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본받아,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들 오셨으니 일찍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정리해 낸 한마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축복받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 역시 매우 갈망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땅을 굽어보시며, 그분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셨습니다. 두루 살피시다가 마침내 한 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과연 무엇을 구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돈이 있었을까요? 돈이 있었습니다. 삶도 꽤 넉넉했고 부부 금실도 좋았지만, 삶의 참된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삶의 아름다움을 살아낼 수 있을지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분이 맞히셨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싶어 했습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해 주셨는데, 그때 그의 이름은 아직 아브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아브라함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을 전하는 것이었구나!’ 그의 마음이 단번에 밝아졌습니다. 여러분도 복을 받기를 몹시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의미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중에 살아가는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들에게 며느리를 얻어 주려고 기를 쓰고 기도합니다. 심지어 엉터리 조언을 해 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어 둘이 척척 맞아떨어집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미래의 며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조건인지 다 적어 놓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칩니까? 어떤 이는 “이삭이 그렇게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엉터리 소리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 훤히 보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은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조차 모른다면 그저 자기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번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자친구를 찾는 것, 돈 많은 남편에게 시집가는 것, 자전거든 스포츠카든 한 대 사는 것, 큰 집을 사는 것, 땅 한 필지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이런 어리석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전도사였는데, 한번은 같이 식사할 때 저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주셔서 저 땅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수백만 위안을 다 털어 그 땅을 샀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보여주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곳은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하수관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걸 사서 무엇 하려고 합니까? 그걸 살 바에는 디트로이트에 가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거기서는 단 1달러만 있어도 땅뿐만 아니라 집 한 채까지 살 수 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많은 돈을 들여 새도 토끼도 똥을 싸지 않을 황무지를 샀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나중에야 그 땅이 아무 쓸모도 없고 팔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이 일의 배후를 누가 연출했을까요? 틀림없이 악령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아무리 간절히 원하고, 아무리 축복받기를 갈망한다 해도, 복을 받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열어 놓은 이 축복의 길입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구하는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닌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우리를 위해 축복의 길, 곧 ‘사명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왜 사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 최고 부자가 되기만을 바랍니다. 최고 부자가 되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건물에서 뛰어내리겠습니까?
어느 날 한 다국적 기업의 대표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권총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돈이 없었을까요?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왜 사는지 알지 못하면 참으로 평생의 비극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큰 기업을 세워 얼른 포장해서 상장시키려고 하는데,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돈을 가로채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런 사람 앞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왜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여셔서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길을 걸으라
이 세상에는 비극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복을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처음 알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여정에서 아브라함의 이 축복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인도하실 것이며, 그분의 축복의 순도와 가치를 끊임없이 높여 주실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바쳤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세기 22:16-17)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축복의 길이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입니다! 지금 저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갑시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는 이유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그저 보호를 받기 위함이라면, 보호받은 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중병이나 불치병에 걸려 하나님의 치유를 바라고 교회에 왔다면, 고침받은 후에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저 살아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것이 비극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눈에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내면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될 때, 여러분의 인생에는 방패가 생기고 창이 생겨 흔들림 없이 견고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알면 대단히 안정됩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안절부절못하거나 예민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관심을 두는 것이 그저 먹고사는 하찮은 일들뿐이라면 사명을 갖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육신으로 살아가는 일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 자체는 너무나 단순한 일이지만, 영생에 이르기까지 살아내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려면 아브라함을 본받아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계속 말씀드리는 것이 지루하십니까? 아마 꽤 듣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만 생겨도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안절부절못하며 잠도 자지 못한다면 끝장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화인 사명 신학에서 말하는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다”는 이 말은 참으로 매우 위대한 발견입니다.
사실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좋은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먹고 마실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파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평생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텐데, 얼마나 좋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에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신장이 망가져서 신장을 바꿔야 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간이 망가져서 간을 바꿔야 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소통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제 다 함께 선포합시다.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다!” 지금 우리 머릿속의 쓰레기들을 다 치워 버리고, 아브라함의 생각을 채워 넣읍시다. 이 아브라함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일을 발에 땀이 나도록 성실하게 해냈고, 종교적인 냄새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틀에 박힌 종교 의식을 늘어놓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은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해냈고, 평생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것이 보배임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하나님이 보배이시며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으신 분임을 점점 더 깊이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른 사병 318명을 데리고 나가 싸웠습니다. 제 생각에 아브라함은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이나 능력을 의지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훈련하는 데 능했고, 양을 치고 우물을 파고 장막을 옮기며 어디를 가든 존귀한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되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우리 중에 있는 분들을 향해 제가 날마다 목이 터져라 외치다 보니 목소리가 다 쉬었습니다. 제 쉰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어떤 사람은 집에만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그저 잠만 자려 하며, 잠이 안 오면 스마트폰을 들고 숏폼 영상을 넘겨보며 축복을 다 날려버립니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우리가 왜 사는지 안다면 스마트폰을 좀 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도대체 왜 사는지, 살아가는 일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흐리멍덩하다는 데 있습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플랫폼에 있든, 저를 따라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는 분은 복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세가 대단해도 암 하나면 저세상으로 가고 맙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고 나면 석가모니를 만나러 가든, 마르크스를 만나러 가든, 아니면 예수님을 만나러 가든 할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잘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은 별 소용이 없고, 예수님께서 나를 아셔야 유익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아실 것입니다.
만사를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면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습니까?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수고하는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원수가 사방에서 공격해 올지라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얽어맬 수 없습니다. 저와 함께 영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어떤 사람은 직장을 구하려 할 때, 자기는 그 직장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 직장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무 복도 얻지 못하고 불면, 실직, 실의, 실성에 빠져 문제를 키우기도 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길로 돌아오십시오. 그런 사람은 아무런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문제를 아무리 심각하게 여긴다 해도 스스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와 함께 영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아브라함의 길이 여러분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이 길을 선택하고, 사명을 얻기를 갈망하며, 왜 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헛된 인생 속에서 헛됨만을 살지 말고, 헛된 일생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살아내십시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저와 함께 영으로 기도하며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우리 안에 사명이 임할 때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몸이 아픈 분들은 저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모든 문제의 근본은 사명에 있습니다. 사명이란 곧 ‘무엇을 위해 사는가’입니다. 돈을 위해 산다면 돈이 여러분의 사명이 될 것이요,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사명이 되십니다. 마귀 원수를 짓밟으십시오!
우리 중에는 하늘에 손도 닿지 않고 땅에 발도 딛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매달려 몹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손은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아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에 끌어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셔서 사명을 붙들고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쏟아부어 주셔서 영원한 복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꾸만 혼미해집니다. 살아가면서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들고, 틱톡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다 결국 영혼까지 흔들리고, 직장도 잃고, 복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귀에게 핑계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아브라함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어디가 아브라함을 닮았는가?” 이번에는 여러분의 이런 병, 저런 병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기초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기초가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헛수고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문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삶을 꿰뚫어 보고,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라
어떤 사람은 걸핏하면 설사를 하다가, 또 변비가 생겼다가, 다시 멈추지 않고 설사를 합니다. 어떤 때는 심장이 안 좋고, 머리도 아프고, 피부도 상하고, 다리도 성치 않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얼마 지나면 남편이 밖에서 수십만 위안의 빚을 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됩니다.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여러분 부부 사이의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으며, 우리 목회자들에게도 이런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여러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닙니까? 사람이 이런 일만을 위해 살아가면 이런 일들을 겪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축복이요, 사명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종교적인 냄새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발을 땅에 딛고 아브라함을 본받는 것만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본받으려 한다면, 아브라함 내면에 있던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몇 달 전, 우리 중에 한 자매님이 계셨는데, 서른이 넘은 아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공사장에 가서 벽돌을 나르는 일을 했는데, 매일 녹초가 되도록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그럼 기술이 필요한 일을 좀 해보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아들은 “싫습니다. 저는 벽돌을 나르고 공사장에서 일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고집을 부리니 “그럼 가서 해보라”고 했습니다.
자매님이 애가 타자 저는 그녀를 달래며 다른 자매님들에게도 조급해하지 말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며칠 전 그 자매님이 이 일을 내려놓았더니, 아들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날마다 기운이 다 빠져서 그 육체노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그럼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연결해 기술을 가르쳐 주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때 무엇을 의지합니까? 우리의 염려와 근심, 날마다 하는 걱정으로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울 때 역사하십니다. 우리 다 함께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원수가 여러분의 종이 될 것입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깨달음이며, 살아가는 이 모든 일을 완전히 꿰뚫어 보아야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저는 그저 작은 은혜만을 구했을 뿐인데,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조금 얻고 나니 내면이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병에 걸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돈이 부족할까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평생 쓰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남편이나 아내가 밖에서 큰 빚을 지지 않도록 중심을 지키면 됩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배우자가 빚을 잔뜩 지면 공동 재산뿐만 아니라 빚도 절반을 떠안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헛된 것들을 위해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만이 신실하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마귀 원수는 물러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지어다!
이제 어떤 병이 있는지 댓글로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런 것에 크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여러분 문제의 뿌리입니다. 답답함, 우울함, 불면증, 실직, 치매 등 무엇을 잃어버렸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복을 받는 길은 오직 아브라함의 길 하나뿐임을 아는 것입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른 찬양은 우리 화인 사명 음악에서 창작한 《사명이 임할 때》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조회 수가 매우 높아 밖에서도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이제 이 곡을 다시 틀 테니, 여러분 모두가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찬양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이 찬양의 고백대로 살아낼 때 머리가 더욱 맑아지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어지럽힐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여기 모인 우리의 작은 무리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를 택하시고 사용하여 주셔서,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고 이 시대의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옵소서! 주를 위해 살기를 갈망하며, 사명을 얻기를 갈망합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주께 드리오니 우리의 헌신을 열납하시고, 우리 자신을 거룩하고 주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쓰레기 같은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갈지어다! 성령이여, 지금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정결케 하옵소서. 지금 실직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좋은 기회입니다. 이전에는 잘못 행했으나 이제 바로잡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불면과 실직은 축복이 없는 상태의 모습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이다! 마귀의 거짓말은 다 물러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아브라함을 본받고, 이삭과 야곱을 본받아 이 복된 길을 걸어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조급함과 답답함과 괴로운 느낌은 다 떠나갈지어다. 우리 중에 여전히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지금 회개하십시오. 결코 일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갈피를 잃고, 주님을 믿는다면서 종교적인 형식에 빠지며, 걷다 보면 공중에 붕 뜨게 됩니다. 발은 땅에 닿지 않고 손은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지 못해 하나님의 축복을 보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때로는 스스로 괜찮다고 착각합니다. 지금 고난이나 재앙을 겪고 있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분이 겪는 그런 문제들을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묻기를 “목사님, 저와 같은 문제를 만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런 문제를 만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쪽으로 가지 않으니까요. 제가 바보도 아닌데 왜 그런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습니까?” 그분이 “목사님도 실직해 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실직한 적은 있지만, 하나님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굳게 붙잡았고,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비록 직장은 잃었지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일이 너무 고되고 날마다 바빠서 도무지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은 생겼으나 돈은 없어졌지만, 드디어 시간이 생겼으니 저는 몹시 기뻤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을 섬기면 마음이 참으로 든든합니다.
사명을 구하라,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죽으리라
바람에 흔들리며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결코 본받지 마십시오. 형편이 조금만 나아지면 교만해져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형편이 나빠지면 다시 불안해합니다. 이는 뿌리가 없기 때문이며, 왜 사는지 모르니 살아도 헛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나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 세상에 왔습니까? 여러분도 저처럼 이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제가 이를 위해 태어났음을 압니다.
여러분과 제가 같은 뜻, 같은 비전, 같은 사명을 품는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기쁨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맞이하십시오. 어떤 이는 “저는 아직 빚이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기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맞이하십시오. 과거의 종교적인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더 이상 방황하거나 어리석게 살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바른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데, 저는 그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바른길에서 벗어나도 아무 일이 없고, 더 빗나가도 아무 일이 없으며, 훨씬 더 벗어나도 아무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포기하셨고, 그를 알지 못하신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전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한마음으로 영적 전쟁을 싸워 하늘의 축복을 풀어놓으십시오. 내면의 이기적인 옛 모습을 버리십시오.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만 챙기기 때문에 복을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중에 지능이 그리 높지 않고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잘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리 똑똑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재앙 하나, 저주 하나만 내리셔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붙잡으면 여러분의 길은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주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께 응답하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영원토록 주를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언제나 자신이 부족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두려움과 공포는 다 버리십시오.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오직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하며,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브라함과 같아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따지며 “하나님, 저한테 도대체 얼마나 더 바라십니까?”라고 하는데, 그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평생 복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없이 이 길을 어떻게 가겠습니까? 평생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는 사는 문제를 꿰뚫어 보고 가볍게 여겼으며, 모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기에 불안해하며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인 중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한 분들도 많으며, 저는 그 마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축복을 보기 어려운 까닭은 아브라함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만 보면 아브라함보다 뛰어날지 모르나, 발을 땅에 딛고 실제적인 일을 해내는 면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보다 한참 뒤떨어집니다. 저를 따라 계속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의 모든 싸움에서 마귀 원수를 짓밟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를 힘입어, 평생 그 어떤 원수도 우리 앞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왜 안절부절못합니까? 그것을 너무 크게 보기 때문이며, 자녀의 미래가 성적에만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녀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계 능력을 일찍 키워줄수록 좋습니다. 공부하고 학교에 다니는 목적이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인데, 공부를 마치고도 생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공부한 것입니까? 물론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좋은 성적이 매우 중요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살아가는 일상의 일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음부의 모든 권세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한결 밝아지지 않았습니까? 승리의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승리할 수 있는 분별력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렵게 왔는데, 무엇을 하러 왔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작은 축복 하나를 받고는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에게 복을 전해 보았습니까? 마귀를 몇 번이나 쫓아내 보았습니까? 누구를 자유하게 해 주었습니까? 여러분의 핵심 관심사가 오직 자신의 직장과 가정뿐이라면, 그런 사람은 반드시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귀신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귀신을 보내어 흔드실 것입니다. 성경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빚진 자가 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하나님께 빚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 빚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보배이심을 압니다. 교회에서 그저 시간만 때우는 사람들은 왜 모임에 오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모임에 빠지면 마음이 찜찜하고, 참석하자니 별 재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실제적인 일을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라
이제 우리의 영을 깨웁시다. 어떤 자매님은 이곳에 오기 전에 가위눌림을 자주 겪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한동안 지내면서 더 이상 가위눌림이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적인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태평하게 지내며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가위눌림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귀신에게 완전히 끌려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끌려갔다면 모든 것이 끝났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어리석어서 머릿속으로 날마다 악한 것만 생각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데는 둘이 덤벼도 한 사람 몫을 못 하면서, 귀신을 불러들이는 데는 한 사람이 둘 몫을 합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사람이 왜 사는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온수 속의 개구리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다가는 언젠가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성경에 “네가 내 말을 삼가 지켜 행하면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정당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전통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 위대하다고 여기고 사회의 실제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실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기 위해 살아가며, 실제적인 일을 바르게 감당하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신학 관념에 더 이상 오염되거나 휘둘리지 말고 그런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지금까지도 “일하지 말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칩니다. 교회 안에서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실제적인 일을 하는 목사이며, 어떤 일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 사명을 위해 세상에 왔지만, 성전 안에서만 섬기던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적인 길은 결코 걷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다시 아브라함의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길은 아브라함이 열어 놓은 길이며, 우리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화인 사명 신학은 다음 세대에 깊고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깊이 파고들어 보배를 발견했으니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사명의 길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는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바닥을 쓸고 있으면 어떤 자매가 달려와 “목사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쓸지 않으면 스스로 청소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동 드릴로 구멍을 뚫으려 하면 “목사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사실 구멍을 뚫는 것 자체가 중요하거나 바닥을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는 눈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각을 쓰고 머리를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우리는 지금 배워야 합니다. 예전에 한 동역자를 불렀을 때 “제가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라고 묻기에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배우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일로 바쁜데도 그는 머리를 쓰지 않으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 열심히 배우고 머리를 잘 써야 합니다. 겉모습만 흉내 내지 말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일은 어떻게 하고 저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왔는데, 단체 대화방의 제 계정을 보고 청소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 깨끗한 곳만 기를 쓰고 닦고 있었는데, 그런 것은 누구나 닦을 수 있지 않습니까? 왜 구석진 사각지대는 닦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생각의 문제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런 사례는 수없이 들 수 있습니다.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감사하게도 저는 노자에게서 통찰을 배우고, 이어서 예수님께 온전히 꿰뚫어 보는 법을 배워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참 답답합니다.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깨달아도 행하지 않고, 행해도 틀리게 하며, 틀려도 인정하지 않고, 인정해도 고치지 않으며, 고친 후에도 승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저와 기 싸움을 하려 드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저를 이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일은 핵심을 짚어서 해야 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깨끗한 곳은 그대로 두고, 더러운 곳을 제대로 청소해야 합니다. 제가 머무는 곳은 세면대 가장자리나 구석에 물때가 없고, 화장실 구석도 다 깨끗합니다. 때가 끼려고 할 때 바로 닦아내면 됩니다. 참으로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어떤 자매는 바닥이 이미 깨끗한데도 그곳만 죽어라 걸레질을 해서 기진맥진합니다. 사각지대는 닦지도 않으면서 왜 그런 헛수고를 합니까? 조금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벽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 핵심을 짚어 하라는 것입니다. 결벽증이란 무엇입니까? 손을 백 번이나 씻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인데, 그래 봐야 무엇이 나옵니까?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핵심은 지혜로워져서 일의 급소를 짚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실질적인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핵심을 짚어서 일하면 정말 힘들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날마다 2분만 투자해서 화장실을 닦으면 때가 쉽게 끼지 않습니다. 오늘 조금 닦고 내일 조금 닦으면 항상 깨끗합니다. 때가 찌든 후에야 닦으려 하면 지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 진균입니다. 진균은 살아있는 생물이라 돌까지 침투할 수 있고, 타일까지 상하게 만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행정 관리를 할 때면 제가 사람들의 비서가 된 것 같습니다. 이것도 챙겨줘야 하고 저것도 챙겨줘야지, 말해주지 않으면 금세 일을 그르칩니다. 날마다 멍하니 지내니 일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실제적인 일을 하도록 훈련하는 교회입니다. 실질적인 일을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앞으로 가사를 돌보는 일에서도 훈련할 수 있는 교사들을 일으키고, 회계 분야에서도 사람들을 훈련할 교사들을 세울 것입니다.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에서도 사람들을 훈련할 교사들을 세워갈 것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학습장애’라는 꼬리표를 받았습니다. 9년 의무교육을 마친 후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직접 손으로 하는 일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 본인도 손재주가 별로 없었고 주식 투자나 할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아이의 앞날이 막막해 보였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공부가 안되니 인테리어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목공, 미장, 방수 등 온갖 기술을 다 배웠습니다.
얼마 전 그 아버지가 아들이 직접 작업한 것이라며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보니 참으로 훌륭하게 해냈고, 이제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학교에서는 배울수록 멍청해져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무엇을 배우는지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강단에서 가르치고 아이는 밑에서 듣고만 있으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9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고, ‘학습장애’라는 꼬리표까지 달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서 이 아이가 온전히 세워졌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섬김의 필요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이 섬기고자 한다면 무엇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나중에 교회를 떠난 한 자매가 제게 “목사님, 저는 회계 담당자들을 많이 훈련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직장을 구해 직접 장부 정리를 해보면 좋겠네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정말로 기장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완전히 엉망으로 처리해 놓고는 저를 찾아와 “목사님, 어떡하죠?”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많은 회계사를 훈련했다면서요?”라고 하자 부끄러워했습니다. 제가 “우리 중에 공인회계사가 있으니 장부 정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기본적인 회계 지식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든 저 앞에서 뽐내려 하면 반드시 밑천이 드러납니다.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각을 조금씩 조정해야 합니다. 섬기려거든 결코 종교적인 흉내를 내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양 치는 기술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양 치는 법을 훈련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할 줄 안다면 쇼핑몰 운영법을 가르치십시오. 실질적인 일을 감당해야 할 영역이 너무나 많고 절실합니다. 인력 양성을 하고 사람들의 업무 태도를 교정해 주느라 저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찰 정도입니다. 사실 교회는 실질적인 일을 하도록 사람을 훈련하는 인재 양성 기관입니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발견한 가장 다루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기도를 몇 번 해주면 병이 낫지만, 보름 뒤에 다시 아프다고 하고, 또 기도해 주면 낫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게으르기 짝이 없고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몸이 쑤시지 않겠습니까? 툭하면 “목사님, 몸이 아픕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전화가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압니다.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으니 아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섬기기를 원하신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저 “기도 인도를 하겠습니다”라고만 하지 마십시오. 기도 인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제적인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진정으로 수고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 모든 민족과 백성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해야 합니다.
저와 함께 마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