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사탄은 말을 아주 "잘하고" 매우 "부드럽습니다". 사탄과 예수님의 대화는 고수들의 대결이었으며,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결코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아녀자들의 말싸움이 아니었습니다.
- 사탄은 사람의 생각을 헤아려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 사탄은 깊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뜻대로 살고 육신으로 사는 일에만 마음을 쓴다면, 그것은 곧 사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사탄을 대적하려면 반드시 "죽음"에 대한 사람의 이해를 해결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사람의 이해가 예수님의 이해와 다르다면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2. 본문 말씀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16:21-28)
3. 기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신으로 살아가는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영원 안에 있는 영광을 택할 것입니다!
4. 본문 배경
-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떡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 베드로 안에는 두 가지 체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그의 반응은 "결코 그리 마옵소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 안에 있던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5. 사탄은 오직 사람의 생각만을 헤아린다
- 사람의 뜻과 생각을 헤아리는 모든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헤아려 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잊게 하고 유골함을 잊게 만듭니다.
- 사탄이 사람을 위하는 것은 사람을 파멸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배려입니다. 예를 들어 치매나 학습 장애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지혜로워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그 안에서 사람의 생각을 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6.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 사람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확립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 사탄이 사람에게 주는 생각은 모두 사람의 뜻을 위하는 데서 출발하며, 육신으로 사는 것만을 준비하게 합니다. 사람이 이를 따르면 결국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7.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1: 예수님을 따름
- 예수님이 전하신 것은 영생에 뿌리를 둔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 사람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며, 반드시 사탄의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8.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2: 자기를 부인함
- 육체는 한낱 가죽부대에 불과하며 육은 무익합니다.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던 것들을 오늘날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 자신을 너무 위하는 사람은 남이 무슨 말만 해도 기분이 나빠 맞받아치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남과 말다툼하지 않고 맞서지도 않습니다.
9.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3: 자기 십자가를 짐
-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 큰 오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주님을 믿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 육신을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길을 가려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처리해야 합니다.
10.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4: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침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 하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11.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5: 재물과 명리를 꿰뚫어 봄
-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유골함이 여러분의 결말이 아니며, 영원한 영광이 여러분의 결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12. 결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함
-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광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 영원한 소망을 품게 되면 육신으로 사는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며, 사탄을 땅바닥에 내리쳐 짓밟을 수 있습니다!
핵심 단어
- 예수님을 따름
- 자기를 부인함
-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함
- 사람의 생각을 헤아림
- 육신의 정욕
- 안목의 정욕
- 이생의 자랑
-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
- 재물과 명리를 꿰뚫어 봄
- 자기 십자가를 짐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의 제목은 사탄과 관련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사탄에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깁니다. 과거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영적 전쟁을 시작하며 용을 잡는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소년의 드래곤 슬레이어 이야기 같았지요. 당시 교회 안에 용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자기가 티라노사우루스라고 외쳤고, 또 다른 사람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교회 안이 무슨 아시안게임 경기장처럼 변해서 그들은 뛰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은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참 흥분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속으로 '드디어 용을 잡다가 사탄을 만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이 용들은 다들 허세를 부리는 것을 좋아해서, 알고 보면 작은 도마뱀에 불과했고, 또 싸우다 보면 지렁이 같은 용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귀신들도 큰 척하기를 좋아합니다. 잔챙이 귀신이 염라대왕 행세를 하는 격이지요. 그렇게 이리저리 부딪히며 '아, 이제 사탄을 거의 다 잡았구나' 싶어 흥분했다가도 가짜임을 알고, '아, 또 사탄을 잡았구나' 했다가 또 아닌 것을 알게 되어 헛물만 켰습니다. 그래도 매번 그런 긴장감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도대체 사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탄아, 나와서 한판 붙자!" 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깊이 숨어 있었습니다.
저는 '사탄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빨을 드러내고 흉측하게 생겼을까? 아니면 괴상망측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 사탄은 대단히 아름답게 생겼습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말도 아주 잘하고,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춰 주며, 매우 부드럽습니다. 사탄은 아주 신사적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흔들지 않았습니다.
두 여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싸우는 것은 동네 아녀자들의 싸움이지 사탄이 아닙니다. 사탄은 아주 신사적인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보십시오, 사탄이 얼마나 신사적입니까? 그렇게 세 차례의 대화를 나눈 뒤 사탄은 물러갔습니다. 멱살을 잡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얼굴을 팬더처럼 멍들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고수들의 대결은 원래 이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해결된 문제가 많을까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을까요? 당연히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해결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는 분수를 압니다. 영적인 수준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것을요. 수준이 충분했다면 정말 사탄의 정수리를 쳤을 것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을 보며 저는 힘써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람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은 왜 이리도 둔하고 어리석을까요? 바보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관찰하다 보니, 결국 사람 자신이 자기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사탄의 급소를 짚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일까요? 사탄은 사람의 생각을 헤아려 주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여러분은 언제 몹시 화를 냅니까? 회사에서 강등을 당했을 때 친구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찾아가 따지려 들지 않습니까? 사탄도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은데, 여러분은 그 계략에 놀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탄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사탄의 대화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이 40일을 주리셨을 때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제가 젊어서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는 '바꾸면 될 거 아니야? 못할 게 뭐야? 안 믿겨? 내가 하나 바꿔서 보여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제 수준이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4)
저는 '예수님, 그냥 돌을 빵으로 바꿔서 보여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잖아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주님이 어떻게 사탄을 이기셨는지를 깊이 묵상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도발할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칠병이어로 4천 명을 먹이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때는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때로는 행하시고 때로는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로 위대하십니다. 사탄과의 대화는 전부 고수들의 대화였습니다. 사탄이 예수님과 나눈 몇 마디 대화가 다 이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1-23)
오늘 우리가 나누는 설교 제목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5-18)
한순간에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시고, "베드로야, 이것을 알게 한 이는 네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들을 때는 베드로가 참으로 영적인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사탄이라 부르시기도 하고, 조금 전에는 빛의 천사 같더니, 베드로는 마치 두 얼굴의 사람이 된 듯합니다. 사람은 평생 살아가는 육신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베드로 역시 육신으로 살아가는 일에 지극히 얽매여 있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무슨 말을 했기에 사탄이 되었을까?'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역시 고수들의 대결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일, 사람의 뜻만을 헤아리는 것이 곧 사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사탄의 정체를 파악했습니까? 여러분이 사람의 생각만을 헤아리고, 평생 사람의 뜻에 의지해 살아간다면 큰일입니다. 틀림없이 사탄의 수하에 있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사탄과 바보가 한 묶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 안에 사탄이 있고 사탄 안에 여러분이 있게 됩니다. 마치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처럼 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각만 헤아리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동창들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합니까? 사람의 말을 합니다. 무엇을 헤아립니까? 사람의 생각입니다. 옛 친구들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합니까?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의 생각만을 늘어놓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깊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사람의 뜻대로 살아가는 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사탄의 손아귀 아래 있게 됩니다. 가족들이 모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이야기, 차 이야기뿐입니다. "내 차는 자율주행이 돼",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 기술이 대단해", "신에너지 차를 샀어", "사업해서 큰돈을 벌었어", "누구를 알고 어떤 인맥이 있어"라는 이야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스꽝스럽습니다. "어느 고위 관료와 내가 무슨 관계인데, 그가 우리 아버지 비서였어." 옆에 있던 사람은 "나도 그 사람 알아, 그 자리에 오른 건 다 내 덕분이지"라고 합니다. "그분은 내 옛 상사야." 옆 사람은 "어, 내 상사이기도 했는데!" 하며 결국 한 스승 밑에서 나온 셈입니다. 누구를 알고 어떤 연줄이 있는지만 이야기할 뿐, 아무도 "얼굴빛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언제 죽을 것 같아? 왜 아직도 살아 있어?" 같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예의가 없다고 여깁니다.
요즘 사람들, 특히 공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은퇴는 썩 좋은 일이 아닙니다. 권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 또래가 되면 동창을 만나 물어보는 첫마디가 "너 은퇴했어?"입니다. 다들 은퇴 이야기만 나눕니다.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요즘 치매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가보면 많은 사람이 조현병 약을 먹으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개 그렇습니다.
저는 참 의아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왜 치매 환자를 보지 못했을까요? 치매가 오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현대인들은 오래 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어릴 적 앞집 뒷집에 칠순, 팔순 어르신들이 꽤 계셨는데, 몸에 자잘한 병은 있었을지언정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50대, 60대에도 치매가 옵니다. 얼마 전 요양원에 60대 할머니를 뵈러 갔더니 계속 노래만 부르고 계셨는데, 원장님이 정신 질환이라고 하더군요. 왜 환경은 점점 좋아지는데 치매 환자는 늘어날까요? 선진국일수록 아이들의 학습 장애도 많습니다. 알고 보니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이 점점 더 자기 육신을 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시절에는 동북 지역의 겨울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난방 시설이 어디 있습니까? 가을이 되면 서둘러 석탄 2톤을 들여놓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석탄 2톤에 배추 천 포기, 감자 백 킬로그램을 지하 저장고에 넣어야 했습니다. 매년 그렇게 일하느라 치매에 걸릴 틈이 없었습니다.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영하 30도가 넘는데 불을 피우지 않으면 얼어 죽으니 치열하게 살았지만 치매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몸을 편하게 사는데도 멍해집니다. 사람이 자기 육신을 위하기 시작하면 망가집니다. 편안함만 찾을수록 문제는 더 많아집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과도하게 편의를 봐주다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하며 돈을 달라는 대로 줍니다. 자식을 망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육신의 생각으로 위하다 보니 망치게 됩니다. 집안의 문제들이 전부 사람의 생각을 위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간교합니까? 편하게 해 주어 100kg, 150kg의 거구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육신을 위하는 것, 사탄이 벌이는 짓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탄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짓말 하나를 툭 던져놓고 옆에서 비웃으며 구경합니다. 이것이 고수의 수법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파멸로 몰고 갑니다.
사람은 이런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왜일까요? 연구하고 또 연구해 봐도 결국 '잘 살고 싶다'는 것인데, 사람이 자기 육신을 위해 잘 살려고 할수록 삶은 더 엉망이 되고, 육신을 비울수록 더 잘 살게 됩니다. 옛사람은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했지만,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삶을 알겠는가(未知死, 焉知生)?" 유골함이 자신의 마지막 종착점임을 모르면 육신의 삶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유골함이 육신의 끝임을 알면 현세의 삶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유골함 너머 영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화의 초점이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아, 나는 왜 아직 안 죽었을까?"라고 하면, 상대방은 "노후 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지?"라고 합니다. 저는 "노후는 무슨 노후입니까, 일찍 주님 품에 가면 그만이지"라고 하니 대화가 엇갈립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고난을 받고 죽으러 간다"고 하셨고, 베드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분은 삶을 온전히 꿰뚫어 보시고 "내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나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고, 한 사람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죽었습니다. 베드로도 지금까지 살아있지 않습니다. 육신에 집착해 보았자 소용없습니다.
결국 제가 얻은 결론은 사탄을 대적하려면 반드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가 예수님과 같다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죽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붙들면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요양원의 치매 환자들을 보십시오. 평생 얼마나 열심히 돈을 세며 살았습니까? 90세가 되어서도 돈을 세다가, 결국 돈도 못 세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며 머리가 깨져 피가 나도 아픈 줄 모르는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에는 오직 하나의 뿌리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사람의 뜻대로 살면 사탄에게 망가지고 바보가 됩니다. 제가 바보라는 표현을 쓰면 거북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 설교가 때로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이 제 스타일입니다. 제가 양육하는 성도들에게 "왜 그래요, 머리에 똥이 찼어요?"라고 종종 말합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말하니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교회에 왔다가 얼마 못 가 떠났고, 나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왜 떠났을까요? 그런 거친 표현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인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은 괜찮으면서 그 말을 듣기는 싫어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제가 "머리에 똥이 찼다", "속이 호두 알갱이만 하고 머리가 땅콩만 하다"고 하니 견디지 못했지만, 사실 본인의 상태가 그러했고 저는 말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 자매의 남편에게 조현병과 공포증이 찾아왔고, 아버지는 사기를 당해 온 가족이 아버지를 원망했으며, 어머니는 암에 걸렸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지나치게 사람의 생각만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을까요? 여러분이 깨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저도 교양 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그 수렁에서 건져내려 할 때는 강한 어조를 씁니다. 반년 만에 그 자매가 돌아왔습니다. 삶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조현병과 공포증으로 밖에도 못 나가고, 아버지는 사기당하고 밖에서 딴짓을 하고, 어머니는 암에 걸렸으니 어떻게 살겠습니까? 나중에 사역자가 제게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남편이 시장에 장을 보러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제 《창세기》 강의를 따라 하며 꽤 잘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점차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회복되었을까요? 더 이상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 사람의 뜻대로 살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를 전하는 목적은 사람이 날 때부터 지닌 본성적인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 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타고난 천연적인 것들은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천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계략이고,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이며, 사람의 육신을 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타고난 생각은 쓸모가 없고, 후천적으로 배운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익합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다시 일어나 사탄을 땅바닥에 짓밟고, 더 이상 놈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평생 살아가는 일 자체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반드시 공급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노후도 염려하지 마시고, 오직 한 가지만 염려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십니다. 유골함에 갇힌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아직 유골함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생각이 유골함만 하다면 속은 땅콩 같고 머리는 호두 알갱이 같을 뿐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말씀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16:21-28)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가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헤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선하신 계획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성취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모든 육신의 억압에서 건져내사 마귀 사탄의 거짓말에 더 이상 순종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승리하여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시고, 죽음 앞에서도 주님의 영원한 영광을 택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주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갈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태복음 16:5-6)
그러자 제자들은 떡을 가져오지 않아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의 본뜻에서 얼마나 빗나갔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로 생각하여 바리새인은 주방장이고 사두개인은 반죽하는 사람쯤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들은 요리사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이 식당에 걸린 위인의 사진을 보고 주방장인 줄 아는 것처럼, 사람의 생각은 쉽게 엉뚱한 데로 빗나갑니다. 늘 머릿속에 떡, 요리사, 반죽 생각만 가득 차 있으니 떡을 안 가져왔다고 걱정하는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은 답답해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그들은 방금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고, 칠병이어로 4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서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온통 빵 생각뿐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도 어딜 가면 먹는 생각부터 합니다. 우한에 가면 열간면, 산시에 가면 뱡뱡면, 싱가포르에 가면 컵라면 생각뿐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그들을 보며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조각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어찌 깨닫지 못하느냐" 하셨습니다. 머릿속이 온통 떡으로 차 있으면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떡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불신앙'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삶을 이토록 복잡하게 만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예비해 두셨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돈을 끌어모으느라 애쓰다가 사기를 당해 큰돈을 날립니다. 사람이 평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돈 버는 일인데, 왜 돈에 집착합니까? 제자들의 머릿속에 떡만 가득했던 것처럼, 먹을 떡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안에 떡이 포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먹을 것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평생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지금 빚이 수억 원이나 되는데요"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어쩌다 빚을 졌습니까?" "사기를 당했습니다." "왜 사기를 당했습니까?" "투자 기회라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에도 300만 위안을 사기당한 분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8만 위안만 갚으면 다 해결됩니다.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매일 발을 땅에 딛고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조금씩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되며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던 시절에는 뱃삯이 얼마나 비쌌습니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기차표 한 장이 반 달 치 월급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먼 길을 떠나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연극 중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습니다. 한 시골 여인이 병들어 죽어가자 남편이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비극이었습니다. 여인은 기차를 한번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손수레에 아내를 태우고 2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끌고 가 기차를 보여주었습니다. 기차가 뭐라고 그렇습니까? 사람의 소망이 고작 기차 한번 보고 눈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이 바라는 소망이란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시므로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노후 대책뿐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부양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누가 먹이십니까? 하나님이 먹이십니다. 오직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너희가 깨달았느냐?"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성급히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님은 바로 그 메시아이십니다. 메시아가 무엇하러 오셨습니까? 고난받고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사탄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광의 문을 여시며 영광의 길을 닦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 고백하면서도 메시아가 정작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는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원어로 이 단어는 '작은 돌멩이'를 뜻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6:18-19)
베드로는 작은 돌멩이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작은 돌멩이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너는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나 내가 바로 그 반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반석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만이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작은 돌이지만, 나는 이 거대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귀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비범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네가 참으로 내가 그리스도인 줄 아느냐? 그렇다면 말해 주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으니,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태복음 16:21)
이 말씀이 복음으로 들리는지 재앙으로 들리는지는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니, 하나님, 저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한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죽임을 당한다'는 말만 들렸습니다. 사람 안에 영광의 소망이 없고 세상의 논리 체계가 들어 있으면 죽는다는 말에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베드로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당신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걸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가 당신을 따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워 당신은 왕이 되고 나는 정승이 되려고 따른 것인데!' 베드로는 이런 헛된 쓰레기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보시니 사람의 뇌리에 가득 찬 세상의 논리 체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당신이 왕이 되어 다윗 왕조를 회복하기를 바랐는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2-23)
한순간에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시더니, 다음 순간에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십니다.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옵니까? 사람 안의 인식과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사람의 본성에 속한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를 명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 체계를 드러내면 곧 사탄이 됩니다. 여러분 안에 절반은 사탄의 것이 들어있고 절반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면, 오늘 사탄의 몫을 빼앗아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헤아리고 사람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베드로의 반응은 참으로 묘합니다.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그 반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 이것이 반석입니다. 사망 권세 잡은 자를 철저히 멸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탄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녀석,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구나. 아주 깊이 숨어 있었어.'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처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이것이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까? 바로 이렇게 이깁니다. 예로부터 사탄을 이긴 사람은 드뭅니다. 사탄은 고사하고 사탄 휘하의 부하들을 이긴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 이 해결책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여러분 삶의 모든 필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채워질 터인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위하겠습니까? 믿는다면 오늘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16:25-28)
베드로 같은 사람은 내면에 두 가지 체계가 들어 있는 분열증 상태였습니다. 한때는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훌륭한 거울이 됩니다. 우리 안에도 크고 작은 베드로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 안에 두 체계가 공존하면 외식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순전한 복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를 지켜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면서도, 그분이 이 땅에 세상 왕국을 세워 자신에게 부귀영화와 관직을 안겨줄 것이라 착각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했던 말과 같지 않습니까?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9)
사람이 이런 것을 추구해서야 되겠습니까? 두 가지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논리는 대단히 견고합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이 세상 논리를 무너뜨리시겠습니까? 수년 전 한 자매를 위해 기도할 때 환상 중에 보탑(寶塔)을 보았습니다. 항저우 서호의 뇌봉탑처럼 수천 년을 굳건히 서 있는 견고한 탑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의아하여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종교와 관련된 것입니까?"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다"라고 하셨습니다. "왜 탑의 모습입니까?"라고 묻자, 수천 년간 무너지지 않고 고리마다 빈틈없이 얽혀 있어 비할 데 없이 견고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귀 사탄이 뿌려놓은 이생의 논리 체계가 이토록 견고합니다. 어제 어떤 사람에게 제가 행한 신유의 기적을 말해주었더니 "그것은 염력이나 최면 같은 것 아닙니까?"라며 엉터리 해석을 늘어놓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귀 사탄을 꺾는 비결을 얻었습니다. 사탄을 이기는 비결이 바로 이 말씀에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행한다면 여러분은 제자를 넘어 사탄을 짓밟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깊이 연구해 볼 만한 인물입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베드로를 만나면 조금 민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쪽은 그쪽이니까요. 여러분 안에 아직 세상 사탄의 논리 체계가 남아 있다면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망가뜨립니다.
5. 사탄은 오직 사람의 생각만을 헤아린다
사람의 생각을 위하는 모든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태초에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도 "이 열매를 보라, 먹음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우며, 먹으면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리석게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먹고 나서 하나님처럼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귀신처럼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묘합니다. 육신 안에 살다 보니 사탄은 철저하게 사람의 육신을 위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고, 안목의 정욕을 채워주며, 이생의 자랑을 북돋아 줍니다. 이 계략은 대단히 강력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과 유골함을 잊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90세가 되어 유골함에 들어갈 날이 눈앞인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비극이 아닙니까? 80, 90세 된 노인을 돌보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머릿속에는 앞으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자각이 없습니다. 95세까지 산다고 해도 90세면 5년, 약 천여 일 남았을 뿐인데, 기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온갖 트집을 잡고 섭섭해하며 눈물바람을 합니다. 사탄은 죽음과 영생을 잊게 만들고, 세상의 사소한 일에만 목을 매게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오늘날 사람들이 좇는 전부입니다. 이 논리 체계는 참으로 치밀합니다. 사탄이 여러분을 위하는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함입니다. 왜 치매가 많습니까? 육신을 너무 위했기 때문입니다. 왜 아이들에게 학습 장애가 많습니까? 편안함만 주었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어리석게 삽니까? 사람의 생각대로 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날 때부터 지닌 사람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오직 사람의 생각만을 헤아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람의 생각만을 위한다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왜 사기를 당합니까?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사기당해 전 재산을 날리는 이유도 육신의 욕심을 위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사탄은 이런 연극을 매우 흔하게 연출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한 분야에서는 부러움을 살 만큼 성공했으나 다른 면에서는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성공했을 때는 이생의 자랑으로 우쭐대지만, 고통스러울 때는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사탄은 그렇게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6.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여러분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뜻대로 살라며 온갖 꾀를 냅니다. 그러나 사탄의 생각을 따르면 인생은 망가집니다. 앞서 말한 자매의 남편은 조현병에 걸리고, 어머니는 암에 걸리고, 아버지는 사기를 당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그 자매는 공직을 내려놓고 다른 지역으로 가 새 직장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직장을 축복하셨고 부족함이 없게 하셨으며, 상황은 점차 나아졌습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삽니까? 사탄이 주는 꾀로 산다면 패망합니다. 사람의 뜻을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벗어던지고 마귀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칠병이어로 4천 명을 먹이셨듯이, 여러분에게도 아무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의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말씀으로 살면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온갖 좋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육신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은 사탄의 꾀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육신의 삶만을 준비할 뿐,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왜 이리 없습니까? 살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드셨습니다. 한 청지기가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꼬?' 생각하더니,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밀 백 석을 졌느냐? 오십이라 쓰라", "기름 백 말을 졌느냐? 오십이라 쓰라" 하며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 있게 행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장부로 미래를 사는 행위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예수님이 칭찬하신 이유는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영생을 위해 준비한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롭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999년짜리 토지 소유권이 있습니다. 만약 이런 부동산 정책이 다른 나라에 도입된다면 부자들이 앞다퉈 돈을 쏟아부을 것입니다. 저는 800년 넘게 남은 부동산을 사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800년을 살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800년이든 300년이든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은 죽어도 집은 남습니다. 백 년 뒤에 기업이 남아 있을지 경쟁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기업의 존속 여부는 몰라도 당신은 확실히 세상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왜 영생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근본 목적에 관한 문제입니다. 근본 목적이 해결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해결됩니다. "당신은 영생을 정말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믿습니다. 수많은 표적을 행하면서 영계의 실재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분명히 압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7.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1: 예수님을 따름
세상에 수많은 종교 교주가 있어도 사탄을 이긴 자는 없습니다. 그들이 연구한 것은 사람의 논리 체계 범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이 말하는 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 체계이며, 그 기초는 영생과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 본받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과 내일 귀신을 쫓아내시며 제삼일에 온전하여지신다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주님을 따르되,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되시고 자기는 정승 판서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따른다면 그것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며 반드시 사탄의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8.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2: 자기를 부인함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자신을 위해 산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마땅히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한낱 가죽부대에 불과하며,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합니다. 육신의 것을 버리십시오. 사람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면 누가 여러분을 협박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피해망상, 공포증, 암에 걸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세상일에 집착하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과거에 연연하던 일들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자유롭고 평안합니까! 여러분은 자기를 버려본 적이 있습니까? 자아가 너무 강하면 남이 한마디만 해도 맞받아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그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고자 한다면 무엇하러 다투겠습니까? 마귀 사탄을 어떻게 짓밟을 수 있습니까?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며 본받을 때, 사망은 더 이상 여러분을 이기지 못하고 영생 안에 거하게 되며 현세의 삶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9.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3: 자기 십자가를 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 큰 오해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할 때 "나와 함께 주님을 믿읍시다"라고 합니다. "왜 믿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노트북 가방 하나 메는 것도 무거워 죽겠는데 십자가까지 지라니 손사래를 칠 일입니다. 오해입니다. 노트북 가방처럼 메거나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거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못 박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에도 십자가의 길을 가시며 자신의 육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육체의 정욕을 쳐서 죽여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나, 부활하신 후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전에는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뱃삯을 내고 배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문이 닫혀 있는데도 공간을 초월하여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져지는 육신이 있으셨으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을 몸이 영원한 것으로, 썩을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여러분과 제가 순식간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비천한 몸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육신을 처리하십시오. 사람의 생각 체계에 머물러 있다면 십자가의 길을 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고자 한다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이러한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저도 참 많은 갈등 속에 살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갈 때 너무 힘들어서 흘린 눈물로 생수병 대여섯 개는 채웠을 것입니다. 영적인 거룩한 산을 오르는 과정이 몹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릭 조이너의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The Final Quest)』을 읽게 되었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봉우리에 도달하면 그 위부터는 길이 평탄해진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던 어느 날,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고 밝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속이 뻥 뚫리고 내면의 답답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참으로 평안했습니다. 그 영적 고지에 올랐던 바로 그날부터 용의 영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저는 여러분이 이 영적인 높은 봉우리에 오르기를 격려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과거 제가 겪었던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함께 이 영적 정상에 올라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며 전인격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0.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4: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침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태복음 16:25-26)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결국 유골함 하나 차지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본들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기부한다 한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많은 재물이 대단해 보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돈일 뿐입니다.
이 이치는 자명합니다. 이삼천 년 전에도 온 천하를 얻으려다 목숨을 잃은 자들이 허다했습니다. 중국 고대사만 보아도 천 년 전, 이천 년 전에 권력을 쥐려다 목숨을 잃은 자들이 수두룩한데 무슨 유익이 있었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그 어리석은 길을 답습하겠습니까? 하물며 온 천하를 얻지도 못한 채 평생 목숨 걸고 북한산 자락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여 하우스 푸어로 사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11. 사탄을 대적하는 방법 5: 재물과 명리를 꿰뚫어 봄
온 천하를 얻은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명리와 재물을 초월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 영원 안에 살아간다면,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을 가두지 못하고 유골함이 여러분의 결말이 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의 영광이 여러분의 영원한 결말이 될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려면 재물과 명리를 온전히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축복하고, 또 한 영혼을 축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눌린 자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은 당연한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며 따지려 해도 저는 단호히 다룰 것입니다. 떠나고 싶다면 자유롭게 가십시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있는 한, 여러분이 사탄의 올무에 빠지는 것을 결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 중에 늘 따지기를 좋아하는 자매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얼마나 따지기를 좋아했는지 손가락 관절까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사람의 옳고 그름만 주장하니 어찌 귀신이 붙지 않겠습니까? 귀신이 들어오니 결국 제가 사역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담당 사역자가 제가 일러준 대로 섬겼고, 어제 손가락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전해왔습니다. 손해를 보았습니까, 안 보았습니까? 손해를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신이 틈을 탔기 때문입니다. 재물과 명리에 얽매여 목이 꽉 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풀려났습니까? 풀려났다면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길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온 땅에 충만하게 하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입니까!
12. 결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십시오! 세상에는 소망이 없으며 절망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이 유골함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 우리가 영원 안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27)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부활하셨습니까?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면,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육신의 삶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되고, 이전의 삶의 방식을 가볍게 여기며,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물로 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탄을 땅바닥에 짓밟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사탄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 선포와 함께 저와 이 길을 걸어갑시다. 오늘 형제자매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정적으로 궁핍했던 자는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에 걸린 자는 사탄의 거짓말을 거부하고 질병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암 환자는 치유되고, 정신 질환자는 자유를 얻으며, 억눌리고 사로잡힌 모든 자가 해방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더 이상 사람의 논리 체계가 없으며,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헤아리며,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훗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여 온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입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이것은 승리의 길이며,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의 근본을 완전히 바꾸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 마음의 힘이 되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찬양을 부르며 헌금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면 결코 헌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돈 몇 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온전히 망치는 것입니다. 제가 왜 헌금을 만류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저주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돈을 갈취하는 분이 아니시며, 우리 교회 또한 돈을 긁어모으는 교회가 아니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십시오. 교회가 돈이 부족해서 헌금하라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큰일입니다.
여러분 안에 승리의 확신과 소망이 가득하다면, 이 승리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마귀의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마시고, 노후 대책이나 보험에 매달리는 삶에서 벗어나십시오. 가장 안전한 길은 영광의 소망을 품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얻는 것이며, 손해가 아니라 유익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온 집안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나를 산 제물로 드리오니 내 헌신을 열납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를 보내시고 사용하여 주사 만민 중에서 일으켜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내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이제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나이다. 하나님, 오늘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인도하사, 주께서 사탄을 이기신 것처럼 나도 사탄을 이기게 하옵소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갈지어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의 생각을 따르지 않노라.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내 안에서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오늘 세상의 논리 체계가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니, 사탄아 너는 내 안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