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体贴肉体和过小日子都讲了追求物质和肉体的需求,而忽视与神的关系,那他们两个的区别在哪里呢?一个是在于肉体,另外一个是在于世上的生活?
人为什么会过小日子?因为体贴肉体;为什么体贴肉体?因为过小日子。两个没什么本质性的差别,不用在这个地方纠缠。只有一个解释,就是爱神!我巴不得大家都抓住一个重点,神的话是怎么说的,我们就怎么行!就这么简单,把事整对了。把事整错了,至于他是爱过小日子,还是追求物质,那是千变万化,各种各样的表现形态,我们数都数不完。但是把事做对了就只有一样。
Q2:老师,最近我有点矛盾,如何面对社会上的问题呢?是不闻不问,专心建造神荣耀的教会,把福音传给神所拣选的儿女呢?还是一边建立教会,一边在社会上生活,在自己的工作岗位上荣耀神,然后帮助别人成为社会的栋梁呢?
这个问题本身好像有点问题,也能给我一点矛盾,不但你自己矛盾,也把我带到你的矛盾里了。这个问题本身就是混乱。为啥呢?我就问你一句话:什么叫做建立荣耀的教会?专心建造荣耀的教会是什么意思?你给我解释的话,你也解释不清。那为什么要建立神荣耀的教会呢?
如果说不清楚的话,其它的怎么说也会兜在圈子里。至于什么在社会上荣耀神不荣耀神,帮助人成为他们的祝福这一大堆的东西,听这些词就知道人里面得多有混乱!这是矛盾对立的关系?如果你行神的话,那该怎么行呢?神的话到底是怎么说的?
你应该是把很多的概念都给对立了起来,不需要对立的你非要给对立起来。你可以做一个好公民,但是你的目的根本就不是建立神荣耀的教会。建立荣耀的教会肯定可以成为一个好公民,你也不害人,你也不骗人,你也不爱世界,你觉得占人家便宜就好像占了点冥纸,你想能是个烂人吗?应该不是!现在还矛盾吗?如果你还矛盾的话,那你就从头开始学吧。
Q3:老师,我听了你的讲道,内心很感慨!我也明白了人活着就是该好好地爱神!我曾经心里很火热,也有实际行动,可是不知不觉中又回到了爱世界。
你的这个问题特别好,以色列人也是不知不觉的就回到爱世界。我就在想:一个人能不能把人活着的目标立好!比如说,这就是我的目标,我就朝着这个目标奔跑!人不能没有目标,要不然活着活着就乱了套了,一遇到事就乱了阵脚。因为遇到的事跟我们树立的目标有矛盾!遇到的事都是真金白银的事,如果遇到的事都是冥纸的事,那不就没问题了吗?所以明白归明白,但是如果目标是从神那里得好处,那很难爱神,那只是一种利益的关系!
我得告诉大家,有些东西是神的拣选,我们也不知道怎么来解释这件事。有的人也不知道怎么就心里火热爱神;有的人好像就是一会儿有,一会儿没有。其实就是目标性的东西,就是这事不能动,那个事是我的核心利益。
有的人就不理解这事。比如说,我很少看见人把他的账号里的钱乱打给人,控制的可好了,不管我怎么说,那是不能乱打。那为啥会控制的这么好呢?因为心里头把这事当成是一件很重要的事,这个时候脑子就很清醒,都是真金白银。那要是把神当成真金白银的话,就会雷打不动。就是人不知道神是真金白银,比真金还真金,比白银还白银。
Q4:老师,这一章的第四节提到:我必不怜悯她的儿女,因为他们是从淫乱而生的。这段经文里指的是以色列人吗?
不是。教会可以生出淫乱的儿女,以色列人也可以生出淫乱的儿女,什么人都可以生出淫乱的儿女。淫乱的妈妈可以生出淫乱的儿女,这都很正常。
Q5:老师,神在世上的夫妻关系的旨意是什么?如果世上的夫妻关系经营不好,与神的关系是不是也不行呢?
那可不一定。这事我可以给你讲诸多的例子,摩西跟他老婆关系不好,但是摩西成了有史以来最伟大的先知!因为神怎么说,他就怎么做。为啥摩西的老婆叫西坡拉?西坡拉说:摩西,你真的是我的血郎!意思就是你是我的冤家!世界上的夫妻关系跟神的关系一丁点关系都没有。
如果你说有关系,我也不知道是谁说的,反正我是不知道。我看到的是你的仇敌就是你的家人。那你的仇敌就是你的家人,那你该如何经营?我见过一个牧师发誓要走华人命定神学的路,结果他老婆一瞪眼睛就算了。那你问我世上的夫妻关系是啥?我也不知道干啥,我知道的就是个冤家。有的跟世上的夫妻关系不行,但跟神的关系非常好,这事还是很神奇的。有一个牧师曾经跟我说:牧师,有件事我很困惑。我说:那你问吧。他说:神所重用的人,常常看到夫妻关系是很糟的。
后来我也研究这个事,为什么会这样呢?因为如果你成了一个很有命定的人,你要与一辈子侍奉神的人在一起过夫妻生活,你除了有命定也没有别的选择。如果那个人没有命定,只想着经营过小日子,说关系能好吗?目标都不一样,一个要往东,一个要往西,那你就看谁来决定吧。我告诉你一个人决定去爱神,你愿不愿意为神付代价?如果你不愿意为神付代价,那你就为夫妻关系付代价。如果你愿意为神付代价,那什么关系都不重要了。
Q6:老师,我以前是不混乱的,但是我最近听了约瑟没开仓放粮,还有题到不义的钱财,我就有点迷惑了。
既然都是不义的钱财,那你还迷惑啥呢?不需要迷惑。
Q7:老师,我就是老师所说的那种不把神当丈夫,把神当成药,当成饭。我现在知道了,这是我灵里面不兴盛的根源。我现在该如何一步一步地走出这种光景,把神真的当成是我的丈夫呢?
这事很有意思,如何?没有如何!这是不是你的核心利益?如果是,那就是。如果不是,一步一步也走不到哪儿去。这是一个选择,这个选择是基于啥?基于我们里面的一个假设。咱们当中有没有学数学的?中学的数学有一些叫做公理,有一些叫做定理。大家知道什么叫做公理吗?公理不是论证的,公理只是一个假设,是一个前提。那一个人活着的前提是一个假设,那我们活着得有钱啊,那是一个假设,然后在这个根基上你就不断地建造,那就是属世界的逻辑体系。
咱们的公理是啥?就是一个宣告,是一个选择。我认为是这样!那我认为人活着是靠神口里所出的一切话,那我就这么活着!你认为不好,那你看着就不好,反正我看着还挺好的,为啥?咱们里面的公理得建起来,什么东西是我们活着的前提,我们就为此而活,就这么简单的事。
我认为活着没有意思,这是我的认为,这也是我的公理。你认为活着很有意义,那是你的公理。我认为人活着没有永生,那人一辈子就是瞎整。你认为没有永生也正常,活得有滋有味的。所以说先把这个公理定好,从此以后好多东西就解决了,别一步一步的,一步一步也没有用,因为根基若毁坏什么也没有用,两步两步也没用,三步也没用!
Q8:老师,基督徒信了耶稣,有病去医院,算淫乱吗?
应该不算,你就好好地去医院。如果我说算淫乱的话就把大家吓坏了。该去就去呗!肉体是无益的,让人活着的乃是灵。
Q9:老师:如果基督徒从爱世界里出来,专心爱神的话,就会受很重的刑罚呢?怎样辨别自己是否专心爱神?
那是人爱世界被神刑罚!落在神的手里,就不是被神所得着的。我相信你困惑的是被神得着和落在神的手里,那落在神的手里就成了神的敌人。
Q10:老师,这一章说我们与神的关系是爱的关系,之前的这个主题又说不要做一个又懒又恶的仆人,那我们跟神到底是主人和仆人的关系还是爱的关系?
这个问题特别好,我们跟神之间的关系,刚开始的时候是主人和仆人的关系。但是我们不能停留在这个阶段,后来就开始进到好朋友的关系,那进到好朋友的关系再往前走,就进到这个爱的关系,就是神的儿女。所以说这不是一个矛盾,而是一个阶段。
Q11:老师,怎样处理好夫妻之间的关系呢?
很简单!就是什么东西都可以谈,服侍神不能谈;什么东西我都可以放下,但是神我不放下。你是不是想问我这个?如果你要是想问我这个,那我就告诉你,因为我对世上的东西没有什么指望,也没有什么盼望,我得感谢神!神彻底地击碎了我里面属世界的梦想。
我也不怕告诉你,我处理得非常好。为什么处理得非常好?我把神放在首位能处理的不好吗?我得告诉你,在这件事上我研究《圣经》研究得比较深,有很多这些长者,也是比较厉害的牧师常常劝我妥协,那能妥协吗?因为我读到《圣经》里头有这么一段话,摩西本来想给他两个儿子做割礼,结果《圣经》里头写得很隐晦,就是不能做,因为摩西的老婆反对。那这是我说的。那后来神就要杀摩西,你能理解吗?神说:我让你听老婆的话,再听我就杀了你!
神对亚当怎么说的?既然你听从了你妻子的话就要受咒诅!后来我读完了就跟那些很知名的牧师去探讨,他们也没给我什么答案,因为他们解读不了。那我能解读,人若不顺从神,为了夫妻关系妥协跟神的关系,不受咒诅才怪,那是会死人的!
Q12:老师,我怎么没有找到《耶利米书》的查经呢?
这不是还没查到吗?以后一定会查到《耶利米书》和《以西结书》的。
하나님의 계획
호세아서 2장을 나누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중국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언급했는데, 이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장차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일에 있어 많은 교회가 세상의 인간관계나 부부 관계를 더 중시하다가, 결국 교회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부부 사이에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길게 이야기했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 부부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서》 5:32)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러분과 아내, 혹은 여러분과 남편 사이의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누가 누구를 배신했느냐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에 외도와 배신의 문제가 있다면, 부부가 아닌 관계에는 배신의 문제가 없겠습니까? 음란이라는 이 두 글자는 영적인 음란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세기》 2:23)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이 그들이 금슬 좋은 부부로 살기를 바라셔서였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부 관계를 망쳐버렸고, 결국 두 사람은 지내다 보니 원수 같은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보니 어떤 노부부들은 평생을 함께 살다가 팔구십 세가 되면 이 원수 관계도 거의 끝이 다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도 다른 한 사람이 콧물 눈물 쏟으며 우는 모습을 보기 드물고, 다들 차라리 잘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부부가 결국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혹은 뼈 속의 가시, 살 속의 가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장차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시대에는 이 일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만약 여러분이 당시에 《호세아서》를 제대로 깨달았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셨을 때, 여러분은 호세아가 전한 것이 바로 교회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제 갈 길로 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계획 안에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해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는지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고난은 사람이 겪을 만한 고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해야 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수년 동안 지켜보면서도 결국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행사를 깨닫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비참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저는 권면합니다. “예수님 믿지 마세요!” 그러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말합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차라리 제대로 사랑하고, 우상을 하나 만들어 절이나 하십시오. 우상은 당신의 말이라도 들어줄 테니까요. 우리 하나님 같지 않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징계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사랑하려 한다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면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미지근하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 차갑고 뜨거우며, 열정이 넘치십니까? 그런 식이면 다 죽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재앙은 세상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하는 음란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예비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장차 사람들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초로 삼아야 이 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호세아》 2:1)
이 구절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읽어낼 수 없습니다. 왜 읽어낼 수 없는지 아십니까?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호세아》 2:2)
교회는 이스라엘로부터 나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스라엘로부터 나왔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인이셨고, 최초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으며, 그 후에야 이방인의 교회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교회의 어머니이며, 교회가 이스라엘에서 나왔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에서 나왔다는 이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읽지 않았다면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4절과 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따르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호세아》 2:4-5)
이 얼마나 엉망진창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호세아서를 바라볼 때 비로소 혼란스럽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라
여러분은 사랑의 관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도, 뜨거운 마음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여러분과 하나님은 그저 주종의 관계, 즉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주인일 뿐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의 연결입니다. 그래서 화인 명정 사역에서는 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개념들은 모두 성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화인 명정 신학이 말하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의 감정이며, 하나님과 감정적으로 연결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이 나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께 헌금 좀 드리고, 하나님이 나를 먹여 살리게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오리 한 마리 바치고 하나님이 내 일을 좀 봐주시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무슨 관계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을 대하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재정의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사랑의 관계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도구로 여겼을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을 도구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머리가 아프면 목회자에게 머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고, 엉덩이가 아프면 엉덩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며,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사랑해 보셨습니까? 언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보셨습니까?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사랑에 뿌리박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 것이고, 저는 여러분 모두를 구덩이로 빠뜨렸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만약 세상을 사랑한다면 제발 여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음란이며, 세상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해 세상을 사랑하려 한다면 어찌 고난을 겪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왜일까요? 이 장에서 묘사된 모든 관계가 부부 관계이기 때문이며, 오직 부부 관계만이 참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부부 관계, 온전한 연합,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시며,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갈수록 세상 풍조를 따르며 수많은 세상적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세아》 2: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호세아》 2:16-17)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 은총과 긍휼로 우리를 자신에게로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 네가 나를 ‘이시’(내 남편)라 부르고 다시는 ‘바알’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이 불리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여러분은 분명 미지근한 사람일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만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더러 도대체 어떻게 더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내가 당신더러 뭘 어쩌라고 했습니까?” 그러자 그는 또 말합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성경공부에도 다 참석했고 화요일 기도회도 따라 했는데, 도대체 저더러 어떻게 더 하라는 건가요?” 그래서 제가 묻습니다. “주일은요?” 그는 “주일에도 갑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연인들이 열렬히 사랑할 때 “빨리 좀 나와! 내가 밑에서 겨울바람 맞으며 한 시간이나 기다렸잖아!” 하며 짜증 섞인 말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인내심이 대단합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집니다! 그때는 “선생님! 저더러 어떻게 더 하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는 네게 무언가를 더 바라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이러한 관계에 이르면 그것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 부부의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장차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세우면서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뼈 속 가시가 되지 않도록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큰일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내다 보니 하나님의 뼈 속 가시나 살 속 가시가 되지 말아야지.’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처음에 교회에 와서 병 고침을 받았고, 이후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약이 되었으며, 배고플 때 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약과 밥처럼 여겼지만,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이 약은 독약이 되고 이 밥은 골칫거리가 되어 삼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가 되라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누가복음》 8:4-7)
주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 후 더러는 돌짝밭에 떨어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돌 틈에 떨어지면 밟혀 죽고,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면 기운이 막혀 죽습니다. 왜 짓밟혀 죽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일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일에 얽매이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길가에 버려져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호세아》 2:16-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심으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 2:21-23)
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심으신다고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분의 씨앗을 뿌려 여러분의 마음에 떨어뜨리실 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게 뭐야? 밥이 돼, 약이 돼? 돈으로 쓸 수 있어?”라며 안 된다고 여기고 씨앗을 버려버립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8-9)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십니다. 그 사람 내면에서 하나님께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가 되어 결국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씨앗,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마음에 뿌리시면 사람은 살아가는 이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종종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목사님! 저도 목사님과 똑같습니다.” 제가 “어디가 똑같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저는 어릴 때부터 사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좋네요! 그럼 지금은 흥미가 생겼습니까?”라고 물으면 “지금은 흥미가 생겼습니다”라고 합니다. 속으로 ‘큰일 났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어릴 때부터 흥미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니요.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달관한 척하지만, 진짜 실전에 부딪히면 전혀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사람은 반드시 영생을 추구해야 합니다. 영생에 대한 추구가 없고 씨앗을 이해하지도 갈망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의 씨앗은 마음에 뿌려질 수 없습니다. 영생을 사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기업을 일구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 생각만 가득 차서 자신의 모든 사랑을 그런 일에 쏟아붓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숭이만도 못합니다. 원숭이조차 영생의 소망을 품는데, 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없으니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도 영생을 찾아 나섭니다. 저는 《서유기》를 쓴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유기》 전체의 상당 부분이 손오공이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고 결국 수보리 조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며, 나중에는 손오공이 대요천궁을 벌이고 서왕모의 반도원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반도 복숭아를 먹으려 합니다. 참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사람은 도리어 영생의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씨앗이 뿌려져 원숭이의 마음에도 영생을 추구하는 마음이 들어가는데, 정작 사람에게는 이런 추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가 되기 위해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안에 온통 세상을 사랑하는 것뿐이라면, 장래 여러분의 운명을 점쳐보건대 결코 이스라엘 백성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하며,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가 됩니다. 여러분 안에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사소한 일들을 너무나 중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때로 저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며, 하나님조차 탄식하시며 세상을 사랑하는 자를 구원하실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세아》 2:13-14)
여러분, 사랑하다가 결국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렇게 사랑하다가는 온갖 병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해 주셨더니 또다시 세상을 사랑하러 갑니다. 전에 요실금이 있던 것이 나았더니 다시 세상을 사랑하러 가는데, 다시 요실금이 걸릴 때까지 세상을 사랑하시겠습니까? 변실금이 치유되었는데도 계속 세상을 사랑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계속 세상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운명이 기구한 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은혜를 경험해야 이 광야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생의 모든 소망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먼저 광야에서 훈련시키며 그들 안에 있던 세상적인 소망과 꿈을 무너뜨리신 후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부르고 등 따습게 되자 다시 세상을 사랑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음란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글을 쓴 것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똥을 먹고 자신의 오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결말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사람은 영생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알아 영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죽은 후에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교훈을 얻으라
우리는 사무엘서, 열왕기, 그리고 선지서 등 수많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사랑하면 그 결말은 언제나 매우 비참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을 사랑하는 이론과 신앙을 찾아 떠나십시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면 결말이 매우 비참합니다. 사실 때로는 여러분을 볼 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저 자신과 여러분 모두를 위해 가슴을 졸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성경의 저주는 누구를 향해 쓰인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까?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이 좋은 생각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 70대 어르신 한 분이 “앞으로 내 노후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온종일 이런 일만 생각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노후 준비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교훈을 얻으려면 사람의 생각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깊이 생각했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왕이 되자 ‘내가 나라의 경제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살렸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런 방식은 온전히 사람의 정치경제학이었으며, 세상의 논리를 따라 열정적으로 추진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심으신 자라면,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할 때 그 결말은 비극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경고하건대, 비극적인 결말이 닥쳐오면 그것은 되돌릴 힘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음란을 깨달으라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열왕기상》 12:28-29)
지난 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음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귀에는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로보암이 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신 안의 논리 체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사람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면, 여러분은 음란한 백성이며 하나님께 불충하고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후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없다면 그분이 어찌 하나님이시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스스로 수고하고 싸워서 얻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피땀 흘려 번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저리 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그분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는 집값이 가장 높을 때 좋은 기회를 잡아 집을 팔고 그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형제자매는 집값이 최고점일 때 집을 팔고도 돈을 전부 쥐고 있었는데, 자신이 수고해서 얻은 것이니 바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머리가 똑똑하게 돌아가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쥐고 있다가 저주가 발효되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야 이것이 수지에 맞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두 손과 칼을 의지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에서와 같으며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깊이 생각하며 무엇이 음란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음란이란 바로 자신의 두 손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두 손을 의지한다 한들, 언제 감기에 걸릴지, 코로나에 걸릴지, 질병이나 재앙이 닥칠지 막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의지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루 세끼 먹고 자는 것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들이 여러분 운명의 방향을 결정짓지는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리저리 애쓰며 자신의 두 손으로 일구려 했지만, 사실 에서와 마찬가지로 참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은 속히 회개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겉보기에 매우 그럴듯하다고 해서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 것은 육에 속한 체계이며, 칼을 의지해 살아가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눈에는 음녀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또한 음녀와 같다면 차라리 주님을 믿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세아》 2:6-7)
어떤 사람이 항저우로 가서 부자에게 시집가려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이용하는 관계입니다. 사람이 돈을 사랑하면 길가의 개도 알아챕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모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란이 무엇인지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때, 하나님은 사실 이 일을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 육적인 음란과 하나님을 향한 영적 음란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음란을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오직 세상만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이 말씀은 구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신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은혜의 시대라 할지라도 결코 음란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깨달아야 하며, 하나님을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약이 아니며, 밥도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을 그저 밥줄로 여긴다면 큰일입니다. 사람이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