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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빌립보서 3장 - 사도 바울을 본받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2025-09-17 42,285 腓立比书

相关经文

腓利比书-真正的义
  • 1 弟兄们,我还有话说,你们要靠主喜乐。我把这话再写给你们,于我并不为难,于你们却是妥当。
  • 2 应当防备犬类,防备作恶的,防备妄自行割的。
  • 3 因为真受割礼的,乃是我们这以 神的灵敬拜、在基督耶稣里夸口、不靠着肉体的。
  • 4 其实,我也可以靠肉体;若是别人想他可以靠肉体,我更可以靠着了。
  • 5 我第八天受割礼;我是以色列族、便雅悯支派的人,是希伯来人所生的希伯来人。就律法说,我是法利赛人;
  • 6 就热心说,我是逼迫教会的;就律法上的义说,我是无可指摘的。
  • 7 只是我先前以为与我有益的,我现在因基督都当作有损的。
  • 8 不但如此,我也将万事当作有损的,因我以认识我主基督耶稣为至宝。我为他已经丢弃万事,看作粪土,为要得着基督;
  • 9 并且得以在他里面,不是有自己因律法而得的义,乃是有信基督的义,就是因信 神而来的义,
  • 10 使我认识基督,晓得他复活的大能,并且晓得和他一同受苦,效法他的死,
  • 11 或者我也得以从死里复活。
  • 12 这不是说我已经得着了,已经完全了;我乃是竭力追求,或者可以得着基督耶稣所以得着我的(所以得着我的:或译所要我得的)。
  • 13 弟兄们,我不是以为自己已经得着了;我只有一件事,就是忘记背后,努力面前的,
  • 14 向着标竿直跑,要得 神在基督耶稣里从上面召我来得的奖赏。
  • 15 所以我们中间,凡是完全人总要存这样的心;若在什么事上存别样的心, 神也必以此指示你们。
  • 16 然而,我们到了什么地步,就当照着什么地步行。
  • 17 弟兄们,你们要一同效法我,也当留意看那些照我们榜样行的人。
  • 18 因为有许多人行事是基督十字架的仇敌。我屡次告诉你们,现在又流泪地告诉你们:
  • 19 他们的结局就是沉沦;他们的神就是自己的肚腹。他们以自己的羞辱为荣耀,专以地上的事为念。
  • 20 我们却是天上的国民,并且等候救主,就是主耶稣基督从天上降临。
  • 21 他要按着那能叫万有归服自己的大能,将我们这卑贱的身体改变形状,和他自己荣耀的身体相似。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빌립보서》 3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은 정말로 훌륭합니다. 비록 이 말씀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는 사람이라면—사실 그분은 참으로 가장 귀한 보배이십니다—우리는 반드시 힘써 추구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의 주제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부패한 말은 바로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입니다

이게 도대체 어느 교파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주님을 믿으려면 먼저 교육부터 시켜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시작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 자료들에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거기에 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둥 온갖 엉터리 같은 내용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 눈에는 그가 구원받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교회 안에서 목격한 부패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안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가장 부패한 말은 바로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아줌마 둘이 모여서 집안 잡담이나 늘어놓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습니다. 그 어디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까? 제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잡담하고 실없는 소리 지껄이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제가 이런 습관을 언제 갖게 되었을까요? 어릴 적 집에 있을 때 저는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제 공부를 하며 할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내가 열심히 대학 입시 공부를 해도 붙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만약 이미 대학에 붙었다고 온종일 헛소리나 하고 TV나 보고 있다면 무슨 가망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이웃의 아줌마들을 보면, 아이고 맙소사, 우리 집 구들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곁을 지나갈 때마다 찌린내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들은 제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남의 집 이러쿵저러쿵 잡담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교회에 갔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아줌마들이 교회로 이사를 온 것인지, 교회가 아줌마들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인지, 온통 그런 것들뿐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나 답답해서 말했습니다. "교회가 이렇다면, 천국에 다 이런 사람들뿐이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겠다." 제가 이런 일들에 대해 판단을 했다거나 선악을 분별했다고 하든, 저는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어쩌면 그렇게 구원받은 모습이 전혀 없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부패한 것은 바로 헛소리나 지껄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이고, 자매님, 몇 년도에 은혜로 구원받으셨어요?"라고 하고, 다른 이는 "저는 2012년에 세례받고 은혜를 입어 거듭나 구원받았습니다. 그쪽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저는 자매님보다 2년 늦어서 2014년에 은혜 입고 거듭나 구원받았어요"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짓거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자기가 세례받았으니 구원받았고,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 후 제가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강의안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자료를 검색해 보니, 제가 관찰한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관찰한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눈으로 조금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을 믿은 처음 2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런 것들을 보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영적 생명이 자라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많은 부패함을 보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전임 사역자 중 제가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드럼을 치는데, 드럼스틱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며 드럼을 정말 잘 쳤습니다. 찬양 인도를 아주 훌륭하게 했습니다. 자세도 너무 멋있고 세련되어서 수많은 자매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해하실 테니 장면 묘사는 이쯤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래에서 그들과 접촉해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제게 돈을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잘못 짚은 것 아닙니까? 제가 은행을 차린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줄 리 없습니다. 보니 교회 안에 난장판인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드럼을 치며 찬양을 인도하고 엄청 멋있었습니다.

저는 결코 사람을 우상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멋있어도 개인적으로 사귀어 보면 엉망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작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나는 진실하게 전하겠다. 내가 전할 때의 모습 그대로의 사람으로 살겠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 진실하게 살고 헛소리는 하지 않겠다. 앞뒤가 다른 삶을 살지 않겠다.' 나중에 가만히 관찰해 보니, 무대 위에서는 정말 예수님 같았습니다. 머리를 조금 볶고 갈색 가운을 걸친 채 작은 캔버스 백을 메면, 아이고 맙소사, 영화 《예수》에 나오는 예수님과 너무나 똑같이 생겨서 영화 《예수》를 찍으러 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립보서》 3:2-6)

그런데 여러분은 바울이 이런 것들을 자랑거리로 삼았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런 것들을 자랑하며 온종일 발가벗고 뛰어다니며 "나 할례받았다!" 하는 격입니다. 길거리에서 "와서 봐라!" 한들 볼 게 뭐가 있습니까? 보면 무슨 꼴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출신을 논하든, 세례를 논하든, 율법을 논하든, 할례를 논하든 무슨 소용입니까? 육체에 무슨 표시를 남겼든 아무 소용없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나쁜 생각뿐이고 뱃속에는 오물만 가득하다면 아무것도 아니며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논해야 합니까? 논하려면 예수님을 닮았는지를 논해야 하고, 말하려면 예수님을 닮았는지를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나중에 왜 교회를 개척했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너무나 많은 거짓된 것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당신네 교회에도 거짓된 것들이 많지 않으냐"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습니까? 당신이 들어왔다고 해서 당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제가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온전해진 것도 아니고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오직 힘써 추구할 뿐입니다. 저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일만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푯대가 누구입니까? 푯대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몇 퍼센트나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귀신 쫓는 데는 능력이 없으면서 예수님 쫓아내는 데는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귀신 쫓는 데는 능력이 없으면서 교회를 판단하고 목사를 판단하는 데는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일전에 몇몇 목회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이 아주 기가 막힌 말을 했습니다. "귀신 쫓는 데는 능력이 없으면서 목사 쫓아내는 데는 능력이 대단하다." 여러분, 이것이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도대체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정말로 내세울 만한 알맹이가 있다면 꺼내서 보여 보십시오.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는 꺼내놓지 마십시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제가 말이 조금 거칠지만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아, 어젯밤에 제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만두세요. 사진 찍었습니까?"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라고 하면, 사진이 없으면 증거도 없는 것입니다.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을 보았다고요? 당신 같은 몰골로 예수님을 봅니까? 왜 제 눈에는 예수님이 당신을 보시는 모습이 안 보일까요?

추구해야 할 기준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에서는 이 점을 아주 솔직하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빌립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까요? 빌립보 사람들은 '보라, 우리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보다 낫고, 우리 교회는 고린도 교회보다 낫다. 우리 교회는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나는 이미 화인명정신학에 왔고, 승리하는 교회에 있다'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보세요, 제가 지난주에 제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 경험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준이십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섬겨준 사람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은혜를 받게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는 아주 신기한 관리 방식이 많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결정권을 갖고, 섬기지 않는 사람은 옆으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해도 헌금을 많이 했어도 옆으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이곳은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에서 더 간절히 추구하는가를 보는 곳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형제자매 여러분은 제가 첫 번째로 말씀드린 그리스도인의 가장 부패한 말, 즉 "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보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제가 묻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영광스럽습니까?" 어떤 이는 "보세요, 저는 빚도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빚이 없으면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맙소사. 또 어떤 이는 "보세요, 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라고 합니다. 제가 "무슨 일인데요?"라고 하니, 그는 "보세요, 제 삶도 괜찮고 직장도 좋고 빚도 없으며 저축도 있고 몸도 건강합니다"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까마득히 멉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얻었느냐 못 얻었느냐, 구원받았느냐 못 받았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았느냐 닮지 않았느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알아들으셨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장차 언젠가 정말로 온전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든 수고와 모든 섬김의 열매, 우리 내면의 그 소망과 열렬한 추구가 한순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이 땅에 있을 때 마치 하늘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을 따라 이 땅에 있을 때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추구한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 땅에 있을 때 귀신을 닮기를 추구하고 오직 자기 배만 생각한다면—배가 곧 여러분의 신이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으며, 세례를 받고 나서 "아, 나는 2012년에 세례받고 구원받았다"라고 말한다면—예수님께서 오실 때 여전히 돼지로 변하고, 개로 변하고, 나귀로 변할 것입니다. 그 어디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화인명정신학의 구원관이 '당신이 살아있을 때 어떤 모습인가'라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솔직하고 실제적입니까? 그 후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우리는 화인명정신학의 신학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추구하는 체계이며, 그분만이 우리의 본이십니다. 여러분은 몇 퍼센트나 닮았습니까? 입만 열면 선악을 분별하는 냄새를 풍기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기를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십니까? 세상에, 당신 앞에 나아오는 자마다 당신이 예수님과 같아서 당신에게 오는 자마다 다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섬김은 그야말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섬기는 섬김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사람들이 보면 "세상에, 정말 좋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조금 과시(베르사유)하고 싶어집니다. 바리새인이 아니라 과시(베르사유)입니다. 바리새인이 되면 큰일 납니다.

정말로 주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교제하면서 참 좋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목사님, 왠지 모르겠지만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하면 참 편안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사는 것을 헛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저와 교제하면 편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자신이 온통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서 살아가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말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하고, 일을 해도 일답게 하고, 섬겨도 섬김답게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본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저와 토론하며 "아주 뛰어난 목수가 몇 명 있는데, 노반(鲁班), 제갈량,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노반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낼 수 있다면 일생을 헛되이 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원이며,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온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때때로 제가 간증을 나눌 때 특히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그곳에 갔는데, 그분의 온천 별장에 묵게 되었습니다. 온천 별장도 묵고 나니 그저 그랬습니다. 그분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 저는 그분과 화인명정신학의 이런 내용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목사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천 명 중 999명이 지옥에 가고 1명이 천국에 갑니까, 아니면 999명이 천국에 가고 1명이 지옥에 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가보았다면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다만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서 다시 말씀드리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웃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한 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닮았는지 아닌지입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마귀를 닮으면 마귀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니 우리 거울을 보고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봅시다."

그렇다면 저는 왜 이런 추구를 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에게 진심 어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눈곱만큼의 의미도 없었습니다. 사는 것이 아무런 재미도 없었는데,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저는 이 무의미한 인생을 매우 의미 있게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이유를 아십니까? 본래 사람이 사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연약하고 형편없고 엉망인 상태에서 조금씩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 참으로 추구할 만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정말로 추구합니다. 무엇을 추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기를 추구합니다. 화인명정신학의 한 명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끝이 없다.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온전해졌다고도 하지 말며, 이미 구원받았다고도 하지 마십시오. 오직 힘써 추구하며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푯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 얼마나 좋습니까! 듣기만 해도 좋지 않습니까!

나중에 이것이 화인명정신학 안에서 매우 명확한 구원관이 되었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 존귀한 형상, 큰 능력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암에 걸릴 것을 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대비해서 뭐 하겠습니까? 어떤 이는 "1억으로 부족해서 간을 이식했는데, 안 되어서 다시 신장을 이식하느라 5천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차라리 머리를 바꾸시지요. 다음에 만나면 머리가 딴 사람 것으로 바뀌어서 못 알아보겠습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간을 돼지 간으로 바꿔주고, 신장을 돼지 콩팥으로 바꿔준다고 칩시다. 더 발달해서 머리를 돼지 골로 바꿔준다면, 도대체 얼마의 돈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그렇게 해결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차라리 살아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힘입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 낫지,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날부터 오늘까지 저는 줄곧 예수 그리스도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지극한 보배라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못됐습니다. 얼마나 못됐는지 아십니까? 아무 일 없을 때는 예수님을 밀쳐놓고 "예수님, 저 귀찮게 하지 마세요. 저 일 있어서 바빠요" 하다가, 일이 생기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여러분, 괘씸하지 않습니까?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귀하게 여김

이것이 바울의 태도입니다. 왜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까? 본받으려면 바로 이런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생식기에 작은 수술 하나 한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세례받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온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병 고침 받은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 영업 계약 하나 따내고 고객 한 명 얻은 것을 절대로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십시오. 그 외의 모든 것은 해로운 것으로 여기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립보서》 3:7)

바울은 이것도 의미 있고 저것도 의미 있다고 여기다가, 나중에는 다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8)

왜 그렇습니까? 아직 온전히 얻지 못했고 아직 그만큼 닮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멀었기에 가면 갈수록 덜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9-11)

보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이 우리에게 본받으라고 권면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주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어야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믿었던 방식,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 따위는 너무나 형편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쓰레기요 배설물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에 저는 깊이 감탄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형제자매 여러분은 아직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제가 억지로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기준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멀리서 바라보며 '이것이 나의 추구다'라고 해야 합니다. 눈을 45도 각도로 올려 위를 바라보십시오. "아이고, 45도 각도요? 60도로 올리겠습니다" 해도 좋습니다. 원한다면 90도 각도로 맞추어 언제나 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스러운 형상을 바라보며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할 바다'라고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은 빛을 잃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데 있어 이것이 핵심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찾아와서 "아, 목사님, 제 아들이요; 제 직장이요; 제 이것이요 저것이요"라고만 말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온종일 땅의 일만 생각한다면 땅의 것을 얻게 될 것이고, 걸릴 암에 걸리고 걸릴 루푸스에 걸리며 당할 일을 그대로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여 "아, 제가 과거에 잘못 생각했습니다"라고 한다면 혹시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혈기를 따라 그쪽으로 달려간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그를 치는 원수를 보내어 섬기게 하실 텐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반대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우리 역시 하나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지 않고 걸레처럼 여기며, 디딤돌로 여기고, 식모나 종처럼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이토록 고귀한 복음, 이토록 강력한 복음을 사람들이 왜곡하고 변질시켰습니다. 자기 뜻대로 "예수야, 이리 와라!" 하는 격입니다. 그분이 당신의 종인 줄 압니까? 그분은 하늘의 왕이시며 결코 농담 상대가 아닙니다.

"보세요, 내가 아픈데 왜 나를 돌보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병은 예수님께서 작은 귀신 하나를 보내어 당신을 치신 것 아닙니까? 그분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을 경외하지 않는데 그분이 당신을 치지 않고 누구를 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이리 매정하신가?"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준은 하늘에 굳게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요, 힘써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따지지 마십시오.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종처럼 부리지 마십시오. 그분은 하늘의 왕이시니 장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얻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여겨 주시며, 귀신은 당신에게서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을 죄인으로 여기십니다. 귀신은 죄인에게 합법적으로 역사하여 파멸시킵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면, 가문 배후의 귀신이 원래 강한 데다 그 귀신이 당신을 속일 때 그를 따라가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게 됩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참으로 가증한 일입니다.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힘써 추구하겠습니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겠습니까? 사도 바울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겠습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며 "어쩌라고요? 내가 이만큼 믿었는데 나한테 뭘 더 바랍니까? 나는 매달 헌금도 합니다"라고 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교만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 하나님과 따지지 마십시오. 따져서 뭐 하겠습니까?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고 본래 저주를 받아야 마땅했으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사 우리를 위해 피 흘려 희생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은 "목사님, 이런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괴롭습니다"라고 할지 모릅니다. 괴로워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고귀한 보배로 여기지 않으면서, 제 설교를 듣고 괴롭다고 여깁니다. 귀신이 여러분을 괴롭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듣기에는 마약이라도 맞은 듯 잠시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목사님,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시험에 듭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만두세요. 당신은 애초에 일어선 적도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아,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에 찔림과 정죄감이 듭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정죄감을 느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보배로 여기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참으로 완악하지 않습니까?

제 설교가 여러분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위로만 가득한 '은혜 복음'이나 들으러 가십시오. 그렇게 위로받고 나서 정작 일이 터지고 귀신이 찾아왔을 때, 그 귀신이 주는 위로를 받아보십시오. 과연 위로가 되는지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요구와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고귀한 보배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보배로 여깁니다. 보배로 여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는 여러분에게 딱 맞는 교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의 이 기준은 하늘에 세워져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당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망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를 온 세상의 기준으로 착각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형편없는 기준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쫓아가노라

절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자기가 이미 온전해졌다거나 이미 얻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오직 힘써 추구할 뿐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2-14)

이 상은 바로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을 닮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한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립보서》 3:15)

얼마나 솔직한 말씀입니까?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아직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으니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도 힘써 추구해야 하고, 온전하지 못한 사람도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온전하지 않은데 힘써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사실 이것은 매우 반어적인 말입니다. 빌립보 성도 여러분의 그 꼴을 보십시오.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왔는데, 이곳에 와서 고향 생각에 죽을 지경이 되어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당신을 섬기게 했습니다." 고향 생각이라니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람이 늙어서 불현듯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하면 곧 죽을 때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 "아, 고향에 한번 가봐야겠다"라고 말한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가 들어서 고향에 가는 것, 혹은 아직 젊은데 고향에 가면 매우 힘들어질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향의 악령'이라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너무 육신에 속해 있으면 고향에 가서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랬겠습니까? 아들 이삭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향에 가서 선을 보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 말인지 노새인지 데려다 직접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시에는 사진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를 고향에서 데려왔습니다. 그러므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이겨내지 못합니다.

빌립보 성도 여러분은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까마득히 멉니다. 곰곰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권면하건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힘써 추구하십시오.

나중에 보니 저 같은 사람은 고향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냐, 당신이 대단해서냐?'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누가 고향에 갈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아브라함이라면 고향에 갈 수 없습니다. 이삭이어도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야곱이라면 고향에 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라면 어디를 가도 상관없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절대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재앙이 임박했을 때입니다. 욥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다가 수많은 재앙을 겪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힘써 추구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틈만 나면 자기가 괜찮다고 여깁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재앙이 닥치면 아무것도 버텨내지 못하고 전혀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몸에 육신의 생각(老马)이 가득한 자만이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입니까? 사실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왜 아플까요? 많은 형제자매들이 힘써 추구하는 습관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저를 본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사도 바울을 본받고,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힘써 추구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여러분은 제가 또 자랑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진실로 제가 아직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얻은 것이 너무나 적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로 제가 온전하지 못하며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고1 때부터 자기가 서울대에 갈 줄로 착각합니다. 개도 자기가 서울대에 갈 줄 압니다. 그러다가 고3을 졸업하고 입시를 치르면 삼류 대학에도 못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온종일 TV나 보고 스마트폰이나 하면서 '좋다, 난 이미 서울대에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이미 온전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조차도 제가 아직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여러분, 저는 늘 여러분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진짜로 여러분에게 잘못해서 빚졌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왜 제가 여러분에게 빚진 마음을 가질까요? 저는 간절히 계속해서 돌파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십 리를 더 가고자 하는 것이 저의 추구입니다. 제 사역이 충분히 훌륭합니까? 많은 사람들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며,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닮지 못했고 사도 바울을 충분히 닮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목양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의 목양은 참으로 바닷물의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늘 빚진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에게 참으로 빚진 마음이 있습니까? 빚진 마음이 없고 스스로 괜찮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망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말을 조금 세게 했습니다. 바울도 얻지 못했는데 당신이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바울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까? 제 말마따나 말인지 노새인지 끌고 나와 뛰어보게 해야 합니다. 뛰어보면 곧바로 설사를 하고 멍에를 씌우면 게으른 나귀 맷돌 돌릴 때 똥오줌 마렵듯 핑계만 댑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자신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목사님,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고 제 믿음이 다 날아갔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말합니다. "그만두세요. 애초에 믿음이 없었으면서 제 설교 때문에 날아갔다니, 저한테 무슨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바울이 편지를 쓰다가 여기까지 와서 보니, 빌립보 형제자매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앞에서는 한참 칭찬해 놓고 마지막에 와서 이 부분을 읽으니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

바울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이르렀습니까? 만약 10퍼센트의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10퍼센트만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아, 저도 많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직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그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퍼센트를 배설물로 여기는 데서 20퍼센트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20퍼센트를 배설물로 여기는 데서 40퍼센트로, 40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목사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단번에 두 배씩 늘어납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빠릅니까?

모든 경제 성장은 지수 함수적 성장입니다. 아십니까? 인플레이션도 지수적 인플레이션이고, 은행에 넣어둔 예금의 이자도 복리라는 지수적 이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이토록 좋은 투자는 지수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아직 부족하여 겨우 10퍼센트만 배설물로 여기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이 보물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온갖 것이 당신을 짓누르고 온갖 것이 당신을 옭아매는데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남이 지적하면 곧바로 선악을 분별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세 살짜리 아이는 세 살짜리가 추구해야 할 일을 하고, 일곱 살짜리 아이는 일곱 살짜리가 추구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초등학교 1학년 성적을 추구하고 있다면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살수록 퇴보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면목이 서겠습니까? 첫째는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고, 둘째는 낳아주신 부모님께 면목이 없으며, 셋째는 하나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어느 단계에 이르렀습니까?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열심히 힘써 추구하십시오. 몇 년이 지나 섬길 수 있게 되었다면 섬길 수 있는 그 단계에 맞추어 행하십시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이 믿음의 길에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뒤돌아보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내가 일곱 살인데 세 살 때가 좋았다고 여겨 "세 살짜리 아이 피부가 얼마나 좋은가" 합니까? 그렇다면 저는 백일 된 아기를 보겠습니다. 백일 된 아기가 얼마나 귀엽습니까? 당신을 석 달 된 아기처럼 데리고 놀아볼까요? 보기에 참 귀여울 것입니다. 세 살 때 머리가 얼마나 큽니까? 서른이 넘어서도 머리는 세 살짜리 머리입니다. 머리통 크기가 아니라 세 살짜리 뇌라는 말입니다. 답답하지 않습니까? 부모도 속이 터지고 하나님께서도 답답해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을 보며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너희는 힘써 추구하라. 자만하지 말고 거대한 유아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 생각이 너무 고집스럽고 늘 자기만의 생각을 고수하며 늘 자기 자신으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이 좋지 않다면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지 마십시오. 무언가로 살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라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부패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 짧은 《빌립보서》를 가지고 제가 50분 동안이나 쉴 새 없이 설교했는데, 그들이 어쩌다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겠습니까?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하다가 결국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립보서》 3:18)

제가 묻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칭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권면하고 있습니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빌립보 사람들을 섬겼다면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똥만 가득 찼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 섬김 방식입니다.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수고로웠겠습니까? 자신이 온갖 고생을 다해 세운 빌립보 교회, 그 사랑스러운 형제자매들이 이 개 같은 자들에게 넘어가 부패해졌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고,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거듭나 구원받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모습이 없었습니다.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신, 그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 그들은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합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이런 자들을 따라간 것 아닙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빌립보 교회 안에서 부패를 조장했습니다.

어떻게요? "당신 이미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미 구원받았습니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아, 이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들은 대단히 부패한 자들이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눈 뜨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도 없으면서 무엇으로 사람을 위로합니까? 헛된 것으로 사람을 위로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화인명정신학에서 제가 제 안의 교만을 반드시 쳐부술 것임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알아야 합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 내면의 교만도 반드시 쳐부술 것입니다.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보세요, 내가 이렇게 영적인데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형제자매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냅시다. 빌립보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고린도 교회 사람들처럼 되지 말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처럼은 더더욱 되지 마십시오. 틈만 나면 흐리멍덩해집니다. 처음에는 생각과 마음이 흐려지더니 나중에는 뇌도 흐려지고 침대에 누워서도 흐리멍덩해집니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사람의 일생 동안 힘써 추구해도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힘써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자신에게 빚을 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마땅히 살아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빚진 것입니다. 당신의 직장을 하찮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하찮게 여겨야 그것이 당신을 얽매지 못합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그 하찮은 일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땅의 일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그런 재앙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서》 3:1)

빌립보 성도들이 그런 상태인데 기뻐할 수 있었겠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합니다. 제가 "무슨 일입니까?" 하면 "제 직장이요!"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면 "아이고, 제 남편이요!"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면 "시집갈 사람을 찾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온통 그런 시시한 일들뿐입니다. "아이고 목사님, 제 마음이 또 괴롭습니다"라고 하면 저는 껄껄 웃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속에서는 눈물이 흐릅니다. 방금 웃었지만 실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싶습니다. 저는 눈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어느 글에 아주 잘 쓰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혹독하게 다루는 곳이 어디일까요? 군대일까요? 아닙니다. 학교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병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병원에 가면 짐승처럼 됩니다. 침대에 눕혀놓고 여기저기 째는데, 사람 살을 베는 것이 돼지고기 베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이 짐승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 불평합니다.

가서 보십시오. 정형외과 기구들은 우리가 목공 할 때 쓰는 연장과 똑같습니다. 전기톱을 들고, 전동 드릴을 들고, 나사를 박아 넣는데 피투성이가 되어 참으로 끔찍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로 사람이 안 보이고 천으로 덮어놓으면 사람 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분간조차 안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토록 좋은 은혜가 있는데 왜 굳이 돼지고기처럼 난도질당하러 가야 한단 말입니까? 마음속에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이토록 좋은 은혜를 절대로 헛되이 버리지 말고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계속해서 스스로 진노를 쌓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까지 가면 돌이킬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돌이켜 사도 바울을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때 평생을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쓴 말씀입니다. 이 말이 듣기 좋습니까? 듣기 좋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더러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 내게 무슨 번거로움이 되겠는가? 너희가 살아가는 꼴을 보라. 그 얽매임, 얼굴은 쓴오이 껍질 같고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날마다 이 일로 속상하고 저 일로 답답해하면서 어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답답해하지 않는가?"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기뻐하지 않고 오늘 이 일로 얽매이고 내일 저 일로 얽매이는 사람은 머지않아 암에 걸리든, 루푸스에 걸리든, 해결하기 아주 힘든 문제에 걸려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토록 좋은 복음을 귀 기울여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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