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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22장 - 만민 앞에서 주를 위하여 증인이 되리라!

2023-10-18 54,531 使徒行传 使徒行传二十二章 使徒行传22章 大使命 讲见证 圣灵降临 神的拣选

相关经文

使徒行传22章-保罗叙述归主的经过
  • 1 “诸位父兄请听,我现在对你们分诉。”
  • 2 众人听他说的是希伯来话,就更加安静了。
  • 3 保罗说:“我原是犹太人,生在基利家的大数,长在这城里,在迦玛列门下,按着我们祖宗严紧的律法受教,热心侍奉 神,像你们众人今日一样。
  • 4 我也曾逼迫奉这道的人,直到死地,无论男女都锁拿下监。
  • 5 这是大祭司和众长老都可以给我作见证的。我又领了他们达与弟兄的书信,往大马士革去,要把在那里奉这道的人锁拿,带到耶路撒冷受刑。”
  • 6 “我将到大马士革,正走的时候,约在晌午,忽然从天上发大光,四面照着我。
  • 7 我就仆倒在地,听见有声音对我说:‘扫罗!扫罗!你为什么逼迫我?’
  • 8 我回答说:‘主啊,你是谁?’他说:‘我就是你所逼迫的拿撒勒人耶稣。’
  • 9 与我同行的人看见了那光,却没有听明那位对我说话的声音。
  • 10 我说:‘主啊,我当做什么?’主说:‘起来,进大马士革去,在那里,要将所派你做的一切事告诉你。’
  • 11 我因那光的荣耀不能看见,同行的人就拉着我手进了大马士革。
  • 12 那里有一个人,名叫亚拿尼亚,按着律法是虔诚人,为一切住在那里的犹太人所称赞。
  • 13 他来见我,站在旁边,对我说:‘兄弟扫罗,你可以看见。’我当时往上一看,就看见了他。
  • 14 他又说:‘我们祖宗的 神拣选了你,叫你明白他的旨意,又得见那义者,听他口中所出的声音。
  • 15 因为你要将所看见的,所听见的,对着万人为他作见证。
  • 16 现在你为什么耽延呢?起来,求告他的名受洗,洗去你的罪。’”
  • 17 “后来,我回到耶路撒冷,在殿里祷告的时候,魂游象外,
  • 18 看见主向我说:‘你赶紧地离开耶路撒冷,不可迟延;因你为我作的见证,这里的人必不领受。’
  • 19 我就说:‘主啊,他们知道我从前把信你的人收在监里,又在各会堂里鞭打他们。
  • 20 并且你的见证人司提反被害流血的时候,我也站在旁边欢喜;又看守害死他之人的衣裳。’
  • 21 主向我说:‘你去吧!我要差你远远地往外邦人那里去。’”
  • 22 众人听他说到这句话,就高声说:“这样的人,从世上除掉他吧!他是不当活着的。”
  • 23 众人喧嚷,摔掉衣裳,把尘土向空中扬起来。
  • 24 千夫长就吩咐将保罗带进营楼去,叫人用鞭子拷问他,要知道他们向他这样喧嚷是为什么缘故。
  • 25 刚用皮条捆上,保罗对旁边站着的百夫长说:“人是罗马人,又没有定罪,你们就鞭打他,有这个例吗?”
  • 26 百夫长听见这话,就去见千夫长,告诉他说:“你要做什么?这人是罗马人。”
  • 27 千夫长就来问保罗说:“你告诉我,你是罗马人吗?”保罗说:“是。”
  • 28 千夫长说:“我用许多银子才入了罗马的民籍。”保罗说:“我生来就是。”
  • 29 于是那些要拷问保罗的人就离开他去了。千夫长既知道他是罗马人,又因为捆绑了他,也害怕了。
  • 30 第二天,千夫长为要知道犹太人控告保罗的实情,便解开他,吩咐祭司长和全公会的人都聚集,将保罗带下来,叫他站在他们面前。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도행전》 2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모든 사람 앞에서 주를 위해 증언함’으로 정했습니다. ‘증언(간증)’이라는 단어가 이 장에서 계속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성경》의 어떤 장들은 반복되는 단어가 없어 주제가 가려져 있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1장의 주제인 ‘하나님을 위해 유대인을 얻음’은 해당 본문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이번에 살펴보는 장은 훨씬 간단하게 느껴집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주제를 잡아야 합니다. 주제를 찾으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 수 있으며, 대부분은 그 주제를 중심으로 논술되어 있습니다.

이 장은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간증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간증이란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들에게 너무 깊은 신학적 논리를 말하려 하지 마십시오. 논리는 논리일 뿐이며 별다른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단번에 나았고 의사의 의술이 매우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따라서 간증이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능력을 훈련하기를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이야기가 많으며, 제가 전하는 것은 모두 제가 직접 행했던 일들이지 거창한 신학적 이론이 아닙니다.

한 부유한 사업가가 저에게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부유한 사업가이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이든, 저는 그들에게 신학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철학자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며, 단지 간증하는 사람일 뿐이고 사람들은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이 사업가가 제게 식사를 대접한 이유는 제가 그의 가문에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여동생과 조카딸이 모두 저를 통해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는 조카딸이 가문의 다음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매우 효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제가 하는 이런 일들은 모두 좋은 평판을 얻고 있기에, 저에게 식사를 대접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 응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간증을 전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모두 자신이 행한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설교나 성경공부는 많은 경우 제가 직접 행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실명할 뻔한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등의 질병이 기도 후에 모두 나았습니다. 어제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기도하자 모두 깨끗이 나았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여 나았지만 15분 뒤에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반나절이나 2~3일 뒤에 다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해도 뿌리가 뽑히지 않네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기도하여 나은 뒤 재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병든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달리 저의 이야기는 중복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에 저는 사람들의 문제를 더 많이 해결해주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지금까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 여전히 더 많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하고 고민합니다.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나누자면,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목양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점차 명확하게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주제는 바로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수많은 뇌세포를 소모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뇌세포는 결국 다 쓰이게 마련이며, 이것을 위해 쓰이든 저것을 위해 쓰이든 할 것입니다. 저의 뇌세포는 참 가치 있게 쓰였습니다. 최근 새로운 돌파가 있었고, 저는 많은 일들을 훨씬 더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10년 후에는 분명 뛰어난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만약 세상의 일들을 위한 것이라면 요물이 되겠지만, 하늘의 일들을 위한 것이라면 거룩한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끊임없이 성장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이미 반쯤 신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만,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명(命)’이라는 글자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사명 신학입니다. 사명 신학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며, 단지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대사명

《성경》의 《사도행전》 첫머리에서 전하는 말씀을 어떤 이들은 ‘대사명(지상 대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에도 대사명 교회 출신들이 있습니다. ‘대사명’이라는 단어는 듣기에는 참 좋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싱가포르의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모여 ‘대사명 교회’라는 교회를 세웠으나 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들이 문을 닫기 전, 마침 제가 교회를 개척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였고 사전 조사가 필요하여 그 대사명 교회를 탐방하러 갔습니다.

당시 제가 발견한 그들의 ‘대사명’은 어떻게든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간 사람은 제 동료이자 그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싱가포르가 좁은 땅이라 여겨 미국에 가기를 몹시 원했으나, 10년이 흘러도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싱가포르에 없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집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집값은 계속 치솟았고, 처음에는 10만 싱가포르 달러로 살 수 있었던 집이 나중에 그가 사려고 할 때는 40만 달러로 4배나 올랐습니다. 많은 중국인이 그와 같은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의 아메리칸드림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 트럼프의 시대도 지나며 꿈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이것이 그들의 인생입니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4-8)

이 말씀이 바로 대사명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기록된 대사명은 땅끝까지 이르러 주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간증은 본질에서 다소 변질되어 신학을 논하고 사변적인 논쟁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는 간증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수집한 간증들 중에서도 정말 내놓을 만한 것들만 간증으로 여깁니다.

두통으로 기도받고 나았다는 수준의 간증은 우리 교회에 몇 년 동안 머문 분들은 쓰려고도 하지 않으며, 영적 성장 간증과 같이 차원 높은 간증을 쓰고 싶어 합니다. 두통이나 허리 통증 같은 것들은 수준이 조금 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몇 시간 동안 섬겨주어 병 고침을 받았음에도 아무도 이를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간증해야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했는지를 증언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2장은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변화되었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거의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겸손해 보였지만 뼛속 깊이는 매우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해결하지 못할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수많은 문제에 부딪혔고, 물을 마셔도 체할 정도로 불운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다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을 자주 이야기하며, 바울 역시 곳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했고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전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며, 주를 위해 증언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간증이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험했는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가복음》 7:22)

이 구절에서는 너희가 권능을 받아 주의 증인이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즉,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는 교회, 능력 없는 믿음은 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믿음의 방향이 빗나가 유대교로 빠졌거나, 세례 요한의 물세례에 머무는 종교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물의 세례는 요한의 세례라 불리며 회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시며,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권능을 받는 목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많은 교회가 귀신을 쫓는 데는 무력하면서, 목사를 쫓아내는 데는 일당백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귀신과 싸울 능력은 없으면서 내부 분열에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모습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러한 교회는 예수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귀신의 형상만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직접 교회를 세우는 편이 낫겠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애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제대로 맞지 않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를 위해 증언하기에 적합한 사람입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즉시 수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사람들에게 주로 신학을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귀신을 쫓아낼 수는 있었지만 능력이 제한적이었고 무언가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이후 직장을 잃고 다른 할 일이 없어 전임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임 사역을 시작한 이상, 저는 사역을 올바르게 바로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핵심은 바로 ‘권능을 받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기도하지 않던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로 변했고, 간증이 별로 없던 교회가 간증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자마자 성령 충만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오래 믿어야 충만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주님을 믿는 즉시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명확히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며 대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간증하고,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권능을 얻는 일에 대해 당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저는 겹겹의 장애물을 뚫고 나아갔습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저는 과감한 시도를 했습니다.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실제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본 적이 없어 주님을 믿으면 원래 이런 것인 줄 알았기에 그들은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오래 믿은 사람들에게 방언 기도를 하게 하는 것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성경》에는 방언 기도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해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것이 참 좋은 것이니, 오셔서 저를 따라 성령 충만을 받고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전했습니다. 상대방이 방언 기도를 받아들이자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간증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간증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바르게 잡힌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데, 저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반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저만큼 《성경》을 명확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인터넷에서는 방언 기도를 할 때 이런저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모두 스스로 지어낸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류가 흘러야 한다고 하는데, 전원에 연결하면 당연히 전류가 흐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복잡하게 끌어가기에, 저는 차라리 저를 따라 몇 마디 해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제 이런 말을 듣고 이상한 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간증이 있으나 그들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목회자이거나 교회를 이끄는 리더라면, 대사명에 관한 저의 나눔을 듣고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성경》에는 전류가 흐른다거나, 쓰러져야 한다거나 서 있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방언 기도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평생토록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방언 기도가 옳은지 그른지는 《성경》에 이미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어떻게 성령을 구하는데 악령에 충만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해괴한 논리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겨우 이 작은 일 하나 주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일조차 돌보지 못하신다면 차라리 다른 신을 찾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는 신앙은 이단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성령의 세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시며, 우리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능력을 얻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섯 살 난 아이가 저의 설교를 자주 들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열이 나자 다급해진 아이가 엄마의 대추혈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엄마의 열이 깨끗이 내렸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도 권능을 받는데 무엇이 그리 어렵습니까?” 사람들은 너무나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대사명이란 증인이 되는 것이며, 즉 자신의 이야기, 경험, 보고 듣고 손으로 행한 바를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모두 제가 직접 행했던 일들입니다.

바울의 사명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증언하는 것이었지만, 바울 자신은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들에게도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에게 증언하며, 자신이 보고 듣고 직접 겪은 바를 유대인들에게 전한 것은 그들이 듣고 하나님을 구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22:6-8)

바울에게는 유대인들에게 간증할 수 있는 선결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어떻게 박해했는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빛이 그를 비추자 그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다른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왜 바울은 이런 일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이 있고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함으로 권능을 얻었고, 능력 없는 유대교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 뼛속부터 겉모습까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7-8)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바울이 한 말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간증하며, 형제자매 여러분이 모두 사명을 가진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고도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 체계—세계관, 인생관, 가치관—를 고수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가치관들이 여러분 사명의 기초가 됩니다. 여러분은 진정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진정 무엇을 소중히 여깁니까?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까? 이것이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놀라운 경험과 간증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유대인들에게 들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뜻밖에도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이러한 자는 살려둘 가치가 없다며 죽이려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온 성이 소동하여 천부장까지 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바울이 살려둘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았으며, 이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기에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조차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었으니, 그의 마음속에 동족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야기를 하려거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간증을 이야기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남들은 오프라인 교회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간증이 아니라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집에서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남편이 신고했는지 직장 동료가 신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직장 상사가 찾아오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 것을 자랑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말하려거든 간증을 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공직자이면서 우울증에 걸려 저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는 도울 수 있는 사람을 하나씩 건져내며, 기도해 주면 그들이 깨끗이 낫습니다. 이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신학적 이론이나 무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말고 간증을 전하십시오. 모임이 어떠니 저쩌니 해도 유대인들은 매주 회당에 모였지만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능력도 없으면서 온라인이든 하늘 위에서 모이든 다 부질없는 모임일 뿐입니다. 겉치레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변화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할 수 있습니까? 공직자라면 백성을 위해 성실히 봉사하고, 사업가라면 직원들을 잘 보살피며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십시오. 실질적인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하고 예수님을 증언하겠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며 이는 참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증언하는 것이 진정 여러분의 사명이라면 헛된 겉치레를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학을 논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간증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간증은 실제적인 것이지만 이론뿐인 신학은 사람을 현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역을 엉망으로 하면서 헛된 소리만 늘어놓으니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그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주었지만, 사람을 맞이하기만 하면 서너 시간 동안 끊임없이 신학적 논리만 늘어놓습니다. 제가 비록 중화인 사명 신학을 세웠으나 이론적인 신학만을 말하는 것을 반대하며, 오직 간증 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화인 사명 신학은 간증의 신학이며, 우리가 보고 들은 것과 우리가 행한 바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신학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가르친 사람들은 모두 부모에게 효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아직 저에게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것이며, 이는 여러분을 제대로 변화시키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제가 한 자매를 섬길 때 그녀가 어머니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며 불평하자 저는 “당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효도하던 분들이 다 저의 훈련 때문인 것은 아니겠지만, 이전에는 불효하다가 효도하게 된 분들은 제가 그렇게 이끈 것입니다.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세상적으로 성공시키는 자가 아니라, 불효하던 자를 효도하는 자로 변화시키는 사역자입니다.

누가 이러한 일을 반대하겠습니까? 과거에는 사회의 짐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사회의 유익한 인재가 되고 사람다운 일을 행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중화인 사명 신학은 실질적인 일을 행하는 것이며, 소란을 피우지도 헛소리를 하지도 않고 무의미한 신학 논리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학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 신학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살아내는 신학이며,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바울의 사명입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음은 전적으로 택하심에 달려 있다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22:14-15)

어떤 사람들은 간증할 때 참 흥미로운 태도를 보입니다. 자신이 간증을 전했는데 상대방이 믿지 않으면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아합니다. 사실 상대방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전파하고, 들은 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반응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처럼 여러분을 없애려 하고 살려둘 가치가 없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증언하는 것이며, 택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증언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택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지 아십니까? 바로 찾는 자를 택하십니다. 우리가 전하는 간증은 수없이 많습니다. 병 고침을 받거나, 사람이 끊임없이 성장하거나, 저주가 끊어지고 불운한 자가 복된 자로 변화된 이야기들입니다. 간증을 전했을 때 듣는 사람이 당장 그 자리에서 듣고 내일 바로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일은 매우 흔합니다. 저의 수많은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저에게 ‘기독교’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며, 오히려 제가 그런 거대한 칭호를 받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수많은 간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쳐가고 있을 때, 주변 사람이 저의 간증을 듣고 그를 섬겨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저의 간증을 듣고 제가 도울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수년 뒤에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병원에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섬겨준 후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도덕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며, 병이 나은 후에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크게 개의치 않고 오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는 것만을 기뻐합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떤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완전한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대만, 필리핀,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를 의미하며, 다른 이념 체계들도 존재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진리를 구하여 영적 세계가 얼마나 실재하는지 깨닫고,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간이 겪는 온갖 문제는 오직 예수님을 의지할 때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맹목적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일을 하면서도 명확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런정페이가 《모택동 선집》을 잘 읽고 기업을 훌륭하게 이끌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어떤 것들은 참으로 실천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절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광명일보》에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라는 글이 발표되었습니다.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고 실사구시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마땅히 지녀야 할 과학적 태도입니다.

우리가 직접 행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때 상대방이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믿고 안 믿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으며,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서 아래를 굽어살피시며 구하는 자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하여 찾았다면 훗날 반드시 증명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권능입니다.

제가 섬겼던 한 교사는 중증 우울증에 걸려 당시에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으나,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의 부모님이 저를 찾아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기회를 포착하여 많은 간증과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의 부모님은 제게 깊이 감사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아이 안의 우울증 귀신을 쫓아내 주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망가졌을 것입니다. 당시 발작할 때면 울부짖던 그 청년은 치유를 경험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울증에서 치유받고도 열렬한 성도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고도 다시 세상을 사랑하러 돌아가며 하나님을 전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되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다!” 하여. (《사도행전》 22:17-22)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간증을 듣고 나서 그를 세상에 살려둘 가치가 없다고 외쳤습니다. 저는 도무지 그들의 내면에 어떤 논리가 자리 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전한 말이 유대인들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이념 체계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아도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러한 일도 우연에 불과했습니다. 저 역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하면 원래 죽지 않았던 것이라고 우겨 저를 기막히게 만듭니다. 다리를 절던 사람이 기도받고 나았다고 하면 원래 다리를 덜 절었던 것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중에 자신의 다리가 절게 되었을 때 저를 찾아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다리 상태가 어떠했는지는 당사자 외에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므로, 제가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속임수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택하십니다. 이 지혜로운 자란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입니다. 맹인이 보게 되는 현상을 보고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라고 반응하며,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능력의 근원이심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능력을 살아내는 매우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사람은 완고해서는 안 되며, 완고함은 곧 어리석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2-3)

사람은 돌이켜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되어야 하며, 모르는 것을 만나면 배워야 합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이 먹은 밥보다 먹은 소금이 더 많다고 자랑하지만, 소금을 많이 먹는다고 머리가 좋아지겠습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존의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매우 진지한 태도로 탐구해야 합니다. 도대체 사람이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저는 여러분에게 저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참으로 훌륭하며 일생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며칠 전 옛 동창들을 만났을 때 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지금 은퇴 후의 생활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저는 먼저 듣게 하고 그 후에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찾을 줄 아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찾고 난 후에야 이것이 보배임을 알게 되고 인생의 후반전이 든든해집니다. 인생의 후반전이 전반전보다 반드시 화려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어쩌면 매우 위태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치매와 같은 질환은 점점 연령대가 낮아져 60대가 되어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중년에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택하심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찾는 자를 택하십니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우리가 원래 당연하게 여겼던 고정관념들은 다 버려도 좋습니다. 그것들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임하는 권능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능력 있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증언함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증언했으며, 그가 행한 일들은 모두 분명하고 확실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간증이 황제에게까지 전해져, 거대한 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바쁜 일정 중에도 특별히 바울을 불러 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유대의 분봉왕 헤롯과 그 지역의 총독도 들었습니다. 바울은 만인 앞에서 주를 위해 증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간증했으니,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사리에 밝은 자든 어두운 자든, 지혜로운 자든 어리석은 자든 모두 바울이 전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소리치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사도행전》 22:24-30)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 로마 시민권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는 로마 시민을 때릴 수 없었으며, 이를 어기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천부장은 높은 급여를 받는 자였으나 그의 로마 시민권은 돈을 주고 산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의 로마 시민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었으니, 천부장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위해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증언함

당시 대제사장들도 바울을 알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층과도 바울의 관계는 꽤 좋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양전닝의 박사 과정 제자가 된 것처럼 대단한 것이며, 우리 시절로 치면 매우 유명한 교수나 북경대, 칭화대 총장과 같은 뛰어난 스승 밑에서 배운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 밑에서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인맥이 형성됩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바울과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모두 동문이었고, 같은 스승 밑에서 율법을 엄격하게 배웠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인이었기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이자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유대교 안에서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이전에 예수님을 박해한 적도 있었으니, 유대인들에게 주를 증언하기에 얼마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겠습니까?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증언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의 모습으로 증언하며,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의 모습으로, 사업가에게는 사업가의 모습으로 증언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든 그에 맞추어 증언했으니, 그 목적은 오직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 역시 지금 이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8개월 연속으로 매주 일정을 빽빽하게 채워가며 헌신했습니다. 매주 영어 성경공부 2회, 영어 설교 1회, 그리고 중국어 성경공부 2회, 중국어 설교 1회를 진행하느라 몹시 지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연구를 통해 우리의 지식이 아직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장차 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명 신학의 영역에서 더욱 깊은 돌파를 지속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현재로서는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중국인들의 목양 신학 체계는 한의학의 《황제내경》에 비해서도 아직 턱없이 부족하며 다소 거친 상태입니다. 저는 장차 바울이 다 이루지 못한 사역을 우리가 이어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온전한 이론 체계를 점차 완성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오랫동안 살아 사역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라틴어와 헬라어에도 능통했기에 유대인들에게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느꼈고, 이를 위해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할 것을 몰랐겠습니까? 당연히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그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듯이, 그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하겠다는 굳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실지 아닐지는 그가 염려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직 그것만이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제가 전하는 말씀과 설교가 알쏭달쏭한 철학이 아닌 이유를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매우 직설적으로 전합니다. 주를 위해 증언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태어난 보람입니다. 이 세상에 어렵게 태어난 이상, 우리는 더욱 멋지게 걷고 더욱 빛나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가 우리 삶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 증언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저와 동일한 비전을 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붙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증언하는 참된 증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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