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스라서》에 대해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라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말해주려는 것일까요? 사실 《에스라서》는 고레스 왕(키루스 왕이라고도 합니다)이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으로 파송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에스라 시대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방인과 통혼한 많은 가정을 갈라놓았고, 제10장에 이르러 이 통혼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뒤 마무리됩니다. 당시 에스라는 매우 어려운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는 이방인과 통혼한 이 가정들을 갈라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오는 것이지, 결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거나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들은 "목회자님, 저도 평소처럼 모임에 참석하고 이것저것 다 잘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결코 자신이 유대인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대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 중 하나입니다. 그들도 해내지 못한 것을 다른 민족이 해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화인들은 유대인보다 못합니다.
《에스라서》 요약의 주제는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것 또한 일상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귀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이 귀에 들어온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들리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왜 유대인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말할까요? 유대인들은 세상에서 이리저리 내몰리며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약 화인들에게 돼지고기나 이런 부정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못 지킵니다.
홍수가 났을 때 온 가족이 소의 등에 타서 구원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소가 온 가족을 살렸기에 그 세대는 다시는 소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노인의 아들이 "왜 소고기를 먹으면 안 돼요? 먹어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화인들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농담조로 "이것도 못 먹고 저것도 못 먹고! 그걸 왜 지키고 앉아 있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화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화인이었다면 뱀이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봐봐, 얼마나 좋아! 먹으면 지혜로워질 거야"라고 했을 때, 제 생각에 화인들은 그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와 그 뱀을 함께 고아서 먹어버렸을 것입니다. 참, 화인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바빌론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하나님께서는 70년 후 구원을 받는 은혜를 주셨다
에스라는 스룹바벨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조금 더 앞선 시기에 유대인의 나라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바빌론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후 하나님께서는 유다 사람들에게 70년 후에 구원을 받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빌론이 대단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대단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대단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바빌론을 보내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셨을까요? 유다 왕국이 거듭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며,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국에서는 많은 선지자가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사야서》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은 모두 대단한 선지자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대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모두 유다 왕국 출신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유다 왕국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중 이사야는 톱으로 켜짐을 당했고,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던져져 수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을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사람들의 죄를 물으시며 바빌론으로 하여금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유다 사람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70년 후에 구원을 받아 유대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70년이 지났는데 유대인들의 나쁜 버릇이 고쳐졌을까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멸망당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고, 70년 후 스룹바벨이 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말할까요?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인데,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또다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왜 《에스라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일까요? 에스라의 모든 기록은 스룹바벨 시대로부터 에스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는 이 사람들을 거울삼아 결코 우리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더 악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기회가 생겨도 세상의 체계를 따라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왜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시기 전에 먼저 에스라를 보내어 이 일들을 처리하게 하시고, 회개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뒤로 미루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초하루는 넘겨도 보름은 넘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바빌론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70년 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포로 생활을 겪으며 고난을 당하고 쓴맛을 본 뒤, 돌아왔을 때 "우리가 교훈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역사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은 인간은 결코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참 맞는 말입니다.
70년 후,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다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본래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가 바빌론에서 노예가 되었는데, 이는 매우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70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바빌론을 다시 멸망시키셨습니다. 바빌론을 대신한 것은 페르시아 제국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이란이라고 하는데, 페르시아와 이스라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초대 고레스 왕이 스룹바벨을 돌려보냈고, 그 시대에 다니엘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가 되었으니 다니엘 역시 대단했습니다. 당시 스룹바벨은 수만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금 그릇과 은 그릇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라서》는 왜 이 일을 기록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십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식대로라면 "그냥 집어치워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이 데리고 돌아간 그 무리를 또다시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매우 해괴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러 돌아가 기초를 닦았으나, 황제가 캄비세스(고레스 왕의 아들)로 바뀌었습니다. 그 역시 꽤 강력한 왕이었는데, 건축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와중에 고자질을 하던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은 하나님께 제거당했고, 새로운 총독이 부임했습니다.
16년이 지난 후, 학개와 스가랴가 다시 유대인들을 격려했습니다. 이 16년 동안 스룹바벨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또다시 자기 일에 바빴습니다. 그들에게 어찌 건축할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스룹바벨이 돌아간 후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캄비세스 왕이 건축 중단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사가 중단되니 참 좋구나! 황제가 짓지 말라고 명령했으니 날 탓할 수는 없지. 빨리 집에 가서 내 집이나 짓고 인테리어도 하고 천장도 바르고 벽도 세워야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삶을 아주 잘 꾸려나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저주하셔서 저주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학개서》는 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너희가 저주 가운데 살고 있다.' 그래서 이번 나눔의 주제가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 시대에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에서 벗어나라고 그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짓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슨 성전을 짓는단 말인가? 내가 어디에 시간이 있는가? 내가 이렇게 바쁜 게 보이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이스라엘 무리는 포로에서 돌아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리 벌써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당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늘 하나님의 진노를 주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어디에 나타날까요? 첫째는 재정적인 손실입니다. 본래 열 말을 수확할 수 있었는데, 베고 나니 어째서 다섯 말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요? 곡간에 들이고 나니 어째서 두 말밖에 남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로 불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건강입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맞서 싸우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당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고자 하신다면, 비록 여러분이 보기에 하나님이 부당해 보일지라도 어디 가서 따질 곳도 없습니다. 저에게 와서 하소연할 수는 있겠지만, 제가 여러분의 말이 옳다고 여긴다 한들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제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야 할까요, 아니면 형제자매들을 엄격하게 요구해야 할까요? 이는 늘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하거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길 때, 목구멍까지 말이 차올라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16년 동안 중단된 후 다시 건축하다
공사가 중단된 이 16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16년 동안 공사가 멈춘 것은 이들에게 엄청난 은혜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이를 두고 "주님께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놓은 뒤 16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어 16년의 세월을 낭비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애초에 여기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건축하면서도 불평을 늘어놓았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캄비세스 왕을 일으켜 건축 중단 명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원수가 성전 건축을 가로막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4년 동안 고작 기초 하나만을 세웠으니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그야말로 "시간 때우기"를 했던 것이고,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캄비세스 왕으로 하여금 중단 명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마치 우리 형제자매들이 사역을 하거나 양육을 할 때 그들의 태도를 보며 제가 화가 나서 "집어치워라, 할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16년 동안 공사가 멈췄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는 여전히 쌓여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진노를 억누르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번에 짓밟아 죽이셨다면 끝났을 일이지만 짓밟지 않으셨고, 그 멍청한 유대인들이 자기 일에 바쁜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양식과 재물과 건강을 불어 날려버리셨습니다. 스가랴와 학개가 외친 것이 바로 이 일이었습니다.
16년 후에 그들은 다시 건축을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성전이 완공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했을까요? 사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한 것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총독이었으니 그가 명령을 내렸는데도 하지 않으면 매를 맞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한숨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건축이 끝난 후 유대인들은 무엇을 하러 갔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온갖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현지의 토착 세력인 사마리아 사람들과 통혼하고 장사하며 돈을 벌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성전은 여전히 황폐했습니다.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인내하시고 해마다 기다리시며, '언제쯤 나의 이 패역한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지혜로운 자가 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 어떻게 먹고산단 말인가? 내게 무슨 시간이 있는가? 내가 얼마나 피곤하고 바쁜지 아는가? 일도 해야 하고 출퇴근도 해야 하는데 어디에 시간이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여러분이 그토록 가난해지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질병에 걸리겠습니까? 설령 많은 질병에 걸렸다 한들, 진정으로 회개했습니까? 입으로 내뱉는 "회개"는 그저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고 온갖 방법을 다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늘 우리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은 세상으로 너무나 쉽게 휩쓸려 갑니다.
결국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고 계신다고 선포하자, 그들은 "아이고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을 하십니까? 왜 나를 저주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별수 없습니다! 부러진 팔로 하나님의 허벅지를 꺾을 수 없으며, 여러분의 허벅지로도 하나님의 새끼손가락 하나 꺾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휴, 그럼 건축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4년 동안 건축했지만 얼굴빛은 어두웠고 아침마다 찌푸린 얼굴로 성전을 지으러 갔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정말로 그들을 짓밟아 죽이고자 하셨다면, 그런 낯빛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완공하고 나자 그들은 "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노역을 끝냈다"라고 하며 다시 돈을 벌러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멸망당했을 때 그들이 교훈을 얻었습니까? 얻지 못했습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까? 조금만 고생스러우면 불평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 자기 집을 짓는 시간을 빼앗는다고 느끼기만 하면 마음이 괴로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공사를 멈추게 하셨고, 4년 뒤 다시 건축할 때도 그들은 억지로 마지못해 어두운 얼굴로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이끌고자 하시지만 우리는 기어코 저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사실 이것은 '은사주의 교회'냐 '전통 교회'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며, 사람의 중심에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이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스룹바벨이 데리고 온 그 무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생일을 축하하고 파티를 열며, 현지의 '격이 맞는' 가문들과 통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과 대부호가 통혼하며 사이좋게 지냈고 현지의 유대인들을 착취했습니다.
예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마음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진노를 나타내셔야 "내가 고치겠습니다, 당신이 대단하시니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코를 쥐어짜듯 마지못해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며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임을 알고 계십니까?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언제 똥을 싸고 언제 오줌을 누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압니까? 여러분도 모르고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미래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반드시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며칠 전 어떤 목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검사를 받아보니 암에 걸려 지금 치료 중인데, 사람들은 그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만약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보내졌을 때 이 일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암에 걸렸을 사람은 바로 에스라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늘 어려운 선택이 따릅니다.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건축하여 4년 만에 완공했지만,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습니다.
62년 후, 하나님께서 다시 에스라를 파송하시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임하려던 참이었는데, 임하기 전에 요나가 니느웨로 갔던 것과 같았습니다. 보십시오, 유다 왕국이 멸망한 지 70년 만에 스룹바벨이 귀환했는데, 이때가 기원전 538년이었습니다. 중간에 16년간의 공사 중단 기간과 4년간의 건축 기간을 거쳐 눈 깜짝할 사이에 62년이 흘렀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에스라를 보내셨습니다. 아,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에스라는 매우 인간의 상식에 반하는 일을 행했는데, 바로 이방인과 통혼한 자들을 모두 갈라놓고 자녀들도 거두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통혼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사소한 일들을 위해 살아가는 등 수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의 한평생은 길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여러분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수고와 슬픔뿐이며, 하나님의 진노뿐입니다! 저는 자주 마음이 아픕니다. 수많은 중환자를 섬겼지만 섬김을 받고 나서도 정작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 고집과 찌꺼기들'은 여전히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결코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지 끝내 알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지 않도록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때가 기원전 458년입니다.
기원전 538년부터 기원전 458년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80년이 흘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던 첫 세대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에 전혀 가 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가까스로 성전을 완공했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자기 삶을 살러 가버렸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실 때의 모습이나 스룹바벨과 에스라 시대 유대인들의 모습이나 여전히 똑같았으니, 사람이 변화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간이 크다면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간이 작다면 하나님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쓸데없는 소리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돌려보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 문제를 해결하고,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이 간이 작다는 것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차라리 그 간을 아예 버리고 기꺼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우리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 안의 '불순물과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 안의 것들이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그 고난이 지나갔다고 해서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우리 중에 극심한 고난을 겪었던 형제자매들은 지금 거기서 벗어났든 그렇지 않든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바빌론으로 옮겨졌으니 고쳐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바빌론에서 돌아왔을 때는 고쳐졌을까요? 역시 아닙니다. 성전을 다시 지었을 때는 고쳐졌습니까? 여전히 아니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으로부터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나타내시기 전에 에스라를 보내어 바로잡으시며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습니까? 아닙니다! 《에스라서》는 바로 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들의 다음 이야기는 매우 비참했습니다. 강제로 끌어내고 떼어놓는 것이 마치 강제 철거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가정을 지키려 했지만 에스라가 보낸 군사들은 거침없이 빼앗았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온통 통곡과 절규로 가득 찼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아내는 끌려 나와 친정으로 쫓겨났는데 친정 형편이 괜찮다 하더라도 부부간의 정이 깊어 헤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쪽에서는 아내가 콧물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부르고, 저쪽에서는 남편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아내를 부르는데 결국 끌려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미련이 남아 끊어지지 않는 법'인데 과연 갈라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나중에 이방인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매일 남의 집 문 앞에 서서 감시할 수 있겠습니까? 다 감시할 수도 없었고 몰래몰래 아이를 보러 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는 것이 다소 인간의 상식에 반하는 것 같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속한 것은 지극히 상식에 맞기 때문에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께 속한 것은 정말로 비합리적이며 인간의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것 역시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부모와 아내와 자녀를 버려야 한다." 이것이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몇 명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으십니다. 다윗도 야곱도 많은 아내를 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경 쓰시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제가 에스라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할까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느헤미야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14년 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되다
느헤미야는 《말라기서》를 쓴 말라기와 같은 시대 사람이고, 스룹바벨은 학개, 스가랴와 같은 시대 사람입니다. 기원전 444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고, 하나님의 성전은 몹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여전히 토착 세력들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토착 세력과 유다의 대제사장은 사돈을 맺고 현지의 권력자이자 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도 돌아가서 이 벌집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십여 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당시 에스라도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해결할 수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벽을 건축할 마음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현지의 총독으로 파송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사람이 복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은 어찌 이리도 어렵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삶을 사는 것은 어찌 이리도 쉬운 것일까요? 사람은 왜 기어코 하나님의 진노를 사려 하는 것일까요?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병든 것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어떻게 왔겠습니까? 여러분이 자꾸만 자기 일신만의 안위를 챙기며 살려 하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논리는 얼마나 단순합니까!
성경 전체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줄곧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이 내용을 기록해 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겠습니까?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