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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데살로니가후서 1장 -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2025-06-18 2,321 帖撒罗尼迦后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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帖撒罗尼迦后书01章-问候
  • 1 保罗、西拉、提摩太写信给帖撒罗尼迦、在 神我们的父与主耶稣基督里的教会。
  • 2 愿恩惠、平安从父 神和主耶稣基督归与你们!
  • 3 弟兄们,我们该为你们常常感谢 神,这本是合宜的;因你们的信心格外增长,并且你们众人彼此相爱的心也都充足。
  • 4 甚至我们在 神的各教会里为你们夸口,都因你们在所受的一切逼迫患难中,仍旧存忍耐和信心。
  • 5 这正是 神公义判断的明证,叫你们可算配得 神的国;你们就是为这国受苦。
  • 6  神既是公义的,就必将患难报应那加患难给你们的人,
  • 7 也必使你们这受患难的人与我们同得平安。那时,主耶稣同他有能力的天使从天上在火焰中显现,
  • 8 要报应那不认识 神和那不听从我主耶稣福音的人。
  • 9 他们要受刑罚,就是永远沉沦,离开主的面和他权能的荣光。
  • 10 这正是主降临、要在他圣徒的身上得荣耀、又在一切信的人身上显为希奇的那日子。我们对你们作的见证,你们也信了。
  • 11 因此,我们常为你们祷告,愿我们的 神看你们配得过所蒙的召,又用大能成就你们一切所羡慕的良善和一切因信心所做的工夫,
  • 12 叫我们主耶稣的名在你们身上得荣耀,你们也在他身上得荣耀,都照着我们的 神并主耶稣基督的恩。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데살로니가후서를 나누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를 몹시 곤혹스럽게 만드는 한 가지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인데, 선한 사람은 좋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은 오히려 장수하며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관찰해 본다면 분명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데살로니가후서는 누구에게 쓴 것일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다 쓰고 난 후 바울은 아직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시 데살로니가후서를 썼는데, 아마 데살로니가전서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보충을 한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보충을 통해 그는 어떤 질문에 답하고자 했을까요?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겪고 있던, 오늘날 우리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과 같은 혼란에 대해 답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보충 설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이 구절을 다 깨달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 역시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이러한 혼란에 직면해 있었고, 바울은 계속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이 주제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데 왜 박해를 받는가? 저 유대인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도리어 참된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박해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믿음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요? 바로 사람이 박해와 환난을 겪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이러한 박해와 환난이야말로 믿음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일로 고난받는 것도 믿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리거나 온갖 희귀병에 걸렸는데, 그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킵니다. 그렇다면 그것과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은 같은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일일까요? 헷갈리지요.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헷갈렸습니다.

오래전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 간증 단편 영상을 찍었는데, 우리는 교회에서 상영하는 그 영상을 보러 갔습니다. 다 보고 나서 저는 멍해졌습니다. 그 영상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비인두암에 걸렸는데, 그 간증 영상은 그가 암에 걸렸을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환난 속에서 어떻게 인내와 믿음을 지켰는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저는 '이게 대체 무슨 간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이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 안에서 저는 하나님이 저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치유받지 못했을까요? 이 일로 인해 저는 수많은 조사를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참되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일들에 미혹되지 않기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그것이 저주로 인해 받는 고난인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는 고난인지에 따라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까이서 관찰해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그런 영상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과 저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뚜렷한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사람과 가까이 접해보면, 그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이상할까요? 하나는 보응(심판)이고 하나는 영광이며, 하나는 보응을 자초한 것이고 하나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교통사고나 다른 재앙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만 하기를 좋아해서, 이런 것들이 모두 박해를 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환난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깊이 연구하면서 수년이 흐른 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킴"이라는 이 일에 대해 저에게 증거가 되어줄 핵심적인 인물을 찾았는데,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후 이삭도 찾아보고 야곱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박해를 받았을까요, 안 받았을까요? 야곱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의 형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했다고 합니다. 훗날 야곱이 겪은 이러한 환난들은 그의 믿음 때문에 겪은 환난이었습니다.

그 후 더 연구해 보았습니다.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한 일 말입니다. 성경에는 매우 완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설명합니까? 연구하고 또 연구해 보니, 야곱의 집안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의 몸에 바쳐진 물건(우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영광스럽지 않은 일입니까? 영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훗날 저는 야곱을 통해 한 가지 개념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박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행하지 못한 것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잘못 행해놓고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념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키는 것에는 본보기를 찾아야 합니다. 신약에 오면 그 본보기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다가 감전되거나 독살되어 돌아가셨습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분명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병들어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훗날 저는 성경에서 저주에는 뚜렷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4절까지에 나오는 저주들이 바로 그것인데, 애굽 사람들의 질병을 그들에게 더하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더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하십니다. 알고 보니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박해와 환난 중에도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킨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것들을 나타낸다 한들, 여러분 내면의 혼란과 깨달음이 해결되었습니까?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참아내고, 여전히 인내와 믿음을 지킨다면, 단언컨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의 그릇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바로 여러분의 손으로 행하는 표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시는 명백한 증거가 되며,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환난을 겪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환난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그 사람들의 박해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막 세워진 몇몇 성도를 박해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들이 들어와 그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공의의 하나님이신가?'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 사실을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영원히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박해했으니, 그 저주가 깊지 않겠습니까? 저주가 참으로 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박해했을까요? 이유도 매우 간단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바로 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외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리고 또 외치기를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크게 외쳤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 자리에서 멸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런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고, 그분은 걸림돌이 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떨어지는 자는 반드시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언컨대 훗날 수많은 심판과 환난을 겪었습니다. 주 예수님을 박해했던 자들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환난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그 유대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친 것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그런 대단한 믿음이 나온 것일까요? 훗날 제가 이 일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여러분께 말씀드리자면, 제가 연구한 답은 '그들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또 다른 주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로마인이 박해하여 죽인 것이 아닙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분을 놓아주려 했으나,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회당과 성전 안에서 매우 열심을 내던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이 정말 깨달았을까요?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탄에게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 배후에는 종교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영이 가져오는 이러한 부패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저 세상을 열심히 사랑할 뿐, 이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겠습니까? 무슨 보상이 있다고 그러겠습니까? 저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습니까? 아무 보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종교의 영은 참으로 가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깨달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종교적 규례를 만들어 그저 형식적으로 행할 줄만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과 규례만 다룰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저는 한 가지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했을까요? 저는 형제자매들이 깨달음 가운데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전 안에서 "주여, 주여!"라고 외치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바로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 아닙니까? 대제사장들이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배후에 종교의 영이 있었던 것이며, 종교의 영은 마귀의 영이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환난을 내리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보셨습니까, 못 보셨습니까? 못 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까지 저도 눈으로 직접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듯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그들에게 명백히 나타나 있으며, 바로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저를 매우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는가 하면, 이 사람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께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성경공부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 교회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면 제가 올라가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쪽 교회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고, 그는 저와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해서 성경공부를 함께했습니다. 치병과 축사와 같은 몇몇 신학적 관점에서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니던 교회에는 치병과 축사는 없고 목사를 쫓아내는 일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종일 목사를 바로잡으려고만 했습니다. 제가 "자네 지금 뭐 하는 짓인가?"라고 물으니, 그는 "나는 우리 교회의 파수꾼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키고 지키다가 결국 암에 걸렸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이것이 심판입니까, 아닙니까? 심판입니다. 누가 그런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가 보니, 그는 제 좋은 친구였기에 그곳에서 끄집어내 주고 싶었습니다. 암이 치유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 내면의 종교적 집착을 치유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충성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를 붙잡아 이끌어 왔습니다. 제가 그를 섬긴 것이 소용없었던 것은 아니며,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자기 길을 가려 했습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고 기어코 그 길로 갔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간곡히 권면해 보았자 도리어 저를 미워할 뿐이었습니다. 계속 그 파수꾼 노릇을 하겠다니 지켜볼 수밖에요. 그런데 맙소사, 암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변을 보듯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는 제게 지난 3일 동안 매일 밤 사망의 영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찾아와서 기도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동역자들을 데리고 그가 관 속에 누워 있는 곳으로 조문을 갔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가장 해칩니까? 종교적 집착이 사람을 유독 해칩니다. 이 종교적 집착은 그리스도인들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위병들을 돌아보면, 그들의 광기야말로 바로 종교적 광신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원로 간부들을 박해하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약간의 박해를 받는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도리를 전하기만 하면 박해를 받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들이 박해하면 박해하는 것이고, 저는 그런 무리에 섞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복음이 대단히 순수하다고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박해는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누가 박해합니까? 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인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종교적 집착을 품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또 저의 다른 친구 한 명도 종교적 집착이 매우 강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저는 바른말을 그대로 해주었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선지자가 하는 말은 늘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말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여, 조심해야 하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주님을 너무나 순수하게 믿고 있어서 그 누구도 자기보다 순수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자기는 반드시 복을 받을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 창고에 불이 나서 수백만 위안의 피해를 본 것도 정상적인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박해를 받는 것이 집 창고에 불이 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암에 걸렸고, 연이어 터졌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그는 결코 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며,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환난을 겪은 것이 아니라 분명 저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환난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사실 그가 암에 걸린 것은 저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복음을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전해도 저주를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그 역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저에게 반박했습니다. 제가 그를 섬긴 사역이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열매가 있었지만, 제가 이 말을 해주었을 때 그는 듣기 싫어했습니다. 사람은 저주를 받을 수는 있어도, 자신이 저주 가운데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까닭 없는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분명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까닭 없이 사람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해석을 보십시오. 같은 구절을 두고도 그는 자신이 까닭 없이 저주받을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 까닭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길게 말씀드린 까닭은, 우리에게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여러분이 계셔서 저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외롭습니다. 왜일까요? 종교의 영은 결코 우리의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가장 잘하는 일은 교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지만,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자로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전통 교회가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교회가 종교의 영에 사로잡히면 이렇게 됩니다. 들 수 있는 예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에도 종교의 영이 있을까요? 종교적 집착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언제 다 바뀔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같이 몸에 짙은 종교적 집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곳에서 종교 개혁이나 변혁을 추진한다면, 그들은 목숨 걸고 달려들 것입니다. 바뀔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여러분을 이단으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예들을 통해 여러분은 실상이 이러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를 하나님께서 보응하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룟 유다는 보응을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반드시 보응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후 그는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고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신약성경에 아주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창자가 온 땅에 흘러나왔습니다. 목을 매달았는데 어찌하여 창자가 터져 흘러나온단 말입니까? 보응입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보응입니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1:6-9)

하나님은 참으로 엄위하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이라 전파하는 자들은 사람을 몹시 타락시키지 않습니까? 그러나 보응이 임하기 전까지는 겉으로 다 좋아 보입니다. 그 사람도 그곳에서 수년 동안 파수꾼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야 암에 걸렸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자기가 보응을 받을 줄 몰랐고, 암에 걸린 후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보기에 사람들은 다 멀쩡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유대인들도 당시에는 목이 쉬지도 않았고 큰 소리로 외쳤으며 힘차게 팔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단언컨대 보응을 받았고,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참된 복음을 믿으십시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만 대충 듣고 넘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흐리멍텅하게 믿거나 제가 전하는 것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듣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정말 그렇습니까?"라고 몇 마디 도전적으로 묻는다 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묻는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오늘날 저 역시 형제자매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워져서 성경을 상고하며 제 말이 그러한가 아니한가 분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는 신약성경이 없었고 구약성경만 있었습니다. 구약성경만으로도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과연 무엇인지 검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0)

제가 묻겠습니다. 간증이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의자 몇 개 날랐다고 "오, 참 생명력이 넘치네" 하는 것이 간증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마다 한 시간 일찍 와서 의자를 정렬해 놓았다고 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 한 자매님이 암에 걸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 그 자매님은 암에 걸릴 만한 성격적 문제가 꽤 심하겠군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즉각 반박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자매님은 믿음의 생명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생명이 그렇게 훌륭한데 암에 걸립니까? 암에 걸릴 정도로 훌륭하다면 계속 그렇게 훌륭하시라고 하십시오." 제가 이 말을 하자 상대방은 저를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귀담아듣는다면, 암에 걸려 우리 가운데 왔을 때 제가 "이것은 저주입니다"라고 말할 때 "아, 이것이 저주구나" 하고 깨달아 곧바로 치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응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치유받고 은혜를 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 일을 그토록 명백하게 밝히며 저주인지 보응인지 설명할 수 있었는지 감탄할 따름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 아마도 지면의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데살로니가에서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창세기를 수없이 가르쳤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명기 역시 수없이 가르쳤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를 받은 역사 또한 수없이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전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며 인애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의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이 '3, 4대까지'라는 말을 두고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부모님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느니, 그 위의 조상들의 저주를 끊어야 하고, 또 그 위의 증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이름도 모르는 윗대 조상들까지 끊어야 한다고 법석을 떱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합니까? 해결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그런 내용들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주를 끊는답시고 무엇을 끊고 혼의 결박을 끊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끊기는 무엇을 끊습니까? 또 사람에게 치유와 축사를 해주고 나서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3, 4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3, 4대를 어떻게 다 계산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에게 보응하십니까?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4절까지를 자세히 보십시오. 그것이 다 보응이며, 전부 보응에 관한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속에서 만국과 만민 중에 흩어져 떠돌았고, 소수의 유대인들은 중국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다가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중한 일입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도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그저 흐리멍텅하게 맹목적으로 믿는다면 보응을 자초하게 됩니다. 저는 이를 대신해 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려는 일을 제가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핵심은 여러분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참되게 하나님께로 돌이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보응이 참으로 많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보응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착오가 없으시며 귀신조차도 착오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만이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일까요? 귀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보응받아야 할 자에게는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산타클로스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보응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직 보응을 받지 않은 자들은 어찌 되느냐고요? 그것은 조만간 닥칠 일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닥칠 일입니다. 덩샤오핑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니 결코 하나님과 장난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고, 깨달음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갖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종교적 색채가 짙으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저주를 받아놓고도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착각하니,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극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도 주 안에서 영광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또한 주 안에서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1-12)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맹인을 만지니 맹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또한 주 안에서 영광을 얻으며, 하나님의 능력의 확실한 증거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귀신도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행하는 표적은 맹인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던 자를 맹인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것 또한 일종의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해야 합니다. 행하지는 못하면서 말만 한다면 그것이 껍데기뿐인 찻주전자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선을 이루어야지, 사모하는 재물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믿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댓글을 남겨보십시오. 믿음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이루어내는 역사는 표적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분명하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백히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우리가 박해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이들이 우리를 대적해도 상관없으며,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편지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사모하는 모든 선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어야 하며,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 또한 나타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것을 믿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이 우리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목사님이 모두 치유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못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제가 전하는 것은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것을 만들어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저는 온전히 믿습니다.

당시에 열 명 중 한 명이 치유받았을 때도 저는 모두가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 명은 어찌 된 것이냐고 묻겠습니까? 그 후 계속 믿고 나아가니 열 명 중 다섯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더 믿고 나아가니 열 명 중 여덟, 아홉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모두가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처음에 한 명만 치유받았을 때는 나머지 아홉 명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깨달음에서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훗날 저는 핵심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치유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치유받지 못하는 자들은 제가 아직 명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훗날 한 가지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고지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고 또 올라가십시오!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열 명 중 다섯 명이 여전히 치유받지 못합니까? 저는 계속 올라가고 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치유받았습니다. 더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아직 치유받지 못했다면 저는 한 가지 이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적 높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충만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충만하시다면, 만약 저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고, 하나님에 대한 저의 앎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시는 것과 같다면 분명 모두가 치유받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서는 암도 다 치유받습니다.

물론 모두 치유받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깨달음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보응(심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해독제를 주는데 여러분이 저곳에서 독약을 먹는다면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신해 여러분이 받을 보응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확실한 간증이 있으며, 우리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영생을 구하고 썩지 아니할 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생으로 여러분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빚지지 마십시오. 결코 "그것은 너무 극단적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극단적이지 않은 것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말에 "왜 그렇게 단정적이냐? 3이 될 수도 있고, 4나 5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계산기를 눌렀는데 1 더하기 1이 3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고장 난 계산기이니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착각하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 어찌하여 그렇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저는 감히 그렇게 묻지 못합니다. 저는 오직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라고 말할 뿐입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고, 고생을 좀 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고생을 겪고 나면 저는 "회개해야겠다"고 말합니다. 박해받는 것은 박해받는 것이고, 제가 자초한 고난이라면 회개합니다. 하지만 때로 저라는 사람은 허물이 많아서 회개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불완전하나 저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저는 자주 실수하지만 저의 하나님은 결코 착오가 없으시며, 심지어 귀신조차도 착오가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토록 강력한 능력의 증거가 있음에도 우리가 믿는 믿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이토록 강력한 능력의 증거와 훌륭한 간증이 있는데도 우리가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인내하지 못한다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께 경각심을 일깨워 드립니다. 하나님을 대충 건성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마음과 영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헛되이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얻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도록 주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큰 은혜를 받고 나서 돌아서서는 마침내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얻었다고 여깁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보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저 자기 안위만을 챙기며 살아가면 보응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주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길입니다.

이제 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고 그분 또한 우리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설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예화들을 들었고, 제가 직접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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