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我今天讲的《阿摩司书》的第八章,叫做:我民以色列的结局到了,我必不再宽恕他们!现在是答疑解惑,我先自己给自己出个题 :
【问题】1:你看到了什么?我看到了一筐夏天的果子。这个夏天的果子叫做什么果呢?
答:叫做无花果。无花果是夏天的果子,大家得知道无花果描述的是以色列人。无花果就是以色列人,以色列人就是描述的无花果。那看到了一筐无花果,就是以色列人。要干啥呢?肯定就是要喂猪了吧。那无花果一筐还有点烂,然后就是要喂猪,其实这无花果指的是以色列人。那至于看到了这一筐,还是没看到这一筐,还是看到了两筐这事不重要。重要的就是神要透过阿摩司所看到的这事,告诉阿摩司:以色列百姓的结局近了。
他们拜偶像、拜金牛犊,爱世界,活在属世界的逻辑体系里。而且不但活在属世界的逻辑体系里,还效法被洪水冲去的那些人。地上充满了强暴,没有资格强暴的羡慕那些充满强暴的人,有资格强暴的绝对去强暴,所以这个地上就充满了一大堆的这些困扰。因这些困扰,很多受冤屈的、很多冤死的灵魂就来到神的面前控告,所以就是讲这个以色列人的结局近了。我告诉你,《圣经》曾经讲过一段话,是什么呢:把鬼赶出去,一看打扫的挺干净,结果一个鬼就带着七个更恶的鬼又来了,比先前的光景更不好。这句话不是说别的,是在说啥呢?是说这个人如果把鬼赶出去,里面还没有神在他的生命当中做主,那将来鬼还会来,而且会很惨。
在我们当中有一个姐妹说:我帮助我的姐姐祷告好了,她骨头发霉,子宫流脓又臭但是好了。她说:她做不到不去拜偶像,结果病又回到原来那样,这类的状况再祷告也不好使了。所以我想,今天我们弟兄姐妹都要学一个功课,千万不要体贴这些人的肉体,其实一个病慢点好比快点好要好。为啥呢?因为一祷告就好了,人就会很快又回到原来的逻辑体系里去了。所以慢点好,但是很多人体贴肉体呀,就不希望慢点好,慢点好有啥问题吗?是不是?急啥呀?让他多遭点罪正常嘛。所以今天大家不是我们没有怜悯,我们是希望人能够真正的得着悔改的恩典!我是觉得慢点好。
你如果觉得快点好,你就常常快点,也可以快点送他上西天呐。因为人不悔改呀,今天一次,明天一次是挺快呀,全都好了。回头我们的神耶稣基督,哐,给他画了一个句号。有的人很狂啊,多遭点罪长点记性。最近我看了一段视频,也不知道是哪年的,一个人驾着一辆好几百万的车,那是名车呀。结果后面一辆车,呜,的一下超过去了。那他不干了,一踩油门追上去,咣,给人家撞了。结果人家的车没事,他的车翻了,然后一家三口全死了。这不是活该吗?你说这种人不死,地上不是多了一个祸害吗。所以活在属世界的逻辑体系里是多么可恶!
我们今天每一个弟兄姐妹都要学会学习、学会计划、学会反思。就你自己过去的小半辈子、大半辈子的这些糗事,总结起来就够你学习的了。我们过去这些糗事多得是,就是我祷告这个、祷告那个一个一个问题解决了。回去反思了吗?还没有反思,那就赶紧反思吧。所以这是答疑解惑前先讲一下这个无花果。
【问题】2:老师,请问计划的内容是什么?
答:这个很有意思,大家觉得计划的内容是啥?我们要琢磨每天要干的事有几样到几十样,那哪样干?哪样不干?就是做什么?做什么这事很重要。有的人专门挑没用的、不重要的事做,那你肯定是一生受亏损。所以计划啥呢?第一就是要计划我们要做什么?一定要知道什么东西做,什么东西不做。当你计划好了,就把那个东西的优先顺序排对,优先顺序排对是非常非常重要的!你知道重要吗?有人知道什么东西做,什么东西不做很重要吗?我猜是好多人没有这个概念。
我跟你打个比方:比如说两个人下一盘棋,一个人赢了,一个人输了。赢的人走的顺序对,先走什么后走什么,这就叫为了赢这盘棋他得有谋略。先做啥后做啥这个效果可是不一样的。如果你整天在那拱小卒,那你就拱吧,往死里拱。最后老将都被人吃了,还在那拱小卒呢,没有用。所以说要有谋略,是什么意思呢?就是先走什么、后走什么?这个顺序很重要;谋略是做什么和不做什么这很重要!第二个计划的内容就是:当你决定要做这件事你就要规划怎么做?这叫做计划。
那为什么我做的东西快呢?我做东西是非常快的,这不是吹牛,一般人是很少看见我忙。那你看不见我忙为啥呢?我经常坐在沙发上闭目养神,我在想啥呢?我在想做什么不做什么?决定了做什么,我再决定怎么做。你一旦做,你有了计划了,那你的计划不一定对呀,怎么办?那就做一段时间赶紧反思这个不对,这个不对,啊,这个环境、这个形式我误判了,不是这样。赶紧调整,再重新写一个计划。然后再接着做;然后再调整;再反思再调整。后来人把这个逻辑叫做PDCA。其实我小的时候没有PDCA的时候我就PDCA了。那很多人没有这个PDCA的概念,没有计划的习惯,一生就受很大很大的亏损,这就是傻嘛。所以说人为什么干很少的事,瞎干他能干得好吗?
【问题】3:老师,这个计划一开始每次写得不那么精准,很大、宽泛。我要做的时候发现,完了不行又回去调整,最后实在没耐心再调整,又直接去干了。最后不想再计划了,请问这种情况应该怎么调整?
答:这个不是调整,这是你不会写计划,你写了一个计划是没有用的计划。当我看到人家写计划我告诉你,这里头差不多十个里得有九个计划是没用的计划。因为啥呢?因为他的计划不是一个可执行的计划。他的计划说不清楚,一执行发现这计划是没有用的,其实你早就知道你的计划是没有用的。为什么要写一个没有用的计划呢?我就很诧异了。那我有的时候我就说:你写的这个玩意真的没有用。人家还跟我挺生气的要跟我撕吧开。那我说:没有用。人要是听明白这句话了,就会想:哦,没有用啊,那得怎么办呢?就得学习写计划。
你不要以为你一听我这么讲,你就会写计划了。哪有这回事呀?我写计划写得可久了。一个小破房子的装修,我的图这么整,那么整,画了两月呀。不是两月天天干,是两月当中时不常的拿过来整一整,把整个的东西想得非常的清楚。等我在执行我的计划的时候,我就唰唰唰,啪的就干完了。甚至我用到的什么材料,什么工具,我这些全部整清楚。然后走到哪买多少,有的时候我那送来的货用到恰到好处。可准了!为啥?我计划好。所以说:写计划得学。学啥呢?写一个有用的计划。没有用的计划写完了不是糊弄人吗?为啥很多人不爱写计划,因为人常常写没用的计划,所以说他就不爱写计划了。怎么办呢?要回去学习写计划。
我有的时候说话挺损的,我说:回去读小学去,课文都读不懂,能干啥?啥也干不了。比如说今天这《阿摩司书》的第八章,我应该读了五六十遍,可能还不止,我连听带读的起码是上百遍。你说:老师,我还以为你一看就明白了呢。哪有这回事?没有这回事啊。听明白了吗?这就是计划。所以不会计划的,要开始学习写计划,不会写反思的要学习写反思。那很多人最要命的就是不会反思,我发现会反思的人几乎是凤毛麟角啊,很多人不会反思,我要举例子那可多了。
比如说:我们今天在工作上遇到了一个顾客,来了发一顿火,发了一顿脾气。然后我们就不知道怎么办了,我们就卡在那里,嘴巴就结巴了。其实这事多简单呐,回来反思,这事不会整,那怎么整?开始就有了一个计划,我要把这事整明白。其实整明白了有多少?很少。你知道你面对的是顾客,你只能跟他玩一个游戏,就是你态度很好:哎呀!这事我也很想帮你解决啊,老板拜托!我如果这么干了以后我真的会丢工作,我回去申请好了我一定帮你干。那他下次再打来,就说我老板没批,我还得说服一下他。是不是啊?就很多东西都是可以去说的,你跟我发脾气你发吧,等你发完了脾气我再给你说一说。别跟人家顶牛:不行,这事不行!但是有几个不行下来,人家不给你吼啊?肯定跟你吼。你别跟他说不行,你说都行,什么都可以,但是这东西不在我这,我得回去申请,听明白了吗?很多事我们都要去学会处理。计划完了下次一去实施效果挺好,然后把这个东西记下来,这个是好使的,还有一些是不好使的。
【问题】4:老师,反思笔记写着写着就不想写了,是什么原因?
答:你没反思,你反思啥了?你们写的那东西是写反思的时候才想起来反思。是写计划的时候才想起计划,不是这么干的。大家听明白了没有?反思是做这个事的时候,哎!这样做,那样做,他是就着这个事来反思。不是等你不反思,然后到写反思才想起来反思,那根本就是瞎扯,就是给你的牧者忽悠写了一个、编了一个,你在那编瞎话,那能会写吗?写完了也没用,你的上司还得给你看,你的牧者还得给你看,大家都浪费时间,一看这就是瞎说。
我给你举个例子,我每做一件事的时候,我反思啥?第一,我反思我为什么这么慢?我看人家怎么干这事。比如:就拿这个熨斗熨衣服这件事,你说老师你还会干这个?我啥都干。我一看人家电视里那节目,人家熨衣服的速度,哎呀妈呀!比我快十倍啊!那老快了。我就在那琢磨,我说这怎么回事呢?我就反思我自己,其实我一开始干也是磨叽,你架不住我会学呀!我磨叽这不是没整对吗?我这不是累吗。我就搜信息一看,哎呀,找到几个不错的。我跟你讲人家熨衣服那个样子是很帅的。咔!咔!那样子可好了,一个手扯着,一个手在熨,我就模仿上了,模仿完了不行再看看再模仿。后来我跟你讲,我的速度跟他差不多,一会就干完了。
比如说:我要学的东西太多了,真的没时间,我要干的活也多。然后呢煮饭,我后来就左反思右反思,左调整右调整,结果我现在二十分钟可以煮四菜一汤。大家觉得够快吗?为啥?因为时间不多,我反思我那块儿慢呀!我们当中有一个姐妹在餐馆里做服务员,她就需要反思怎么做,能不能做到比他老板还厉害?就是我们反思的东西太多了。如果你计划啥?反思完了再写计划我要练这个,这不就出来了吗?练完了以后一看练得不对,再回来再反思,反思完了以后再找信息参考资料,然后看啊弄啊,是不是?那我问你像我这样的人从小我就反思,直到今天你说我能不厉害吗?我做工十一年可能不到十一年,十年多的时间里,我从一个部门最小的职位干到最上面那个职位。那你不反思能行吗?我每天都在规划着我自己该做啥,做什么,怎么做,那干的多呀。
比如说:我要写一个程序,写个软件。我写一个软件我就开始把这东西琢磨琢磨琢开始收集信息。这个收集,那个收集,看着都快差不多全了,然后咔做了一个样板,做了一个样品,然后给人家一看,对对对就是这样。我一会儿就整完啦,我做完了以后我计划啥?我计划就是人家要啥,人家需要啥,我做的东西都很少返工,基本上一次就干完,你说我能忙吗?不会忙的。
【问题】5:老师,干事需要计划说话也需要好好思考如何说。干事的计划可安排时间,可是说话常常是一个直接的回应,就是没那么多时间思考。老师如何在说话的时候有个快速、深度的思考和回应,我觉得自己常常会很急,说话很快,但是有些话回答不好,是不是还是我脑子里的垃圾太多了?
答:因为人的嘴巴比脑子快,说话不走脑,所以就瞎说。那人瞎说不就完了吗?我干的是啥呢?其实我每天工作的环境不太变,我老板有啥问题,他要找我找啥,然后我应该怎么说,咱们不就这点事吗?然后我就有时间在下面琢磨好了。等有一天我琢磨好了,老板说你这活儿干怎么样了?那我肯定给你看结果,我干到哪儿了,怎么一回事。人家没来找我的时候赶紧通知老板,我说我这活儿干的怎么样了。人要啥我知道,不是等着人家来问。所以做事需要有计划,说话也需要走脑,说话不走脑的那都是废话。一定要学聪明,聪明人是啥呢?脑袋比手快,脑袋比嘴巴快,听明白了吗?
【问题】6:老师,做事中反思怎么听上神的话的呢?
答:神的话,神经常给我们信号你不需要反思吗?你犯罪然后头疼得反思。我们人活着的事都是属灵的事,知道不?我们人活着的事都是属灵的事,知道不?大家可能不知道,因为神的话是神话。那咱们就讲神话,那就跟咱们生活没关系。我们人活着是靠神口里所出的一切话。你说你干哪一行你不需要神的话呢?
【问题】7:老师,我反思我做作业慢?
答:你反思你做作业慢好啊!怎么就慢了呢?人家就怎么快了呢?这不就有计划了。我就去了解人家就怎么快了呢?这不一下就有计划了吗?你如果说我就这么慢,我就这样,我笨!那你反啥思?啥也不用反了。
【问题】8:老师,我里面有很多问题,识别善恶,又追求新鲜感,很容易半途而废,自尊心强,特别死板,又较真儿,经常因为受委屈就离职。我感觉自己一败涂地怎么才能胜过这些罪?怎么才能真的把自己当狗屎?
答:不是你把自己当狗屎就当狗屎了,因为你当了狗屎以后人家怎么对待你,你就没什么识别善恶的反应。然后你就开始学会如何变成聪明人。愚蠢的人他追求什么自尊心啦,好强啦,追求面子啦,然后又容易受委屈啦,就觉得自己很伟大啦,然后觉得自己人家不应该这样啦,就是愚蠢没有知识。人没有知识就照着自己里边的那个胡思乱想去落实。今天我可以警告大家,人一辈子照着自己那套东西能活出啥来?那就活出狗屎来了。愚蠢!那怎么会变聪明呢?一定要有知识,有智慧。神告诉你这个叫做聪明,这个叫智慧,就好好去做吗?那不行,非得整自己那套,整自己那套能得出啥来?整出狗屎来,这就彻底完蛋了。所以说弟兄姐妹千万不能做愚蠢的人呐!
【问题】9:老师,反思就是写自己整错的,然后思考以后怎么改进再落实,看效果对吗?
答:对,就是这回事。你看这人多聪明,就是这么样。那你今天干一件事,明天干一件事,哪一件事你不反思你能成长,干完了就完了,后来就完蛋了。
【问题】10:老师,人饥饿非因无饼,干渴非因无水,乃是因不听耶和华的话。这句话是说我们里面都是属世界的逻辑体系,永远远离神吗?该怎样理解?
答:比如说:你嗓子冒烟了,然后人呢饿了里头老是空唠唠的,他不是因为没有饼,也不是因为没有水,是因为人没有听耶和华神的话。所以有人就得了一种怪病,吃多少都饿。吃多少都饿的人,那你说饿的前腔贴后背那种感觉。你可能没有,因为你听神的话了。所以这种状况就会发生在人身上,神要让你有一个饥饿的感觉很正常,神要让你抓狂的感觉也很正常,神要让你有个沮丧的感觉很正常。神要让你有干渴,喉咙直冒烟,喝多少水都冒烟,有没有?我经常服侍这样的人,喝多少水喉咙都冒烟,干呐,干得不得了。人没有神的话,我告诉你能不能拉得出屎,能不能吃得下饭,有没有饥饿感,有没有干渴感,这些都说的不算,甚至能不能喘得了气都说的不算。所以人活着要靠神口里所出的一切话。
好!今天咱们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아모스서》 8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무겁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끝이 이르렀다는 것은 곧 망하게 되었다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아모스서》 8:2)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한 학습 방법을 하나 익혀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핵심(중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 많은 사람이 핵심을 잡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완전히 딴소리만 하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열띠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같은 초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핵심을 잡지 못하는 데 있으며, 핵심을 잡지 못하면 결코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배울 줄 아는 사람은 남의 것을 배우지 자기 생각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그렇게 합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애를 먹는 이유는 배우기만 하면 자기 방식대로 처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배울 때 자기가 글자를 지어내면 그것은 오탈자가 되고, 영어를 배울 때도 자기가 만들어내면 철자 오류가 됩니다. 회계를 배울 때 자기 혼자 개념을 발명하고 상상해 낸다면 그것은 회계 서적에 적힌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학습이란 본래 남의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배우다가 혼란스러워지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우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절반은 남의 것이, 절반은 자기 생각이 들어차 있으니 누구라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모스서》를 읽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든, 이는 우리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히브리서》를 설교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1장을 듣고 나서 저는 멍해졌습니다. 그분이 한참을 설교하셨지만 《히브리서》 본문의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만 늘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일반 계시니, 특별 계시니 하는 것은 《히브리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내용은 하나도 말하지 않고, 본문에 없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이런 사람을 따라가서는 결코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저는 여러분의 이런 배울 줄 모르는 나쁜 습관을 반드시 고쳐드릴 것입니다. 학습이란 상대방의 것을 배우는 것이며,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우리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의학의 망·문·문·절(望·聞·問·切)이 왜 그러한지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변증론치를 위한 것이며, 한의학을 배우면 반드시 이것을 배우게 됩니다. 간이 근육을 주관하므로 근육이 안 좋으면 반드시 간과 관련이 있고, 눈으로 구멍이 열려 있으므로(개규우목) 눈이 안 좋은 것도 간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이유를 따질 것이 없이 그대로 따라 배우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점차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다 읽고 나서 자기만의 이론을 잔뜩 만들어 냅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목양을 배우면서도 결국 자기 방식대로 하는데, 어떻게 좋아질 수 있겠습니까?
이번 장의 주제인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아모스서》 8장 2절에 나옵니다. 왜 이것이 주제가 될까요? 이 장 전체가 바로 이 일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에 적힌 내용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저 역시 큰 노력을 기울여 이 주제를 찾아냈습니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모스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온 힘을 다해 죽기 살기로 찾은 것이지, 제가 아모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사람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도 바울의 서신을 온전히 깨달아 읽을 수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듭 용서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듭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거듭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지었고, 결국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시기에 이릅니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배움 때문에 속 썩을 필요도 없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열이 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차갑게 식어버릴 뿐이기 때문입니다. 두 다리를 뻗고 두 눈을 감게 되겠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의미의 죽음이 아닙니다. 오늘 깊이 반성하십시오. 지난 세월 겪었던 징계와 어리석었던 일들,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보고 고쳐졌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사실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고치는 것은 결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가치 체계는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 알려주며, 마음속에는 반드시 저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저울이 자기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당신 자신이 만들어낸 저울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끝이 이를 때까지 거듭 용서하시겠지만, 끝이 오면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은 기어이 하나님과 고집을 피우며 맞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 용서하실 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교훈을 얻어 깊이 자신을 돌아봅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오직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만 하고, 나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일말의 경외함도 없이 명령조로 예수님더러 와서 고쳐내라고 하며, 심지어 치료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하고 자기만 빨리 낫기를 구합니다. 기도가 조금만 길어져도 왜 아직 안 낫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걸레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안 뒤에 자기 내면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끊임없이 힘써 무너뜨립니다. 왜냐하면 무너뜨리지 않으면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회개할 줄 알게 됩니까?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저 역시 하나님을 본받아, 여러분이 거듭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고통을 좀 더 겪게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차피 고통받는 것은 여러분이고 저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오늘 다시 한번 간곡히 권면합니다. 고통을 겪을 때 반드시 자신을 깊이 돌아보십시오. 저에게 이런 일이 임한다 해도 마찬가지로 저 자신을 깊이 반성할 것입니다.
제게 장점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첫 번째 장점은 다른 사람의 것을 배울 때 비교적 명확하게 배우고,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확실히 파악하며 제멋대로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인 사명 신학(Chinese Destiny Theology)이 제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하나의 뼈대를 세우고 한 걸음씩 깊이 들어간 것뿐이며, 마치 먹줄을 곧게 띄운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체계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저 자신을 반성하기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내가 바르게 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자기가 진리의 화신인 양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는 늘 제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최근 제 동역자가 왜 늘 미간을 찌푸리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사실 저는 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데, 이는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과거에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를 고민합니다. 최근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목양 체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잘한 것조차도 여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역을 어떻게 개선할지 총괄적으로 계획하고 있으며, 머리가 팽팽 돌고 윙윙 울릴 정도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머리만 한 번 탁 치면 답이 나오는 줄 압니다. 하지만 머리를 쳐서 나오는 것은 순두부나 심지어 똥과 같은 냄새나는 찌꺼기일 뿐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결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하나님을 구하는 것 또한 머리를 굴려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듭 용서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저의 이 두 가지 장점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자기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기 생각대로 해놓고 다 끝난 뒤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장점은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항상 반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걸핏하면 열이 나고 냄새가 난다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바보 같은 자의 일생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바보와 지혜로운 사람의 구분이 있는데, 이것은 다 사명(운명)입니다. 오늘 제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다 제대로 된 교훈을 얻게 하소서. 며칠 더 열이 난다 해도 상관없으니, 누가 그렇게 완고하고 패역하라고 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끝이 이를 때에는 그분께서도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적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 용서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피부병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손가락이 아프다 눈이 멀 것 같다 하며 온갖 문제들이 빗발치듯 닥치지만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속의 쓰레기는 끝내 치우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간곡하게 말씀드리니 약간의 풍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풍자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을 때야말로 정말로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제대로 배우고 반성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에 자신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돌아보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머릿속에 담아둔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은 전부 당신을 고통받게 만드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마침표를 찍으시도록 몰아세우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저로서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교훈을 배워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돕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지 마십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도울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 자라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도움이 필요 없으실 뿐만 아니라 저 역시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돕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용서하셨는데, 당신은 반성하셨습니까?
2.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거듭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거듭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그토록 악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아모스서》 8:4-6)
온갖 짓을 다 저지르고도 금송아지 앞에 가서 절하며, 금송아지를 가리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말하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세상적인 논리 체계는 오직 돈을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보면 헐값이라 여기고 얼른 데려다가 죽기 살기로 부려 먹으며, 일을 안 하면 채찍질을 합니다. 또 곤고한 사람을 쇠락하게 만들며, 사람을 뼈만 남도록 쥐어짜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단 1전이라도 쓰는 것은 자신의 이윤을 깎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이것이 바로 세상의 재물 때문이며,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핵심 이익만을 위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곤고한 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예전에 《백모녀(白毛女)》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서 황세인(黃世仁) 역을 맡은 배우가 너무나 악랄하게 연기를 잘해서 평소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다들 우르르 몰려가 두들겨 팰 정도였습니다.
사람에게 이토록 긍휼의 마음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관여하고자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시겠습니까? 초막절을 지키든 유월절을 지키든, 절기를 지키면서도 얼른 끝내고 떠날 생각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초막절도 유월절도 없고 오직 주일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설교가 때로 한 시간 넘게 이어지면 아래에서는 늘 시계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손목시계를 찬 팔을 번쩍 들어 제게 신호를 보내며 그만 설교하라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안식일이 언제 끝나느냐고 불평하며 제가 설교를 마치면 주일이 다 끝난 줄 압니다. 설교가 끝났다고 안식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뒤에 기도회와 강의가 이어집니다. 여러분을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부어 넣으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자기만의 핵심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 이 핵심 이익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의 핵심 이익에 방해가 되고 집안에서 돈을 버는 데 방해가 됩니다. 마음속으로는 집에 곰팡이 핀 밀을 어떻게 팔아치울까만 생각합니다. 곰팡이 핀 밀을 먹으면 분명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팝니다. 사는 사람은 모를 테니 먹고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라고는 고작 이런 것들뿐이었습니다. 집 인테리어가 절반쯤 되었고 프로젝트가 절반쯤 진행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끝이 가까웠으니 이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집 인테리어도 할 필요가 없고, 곰팡이 핀 밀을 팔 필요도 없으며, 판 돈을 쓸 곳도 없습니다. 이미 당신에게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거듭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내가 잘살면 누군가는 못살게 되고, 내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돈을 벌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온통 재물과 먹고사는 문제뿐이며, 그 결과 모든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되어버립니다. 어떤 이들은 양백로(楊白勞)에 대해 묻지만, 사실 그도 돈이 생기면 황세인과 똑같아졌을 것입니다. 양백로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양백로와 황세인의 내면에 담긴 세상적인 논리가 불쌍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삽니까? 어떤 이는 돈으로 살아가며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어느 쪽이 더 잘 사는지 천천히 비교해 보십시오. 왜 제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모습은 지금과 같고, 어떤 사람이 믿는 모습은 그 모양일까요? 저는 제가 무능함을 알지만 제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심을 알기에 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언제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고, 직장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제 시간을 바쳐 섬겼는데 이는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지, 나 자신을 의지하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훗날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이끌고 《성경》을 읽으면 다들 설교가 참 좋다고 합니다.
돈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권세 또한 해결하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왕이라도 비행기를 탔을 때 떨어질 때가 되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우상 숭배가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분은 결코 당신이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은행을 털기 전에 관우 상을 모셔놓고 절하며 성공적으로 은행을 털게 해달라고 빕니다. 경찰서에서도 절하며 범인을 잘 잡게 해달라고 빕니다. 결국 두 무리가 마주쳐 싸우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께 와서 기도하며 은행 강도가 성공하게 해달라고 구한다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경찰이 와서 잡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그런 것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지 이생의 하찮은 것들이 아닙니다. 이생의 논리는 참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아모스서》 8:8)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으니 땅이 진동할 지경이며, 마치 물처럼 출렁거리니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것들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제 세상적인 논리 체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회개하시겠습니까? 당신이 겪은 일도 적지 않은데, 더 이상 회개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갈 길이 없어질 것입니다.
3. 그들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아모스서》 8:7)
사실 당신이 이생의 논리를 품은 채 저를 찾아와 기도를 부탁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때로 제가 한동안 섬김(기도)을 내려놓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낫지, 기도했다가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매우 흔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하늘을 부르짖으며 기도함으로 당신을 섬기지만, 어느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여 “그를 더 이상 섬기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를 회개하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질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저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에 두신 문제를 제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우리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최근 저는 사역을 맡은 소목회자들에게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우리 가운데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너무나 적고, 도무지 반성할 줄 모릅니다. 잔뜩 써놓았지만 진정으로 반성하는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반성이란 자신이 어디를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지, 자기가 잘한 것을 잔뜩 늘어놓는 것은 반성이 아닙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찾고, 어떻게 하면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을지 마음을 다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동할 때 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일을 마친 뒤에 일어나는 결과는 우리가 한 일이 틀렸음을 증명합니다. 머릿속에 더러운 것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와 마찬가지로, 육신을 따르든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성할 줄 모르며, 반성을 한다면서도 다 허풍과 빈말뿐입니다. 제 자신의 예를 들자면, 밥을 지어먹은 뒤 ‘이 부분이 잘못되었구나, 여기에 시간이 조금 많이 들었으니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반성입니다. 배울 줄 모를 때는 자기가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반성하고, 매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분명 할 줄 모르는 부분이 있겠지만, 끊임없이 반성해야 사람이 지혜로워지는 법입니다. 사람은 반성하지 않고 늘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자신이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멍청해지고, 결국 돌아오는 평가는 어리석음뿐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일을 행하고 스스로 수많은 응보와 온갖 질병을 자초하고서도 끝내 반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게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얼른 방언(영)으로 기도나 해달라고 재촉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까지 저를 가르치려 드는데, 제가 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 섬겨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신호를 주셨는데도 당신이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정작 회개하고 싶을 때는 기회조차 없을 것입니다. 자기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십시오. 속은 땅콩 알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만약 이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정말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이든, 당신이 하나님께 행한 일이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잊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때에 당신이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책들을 펴시고 낱낱의 일을 당신에게 밝히실 것입니다. 당신은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기억은 부정확하지만 하나님의 기억은 매우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할 때 사람은 그것을 뒤엎을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한 아름다운 이력서를 써 내려가야 합니다. 사람이 걸어온 길은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사람의 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저급하고, 하나님의 눈에는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최근 저는 사역하면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당신은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종처럼 부려 먹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언젠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마침표를 찍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거듭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의 끝의 날이 이를 것입니다
이 끝의 날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참으로 끔찍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많은 시체가 생겨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아모스서》 8:3)
성전에서 애도가 울려 퍼질 것인데, 성전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가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 하나님께서 끌어들이신 이방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 민족을 일으켜 그들을 치실 터인데, 그것이 곧 끝이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실 때는 반드시 주를 믿지 않는 이방인을 통해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칼과 몽둥이와 채찍입니다. 끝의 날이 이르기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때가 되면 완전히 파멸입니다. 시체가 곳곳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평소에 가난한 자를 삼키고 곤고한 자를 망하게 하던 짓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날이 속히 지나가서 집에 가 돈 벌기만을 바라다가 결국 시체가 되고 맙니다. 그때가 되면 돈을 벌 필요도 없고 다시는 열이 나지도 않으며, 그저 썩어 냄새가 날 뿐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동명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아모스서》 8:9)
이러한 날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아모스서》 8:10)
사실 이러한 고통은 꼭 여호와의 날에 이르러서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범죄할 때 이미 마음속은 충분히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귀신 하나를 보내어 당신을 괴롭히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완고하여 회개하지 않으니,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픕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서》 8:11)
어찌할 방도가 없을 정도로 갈증이 나며, 속이 몹시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배고픔을 느끼게 하시고 목이 타들어 갈 듯한 갈증을 느끼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입니다. 목이 마르고 입안이 바짝 말라 괴롭다며 제게 기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다 그렇게 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말라비틀어질 듯 괴로운 것입니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아모스서》 8:12-13)
이런 때에는 예뻐도 소용이 없습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셀카를 찍으면 갈증이 사라집니까? 입술이 바짝 말라 있는데도 잘생긴 남학생과 함께 틱톡을 찍으며 셀카를 올립니다. 뷰티 필터를 아무리 켜도 두 사람의 창백한 입술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틱톡에 영상을 올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끝의 날에 이르면 되돌릴 힘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하심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으며, 돈도 부족하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배부를 뿐만 아니라 건강할 것이고 희락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여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아모스서》 8:11-12)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거듭 죄를 지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세상적인 논리 체계 속에 살아가면서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려 할까요? 목말라 죽을 지경인데 스스로 해결하려 해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그 순간에 이르면 예수님께서 당신 곁에 서서 기도해 주신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늙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을 본받는다면, 기도하고 제사를 드려도 영원히 당신의 죄를 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하면 도무지 깨달을 수가 없으며, 온 마음과 생각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로 가득 차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아모스서》 8장에서 말씀하는 바입니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찾을 수 없고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거듭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서도 다시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다시 죄를 지어 징벌을 받고, 다시 기도하고 구하여 은혜를 입었지만, 결국 어느 한 번은 얻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되면 참으로 죗값을 치르는 것이며 더는 손쓸 방도가 없게 됩니다.
최근 제 마음속에 약간의 근심이 있는데, 사람들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 때문에 몹시 비참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한때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장래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점을 깨달았다면 저와 함께 내면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제거합시다. 살아가는 것은 당신의 직장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 내면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품고 있다면, 단 10%라 할지라도 그 10% 때문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뵙지 못하며,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회개하여 우리 내면에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멍청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민족보다 더 똑똑했을지 모르지만, 그 똑똑함으로도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며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 마십시오.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담긴 것이 너무나 더럽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도 다 어리석을 뿐입니다.
오늘 당신은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아모스서》 8장을 들은 뒤에는 배우는 법과 반성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반성한 것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어리석어진 것입니다. 만약 지금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욱 어리석어질 것이며,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매 순간을 기록해 두는 것이 가장 좋으며,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늙고 쇠약해져 되돌릴 힘조차 없을 때까지 미루지 마십시오. 항상 반성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 내면이 세상적인 것들로 인해 괴롭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분명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셨지만 사람은 여전히 제 갈 길만 고집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조금은 맑은 정신이 드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