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士师记》第二十章为什么不提非尼哈呢?
最后神使以色列人得胜了,是因为非尼哈吗?不是,是因为以色列人开始有点谦卑了。这个功课是以色列人要学的,其实非尼哈是到了最后才明白过来。我得提醒大家,若不是神,我们人哪有资格领受这恩典呢?每一次,人如果能够谦卑下来,多多少少就算是整错了,也是有错的恩典的。神使以色列人得胜,就是因为他们开始谦卑了。
Q2:老师,不要宗教是啥意思?能举例子说明吗?
不要宗教的这事儿,是可以举出很多例子的。第一:扫罗把这约柜拿到战场上去了,没用。老以利把约柜拿到战场上去了,他以为拿着约柜就有神的同在,不是。人得知道神是鉴察人心的神,人不讨神的喜悦,拿着约柜是没有用的;人如果不讨神的喜悦,拿着十字架也是没用的;人如果不讨神的喜悦,拿啥都没用,献祭也没有用。
第二:就是我们所有基督徒都要寻求神。有些基督徒寻求神,他不是说心里真的信靠神,他是让神给他背书。他是做了一个样子,凡是做了一个样子的都叫做宗教。所以我们要明白神的心意,行在神的旨意当中。
Q3:如果让我们自己读,怎么也读不明白。老师这么一讲,才明白《士师记》第二十章在讲什么。
其实我做基督徒和牧师,做了这么长时间,我告诉你,这一章我是今天下午三点才读明白的。那这个事儿是很有意思的,人只要知道自己还不懂,就好办了;人只要知道自己还没整对,就好办了,那就开始寻求。我也觉着,我怎么有这么大的恩典呢?我讲完了,觉得很爽,你们听完了,也觉得挺爽。
有人在YouTube里头说:牧师以说书的方式解析《圣经》,别具一格。他以为我在讲评书,其实我还特别地学了评书,但那东西没什么太大的用,有用的就是神的启示。神要不启示我,我上哪证明?这是一坨乌烟瘴气的故事啊。但是感谢神!我知道我没弄明白,我也不想在大家面前,装着那个样子,什么“我是解经小王子”,拉倒吧,其实我也经常读不懂。
Q4:老师,这场灾祸的起源是米迦母亲的咒诅,在这之前是不是还有米迦偷钱?
《圣经》也没说是米迦偷钱,咱也不知道。是不是米迦偷钱还是把它挪用拿走了?我们也不知道。但是,我想米迦家里有这么多钱,十舍客勒是一年的薪资,一千一百舍客勒,是一百个人的年薪,一百个人的年薪老多钱了。也就是说他家能有这么多钱,说明他的生意做得不错。
米迦应该很会做生意,很会赚钱,其实他们也都知道赚钱是个很属灵的事儿。结果他妈妈这一句话,咒诅了啥?咱也不知道。结果呢?他们就害怕,那怎么办?就赶紧解决这个咒诅啊。我说的意思是,钱是米迦偷的,还是不是他偷的,我们都不知道,应该是拿去用了。
Q5:老师,请问《士师记》第二十章中,我们向基比亚人必这样行,照所掣的签儿去攻击他们。这种做法在《旧约》中常常出现,是神认可的吗?
这种东西说好使也好使,说不好使也不好使。为啥好使和不好使呢?我告诉你,其实所有的问题,最后还得回到这是不是神的心意?如果不是神的心意,你就瞎掣签。也不知道是鬼跟你说的话,还是神把你耍了一通。所以千万别照这个东西玩啊。
那寻求神的心意,寻求神的旨意,永远是华人命定神学的主轴。在悟性上满心地认识神,在悟性上有充足的信心,永远是华命定的神学的一个很关键的环节。我们不懂,然后我们就寻求。神说,寻找的就必寻见,叩门的就给你开门。
所以千万不要刚硬,也不要整天搞抽个签儿,抽个卡片。当然了,从点击量上,我巴不得你天天抽卡片呢,但是,照着神的心意,还是好好地认识神。有的时候,我们还没来得及认识好的时候,抽个签,神也回应,就是神用恩典给你补足。但是,你整天抽这玩意儿,我想肯定会抽到不好使的时候啊。
Q6:老师,以色列人是不是需要经历了人的尽头,就是神的起头呢?
其实最好别经历人的尽头,就经历神的起头了。我觉得非得经历人的尽头才起头,那不是愚蠢吗?你早干啥去了?我就感慨,千万不要等到人老珠黄、身体虚弱,才想起神来。人在年纪轻轻的时候,就赶紧认识神,那是好得无比!在这衰败的日子未来以前,赶紧寻求造你的主, 为啥?你就养成谦卑的习惯了,我是个人,我很需要神。这不是很简单的吗?承认我是个狗屎,这也很简单啊,多有恩典啊。所以到老了也不衰残,那多好啊!
Q7:老师,以色列人一开始的时候,就没有求问神,在他们第一次求问神时,为什么神还会回答他们呢?
我们的神老幽默了,他们一开始不寻求,后来寻求了,其实就是让神给他做个背书。那神就给你背一个呗,那不是死人了吗?多死了一万人,两万人,你以为神在乎吗?神真的不在乎。所以说,神把你给幽默了一把,结果就死了两万两千人。又幽默了一把,又死了一万八千人。
那直到现今,我们是不是要知道,你被神“幽默”了,或者是你被神给“忽悠”了,那都是正常,谁让你瞎问的?谁让你不好好地信,就瞎整?为什么神还回答他们,因为就是这么个“回答”啊。
Q8:老师好,想学习一下您查经的过程,这个过程是怎么寻求的呢?就是边读《圣经》,边在悟性上弄明白。读不明白的就去问神,这一章是什么意思?神的心意是什么吗?
这事儿你别说,我正在整理一个课程,叫做如何查《圣经》。找重点,抓主题,联系上下文,这是第一。第二:就是要专注于如何行神的话。第三:要寻求圣灵的引导。你说为什么不一开始就寻求圣灵的引导呢?你要有一个认真寻求的态度。
你比如说这个《士师记》第二十章,我从礼拜一听到礼拜二,礼拜二听到礼拜三。用眼睛看了几十遍,用耳朵听了有两百遍,我也不知道啊,反正就是听啊。听得脑袋胀乎乎的,不知道祂在说啥。一会儿说:死了两万两千人,一会儿说:死了一万八千人。这种经文怎么查呀?给我累得够呛。神一看,怎么把你累成这样了啊。还是跟你说了吧。神就启示给我。这就是要寻求圣灵的启示。
第一:找重点、抓主题,联系上下文。第二:要专注于如何行神的话。第三:要寻求圣灵的引导。第四:要形成体系。你会发现我查《圣经》是有体系的。第五:要知道神的心意是教会。第六:要不断地向上攀登,永无止境。咱们就是这么查经的啊。
Q9:老师,怎么寻求神的启示呢?是一边读《圣经》,一边祷告吗?
不是。我就使劲读,读一遍不行,两遍不行,十遍不行,就读个百十来遍啊。使劲儿的读啊,你说:老师,咋使劲儿想啊?我就给它先分一段,这段在讲啥?这段又在讲啥?我就一个一个的分重点,那得费劲儿。
你以为像读小说,读完了就完了?不是。那读小说,你不用这样啊。就读吧,所以我为什么之前,把好几本《圣经》都能读烂了呢?你像我那么整啊。那些年我读烂了三本华文的《圣经》,还是纸版的,一本英文《圣经》被我读烂了。为啥呢?我读不懂啊,我不知道祂在讲啥呀?然后就整、整、整烂了。感谢神!我读不懂,我知道我没读懂,这就是关键。
我告诉你,读着、读着,然后祷告,祷告完了,再读、再祷告。其实你也不用做一个祷告的样子,神是知道的。大家知道这个礼拜天早上,我到两点了,我还不知道在讲啥。我自己给自己出了个题目,叫做“被掳的得释放”,然后两点了我不知道在讲啥。我说把这个问题丢给DeepSeek吧,就是深度搜索。哎呦,深度搜索还回答的挺好。给我一篇讲道的提纲。哎呀,还是难受啊。
大家现在理解吧,出去到冰箱里拿点东西吃。再过一会儿泡一杯咖啡喝点。那时候神一看:哎呀,太辛苦了,孩子,我还是给你点启示吧。结果到六点就明白了。这就是一股信心,就是一股劲儿啊。真好啊!我想你们做科研的、做老师的,你们就慢慢琢磨吧。我们其实还在做科研,很多问题解决不了,很多问题解释不了,还要着急。我里面就有信心,我就相信神总有一天,会启示我,让我知道如何解决,我们当中那些牧养的难题。
我们稍微回顾过去这十几年的路,我们在牧养上一步一步的提升。昨天有一个牧者就跟我反馈,有一个姐妹,是北大的高材生,你想你读北大那可不是一般的人啊,计算机系的。那是好几十年前,是我们那个年代的60后,然后就跟咱们当中的牧者通话,问了很多很多的问题。
我听完了以后就觉得,真的感谢神!因为他们那些人,缺的是一股劲儿。缺一股什么劲儿呢?缺的是我这股想把事儿整明白的这股劲儿,过去这些年信主光跑龙套了。大家知道什么叫跑龙套吗?要知道现在拍电视剧、拍电影,很多都不想整个真马,要是从真马上掉下来,那不得摔骨折啊,就整个假马。
以前还整一个轨道车在那推着跑啊,那拍电影多费劲呢,摄像头还得跟着那玩意儿跑。现在摄像头也不动了,马也不动了,整一群人,一人捧一根树在那跑,在那拍。
结果我们看的那个好笑啊,那演员一死去,嘎、嘎、嘎,往前跑。然后就有指挥,指挥那些抱着树的人,快点快点啊,一圈一圈的跑。那叫跑龙套啊,人家主角在那儿坐在马上,树在那儿跑,那谁捧着树啊,人捧着树跑啊。
反正有那么多群众演员,过来抱着树跑给你四块钱。人一辈子光捧着树跑,那能出名啊?能成主角啊?能成配角啊?啥也成不了,就捧个树跑啊。我说有多基督徒一辈子信主,信了一个龙套,感慨啊。所以咱们弟兄姐妹,不管你是啥,我说这话你别伤心,咱们就知道这么整不对。
我也不希望你效法我,你最好效法耶稣,心里柔和谦卑,那多好啊。我就感慨,我也感谢神!神造我怎么就造我成这样?那造你怎么就造成那样?其实跟造这样、那样关系不大,跟你想做什么样的人,关系最大呀。
我们碰到牧养的难题一堆一堆的,有没有弟兄姐妹可以近前来,跟我一起攻克这些牧养的难题啊?太难了,看着着急啊。为啥?你的问题一直在,我一直也搞不定那些问题,这咋整啊?但是感谢神,总有一天,咱们一起弄明白,神的旨意是何等的美好,神的能力是何等的浩大。整明白神的智慧是何等的长阔高深。
我就相信弟兄姐妹,在华人命定神学,一定可以活出神荣耀的样子。有点信心,咱们一起搞,肯定搞得出来的。人家都能搞出来这个深度搜索了,人家都能搞出ChatGPT了,咱们也可能啊。我就跟我的同工说,将来不但传福音给人,将来我们还得传福音给机器人啊。
整一个机器人,是信主信得最好的机器人啊。哎呀,我的天!你问他啥都知道啊,那多好啊。大家一边好好地寻求神,脚踏实地。不一定非得有祷告的样子,但是得有寻求的样子。
Q10:老师,我有个同事每次跟他沟通工作怎么做,说着说着他就开始抱怨工作这里不好,那里不好,还很喜欢主动找我说:工资规则是这样那样,说他好心告诉我免得踩雷,领导私下跟他是这么说我的,让我自己注意。看着是好心,但我今天发现,每次他说完我都被煽动,情绪心情特别不好,失去信心,开始体贴肉体。我就不跟他说了,但他还是找我,我现在一看到是我同事来找我,压力就很大。但平时没办法,毕竟还有工作的事要交流。我怎么有智慧的处理?
你要学会厉害一点儿。怎么个厉害呢?他跟你说这些,他不是败坏你的信心吗?你也常常败坏他的信心。你说:老师,这不是挺坏吗啊。你败坏他的信心,你得有招。也常常给他来点以“其人之道,还治其人之身”。这样那样,说着说着他就难受了。然后你就练了一副刀枪不入。为啥?把你的信心不建立在这些事儿上。我告诉你啊,当你的信心建在神的身上,他走了,你还在呢。
Q11:老师,以色列和便雅悯这么多人,怎么就没有一个寻求神,认识神的人?
我也在诧异这件事儿。为什么就没有一个寻求神的人呢?我告诉你啊,如果你在那个当中里这么说,很多人就让你滚一边儿去。不但是滚一边,还有可能,先给你放到木头笼子里头,等我们回来再说啊,根本轮不到你说话。
文化大革命的时候,你站起来说:这搞错了。你觉得你会去哪儿啊?人家搞错了?我看,搞错的是你吧。这就是为什么在以色列的历史当中先知会死在耶路撒冷。以色列的历史当中先知少,怎么说都听不进去啊,其实有先知,他们也听不进去,就这么回事。
Q12:请问老师,以色列人和便雅悯都是神的儿女,神怎么会任凭他们自相残杀,是只因他们信靠自己?
没有寻求神嘛,所以神为了让他们学功课,也不在乎死多少人。你说的好像挺对的呀,那是神的儿女吗?我告诉你,不是所有的基督徒是神的儿女,也不是所有的犹太教徒都是神的儿女,遵行神旨意的才是。
身上有亚伯拉罕的信心,身上有以撒和雅各的信心才是,心里头像亚伯拉罕的才是。我们里面那种邪乎劲儿多了,都是很要命的。所以这种人,多死一个就多死一个吧,反正就那样。出埃及的以色列人,死在旷野的有六十多万,那除了出埃及死的以色列人,那也是成千上万的死去的。
Q13:老师,《士师记》第二十章里面的以色列人,最大的问题就是悟性不通,对吗?
在悟性上不认识神,在悟性上不明白神的旨意。
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2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을 다 읽고 나면, 이것이 무슨 엉망진창인 막장극인가 싶을 정도로 참으로 비참합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을 구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은 더 큰 재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했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한 것 같지만, 정말로 구했을까요? 사실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구하러 나아왔을까요? 이스라엘 각 지파는 시체 한 조각씩, 사람의 살점을 받았습니다. 어떤 지파는 시체의 가슴을, 어떤 지파는 다리를, 어떤 지파는 머리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었으니 고기 조각마다 썩어서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길르앗 땅으로 향했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그리고 길르앗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와서 한 사람같이 미스바의 여호와 앞에 모였습니다. 그것이 정말 여호와 앞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이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모여 레위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 레위 사람은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모세의 손자였고, 당시의 제사장은 아론의 손자였습니다. 한 사람은 모세의 손자이고, 한 사람은 아론의 손자였지만, 사실 모세와 아론 시대에도 그러했는데 모세의 손자와 아론의 손자 때에 이르러 그들이 어떠했겠습니까? 결국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성경 기록자도 모세의 손자를 기록하기조차 귀찮아했을 정도입니다.
곧 피해를 입은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기를, 사십만 대군을 일으켜 사람들을 토벌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모세의 손자에게 물었으며, 모세의 손자 또한 대단하게도 자기에게 유리한 절반의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그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머물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란하고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사사기 20:4-6)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왜 자신들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마귀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착각하고 잘못한 것은 바로 이 모세의 손자입니다. 그는 자기가 모세의 손자이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역할 때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만약 이런 일이 선생님께 닥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대답합니다. "내게는 닥치지 않습니다. 내게 닥치기 전에 이미 회개했을 테니까요." 저는 당신처럼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오늘날까지 완고하게 버티며 남에게 속고, 빚을 지고, 온갖 난장판 같은 일들을 벌여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면 이런 난장판 같은 일들을 벌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손자가 벌여놓은 일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논하고 상의하더니, 결국 모든 백성이 한 사람같이 일어났습니다. 연합되었습니까? 네, 연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끼리는 똘똘 뭉쳐서 그저 공의를 따져 억울함을 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공의를 따지며 억울함을 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한 사람도 자기 장막이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필코 기브아 사람들을 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이미 결정을 내려놓았고, 하나님을 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전에도 어떤 이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 제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저는 틀림없이 "해도 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선생님, 제가 그 여자와 결혼해도 될까요?", "선생님, 제가 이 사업을 해도 될까요?", "선생님,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 저의 대답은 한결같이 "다 해도 됩니다"입니다. 왜 전부 해도 된다고 할까요? 여러분이 이미 결정을 다 내려놓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는 뜻입니다.
이제 좀 분별이 생기셨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모세의 손자를 위해 공의를 바로잡고 억울함을 풀겠다고 나서는데,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따져 물었다면 어땠을까요? 음행한 첩이 친정으로 돌아갔고, 그 남편은 미가의 우상을 만들고 미가의 집에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으며,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음행한 첩을 데리러 갔는데 모세 손자의 장인은 기어이 그를 붙잡아 두었습니다. 결국 해질 무렵에 길을 떠났다가 마침 기브아에 이르러 이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저라면 "자업자득이다, 꼴좋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가운데는 참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꼭 아셨으면 하는 것은, 수많은 일들이 사실은 '자업자득'이라는 점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구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보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이 레위인, 모세의 손자는 유다 베들레헴에 있었는데, 거기는 왜 갔을까요? 알고 보니 집에서 누군가와 토라지고 기분이 상해서 온 가족을 데리고 떠나 에브라임 미가의 집에 가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굳이 이 사십만 대군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자업자득으로 끝날 일인데 그렇게 어리석게 굴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사십만 대군까지 일으키다니요. 우리는 마귀가 무슨 짓을 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모세의 손자를 미혹하고, 미가를 미혹했습니다. 미혹하고 난 뒤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닥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원인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재앙은 더욱 커졌습니다. 만약 어느 단계에서든 하나님을 제대로 구했더라면 이런 결과에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죽어 마땅한 자는 바로 모세의 손자였고, 첩이 죽은 것은 당연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미운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사십만 대군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읽으시면서 무언가 느껴지십니까? 부디 흥분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제 말을 듣고 감정이 무너지며 "세상에,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 너무 공의가 없다"고 합니다. 사실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 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을까요?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을 의지했다
베냐민 지파를 공격할 때, 사십만 대군이 한 사람처럼 뭉쳤고, 베냐민 지파는 겨우 이만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셨다고 읽는다면 그 배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며칠 동안 이 본문을 연구해보니 온갖 해석이 다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보고 나니 저도 납득이 잘 안 가고 계속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오늘 오후 두 시쯤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십만 대군으로 작은 베냐민 하나 멸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군사들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고 활을 든 자들도 있어, 폼을 잡는 것만 봐도 다 용사 같았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더욱 대단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무예는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도 매우 뛰어났기에 군대를 훈련하는 것도 매우 전문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 중 칠백 명은 모두 왼손잡이였는데, 물매로 돌을 던지면 머리털 하나 빗나가지 않고 겨냥하는 족족 맞추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참새보다 훨씬 큰데, 하나를 조준하면 백발백중으로 죽이니 대단히 무서운 자들이었고, 오늘날로 치면 저격수들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 대단한 군대를 이끌고 있다면 항복하겠습니까? 당연히 안 합니다. 이때는 이미 피가 끓어오르고,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네가 사십만을 동원했다 해도 난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비록 우리가 이만 명뿐이라 해도, 우리 칠백 명만으로도 기드온의 삼백 용사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참패였습니다. 칠백 명은커녕 이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를 의지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들 먼저 결정을 내려놓고 나서 하나님을 구합니다. 결정을 먼저 내린 뒤 하나님더러 책임지라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구하지조차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왜 찾아? 내 손에는 돌을 던질 수 있는 왼손이 있는데.' 이것은 전부 힘 있는 자들의 논리 체계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사기에 기록된 이러한 상황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달려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기도의 능력이 대단하시니 제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십만 위안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고작 십만 위안짜리인가?' 저는 그런 짓 안 합니다. 빚에는 채권자가 있고 재앙에는 뿌리가 있는 법이니, 먼저 회개부터 하십시오. 회개하지 않으면 제가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온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가장 꺼리는 이들이 바로 용한 스승을 찾아 섬기듯 사람을 우상화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하지 않습니까? 보시다시피 저는 유덕화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성룡 같은 무술 실력도 없습니다. 외모도 볼품없고 말투도 거칠며, 늘 여러분을 향해 머리가 왜 그리 멍청하냐고 쏘아붙입니다. 그 말을 듣고 여러분은 상처를 받고, 저를 직접 보고 나면 환상이 깨집니다. 인터넷에서 제 설교를 들을 때는 대단한 줄 알았겠지만, 대단하긴 뭐가 대단합니까, 그저 그 모양 그 꼴일 뿐입니다. 우리가 신뢰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유케 하신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을 의지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중화권 사명신학(화인 사명신학)은 배우는 신학입니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악행을 깨달아 알아가며, 자기가 어쩌다 이토록 많은 재앙을 겪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 재앙의 피해자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십만 이스라엘 대군이 행한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습니까? 우리는 기브아 사람들이 행한 저런 짓들을 얼마나 많이 행했습니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탄식만 나올 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한 것은 그 불량배들을 내놓으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사실 그 불량배들을 넘겨받는 데 그렇게까지 힘을 뺄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십만 군사를 일으키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도 다 팽개치고 백 명 중에서 열 명을, 천 명 중에서 백 명을, 만 명 중에서 천 명을 뽑아 군량을 나르게 했습니다. 백성을 괴롭히고 재물을 낭비하는 일은 결코 축복을 낳을 수 없으며, 결국 육만 명이 넘게 죽는 재앙만을 불러왔을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거대한 비극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늘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이런 재앙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었던 질문 자체가 문제투성이였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었던 질문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초에 그들에게 올라가라고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도 참 유머러스하게 "유다가 먼저 올라갈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질문은 '누가 먼저 죽으러 갈까요?'라고 묻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먼저 죽으러 가거라.' 여러분 중에 유다 지파가 가장 강한데, 가장 강한 자가 올라가면 이길 수 있을까요? 못 이깁니다. 가장 강한 자가 올라가도 못 이기는데, 그 아래 지파들은 더 형편없으니 더더욱 이길 수 없습니다.
사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제게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제가 여기에 투자해도 될까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해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대뜸 제게 묻습니다. "어느 것에 투자해야 할까요? A, B, C, D 중에 하나 골라주세요." 그러면 저는 눈감고 A를 찍습니다. A가 마음에 안 들면 B, B가 마음에 안 들면 C, 그냥 눈감고 아무거나 찍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라고 허락하신 적도 없는데, 다짜고짜 누가 먼저 올라가느냐고 묻습니까? 하나님은 눈감고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대충 던지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절대로 이런 식으로 묻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느냐고 물었을까요? 아무도 먼저 올라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미루고 떠넘기며 선뜻 나서려는 이가 없자 그제서야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가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올라가자마자 이만 이천 명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올라가자마자 이만 이천 명이나 죽었지?' 하며 의아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그렇게 안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묻는 태도는 대단히 악했습니다. '하나님, 누가 먼저 올라갈 수 있습니까? 보시다시피 우리는 아무도 먼저 가고 싶지 않은데, 도대체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합니까?' 하나님은 정말 유머러스하게 맞장구치시며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말을 더듬으시듯 "유, 유, 유, 유다가 먼저 가라" 하셨을 것입니다. 누가 먼저 가든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유다는 장자의 명분을 얻어 지파들 중에서 으스대며 가장 기고만장했던 지파였습니다. 아마도 모세의 손자를 위해 공의를 바로잡자고 큰소리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한 것도, 하나님께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올라가자마자 이만 이천 명이 죽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돌아와 넋이 나갔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제가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그러다 결혼하고 나서 재앙이 닥치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호는 이미 명백했습니다. 모세의 손자가 우상을 만들었는데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으니, 가장 먼저 멸망당해야 할 자는 바로 그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개의치 않았고, 그는 심지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음행한 첩 하나 죽었다고 이런 난리를 피운 것입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용기를 내어 전날 진을 쳤던 곳에 다시 진을 쳤습니다. 진을 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녁까지 울며 부르짖고 여호와께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 우리 형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여러분, 이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훗날 여러분이 제게 "선생님, 제가 그 사람에게 시집가도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제 대답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래라, 그래, 그러려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뉘앙스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자업자득입니다. 결국 올라가서 또 일만 팔천 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뉘앙스를 알아듣지 못할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울고불고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런 악어의 눈물을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까? 사실 하나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마귀도 실수하지 않습니다. 착각하고 잘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 지구인들뿐입니다. 재앙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틀림없이 이전에 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니, 스스로 서서히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여쭙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비극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질문하는 법조차 모르니, 결국 통곡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 번째로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비로소 약간의 겸손한 태도를 가졌다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사사기 20:26)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 번째로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드디어 약간의 겸손한 태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사십만이 모였을 때는 그 사십만 대군에 대해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소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어 이르되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사사기 20:27-28)
앞서 이스라엘 온 백성이 벧엘로 올라가 여호와 앞에 앉아 울며 그날 저녁까지 금식하고,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생각을 해냈고, 드디어 조금 겸손해져서 교만과 오만을 번제물, 화목제물과 함께 태워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모습이 아닙니까? 작은 재앙을 만났을 때에는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자신감은 믿음(faith)이 아니라 자기 확신(confidence)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믿음(faith)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 확신(confidence)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자기를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디어 약간의 겸손한 태도를 보이자, 하나님께서 보시고 서둘러 긍휼을 베푸시며 "내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참으로 수고로우십니다. 이런 무리를 보고 계시자니 정말 견디기 힘드셨을 것입니다. 셋째 날에도 여전히 서른 명이 죽었습니다. 물매로 던진 돌이 멀리 날아와 머리에 맞으면 당연히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여 베냐민 사람들을 너희 손에 넘겨준다 할지라도, 너희는 이 일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언제 너희더러 사십만 대군을 일으켜 베냐민을 치라고 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그 서른 명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셨고, 마귀도 실수하지 않았으며, 물맷돌조차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착각하고 잘못한 것은 사람 자신이며, 그 서른 명도 자업자득이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설마 내가 맞겠어? 그 돌이 그렇게 정확하겠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를 믿었으니 그 짓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 번째로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많은 이들이 울고불고했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승복하지 못하고 '우리가 이 베냐민 놈들을 못 없애겠냐' 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냐민 사람들에게 또 당했고, 이 서른 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약간의 계략을 써서 먼저 복병을 매복시킨 뒤, 이스라엘 군대 소대로 베냐민 사람들을 성 밖으로 유인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이때 매우 기고만장하여 자신만만했습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일류이고, 무예 실력도 일류다!' 하며 모든 것을 무시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한 번 승리하여 이만 이천 명을 죽였고, 또 한 번 승리하여 일만 팔천 명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적어도 일만 육천 명쯤은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정예병 일만 명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베냐민 사람들은 '겨우 일만 명밖에 안 왔네, 숫자가 안 맞잖아, 난 일만 육천 명은 되는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자신감에 도취된 것입니다.
소설에서 흔히 듣던 이야기와 같습니다.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쥐고 적장의 목을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벤다는 식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머니 속 물건을 꺼냈습니까? 자기가 주머니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의 기브아 성으로 돌진했고, 베냐민 사람들은 성읍에서 연기 기둥이 치솟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서서 맞서자, 베냐민 사람들은 재앙이 자기들에게 닥친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을 보지 않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격이며, 교만과 오만은 반드시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절대로 함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할 자격이 있어 보일 때조차 교만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언제 변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조차 자기 마음대로 못 정하는데,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나 됩니까? 자기가 한낱 인간임을 알아야지, 교만 떨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기어이 1억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지금 1억이 소박한 목표입니까? 요즘은 1억 만들기가 참 어렵습니다. 수많은 쇼핑몰 광장들을 내다 팔며 돈을 끌어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한 푼의 돈이 영웅호걸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수조 원대 기업 제국을 세우겠다며 거만해져서 걸음걸이부터 달라지고 바람을 가르듯 걷습니다.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위대한 영도자를 쏙 빼닮게 흉내 냅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사람도 사라졌습니다. 회사는 남아 있을지언정 창업자는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여러분께 가장 기본적인 상식 하나를 권면합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이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람임을 모른다면 끝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십만팔천 리나 멀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오만방자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개나 돼지인 줄 안다면 그나마 나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자신이 한낱 인간이며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결코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일잔치 한 번에 20만 위안을 썼는데, 4개월 뒤에는 영원히 생일을 쇠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약간의 겸손한 태도가 있는 것은 언제나 유익합니다. 어떤 이들은 1억은커녕 백만 위안만 쥐고 있어도 걸음걸이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이렇듯 깊이가 없고, 자기가 사람인 줄도 모르며, 돈이란 무가치한 배설물과 같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번 기회에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요, 하나님이 없으면 무엇을 가져도 헛수고이며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 재앙으로 6만 5천 명이 죽었다
한 첩 때문에, 그리고 모세의 손자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 지파의 제사장이 생겨난 것은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우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가는 왜 우상을 만들었을까요?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저주했기에 그 저주를 풀려고 우상을 만들었다가 결국 꼬리를 무는 재앙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연이은 재앙을 겪었다면 발뒤꿈치로만 생각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젊었을 때 주님을 알고 주님을 구할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재앙을 통해 사람이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깨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언약궤가 실로에 있던 날들 동안, 단 지파에는 미가의 우상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어떤 재앙도 이 단 지파를 깨우지 못했고, 수많은 재앙도 이스라엘 온 지파를 깨우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하여 겨우 육백 명만 남았는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깨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재앙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재앙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 책임의 굴레는 언제나 우리 손에 있고 우리 머리 위에 있습니다. 문제를 찾으려면 항상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 욥이라도 된 줄 착각하지 마십시오. 욥조차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욥이 당한 재앙에도 분명 원인이 있었습니다. 재앙을 겪은 욥은 회개했지만, 재앙을 겪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며,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평생 우리를 지으신 주님을 기억하고, 평생 자기가 잘못 살았음을 인정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보기 드물게 마음이 완고하지 않은 사람이라, 잘못되었다 싶으면 즉시 회개하고, 문제가 보인다 싶으면 지체 없이 회개합니다. 회개가 가장 훌륭한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이 은혜를 누리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중화권 사명신학(화인 사명신학)은 "우리가 잘못 행했다!"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행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