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류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2: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과 교회와 함께하십니까?
3:사람에게 진정한 안식이란 무엇입니까?
4: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답변: 다음 네 가지)
첫 번째: 하나님께서는 일을 계획적으로 하십니다.
4.1. 질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미혹하는 일을 택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이 미혹될 것 같습니까? 어떤 일들이 미혹될 것 같습니까?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택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4.2. 질문: 하나님께서 정말 당신을 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예언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네 번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예언 가운데 모든 것을 미리 안배하십니다.
서론
《마태복음》은 한 유대인이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보았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마태가 기록한 내용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대인들이 읽으면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아니라면 성경의 구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마태복음》 1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조금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았으며, 계속해서 다윗까지 이르렀고, 다윗부터 스룹바벨까지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익숙하지 않다면 읽으면서 ‘왜 외국인 이름만 이렇게 많이 나오지?’라고 생각하게 되고, 읽기가 매우 힘듭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도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몰라 그냥 건너뛰었습니다.
그러나 마태가 기록한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계속 읽어 내려가면 《창세기》부터 《마태복음》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은 족보를 기록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과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입니다
마리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였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임신을 했습니다. 이 일을 조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도 2,000년 전으로 돌아가 누가 아이를 잉태하게 했는지 조사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한 여자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했으니, 이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 요셉이 보니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버리고 몰래 약혼을 파기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0-23)
참, 요셉은 정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사람이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뭐라고? 꿈을 하나 꿨다고 내가 믿어야 해?’ 하지만 요셉은 믿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꿈을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었고, 꿈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었습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24-25)
이것이 《마태복음》 1장입니다. 《마태복음》 1장을 다 읽고 나니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참 좋은데, 예수님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장을 어떻게 성경공부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이 장의 주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알고 보니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매우 원하십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매우 적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 하나에 쓰러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03년 사스 때 그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사람이 정말 이긴 것입니까, 아니면 이기지 못한 것입니까? 만약 오늘 사스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난다면 사람에게 방법이 있겠습니까?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한 번 나타나고 사스와 비슷하다면, 우리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기지만 하나님이 아니라면, 얼마나 힘들게 살게 되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문제가 되겠습니까? 분명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보세요. 어떤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사실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주제를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떤 사람과 함께하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신다면, 오늘 당신이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인터넷에서 한 자매의 글을 보았습니다. 정말 너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해도 삶에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 괴로움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함께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지 알아내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어 내야 할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지 안다면,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보았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바이러스에 쓰러지신 것을 보았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시다가 굶어 죽으신 것을 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정합시다.
이 일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까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여호와께서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66:1-5)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성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십니다.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나님께 안식이 필요하십니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이 안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안식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하고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웠지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이며 자기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문제는 당신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만나는 작은 일들 때문에 떤다면 어떻겠습니까? 상사가 한마디만 해도 떨고, 동료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집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괴로워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일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지는 않습니까? 그들이 자기의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지 않으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면 다니엘과 같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총리가 되었어도 일을 하는 데 압박을 크게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주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는데, 당신이 해결해 주면 안 됩니까?” 제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안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안식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은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은 사랑의 관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로 인해 크게 만족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면 사람도 크게 만족합니다. 우리 중국인에게는 ‘천인합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이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최고의 경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인합일에 이르게 됩니다.
한 가지 소식을 받았습니다. 한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많은 사람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과학자들이 빨리 약을 발명하게 해 달라고 축복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또 기도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나 영적 전쟁을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서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본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더없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미 하나님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날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날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속의 계획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까? 간혹 몇 사람과 함께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함께하지 않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일은 《창세기》부터 《마태복음》까지 매우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일을 다시 검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에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매우 간단합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조사하고 검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의 아이가 죽었는데 예수님을 모셔 오면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세상에는 매우 뛰어난 인물들이 많지만, 예수님처럼 능력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도록 참되고 살아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합니다. 우리는 기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말 더없이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계획적으로 하십니다
저는 웹사이트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댓글을 남기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닮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는 계획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화성 소년’과 같은 일을 보았다고 해서 흥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인류의 역사를 매우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끝이십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쓰레기처럼 유황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택하시고 사람을 통해 계획을 이루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이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모든 것을 안배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시대에도, 노아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마치 우리 가정에서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하면, 미리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며 기쁨으로 아이가 태어날 날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와 같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도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오늘 당신과 제가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안배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말하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알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적으로 일하십니다. 《창세기》를 자세히 보면 첫째 날에는 무엇을 하고, 둘째 날에는 무엇을 하고, 셋째 날에는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게 안배하셨으며,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어떻게 안배할지 모두 완벽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려면 매우 계획적으로 해야지,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어떤 전도자가 하루 종일 성령의 감동만 따라 일하는 것을 본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즉흥적으로 감동을 주시고 내일 또 즉흥적으로 감동을 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동이 있습니까? 감동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시대에 이르러 그는 우리에게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만하게 알아야 하며, 깨달음으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깨달음 가운데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음으로 설명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깨달음으로, 곧 머리와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어떻게 본받을지 알게 되며, 흐리멍덩하게 일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잠깐 졸으셨다면, 노아의 가족은 미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에서 깨어나 방주를 찾아보니 방주도 없고 노아도 없으며 모두 미라가 되어 있다면 큰일일 것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백성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하시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안배하십니다. 노아의 가족이 언제 방주에 들어가고 언제 방주에서 나오며, 방주에서 나온 후 어떻게 할 것인지 모두 분명하게 안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자세히 읽어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모든 것이 매우 잘 계획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도 매우 잘 계획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성령으로 잉태했는데 요셉이 갑자기 그녀를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계획이 없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의 지파 가운데 계획을 세워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야곱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베레스와 세라로, 베레스에서 헤스론으로, 다시 다윗 왕으로,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그리고 스룹바벨을 거쳐 마침내 다윗의 자손 요셉에게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네 아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름까지 미리 정해 두셨으니,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매우 세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매우 세밀하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일은 한 선지자가 말한 예언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의 후손이며, 대부분 아버지의 성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수하게 여자의 후손이십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반 사람들과 다르며,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후에 저는 우리도 성령 안에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계속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때부터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마태복음》에서 그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이사야》에도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7: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누리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이며,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좋아하시며,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사람을 택하고 계십니다.
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시고 “너를 택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한두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백만 명, 이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브라이언은 매우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첫 번째나 두 번째로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네 번째로 택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앞의 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사람을 택하십니다. 사람을 택하신 후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겠습니까? 브라이언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을 찾으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후에 저는 싱가포르의 몇몇 중국인들이 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서 제가 하나님께 네 번째로 택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다섯 번째 사람을 더 찾으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소수의 사람을 일으키셔서 성경의 진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 안에는 잘못된 생각이 매우 많습니다. 그중 가장 큰 잘못은 예수님을 닮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신학 체계는 아직 그다지 유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셔서 이러한 신학 체계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렵지 않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도 해결하셨는데, 이 일이 어렵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틴 루터를 택하여 종교개혁을 하게 하신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 교회는 마틴 루터 시대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돌아가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돌아가려면 바울 시대까지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야말로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저를 택하셨다면, 한 사람이 평생 이런 좋은 일을 만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여러분은 우연한 기회에 우리 가운데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르심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름다운 뜻을 이루도록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장차 저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믿음의 길을 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후 이삭, 야곱, 요셉은 모두 믿음의 길을 보여 준 본보기였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저는 《창세기》 38장에서 다말의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다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장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태복음》 1:5-6)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택하시고, 이 사람들을 통해 대대로 이어 가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은 중국어에는 단수와 복수의 개념이 없지만, 원문에는 단수와 복수가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는 한 여자의 후손을 가리키며,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그 성전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을 택하시며 스룹바벨에 이르기까지 이어 가셨습니다. 《말라기》와 《학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이후에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후대에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젊은 여자에게 말씀하셔서 임신하게 하고 아이를 낳게 하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창의적이십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뜻밖에도 동의했습니다. 이것도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도덕 기준에 따라 사람을 택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는 것을 좋아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택하셨는지, 아니면 택하지 않으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말하는 것만 듣지 말고, 제가 하는 일을 보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닮기를 매우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 가고 점점 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이미 미래의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사야 시대에, 아담과 하와의 시대에 예언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때가 되자 성경은 예언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23) 마리아는 이 구절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정말 놀랍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마리아는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나의 구주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마음껏 사용해 주세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녀를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하셨습니다. 이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사명신학이라는 것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릭 조이너가 쓴 《마지막 전쟁》이라는 책은 선지자적인 계시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은 릭 조이너가 본 환상과 거의 같습니다. 그 환상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진리를 알아 가는 일에서 계속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의 힘이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마귀와 원수는 철저히 우리의 발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치유와 축귀는 일반적인 은사주의 교회에서 하는 치유와 축귀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치유와 축귀는 신비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정상에 계속 올라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능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정상에 오르는 것은 깨달음으로 계속 하나님을 알아 가며 끊임없이 돌파하는 것입니다! 계속 올라가면 영적 전쟁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은 정말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치유와 축귀에는 성경에 부합하는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가 말하는 신학 체계를 하나씩 추상적으로 정리하여 ‘사명신학’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사명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 이름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할 때 분명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릭 조이너가 또 한 부분을 말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중국에서 소수의 사람을 일으키셔서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고 기독교 신앙 안의 잘못된 이론을 제거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인을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흥분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미 예언하셨군요! 이것은 바로 우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빛을 발견할 때마다 저는 매우 흥분합니다. 오늘날까지도 매 주일 새로운 논문을 한 편씩 발표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예전의 설교 원고를 다시 읽지 않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미래의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은 매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을 택하셨고,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저를 택하고 계십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고 뜻을 완성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 당신의 직장보다, 사업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당신의 직장과 사업과 가정은 장차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예언을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이 기회를 굳게 붙드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사람을 택하고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정말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모두 우리의 발 아래 짓밟히고 있으며, 음부의 권세도 모두 우리의 발 아래 짓밟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도 한 걸음씩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노아가 평안히 방주 안으로 들어가도록 안배하신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평안히 이삭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요셉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요셉이 평안히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히게 하셨으며, 후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 시대에는 다니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열심히 자신을 성장시키고 배우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았고, 마침내 바빌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마리아를 택하셨습니까? 마리아의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일이 정말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하십니다. 이 일은 보기에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일을 조금씩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나타내십니다. 예전에 이 두 권을 읽을 때는 어지럽고 흐릿했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와 대조해 보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정말 매우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참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 있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는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인도하면서 한 가지 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 자매가 꼭 확성기를 사용해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온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기도했고, 결국 건물 관리인이 문을 두드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그렇게 기도해야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의 사명신학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반드시 깨달음 가운데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