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15장을 상고하겠습니다. 사실 이 장을 읽고 나면, 이후의 장들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이기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기지 못하고, 짐승을 이기지 못하며, 짐승의 우상도 이기지 못한다면, 명백히 여러분은 마귀와 한패인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포도를 밟는 큰 포도주 틀에서 밟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지 못한 자들에 속하며, 이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습니다. 이 장을 지나고 나면 남은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긴 자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5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이 이미 나타났다”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늘 이 세상에 불의하고 부당한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만족될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일곱 재앙을 내리실 때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는 저렇게 악한 자들도 버젓이 잘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되면 더 이상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바라보면, 우리 하나님은 크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십니다! 와, 정말 엄청납니다! 그때 바라보며 ‘아,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마터면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 그 무리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뻔했구나. 그랬다면 망할 뻔했다’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만을 추구하지 말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추구하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구원만을 추구하면 구원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받은 것 같기도 한 상태가 되는데, 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는 《창세기》에서부터 이미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며,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믿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그나마 나아서 그 열매를 덜 쳐다보았지만, 하와는 보고 나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모든 열매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보기도 좋고 먹음직스러우며, 먹고 나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 말은 듣기에는 참 좋습니다! 결국 하와는 그것을 따서 먹었고, 먹고 난 직후 혼란스러워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보세요. 내가 먹었으니 죽어야 하는데, 안 죽었잖아요!”
아담이 이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내 아내가 먹었는데도 안 죽었네. 아내가 제일 먼저 먹어 본 사람이구나!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다고 나를 속이셨는데, 왜 죽는 게 안 보이지?’ 결국 그도 먹었고, 먹고 나서도 여전히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먹은 것을 보시고, 그들을 저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셨다고 아주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이루어졌습니다. 첫날부터 응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여전히 응하고 있으며, 영원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주를 받은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노동해야만 겨우 배를 채울 수 있었는데,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몹시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와는 매달 생리 때마다 배가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생리통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출산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여자의 출산의 고통과 생리통, 생식 계통의 문제들은 모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받은 저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선악을 심하게 분별하면 생리통도 심해져서,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생리통을 위해 기도하고 나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생리통의 저주가 예수님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선악을 분별합니다.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진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믿기지 않으면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날마다 선악을 분별하며,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센지 여러분의 하찮은 목숨이 질긴지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의 목숨이 아무리 질겨도 하나님의 말씀을 당해 낼 수는 없으니, 하나님과 겨루려 하지 마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고통을 겪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더 겪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시며, 우리가 그분께로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결코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따지는 것은 사람의 이치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선악을 분별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서 있으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성취가 빠르냐 늦으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먹고 나서 당장 아무 일이 없더라도, 일이 닥쳤을 때는 기본적으로 돌이킬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적은 언제나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저주는 단 하나도 비껴가지 않습니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그의 외삼촌이 어머니의 집을 탐냈습니다. 오빠라는 자가 여동생의 집으로 들이닥쳐 인테리어를 하더니, 그 집이 자기 집이 된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리모델링을 마치자마자 남의 집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 들어가 살기도 전에 폐암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에도 자기 아내와 아들에게 그 집을 차지하라고 당부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상식을 벗어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사람은 남의 것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저주가 반드시 임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형제가 집에 돌아가서 “엄마, 외삼촌한테 한번 가볼게요”라고 하자, 그의 어머니는 “갈 필요 없다! 네 외삼촌은 죽었다, 끝났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몸뚱이가 아무리 질기고 머리가 아무리 완고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맞서려 하지 마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과 맞서서 무슨 좋은 꼴을 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조금 더 경외한다면 고통을 조금 덜 겪게 될 것이고, 더 많이 경외한다면 고통을 더욱 덜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때때로 저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서 천 가지 만 가지 핑계를 대는 것을 보며 깊은 탄식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이 저와 한참 동안 대화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머리를 좀 보세요.” 제가 “머리가 왜요?”라고 묻자, 그는 “제 뇌 회로가 어쩌고저쩌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뇌 회로의 문제입니까? 스스로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다들 알아들으셨습니까?
우리는 오직 삼가 지켜 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고 엄밀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화인 사명 신학의 정수입니다. 조금 더 경외하면 고통을 조금 덜 겪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이 다시 도졌다고 하지만, 우울증이 도져서 귀신이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얼렁뚱땅 넘어가고 내일 또 얼렁뚱땅 넘어가며, 오늘은 이 핑계를 대고 내일은 저 핑계를 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아십니까?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리저리 속이고 타협하다가 스스로에게까지 속아 넘어가면서도, 자기가 말씀을 잘 지켜 행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의 모습이 아닙니까? 당신이 무엇을 지켜 행했습니까? 당신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십시오. 그중 어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오직 당신 자신의 말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큰 진노가 마지막 일곱 재앙으로 다 쏟아졌습니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요한계시록》 15: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처음에는 작은 진노로 한 번 경고하시는데, 또다시 말씀을 어기고 경외하는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일단 쌓아 두십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전에는 주님을 믿다가 나중에 죽는 것이 두려워 짐승의 표를 받았습니다. 짐승이 “표를 받아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니 표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받아라, 실컷 받아라!” 하셨습니다. 표를 받고 나니 그는 기분이 꽤 괜찮았습니다. 마트에 가서 빵도 살 수 있고, 아이 분유도 살 수 있고,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처럼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곱 재앙이 쏟아지니, 아이고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리는데, 기껏해야 며칠 더 살게 해 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머니는 저에게 “이 녀석, 이거 장부에 다 적어 놨다가 한꺼번에 갚아 줄 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쌓이고 나면 반드시 매를 맞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방식으로 다루십니다.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진노는 마지막 일곱 재앙 가운데 남김없이 쏟아져 끝이 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집어치워! 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어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그분 말씀 듣지 마, 그걸 왜 믿어!” 하지만 셈을 치를 때가 오면,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것만 말씀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대인의 2천 년 역사가 증명하듯,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신 재앙은 축복보다 많지 않습니까? 믿기지 않으시면 《신명기》 28장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저와 《구약》과 《신약》을 두고 논쟁하지 마십시오.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 1절부터 14절까지는 축복의 말씀이고, 15절부터 68절까지는 모두 저주의 말씀입니다. 저주의 말씀이 축복의 말씀보다 몇 배나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때 저주가 이루어진 것이 많습니까, 축복이 이루어진 것이 많습니까? 저주가 이루어진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중에 다윗을 본받은 자가 몇이나 됩니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과 맞서려 하지 마십시오!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제 말을 전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 말이 무슨 대단한 말이겠습니까? 그저 《성경》 말씀을 되풀이해서 다시 전하는 것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왜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허허! 《성경》 말씀을 되풀이해서 전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홍루몽》을 이야기해 주고, 내일은 《요재지이》를 이야기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되풀이해서 전해도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데, 되풀이해서 전하지 않으면 더 제멋대로 날뛰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선악을 분별하고, 남을 판단하고, 육신을 따르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 무슨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디에 좋은 결과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진노의 열매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면, 여러분이 지금 죄를 지었을 때 내일 당장 징계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은 죄를 지어도 가만두시면서 왜 저만 그러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 일곱 대접의 재앙이 그 사람을 위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저는 겨우 작은 죄 하나 지었을 뿐인데 왜 저를 다루십니까?”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속히 회개하게 하시려는 것이니, 죄를 쌓아 두지 마십시오!
계속 쌓이고 쌓이면, 마지막 일곱 재앙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히 쏟아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다루시고 내일 또 우리를 다루어 주시기에 망나니처럼 제멋대로 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더 이상 따지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나쁜 짓을 저렇게 많이 해도 하나님이 가만두시는데, 나는 조그만 잘못만 해도 다루신다’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또 지어도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시고, 또 죄를 지어도 내버려 두신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쌓아 두셨다가 마지막 일곱 재앙에 쏟아부으시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런 사람의 몸에는 반드시 짐승과 짐승의 표가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이긴 자들은 모두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한계시록》 15:2-3)
짐승과 그의 우상을 이긴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그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며, 모두 순교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은 후에 공중으로 들림 받아 유리 바다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이때 머리가 지극히 맑아집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 하마터면 나도 그 표를 받을 뻔했구나. 하마터면 살기 위해 비겁하게 굴다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저 일곱 재앙 속에 떨어질 뻔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 재앙이 너무나도 엄중함을 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여러분은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 체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구약》과 《신약》을 따로 떼어놓지 마십시오. 화인 사명 신학에는 매우 중요한 논점과 서술이 있는데, 바로 《신약》과 《구약》이 하나의 체계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무엇을 말합니까? 《창세기》가 율법서입니까? 아닙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매우 놀라운 계시입니다. 곧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행한 대로 우리도 행하고, 그들이 믿은 대로 우리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후의 《출애굽기》, 《신명기》, 《민수기》, 《레위기》 등을 단순한 율법 조항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온전한 논리 체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온전한 논리 체계는 100%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결코 폐해지지 않을 것이며,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사실상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모세가 전한 관점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관점을 자세히 읽어 보면 무슨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행사가 크고 기이하시며, 그분은 전능자라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예수님의 행사가 크지 않습니까? 모세가 본 하나님의 행사가 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홍해 바닥의 마른 땅 밑에 돌판이 깔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주 순탄하게 걸어서 건너갔으니, 그들 모두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절대적으로 공의롭다는 뜻입니다. 어기면 반드시 저주를 받고, 삼가 지켜 행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의롭고 참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없이 진실하고, 더없이 공의롭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충분히 오래 살지 못했고 멀리 내다보지 못해서 알지 못할 뿐이지, 털끝만큼도 오차가 없습니다! 저울로 달아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의 분량을 다 달아 놓으셨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우리는 때로 어리석어서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자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이긴 자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누가 감히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면, 지금이라도 조금 더 경외하십시오.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의 것을 몹시 탐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지, 여러분 자신이 지어낸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말 중에 어느 한마디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그만두십시오! 그래서 제 사역 가운데 늘 저를 일깨워 주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8)
그러므로 정의를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는 것은 제 사역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저는 본래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공의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공의는 여러분이 범한 죄로 인한 저주가 기도할 때 병이 낫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여러분의 저주가 예수님께로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니 누가 감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우리 중에 아직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던 자들은 이미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사람이 참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이긴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그 짐승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노래이자 모세의 노래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모세는 저주의 노래를 불렀고 예수님은 은혜의 노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잘못 짚지 마십시오! 그들은 어떻게 노래합니까?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5:4)
우리 안에 있던 혼란은 이 재앙이 내릴 때가 되면 더 이상 혼란이 아니게 됩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이 땅의 어떤 재앙도 공연히 겪는 것이 없으며, 이 세상의 어떤 저주도 원인 없이 임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이유 없는 저주를 받지 않으며, 그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공의로운 행사가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의문이 생깁니까? 더 이상 의문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혼란스러워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며 단 하나도 빠뜨림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오로지 돈을 거둘 생각만 하니, 참으로 비극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참되십니다! 공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은 공의롭고 신실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주와 축복을 믿지 않고, 고의로 저주받을 일만 골라서 행한다면, 단 하나의 저주도 빠짐없이 임할 것임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증거 궤의 장막 성전이 열렸습니다
이 증거 궤와 언약궤가 같은 궤일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언약궤 안에는 율법의 일부분이 들어 있어, 그것을 어기면 반드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증거 궤를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온갖 조항들이 들어 있어서 ‘이 일을 행하면 이 형벌을 받고, 저 일을 행하면 저 형벌을 받으며, 이것을 어기면 이러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 싱가포르의 법률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법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 일을 하면 벌금 150달러, 저 일을 하면 벌금 200달러, 또 다른 일을 하면 벌금 500달러… 이는 사실 법가적 논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법치 사회에서는 함부로 일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경찰이 제멋대로 벌금을 매겨서, 500달러를 벌금으로 물리고 350달러는 자기 주머니에 넣고 150달러만 공금으로 넣는다거나, 150달러를 벌금으로 물리고 자기가 일부를 챙긴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150달러면 딱 150달러여야 합니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사실 법치 사회입니다. 하지만 법이 권력보다 큰지, 권력이 법보다 큰지는 아무도 명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는 하늘에 증거 궤가 있으며, 이 증거 궤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어떤 사람이 어떤 재앙을 받아야 마땅한지가 적혀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는 단 하나도 어긋남 없이 임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경외함이 좀 더 많고, 어떤 사람은 좀 더 적을 뿐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만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 니므롯의 시대에도, 가인과 라멕의 시대에도 단 하나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가인과 라멕이 평생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산다면 차라리 살지 않는 편이 낫겠지만, 그들은 죽지도 못하고 수많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가인은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우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고생스러웠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조조 같은 인물도 평생 두통을 앓았습니다. 두통은 고사하고 치통 하나만 와도 죽을 지경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증거 궤에는 이 일곱 재앙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재앙을 주관하는 일곱 천사가 증거 궤가 있는 성전에서 나옵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증거 궤가 있는 성전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일곱 천사에게 훈련을 시키신 것인데, AI를 훈련시키고 거대 모델을 훈련시키는 것보다 훨씬 엄격했습니다. 이 일곱 천사는 조준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쾅! 하고 대접 하나를 쏟아붓는데 아주 정확하게 쏟아붓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드론이 저주와 재앙을 싣고 하나씩 투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일곱 천사가 그 대접을 쏟아부을 때 너무나도 정확하게 쏟아부어서 고통을 당해야 할 자는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증거 궤가 보관된 성전에서 나왔으며,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 금띠는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극을 볼 때 허리 한가운데 둥근 고리가 있어서 훌라후프인 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허리띠마다 각기 다른 권세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아십니까? 몸에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었다는 것은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때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이 이미 나타났으며 이것은 절대적으로 공의롭습니다! 이 일곱 재앙은 실로 엄청나며,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이긴 자들은 거기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들의 마음속 느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며 하나님을 경외함이 참으로 좋다고 감탄하지 않았겠습니까?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마터면, 아주 눈곱만큼의 차이로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끝장날 뻔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일곱 재앙과 적그리스도의 손에 죽는 것, 또는 하나님의 손에 죽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저는 차라리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죽는 길은 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거기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제 친한 친구가 아직 거기 서서, 유리 바다에 서 있는 저를 향해 “그냥 그 표를 받아! 에이, 하나님이라니, 관둬!”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천사의 손에 들린 대접을 보십시오. 그 친구를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아이고, 나와 이 친구는 하늘과 땅 차이로 영원히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너는 이제 서서히 고통을 겪어 보아라!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표를 받았고,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일곱 재앙을 가진 천사가 나왔습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세마포 옷: 어떤 고본에는 보석)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5:6-8)
하나님의 진노를 다 쏟아붓기 전에는 아무도 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시며,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언약을 지키시며 인애를 베푸시지만,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의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그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하겠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다 나타나고 나야 하나님의 뜻이 만족을 얻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며, 《구약》이 아니라 《신약》입니다.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은 모두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 더 생겨났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조금 더 경외하면 고통을 조금 덜 겪습니다!
더 이상 선악을 분별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마시고, 더 이상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또한 더 이상 자기 생각과 이치를 내세우지 마시고,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시오.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겪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진노를 겪는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해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모두 이 말씀을 귀담아듣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바입니다.
비록 이때가 되면 우리와는 상관이 없어지겠지만, 지금부터 《요한계시록》 15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유리 바다 위에 서서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까, 아니면 저 아래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까? 조금 더 경외하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조금 더 경외하면 고통을 조금 덜 겪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 제 이 병을 보세요. 이 다리, 머리, 엉덩이, 눈, 혈당…”이라고 말한다면, 그 어느 하나 억울하게 온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경외함뿐이며, 오직 회개함뿐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