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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1장 -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2023-05-24 70,670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一章 使徒行传01章 兴起 跌倒 效法耶稣 圣灵降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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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01章-赐圣灵的应许
  • 1 提阿非罗啊,我已经作了前书,论到耶稣开头一切所行所教训的,
  • 2 直到他藉着圣灵吩咐所拣选的使徒,以后被接上升的日子为止。
  • 3 他受害之后,用许多的凭据将自己活活地显给使徒看,四十天之久向他们显现,讲说 神国的事。
  • 4 耶稣和他们聚集的时候,嘱咐他们说:“不要离开耶路撒冷,要等候父所应许的,就是你们听见我说过的。
  • 5 约翰是用水施洗,但不多几日,你们要受圣灵的洗。”
  • 6 他们聚集的时候,问耶稣说:“主啊,你复兴以色列国就在这时候吗?”
  • 7 耶稣对他们说:“父凭着自己的权柄所定的时候、日期,不是你们可以知道的。
  • 8 但圣灵降临在你们身上,你们就必得着能力,并要在耶路撒冷、犹太全地,和撒玛利亚,直到地极,作我的见证。”
  • 9 说了这话,他们正看的时候,他就被取上升,有一朵云彩把他接去,便看不见他了。
  • 10 当他往上去,他们定睛望天的时候,忽然有两个人身穿白衣,站在旁边,说:
  • 11 “加利利人哪,你们为什么站着望天呢?这离开你们被接升天的耶稣,你们见他怎样往天上去,他还要怎样来。”
  • 12 有一座山,名叫橄榄山,离耶路撒冷不远,约有安息日可走的路程。当下,门徒从那里回耶路撒冷去,
  • 13 进了城,就上了所住的一间楼房;在那里有彼得、约翰、雅各、安得烈、腓力、多马、巴多罗买、马太、亚勒腓的儿子雅各、奋锐党的西门,和雅各的儿子(或译:兄弟)犹大。
  • 14 这些人同着几个妇人和耶稣的母亲马利亚,并耶稣的弟兄,都同心合意地恒切祷告。
  • 15 那时,有许多人聚会,约有一百二十名,彼得就在弟兄中间站起来,
  • 16 说:“弟兄们!圣灵藉大卫的口,在圣经上预言领人捉拿耶稣的犹大,这话是必须应验的。
  • 17 他本来列在我们数中,并且在使徒的职任上得了一份。
  • 18 这人用他作恶的工价买了一块田,以后身子仆倒,肚腹崩裂,肠子都流出来。
  • 19 住在耶路撒冷的众人都知道这事,所以按着他们那里的话给那块田起名叫亚革大马,就是“血田”的意思。
  • 20 因为诗篇上写着,说:‘愿他的住处变为荒场,无人在内居住’,又说:‘愿别人得他的职分。’
  • 21 所以,主耶稣在我们中间始终出入的时候,
  • 22 就是从约翰施洗起,直到主离开我们被接上升的日子为止,必须从那常与我们作伴的人中立一位与我们同作耶稣复活的见证。”
  • 23 于是选举两个人,就是那叫做巴撒巴,又称呼犹士都的约瑟,和马提亚。
  • 24 众人就祷告说:“主啊,你知道万人的心,求你从这两个人中,指明你所拣选的是谁,叫他得这使徒的位分。这位分犹大已经丢弃,往自己的地方去了。”
  • 25
  • 26 于是众人为他们摇签,摇出马提亚来;他就和十一个使徒同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드디어 사도행전을 다시 나눌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과거에 공부했던 성경 본문들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방금 마친 창세기 성경공부 개정판도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다시 살펴보면서, 예전에는 제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도 자주 그렇게 말하니까요. 이번 성경공부가 이전의 내용과 다른 이유는 저 역시 성장했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터무니없는 이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는 성장과 업그레이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장하지 못한 채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요 몇 년 사이에 왜 예전에 전하던 것과 달라졌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와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만 계속 자라날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데, 그러면 망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을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만,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부지기수입니다!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한두 마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이 잘못 이해하고 그르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매우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속이다

여기서 저는 누가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먼저 누가복음을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누가복음의 주제는 《많은 사람이 흥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진다》인데, 이 구절을 반드시 머릿속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흥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넘어집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반석 위에 넘어집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복음과 누가가 말하는 복음은 맥을 같이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복음을 보여주신 것이며,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는 어느 정도 베드로를 비판적인 뉘앙스로 기록했고,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을 기록할 때는 완전히 다르게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온전히 맥을 같이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것은 능력의 복음이었으며, 사도 바울에 이르러서도 동일하게 능력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원하셨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도 바울을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내가 예수님을 본받은 것 같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저 역시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본받을 줄 모른다면 바울을 본받으십시오. 바울도 본받을 줄 모른다면 저를 본받으십시오. 저는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로 이어지는 맥락을 가지고 있으니 절대로 변질시켜서는 안 됩니다. 변질시키면 이 반석 위에 넘어지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도록 인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 충만을 주심에는 한량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 또한 한량이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연장선인 사도행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그 연속선상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부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차근차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가복음을 이어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도행전을 이어받아 사도 바울을 본받았는지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잘못 깨달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의 분부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던 광경은 분명 매우 웅장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당시에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유다,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을 포함하여 약 500명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분부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1-5)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들은 성령이라는 말만 나오면 매우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곧 너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많은 사람이 지켜 행하지 않고, 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이 없는 복음으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성령이 없는 복음이 어찌 복음이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온종일 남들을 이단이라고 외치지만, 사실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이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는 이미 매우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능력이 없다면 무슨 증인이 되겠습니까?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지, 어떤 이들이 말하듯 그저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시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듯이, 우리도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셨듯이, 우리도 제자들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그 결과 혼자서 일하다가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면서도 그것이 좋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결코 예수님이 하신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나 몸에 성령이 없는데 어떻게 증인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간증만 하면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의자를 몇 개 정리하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의 믿음과 생명이 참 좋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의아합니다. 주일에 와서 의자를 정리했다고 해서 생명이 좋다는 것입니까? 저는 다른 교회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올바른 개념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이며, 잘못된 것은 따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은 곧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지 않고,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이 안 하신 일만 잔뜩 행한다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무슨 행복소그룹이니 뭐니 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만 벌여놓는데,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고 너희가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 즉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인데, 성령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인데,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겠다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그에게 “당신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행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실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온통 자기 생각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매우 분명한 지침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떠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부어지며,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개념을 슬그머니 바꿔치기하여, 자기가 이미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니 성령이 내주하신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었는데, 왜 예루살렘에 머물러 성령의 세례를 기다려야 했겠습니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면 무익한 존재이며, 밖으로 나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자기 생각에 빠지기 쉬운가

이 점이 본 장의 핵심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면 닭을 잡습니다. 왜 닭을 잡았느냐고 물으면 개를 쫓다가 겸사겸사 잡았다고 변명하며, 자기가 서쪽으로 간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의 독선과 자기 생각이 얼마나 심한지 보십시오. 처음부터 엉뚱한 길로 샙니다. 이는 사도행전뿐 아니라 누가복음에서도 이미 그러했으므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행전》 1:4-6)

제자들은 여러 해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고,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지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언제 그들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라고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었고, 주제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났습니다. 완전히 동문서답이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인데, 사람이 얼마나 자기 생각에 차 있어야 이 지경이 되겠습니까? 사람 속에 있는 것은 참으로 왜곡되기 쉬우며, 온통 자기 옳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소통이 너무 힘든 경우를 자주 겪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입을 열자마자 엉뚱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렇게 단순한 분부를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이토록 알아듣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신 후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습니다. 아래에 서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미처 묻지 못한 말이 많았겠지만, 입을 열면 또 엉뚱한 소리를 할 테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본 후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가 다락방에 머물며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후, 당시 미처 다 하지 못해 마음속에 꾹 눌러 담아두었던 말을 꺼낼 기회가 생기자 한 사람이 나섰는데, 그 우두머리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12-14)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사도행전》 1:26)

베드로는 무리 앞에 서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더니 제비를 뽑아 사도 한 명을 세워 열두 제자의 수를 채웠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주 예수님께서 사도 한 명을 세우기를 원하셨다면, 분명 그들에게 그 일을 분부하셨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기를 좋아했고,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가장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 멋대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과 사도 한 명을 뽑아 세우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털끝만큼의 상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나중에 제비 뽑힌 맛디아가 한 일이라고는 열두 사도의 수를 채운 것 하나뿐이며, 베드로가 그 이후에 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이 사도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남겨두신 것이었는데, 그들이 제비를 뽑아 사도 바울의 자리를 가로채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훗날 서신서에 기록하기를, 열두 사도가 있을지라도 자신이 결코 그 열두 사도보다 못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의 팬이라면 게바파에 속한 것입니다. 저는 누구의 팬도 되고 싶지 않으며, 그저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명확히 밝히고자 할 뿐입니다.

모인 무리의 수가 한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사도행전》 1:15-20)

사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것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은 주제에서 점점 멀어졌고, 누가는 이 단락을 기록하면서 베드로가 곁길로 샜다고 노골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2천 년 동안 사람들이 이리저리 추측하며 대대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때 베드로가 한 말이 주 예수님의 분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으며, 그저 숫자 채우기 놀이를 하며 사도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제가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속이며,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적은 바로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면, 그것은 만민 가운데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곁길로 새고 싶지 않으며, 더 이상 자기 생각에 빠져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렇게 고백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 명하시면 우리는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질문을 하더라도 주께서 말씀하신 그 일에 관해 질문할 것이며, 무익한 일은 벌이지 않겠습니다.

누가는 고의로 이렇게 기록하여 많은 사람이 여기에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이 문제를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 일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 안에서 행하신 일을 우리 안에서도 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셨기에 우리도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셨듯이 우리도 제자들을 훈련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보배를 찾으셨듯이 우리도 보배를 찾으며, 더 이상 허황되고 헛된 것들을 벌이지 않습니다.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사실 성경은 이미 복선을 깔아두어 우리가 면밀히 상고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도록 해두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본받지 않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누가가 묘사한 베드로의 모습은 점점 더 도가 지나칩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베드로가 행한 일들 중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왜 수많은 교회가 예수님이 명하신 일은 하지 않고, 예수님이 안 하신 일만 잔뜩 벌여놓는지 아십니까? 사실 그것은 베드로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걸려 넘어지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어쩔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만민 가운데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는 것이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사도행전》 1:20)

사실 베드로가 여기서 언급한 유다에게 직분이 있었습니까? 유다의 유일한 사명은 예수님을 파는 것이었는데, 누군가가 그의 직분을 얻고자 한다면 망하는 길입니다. ‘타인이 그의 직분을 취하게 하소서’라는 이 말은 매우 큰 풍자입니다. 누가는 사람을 풍자하는 데에도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베드로는 ‘타인이 유다의 직분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이후 이스라엘에서 2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 로마로 압송되었을 때 누가가 로마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했던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데오빌로는 당시 로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귀족이었습니다.

누가가 ‘타인이 그의 직분을 취하게 하소서’라고 기록했을 때, 실상은 베드로의 직분을 바울이 얻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셨다 할지라도, 당신이 늘 주제에서 벗어나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엉뚱한 짓을 벌인다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는데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는데 닭을 잡는다면 하나님이 어찌 다른 사람을 찾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직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말씀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베드로 일파로 인해 어지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이 곧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0)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직분을 얻는다는 것은 실로 통렬한 풍자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쓸 당시, 베드로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를 침체에 빠뜨려 망쳐버렸는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직분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이유는 베드로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고, 그 결과 털끝만 한 차이가 천 리의 오차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에게 거듭해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주의 깊게 살핀 후에야 비로소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 안에 여전히 자기 옳음이 가득하다면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단순한 치유와 축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치유와 축사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제자를 훈련하고 보배를 찾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요구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요구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많은 목회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하면, 그들의 대답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제가 전하는 이 원리대로 교회를 세우려 했을 때, 어떤 목회자들은 찬물을 끼얹으며 “그렇게 사역하면 올 사람이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주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싸늘하게 식었을지 점점 더 깊이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일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기준대로 실천할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저는 하나님이 우리와 분명하게 함께하심을 보았습니다. 저는 주제에서 벗어날 담력도 없고, 하나님의 기준을 제 기준에 맞추어 뜯어고칠 담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 행하는 것,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복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령께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지 말고 반드시 주의하십시오. 본문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사도 베드로라는 직함에 대한 맹신을 내려놓는다면, 그가 말하고 행동한 것이 모두 곁길로 샜음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여 영생을 거두십시오. 여러분 중에는 훗날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으니 대단해 보인다는 의구심을 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굳이 거꾸로 매달렸습니까? 주 예수님을 뛰어넘어 주 예수님보다 더 대단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까? 실상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십자가에 어떻게 못 박히든, 가로로 못 박히든 세로로 못 박히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기로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고 자처하며, 교회는 침체에 빠뜨려 망쳐놓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야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데, 사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입니다! 평생을 헛된 겉치레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겉치레를 한 것이며, 실상은 여전히 자기 속의 방식을 따른 것에 불과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조차 예수님을 본받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못 박히신 대로 우리도 못 박히고, 주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대로 우리도 따라 배우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제자를 훈련하고 보배를 찾으신 대로 우리도 따라 배웁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까지도 예수님을 본받아야지, 굳이 주 예수님과 똑같이 행할 자격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거꾸로 매달려 대단한 척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죽기 전의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왜 굳이 반대로 가야 합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평생 떳떳하고 당당하게, 뼛속까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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