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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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계속해서 지혜와 총명 시리즈를 나누겠습니다. 지혜와 총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지혜를 얻고, 총명함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그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이 왜 속임을 당합니까? 지혜가 없고 총명함으로 사기꾼의 정체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지혜와 총명 시리즈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정신이 멍해지고, 멍한 상태에서 사기꾼에게 돈을 넘겨주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총명이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참 많지만, 이는 지혜와 총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죄를 지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죄를 짓자마자 즉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호되게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나는 주님을 믿는데 왜 조금만 죄를 지어도 곧바로 문제가 생기고, 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아무 일이 없는가?’ 오늘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다면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명의 길은 걷기 쉬운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받는 마음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우리와 함께 십수 년을 걸어왔는데, 그 10여 년 동안 수많은 징계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가득 찬 이 영생의 길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처럼 빚으셔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려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과거의 황제 주원장이 자기 아들을 어떻게 훈련시켰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제왕의 법도에 따라 훈련시켰습니다. 그것은 장난도 아니고 돼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며, 황제를 키워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우리를 왕자가 되게 하고, 그분의 기업을 상속받아 다스리는 자가 되도록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듬고 징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징계 없이 자기 성질대로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왕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거대한 기업을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업은 엄청나게 큽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와서 열 고을을 다스려라.” 열 고을을 다스린다니 장난인 줄 압니까? 한 도시의 인구가 천만 명이라면 열 고을은 1억 명입니다. 1억 명을 다스린다면 제후이자 분봉왕입니다. 천국이 봉건제인지 군현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스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10억 인구를 훌륭히 잘 다스린다면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오라. 참 잘하였으니 다섯 고을을 맡아 다섯 고을의 왕이 되라”고 하실 것입니다. 징계와 훈련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징계가 없다면 열 고을을 주어도 다 망쳐버릴 것이며, 여러분 손에서 점점 더 엉망이 되어 타락할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에 관하여 어떤 이는 날 때부터 똑똑하고 어떤 이는 날 때부터 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타고난 똑똑함이나 둔함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우리가 점점 더 지혜로워지고 총명이 통철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것을 가르쳐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릴 때 부모님에게 맞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거나, “나는 의붓자식인가 봐”라며 부모님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듣고 ‘아, 나를 때리신 것도 친자식이기 때문이구나’ 하고 깨달으면 지혜로워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 지혜와 총명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해야지, “아이고, 난 주워온 자식인가 봐”라고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속을 무척 썩이는데, 제가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섬겨보았습니다.

걸핏하면 “선생님, 저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기 위해 지음받은 그릇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래, 맞다”라고 합니다. 날 때부터 진노의 그릇이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물어볼 게 없어서 그런 걸 묻다니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그 아이가 똑똑한지 아닌지는 부모를 원망하는지를 보면 압니다. 매를 맞고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경찰서에 고소하고 복수하려 든다면 어떻겠습니까? 스마트폰만 하고 공부를 안 해서 맞았는데, 권리를 찾겠다며 부모를 가정폭력으로 고소한다면 머리에 똥이 찬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릴 때부터 그 머릿속의 오물과 쓰레기를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의 남편이 아이를 훈계하자, 그 아이가 부모를 가정폭력으로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서른 살이 되어서도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또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인가요? 나는 주워온 자식인가요? 나는 계모 밑에서 자란 자식인가요?”라며 어리석게 굽니다. 이때 우리는 생각을 교정하고 총명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매를 맞았으면 스스로 원인을 찾고 어디를 회개해야 할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기도할 때 눈, 입, 목 등 온갖 질병을 호소하는데, 이 모든 문제들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사람이 왜 회개해야 합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성질대로 살면 틀림없이 마귀 같은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친자식이 아니어도 징계를 받을 때 친자식처럼 순응하면 지혜로운 것이고, 친자식인데도 징계를 받을 때 친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나쁜 것이며 자라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겠습니까? 어릴 때 훈계를 잘 받는지 보면 장차 얼마나 고생할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순 살쯤 되었다면, 지나온 삶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게 됩니다. 머릿속에 쓰레기가 너무 많으면 제대로 작동하겠습니까?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고 누가 해치려 하는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사기꾼이 오면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자기를 훈계하고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은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어리석은 사람을 몹시 싫어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섬기기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사람을 섬길 때면 제 모든 신경이 곤두섭니다. 현대판 ‘농부와 뱀’의 비극을 연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는 현대판 ‘농부와 뱀’ 같은 사람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백 가지를 잘해주어도 한 가지만 마음에 안 들면 다 뒤엎어버리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 이 사람들을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데려가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징계라는 것 자체가 친자식인지 아닌지를 증명합니다. 저와 상관없는 바깥 사람이라면 저는 얼마든지 빈말을 잘할 수 있습니다. “아, 자매님 평안하세요,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저도 사랑합니다” 하고 끝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제가 양육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십니다”라고만 하는 것은 속이는 것 아닙니까? 반드시 “이 문제는 고쳐야 하고, 저 문제도 고쳐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반드시 고치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붙잡으면 고쳐질 때까지 놓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역사하십니다.

죄를 지었을 때 왜 징계를 받습니까? 친아들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어릴 때 부모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자라서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어릴 때 타고나길 공부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공부를 좋아하겠습니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한 일입니다. 한번은 학교를 빼먹고 동네 불량한 아이들과 놀러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놀이였지만, 그때는 철이 없어 몰랐습니다. 어디로 놀러 갔는지 아십니까? 방공호 깊은 곳까지 탐험하러 다녔습니다. 출구를 못 찾으면 그대로 죽어 미라가 될 뻔했습니다. 당시 군사훈련이 있어서 탱크와 폭약이 쾅쾅 터지는데, 실탄 훈련을 보며 재미있다고 구경했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짓입니까? 집에 돌아와서 호되게 맞았습니다. 가죽 허리띠로 엉덩이를 철썩철썩 맞았는데, 그 매 덕분에 명문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저는 부모님의 훈계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훈계를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매 맞을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매를 맞고 경찰서에 가서 부모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했다면, 오늘날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며 머리에 똥이 찬 채 살았을 것입니다. 훗날 주님을 믿은 후에도 하나님은 저를 매우 엄하게 다스리셨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에 이른 것은 정말로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레드카펫을 밟고 상을 받는다면, 저는 가장 먼저 저의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입니다! 징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올바르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매를 많이 맞고 싶다면 훈계를 받지 마십시오. 매를 적게 맞고 싶다면 징계를 잘 받으십시오. 말이 모순처럼 들립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한 번 징계를 받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죽어갈 때, 아무리 징계를 받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는 비극이었으며 그들은 모두 광야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더니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와 죽게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 영광스러운 길을 달릴 생각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려 하지 말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양육 사례를 들었습니다. 우리 목회자 한 분이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 사람에게 30분 동안이나 설명하며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타이릅니까? 타이르고 억지로 붙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발기부전을 해결하러 왔는데, 문제가 해결되고 아내도 임신했으니 평안히 가도록 보내주면 됩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가다가 이집트에서 나온 노예처럼 고생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걷다가 광야에 쓰러져 죽는다면 얼마나 고생스럽습니까? 그 사람의 시간도 낭비이고 내 시간도 낭비이며 얼마나 어긋난 일입니까?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며, 일정한 안목과 지혜, 총명이 없으면 통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가겠습니까? 갈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어떤 목사님의 교인이 병을 고치고 축귀 사역을 받으러 저를 찾아왔습니다. 101 기초 과정을 겨우 두 과 듣더니 “이건 안 되겠다, 난 이런 걸 하러 온 게 아니다”라며 돌아갔습니다. 어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다 받아주지만, 우리 교회는 사명이 있는 사람만 받습니다. 여러분은 이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은혜를 받겠지만, 진정으로 이 사명의 길을 달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 징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왜입니까? 여러분을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아 그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훈계를 받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작은 장사를 하나 하려고 해도 훈련이 필요한 법입니다. 징계는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과정이기에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단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린 나무는 다듬지 않으면 곧게 자라지 못하고, 사람은 다듬지 않으면 삐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사역할 때, 마침 세 살짜리 아이를 둔 형제가 있었는데 아이가 꽤 장난이 심했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 훈육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는데, 제가 어느 쪽 편이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아이가 매를 맞아야 한다는 편이었습니다.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니 “아이가 우는 게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가?”라고 하더군요. 영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매가 부족한 것입니다. 저는 아이를 훈육할 때 매를 댑니다. 매를 맞으면 아프고, 아프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너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이 집에서 너는 종이자 아들일 뿐이지, 네가 왕인 줄 착각하지 마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들이 손주들을 응석받이로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망치는 길임을 모릅니까? 알면서도 왜 아이를 망치려 합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아이에게는 날 때부터 제멋대로 하려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 고집과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자라서 오늘날 그런 모습이 되었다면, 솔직히 말해 과거에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훈육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잘 키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바르게 훈육한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 훈육하면 틀림없이 망가집니다.

그래서 제가 그 형제에게 아이를 매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다듬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말하게 하고, 해야 할 일은 분명히 하게 하되 제멋대로 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네가 여권을 만들어 캐나다로 날아갈 수 있다면 날아가라. 그렇지 못하다면 여기서 규칙을 잘 지켜라.” 조금 엄하게 다스려도 괜찮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이라는 본성이 있어서,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악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됩니다.

몇 년 전 우리 교회 한 자매가 아이를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극성맞은지, 휙 날아다니고 구르고 뛰며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하철로 40분이면 올 거리를 아이가 울고불고 떼를 쓰는 바람에, 중간에 내려서 달래고 어르느라 3시간 만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제게 온 이상 문제는 간단합니다.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아느냐? 여긴 내 구역이니 규칙을 지켜라.” 아이가 규칙을 어겨 매를 호되게 맞더니, 40분 만에 얌전해졌습니다. 2주 뒤에 본색이 드러나 옛 버릇이 도지자 엄마가 다시 데려왔습니다. 이번에는 2시간 동안 훈육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제가 나무 막대기 하나를 건네주며 “이걸 가져가라. 이건 어사검(상방보검)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그 아이가 저와 함께 밥을 먹었는데 아주 얌전했습니다.

그 부모가 제게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장래가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징계를 받는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올바른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어디가 틀렸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바른 기준은 하나이지만, 틀리는 방법은 수천만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회개하는 마음이 매우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회초리 사진을 올리셨는데, 참 잘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호랑이 엄마’가 몇 분이나 계십니까? 호랑이 엄마는 좋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회초리를 실제로 사용해 보셨습니까? 손을 높이 들었다가 살짝 내리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끊임없이 하나님과 말씨름하며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도를 따르지 않았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라고 하시는데, “아닌데요, 전 확실히 순종했는데요”라고 우기면 그것이 바로 사울왕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도대체 몇 번을 징계받아야 깊이 회개하겠습니까? 한 번 징계를 받고 깊이 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본문 말씀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5-11)

3. 기도

하나님, 오늘 주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주옵소서. 오늘 우리가 주의 집에서 참된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의 징계가 항상 우리 위에 머물게 하시고, 우리에게 깨달음과 지혜를 주셔서 주의 징계를 받을 때마다 온전히 회개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빚어주시고, 이 세상에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는 마음을 주사 주의 징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이 말씀의 배경인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먼저 교회를 세웠는데, 누가 세웠습니까?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 세운 교회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베드로 등 약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세운 예루살렘 교회에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들만의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는 갈수록 쇠퇴해 갔습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바로 교회가 박해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훗날 성경을 연구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왜 박해를 받았을까?’ 살펴보니 교회가 계속해서 부패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패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성경에는 다소 은유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 베드로와 야고보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구제와 식궤를 맡는 일에 대해 베드로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합니다. 나중에 저는 이 일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 책임자가 직접 맡아서 챙겨야 할 중대한 일들이 있습니다. 최고 책임자라면 반드시 관리해야지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아랫사람에게 맡겨두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게 둔다면 그 책임은 최고 책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식탁을 섬기는 작은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차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장차 한 도시를 맡겨주셨을 때 그런 식사 관리조차 문제가 된다면 큰일입니다. 사역자라면 먼저 관리할 줄 알아야 하며, 식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교회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대거 교회 안으로 섞여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교회가 징계를 받지 않고 배길 수 있겠습니까? 징계를 받은 후 교회는 쇠퇴해 갔습니다. 바울이 히브리서를 쓸 당시, 유대인들은 바울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나 사도 바울은”이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의 이름만 들어도 읽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기명으로 편지를 써서 유대인들 사이에 회람시켰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엇으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모세의 율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야고보서가 모세의 율법을 매우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갔기 때문에 많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믿는다고 하지만, 수많은 징계를 받았고 그 시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고난을 겪으며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을 이야기한 후, 12장에서는 징계 가운데서도 여전히 믿음을 지키고 있는가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 체계입니다.

징계는 곧 믿음의 훈련이자 실천입니다. 왜 징계하십니까? 죄 때문이며, 우리를 얽매는 죄와 온갖 무거운 짐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 특히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참된 진리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며 고심하여 부드럽게 권면했습니다. 그들이 행위 중심, 율법 중심의 저주받는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브리서를 써서 그들이 믿음의 길로 돌아와 다시 복을 받게 하려 했습니다. 본문에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브리서 12:4-5)

유대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유대인들은 지각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 사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징계를 수없이 겪었는데, 교회가 찢어지게 가난해질 정도였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인들이 징계를 받으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유대인 중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성경은 이 징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서 12:9)

전체 말씀이 징계를 다루고 있는데, 핵심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징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얻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은 거룩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야 하지만, 거룩하지 않은 아들이라면 거룩함 없이는 주를 뵙지 못합니다. 거룩해지려면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그리스도인은 평생 세 살배기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 살배기가 어떻습니까? “엄마, 밥 줘, 젖 줘” 하는 상태입니다. 도무지 자라지 않는데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성장의 단계마다 하나님의 징계 방식도 달라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징계하십니다. 징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크나큰 은혜이며, 히브리서를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제거되고, 흔들리지 않는 것만 영원히 남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영원히 남지 못할 것들은 다 제거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아들의 형상이 없으면 그것을 갖출 때까지 다듬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길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가르칩니다.

5. 하나님의 징계에 민감해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징계하실 때 절대로 완고해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징계를 받아 머리가 어지러울 때 즉시 회개하여 즉시 회복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에 민감하지 못하고 마음이 완고합니다. “난 잘못한 게 없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하지만, 하나님도 틀리지 않으시고 귀신도 틀리지 않으며 오직 우리 자신이 틀린 것입니다. 얼마나 머리가 어지러워야 회개하겠습니까? 어떤 이는 두드러기가 나고, 어떤 이는 눈이 멀 지경이 되는 등 온갖 일들이 일어납니다. 밥을 넘기지 못하고 자주 열이 나는 등의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에 민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무조건 “사역자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낫겠지요”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는 사역자도 기도해 줄 수 없습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병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닮지 못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처럼 “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라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그럼 그들처럼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저렇게 살아도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왜 간섭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훈육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병을 한 번 더 앓고 덜 앓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열이 한 번 더 나고 덜 나는 것, 다리나 눈이 하나 더 있고 덜 있는 것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눈이 범죄하게 하거든 뽑아버리고, 손이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 천국에는 다 장애인들뿐인가?”라고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민감해야 하며, 결코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6.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징계를 받는 것이 유익합니다. 징계를 받을 때 ‘나는 친자식이구나, 나는 하나님의 자녀구나’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징계하지 않으시면 큰일 난 것입니다. 우리 양심은 다 알고 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을 품어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보십시오. 반드시 고통과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오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귀신을 보내어 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 어떤 이들은 점차 가난에서 벗어나더니 사역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물론 가난했던 옛날보다는 낫겠지만, 어떤 이는 “선생님, 사역에 열정도 없고 감흥도 없는데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떠나 놀러 다녀도 아무 탈이 없고 징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축하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은 징계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왜입니까? 그 마음이 추구하는 바를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왜 징계하지 않으실까요? 애초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달려갈 생각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놀고 돈이나 쓰며 살고 싶다면 그 생각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징계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이곳에 머물지 마십시오. 그냥 가셔서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진정한 자아를 펼치십시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같은 재주가 없어서 조금만 잘못해도 매를 맞았고, 하나님은 허리띠로 저를 내리쳐 하나님 나라로 이끄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매로 쳐서 명문 대학에 보내셨고, 저의 하나님은 저를 매로 쳐서 하나님 나라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다면 어찌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올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사람이 세상 죄에 얽매이면 반드시 징계를 겪게 되고, 돈을 중히 여기면 반드시 징계를 받습니다. 제가 어떻게 징계를 겪었는지 아십니까? 돈을 사랑하는 순간 속이 뒤틀리고 괴로웠습니다. 남들은 돈을 사랑해도 편안한데, 우리는 돈을 사랑하면 괴롭습니다. 며칠 전 한 동역자가 “선생님, 저는 돈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죄의 요소들을 처리하고 거룩해져야 하며, 그분의 거룩하심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징계를 받을 때 즉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살아야 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 살 때의 훈육 방식이 있고, 일곱 살이 되면 징계 방식이 달라집니다. 평생 세 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일곱 살이면 학교에 가서 숙제를 해야 하는데, 세 살 때처럼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조를 수 있겠습니까? 열 살이 넘으면 집안일을 도와야 하고, 스무 살이 넘으면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과거의 잣대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습니다. “선생님도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겪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나 저승사자를 만나는 것이라면, 거룩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제멋대로 살면 저승사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세상의 얽매임은 참으로 많습니다. 일, 생활,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이 우리의 거룩함을 시험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이기심을 다루고 있으며, 겪어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잘못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도 온갖 그럴듯한 논리를 대며 스스로 부모를 극진히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남이 투자에 성공하고 자기는 실패했을 때, 남들은 잘사는데 자기는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이 몹시 뒤틀리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괴롭지 않습니까? 집값이 쌀 때 팔고, 집값이 오르니 살 엄두를 못 냅니다. 괴롭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괴롭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얽매는 죄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상관없지만,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8.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얻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을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 나라와는 다릅니다. 세상은 때가 되면 정권이 바뀌어 미국 대통령은 8년, 러시아 대통령은 20년 연임할 수 있어도 결국 관직은 바뀌고 맙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수고하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다듬으심을 받아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그 나라의 일을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천국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할렐루야만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총명을 훈련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이 그분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 하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9.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 형제자매 여러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 쓴 뿌리를 내고 다른 사람들까지 더럽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를 댑니다. 그 말이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많은 사람을 더럽힙니다. 왜입니까? 그 마음속에 담긴 것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자가 지어낸 이야기에 미혹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십시오. 사람은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신과 남을 더럽히고 쓴 뿌리를 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나 음식 한 그릇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세속적인 자가 될까 주의하십시오. 에서는 나중에 아버지가 빌어줄 복을 이어받으려 했으나 버린 바 되어,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순식간에 속아 넘어갑니다. 반드시 지혜와 총명을 훈련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듭 징계하실 때 이를 가볍게 여긴다면, 여러분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쓴 뿌리를 내고 많은 사람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에서처럼 장자의 명분을 잃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잃고, 거룩해지지 못하며,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십시오. 세속적인 것에 탐닉하는 것이 곧 에서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것들을 철저히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세상일을 생각할 때 온갖 번민과 요동함이 찾아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나눈 말씀을 바탕으로, 이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징계를 통해 더욱 강건해지며, 하늘의 사명의 길을 달려가야 함을 더욱 확신하십시오. 세상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는 모든 자들은 스스로 주의하고 근신하며,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아멘!

찬양을 부르며 주일 헌금을 드리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알지 못하고 드리는 것은 저주가 되며 복을 받지 못합니다. 헌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드릴 자격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기업 하나를 일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헛되고 헛되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헛된 것임을 알지 못하면 이 사명의 길을 달릴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유니콘 기업을 세우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지만 그 또한 헛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사업을 크게 확장하여 돈을 많이 벌어 사람들 앞에 자랑하려 하지만, 그 역시 헛될 뿐입니다. 영생을 목표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 더 이상 어리석음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총명과 지혜 가운데 끊임없이 성장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되 오직 흔들리지 않는 것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징계를 받고 계신 분들은 다시 믿음을 추스르고 강건해져서 자신을 주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이 길을 걸어가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 훈육에 서툰 분들은 하나님께 징계의 법을 배우십시오. 자녀가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병을 조금 더 앓고 오래 앓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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