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咱们分享的《撒母耳记下》第四章,讲了两种人,一种是聪明人,另外一种是愚蠢人,也就是从世上除灭流人血的!人一生当中最严重的罪就是流人血、谋财害命。流人血这件事可了不得,当然在这个世代,恨人跟流人血差不多!这种价值体系是啥呢?就是我们生下来还不知道的时候就已经开始明白了。大家有没有发现小孩生下来后,你根本就没有教过,但是好多东西他们已经都会了,这种东西就是与生俱来的。人身上这些与生俱来的东西非常地败坏人,就是我们所说的属肉体,属肉体是天然地与神为敌。
大家注意观察你身边的左邻右舍,比如一个村子里的、一个镇子里的、一个小区里的,你会发现这个孩子如果从小你就惯着他,结果就会把他给害了。为啥呢?因为你惯着他,他就按照天性发展,孩子后来就一事无成,而且打爹骂娘,什么样的事都有,那这个孩子就毁了。但是如果父母有点像虎妈狼爸的,他们整那玩意可能不一定对,但是他们整得效果还是不错的。这个孩子就会稍微变乖了一点,因为不允许他们顺着自己的喜好,也不允许他们顺着自己的天性,这事很有意思。
无论如何,一个人在后天要逐渐地学习认识神,神的价值体系跟人的价值体常常是相反的。如果你照着人的价值体系,就会觉得这是天经地义的事,怎么还需要讨论呢?我这一辈子都这么活过来的,那怎么到你这就不对了呢?因为那是与生俱来的东西。
Q1:老师,第4节和这一章的主题有啥关系呢?
大卫为什么要把利甲和巴拿给杀掉呢?因为是从世上除灭流人血的!那是神的心意。其实人家是为了自己的好处来领功的,扫罗的儿子约拿单有一个儿子名叫伊施波设,是瘸腿的。扫罗和约拿单死亡的消息从以色列传到的时候,他才五岁,他的乳母抱着他逃跑,因为跑的太急,孩子就掉在地上,腿就瘸了。
这个乳母着急啥呢?因为这个乳母和约拿单的小儿子伊施波设,他们身上有一种东西叫做不信靠神,他们不知道是神掌管人的生命。咱们当中如果有喜欢着急的,你也会瘸腿。一个不合神心意的人,经常认为人活着不是靠着神,而是靠着自己的努力。一个女人能跑多快?不快还好,一跑快反而把孩子给摔瘸了,腿摔瘸了这件事就是她着急的明证。
利甲和巴拿心里挺着急,结果急完了就死了。伊施波设的乳母着急,着急完了就把伊施波设给摔瘸了。开车着急的人,着急完就出车祸了。能不能安安稳稳的?急什么呢?咱们当中有没有开车的,有一部车很着急地从旁边冲过去了。你慢慢地开,结果他在前面红绿灯那等你,然后你就来一句:你忙什么呢?你忙完了,最后还不是要跟我一起等红绿灯。
前一段时间有人着急出车祸了,车祸死的人比俄罗斯和乌克兰战场死的人还要多。所以大家别着急,有的人弹射起步,弹出去就再也回不来了。人就是不知道地上有很多东西跟咒诅有关,其实最后还是得合神的心意。如果你的观念是:人的生命都是神在掌管,那你着什么急呢?
Q2:现在我为你们受苦,倒觉欢乐;并且为基督的身体,就是为教会,要在我肉身上补满基督患难的缺欠。(《歌罗西书》 1:24 )。 这里的“缺欠”指的是什么?是不是建造教会?为义受苦?
大家千万不要以为耶稣基督受苦就完事了,我们不需要再受苦了,这就全都错了。人们以为反正耶稣基督已经受了患难,剩下就是吃喝玩乐了,哪有这回事呢?其实我们是要在肉身上补满基督患难的缺陷,就是我们要跟耶稣基督一同对付肉体上邪情的私欲,要走和耶稣一样的路。
人活在肉身当中就会有天然属肉体的逻辑体系,所以就要治死肉体的恶习,治死肉体的恶习就是患难,明白了吗?所以保罗说:我干这活,为你们受苦,我就欢乐。为啥呢?因为保罗的任务就是建造耶稣基督的身体、建造耶稣基督的教会,为此受苦比爱世界受苦好。所以人在这世上活着,千万别指望每天都过的开开心心、追求吃喝玩乐,否则到时候就会有灾祸降临。
我们为耶稣基督的身体,为教会受苦,付出点代价正常,你不为这件事受苦,你就会为别的事受苦。这世上出车祸的、腰断的、腿没的,什么样的事都有,那不都是为世上的事而受苦的吗?我是宁愿为建造耶稣基督的身体、为教会挨点累、留点汗、受点苦。
你牧养神的群羊,辛不辛苦?辛苦!不要说养一个人了,养一个兔子都累的够呛,养只猫还得拼命赶回去:哎呀!我的猫还没吃呢!人在这世上一定会为自己的命定受苦,如果一个人的命定是吃喝玩乐,那就为吃喝玩乐吃苦;如果命定是为了建造神荣耀的教会吃苦,那就会为教会付代价。
Q3:圣灵显在各人身上,是叫人得益处。这人蒙圣灵赐他智慧的言语,那人也蒙这位圣灵赐他知识的言语,又有一人蒙这位圣灵赐他信心,还有一人蒙这位圣灵赐他医病的恩赐。(《哥林多前书》 12:7-9)。信心不是我们的选择吗?这段经文怎么又说是圣灵赐的呢?
有的人突然间里面有个特别的信心,那叫圣灵赐的信心。大家得知道,圣灵赐的信心,是怎么来的?那是很难再描述下去的,我在《圣经》里研究来研究去,我也不知道圣灵是怎么赐的信心。但是我的确见过一些人,他们真的有一些行神迹的本事,但是你真的叫他们行的时候又行不出来,那种信心又没了,这是一件非常神奇的事,保罗所描述的就是这种信心。但是我要传讲的是我们选择的信心,选择的信心就是开始服侍。我本来没有恩赐,也没有圣灵赐的信心,但是我就是选择相信,一点一点地往前走,突然有一天那个信心就浮现出来了。
有一个精神病患者得了忧郁症,我服侍了他三个月,他整个人到了奔溃的状态,里面的信心已经奄奄一息。我带他祷告,祷告了一个小时没有用,两个小时、三个小时还是没有用,后来我跟他说:走,我们下去喝点水去。我就带他到楼下去喝水,当我走到楼梯扶手的时候,我转过身来跟他说:我们要继续祷告下去,如果今天祷告不得释放,那就祷告到明天;明天不得释放就祷告到后天;后天祷告不得释放就大后天,直到你得着释放!
我为什么会这样宣告?我也不知道,这是我的性格,我就是选择坚持直到得着释放。结果从楼下喝完水回来,一祷告,他里面的鬼就开始嗷嗷叫,后来我就把鬼赶出去了。圣灵所赐的信心,如果你在那被动地等,应该不会有。如果你选择有信心就坚持到底。《圣经》里有一段话是非常好的,就是你到朋友家求饼,然后屋里的人说:算了吧!我们都睡了。结果他就在门口迫切地敲门:给我饼!睡什么觉?结果就把里面的人给烦死了,最后那个人就把饼给他了。所以这事是怎么来的呢?实际上就是本于信,以致于信。
如果我们把使徒保罗的其他所描述的东西拿来对比的话,你会发现不管是耶稣基督的教导,还是使徒保罗的教导,都不是在那儿被动地等候一个什么样的恩赐,因为不是恩赐来了我们才去做,而是因着我们做了才有这个恩赐。因为你要服侍,所以神才赐给你这个恩赐,最后还是信心的选择,所以不管是圣灵所赐的信心还是你所选择的信心,都是本于信,以致于信。
我想你之所以有这个困扰是因为你实践得太少,光在理论上探讨,在文字上探讨都是毫无意义的。但是你如果去实践,你就会知道我所说的。当你遇到一个忧郁症患者,要死要活的,你会怎么办?你会不会脚底抹油,然后说:反正我没有圣灵所赐的信心,还是算了吧!那就成借口了。人最重要的是行在神的心意当中。
Q4:老师,我认识到人天生的那套逻辑体系是讨神愤怒的,我也主动地去对付挑剔,在这个过程当中所出现的来回拉扯,是不是代表着属灵的自己开始拿回控制权?
过程一定是会来回拉扯的,一会儿认同,一会儿不认同。要拆毁一个人里面天然的体系是很难的。有一次我在带着一个姐妹祷告,她里面属世界的逻辑体系是非常顽固的,在我面前就出现了一个异像,我看到了一个中国的宝塔,八个角,然后一层一层地垒上去。我说:神,这是什么?神说:这是宝塔。人天生的属世界的逻辑体系是非常的顽固,而且非常的坚固,屹立千年不倒。房子没多少年就没了,但是宝塔会屹立千年不倒,因为它的结构是非常的合理,一环套一环,一直建造成一个非常坚固的宝塔。
后来我就对这个属世界的逻辑体系有一个很深的研究和探索,如果人追求这些东西,跟她谈就会发现完全没有办法入手去拆那个宝塔。因为它是一环套一环的,那种结构是非常结实的。所以有时候在家里传福音,你会发现一上去你就会败下阵来,肯定是没法走下去的,因为它的逻辑体系是非常严密的。当我们开始对付自己的时候,那就是在一点一点地拆毁,没有那么容易,但是我们就会觉的这是一件吃亏的事,但是在属灵的世界里,照着属神的逻辑是占便宜的,所以这个逻辑体系不容易拆,因为那东西太严密了。
Q5:老师,伊施波设不是神所喜悦的,对吗?
至于伊施波设是不是神所喜悦的,你可能会觉得:他不该这么死啊。那我问你:人在睡觉的时候,头被人砍了下来,你会认为这是一件好事吗?他没有犯要被砍头的罪,他这个死法真的不太合理。伊施波设是不是神所喜悦的,我们不知道,但是伊施波设脑子里想的那些东西,真的没几样合乎神的话。伊施波设把自己的王位,权利,风光看的还是有点重的,但是自己又没有点本事。至于神喜不喜悦他,咱就不用谈这事了,咱就谈大卫是合神心意的,是神所喜悦的。至于其他人,比如约押、押尼珥,这些人不是《圣经》要告诉我们的主题。我巴不得每个弟兄姐妹在自己的每一天当中都开始起来对付自己的肉体,成为合神心意的百姓。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무엘하》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장의 주제는 《세상에서 피 흘린 자를 멸하시다》입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한 가지가 매우 실제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저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저주 속에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큰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관찰해 보면 어떤 사람은 매우 축복을 받고, 어떤 사람은 매우 불운하게 살아갑니다.
이 일은 《성경》을 통해 보면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주 묘사하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사람은 매우 불운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축복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문제는 세상에서 피를 흘리는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전투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과 흉악한 살해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 살인자의 후손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요압의 집안이 저주를 받은 것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가 아브넬을 살해했기 때문에, 그의 집안에는 유출병 환자, 나병 환자, 지팡이를 짚는 자, 칼에 죽임을 당하는 자, 양식이 결핍한 자가 영원히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속이고 빼앗으며, 암투를 벌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사람을 해쳐 죽인다면 그 결말은 매우 비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장의 본문 전체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는 계시
《사무엘하》 4장은 이스보셋이 자신의 두 군지휘관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 두 지휘관은 자신들이 섬기던 주인이자 왕이었던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 들고, 밤새도록 걸어 다윗 왕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이 일은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일인데, 다윗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 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사무엘하》 4:9-11)
이 두 사람이 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부랴부랴 밤새 달려갔는데, 도착하고 나서는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이 행한 이 일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보셋은 오랫동안 다윗과 싸워왔고, 유다 지파만 다윗 휘하에 있었을 뿐 나머지 지파들은 모두 이스보셋 휘하에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의 논리로 본다면, '내가 그를 죽였으니 앞으로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고, 나에게 벼슬자리라도 하나 내려주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논리 체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자였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전체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을 찾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고, 노아 시대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방금 그렇게 많은 사람을 멸하셨는데, 왜 또 피를 흘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을까요? 노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매우 포악하여 피를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노아 시대에는 총기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누군가 학교에 총을 들고 가 난사하여 많은 아이들이 죽고, 또 누군가 식당에 총을 들고 가 난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포악함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그 시대의 사람들을 모두 멸하셨습니다. 멸하신 후에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피를 흘리는 자의 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으실 것이며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시대 역시 포악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무실에 가면 총을 들지는 않지만 말폭탄으로 설전을 벌이는데, 그것이 매우 치열합니다! 말폭탄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도 이처럼 설전을 벌이며 네가 나를 제재하면 나도 너를 제재하는 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렇게 세상적인 가치 체계에 속해 있습니다.
다윗은 한 가지를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이 아무리 부패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을 알린 사람은 겉보기에는 공을 세운 것 같았지만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 다윗에게 가져왔지만 그들 역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윗을 위해 일해 줄 사람이 남아 있겠습니까? 만약 훗날 어떤 블레셋 사람이 블레셋 왕의 머리를 베어 들고 다윗에게 와서 공을 치하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퍼질 것입니다. "앞으로 아무도 이렇게 하지 마라. 네 주인을 죽여서, 비록 그가 다윗의 원수일지라도 다윗에게 가져가면 너도 죽임을 당한다." 만약 이런 평판이 남는다면 누가 당신을 위해 일하겠습니까? 앞으로 골치 아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치 아파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특히 부하가 자신의 상사를 죽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장비와 항우도 부하에게 배신당해 결국 살해되고, 부하가 머리를 베어 적국으로 가져가 상을 받았던 것과 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합니다. 전술적인 관점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큰 문제가 됩니다.
만약 이러한 죄를 방치한다면, 배후에 악령이 있기 때문에 죄가 그 땅에 범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이 이 두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을 보았다면, 오늘 한 사람 죽이고 내일 또 한 사람 죽였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다윗의 부하들도 그렇게 행했을 것이고, 부하들 사이에도 원수가 생겨 그 밑의 부하들이 자기 상사를 죽이고 그 상사의 원수에게 가서 상을 받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히 타락하게 되고, 아랫사람들은 다 그것을 본떠서 따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이며, 범람하게 되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이렇게 하면 앞으로 아무도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할지라도, 다윗은 "상관없다. 내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나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살해하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살해하는' 식의 술수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오늘날 살인 기술은 매우 발전하여 드론으로도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인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합니다. 드론이 사람의 집 문 앞까지 날아가 안면 인식으로 사람을 죽이면 순식간에 끝나버립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드론에 포착되면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몹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원수 하나를 제거한 것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행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가치관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오랜 역사를 거치며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죽이고 죽여왔습니다. 보기에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지만, 결국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역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참으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이를 단순화하여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아주 간단해집니다. 왜일까요? 다윗의 안에는 한 가지 확고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눌 두 번째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의 보장이시다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사무엘하》 4:9-10)
하나님이야말로 내 생명이시며, 내 생명의 보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희가 나를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짓겠는가? 하나님은 내 생명의 보장이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명을 구하시고 온갖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나의 하나님은 이 세상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바로 다윗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육신적인 논리 체계대로 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왕위를 예로 들면, 이스보셋의 머리가 잘림으로써 영토가 단번에 확장되어 한 지파가 순식간에 열두 지파로 늘어났습니다. 유다 한 지파에서 갑자기 열두 지파가 되었으니 얼마나 위풍당당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이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 내 생명이다!" 그러므로 결코 자신의 왕위를 하나님의 가치 체계 위에 두지 않고, 하나님을 자기 생명의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보장이심을 알지 못하기에,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사업이 하나님보다 중요하고, 여자친구가 하나님보다 중요하며, 가정이 하나님보다 중요하고, 왕위가 하나님보다 중요하며, 직장이 하나님보다 중요하고,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 생명의 보장이 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기만 하면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 휴가 중이야, 몰디브로 휴가 갔어"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 왜 하필 제가 가장 힘들 때 몰디브로 휴가를 가셨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힘들 때 너도 몰디브로 휴가를 가지 않았느냐?"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나 바빠"라고 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나 사업하느라 너 돌볼 시간이 없어"라고 하십니다. "언제 사업하셔도 되는데 왜 하필 지금 사업을 하십니까?"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찾을 때 너도 사업하고 있지 않았느냐!" 아, 알고 보니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한 간호사가 왔습니다. 이곳의 간호사는 중국과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간호사가 한창 바쁠 때 환자가 "대변을 봐야겠어요"라고 하자 간호사가 "왜 하필 제가 바쁠 때 대변을 보려고 하세요?"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것을 참는다고 참아집니까? 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그녀를 불평하고 신고했습니다.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십니까? "하나님! 주님은 저의 생명이십니다! 제게 다른 모든 것은 없을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때로는 행한 일이 온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저는 즉시 하나님께 제가 잘못했다고 아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처음 고난을 겪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첫 번째 고난에서 건져내셨으니,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 즉시 행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 말대로 하면 인생을 어떻게 삽니까?"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참 좋지 않습니까? 우리의 목숨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목숨을 빚진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사람이 평생 동안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심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께 죄를 짓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정말 중요합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지위도 중요하지 않고, 화려함도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풍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결코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미련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일이 많지 않습니까? 입만 열면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뿐입니다. "꼭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야겠어?" 나는 왜 다른 사람의 눈빛 따위를 보지 못했을까요? 이런 것들은 다 옹졸한 여편네 같은 소리입니다! 트집 잡고 시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시라면, 당신은 진정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기뻐하지 않으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만약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그대로 행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가 한 말대로 하는 것조차도 한참 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에 비유하는 겁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제 기준은 낮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우리 형제자매들이 옹졸하게 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말할 때의 그 표정, 그 꼴을 보고 있으면 피곤할 지경입니다! 마음 씀씀이는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 알만 한데,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마음 씀씀이가 땅콩만 하고 머리가 호두 알만 하여 눈에 사소한 일만 가득 차 있으니, 하찮은 일에 꽉 막혀버리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당신이 하는 말 중에 과연 몇 마디나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조정하고, 다윗에게서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가
레갑과 바아나는 머리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밤새 달렸으니 참으로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헤브론까지는 족히 백여 킬로미터나 되었으니 마라톤 코스를 두세 번 뛴 셈입니다! 그들은 머릿속에 승진하여 부자가 될 생각만 가득해서, 자신들이 든 것이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황금 한 통이라고 여겨 달릴수록 힘이 났습니다. 이 형제는 쉬는 것조차 아까워하며 죽기 살기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다윗이 사울을 죽였다고 소식을 전한 자를 죽였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람은 아말렉 사람이고, 우리는 베냐민 지파이자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이니 다윗이 우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논리 체계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선생님도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하시면 똑같이 하실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 얼굴을 보세요, 저는 당신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처럼 하겠습니까? 당신이 살아온 모습을 보세요, 제가 어떻게 당신처럼 살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 선생님은 왜 이런 문제를 겪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저를 이런 문제에 빠뜨리겠습니까? 제 머릿속에는 그래도 생각이 좀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소프트웨어의 버그처럼 오류가 들어있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전기 낭비하지 마, 전기 좀 아껴!"라고 말합니다. 겨울에 난방을 안 틀면 얼마나 춥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집주인입니까? 아닙니다! 결국 추위에 얼어붙고 맙니다. 제가 그렇게 행동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저는 대처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좀 통 크게 "이번 달 전기세는 내가 다 낼게"라고 하면 됩니다. 광둥 사람들을 아십니까? 광둥 사람들은 동북 지방에 가도 쪼리(플립플롭)를 신고 다니는데, 겨울에 영하로 떨어져도 신고 다닙니다. 사람은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람 속의 논리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제가 줄곧 해온 일 중 하나가 바로 사람 안에 있는 굳어진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당신처럼 생각할 것이라 여기며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나처럼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누구라도 내 시어머니를 만나면 이렇게 되지 않겠어?"라고 말합니다. 어떤 형제들은 유산을 두고 다투면서 "누구라도 이런 형제를 만나면 이렇게 안 하겠어?"라고 합니다. 정말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저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도 당신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해석하는 방법은 수천, 수만 가지가 있지만 다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안목과 죄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들은 다 죄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위에 두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되어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복을 받는 일이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분명히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안목이 없어 눈앞에 돈과 명예와 이익만 보이면, 필사적으로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사람이 필사적으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면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어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그 길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파멸에 이르러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얌전해졌고, 마지막에는 제 구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반드시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이전에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가 있었을지라도 반드시 허물어야 하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논리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 가기 시작하면, 당신은 왕과 같은 사명을 가진 자가 되며, 충성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됩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맑게 깨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잘못 행했던 것은 지나간 일로 치더라도, 이제 제가 말씀드렸으니 여전히 멸망을 향해 달려간다면 자업자득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보셋은 왕위로 인해 화를 당했다
이스보셋은 자신과 별 상관도 없는 한 여인 때문에 자신의 군사령관인 아브넬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로 갔고, 다윗의 군사령관 요압은 아브넬을 죽였으니 참으로 난잡하고 어수선한 일들이었습니다. 결국 아브넬이 죽자 왕 노릇을 하던 이스보셋은 손에 맥이 풀렸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체 무엇을 더 바란단 말입니까? 재주도 없고,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왕 노릇을 하려 드니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명철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위는 좋은 것이지만, 당신이 왕이 될 그릇이 아니라면 서둘러 짐을 싸서 다윗에게 가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다윗에게 "저는 이 왕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안락함에 빠져 촉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두(유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 분수를 아는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굳이 왕 노릇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어떤 만 명 규모의 교회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다스리던 그 사람들을 아들이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다스리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아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스보셋은 왕위로 인해 화를 당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지경으로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감회가 듭니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히 여기다가 그 명예와 이익 때문에 화를 당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런단 말입니까? 사람이 좀 더 잘 살려면 하나를 감당할 수 있으면 하나를 하고, 둘을 감당할 수 있으면 둘을 해야지 감당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머리는 아주 맑습니다. 저 역시 손을 너무 멀리 뻗치고 싶지 않으며, 하나를 감당할 수 있으면 하나를 하고 둘을 감당할 수 있으면 둘을 하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도 한 번 하고 설교 한 번 해서 5천 명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5천 명이 무엇 하러 온 사람들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다 망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사역을 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 세워갈 것이며, 하나를 세울 수 있으면 하나를 세우고 둘을 세울 수 있으면 둘을 세우지 헛된 명성을 탐하지 않습니다.
이스보셋은 왕위로 인해 화를 당하여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왕이 되었으면서도 아브넬에게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고작 한 여인 때문에 그를 탓하고 왈가왈부하다가, 결국 아브넬의 마음이 틀어져 다윗에게로 전향하자 이스보셋은 맥이 풀려버렸습니다.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자 이쪽은 난장판이 되었고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마치 많은 청소년들이 공부가 안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보셋의 머리는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혔으니, 왕위와 명리에 의해 화를 당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사람을 참으로 비참하게 해칩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앞다투어 뒤를 따릅니다. 오늘은 회사를 설립하고 내일은 상장하겠다고 하다가, 상장은커녕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온종일 이런 것에만 매달리면서 왕위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입니까.
결론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총명함입니다! 우리가 나눈 이 짧은 단락 안에도 등장인물이 꽤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진정한 총명함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잠언》과 《전도서》를 공부했는데, 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성도들이 다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빚어내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총명함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틈만 나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입만 열면 온통 '만약에'라는 말뿐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만약 제가 저렇게 된다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약 그렇다면 나도 너를 그렇게 대하겠다"라고 하십니다. 온종일 하나님 앞에서 '만약에'만 늘어놓으니, 하나님께서도 '만약에'로 응답하시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저 '만약'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 내게 1억이 있다면 헌금할 텐데"라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어림도 없습니다! 1억이 있어도 헌금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수학을 잘 배우는 것도 하나님을 아는 법을 배우는 것만 못합니다. 입시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당신의 인생에 좋은 운명을 결정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는 평생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그분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법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밤낮으로 생각하며 날마다 소망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