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查的这段《圣经》是《阿摩司书》的第四章:预备迎见降灾祸的神。在等着大家提问题的时候我先说一下,有一个字大家可能会问这是啥?在第三节:你们各人必从破口直往前行,投入哈门,这个哈门不是阿们。哈门是啥呢?就是一个人他不是站在破口当中,然后堵住破口,而是把破口弄得越大越宽,那破口往外冲。冲哪去了?冲到灭亡里去了。那哈门是个啥呢?是一个屠宰场,也就是说你冲到哈门。《圣经》里头没有记,也没有稍微明确的解释,但是哈门似乎是一个屠宰场的意思,就是人拼命往灾祸里头冲。大家赶紧把你的问题发过来,我就补充这么一点点。不要在破口里头往哈门里头冲,要往阿们里头冲,要阿们不要哈门。
【问题】1:老师,我看《圣经》里神喜悦的亚伯拉罕、以撒、约瑟、大卫、保罗他们好像天生就比较讨神喜悦,记录他们犯罪虽然有,但是很少。反而以色列人里那些悖逆的百姓,神一会管教他们,也从来不改,从来没有看到过亚哈随鲁王那种悔改过来。老师,我们这样比较烂的还有机会吗?
答:不是烂和不烂,是信和不信。听明白了吗?人如果真的认为自己烂就有机会了,听得懂吗?如果人认为自己不错那就毁啦,我们今天都要开始知道自己够烂。其实神有丰富的恩典和怜悯给那些不自以为是的人,反倒是那自己觉得自己不错,还觉着我改啥呀?结果就得着的都是灾祸。那灾祸降临了以后,他们还各自解释自己,他们不觉着自己烂,他们觉着自己可爱神啦。大家有没有见过这样的人?都觉得自己可爱神啦。
有一个人新冠了以后快要死了,就写了一个长长的家书。我们俩好像差不多前后得的新冠,他死的时候我还没完全好。写了一个家书里头没有神的话呀,讲的都是些什么乌烟瘴气的东西,但是人们觉着讲得可有道理了。因为他期盼他的教会,不是这种龙虎争斗的教会。你是一个创办人,你创建了一个教会,把教会建成龙虎斗了,你不觉着自己有问题吗?其实在写的时候他都已经康复了,但是三天以后突然就死了。当然啦,死了也挺好,就不用再折腾了,也不用龙虎斗了。其实我认识的,人都觉着自己对。
我就对一个人说:你看我们华人命定出了很多的书,如果你愿意卖,印书的成本我出,你卖的钱全归你,我一分钱都不要。人家看不上,看不上没关系啊。我说:那你读一读吧,到底看得上还是看不上?那也看不上,就觉得免费的哪有好的?他是知道在医治释放上我做得特别的好,但我说话也比较重。没多久新冠的最后一波他赶上了,在医院里插管子插了四个月,后来死了。死了以后我就去参加他的葬礼,他躺在棺材里,这是另外一个案例。那都觉着自己做得可对了。
曾经有人就问我:你认为你自己怎么样?我觉着我自己挺烂。其实我告诉你亚伯拉罕、以撒、雅各、约瑟、大卫、保罗他们都觉着自己挺烂,觉着自己挺烂就有机会啦!姐妹。抓到关键了没有?其实你们看他是完美,他看自己那可不是,他看自己觉着自己真的是不行,所以人才依靠神呐。你觉着自己行就依靠不了神,立了自己的义就不能立神的义。
【问题】2:老师,在《新约》里有咒诅吗?
答:哎呦,我的天!一看就是没读《圣经》的人,你《圣经》读过几遍?有没有电子版的《圣经》?你一搜,在《新约圣经》里《罗马书》的最后一章:若有人不爱神就可咒可诅;在《加拉太书》讲到:如果有人传错了福音他就该受咒诅。有没有咒诅?有。祝福和咒诅从来都没有改变过。现在大家要重新调整啊,别以为《新约》没有咒诅了,谁告诉你的?
曾经有一个人就跟我掰扯,大家知道什么叫掰扯吗?就是争论,一直说没有咒诅了。哎呦,我的天呐!看着他,我都懒得开口讲话,那得多自以为是啊?也不知道读读《圣经》啊,知道不?不知道。那该不该读啊?该读啊。读了《圣经》你去查一下就知道有咒诅、没咒诅了,非得跟我掰扯《新约》没有咒诅。他的逻辑是啥?因为耶稣诚然担当了我们的过犯,背负了我们的咒诅,背负了咒诅就没咒诅啦?这么认为那就坏了。不是他觉着他自己烂,是他觉着他自己够好,他都觉着自己可有知识啦,又有知识又有文化的。回答了你问题没有?回答了你自己去查。
【问题】3:老师,您说过现在的教会才是以色列,那后来是不是旧枝子还要连上?
答:你说这话挺有意思啊,旧枝子连上它也不是连上那个以色列,连上的是那些相信耶稣的以色列人,犹太人要连上,听明白了吗?那到今天还没连上,因为那只不过说是神的计划,神的计划是很美好的,但是人的选择实在是有点不太好。
【问题】4:老师,耶稣一次献上就做了众人永远的赎罪祭,我们犯罪了悔改,就不用认罪了吗?
答:犯罪了悔改了,悔改了就好好的真正改呀,别悔而不改。我见过的基督徒他们的悔改都在嘴上,我悔改,回头又干那些事,很难改的。那怎么办呢?他们就悔了但是却不改。你说这个不用认罪了?如果彻底悔改了,老认这个罪干啥呀?那要认新的罪,因为你还有很多的地方不像耶稣,所以我们要天天悔改。不是悔改就那么一件小破事,是天天悔改我们身上哪一些地方不像耶稣,我们哪个地方需要悔改,我们要长成满有耶稣基督的身量。今天的基督徒有一个很大的迷思,以为信主我就可以上天堂,其实不是,这是很荒谬的逻辑。什么叫做救恩?神要把我们塑造成满了耶稣基督的身量,有神儿子的形象,在我们活着的时候就要像耶稣这才是关键。
【问题】5:老师你好,怎么才能让人回转向神,使神不动怒气,不降灾祸呢?
答:你自己好好悔改嘛。神不想这么干,但是人就逼着神这么干。如果人经历了很多灾祸,骨子里是不改的。再来一轮、再来一轮,不断地加码,我看小命够呛,就成了死在旷野里的以色列人。
【问题】6:老师,我看老外特别喜欢夸孩子,孩子都很自信,我觉得我的儿子不自信,孩子有时候做得好的地方不要鼓励他吗?
答:可以啊,当然你想鼓励就鼓励,老外特别喜欢夸奖自己的孩子。夸奖出来的结果是啥呢?你没考察过呀?自信可不是夸奖出来的。我们今天的父母把孩子都整的神经兮兮的,哎呦,那个紧张呀!一旦学习不好,一个考试没考好,父母都快抓狂了。其实不是夸奖孩子搞出来的,是人家那个父母心情比较平静,比较稳定,孩子才自信。不像你们这些一整就神经兮兮,看那个考试比孩子看得还重,孩子没考好简直天要塌下来了。你变得很神经,孩子怎么自信呢?
所以夸奖夸奖把孩子都夸成了草莓族、玻璃心啦。我们里面这些东西能不能回去好好考察一下,别一拍脑袋就问问题。回去好好考察一下,别自己整天啥也不管,傻乎乎的就开始问。问的都是没有体系,然后也不形成体系。我这么答疑,答完了你里面也不一定能够接受。你里面是混乱的状态,东一瞥子西一划子,那怎么可能整得好呢?
【问题】7:老师,读经时有一点领悟,不知道对不对,请老师指导。《圣经》中惹神愤怒的往往是人,而不是鬼。原来以为鬼是神的对立面,鬼是惹神愤怒的。其实不是这样?
答:鬼是神手里的工具,其实人就是演了一台戏,有的人演到灭亡里面去了,有的演到永生里面去了。
【问题】8:老师我妈妈有时犯了罪后,会很后悔不开心,这有问题吗?
答:没问题,应该常常不开心,犯了罪还开心还了得了!记住,犯了罪以后,人就招鬼。招鬼以后人就会难受,人难受但不是说她对自己的罪有悔改,是她对这个罪犯得不精致而难受。
【问题】9:老师,自己家的孩子无论做好做坏,都是不表扬,只批评吗?那老师该怎么对待表现不同的学生呢?老师讲的和教育心理学的一些奖惩制度好像相反,表扬和奖励好像有一定的作用,我这方面不是很理解本质。请老师多讲一些。
答:你从教育心理学讲,咱俩就没法在一条线上了。为啥?因为你讲的是教育心理学。我讲的是啥?我讲的是你到底是一个体贴肉体、爱世界的,还是不体贴肉体、不爱世界的。你比如说训练孩子,做好了你夸奖他干啥?因为要让孩子不以物喜不以己悲。听得懂吗?一个古代的士大夫竟然有这样的格局,我们今天的父母不知道把孩子训练成一个有格局的人。一点小屁事就夸奖,一点小屁事就奖励,那不是跟养猴子似的吗?养猴子干好了给个香蕉,有没有发现?人不是动物!
如果训练人最好的逻辑体系在《圣经》里,要狠狠地对付人属肉体的恶习,狠狠地对付人的属世界的价值体系,这个孩子他就很抗噪。你比如说对考试成绩很看重,看重了以后会怎么样?啊,他考好了就夸奖他一下,然后他就更看重。下次考不好了就抹鼻涕嘛,一哭哭好几天,傻不拉几的。是不是?很多这样的事,今天咱们很多父母不是照着神的话去训练孩子,甚至连古代的士大夫都比不上。
如果一个人整天鼓励孩子爱世界、爱世界,爱世界爱得很好,给他一个糖果。你将来怎么办呢?小孩就不抗噪啊,小孩抗挫败的能力就几乎是个零蛋呐,不是负数就已经夸奖他了。孩子就会神经兮兮,哪来的信心?这事不重要没什么了不起。所以今天都把孩子整成什么样了?整得一哭就哭好几天,觉得很了不起似的。咱俩讲的是不是在一条线上了?你那个教育心理学讲的对吗?教育心理学就那玩意,你就慢慢做吧。它那东西就好像吸毒似的,吸完了感觉挺好,但长久吸下去怎么样?不就完蛋了吗。是不是?
所以很多的孩子,真的是没有把性格训练好。倒是把这些贪婪、在乎自己,这一系列东西全都给孩子传递建造起来了。争竞、攀比、嫉妒都是这样。我还是鼓励大家对这些东西别听我说,好好地仔细去研究。
【问题】10:关于管教孩子的问题,分享推荐看《不管教的勇气》,会解答很多疑惑。里面分享:爱是给孩子归属感;孩子把事情做好对孩子说:谢谢。是给予孩子价值感;牧者为父为母的牧养是爱,让我们这些小羊有归属感;我们作为小羊把事做好,这是价值感;也可以提升真正的信心,根基是建立在信靠神。
答:哇,总结的挺有意思。这个归属感,价值感,存在感,这些都不应该是我们的追求。那是一个人层次比较低,所以他需要这些东西。他需要这些东西并不代表需要给他这些东西呀,我们弟兄姐妹要重新思考,包括刚刚这个姐妹所打的这一段文字,值得推敲。
【问题】11:老师,我这次回来老家有两种现象,回到乡下我放了拐杖走路了,精神面貌气质都很好,他们都恭喜我。当我说到信靠神得医治,他们不相信。也对我作为教师相信神,不屑一顾。回到城里大都是文化人、作家,教师和区级领导。他们见到我也惊奇,我说是基督徒信靠神得医治,他们倒颇感兴趣。喝茶喝酒的闲谈,我得医治的经历一点也不反对。他们说:把你的见证一定要写出来。我说到不识别善恶,不苦毒、要饶恕。他们说:这两点他们做不到,他们知道我的经历。我说:我现在基本上做到了不苦毒,不记人家的恶。更是不可思议,我觉得同有信仰的人和有文化的人倒很好相处。和没有多少文化知识的人倒是很不和谐,同他们相处只要提及就不说信仰的事。
答:对,是这样。其实人一旦无知就不知道天高地厚,其实人有点知识还能够谦卑一点,人无知那是一个很可悲的事。
【问题】12:老师,我最近用吸引力法则来教育学生,要有积极向上的心态。有问题吗?吸引力法则是不是跟信心有关?跟信心的逻辑有关吗?
答:其实建造孩子的信心是一个很好的事。我告诉你,人有信心他做事就会好很多。你比如解决一个困难,他需要有信心去解决,他不需要把神扯进来。很多小孩他在信心的操练上,尤其是教育孩子,别去传教。让他开始有信心,这很重要。如果你要训练孩子的话,咱们不要上来就讲神呐、神呐。其实主要还是塑造他的性格,刚强、尊贵的性格!最核心的东西就是信心。等他自己的信心撑不下去的时候,他才知道需要神。那就是问题的关键!
今天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서>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아모스> 4:12)
저는 늘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만나는 수련회’에 참석해서 정말 하나님을 만난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암에 걸리는 일이 생길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거듭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강한지 여러분의 목이 뻣뻣한지 시험해 보려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뻣뻣한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며, 목이 아파 움직이지도 못해 남에게 주물러 달라고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다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핵심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가 과연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처음 주님을 믿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죄악을 습관으로 길러서는 안 됩니다. 죄악이 습관화되어 버리면 인생은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정도이기에, 저는 늘 여러분과 제 자신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행하심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1. 바산의 암소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아모스> 4:1-2)
사람은 참으로 목이 뻣뻣하여, 거듭해서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재앙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사람의 내면에는 반드시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지, 재앙이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다시 말해 평소에 절대로 목이 뻣뻣한 암소처럼 굴지 말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좋은 일 몇 가지 하고, 다른 사람의 육신을 배려해 주며, 그럴듯한 사람의 말을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스스로 인간답다거나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의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사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오직 사람의 뜻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 중에도 완고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결국 살아내는 모습은 여전히 자기 자신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 또 하나의 자신을 살아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보면 완고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똑같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이가 들면서 완고함이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를 권면합니다.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느냐입니다. 결코 자신의 장점을 장점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면접 볼 때 단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 단점은 일을 너무 꼼꼼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큰일입니다. 요즘은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면접관은 듣자마자 헛소리라는 것을 다 압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제 단점은 아주 많습니다. 어떤 것부터 듣기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편이 낫습니다.
여러분,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자기가 잘한 몇 가지 일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해 버리면 성장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온전하지 못한 부분에 늘 시선을 두고, 어디가 하나님을 닮지 않았는지, 어디가 여전히 완고하여 고쳐야 하는지를 자주 반성해야 합니다. 기억하지 못하겠다면 펜으로 적어 두고 매일 아침 일어나 확인해 보십시오. 완고함을 경계하십시오. 특히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자일수록 완고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헛된 자신감을 자주 꺾어 버립니다. 즉, 저에게서 칭찬 한마디를 듣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 잘못되고 황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를 무조건 칭찬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은 망치는 길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사람은 함부로 칭찬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자신감이 꺾일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자신감은 헛된 것이며, 자신을 망치는 자신감일 뿐입니다. 믿기지 않으신다면 제 말대로 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아이를 무조건 칭찬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이것저것 한 일에 대해 어떠냐고 물으며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정말 잘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했다고 하지만, 정작 제가 고치라고 한 것은 여전히 고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산의 암소처럼 목이 뻣뻣하여, 그 소의 목은 압력솥에 넣고 삶아도 익지 않을 만큼 질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바산의 암소에서 어린양처럼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영적인 길에서 성장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보지 말고, 자신이 어디에서 아직 하나님을 덜 닮았는지를 항상 살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성문을 엉망진창으로 써서 냅니다. 그의 헛된 자신감을 꺾어 주자니 너무 심하게 손을 대는 것 같고, 있는 그대로 문제를 지적해 주지 않자니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니, 저로서는 참으로 곤란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저를 본받아 사람을 쉽게 칭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칭찬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문제가 아직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회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재앙을 내리셔도 여전히 고치지 않고, 상황이 조금만 나아지면 문제를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터무니가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떤 재앙을 내리셔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듯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비추어 보며 우리의 초라한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드시더라도 서서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재앙을 내리시도록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마지막에 소돔이 멸망할 때가 되어서야 불 속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막대기처럼 간신히 구원받아, 온몸이 시커멓게 타서 탄내를 풍기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화인 사명신학이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여전히 바로잡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끊임없이 인식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바로잡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함정에 빠질 뻔한 적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모든 일을 온전하게 바로잡은 모습은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자신이 아직 예수님을 온전히 닮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짓밟기를 좋아함
이 세상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가장 강한 자가 두 번째로 강한 자를 괴롭히고, 두 번째로 강한 자가 세 번째를 괴롭히며, 가장 바닥의 두 계층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괴롭힘이 존재합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조차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괴롭힙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짓밟는 것이 이미 사회의 문화이자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짓밟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고 여기며, 모두가 자신의 명예와 이익과 권력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미미한 권리라도 악착같이 이용해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사회 밑바닥의 삶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자들은 매우 지독하며, 밑바닥으로 갈수록 더욱 지독해집니다.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원래 적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사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시는 하나의 시험입니다. 일부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여러분 곁에 두시고, 여러분이 그를 학대하는지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만약 상대를 보고 괴롭힐 기회가 왔다고 여기며, 힘으로나 재력으로나 상대가 되지 않으니 괴롭혀도 안전하고 위험 부담이 적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사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그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억압하는 순간 미끼를 물게 되며, 마치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고 끌려가듯, 그 결과는 훨씬 더 무거운 압제를 당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아모스> 4:1-2)
이 말씀의 의미는, 자기보다 약하고 더 궁핍한 사람을 성공적으로 억압하여 그 사람이 가진 얼마 남지 않은 재물마저 쥐어짜 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주인 앞에 나아가 상을 요구하며, 좋은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축하하며 남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저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백성의 재물을 뜯어냈으니 축하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축하를 마친 뒤에는 곧바로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됩니다. 사람들은 속으로 사장의 지시대로 행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공을 세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하고, 영생을 얻으며,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길에서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 길에는 시체가 가득 널려 있으며, 자칫 방심하면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관건은 사람 내면의 핵심 이익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사람 마음의 핵심 이익이 세상의 일들에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육신을 따를 것은 육신대로 따르고, 재물을 취할 것은 재물대로 취하니, 하나님이 없는 온 세상은 너무나 비참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남을 억압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셈을 치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 억압을 당하는 것은 사회의 일상이며, 억압을 당한 뒤에 누군가는 그것을 축하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교회에 와서 자신이 누구를 성공적으로 짓밟았다고 간증하며 성전에서 감사제와 낙헌제를 드리려 하니,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3. 감사제와 낙헌제를 드려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함
남을 억압하여 얻은 재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얻어 온 십일조를 매우 필요로 하실 것이라 여기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재앙 앞에서 매우 당황해하며, 자기가 제사도 드렸고 헌금도 바쳤으니 재앙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 육신을 따르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득을 취할 기회가 생겼을 때 챙기지 않는 자신을 바보 같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이득을 다 챙기고 감사제와 낙헌제를 드린 뒤, 하나님께서 재앙을 조금만 내리시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우리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뿐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날 때부터 지니고 온 이기적인 논리를 품고 살아가지 마십시오. 돈과 명예와 권력만을 위해 사는 인생은 몹시 고달플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걷기 좋은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핵심을 붙잡아야 하며, 결코 종교적인 행위로 때우려 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기도하지 않을 때는 괜찮다가 기도하고 나면 일이 더 꼬이고, 제사를 드리지 않을 때는 괜찮다가 주문을 몇 건 더 받기도 했는데 제사를 드리고 났더니 재앙을 만나 수주한 주문마저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닫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수를 써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늘 무슨 일이 생기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냅니다. 사람은 참으로 묘합니다. 병들 시간은 있으면서 주님을 믿을 시간은 없고, 하나님의 재앙을 기다릴 시간은 있으면서 하나님의 복을 기다릴 시간은 없습니다.
4.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사람들을 경고하심
우리의 하나님은 재앙을 내려 단번에 사람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앙을 내리시는 방식을 취하십니다. 재앙을 하나 내려 보시고 사람이 깨어나는지 살피시며, 그렇지 않으면 강도를 더 높이십니다. 처음에는 10kg짜리 재앙을 주시고, 다음에는 20kg짜리를 주시며, 20kg으로도 안 되면 40kg을 주셔서 결국 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해 무너질 때까지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압제가 심한 것을 보시고 그 성읍에 양식이 떨어지게 하십니다. 성읍에 양식이 부족해지면 사람들 사이의 상호 압제는 더욱 극심해집니다. 양식이 한정되어 있으니 내가 굶지 않으려면 남이 굶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가난한 자를 더욱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더욱 짓밟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척박한 환경에서 악한 자들이 들끓게 되는 이유입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6)
이가 깨끗하다는 것은 고기를 먹지 못해 이에 낄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재앙을 겪게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미 이 세상의 것들에 굳게 얽매여 있어서, 온갖 것은 다 믿으면서 오직 하나님만은 믿지 않습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자기 자식마저 잡아먹으려 드는 사람도 생깁니다.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조각은 비를 얻고 한 조각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아모스> 4:7)
여기서 이 땅에는 비가 내리고 저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 성읍에는 비가 오고 저 성읍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저 성읍 사람들은 우리보다 행실이 못한데, 저 사람은 나보다 잘한 것도 없는데 왜 우리 땅에는 비가 안 올까?’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남보다 낫고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것만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바산의 암소처럼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계속해서 죄를 짓고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8)
물이 부족해 마실 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저 물을 찾아 헤매니, 이러한 행동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우리 가운데 병에 걸렸거나 궁핍하거나 온갖 재앙을 만난 형제자매들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경고하시는 것이니, 결코 목을 뻣뻣하게 세운 채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고 반드시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어야 합니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9)
충해, 가뭄, 깜부기병 등 온갖 재앙이 그들 가운데 임했을 때에도, 그들은 ‘장 씨네 밭이 우리 밭보다 낫네, 이 씨네 밭은 장 씨네 밭보다 더 낫네’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재앙이 더 무겁고 가벼운지만 비교하며, 재앙이 무거우면 죄가 깊은 줄로만 여겼습니다. 여전히 믿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강도를 더 높이셨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10)
전쟁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 상황이 몹시 비참해졌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논리에 완전히 얽매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수년간 겪었던 재앙들을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위기를 겪고 나서 돌아서면 곧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완악함은 참으로 지독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고 나머지 열 지파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단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 멸망당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재앙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11)
하나님께서 한 성읍을 무너뜨리신 뒤 그 성읍에서 구원해 내신 몇 사람은 마치 불 속에서 꺼낸 나무 막대기와 같습니다. 재앙을 겪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면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끊임없이 가중되어도 사람의 완고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논리 체계에 얽매여 버리면 사실상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겸손히 낮추어 자신이 아직 온전치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어떤 한계에 이를 때까지 완고해진다면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말은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듣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목사는 암에 걸리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가 하나님을 몹시 사랑하며 자기는 다 옳게 행해 왔다고 여기는데, 이는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평안할 때조차 자신이 어디를 바로잡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합니다. 수만 명 규모의 교회를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며,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세운 난장판 같은 교회를 보십시오. 주 예수님을 전혀 닮지 않았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 말씀은 바로 <아모스서>에서 불 속에서 끄집어낸 이 나무 막대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반드시 재앙을 내리심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으시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4:12-13)
우리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있었고 어두움이 있으라 하시면 어두움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아침을 어둡게 만드시는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여러분이 누구냐에 달려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온갖 재앙들을 나열했는데,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강도를 더 높이실 수 있습니다. 더 기상천외한 재앙을 내리려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만들어 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고 권면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재앙을 내리시도록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가중하시도록 부추긴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상대로 장난치지 마십시오.
혹시 누구라도 큰 병에 걸렸다면 조심해야 하며, 자신이 온전히 행하지 못했음을 항상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이 낫자마자 다시 교만해져서 자기 의를 세웁니다. 자기가 괜찮은 줄 알고 누구의 훈계도 듣지 않으려 하며, 한마디만 하면 새가 온몸의 깃털을 곤두세우듯 건드릴 수도 없게 화를 냅니다. 평안한 날에는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재앙의 날에는 더욱 반성하며 더욱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모스서> 4장을 들으시면서 전통적인 소위 기독교 신앙에서 전하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며 결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관념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 남들의 강요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남이 강요한다고 해서 반드시 죄를 지어야 합니까? 죄를 짓고 나면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자신이 져야 합니다.
6. 사람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
형제자매 여러분, 조심하여 하나님의 행하심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만 들으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것이며, 이 말씀을 듣고 나면 머리가 아주 맑아집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40년 동안 인도하셨는데도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여 살리시는 것은 여러분이 닭 한 마리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능력이 있으시며 크고 두려우신 분이시니, 여러분이 지금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내서는 안 됩니다.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바산의 암소같이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제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행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면 남을 억압할 필요도 없고, 비양심적이고 패륜적인 짓을 저지를 필요도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자신이 어디를 바로잡지 못했는지, 어디가 주 예수님을 닮지 않았는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결말이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보시고, 날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거듭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는 자들의 결말도 살펴보십시오. 또한 우리 자신의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나타난 작은 결말들을 보십시오. 그러고도 아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닫지 못하여 어찌하여 여전히 죄를 지으려 하십니까? 거룩해지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으니 반드시 그대로 행하실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지혜를 얻습니다.
<아모스서>만 엄하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예언서의 말씀이 다 엄중합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이 요즘 사역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늘어놓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것은 목회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 그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지난번에 지적해 준 문제점들을 어떻게 고쳤는가 하는 것인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문제점을 잊어버립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속이 타서 얼른 다시 회개하며 주 예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제가 지적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악습을 철저히 다루고, 최근 어느 부분을 잘 꺾어내어 모처럼 승리했다고 보고한다면 저는 그런 소식을 기꺼이 들을 것입니다. 목회자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이지 목회자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배워야 할 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종일 자기가 누구를 축사하고 자유케 했는지만 생각하며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쭐대지 마십시오.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있는 문제들을 얼마나 철저히 다루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반성문을 써 놓은 것을 보면 온통 세상의 논리 체계로 가득 차 있어서 평가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인데도 스스로 꽤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삶에 이토록 많은 재앙이 끊이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영적인 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올리고 성장해 가야 합니다. 체면을 차리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체면을 차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체면을 깎으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체면은 몇 푼어치의 가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더 깊이 사역할수록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자신의 더러움을 더욱 뼈저리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몇 마디 지적이라도 하면 저와 논쟁하려 들고 한참을 변명하니, 결국 바산의 암소가 되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소 목이 더 뻣뻣한지,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더 강한지 두고 보면 알 일입니다. 변명하고 해명하는 것은 여전히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차라리 다른 종교를 하나 만들어 교주가 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조심하여 살피라고 간절히 외치며 권면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부터 굳게 결단하고, 자신이 다루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펜으로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듯 자신을 하나씩 철저히 다루어 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살아내십시오. 결코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지만, 재앙이 닥쳤을 때는 돌이킬 힘이 없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쏟아져 내릴 때 그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