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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하 24장 -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함과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힘

2023-11-10 62,442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24章 撒母耳记下第二十四章 惹动神的怒气 大卫数点百姓 地域性自豪感 人心不归向神

相关经文

撒母耳记下24章-大卫调查人口
  • 1 耶和华又向以色列人发怒,就激动大卫,使他吩咐人去数点以色列人和犹大人。
  • 2 大卫就吩咐跟随他的元帅约押说:“你去走遍以色列众支派,从但直到别是巴,数点百姓,我好知道他们的数目。”
  • 3 约押对王说:“无论百姓多少,愿耶和华你的 神再加增百倍,使我主我王亲眼得见。我主我王何必喜悦行这事呢?”
  • 4 但王的命令胜过约押和众军长。约押和众军长就从王面前出去,数点以色列的百姓。
  • 5 他们过了约旦河,在迦得谷中、城的右边亚罗珥安营,与雅谢相对,
  • 6 又到了基列和他停·合示地,又到了但·雅安,绕到西顿,
  • 7 来到推罗的保障,并希未人和迦南人的各城,又到犹大南方的别是巴。
  • 8 他们走遍全地,过了九个月零二十天,就回到耶路撒冷。
  • 9 约押将百姓的总数奏告于王:以色列拿刀的勇士有八十万;犹大有五十万。
  • 10 大卫数点百姓以后,就心中自责,祷告耶和华说:“我行这事大有罪了。耶和华啊,求你除掉仆人的罪孽,因我所行的甚是愚昧。”
  • 11 大卫早晨起来,耶和华的话临到先知迦得,就是大卫的先见,说:
  • 12 “你去告诉大卫,说耶和华如此说:‘我有三样灾,随你选择一样,我好降与你。’”
  • 13 于是迦得来见大卫,对他说:“你愿意国中有七年的饥荒呢?是在你敌人面前逃跑,被追赶三个月呢?是在你国中有三日的瘟疫呢?现在你要揣摩思想,我好回复那差我来的。”
  • 14 大卫对迦得说:“我甚为难!我愿落在耶和华的手里,因为他有丰盛的怜悯。我不愿落在人的手里。”
  • 15 于是,耶和华降瘟疫与以色列人,自早晨到所定的时候;从但直到别是巴,民间死了七万人。
  • 16 天使向耶路撒冷伸手要灭城的时候,耶和华后悔,就不降这灾了,吩咐灭民的天使说:“够了!住手吧!”那时耶和华的使者在耶布斯人亚劳拿的禾场那里。
  • 17 大卫看见灭民的天使,就祷告耶和华说:“我犯了罪,行了恶;但这群羊做了什么呢?愿你的手攻击我和我的父家。”
  • 18 当日,迦得来见大卫,对他说:“你上去,在耶布斯人亚劳拿的禾场上为耶和华筑一座坛。”
  • 19 大卫就照着迦得奉耶和华名所说的话上去了。
  • 20 亚劳拿观看,见王和他臣仆前来,就迎接出去,脸伏于地,向王下拜,
  • 21 说:“我主我王为何来到仆人这里呢?”大卫说:“我要买你这禾场,为耶和华筑一座坛,使民间的瘟疫止住。”
  • 22 亚劳拿对大卫说:“我主我王,你喜悦用什么,就拿去献祭。看哪,这里有牛可以作燔祭,有打粮的器具和套牛的轭可以当柴烧。
  • 23 王啊,这一切,我亚劳拿都奉给你”;又对王说:“愿耶和华你的 神悦纳你。”
  • 24 王对亚劳拿说:“不然。我必要按着价值向你买;我不肯用白得之物作燔祭献给耶和华我的 神。”大卫就用五十舍客勒银子买了那禾场与牛。
  • 25 大卫在那里为耶和华筑了一座坛,献燔祭和平安祭。如此,耶和华垂听国民所求的,瘟疫在以色列人中就止住了。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의 마지막 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를 잡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완전히 다 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이 장의 주제를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함과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힘"이라고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노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왜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을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하셨다는 것인데, 듣기에는 하나님께서 좀 짓궂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하셨을까요? 다윗이 매일 마주한 것은 "다윗 만세! 다윗 왕조 만세!"였습니다. 사실 그는 이제 곧 죽을 때가 다 된 늙은이에 불과했습니다. 백성들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다윗의 용사다. 우리에게는 30명의 용사와 30명의 원수, 30명의 장군이 있으니 우리는 백전백승이다!"라며 대단해했습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사람에게 속한 방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격동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백성을 계수한 일로 인해 전염병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바닷가의 모래 같고 하늘의 별처럼 많을까? 하늘의 별을 세어보고, 이스라엘 사람의 수를 세어보아서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지 한번 세어보자!" 이걸 어떻게 셀 수 있겠습니까? 제 이 추측이 합리적인지 한번 보십시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하나의 여론과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이 속한 다윗 왕조의 영토가 얼마나 광활한지, 우리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이며 다른 나라들은 모두 우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들 내면에 자기가 정말 대단하다는 교만이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 교만한 기운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다윗이 정말 대단했을까요? 사실 다윗 자신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우월감은 민족적 자부심 혹은 지역적 자부심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나는 상하이 사람이고 저 사람은 촌뜨기다", "나는 미국인이고 저 사람은 호주에서 온 촌뜨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이고, 하나는 우매함이며, 거기에 오만함과 맹목적인 지역적 자부심이 더해집니다. 저 역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 동북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것을 '츠유(肉)'라고 발음하는데, 베이징에 가서 베이징 사람에게 "고기(유) 먹고 싶다"고 말하면 베이징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습니다. 동북 사람이 고기를 그렇게 발음하면 안 됩니까? 동북 사람들은 "우리 동네는 다 그래, 꿔바로우(유), 후이궈로우(유), 동북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말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은연중에 베이징 사람들의 우월감이 느껴집니다. 옛날에 고기를 살 때 베이징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우리는 배급표가 있어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베이징 사람이라는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였기에, 그런 일로 인해 지역적 자부심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사실 그는 단지 다윗 왕조에 태어났을 뿐이고, 사람 자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것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그 결과 다윗 왕조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콧대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걸어 다녔습니다. 과연 콧대를 그렇게 높일 자격이 있었을까요? 저 역시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가는 과정에서 종종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저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들 "나는 화인 사명 신학에 남을 거야. 당신이 나를 쫓아내도 나는 안 나갈 거야. 나는 이 승리하는 교회에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데, 제가 듣기에는 그 뉘앙스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문제는 여러분이 다윗 왕조에 있느냐 여로보암 왕조에 있느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에게는 본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라는 천연적인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목욕탕에 가서 보나 밖에서 보나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농담 삼아 드린 말씀입니다. 오만하고 자만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여 주변 나라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 하찮은 것들아, 너희가 오만하고 자만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윗도 내 앞에서는 한낱 다윗에 불과한데, 너희 같은 자들이 무엇을 자랑하며 거만해하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 후에 모여 앉아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세 명의 용사, 아사헬, 아비새 같은 자들의 무용담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 중국 사람들도 그러기 때문입니다. 모이면 어떤 사람은 "내가 모 시장을 아는데, 너도 알고 나도 알지? 그는 내 전우야, 내 동창이야, 네 선생님이자 내 선생님이기도 해, 우리는 같은 지도교수 밑에 있었어"라며 온통 이런 이야기만 합니다. 또 항공모함, 전투기, 무인기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무형 중에 알 수 없는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진노하셨는지에 대한 저의 추측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누는 이야기가 고작 "내가 바로 그 용사다. 다윗의 용사로서 어느 부대 소속이다" 하면, 다른 사람은 "나도 그렇다" 하며 온통 이런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용사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치셨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거만하게 구니, 전염병을 보내어 그래도 거만할 수 있는지 보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염병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다. 박사나 지도교수라 할지라도 전염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염병에 걸려 죽는 자 중에는 남녀노소, 높은 관직이든 낮은 관직이든, 학력이 높든 낮든 온갖 사람이 다 있습니다. 전염병은 그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덮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을 배우고, 꼬리를 내리고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우리를 존귀한 왕자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존귀한 왕자라 할지라도 꼬리를 내리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꼬리를 달아주지 않으셨지만,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감추어야 했을 것이고, 꼬리가 없어도 꼬리를 내리듯 겸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감당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잘난 척하지도 말고 교만하지도 마십시오. 너무 잘난 척하다가 콧대가 하늘로 치솟으면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사람임을 알아야 하며, 사람들 가운데서도 결코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우리가 사람에 불과함을 알고,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돼지만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잡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는 헛된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허망한 믿음입니다.

백성의 수를 계수한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사무엘하 24:1-2)

이 장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윗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하나님께서 격동하시자 순간 흐리멍덩해져서 백성을 계수했습니다. 다윗은 왜 인구를 계수했을까요? 다윗과 측근들이 날마다 궁 밖으로 나가 노점에서 수제비를 사 먹곤 했는데, 백성들이 다윗 왕을 보고는 흥분하여 "다윗 왕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윗 왕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 몰려드니 수제비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 광경은 왕의 행차와 같은 화려한 위엄이 아니라, 마치 제가 외출할 때와 비슷해서 재미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귀에는 늘 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이야기만 들려왔습니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지금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자, 다윗은 일시적인 흥에 겨워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며칠 후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왔고, 고향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자 다윗은 흥분하여 지금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얼른 세어보라고 명했습니다. 그가 순간의 어리석음으로 범한 이 잘못,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윗이 왜 잊었을까요? 백성들이 다윗을 보기만 하면 "다윗 왕 만세!"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온종일 이런 소리만 듣다 보니, 내면에서 교만이 싹트고 부풀어 올라 걸음걸이마저 우쭐해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다윗은 이 모든 성공이 세 용사와 그들 수하의 서른 용사가 세운 공로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저마다 자신의 공이 크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습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몇 명이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사무엘하 24:3)

사람이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요압이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다윗을 가로막으려 했습니다. 요압은 이전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누구에게 배웠는지 갑자기 영적으로 변했습니다. 요압이 다윗 왕에게 "백성이 얼마나 되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셔서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요압이 왜 여기서 영적인 모습을 보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 요압을 격동하셔서 다윗을 한번 막아서며 그가 돌이키는지 시험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이미 결심을 굳혔고 아무도 그 뜻을 바꿀 수 없었기에 사람들을 보내어 백성을 계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백성을 계수하는 것은 사람 내면에 교만이 시작되고 부풀어 올랐음을 의미합니다. 속된 말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것입니다. 날마다 백성들 사이에서 "다윗 왕"이라는 소리를 듣다 보니, 자기가 진짜 왕인 줄로만 착각한 것입니다. 백성을 계수하는 이면의 동기가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데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돈을 세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세는 습관이 있습니까? 틈만 나면 은행에 가서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확인하지만, 확인해 보아도 여전히 원래 있던 그 액수일 뿐입니다. 왜 자꾸 은행 잔고를 확인합니까? 사람은 참 묘해서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목사님, 제 계좌에 있는 돈이 생각보다 적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실 이것은 참으로 영적인 법칙입니다. 돈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어쩌다 계좌를 확인했을 때 생각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돈이 늘 생각보다 조금 더 많은데, 이는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늘 계좌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다고 느낍니다. 10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7만밖에 없는지 의아해하고, 며칠 뒤에 보면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4만으로 줄어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잔고가 늘 넉넉해 보이니, 이것은 참 기이하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실 돈을 세는 것이나 사람을 세는 것이나, 무언가를 '계수한다'는 것의 이면에는 세상에 속한 작동 방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의 은혜는 세어보지 않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그것을 수첩에 하나하나 기록해 두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불과 몇 년만 지나도 다 잊어버립니다. 처음에 교회에 왔을 때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소변을 줄줄 흘렸고, 어떤 사람은 대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쌌는데 몇 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사실 사람의 속은 참으로 악합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아주 악합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서운하게 한 것은 평생 기억하여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잊지 않으면서도, 누군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열흘이나 보름만 기억해도 대단히 은혜를 아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참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은 많습니까, 적습니까? 너무나 많아서 때로는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에 대해 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베푼 은혜를 여러분이 잊었다 해도 저는 따지지 않겠지만, 이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백성의 수를 계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계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어떤 자매가 날마다 기침을 하는데, 밤마다 기침하느라 몹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기침하기 전부터 저는 그녀에게 자주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았을까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돌아볼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이 너무 바빠서 그녀는 일이 목숨보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기침이 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며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늘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누구에게 빚을 졌습니까? 하나님께 진 빚도 빚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의 그토록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왜 여전히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굳게 붙잡고 있습니까? 그녀가 제게 어떻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목사님, 저는 원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녀에게 "왜 미지근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저는 날 때부터 미지근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만두십시오! 출근할 때는 열정이 넘쳐서 감기가 낫지도 않았는데 출장을 가지 않습니까?"

사람은 참 묘합니다. 만약 또다시 전염병이 닥친다면, 그 전염병이 누구에게 닥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내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는지 늘 돌아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코로나에 걸려 거의 숨이 넘어갈 뻔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는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겪는 문제는 귀신 때문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여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번에 전염병이 닥쳤을 때, 여러분이 기도한다고 소용이 있었습니까? 소용없었습니다. 전염병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기에 기도로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계수한 일은 언뜻 보기에 그리 큰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작은 일도 아닙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습니다. 사실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논리 체계와 가치관이 온통 세상에 속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단야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력 있는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사무엘하 24:4-9)

다윗이 사람들을 보내어 인구를 다 조사하고 나자, 요압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용사가 80만 명이고, 유다에는 50만 명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대만 130만 명을 거느린 것입니다. 천만 명 안팎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에서 130만 군대를 유지했으니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계산대로라면 군사 강국입니다. 말을 세고, 무기를 세고, 총과 칼을 세고, 항공모함과 구축함과 유도탄 호위함을 세듯, 온갖 세상의 무기 이름을 들먹이며 대단하게 여긴 것입니다! 다윗은 이 보고를 듣고 내면에서 우쭐한 마음이 불쑥 솟구쳤을 것입니다. "나 다윗에게 칼을 든 군사가 80만이고, 총 130만 군대가 있다니!" 마음이 흥분하여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것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24:10)

바로 이 순간 다윗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즉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종의 죄악을 사하여 주옵소서. 제가 행한 일이 심히 어리석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에 교만이 싹트면 돈을 의지하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합니다. 팀의 규모가 커지면 그 팀을 자랑거리로 삼아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합니다. 교회가 커지고 성도 수가 많아지면 자기가 세운 교회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착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세웠지만, 저 역시 교만해질까 두려워 매일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조그만 자존심과 교만을 붙들고 살아가며,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용기 자체가 자신의 교만한 자아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괜찮게 여기며 자신이 매우 영적이라고 착각합니다. 어떤 유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바지를 입지 않았는지 다 드러난다."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괜찮다고 여길 자격이 어디 있습니까?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망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제 자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개똥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라고 상기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를 알아야지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여긴다면, 다윗과 같은 위치에 올랐을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전염병이 몇 번이나 돌아야 하겠습니까? 전염병 하나로 3년 동안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온 세상이 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스, 코로나 등 온갖 전염병 중 하나님의 심판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정말 오만할 자격이 없으며,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조율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까? 다윗조차 깨달았는데 여러분이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대단한 착각의 확신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늘 여러분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하지만, 제대로 돌아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아도취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신 선택 문제

다윗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가 정말 바로 섰는지를 시험하는 선택 문제를 내셨습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지자 된 선견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사무엘하 24:11-13)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사무엘하 24:14)

다윗의 대답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나를 다시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죽지 않을 것이며, 결코 틀리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백은 오직 다윗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출발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재앙을 내리시며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아마 하나님과 협상하며 "하나님! 재앙을 내리지 마시면 안 됩니까?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실 수는 없습니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협상할 자격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어리석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니,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길밖에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선택했고, 다윗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다윗이 왜 3일간의 전염병을 택했을까요? 첫째, 기간이 가장 짧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모든 전염병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람 내면의 오만과 자만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루시기 위해 전염병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가라앉혀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법을 알았다

다윗이 사람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사무엘하 24:15)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전염병의 영을 보내셨으나, 정하신 때가 되었음에도 전염병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뒤이어 전염병 자체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번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사무엘하 24:17)

여러분, 다윗이 간구한 방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십시오! 이 죄를 다윗이 지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호와 부추김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 어리석은 죄를 범하게 만들었습니까? 분명 백성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내어놓으며 "내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사오니 이 백성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일에 백성의 책임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다윗은 왜 "하나님! 이 백성들을 다 쳐서 멸하소서! 저 백성들이 날마다 '다윗 왕 만세' 하며 나를 띄워주다가 이 지경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백성들 때문이니, 3일 동안 전염병을 더 내리셔서 저들이 전염병의 쓴맛을 톡톡히 보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렇게 기도했다면 모든 것이 끝장났을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깊이 보아야 합니다. 목회자나 리더는 반드시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짊어져야 합니다. 다윗은 죄를 범했을 때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였으니, 치시려거든 나를 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풍성한 긍휼과 은혜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겠습니까? 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를 치시고 다루어 달라고 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길입니다. 절대로 거꾸로 행하여 "다 저 사람 탓이고 내 잘못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들은 다 이러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려 죄악을 짊어졌으며,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사무엘하 24:18)

다윗은 이 말을 듣고 즉시 아라우나를 찾아갔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갓을 통하여 명하신 바 말씀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기구 쓰는 나무와 소의 멍에에 대하여는 나무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사무엘하 24:19-23)

다윗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사무엘하 24:24)

대가 없이 거저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서 제단을 쌓음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겠습니까? 첫째,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이것은 제가 지은 죄이니 저를 다루어 주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거짓으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실 때 절대로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을 다루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철저히 회개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그 어리석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나님, 이 모든 것은 제가 자초한 일이며 제 죄에 대한 마땅한 결과입니다. 주의 풍성한 긍휼을 제게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고백하며, 대가를 치르고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스스로를 괜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실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속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여러분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번제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여러분, 번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번제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했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해 놓고도 마귀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착각합니다.

오늘 나눈 이 성경 말씀은 분명 어떤 형제자매들에게 큰 찔림과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진노를 보지 못했다면 아무런 찔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 자녀, 그리고 충성되고 착한 종이 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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