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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10장 -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다

2025-01-01 6,474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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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10章-陀拉
  • 1 亚比米勒以后,有以萨迦人朵多的孙子、普瓦的儿子陀拉兴起,拯救以色列人。他住在以法莲山地的沙密。
  • 2 陀拉作以色列的士师二十三年,就死了,葬在沙密。
  • 3 在他以后有基列人睚珥兴起,作以色列的士师二十二年。
  • 4 他有三十个儿子,骑着三十匹驴驹。他们有三十座城邑,叫作哈倭特·睚珥,直到如今,都是在基列地。
  • 5 睚珥死了,就葬在加们。
  • 6 以色列人又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去侍奉诸巴力和亚斯他录,并亚兰的神、西顿的神、摩押的神、亚扪人的神、非利士人的神,离弃耶和华,不侍奉他。
  • 7 耶和华的怒气向以色列人发作,就把他们交在非利士人和亚扪人的手中。
  • 8 从那年起,他们扰害欺压约旦河那边、住亚摩利人之基列地的以色列人,共有十八年。
  • 9 亚扪人又渡过约旦河去攻打犹大和便雅悯,并以法莲族。以色列人就甚觉窘迫。
  • 10 以色列人哀求耶和华说:“我们得罪了你;因为离弃了我们 神,去侍奉诸巴力。”
  • 11 耶和华对以色列人说:“我岂没有救过你们脱离埃及人、亚摩利人、亚扪人,和非利士人吗?
  • 12 西顿人、亚玛力人、马云人也都欺压你们;你们哀求我,我也拯救你们脱离他们的手。
  • 13 你们竟离弃我,侍奉别神!所以我不再救你们了。
  • 14 你们去哀求所选择的神;你们遭遇急难的时候,让他救你们吧!”
  • 15 以色列人对耶和华说:“我们犯罪了,任凭你随意待我们吧!只求你今日拯救我们。”
  • 16 以色列人就除掉他们中间的外邦神,侍奉耶和华。耶和华因以色列人受的苦难,就心中担忧。
  • 17 当时亚扪人聚集,安营在基列。以色列人也聚集,安营在米斯巴。
  • 18 基列的民和众首领彼此商议说:“谁能先去攻打亚扪人,谁必作基列一切居民的领袖。”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10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찾은 주제는 “하나님께서 사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다”입니다.

1.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다

돌라가 행한 일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리가 굳이 지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사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리는 동안 그들이 이방 신들을 섬기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일으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 그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돌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스라엘을 다스렸는지 알지 못하지만, 《성경》은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말씀합니다. 돌라가 일어난 배경에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3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렸는데, 그 3년 동안 선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고, 3년 뒤에 죽으면서 엉망진창인 상태를 남겨 두었습니다. 통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재앙을 만나고 외세의 억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라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돌라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비록 돌라가 행한 일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히 이방 신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 사사들의 치리 방식이 매우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방 신을 섬기러 가면 사사가 사람을 보내 잡아들이고 벌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매우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 문제까지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방 신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떠난 뒤에 겉으로는 아주 잘 사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며칠 전 식사를 하다가 예전에 우리 가운데 있었던 한 형제자매 가정을 만났는데, 지금은 두 아이를 데리고 아주 잘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자유롭게 선택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돌라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이 재앙을 겪어 보지 않으면 누가 참하나님인지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야일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다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사사기 10:3-5)

야일이 죽은 뒤 가몬에 장사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기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곳에 묻혔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무엇일까요? 《사사기》 기자는 매우 짧은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야일이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렸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까? 행하지 않았습니다. 왜 행하지 않았을까요? 야일 역시 매우 엄하고 강한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실력과 권위가 없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야일과 돌라, 그들은 모두 철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스렸습니다. 이 야일의 이야기는 기드온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만약 《성경》에 이 모든 사사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다 썼다면, 대략 비슷한 맥락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야일의 말을 들었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반드시 야일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분명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후 하나님께서 야일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을 것입니다. 야일이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을 때, 감사하게도 그들은 이방 신을 섬기지 않았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야일이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아들 삼십 명이 있었고, 그들은 어린 나귀 삼십을 탔으며, 성읍 삼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왜 기록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기록하지 않으면 무엇을 기록하겠습니까? 다른 이야기가 없었을까요? 다른 이야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다스림의 결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고 싶었으나 감히 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일은 어떻게 다스렸을까요? 기드온의 방식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야일에게는 아들 삼십 명이 있었는데, 어떻게 아들이 삼십 명이나 있었을까요? 아마도 한 아내가 세네 명씩 낳았다면, 아들이 삼십 명이었으니 아내도 여러 명이었을 것입니다. 미인 대회라도 열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야일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고, 또 그렇게 많은 아들을 낳았을까요? 아들마다 차를 한 대씩 모는 것처럼 나귀 삼십을 탔고, 한 사람당 성읍 하나씩을 차지했습니다. 부정부패가 있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야일에게는 아들 삼십 명이 있었고, 그들은 오늘날로 치면 2~3천만 원대 차량에 해당하는 어린 나귀 삼십을 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성읍마다 그의 아들들의 것이었고, 오늘날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렀으며, 훗날 야일은 죽었습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생각을 품게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우상을 숭배하고 싶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이가 근질거릴 정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훗날 야일이 마침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일을 일으키셨을 때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고, 기드온을 일으키셨을 때도 그에게 아들 칠십 명이 있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신이 아내를 그렇게 많이 둘 수 있다면 나라고 못 둘 이유가 있는가? 당신이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으고 아들 칠십 명을 둘 수 있다면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는가? 나도 사사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크게 개의치 않으십니다.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근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많은 아내를 맞이한 것을 개의하셨습니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 크게 개의하셨습니까?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리 연연하지 않으시는 듯했습니다. 기드온이 수많은 아내를 두고 수많은 아들을 낳았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야일이 아들 삼십 명을 두고 수많은 아내를 두며 수많은 성읍을 차지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보시는 것은 사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알과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의 신들을 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제 생각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일이 죽었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뻐했을 것입니다. 많은 나라의 독재자가 망명하거나, 이라크가 무너지고 사담 후세인이 사형당했을 때 백성들이 몹시 기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야일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상합니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스라엘이 겪었던 역사를 몰라서 그랬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온갖 의문과 미혹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즉, 재앙을 직접 겪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아,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시구나”라고 깨닫는 것입니다. 늘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마음속에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뿌리를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다른 일들은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드디어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나 기뻐하겠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사사가 없으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

《사사기》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일으키시고, 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도자가 없어졌을 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때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려 해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와서 간섭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난 이렇게 살고 싶어. 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고 싶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게 좋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아스다롯과 바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우상들의 이면에는 극심한 음란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을 보면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온갖 음란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며, 사람들도 겉으로는 아주 잘 살아갑니다. 네덜란드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네덜란드는 마약도 합법화되고, 동성애도 합법화되어 무엇이든 다 허용됩니다. 그곳에 가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잘 살고 부유해 보이며, 거리를 걸어 다녀도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문제가 없어 보입니까?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세상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런 광경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흔들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아? 왜 안 된다는 거지? 이런 유흥과 오락이 얼마나 풍성해! 당신들의 통치 방식 아래에서는 하고 싶은 것도 못 하잖아. 사사들이 우리에게 검은 천을 두르고 머리를 가린 채 눈만 빠끔히 내놓고 다니라는 거야? 그렇게 통제하겠다는 거야? 난 이게 좋은데! 저 해변은 얼마나 좋아, 누구나 합법적으로 자신의 완벽한 몸매를 가림 없이 드러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 이스라엘 백성은 지도자가 없고 다스림이 없자 하나님을 버리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사사기》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전하고 있습니다.

4. 이스라엘 자손이 환난을 겪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그 해에 그들이 요단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사사기 10:7-8)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일으키셔서, 암몬 사람, 아모리 사람, 블레셋 사람들을 통해 그들을 괴롭히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 놓으면 남들이 와서 빼앗아 가고, 내가 농사지었는데 남들이 풍년을 누리며 내 수고는 헛수고가 되고, 내가 양을 길렀는데 남들이 양고기를 먹는 형국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사기》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상을 숭배한다면, 언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암몬 사람과 블레셋 사람 같은 자들이 찾아와 당신을 괴롭히고 억압할 것입니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유 없이 늘 바쁘고 피곤하고 고생하지만 돈은 벌지 못하며, 누구든 와서 괴롭히고 짓밟으려 듭니다. ‘어쩌면 이렇게 일이 꼬일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난을 겪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사사기 10:11-13)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진노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셨건만, 그들은 번번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버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었을 것입니다. 돌라에게서 흠을 찾으려 했다면 수없이 찾아냈을 것이고, 기드온에게서 흠을 찾으려 했다면 수없이 찾아냈을 것이며, 야일에게서 흠을 찾으려 했다면 역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다시 환난을 만나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사사기 10:14)

5. 환난 가운데서 비로소 누가 구원의 하나님인지 알게 되다

일을 겪어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의 신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며 여호와를 버리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좋아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게 아무리 큰 배짱을 준다 해도 저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환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상태는 매우 위험합니다. 이 세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려 하시는 이유를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사들처럼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일을 하나님으로 삼아도 안 되고, 학업을 하나님으로 삼아도 안 되며, 사업을 하나님으로 삼아도 안 되고, 가정을 하나님으로 삼아도 안 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싶다면 다른 교회로 가도 좋습니다. 육신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육신을 위하는 목사를 찾아가면 되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사랑하는 목사를 찾아가면 되며, 선악을 분별하기를 좋아한다면 선악을 극도로 분별하는 목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곳의 목양이 딱 맞을 테니까요.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에 오면 요구 기준이 다소 높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살고자 한다면 이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안의 소그룹 목회자들과 리더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때로는 그들의 요구 기준이 꽤 높은데, 그렇게 담대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도자가 기준을 제시하면, 요구받은 사람은 불만을 드러내며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라며 제멋대로 말하곤 합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우리가 다룰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는 한, 일정한 요구 기준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남아 계시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우리 지체들 중 밖에서 재앙과 환난을 겪고 우리 가운데로 돌아와 비로소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당신을 양육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애초에 우리의 양육을 바라지도 않았고, 우리가 “더는 당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누가 통제해 달랬어요?”라고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진노하셨습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할 때 너희가 섬기던 그 우상들에게 찾아가 보아라. 육신을 위하는 목사에게 가서 기도해 달라고 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를 세운 목사들에게 찾아가 보아라.” 하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또 한 명의 사사를 예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찌 된 일인지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했습니다.

6.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사사기 10:15)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가 되었을까요? 어떻게 이렇게 순종하기 시작했을까요?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고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지 않을 테니 너희 우상들에게나 가라”고 하셨지만, 사람이 진정으로 우상을 버리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는 여전히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수많은 고난과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에 왜 이방 신들을 끌어들였을까요? 왜 그들을 섬겼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들을 섬겨서 무슨 유익이라도 얻었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의 사업을 하나님으로 삼고, 직장을 하나님으로 삼고, 가정을 하나님으로 삼아 이런 것들을 우상으로 섬긴다면,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면, 그런 우상을 섬긴 후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 모두가 깨닫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면 우상을 조금만 건드려도 반드시 문제가 터집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택하셨기에 우상을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잘 살고, 교회를 떠나도 잘 살며, 우상을 숭배해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면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시는데, 우상을 집 안에 끌어들이는 비천한 짓을 행한다면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을 우러러 아무리 소리쳐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방 신들을 제거해야 하며,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제멋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통하지 않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번번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는 말씀을 하시도록 몰아붙여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듣기만 해도 참으로 뼈아픈 말씀입니다. 우리 안의 이방 신들을 제거합시다. 그런 것들에 마음이 끌려 다시 이방 신에게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의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일류 명문대에 척척 합격하는데,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속으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우상을 섬겨도 명문대에 잘만 가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섬기는데도 왜 안 될까?’ 하며 마음에 의문이 가득 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핑계를 찾으려 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의 흠을 잡으려 한다면 혼란을 일으킬 만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셨다고 간증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섯 명, 열 명씩 잘만 낳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제게 “선생님, 모 형제가 지금 아이를 다섯이나 키우고 있다는 걸 아세요? 예전에 우리 교회에 있을 때는 아이가 없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웃었습니다. 그분이 “왜 웃으세요?”라고 묻길래, 저는 “영적인 자녀들은 다 잃어버리고 육신의 자녀들만 많이 키우고 있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악한 일을 하고도 자녀를 다섯이나 낳는데, 당신은 온갖 애를 써도 겨우 아이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업을 위해 온갖 힘을 다 쏟아도 번창하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의 사업은 승승장구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인기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은 얼마나 유명합니까? 우리는 그들만큼 유명해지지 못합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면 당신도 우상을 섬기면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괜찮을지 모르나, 당신이 그렇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우리 마음속의 ‘핵심 이익’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의 핵심 관심사가 이 세상의 일들에 있다면 큰일입니다. 결국에는 우상 숭배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상 숭배는 세상을 사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을 사랑하다 보면 결국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런 비참한 과정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의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우리 안의 세상적인 핵심 관심사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품고 있으면 싹이 트고 자라나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참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7. 이스라엘이 겪는 곤고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다

《사사기》 기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담긴 표현을 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곤고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근심하셨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그냥 손을 펴서 구원해 주시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도와주세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근심하신 것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 버텨내지 못할까 봐, 하나님께서 정말로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 착각하고 믿음이 완전히 무너져 패망할까 봐 염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 가운데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선택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근심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까요? 목회자로서 다른 것은 몰라도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어떤 형제를 권면하며 매우 엄한 말을 하고 나면 마음속에 큰 염려가 찾아옵니다. 자매를 양육할 때 왜 마음에 근심이 될까요? 그 자매가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말을 가볍게 하면 여전히 그 잘못된 길로 갈 것이고, 말을 무겁게 하자니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저는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자매님, 그것은 당신의 어리석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축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 길이 평안의 길이 아닌데 어떻게 잘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 정말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우리 때문에 수없이 상하셨습니다. 엄하게 말씀하시자니 우리의 믿음이 무너질까 두려우시고, 가볍게 말씀하시자니 아무 소용이 없으니,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로 돌이켰고, 하나님께서는 또 한 명의 사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합니다.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기를 시작할까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사사기 10:17-18)

아무도 감히 먼저 나서지 못했고, 가슴을 치며 “내가 나가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우상을 제거한 뒤 한마음으로 모여 “암몬 사람들과 싸워 보자”라고 했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길르앗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이제 칼과 창으로 맞붙는 실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환난 때에 그 우상들에게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으라 하셨는데,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까? 이거 큰일 났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고, 우리는 우상들을 다 없애 버렸으니 아스다롯, 바알, 아람의 신, 시돈의 신, 모압의 신, 암몬의 신, 블레셋의 신들을 다 노엽게 만들었잖아. 이쪽도 저쪽도 다 등졌으니 진퇴양난이로구나.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구해 주실까?’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구원을 바랄 때의 심정이 대략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몹시 불안했습니다. 적군을 보니 깃발이 펄럭이고 메뚜기 떼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아군을 돌아보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날 왜 쳐다봐? 내가 돌격할 줄 알았어? 난 안 가. 쳐다보지 마, 회의나 해서 누가 갈지 정해보자고. 네가 갈래? 난 안 가.”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여기는 왜 모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지 않으면 암몬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재물, 소, 양, 곡식, 닭, 거위, 심지어 달걀과 거위 알까지 몽땅 빼앗아 갈 텐데 어쩌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길르앗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슴을 졸이며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실까? 우리는 우상을 버렸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집의 닭과 거위와 곡식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잘살게 해 주면 우상을 숭배하고, 환난을 겪게 하면 그저 자기 집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들의 핵심 관심사는 여전히 물질이었고, 자신의 밥줄이 끊길까 봐, 결국 돈 때문에 돌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려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속을 모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훤히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 녀석들이 자기 몫을 건드리고, 집안의 가축과 곳간과 재산에 손실이 오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그제야 내게로 돌아왔구나. 결국 그깟 세상 것들 때문이로구나.’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돌이킴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사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합니다.

8. 하나님께서 다시 사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다

하나님께서는 기생의 아들이자 모든 사람이 멸시하던 한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들이 업신여기든 말든, 그는 고난 속에서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죽기 싫고 살고 싶었기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택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왜 자꾸 이러한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우리는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이른바 정통이라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마귀와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이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수많은 목회자를 택하사 그들을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며, 사람들을 우상 숭배의 죄에서 구원해 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을 위하는 죄악에서 벗어나라고 외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이며, 우리는 오직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업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사업보다 못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향력이 우상을 섬기는 인플루언서들보다 못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일보다 화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시며,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거룩함을 이루어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새해를 맞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시고 일으키사 많은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며, 범사에 형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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