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我一直有一个问题,耶稣叫来十二个门徒给他们权柄能赶鬼并能医治各样的病症。《圣经》还有一些经文也是赶鬼治病,我的困惑是:赶鬼是赶鬼,医病是医治肉体的疾病?
这话既然连在一起说,它一定是有紧密的关系。人身上的疾病是从哪里来的呢?很多基督教的学者认为病是病,鬼是鬼。为什么要把赶鬼治病,治病赶鬼合在一起说呢?咱们得用属灵的眼光来看,人一生活着的问题都是属灵的问题,这事你可以认同吧?凡跟活着有关的事都是属灵的事。那疾病是不是属灵的事?是属灵的事。
疾病是属灵的事还是属肉体的事?我得给你解释一下,肉体和灵界是紧密相关的,邪灵是透过人的肉体做工的,一个属肉体的人一定招鬼。那为什么要把治病赶鬼放在一起说呢?单说治病不就完了吗?我们得说一下赶鬼治病。比如癫痫,是不是要赶鬼?要赶鬼;聋哑是不是也要赶鬼?要赶鬼;血漏病人一摸耶稣怎么就好了呢?患血漏的女人一摸耶稣鬼就跑了。疾病是从罪来的,罪和鬼几乎是紧密相关的两个不同的说法。
所以说我们别把它们分开看,它俩是连在一起说的,那就很有意思。是不是有的病就是病?有的病是个鬼?你得慢慢地琢磨,我到现在为止都没有办法给你论证的那么清楚,但是现在我比较确定,疾病都是从灵界来的!我们为什么会头痛呢?到医院里扫描,照X光啥也查不出来,但是头痛,为什么疼痛呢?因为疼痛的灵附在了人的身上,就是这么回事。
Q2:老师,在夏天里我只要一处于热的环境就犯焦虑症,呼吸困难,这是属灵的事还是肉体的事?
大家是不是把属灵和属肉体的事给分开了?其实不应该分开。人体贴肉体就是死,体贴圣灵乃是生命的平安。体贴肉体是一件属灵的事还是属肉体的事?是属肉体的事。比如我们体贴小孩子的肉体,这个小孩子就被惯坏。有一个人处在热的环境中就会犯焦虑,呼吸困难。是这个人身体附着不同的邪灵,就会产生各种各样的感觉,然后他就会把这种感觉和环境归在一起。
我给大家解释一下,这个人一干活就腿疼,这是怎么回事呢?是干活导致的腿疼吗?像这个姐妹说的,她一热就焦虑然后就呼吸困难了。是什么原因导致的呢?这两件事是有关系还是没关系呢?你看有一些人一干活就腿疼了。他就问我:老师,是不是我干活导致的?我说:不是,是你干活少。
还有一些姐妹生了孩子没坐月子,后来就得了一个关节疼的病,她就说:因为我没坐月子导致了关节痛。这些东西是不是紧密相关的?不是!但是魔鬼就透过这些东西释放了一个谎言,让你觉得一热就焦虑,就开始呼吸困难。其实跟这热没关系。要不然你就试试看,就在你热的时候,祷告把这焦虑的鬼,呼吸困难的鬼赶走以后,再热也没事了,你可以试试看。
Q3:老师,我有个朋友,检查结果显示有甲状腺结节,轻度的宫颈炎,耳朵有囊肿,也不疼,这种状况需要祷告吗?
不需要。她要是愿意可以去检查,但是那东西能说明啥呢?人没事就喜欢去检查。检查完了以后有这个、有那个问题,其实很多人都有,不当回事就好了。
Q4:老师,当牧者给我梳理作业时,我经常就会浑身冒汗脑子一片空白,这是鬼还是我的毛病?
这肯定是个鬼。这个鬼其实就是会让你产生很奇怪的感觉,这种感觉就是脑子空白,什么也没有,然后浑身冒汗。这不过是一种感觉,你看你现在打字打得多清楚,你能把这种感觉透过祷告释放掉,就不再有这东西了。在什么状况下需要祷告呢?出现这种状况的时候其实是一种彰显,一彰显要赶紧释放,就把鬼赶走了。
Q5:老师,保罗为什么到罗马就请犹太人的首领来,然后讲自己的经历,是为了给他们传福音吗?
其实保罗爱犹太人,他爱自己的民族爱到一种癫狂的地步。那他为什么去耶路撒冷呢?他要把这纯正的福音带给他们!为什么到了罗马的时候把犹太人的首领叫来了呢?因为保罗希望自己的百姓,自己的同族也能够得着这福音的好处。
Q6:老师,我遇到问题时,心里就像被撒上辣椒面似的,这是怎么回事?
这是个鬼!大家得知道,焦虑是一种感觉,感觉跟灵界的鬼紧密相关,疼痛跟灵界的事紧密相关。
Q7:老师,脚疼、头疼的人祷告很快就好了,但是为癌症的人祷告就没有什么反应,这是什么原因?
癌症病人骨子里的根很深!在我服侍过的癌症患者中,这些人脑子里的东西相当脏,而且不爱悔改。但脚疼、头疼的人一祷告很快就好,因为他们愿意悔改,这背后的鬼也没那么糟糕,也不难搞,但癌症背后的鬼藏得比较深。
Q8:老师,我对以利沙得了必死的病有些困惑,可以解释一下吗?
还需要解释吗?得了必死的病正常!大家不要以为人死久不正常,人死是正常的,所有的问题都能解决,就是到死的时候,你就不用整了。我服侍的人,我祷告到一半,后来神说他得了要死的病。那我就不整了,随便服侍一下,开导他一下,这不是为了病得医治,而是送他最后一程!
Q9:老师,我在家照顾生病的父亲,他得了老年痴呆和帕金森的疾病,经常会提出一些不合理的要求,半夜还总是折腾人,怎么做才是不体贴他的肉体?如果他不信的话,还能不能带他祷告?
他不祷告的话已经基本没啥用了,不用继续带着他祷告,因为没啥用。怎么叫不体贴他的肉体?我告诉你,他提出不合理的要求,折腾人就是欠修理。如果你凶一点,就像管小孩子一样,那是有一个好一个。小孩子整天夜里起来闹,揍他一顿肯定好使。大家有没有遇过这种事?就是遇到折腾人的小孩子揍他一顿立刻就好了。老年人折腾人的时候揍他一顿,他也好了,后来人们就说鬼神怕恶人,你凶一点就好了。有人觉着一凶就是不孝敬,那你就好好地孝敬这个鬼,被折腾吧。
Q10:老师,本章二十七节讲到,恐怕眼睛看见、耳朵听见、心里明白回转过来我就医治他们,这句话里的恐怕,能解释一下吗?
就是神讲的话,神已经被这些人气得要命了,说气话:你别回转过来了,免得回转过来我还得医治你。听懂了吗?别明白,免得心里明白过来,还得医治你,这回还困惑吗?不困惑!神就是被这些人气坏了。最近我们讲《何西阿书》,神被那些人气成啥样了?气得让何西阿娶一个妓女,你想想当父母的管教孩子,当孩子不听话的时候,父母被气得都不想认了,心里想着:别做我儿女了。
Q11:老师,天凉了,我穿衣服少了就会感冒,怎么理解这个感冒的邪灵是属灵的问题呢?
我大概能知道你表达的意思,天凉了,因为这是自然规律,很多牧师讲自然规律。我就想问你,保罗被带到罗马去,有没有穿足够的衣服?有的时候衣服穿的不足够,那他感冒了吗?好像没感冒。你认为只要穿少衣服就会感冒,这是个属灵的事,还是个啥事?我给你解释一下,人的身体是一个很属灵的事,为什么是很属灵的事呢?
因为邪气会进到人的身体里,邪气进到人的身体里后,按着中医的讲法,寒、暑、燥、热、湿,邪、这些都是邪灵。如果人有某一种倾向就容易招来这类的鬼,那他就会生这个病,但是大家得知道,一个属灵的人,这些邪灵也不能把他怎么样。
因为我们都是从属肉体的角度去思考问题,所以就会产生一系列的困惑。一个灵里兴盛的人,身体就会健壮,财务就会健康。大家得知道,关键不在于脱了棉袄冻一下子就生病了。那些游冬泳的人,我咋没看见他们感冒呢?为什么非得说你脱了点衣服,遭点寒就感冒呢?我们得知道,锻炼身体虽有益处,操练敬虔益处更多。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도행전》 2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많은 일을 행했고, 걷다 멈추며 많은 곳을 다녔음을 알 수 있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은 바울의 발자취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사도행전》 28장의 주제를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로 정했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은 바울이 두루 다니며 행한 일들을 기록하여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함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가진 자, 곧 하나님을 증언하는 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발걸음, 곧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 하나님을 증언하는 자의 발걸음은 여기저기 다니며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유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가는 곳마다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니며 재물을 모읍니다. 겉으로는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 사람을 축복하는 것, 그리고 복을 받는 것 중에서 도대체 무엇이 주된 것일까요? 마치 복을 받는 것이 주된 것 같습니다. 한 교회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니 여러분은 절대 저와 함께 선악을 분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에서 몇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강대상에 서서 성도들과 함께 손을 들고 기도했는데, 이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다가 목사님이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0 : 42)
그러자 성도들은 듣자마자 이 사역자들에게 물 한 잔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역자들에게 큰 물통을 들고 다니게 할 수는 없으니, 이 사람도 봉투를 주고 저 사람도 봉투를 주어 결국 사역자들은 많은 봉투를 받았습니다. 이 일은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첫째는 이 사역자들을 '작은 자'로 비유했다는 점인데, 실제로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급하시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렇게 하여 순서를 거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참으로 대단하여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지난 장에서는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배에 탄 모든 사람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배에 탄 276명을 모두 사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모두 사도 바울에게 목숨값을 빚진 것이 아닙니까? 바울은 그들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비록 이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바울은 돈을 받지 않았고,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행한 일입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다
어떤 사역자가 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폭풍이 물러가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그가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아십니까? 구약 《성경》에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라고 하셨지만 그는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는 반대 방향으로 가면 하나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가 만난 폭풍 또한 그가 탄 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폭풍이 멎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선지자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사도 바울과 같은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폭풍이 여러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폭풍이 닥친 것은 바울이 요나와 같은 선지자여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이 폭풍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이 사람들은 구원을 얻은 후 몰타섬으로 밀려갔는데, 이 몰타섬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사도행전》 28 : 1)
멜리데섬 원주민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보다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은 틀림없이 귀신과 우상을 믿었을 것이며, 특히 바다 섬에서는 영적인 일들을 더 많이 경험합니다. 멜리데섬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276명을 보았는데, 당시 그들의 상황도 매우 비참했습니다.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겨우겨우 물에 떠서 해안으로 올라왔습니다. 섬의 원주민들이 약탈하려 해도 약탈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원주민들은 식인종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인육을 먹었다면 이 276명의 두 다리 달린 짐승들은 섬사람들이 얼마 동안 바비큐로 먹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은 웬일인지 그들을 후하게 대접했는데, 그것은 그들 가운데 사명을 가진 사람, 곧 사도 바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사도행전》 28 : 2)
상상해 보십시오. 이 섬사람들은 평소에 멧돼지를 잡으려 해도 활과 화살을 들고 작은 천 조각 하나 두르고 힘껏 뛰어야 했을 텐데,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제 발로 찾아온 이 사람들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진미가 아니었겠습니까? 우리 어릴 적에는 참새 고기도 좋은 고기로 여겼지만, 지금은 물속의 야생 오리나 하늘을 나는 비둘기들이 다 자유롭습니다. 《야생동물 보호법》이 있어서 사람은 사냥도 할 수 없고 그 고기를 먹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섬사람들이야 그런 법을 신경 쓰겠습니까? 우리는 참 신기하게 여깁니다. 제 발로 찾아온 고기를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후대했으니, 웬일로 그런 선한 마음을 냈는지 모를 일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섬사람들의 한순간의 생각으로 그들을 특별하게 대접했습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도무지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28 : 3 - 6)
바울이라는 사람은 일하기를 좋아하여 나무 한 묶음을 집어 불 위에 올려놓았는데, 뱀 한 마리가 나와 바울을 물었습니다. 그 작은 뱀이 바울의 손가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으니, 이건 서커스가 아닙니다. 정말로 뱀에게 물린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번 털어서 뱀을 불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사람이 바다에서 살아나 배가 부서져도 죽지 않았는데, 이제 뱀에게 물렸으니 분명 악한 사람이라 하늘의 공의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섬사람들은 독사의 위력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웬걸 한참을 기다려도 바울은 죽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하며 손도 붓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뱀이 불 속에 떨어져 사람들의 구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아는 것은 바울이 뱀에 물렸어도 죽지 않았고 물린 손조차 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뱀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서 다스려집니다. 뱀이 입을 벌려 사도 바울의 손을 물었지만, 하나님께서 뱀의 독니가 세워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뱀의 이는 평소 입안에 굽혀져 있다가 입을 벌려 사람을 물 때 이를 세워 사람의 몸에 독액을 주입하여 순식간에 끝장을 냅니다.
바울의 손을 문 뱀이 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이를 세우려 할 때 하나님께 통제를 당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를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으니, 사명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명이 없는 사람은 매우 불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지 않고 귀신이 그와 함께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재수가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린다면, 자신이 사명이 없는 사람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멜리데섬 사람들은 눈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고,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어 올리는 것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뱀에 물리는 것은 고사하고 뱀이 입조차 벌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매번 여러분에게 사명을 가진 자가 되라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라고 거듭 권면합니다. 비록 제가 말하면서도 스스로 질릴 정도이지만, 여러분 모두가 사명을 가질 때까지 계속 말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멜리데섬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바다의 폭풍도 바울을 어찌할 수 없었고, 뱀이 그의 손을 물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온 땅을 다니며 사람들을 축복하기를 좋아하지, 연예인들이 순회공연 하듯 헌금을 걷으러 다니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빨아들이는 비법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재물을 긁어모으고 돈을 흡수합니다. 한 바퀴 돌고 나면 돈은 꽤 모았을지 모르나 그 발걸음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때 멜리데섬 사람들은 발걸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섬의 우두머리 보블리오와 섬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경험하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사도행전》 28 : 7 - 8)
섬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속담에 '장사도 설사 세 번에는 당해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질을 앓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열도 나고 설사도 하며, 심지어 피와 고름까지 쏟아냅니다. 몇 번 쏟아내고 나면 사람은 기진맥진해지고,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보블리오도 웬일인지 사도 바울 일행을 후하게 대접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런 생각을 주시고 그렇게 행동하게 하셔서 극진히 대접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참 많습니다. 그는 보블리오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부지중에 추장이 자기 아버지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자, 바울은 말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식은 죽 먹기지요. 제게 맡기십시오!" 추장은 바울을 처음 만났을 때 왜 아버지의 병환에 대해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후회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게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잘되었습니다. 바울이 이질까지도 고칠 수 있다니, 이는 보블리오에게 뜻밖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어떤 병이든 다 고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대단한 점입니다. 결국 추장의 아버지가 치유받은 이 일은 섬 전체의 가장 큰 뉴스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섬에 종합 뉴스 방송이 있었다면, 방송국과 텔레비전에서 이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것입니다. "우두머리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이질에서 나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찾아온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그를 고쳐주었습니다." 이 소식이 퍼져나가자 섬의 환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바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추장이 사흘 동안 대접했으니 바울도 거저 먹고 마실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나님께서 사명을 가진 자와 함께하시니 표적과 기사가 따르고, 어디를 가든지 축복이 연이어 임하게 됩니다.
그곳 섬사람들 중에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상은 소용이 없었고, 바울의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어쩌면 보블리오는 바울이 떠난 후에 섬에 작은 교회를 세우고 주님을 믿으며 배우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이후의 일은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멜리데(몰타)섬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찾는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볼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섬을 동경합니다. 약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멜리데섬에 가면 분명 교회와 십자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훗날 멜리데섬 사람들도 바울이 쓴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읽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명을 가진 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使徒行传》 28 : 10)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멜리데섬을 떠나려 했습니다. 이전의 배는 파선되었고, 이제는 다른 배에 올랐습니다. 배에 오른 후 추장과 백성들은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이 공급은 몇 달 치의 양식과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것이었으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일조차 책임지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의 한 가지 특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재정적으로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재정이 번성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아직 치우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참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가진 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천천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직접 경험한 바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후원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친히 교회를 먹이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과 택하신 사역자들을 먹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을 가진 자에게 아무런 좋은 것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사명이 밥을 먹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년 전 우리가 아직 사명 신학이라 부르지 않았을 때, 주님을 믿는 것이 밥을 먹여주냐고 묻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를 먹이지 못하시겠습니까? 단지 묻는 사람이 밥통 같아서 먹는 것밖에 모를 뿐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밥을 먹여줄 뿐만 아니라 돈으로 쓸 수도 있고 약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도 저와 같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옛말에 '책 속에 옥 같은 여인이 있고 책 속에 황금 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황금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은혜 신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사명 신학입니다. 여러분은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보물상자가 있다면 열쇠도 있어야 합니다. 이 열쇠가 바로 사명이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명을 가진 자는 아무런 좋은 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설익은 밥이 되는 것인데, 이는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며, 안 믿는다 하면서도 조금은 믿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디를 가든지 축복이 바짝 뒤따르고, 어디를 가든지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마치 저를 스치기만 해도 다소간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곳의 형제자매들이 멀리서부터 나와 그를 영접했습니다. 바울은 여행 가방이나 캐리어를 끌고 간 것이 아니라, 몸에 쇠사슬을 차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찾아와 그를 영접하고 며칠 동안이나 함께 머물렀으니,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물고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 부레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28 : 14 - 15)
이 사람들은 모두 바울의 《로마서》를 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을 이 사람들은 전부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보물을 얻은 듯 기뻐했는데, 바울이 이 복음의 비밀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처럼 불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복음이든 신앙이든 그것은 설익은 밥과 같았습니다. 바울을 맞이한 형제자매들은 《로마서》를 다 읽고 나서 바울이 참으로 글을 잘 썼다고 느꼈으며, 로마 교회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의문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예컨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로마 형제자매들의 영접을 받고 바울은 위로를 얻어 비로소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로마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로마서》를 읽고 의문점은 없는지 늘 마음에 두고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이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답해 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 땅의 축복이 되는 이 일은 이미 끊임없이 실현되고 있으며, 화인 사명 신학의 자료들은 이미 상당히 멀리까지 전해졌습니다. 때로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들의 설교를 들을 때, 예전에는 그렇게 설교하지 않던 사람이 지금은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차 우리의 발걸음 또한 어찌 그리 아름답겠습니까! 우리는 이 온 땅의 백성들을 축복할 것이며, 온 땅의 흑암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큰 빛을 보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 마음 깊은 곳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만약 바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터넷 시대에 살았다면 훨씬 더 대단했을 것입니다.
유대인은 설익은 밥이다
로마인들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도행전》 28 : 18 - 24)
유대인이 설익은 밥이라니, 이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고, 바울은 자신이 왜 로마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며 유대 백성과 관원들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본래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도를 증언하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듣기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장사속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알아볼 만한 기력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명확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이 선지자와 모세의 글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모세의 율법을 다 읽었고 여러 선지자의 글도 읽었지만 결국 설익은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설익은 밥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아십니까? 밥을 짓다가 중간에 다 익지도 않았는데 불을 꺼버리면, 그 후에 아무리 다시 끓여도 익지 않습니다. 많은 것에는 저마다의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밥을 짓다가 중간에 불을 끄면 겉은 이미 익었지만 속심은 여전히 딱딱합니다. 겉에 익은 부분이 열을 안쪽으로 더 이상 전달하지 못해 생쌀인 속심을 익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설익은 밥으로 죽을 쑬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되 제대로 믿지 않고 중간까지만 믿어 설익은 밥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설익은 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진정으로 모세의 율법에 익숙했다면 결코 예수를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 역시 예수를 가리켜 말한 것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은 바울처럼 다니며 전파하고 표적과 기사가 따르며 하나님의 도가 증언된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사도행전》 28 : 25 - 27)
이 사람들은 주님을 믿되 절반만 믿어 마음에 기름이 끼어 우둔해졌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저를 따라 주님을 믿다가 절반만 믿어 점차 반쯤 익은 설익은 밥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속마음은 딱딱하고 겉만 부드러워서 기껏해야 죽이나 끓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말입니다. 요즘 설익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은 완고한데 겉만 부드러워 겉치레만 할 줄 압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비록 이 사람들의 귀가 둔하고 눈이 감겨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지라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기만 하면 반드시 치유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어떤 고대 사본에는 바울이 이 말을 마치매 유대인들이 서로 큰 변론을 하며 물러가니라가 있음) (《사도행전》 28 : 28 - 29)
갇힌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증언하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 28 : 30 - 31)
바울은 2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셔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집 안에서 사람들을 영접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이 로마에서 설교하며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도를 전파하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는데도 아무도 금하는 사람이 없었을까요? 그곳은 이방인의 땅이었고, 비록 아직 풀려나지 않았으며 재판을 받지도 않아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황제가 시간이 날 때까지 심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했습니다.
사명을 가진 자의 발걸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사람이 오기만 하면 바울은 그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끝내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바울 자신은 매일 되감아 다시 틀듯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도를 전파했고, 표적과 기사가 따랐으며, 각색 병든 자들이 치유함을 받아 간증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발자취에서 매우 기이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될 텐데, 그것은 로마라는 이방인의 땅에서도 표적과 기사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껏 하나님의 도를 전파할 수 있었고, 아무도 금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요약하자면,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사도행전》을 성경공부할 때의 주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였습니다. 이번에 《사도행전》을 다시 정리하면서 우리는 주제를 '너희가 권능을 받아 능력의 복음을 증언하리라!'로 정했습니다. 두루 다니며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어디에 이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