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자매 여러분, 주일 평안하셨습니까! 지금은 영광스러운 간증 시간입니다. 이어서 제가 이번 주의 은혜로운 간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간증입니다. 안녕하세요, ZZ 자매입니다. 《느헤미야기》를 배우면서 성령님께서 제 내면을 깊이 비추어 주셨고, 저의 실제적인 영적 상태를 드러내시며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전의 미지근하고 대충 때우며 게을렀던 영적 상태에서 깨어났고, 더 이상 무감각하게 살지 않으며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위해 마음 아파하고 주님을 향해 뜨거운 생명을 갖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一、과거의 모습: 분주한 삶, 영적인 공허함 예전에 《느헤미야기》를 읽을 때는 느헤미야의 과감함과 능력만 보았을 뿐, 제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쓰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깊이 묵상하며 공부하면서 성령님께서는 엄청난 대조를 보게 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고 편안하고 순탄한 삶을 살았지만, 세속에 조금도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경이 안락하다고 해서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백성들의 황량한 영적 상태로 인해 뼈아프게 슬퍼하며 끊임없이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일상에서 늘 직장 일, 집안일, 개인적인 일을 최우선에 두고 삶을 빡빡하게 채우며 매사 제 자신의 필요를 먼저 챙겼습니다. 하지만 기도와 성경 읽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늘 대충 때우고 건성으로 끝내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마음속으로 '나중에 하나님과 친밀해지자, 나중에 하나님을 섬기자'는 미루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심지어 잠재의식 속에서는 섬김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지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마침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의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미지근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일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고, 하나님은 슬그머니 제 삶의 뒷전으로 밀려나 계셨습니다.
二、성령님의 조명: 게으름과 작은 믿음을 들추어내고 거짓의 묶임에서 벗어나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저의 자기기만을 철저히 들추어내셨습니다. 제 입에서 나오던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게으름과 작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 싫어 영적 생명이 황폐해지고 정체되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저의 기도는 늘 형식에 치우쳤고, 진심 어린 토로와 겸손한 앙망이 없었으며, 심지어 이기적인 계산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원수 대적 또한 "나중에 하지 뭐"라는 거짓말로 저를 질질 끌며, 하나님께 반응하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을 번번이 미루게 만들어 은혜를 헛되이 낭비하게 했습니다.
반면 느헤미야의 삶은 저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불타올랐고, 안락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집을 위해 애통해하며 중보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진실하고 알찼으며 겉돌지 않았고, 기도와 행동이 함께 가며 한편으로는 믿고 바라보며 다른 한편으로는 깨어 전진하여, 참으로 신앙을 현재의 삶 속에서 살아냈습니다.
三、진정한 회개: 미루는 태도와 나태함과 작별하고 온 마음으로 뜨겁게 따르다 느헤미야의 아름다운 영적 간증에 비추어, 저는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결단하여, 미루고 대충 넘어가며 무감각했던 옛 영적 상태와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나중에"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현재를 붙잡아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에 즉각 반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도를 대충 때우지 않고 느헤미야처럼 전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진실하게 털어놓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게으름과 작은 믿음을 벗어버리고 자발적으로 영적인 대가를 치르며,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환경의 방해와 원수의 속임수에 직면할 때, 기도와 행동을 병행한 느헤미야의 삶을 본받아 기도로 뿌리를 내리고 순종으로 나아가며, 헛된 생각이나 미룸 없이 참된 신뢰 속에서 신앙을 굳게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간증을 살아내겠습니다.
四、맺음말 이번의 귀한 배움과 회개의 경험을 통해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결코 우리의 재능이나 지위, 성취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앞으로 저는 미지근한 영적 무감각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삶의 최우선에 두며 더 이상 게으르거나 미루지 않겠습니다. 평생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뜨겁게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길을 계속 걸어가 참되고 따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간증을 살아내기를 원합니다.
제2간증입니다. 안녕하세요, YE 자매입니다. 오늘 저는 《느헤미야기》를 배운 후 제 삶에 일어난 실제적인 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一、게으름에 얽매여 있던 옛 자아 예전에 제 삶에는 큰 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안일함이었습니다. 피곤하면 눕고만 싶었고, 집안일이 눈에 보여도 자동으로 '못 본 척'했습니다. 미루는 태도 이면에는 육신을 따르고 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게으름은 점차 권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로 발전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해 불평이 많았고, 여동생이 불평할 때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동지'를 만난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상대방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二、실제적인 변화: 집안일 속에서 인내를 훈련하다 저는 눈에 보이면 즉시 실행하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집안의 힘든 일은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어머니를 괴롭혔던 욕실 유리창과 환풍기의 기름때를 제가 말끔히 해결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것들을 제가 인내심을 갖고 조금씩 깨끗이 청소해 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느헤미야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일을 건성으로 하지 않고 성벽을 온전히 재건해 냈습니다. 저 또한 그래야 했습니다. 안 하면 몰라도 할 거라면 제대로 끝마쳐야 합니다. 더 큰 변화는 어머니를 대하는 제 태도였습니다. 여동생이 다시 불평할 때 저는 직접 그 틈을 막아섰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불평하면 안 돼."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휩쓸려 다니는 방관자가 아니라, 가정의 영적 성벽을 지키는 군사였습니다.
三、다음으로 수축해야 할 성벽: '통제'하려는 탐심을 제거하다 제 안에 여전히 교환 논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헌신했으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해', '내가 일했으니 넌 고마워해야 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헌신을 대가로 통제권을 얻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느헤미야는 오해를 받고 공격을 당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상장'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상급은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다음에 돌파해야 할 과제입니다. 베풀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섬기되 높임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四、맺음말: 이 시대의 성벽 재건자가 되다 예전에는 '피곤하다'는 것이 핑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게으름이 나를 속인 것임을 압니다. 모든 사람이 주저앉아 안주하고 환경을 불평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된 느헤미야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아직 과정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집안일이 보이면 즉시 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은 말은 하지도 않고 동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오직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시기만을 원합니다.
제3간증입니다. 안녕하세요, SAJ 자매입니다. 최근 진도에 맞춰 잠언을 낭독하며 하나님께 제 안의 우매함을 드러내 주시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일상생활을 통해 저를 실제적으로 조명해 주셨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치료사 선생님께서 바닥을 쓸거나 닦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첫날에는 딸이 자발적으로 바닥을 닦아주었지만, 그 후 며칠 동안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네가 안 하면 결국 내가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참고 걸레질을 했고, 허리 통증이 재발했습니다. 저녁에 딸이 돌아왔을 때 저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가 바닥 닦다가 허리가 또 아프네." 딸은 왜 자기를 기다리지 않았냐고 되물었고, 저는 "내가 안 닦으면 너도 안 닦잖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워 우리 둘의 관계는 순식간에 냉랭해졌습니다.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울었고, 저 역시 몹시 억울했습니다. 아프고 힘들 때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성령님께서 제가 읽고 있던 잠언 말씀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잠언 17장 28절). 저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일은 일대로 해놓고, "말을 조급하게" 하고 "가시 돋치게" 한 것—이것이 바로 우매함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혀를 제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음 날 목회자님과 교제할 때 목회자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적해 주셨습니다. 제가 딸에게 자주 "너는 네 아빠를 닮았어"라고 하는 말은 훈계가 아니라 저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라고 하셨는데, 제가 입으로 끊임없이 선포한 것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축복이 아니라 정죄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는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거짓말을 받아들여, 말로써 아이를 틀 안에 가두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저의 우매함은 허리가 아플 때 걸레질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 대신 원망을 쏟아내고 축복 대신 판단을 일삼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저는 혀를 제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끊임없이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잠언 4장 23절 말씀처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듯이, 입에서 나오는 원망은 이미 마음속에 쌓여 있던 쓴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회개했습니다. 지혜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성령님께 교정받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 25:12)는 말씀처럼 목회자님의 진심 어린 권면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교제를 통해 저는 딸을 변화시키는 핵심이 아이의 행동을 뜯어고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말속의 우매함과 마음속의 판단을 먼저 처리하는 데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범사에 "덕을 세우는 선한 말"(엡 4:29)을 하기를 훈련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입을 다무는 것'에서 시작하여 '은혜로운 말을 내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이 훈련은 비록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셨으니 반드시 이길 힘도 주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 혀가 오직 찬양과 축복에만 쓰이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이렇게 좋은 교회로 인도하셔서 끊임없이 진리를 배우고 제 안의 악습을 처리하게 하시며, 목회자님의 동행과 사랑 어린 인도를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4간증입니다. 안녕하세요! KM 자매입니다. 《느헤미야기》를 묵상하고 배우며 제 마음을 가장 울린 것은 성벽이 마침내 완공되어 연결되던 순간의 환호가 아니라, 느헤미야라는 인물 자체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소망을 불태웠는지, 또 어떻게 지극히 실제적이고 발을 땅에 딛는 견고한 행동으로 붕 뜨지 않고 겉돌지 않는 영적 생명을 살아냈는지를 보았습니다. 다음은 그의 몇 가지 핵심적인 품성을 제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돌아보고, 영적 성벽을 다시 세우도록 스스로를 격려하며 성찰한 내용입니다.
一、내려놓음—안일함의 감옥을 깨뜨리고 안락한 일상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다 느헤미야는 원래 왕궁에서 술 관원의 자리에 앉아 세상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안함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자원하여 황폐해진 예루살렘으로 기꺼이 돌아갔습니다(느헤미야 1장 11절, 2장 5절). 제 자신을 돌아보면, 늘 안락한 일상에 안주하며 진정으로 헌신하지 못했는데, 결국은 그 안정된 편안함에 탐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 안에 있지 않은 안정감이란 금박을 입힌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최근에 차를 사고 싶었는데 수중에 여유가 없어 비어 있던 집 한 채를 팔려고 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소에 가보니 시장이 침체되어 최소 5~6만 위안은 손해를 봐야 하고 그마저도 팔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작년 말에 내놓았더라면 최소한 본전은 건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왜 5개월 전에 진작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틱톡에 쏟아지는 부정적인 전망들을 보며 더 낙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 속에서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집 한 채에 휘둘릴 수 있는가? 영적인 사람이 어찌 세상의 득실 때문에 이토록 불안해해야 한단 말인가?' 그 순간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가격이 맞으면 팔고, 안 맞으면 계속 세를 주면 된다. 차가 있든 없든 일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내가 왜 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 헛된 세상에 이토록 집착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을 돌이키자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고, 집을 파는 문제로 더 이상 끙끙 앓으며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二、기도—깨어 있음과 행동의 병행, 게으름을 기다림으로 위장하지 않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결코 공중에 붕 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동시에 파수꾼을 세워 지키게 하고, 건축하며, 전쟁을 준비했습니다(느헤미야 4장 4, 9절). 그의 무릎과 두 손은 동시에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를 일종의 '종교적 의무 때우기'로 여기고, 다 읊조린 후에는 앉아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기적을 떨어뜨려 주기만을 기다리곤 합니다. 이것이 어찌 믿음이겠습니까, 명백한 게으름입니다.
저는 과거에 줄곧 멀미로 고통받았습니다. 그 근본 원인이 '선악을 분별하는' 습성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평소 기도의 분량이 너무 얕고 흩어져 있었기에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양들을 데리고 함께 끈질기게 기도하면서, 멀미 문제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하나님은 본래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참으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진지하게 하나님을 구해도 주님은 즉시 은혜를 부어주셔서 제 믿음을 굳세게 하십니다. 이로써 저는 결단했습니다. 더 이상 기도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고요. 제가 주도적으로 깨어 일어날 때에만 마귀는 낭패를 보고 물러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三、오직 하나님의 기억하심만을 구함—순수한 초심으로 사람의 박수를 구하지 않다 느헤미야는 그토록 큰일을 행하고도 어디서나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한 말은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옵소서"(느헤미야 13장 31절)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칭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온전히 죽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열납되기만을 구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느헤미야는 왜 자꾸 하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할까? 공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동기와 용기, 인내가 사람에게서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타협 없이 철저하게 죄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할 뿐이었습니다. 사람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토록 견고하고 순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명에 큰 도전을 받은 후, 일을 대하는 제 태도 역시 조용히 변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직장 일을 적당히 대충 처리하곤 했지만, 이제는 느헤미야를 본받아 손에 잡힌 일을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잘 해내려고 배웁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되고 썩지 아니할 상급을 바라보며 일합니다.
이번 주 간증은 여기까지 전해드립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