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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호세아 9장 -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24-01-19 17,229 何西阿书 何西阿书09章 何西阿书第九章 敬畏神 不做外邦人 不做基比亚人 不拜巴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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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西阿书09章-何西阿宣布以色列受惩罚
  • 1 以色列啊,不要像外邦人欢喜快乐;因为你行邪淫离弃你的 神,在各谷场上如妓女喜爱赏赐。
  • 2 谷场和酒榨都不够以色列人使用;新酒也必缺乏。
  • 3 他们必不得住耶和华的地;以法莲却要归回埃及,必在亚述吃不洁净的食物。
  • 4 他们必不得向耶和华奠酒,即便奠酒也不蒙悦纳。他们的祭物必如居丧者的食物,凡吃的必被玷污;因他们的食物只为自己的口腹,必不奉入耶和华的殿。
  • 5 在大会的日子,到耶和华的节期,你们怎样行呢?
  • 6 看哪,他们逃避灾难;埃及人必收殓他们的尸首,摩弗人必葬埋他们的骸骨。他们用银子做的美物上必长蒺藜;他们的帐棚中必生荆棘。
  • 7 以色列人必知道降罚的日子临近,报应的时候来到。民说:作先知的是愚昧;受灵感的是狂妄,皆因他们多多作孽,大怀怨恨。
  • 8 以法莲曾作我 神守望的;至于先知,在他一切的道上作为捕鸟人的网罗,在他 神的家中怀怨恨。
  • 9 以法莲深深地败坏,如在基比亚的日子一样。耶和华必记念他们的罪孽,追讨他们的罪恶。
  • 10 主说:“我遇见以色列如葡萄在旷野;我看见你们的列祖如无花果树上春季初熟的果子。他们却来到巴力·毗珥专拜那可羞耻的,就成为可憎恶的,与他们所爱的一样。
  • 11 至于以法莲人,他们的荣耀必如鸟飞去,必不生产,不怀胎,不成孕。
  • 12 纵然养大儿女,我却必使他们丧子,甚至不留一个。我离弃他们,他们就有祸了。”
  • 13 我看以法莲如推罗栽于美地。以法莲却要将自己的儿女带出来,交与行杀戮的人。
  • 14 耶和华啊,求你加给他们,加什么呢?要使他们胎坠乳干。
  • 15 耶和华说:“他们一切的恶事都在吉甲;我在那里憎恶他们。因他们所行的恶,我必从我地上赶出他们去,不再怜爱他们;他们的首领都是悖逆的。
  • 16 以法莲受责罚,根本枯干,必不能结果,即或生产,我必杀他们所生的爱子。”
  • 17 我的 神必弃绝他们,因为他们不听从他;他们也必飘流在列国中。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호세아》 9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에서는 우리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로부터 유익을 얻으려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품고 세상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양다리 걸치는 위선적인 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에게 화가 미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듣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우리 하나님께는 매우 분명한 성품이 있으니,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며 인애를 베푸시지만,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혼란을 겪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조상의 저주를 빨리 끊어 달라고 조급하게 요청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릅니다. 그것은 끊고 싶다고 해서 그냥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조상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당신 대에 이르러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조상의 저주는 당신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에게 화가 미친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일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 셈을 해 봅시다. 엘리야 시대에는 아합과 이세벨이 통치하며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들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선지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가 겨우 칠천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다행이라거나 기뻐할 일이 아니라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단 지파, 시므온 지파, 혹은 르우벤 지파를 찾아보려 해도 흔적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단지 ‘사랑’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날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고 있습니까? 만약 순종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비참한 모습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먹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호세아》 9:2-3)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는 결핍을 겪는 것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노예가 되고 더러운 음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전자 변형 보리나 밀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거나 ‘쥐똥 하나가 국 한 솥을 망친다’고 말합니다. 만약 쥐똥으로 가득 찬 국을 끓여 준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때가 이르면 그런 쥐똥국이라도 먹어야만 하는 처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떠나시면 온갖 재앙이 꼬리를 물고 닥쳐옵니다.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호세아》 9:5)

원래 하나님의 절기는 우리 민족의 명절처럼 크게 기뻐하고 축하해야 마땅한 날입니다.

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우거지리라 (《호세아》 9:6)

하나님께 버림받은 모습은 이처럼 처참합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이런 비참함 속에 살아가며, 손대는 것마다 곰팡이가 피고, 하는 일마다 망가지며,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거처는 가시덤불로 가득 찬 방과 같고, 은으로 만든 귀한 물건 위에는 찔레가 덮여 버립니다.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호세아》 9:11-12)

이들에게는 누릴 만한 영광이 전혀 없으며, 자녀조차 낳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는 귀신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리스도인보다 더 낫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세상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자요, 다른 하나는 세상 모든 민족 아래로 떨어지는 자입니다. 후자에 속한 자들은 애굽의 노예처럼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호세아》 9:13)

에브라임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이끌어 내어 살인자들의 손에 넘겨줍니다. 참으로 기괴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토록 어처구니없고 끔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호세아》 9:14)

호세아 선지자의 표현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같은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더 주시기를 구하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도 젖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큰 고통입니다. 오늘날에도 어머니의 젖은 가장 깨끗하고 신선하며 소독할 필요도 없고 온도도 딱 맞아 아이에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배지 못하고 젖이 마른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이며, 에브라임은 바로 이러한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브라임은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세아》 9:15-17)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귀신과 맞서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데, 하물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어찌 살아남을 길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면 귀신 몇 마리쯤은 능히 짓밟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입니다. 여러분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합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여전히 열두 지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 남았으며,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유대인입니다. 나머지 지파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린 대가입니다. 유대인들이 에브라임이나 이스라엘의 다른 열 지파보다는 조금 나았기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호세아》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바로 그 나머지 열 지파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져 떠돌며 어디로 흘러갔는지, 어떤 민족이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여전히 구별되어 남아 있지만, 나머지 열 지파는 사라져 버렸으니 이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세아》가 단지 옛날 이스라엘 사람이나 에브라임 사람에게만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누차 강조했듯이, 그리스도인은 저주가 무엇인지 반드시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할 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지도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저주는 주를 믿는 자들과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던 자들을 향해 기록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한때 하나님께 버림받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애타는 마음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라고 권면해도,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밥을 먹여 주느냐?”, “공무원 시험에 합격시켜 주느냐?”, “대학에 붙여 주느냐?”라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이는 묻습니다. “레위인은 아직 남아 있나요?” 레위인조차도 사라졌습니다. 레위 지파 역시 그 열 지파 속에 섞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부 레위인은 유다에서 섬겼지만, 대다수의 레위인은 이스라엘 편에 섰습니다. 모세의 손자가 살아 있을 때에도 한 레위인이 우상을 만들었고, 단 지파 안에서 온갖 더러운 악을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가 그 시대에 전한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교회에 가서 이처럼 엄중한 말씀을 조금이라도 전해 보십시오. 아마 당장 쫓겨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시며 은혜와 긍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믿고 싶어 하기에, 《호세아》를 강해하면 내쫓으려 들 것입니다. 만약 호세아가 오늘날 선거에 출마한다면 기탁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처참하게 낙선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대목을 나눌 때면 제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똑똑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첫 번째 이유는 ‘이방인과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호세아》 9:1)

이방인의 기쁨이란 그저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돈을 버는 데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이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이방인의 기쁨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파는 일에만 온통 매달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살지 않으면 세상에서 신선이라도 되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반문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더러 날개라도 돋아난 듯 현실을 도피하는 도인이 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논리 체계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세상에는 기뻐하고 즐길 만한 일들이 널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첫 번째 원인은 사람의 내면에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논리 체계가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여기며, 자기 안의 가치 체계로 사물을 판단하는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이 됩니다. 곧 ‘이방인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바울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자들을 건져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두 번째 이유는 ‘기브아 사람들과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호세아》 9:9)

기브아는 극도로 음란했던 곳입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한 남자가 집을 나간 첩을 데리고 돌아오다가 기브아의 한 숙소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브아 온 성읍의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남녀를 불문하고 그 첩을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밤새 윤간을 당하고 숙소 문지방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시신을 열두 토막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냈고, 격분한 열두 지파가 기브아 사람들을 치러 왔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비록 용맹하게 싸웠으나 결국 멸망하여 겨우 수백 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이 행한 짓이 바로 기브아 사람들이 저질렀던 악행과 다름없었습니다. 그것은 패역한 죄악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자리 잡으면, 그가 누리고 기뻐하는 모든 것들이 기브아 사람들의 방탕한 쾌락과 같아집니다. 그러나 기브아의 쾌락은 민족 전체가 멸망하는 결과를 낳았고, 지파 전체가 몰살당할 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브라임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에브라임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약육강식에 찌들어 있었고, 노아의 시대처럼 강포로 가득 차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방인과 같고 기브아 사람과 같아졌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온갖 재앙이 넘쳐났습니다. 날마다 사악한 영을 불러들이고 정욕과 탐욕으로 가득 차 결국 온갖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러고는 병이 들자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러실 수 있는가?”라며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비극이었습니다. 이방인처럼 행하고 기브아 사람처럼 굴며 온갖 죄를 짓고 재앙을 자초했으면서도, 염치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받을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가 하나님께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의 비극입니다.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풍성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도록 극히 경계하며 우리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악한 자들은 회개할 줄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전도자도 매우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원인은 첫째 이방인과 같아짐이요, 둘째 기브아 사람과 같아짐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만나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자,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 전도자는 뇌종양에 걸렸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뼛속 깊은 곳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제가 예전에 만든 말이 있으니 여러분 뇌리에 깊이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들 안의 논리 체계가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제가 늘 “내가 바로잡지 못했으니 내가 회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도자는 뇌종양에 걸린 채로도 끝내 깨닫지 못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가 내뱉는 말의 숨은 뜻을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우리 지체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것입니다. 제가 그를 섬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역자들은 일주일에 겨우 하루밖에 쉬지 못하니, 그래서 병이 난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다가 뇌종양에 걸렸느냐고 묻자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너무 열심히 섬기다 지쳐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고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뼛속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전도자는 암에 걸렸는데, 의사가 치료 확률이 60%인 저렴한 약을 권했습니다. 그 약을 썼지만 차도가 없자 그는 하나님께 왜 자신이 효과를 보지 못한 40%에 속하게 하셨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정작 그가 돌아보아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의사는 약효가 없자 성공률이 90%에 달하는 비싼 약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나머지 10%에 속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하나님! 어찌하여 내게 이러십니까?”라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심을 잊은 채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그런 죄를 문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어야 하거늘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사냥꾼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망이 있도다 (《호세아》 9:7-8)

이 말씀의 맥락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집에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선지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징벌과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선지자를 어리석다 조롱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를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사고방식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악이 얼마나 큰지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왜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렇게 대우하시느냐며 원망만 품었습니다.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사냥꾼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망이 있도다”라는 구절은 영어 번역을 참고하면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깊은 원한과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네 번째 이유는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호세아》 9:10)

하나님께 버림받은 네 가지 이유를 다시 정리해 봅시다. 첫째는 이방인처럼 됨이요, 둘째는 기브아 사람처럼 됨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함이요, 넷째는 바알을 숭배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섬긴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사람이 왜 바알을 섬길까요? 하나님을 섬기려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만, 우상을 숭배할 때는 말씀에 순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길을 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길이 너무 좁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살다가는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들 안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도 경고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미 얼마간의 징계와 크고 작은 재앙을 겪었다면,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더 이상 그 길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바알 숭배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는 분명한 요구 조건이 따르며 그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기준이 더 높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신약의 요구가 훨씬 더 높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안식일을 지켜야 하느냐고 묻고는 안식일을 하루 지키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날마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여전히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품고 세상의 하찮은 것들을 위해 살아간다면, 머지않아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합니다. 진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그것은 이방인의 가치 체계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가치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가치 체계를 온전히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선지자가 경고했으나 그들은 선지자를 멸시했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어야 하거늘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사냥꾼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망이 있도다 (《호세아》 9:7-8)

선지자들이 엄히 경고했음에도 그들은 선지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자기 의에 빠져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확신하며,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러시는지 원망을 쏟아냅니다. 명백히 틀렸음에도 하나님과 끝까지 힘겨루기를 하려 드니, 대체 어디까지 가 보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의 힘겨루기에 연연하실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감히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요 원망일 뿐입니다.

“늘 내가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 이 말은 참으로 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경고를 멸시하지 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며, 혈기를 부리지 마십시오.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내 안에서 사악한 고집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악한 기운은 악한 영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200여 년 역사 속에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뿐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가 경고했습니다. 호세아는 그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도 선지자들을 멸시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만 옳다는 말이냐?”라며 대들었습니다. 심지어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두고 하나님이 시키셨다는 핑계를 댄다며 비아냥거리고 조롱했습니다. 그런 패역한 백성을 상대해야 했던 선지자들이 겪은 억울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찾아와 경고해 줄 때, 우리는 ‘경고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다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닥쳐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미련하게 버텨서는 안 됩니다. 저주의 열매가 맺히면 고스란히 자기가 먹어야 합니다. 죄를 심는 동안에는 선지자가 와서 경고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견해가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멸시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각과 관점은 세상의 기준도 아닐뿐더러 설령 세상의 기준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기준은 아닙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더라도 귀를 기울여 듣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완전히 패망하여 고통받는 날이 오기 전에, 고집을 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품으십시오! 마귀는 사람을 속여 사악한 길로 끌고 간 뒤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죽이려 하신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끝끝내 죽음의 길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그 죽음의 길을 열어 주시고 오히려 그 힘을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 떠돌 것이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세아》 9:17)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열 지파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나았던 유다 백성조차도 열방 가운데 내던져져 방황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시대부터 그들에게 경고하셨고, 여호수아와 사무엘, 그리고 수많은 사사들과 그 뒤를 이은 선지자들을 보내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백성들은 듣기는 들었으나 도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기 고집이 너무 강하여 기어이 열방을 떠도는 신세를 자초한 것입니다. 이를 보면 실로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제가 왜 이토록 간절히 말씀드리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고 부드러워져서, 선지자의 경고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깊이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애초부터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나 제멋대로 굴며 각기 제 길로 치우쳐 방자하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듭 기회를 주셨고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셨지만, 그들은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길로 거듭 빠져든 까닭은 오직 세상의 논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살아가면서 금은보화를 그저 휴지 조각처럼 여길 수 있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역시 문득 생각을 잘못하면 혼란에 빠질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길에 밝은 빛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은 결코 무책임하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분명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거듭 주십니다. 그러나 거듭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역한다면, 결국에는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는 순간이 오고야 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수없이 경험하고도 거듭해서 하나님을 거역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도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대체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길로 힘써 걸어가야 합니다. 아귀다툼하며 억지로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좁고 험하여 찾는 이가 적으므로 복잡하거나 막히지 않습니다. 걷는 이가 적은 그 좁은 길에 속한 적은 무리가 된 것을 저는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온전히 내어버리기를 강력히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그 길은 언뜻 대가를 치러야 하는 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겉보기에는 죽어가는 것 같으나 영원 안에 살아 있는 길이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 같으나 지극히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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