화들을 들었고, 제가 직접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