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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기적 시리즈】 03: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리라!

2025-01-19 4,891 神迹系列 手能拿蛇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며”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설교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지난 한 주간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왜 스스로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잡았을까? 나도 뱀을 잡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그러나 이것은 《표적 시리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때로는 제가 혼자 손으로 시늉을 하고 있으니, 동역자가 와서 “목사님, 뭘 그렇게 시늉하고 계세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손으로 뱀을 잡는 시늉을 하고 있었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관련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았지만, 딱히 명쾌하게 풀어낸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뉴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은사주의파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고, 이런 일들은 다 해보았는데, 뱀을 잡는 일은 아직 안 해봤다”며 뱀을 한 마리 가져왔다가 결국 그 뱀에 물려 죽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저는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뱀을 잡으려면 독이 없는 뱀을 잡든지 하지, 독사를 잡았다가 결국 물려 죽다니요. 이런 뉴스가 실제로 있었으니 여러분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행동 방식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것이라 했는데, 정작 뱀을 잡다가 물려 죽었으니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 제목을 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 예수님, 왜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잡다가 물려 죽었는데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이 의문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나눔은 한 편의 신학 논문처럼,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신학을 체계적으로 논술하고, 그것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는 ‘예수를 본받는다’는 매우 기본적인 원칙이 있으며, 이는 참으로 좋은 원칙입니다. 며칠 동안 묵상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뱀을 다루는 피리 부는 사람처럼 작은 나팔을 불며 뱀이 그 소리에 맞춰 춤추게 하신 적도 없고, 손에 뱀을 쥐고 다니신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은 악단을 이끌고 다니지도 않으셨고, 드럼 연주자나 기타 연주자, 찬양 인도자를 데리고 다니지도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도대체 뱀을 잡으셨습니까, 안 잡으셨습니까? 잡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도 뱀을 잡지 않으셨는데 나더러 잡으라니, 나를 속이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뱀을 잡으셨습니다! 바로 그 뱀을 완전히 제압하시고 쥐락펴락하셨던 것입니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뱀에게 제압당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일생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일생은 오늘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을 잡지 못하고 뱀에게 붙잡혔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동물이며, 가장 간교한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고는 싸움을 끝내버렸습니다.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 마귀, 곧 옛 뱀은 싸우지 않고도 남을 굴복시키는 법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만약 《손자병법》 같은 책을 쓴다면, 그것은 《마귀병법》이라 불릴 것이며, 온갖 간계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이 뱀을 이기고 뱀을 붙잡으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총명이 필요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는 이 두 가지는 비교적 초급 단계에 속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해서 안주하지 마십시오. 제가 약간 찬물을 끼얹자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화인 사명 신학을 전수받았다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필사적으로 기도하면서 자신들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무리가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 곧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것은 절대로 진짜 뱀을 가져오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손으로 뱀을 잡는다는 것은 ‘손으로 마귀를 제압한다’는 뜻이며, 이렇게 이해해야 풀립니다. 새 방언을 말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단순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큰 지혜나 총명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며,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고, 총명 안에서 충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만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기도해 줄 수는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병이 나았다면 속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과거에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이제부터 바로잡아야 하며, 총명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하나님의 진리를 충만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까요? 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뱀을 제압하셨을까요? 제가 성경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1-4)

이것이 어떠한 대화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빵으로, 음식으로 만들어 보라.” “왜? 내가 못 바꿀 줄 아느냐?” 만약 저 정도의 지능이었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이 돌을 음식으로 바꾸는 게 어렵겠어? 식은 죽 먹기지.’ 하고는 ‘탁’ 하고 돌을 빵으로 만들어 한 조각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의 간계가 과연 무엇인지, 잠시 후에 자세히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 대결에서 한 판 만에 마귀가 제압당했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5-7)

이 두 마디 말씀으로 두 번째 판이 지나갔고, 뱀은 또다시 제압당했습니다. 뱀을 붙잡으셨습니까, 안 붙잡으셨습니까? 붙잡으셨습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신 것입니다. 어떻게 잡으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고수의 수(手)입니다! 고수들의 대결은 늘 이와 같습니다. 손을 한 번 맞대고 몇 마디 대화만 나누어 보아도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8-11)

이 수가 이해되십니까? 얼핏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이 수는 참으로 강력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뱀을 제압하셨습니다. 시장에 가서 진짜 뱀을 사 오지 마십시오. 제 동생은 저보다 뱀을 훨씬 잘 잡습니다. 예전에 뱀고기 식당을 운영해서 뱀 가죽도 잘 벗기고 저보다 훨씬 잘 다루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뱀을 잡을 수 있었고, 껍질을 벗겨 훌륭한 뱀 요리를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뱀을 완전히 제압하신 이 세 마디 말씀은 너무나 강력하므로 우리의 마음판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후에 마귀는 예수님을 어디로 끌고 갔습니까? 마귀는 자신의 자녀들, 곧 바리새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두고, 예수님이 뱀을 제압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뱀이 예수님을 제압한 것입니까? 우리는 또다시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또다시 예수님께 제압당했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마귀를 발아래 완전히 짓밟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그 권세를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을 어떻게 제압합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역자가 자신이 양육하는 자매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귀신이 퍼뜨린 거짓말에 사로잡혀 도리어 귀신에게 제압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보기에 이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압당한 경우가 있고, 때로는 진 것 같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뱀을 완전히 제압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성경에서 뱀을 잡는 사건을 찾아보니 모세가 뱀을 잡은 기록이 유일했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참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어 내 백성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실랑이 끝에 결국 모세가 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핑계를 대며 “그들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갑자기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뱀을 잡으라”고 하셨고,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모세는 뱀을 잡았습니까, 안 잡았습니까? 잡았습니다. 그의 지팡이는 곧 뱀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제가 모세였다면 ‘아이고, 이 지팡이는 보통 물건이 아니구나. 집에 가져가면 쇠창살 케이지를 구해서 가둬 놓아야겠다. 밤에 뱀으로 변해서 나를 물면 큰일 나지 않겠는가?’라며 집에 가자마자 쇠창살 케이지를 만드느라 분주했을 것이고, 어디를 가든 쇠창살 케이지를 들고 다니며 손에 지팡이를 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놀랍게도 그 지팡이를 믿었고, 잡을 수 있으며, 그 뱀이 자기를 물지 않을 것임을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냈습니다. 게다가 그 지팡이는 바로의 요술사들이 만든 뱀들을 다 삼켜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 지팡이가 사자로 변하지 않았을까요? 왜 호랑이나 독수리로 변하지 않았을까요? 독수리의 형상은 얼마나 긍정적입니까? 황소로 변했다면 얼마나 듬직합니까? 왜 하필 뱀으로 변했을까요? 뱀이 가장 간교하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가 손으로 제압할 수 있었던 그 뱀은 동물 중에서 가장 간교한 놈을 제압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총명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총명 안에서 하나님을 충만히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즉, 영적인 진리의 거룩한 산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야 비로소 뱀과,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다 보면 “와, 용의 영이 나타났다! 이게 사탄이구나. 드디어 오늘 사탄과 한판 붙었구나!” 하며 몹시 흥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귀신이 자기는 사실 ‘지렁이 용’이라고 하더군요. 지렁이 한 마리를 짓밟은 셈입니다. 또 어떤 녀석은 자기가 작은 도마뱀일 뿐이며, 말단 졸개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때로 우리 안에 교만함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의 그 흥분 자체는 좋았습니다. “와, 우리가 용을 때려잡았어!”

과정마다 흥분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흥분하고, 새 방언을 말하며 흥분하는 형제자매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도마뱀이든 카멜레온이든 다 ‘용’에 속하지만, 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뱀을 제압할 총명이 있습니까? 뱀을 제압할 지혜가 있습니까? 뱀을 대적할 지혜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뱀이 시험할 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까?

뱀에게 물려 죽은 그 목사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뱀이 다가왔을 때 하와 누님, 아담 형님처럼 되어버렸고, 뱀에게 제압당하고 만 것입니다. 뱀이 보니 그저 ‘아담 형님, 하와 누님’ 수준이었으니 어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입으로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외칠지 몰라도, 뱀의 거짓말이 들어오면 힘없이 넘어가 곧바로 당하고 맙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계셨는데, 허리와 등 쪽이 몹시 무거웠고, 그의 아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저와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는데,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두 사람의 안색이 몹시 창백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어 사정을 들은 뒤, 그 자매님을 오게 하여 귀신을 쫓아내 주었더니 우울증이 나았습니다. 다음 날 그 자매님이 남편을 제게 데려왔는데, 그 담임목사님은 몹시 겸연쩍어하며 속으로 ‘너도 목사고 나도 목사인데, 어떻게 네가 내게서 귀신을 쫓아낸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등이 무거운 증세가 20년이나 되었다기에, 제가 그 무겁게 짓누르던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몸이 무거운 것은 반드시 무언가 귀신이 엎드려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담임목사님은 체면을 차리느라 “사실 귀신 쫓는 사역은 수십 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 많이 해봤고, 지금은 굳이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도리어 귀신에게 쫓겨난 꼴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보니 아주 뚱뚱한 큰 도마뱀 한 마리가 그의 등에 머리를 맞대고 꼬리를 맞댄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도마뱀의 두 손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두 다리는 골반을 꽉 붙잡고 있었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습니까? 20kg짜리를, 아니 10kg짜리라도 날마다 짊어지고 다닌다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전에는 귀신을 쫓았지만 지금은 굳이 안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작은 귀신 몇 마리를 쫓아낼 수 있었을 때 안주하지 않고 더욱 힘써 추구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최후의 결전(The Final Quest)》이라는 책을 통해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번에도 또 한 편의 논문을 쓴 셈이지 않습니까?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말씀은 이전에는 성경공부를 해도 이런 깊은 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축사 사역 목회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고,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단계를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인터넷에 영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다리 저는 자가 걷는 등의 사역을 행했습니다. 그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진정 어려운 것은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결말은 썩 좋지 않았고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두 사람 중 한 명은 교인에게 고소를 당해 비참하게 되었고, 다른 한 명도 참담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마귀가 퍼뜨리는 거짓말은 이토록 무섭습니다. 우리가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면서 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는, 제가 끊임없이 연구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은 멈출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가득해야 합니다. 지금 저는 겨우 물 한 바가지 정도 얻었을 뿐인데, 무엇이 그리 좋다고 우쭐대겠습니까? 물 한 바가지를 얻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겸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한번은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귀신 쫓는 사역을 하시는 한 연로한 목사님께서 제게 “귀신 쫓는 것은 소용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요? 귀신을 쫓아내도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헛된 말씀을 하셨다는 뜻입니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뱀이 다가오면 다들 속아 넘어가고 맙니다. 우리 역시 속은 적이 있었지만, 성령을 힘입어 속히 마귀의 간계를 깨닫고 거짓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기도를 아주 크게 했습니다. 귀신이 나가기도 전에 관리사무소 직원이 먼저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우리를 찾아온 어떤 사람은 여전히 크게 소리 지르는 기도에 머물러 있었는데, 결국 관리사무소에서 그 집 문을 부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라 집에 대형 스피커 두 대를 설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사가 아주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마치 집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듯한 소음이 났으니 이웃들이 어찌 견디겠습니까? 민폐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거짓말이 존재합니다.

당시 우리는 큰 소리로 인해 관리사무소와 마찰을 빚지 않으려고 오토바이 헬멧을 사기도 했습니다. 크게 기도하고 싶으면 헬멧을 쓰고 기도하다가, 기도가 끝나고 벗으면 머리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나중에는 방음 전화 부스 같은 것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느낌이 있었을까요? 느낌은 충만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 느낌 자체가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 우리는 비로소 총명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총명을 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에 관해 제가 재작년과 작년, 2년 동안 설교했지만, 설교가 끝나자 다 저에게 도로 돌려주더군요. 그러므로 참으로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려면 예수를 본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필요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되며, 오직 주 너의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기도, 성화, 믿음, 심지어 구원조차도 모두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마귀의 화살이 여전히 도달할 수 있는 낮은 차원입니다. 그래서 화살을 쏘면 맞고, 거짓말이 들어오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진리를 힘써 깨달아야 하며, 결코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지금도 어떤 형제자매들은 함께 모여 느낌에 취해 7시간씩 기도하곤 합니다. 좋은 일입니까?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오토바이 헬멧 수준에 머물러 계십니까? 거기서 돌이키십시오. 소수의 사람들은 날마다 기도하는 것에 중독되어 자신들이 매우 대단한 수준에 도달한 줄 착각하는데, 예전에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산을 올라야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귀를 쥐락펴락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며, 마귀의 간계에 능히 맞서 싸우다가 주님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낮은 진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달아야 하며, 광활한 진리의 세계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영적인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말씀과 진리는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 곧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말씀은 참된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를 온전히 설명해 줍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제 동생이 뱀탕이나 뱀 요리를 만드는 식의 잡기술이 아닙니다. 이 뱀을 잡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뱀을 제압하는 것이며, 지혜로운 믿음, 곧 총명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결코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지만 왜 삶에서 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까? “나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받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의 눈에 믿음이겠습니까, 불신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대부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올바르게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바르지 않은데 어떻게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눈에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매는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역사가 나타나는데,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 잘 안 돼요”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총명이 뚫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잘 통한다 해도, 뱀의 영을 마주치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16장 14절부터 20절을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마가복음 16:14-20)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눈을 여사 성령을 힘입어 주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결단하고 여호와의 진리의 거룩한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서 힘써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계시를 내려 주시고,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사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님께서 뱀을 제압하셨던 것과 동일한 지식과 지혜를 오늘 우리에게도 주사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며 원수 마귀를 짓밟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의 배경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말이야.’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본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앉아 계실 때,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세 번을 물으셨습니다. 사실 주 예수님의 뜻은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믿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스스로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까?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믿음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을 설명해 줍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것은 곧 뱀을 집어 올릴 수 있는 믿음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총명 안에서 충만한 확신을 가진 믿음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물어보았을 때 아는 듯 모르는 듯 흐릿한 상태가 아닙니다.

저는 사역 중에 이런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내게 설명해 보세요”라고 하면, 웅얼거리며 길게 늘어놓기만 할 뿐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만 말하고 돌아가서 깊이 묵상해 보세요”라고 합니다. 왜 웅얼거리며 길게 늘어놓을까요?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명확히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는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온전히 설명해 내지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입으로 똑똑히 설명해 내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저희는 치유사역 훈련을 다 이수했습니다. 《102 훈련과정》도 마쳤습니다. 이제 귀신도 쫓아낼 수 있고 새 방언도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사역자가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방언 기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지 저에게 한번 시범을 보여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눈만 껌벅이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방언 기도 없이 어떻게 성령 충만으로 인도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즉시 밑천이 드러나고 맙니다.

사실 우리 내면의 수많은 생각들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마음속에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내용을 똑똑히 설명해 내지 못한다면 모르는 것입니다. 왜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못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의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 친구 중에 대학 입시를 5년 동안 치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도 여전히 입시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이상하게 수업을 들을 때는 다 이해가 되는데, 시험만 보면 모르겠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짜 아는 것입니까, 모르는 것입니까? 가짜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수, 삼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시험 낙제생’이라 부릅니다. 해마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나중에는 아들이 대학에 붙을 때까지도 본인은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스스로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면, 낙제생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제자 낙제생’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시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명하신 이 믿음이 과연 여러분 내면에 있는 그 믿음과 일치하는지 깊이 점검해 보십시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라는 말씀을 총명이 뚫리지 않은 채 오해하여 진짜 독사를 가져왔다가 물려 죽었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것이 시험에 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마귀에게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총명이 대단히 중요하며, 귀신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면서 다른 교인들에게 자기가 떠나는 이유를 퍼뜨리곤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 저에게 찾아와 “목사님, 그들이 떠나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고 숨겨진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양 행세하는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분별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귀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한다 해도 뱀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마귀에게 속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정신을 차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다시 굳게 서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가와 “옆에 있는 사람을 조심하세요”라고 속삭입니다. 그것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옆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까? 차라리 그런 말을 내뱉는 사람을 조심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뱀이 퍼뜨리는 거짓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뱀을 제압하지 못하면 결국 뱀에게 당하게 되고,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삼천 명, 오천 명이 믿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사람이 많으니 헌금도 많아졌다고 여겼습니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섞여 들어왔는데, 그것을 누구에게 배운 것입니까? 마귀의 거짓말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는 방식이 아닙니다. 교회를 올바르게 세우는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훗날 사도 바울이 행했던 방식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교회들이 삼천 명, 오천 명이 믿은 사건을 교회의 부흥의 증거로 삼으며 그것을 부흥이라 여깁니다. 그것이 어찌 부흥입니까? 그것은 타락입니다!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믿음만이 참된 믿음입니다! 반드시 마귀의 거짓말을 이겨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배움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진리 위에 견고한 기초를 세우고, 총명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견고한 기초가 없이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우리 공동체에 오시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느끼시겠지만, 화인 사명 신학은 끊임없이 진리의 거룩한 산을 오르며, 영적인 말씀과 진리를 철저히 소화해 냅니다.

수년 동안 설교를 해왔지만 여러분이 제 설교를 지루해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매주 연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구하는 단위와 같습니다. 무엇을 연구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영적인 진리를 연구합니다. 이번 논문도 훌륭하지 않습니까?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말씀을 통해 저 역시 완전히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길목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참된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믿음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훗날 바울도 서신서에서 “너희가 총명 안에서 충만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럴 때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뱀을 다루신 방식 그대로 우리도 뱀을 다루어야 합니다.

뱀을 제압하는 비결 1: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제가 묻겠습니다. 말씀 안에 황금의 집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말씀 안에 옥과 같은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말씀이 밥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돈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약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집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채워집니다. 문제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으로 살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나이 지긋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늦둥이 자녀 둘을 두어 아이들은 아직 어렸지만 본인은 이미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습니다. 계좌를 보니 잔고가 거의 없어 형편이 몹시 어려웠고, 결국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의 돈을 모아 투자했는데 사업이 망해버렸고, 결국 교인들이 그를 고소하고 말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을까요? 총명이 뚫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화인 사명 신학이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구절을 읽으며 ‘어떻게 그 모든 말씀을 다 알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을 때 주님은 제게 한 가지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완전한 체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체계 안에 있는 것은 덧붙여진 것이 아니지만, 이 체계 밖의 것을 더하는 것은 덧붙이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무언가를 더하면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언가를 제하여 버리면 손해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체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단 체계가 형성되면 마귀는 여러분을 쉽게 속이지 못합니다. 듣기만 해도 “아, 이것은 이런 원리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사람은 오늘 듣고 내일 들어도 모든 것이 조각나 있어 몹시 답답합니다. 머릿속에 체계가 잡히지 않아 뒤죽박죽이면 무엇을 하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온전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일부 말씀’으로만 살아가려 한다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하나님의 ‘어느 한 구절 말씀’만 붙잡고 살아간다면 그 역시 잘못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이 완전한 체계 안에서 살아가게 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손으로 뱀을 능히 제압할 수 있어 마귀에게 결코 속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이 어찌하여 그토록 강력했을까요? 예수님께는 체계가 있었고, 마귀가 무엇을 획책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말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배가 고프지 않느냐며 돌을 음식으로 바꾸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대단히 강력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한마디에 마귀는 힘을 잃고 굴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음식으로 바꾸실 능력이 없으셨을까요? 당연히 바꾸실 수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시지 않았습니까? 왜 돌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지 않으셨을까요? 돌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면 얼마나 편리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음식이나 돈, 약이나 직장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며, 결코 뱀을 제압할 수 없고 도리어 뱀에게 제압당하고 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손해를 보고 뱀에게 속아 제압당한 사람들은 기도해도 치유를 받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병든 자가 다 고침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겠지만, 뱀에게 속아 생긴 병은 다루기가 몹시 까다롭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완전한 체계를 세워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수없이 많이 읽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여전히 자기 생각과 눈앞의 일들만 믿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이며 치명적인 일입니까!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번뇌하게 만드는 것들은 온통 먹고사는 일에 관련된 것들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고뇌하는 사람은 참으로 보기 드뭅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린다’는 말씀 때문에 얼마나 큰 산고를 겪었는지 모릅니다. 혼자서 손으로 시늉하고 있으니 “목사님, 뭐 하세요?” 하길래 “손으로 뱀 잡는 연습을 하고 있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맙소사, 이것을 어떻게 설교해야 합니까?’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을 때 주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설교는 완전히 물거품이 될 뻔했습니다.

손으로 뱀을 제압하는 비결 2: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 맙소사,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귀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여기서 뛰어내려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정말 높은 곳에서 날아내리시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하셨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도 성경에 기록되었으되(‘경상기착설’)라고 인용했고, 예수님도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라고 인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참된 말씀의 인용이겠습니까?

성경에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것이라 기록되었다고 해서 진짜 독사를 가져왔다가 물려 죽었다면, 그것이 주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을 읽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말씀을 보고는, 자기 집 앞 개천이 홍수로 범람하는데 “나도 요단강을 건너겠다”며 뛰어들었다가 익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뱀을 잡은 것입니까? 뱀에게 붙잡힌 것이며, 뱀에게 잡혔으니 변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다니엘은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서 나왔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아, 동물원에 입장료를 내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갔다가 마침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해봅시다. “하나님, 왜 호랑이의 입을 막아주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주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시험한 것입니다.

동물원에 가서 하나님이 호랑이의 입을 막으시는지, 사자의 입을 봉하시는지, 뱀의 입을 막으시는지, 온갖 짐승의 다리를 묶으시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말의 엉덩이 뒤로 가서 슬쩍 만져보며 하나님이 말의 뒷발을 묶어 주시는지 확인하려는 것, 이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짓입니다! 그런 무의미한 믿음의 장난을 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지혜를 더하고 총명을 더하여, 총명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뱀을 제압하는 비결 3: 오직 너의 하나님만을 섬기라

이 말씀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는 순간 “아, 저것 얼마나 좋은가!” 하고 마음을 빼앗기면 끝장입니다. 뱀에게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너의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이 여러분의 믿음에 다소 부담스럽게 들립니까? 그러나 그런 자극을 받는 것은 참으로 유익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선포하시고 설명하신 믿음은 곧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뱀을 제압하는 세 번째 비결은 오직 여러분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탐내는 이유는 안목이 없어서 눈앞에 살아가는 사소한 일들에만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상의 부귀영화는 뱀이 인간을 쥐락펴락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손으로 뱀을 제압하기를 원한다면, 오직 여러분의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십시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만두고, 차라리 뱀에게 좀 휘둘리는 편이 낫겠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나는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구경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구경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헛되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뱀을 제압하는 비결 4: 사명을 얻으라

사명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필사적으로 기도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참으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으로 붙잡히셔야 했고, 그날로 채찍질을 당하셔야 했으며, 그날로 모진 고문을 견디셔야 했고, 그날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다.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바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함이며,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요, 이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고, 이를 위하여 살며, 이를 위하여 죽습니다.”

결국 주님은 채찍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내셨습니다. 아프지 않으셨겠습니까? 몹시 아프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아프지 않으셨겠습니까? 살이 찢기는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서서히 숨이 끊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이것을 사명이라 부릅니다. 이를 위해 살고, 이를 위해 죽으며, 이를 위해 태어나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명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라고 부르셨으며,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움으로써 땅의 모든 민족과 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돈을 뿌려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돈을 뿌리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얽어맨 저주를 끊어내고, 사로잡힌 영혼들을 해방하며, 사람들을 축복 안으로 인도함으로써 우리는 참된 축복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찌하여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뱀을 주셨고, 그는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냈습니다. 그 여정이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몹시 힘들었습니다. 번거롭지 않았겠습니까? 대단히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그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그 심정은 실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모세도 참다못해 반석을 지팡이로 내리치며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하고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저는 모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러한 고백을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 뜻대로라면 원치 않지만, 하나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옵소서.”

뱀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도리어 뱀이 예수님께 완전히 제압당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승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벌벌 떠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지 않는 자들은 결코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축복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참된 길이 아닙니다. 사명의 길, 곧 사명 밖에는 결코 승리가 없으며, 사명 밖에는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릴 능력이 없습니다. 아멘!

뱀을 제압하는 비결 5: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가라

기회가 된다면 릭 조이너의 《최후의 결전》 중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길’과 ‘진격하는 지옥의 군대’ 부분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거룩한 산을 다 올랐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길을 걸어간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는 층마다 무수히 많은 진리가 존재하며, 진리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얻게 되는 진리는 곧 마귀를 대적하는 지혜가 됩니다. 그 하나하나가 마귀를 굴복시키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배움을 그토록 강조하고, 총명을 강조하며, 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며 만족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며 거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그 단계에서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계단을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멈추어서는 안 되며, 힘써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진리를 깨달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을 제압하신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더하여 주사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내면의 믿음이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는 참된 믿음이 되게 하시고, 우리 안의 진리가 주님의 거룩한 영적 산에 속한 온전한 진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열쇠를 쥐고 천국의 자원을 끌어다 쓰게 하시며, 주님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판에 깊이 새겨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이를 위하여 태어나고, 이를 위하여 살아가며, 이를 위하여 죽기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오며, 우리가 늘 주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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