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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에스라 2장 - 하나님께서 주의 성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시기를

2026-01-09 37,469 以斯拉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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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斯拉记02章-被掳归回者的名单
  • 1 巴比伦王尼布甲尼撒从前掳到巴比伦之犹大省的人,现在他们的子孙从被掳到之地回耶路撒冷和犹大,各归本城。
  • 2 他们是同着所罗巴伯、耶书亚、尼希米、西莱雅、利来雅、末底改、必珊、米斯拔、比革瓦伊、利宏、巴拿回来的。
  • 3 以色列人民的数目记在下面:巴录的子孙二千一百七十二名;
  • 4 示法提雅的子孙三百七十二名;
  • 5 亚拉的子孙七百七十五名;
  • 6 巴哈·摩押的后裔,就是耶书亚和约押的子孙二千八百一十二名;
  • 7 以拦的子孙一千二百五十四名;
  • 8 萨土的子孙九百四十五名;
  • 9 萨改的子孙七百六十名;
  • 10 巴尼的子孙六百四十二名;
  • 11 比拜的子孙六百二十三名;
  • 12 押甲的子孙一千二百二十二名;
  • 13 亚多尼干的子孙六百六十六名;
  • 14 比革瓦伊的子孙二千零五十六名;
  • 15 亚丁的子孙四百五十四名;
  • 16 亚特的后裔,就是希西家的子孙九十八名;
  • 17 比赛的子孙三百二十三名;
  • 18 约拉的子孙一百一十二名;
  • 19 哈顺的子孙二百二十三名;
  • 20 吉罢珥人九十五名;
  • 21 伯利恒人一百二十三名;
  • 22 尼陀法人五十六名;
  • 23 亚拿突人一百二十八名;
  • 24 亚斯玛弗人四十二名;
  • 25 基列·耶琳人、基非拉人、比录人共七百四十三名;
  • 26 拉玛人、迦巴人共六百二十一名;
  • 27 默玛人一百二十二名;
  • 28 伯特利人、艾人共二百二十三名;
  • 29 尼波人五十二名;
  • 30 末必人一百五十六名;
  • 31 别的以拦子孙一千二百五十四名;
  • 32 哈琳的子孙三百二十名;
  • 33 罗德人、哈第人、阿挪人共七百二十五名;
  • 34 耶利哥人三百四十五名;
  • 35 西拿人三千六百三十名。
  • 36 祭司:耶书亚家耶大雅的子孙九百七十三名;
  • 37 音麦的子孙一千零五十二名;
  • 38 巴施户珥的子孙一千二百四十七名;
  • 39 哈琳的子孙一千零一十七名。
  • 40 利未人:何达威雅的后裔,就是耶书亚和甲篾的子孙七十四名。
  • 41 歌唱的:亚萨的子孙一百二十八名。
  • 42 守门的:沙龙的子孙、亚特的子孙、达们的子孙、亚谷的子孙、哈底大的子孙、朔拜的子孙,共一百三十九名。
  • 43 尼提宁(就是殿役):西哈的子孙、哈苏巴的子孙、答巴俄的子孙、
  • 44 基绿的子孙、西亚的子孙、巴顿的子孙、
  • 45 利巴拿的子孙、哈迦巴的子孙、亚谷的子孙、
  • 46 哈甲的子孙、萨买的子孙、哈难的子孙、
  • 47 吉德的子孙、迦哈的子孙、利亚雅的子孙、
  • 48 利汛的子孙、尼哥大的子孙、迦散的子孙、
  • 49 乌撒的子孙、巴西亚的子孙、比赛的子孙、
  • 50 押拿的子孙、米乌宁的子孙、尼普心的子孙、
  • 51 巴卜的子孙、哈古巴的子孙、哈忽的子孙、
  • 52 巴洗律的子孙、米希大的子孙、哈沙的子孙、
  • 53 巴柯的子孙、西西拉的子孙、答玛的子孙、
  • 54 尼细亚的子孙、哈提法的子孙。
  • 55 所罗门仆人的后裔,就是琐太的子孙、琐斐列的子孙、比路大的子孙、
  • 56 雅拉的子孙、达昆的子孙、吉德的子孙、
  • 57 示法提雅的子孙、哈替的子孙、玻黑列·哈斯巴音的子孙、亚米的子孙。
  • 58 尼提宁和所罗门仆人的后裔共三百九十二名。
  • 59 从特·米拉、特·哈萨、基绿、押但、音麦上来的,不能指明他们的宗族谱系是以色列人不是;
  • 60 他们是第来雅的子孙、多比雅的子孙、尼哥大的子孙,共六百五十二名。
  • 61 祭司中,哈巴雅的子孙、哈哥斯的子孙、巴西莱的子孙;因为他们的先祖娶了基列人巴西莱的女儿为妻,所以起名叫巴西莱。
  • 62 这三家的人在族谱之中寻查自己的谱系,却寻不着,因此算为不洁,不准供祭司的职任。
  • 63 省长对他们说:“不可吃至圣的物,直到有用乌陵和土明决疑的祭司兴起来。”
  • 64 会众共有四万二千三百六十名。
  • 65 此外,还有他们的仆婢七千三百三十七名,又有歌唱的男女二百名。
  • 66 他们有马七百三十六匹,骡子二百四十五匹,
  • 67 骆驼四百三十五只,驴六千七百二十匹。
  • 68 有些族长到了耶路撒冷耶和华殿的地方,便为 神的殿甘心献上礼物,要重新建造。
  • 69 他们量力捐入工程库的金子六万一千达利克,银子五千弥拿,并祭司的礼服一百件。
  • 70 于是祭司、利未人、民中的一些人、歌唱的、守门的、尼提宁,并以色列众人,各住在自己的城里。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에스라서> 2장을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장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에스라 시대보다 60~70년 전 사람들로, 스룹바벨을 따라 돌아온 자들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년이 흘러, 그들은 이미 장가가고 시집가 자녀를 낳았고, 늙을 사람들은 다 늙었습니다.

비록 이 사람들의 이름이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들, 즉 스룹바벨을 따라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을 격려하여 일어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 자들을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 5만 명을 감동시키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하시다

당시 스룹바벨은 5만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수많은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를 거느리고 당당하고 웅장한 대열을 이루어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으니, 참으로 대단히 웅장한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꿈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에스라가 마주한 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 열정이 남아 있을까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참 기가 막힙니다. 포로로 잡혀 있을 때는 매일같이 "언제쯤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읊조리다가, 정작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수십 년이 흐른 후에는 머리를 일상의 사소하고 번잡한 삶 속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세월은 돼지를 잡는 칼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당시에 스룹바벨을 따라 돌아왔던 어린아이들이 지금은 다 60~70세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릅니까? 정말 빠릅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이 돼지를 잡는 칼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 안주하는 삶 자체가 사람 안의 열정을 다 갉아먹는 칼입니다.

이전에는 고레스 왕이 스룹바벨을 보냈지만, 지금의 황제는 아닥사스다 왕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보내어 성전을 재건하게 하자, 에스라는 당시에 이 5만 명이 열정을 품고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일들을 기록하여, 그 세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별을 바라고 달을 바라듯" 간절히 기다리다가 마침내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고, 수많은 금그릇, 은그릇, 금과 은을 가지고 5만 명의 무리와 함께 돌아왔는데, 지금 그 열정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 5만 명을 감동시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도록 일으킴을 받았다면, 하늘에도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이 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감동에 반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시지만,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고자 그 감동에 반응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5만 명도 적은 수는 아니지만, 여전히 수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5만 명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조상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70세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다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에스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60세 이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일이 매우 생소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들처럼, 이전 세대에 일어난 일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사실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우리가 식사하던 곳에 어떤 위인의 사진이 걸려 있어서 제가 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진 속 인물이 누구니?" 그러자 그 아이는 "요리사 아니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위인이 그 식당의 요리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2000년대생들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깊은 감회와 탄식을 느낍니다.

이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정말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 중에는 3대, 5대째 크리스천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가정의 1대 크리스천은 참으로 하나님께 큰 감동을 받아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를 거듭할수록 못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열심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에게 "몇 대째 크리스천입니까?"라고 물으면 "5대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이어서 "그럼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우리 가족이 다 믿으니까 저도 따라서 믿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대략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감동시키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을 위해 지불한 대가를 반드시 기억하신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각자 자신의 성읍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한 문장으로 간단히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집은 70년을 살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시멘트나 철근이 70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의 집은 대부분 돌로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가 집을 보니, 안에는 버섯이 자라 있고 밖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마치 무덤더미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충격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살 곳을 다시 수리해야 했는데,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집을 다 리모델링해 놓고 이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집을 다 수리해 놓고 이사해도 몹시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곳에 가서 다시 개척하고 수리하느라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점

예전에 야곱이 72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그 자손들이 그곳에서 400여 년을 머물렀는데, 그들은 대대로 예루살렘,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되뇌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점은 매우 뚜렷합니다. 그들은 줄곧 자신들의 조상,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계보를 셈해 왔습니다. 마치 우리 중국인들이 모두 염황(炎黃)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기억하며 날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이다"라고 읊조렸습니다. 그때는 성경도 없었고 모세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기억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중국인들은 유대인들에 비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12지파가 남아 있지 않았고, 단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라는 두 지파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베냐민 지파도 거의 멸족될 뻔한 일이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대로 자신들의 조상을 헤아렸습니다. 그가 바리새인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내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마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매우 중시하여 모세오경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두 그들의 경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경전을 많이 읽었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늘 읊조렸습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 중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수산 성과 바벨론만 알 뿐, 예루살렘이 무엇인지 어찌 알았겠습니까? 다 그들의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아버지에게는 누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바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비로소 이곳이 자신들의 고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본 적이 있습니까?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참 재미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신 후 한사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고향을 떠난 지 80년이 되셨는데, 저에게 "아들아, 내가 고향에 가서 옛날 우리 집을 되찾아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80년이 지났는데 어디 가서 찾겠습니까? 더군다나 어머니 댁의 그 초가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집이 아직 남아 있어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남아 있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가 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나셨는데 지금 돌아가서 그 집이 어머니 집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지는 차치하고라도,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지난 80년 치 관리비를 청구하면 그 돈을 내실 거예요?"라고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그냥 관두자, 안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치매에 걸리셨어도 어머니는 셈에 아주 밝으셨습니다.

이 예를 드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쓴 일입니다. 수도에서 편안히 잘 살고 있는데, 왜 그런 황폐하고 인적 없는 곳으로 돌아가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는 이 꿈을 품고 나아간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끊임없는 전승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은 출애굽 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의 자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들이 각각 어떠했는지, 자신은 어느 지파 출신인지를 명명백백하게 이야기하고, 그 후 각자의 본 성읍으로 돌아갔습니다.

각기 본 성읍으로 돌아가다

그 성읍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곳이 자신들의 성읍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충격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뒤통수를 몽둥이로 세게 얻어맞아 머릿속이 "윙" 하고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산 성에 있을 때 모두 수도에 거주했고, 유대인들은 재정과 경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사업가들이었으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큰 가문과 가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와 보니 성읍 전체가 잡초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으니, 마치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속에 여전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화장실을 가도 뒤에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 같은 지경이었습니다! 그곳은 너무나 더럽고 황폐하여 밤에 국수 한 그릇 사 먹을 곳조차 없었고, 볼일을 보려 해도 구덩이를 파야 할 정도로 황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기억하십니다! 제가 왜 이렇게 깊이 공감하겠습니까? 저는 저희 집안의 1대 크리스천이자, 교회를 개척한 1대 개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황량함이 주는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 했던 그 1대 사람들은 먼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살 곳을 해결하느라 바빴으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열정이 남아 있었겠습니까? 너무나 힘들었기에 열정이 순식간에 99%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고, 우리 또한 그 세대의 사람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였다면 그들보다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선지자 학개는 성전을 재건하라고 거듭거듭 호소했지만, 각자 자기 집안일에 바빴습니다. 그렇다면 바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 주님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 했던 이 무리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비록 그들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각자의 집을 다시 건축해야 했으며, 그곳은 온갖 일이 산적해 마치 전쟁 후의 폐허 같고 집집마다 지금의 "시리아" 같은 형편이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의 열정을 품을 수 있었을까요? 참으로 장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꿈을 품고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힘겨운 상황이 읽혀지십니까? 그것이 와닿지 않는다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믿음으로 버텨낸 것이며, 몹시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제가 무슨 수로 경쟁력이 있었겠습니까? 정말 어려웠습니다! "영웅은 지난날의 용맹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굳이 언급하자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그런 감동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실 것이니,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또 한 해를 인내하며 버텼고, 마침내 어느 날 믿음의 열매를 맺어 마침내 교회를 세우게 되었으며,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힘겨운 날들을 지나온 사람만이 그 수고로움을 압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형편이 아무리 황량할지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의 전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방해와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전을 건축해야 하며, 이것이 영원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에스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의 목적은 바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가 하고자 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에스라서>에 기록된 스룹바벨 세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즐거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즐거이 예물을 드리다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처소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힘자라는 대로 공사 감독하는 자들에게 드리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에스라 2:68-69)

족장들이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헌신이었습니다. 모든 족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족장들은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이것저것을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것은 금과 은이었지, 집에서 쓰던 중고 전자레인지나 쓰다 버린 닳아빠진 빗자루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에 대한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에 도착하여 각자 본 성읍으로 돌아갔을 때 극도로 황폐하고 온갖 일이 산적하여, 다들 먼저 자기가 살 곳을 정리해야 했는데 어느 것 하나 돈이 들지 않는 일이 있었겠습니까? 건축 자재를 사고 집을 수리하고 청소하는 데 돈을 써야 했으며, 어떤 이들은 집조차 없어서 땅을 골라 처음부터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먼저 자원하여 기쁘게 드렸습니다!

이 일은 저로 하여금 "메이플라워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 무리의 청교도들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교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위대한 미합중국을 건설하여 지난 200년의 찬란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제국주의니 뭐니 하는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당시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아주 훌륭한 기초를 놓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물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는 크게 퇴색됩니다. 많은 사람이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얼마 전 제 마음에 깊은 탄식이 차올랐지만, 입가에 맴도는 많은 말을 차마 다 내뱉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임에 어떤 자매님이 오셨는데, 암 말기였습니다. 사실 기도해 드릴 때마다 통증이 줄어들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속으로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려드리는 것이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셔도 됩니다.

왜 기도가 통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집 안에 진멸할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진멸할 물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과 관련된 물건인데, 이런 진멸할 물건은 없애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그것을 자기 손에 쥐고 있음으로써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사람의 손에 진멸할 물건이 있다면, 이 사람 자신이 진멸받을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100% 그 집에 진멸할 물건이 있는 것입니다. 혹은 기도가 통했다가도 나중에 다시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 역시 진멸할 물건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진멸할 물건이라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선지자 학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경고하기를, 기꺼이 드리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스룹바벨 시대로부터 눈 깜짝할 사이에 70~80년이 흘러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이르렀을 때, 말라기 선지자 또한 사람의 마음이 돈을 의지하면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번 주에 저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네 집의 재물을 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가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지나치지 않습니다. 돈을 믿고 의지하면 암에 걸려 통증을 멈출 수조차 없게 되는데, 이 계산을 해 보셨습니까? 아직 계산해 보지 않으셨다면 천천히 계산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어떤 족장들은 지혜로워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다시 건축하고자 기꺼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을 먼저 지었고, 학개와 말라기가 말한 저주가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 자들이 있는 반면, 감동을 받지 않았거나 감동을 받고도 바벨론에 남기를 택한 자들도 있었으니, 그렇다면 그곳에 그냥 잘 남아 있으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감동을 받아 이곳에 왔다면, 자신이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어찌 여러분을 기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억하신다면 물질이 부족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에 문제가 있다면 신속히 제거해야 하며,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최근 제가 섬겼던 이 자매님을 보며 깊은 충격을 받았고, 마음속에 밀려오는 무력감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이미 임종 직전에 이르러 입조차 뗄 수 없었습니다.

족보가 분명하지 않은 자들도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다

이것은 참 흥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종족과 계보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는데, 자신이 어느 지파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했거나 가문에 흐리멍덩하고 불분명하게 넘어가는 나쁜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 어떤 덜렁이들이 한순간은 "아이쿠, 휴대폰을 두고 왔네" 하고, 또 한순간은 "아이쿠, 신분증을 두고 왔네" 하거나, 공항에 도착해서 여권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아 머리가 마치 '썩은 달걀'처럼 멍한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족보조차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서 이스라엘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가 애초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 이스라엘 사람인 척 위장하려 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족보가 불분명하여 속일 수 없었지만, 그 역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러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머리가 썩은 달걀처럼 멍하다면 족보를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느 지파 출신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본 성읍으로 돌아가는데 당신은 어느 성읍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설마 성읍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서 혼자 맨땅에 새로 성읍을 짓겠다는 말입니까? 이는 매우 곤란한 일이므로 생각이 명확해야지 흐리멍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 역시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온 것일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이라고 주장했지만, 족보가 어느 계통에서 나왔는지 명확히 밝히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스룹바벨은 매우 꼼꼼하게 조사하여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슬그머니 끼어들어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오직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족보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나 역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러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겠습니까? 어찌 기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땅의 모든 민족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이 유대인의 혈통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며, 이 시대에 참으로 중국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 무리는 참으로 확실하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어느 권을 상고하든 하나님의 감동이 없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차례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에게 부합하는 신학 체계를 세웠으니 우리는 이를 사명 신학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정말 내세울 만한 족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교회를 개척한 최초의 중국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는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비단 당신뿐만 아니라, 저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음을 품은 모든 자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억하신다면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내가 주님을 믿어 복을 받고 최고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신학적 관념을 고치기 시작하고, 머릿속의 헛된 잡념들을 털어내며,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명명백백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만약 노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낼 수 없겠습니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에게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은 지금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비록 큰 부자는 아닐지라도 날마다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내면의 논리를 다시 바로잡읍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이 감동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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