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한복음20장-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 믿고 무엇을 믿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죽음을 이기신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는 하나님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믿어야 하며, 예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우리도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없고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것 외에 못 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세 번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음에서 부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갈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검이 없어진 것을 보고도 반응하지 아니하여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줄도 알지 못하였고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도 인정할 수 없었더라 그들의 상상력.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죽은 지 나흘 만에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줄 알았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장사된 것을 보고 많은 제자들이 끝.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고, 믿지 않는 것이라면 백 번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백 번 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무덤에 예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믿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믿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믿지 않는 것을 대하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듣지 못한 것 같습니까? 시간을 내어 스스로 알아내십시오 봉사하는 우리 모두는 어떤 사람과 오랫동안 이야기해도 그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주님을 믿는 날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열리고 마음에 불가능이란 단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불가능이 없고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나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부활도 가능한!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리니 믿는 자는 열린 사람이요 마음이 완고하지 아니하니라

어떤 사람들은 종종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표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안다면 불가능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듣고 자동으로 거부하는 것, 이런 종류의 사고 방식은 실제로 일종의 무지한 사고 방식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으로 직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믿음으로 직업을 얻습니다. 자신 있게 면접관 앞에 서면 온 몸에 자신감이 샘솟는다. 면접은 사실 자신감 테스트인데, 30분의 대화로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조차 불가능해집니다.

일요일에 릴리 수녀님은 밖에서 행복하게 걸어 들어 오셨습니다. 모두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첫날 발을 삐어서 아팠지만 기도하고 나면 통증이 사라졌고, 발이 부어 있었고, 후에 부어오름이 가라앉았습니다. 기도. 그런데 자리에 앉자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하여 시중드는 형제자매들을 보고 그 다리에 가서 기도를 드렸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것이었지만 나는 단지 이 귀신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그녀의 침술 포인트 중 하나를 클릭했고 그녀는 10초 만에 완전히 풀려났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열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실천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적과 기사가 따를 수 있겠습니까? 자신감 있는 사람들. 믿음의 사람이란? 즉, 그에게는 소위 불가능이 없습니다. 백일 동안 괴롭게 하신다는 것은 사람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당신이 직업에 지원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간다면, 당신은 면접관이 아니라 당신이 직업을 얻을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신에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성전을 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불가능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여러 가지 불가능한 일을 마음에 품고 헤롯 왕이 46년 동안 이 성전을 지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3일 만에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 결과 그들은 정말로 사흘 만에 세워질 수 있는 예수님을 죽였고,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기 위해 죽음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저것이 불가능하다고 자주 말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에게 달려가 이르되 : 어떤 사람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베드로와 제자는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으나 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고 내려다보니 세마포가 아직 거기 있는지 보고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라 시몬 베드로도 뒤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아직 거기 있는지와 예수의 관이 세마포와 함께 있지 아니하고 다른 곳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더라 무덤에 먼저 가던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이 의미하는 것, 즉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한복음 20:1-10")

이 장은 제자들이 주 예수를 장사 지낸 후 유월절을 지내고 하루나 이틀 후에 제자들이 급히 달려가 사흘 만에 보니 무덤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이르되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느냐 이 남자의 반응을 보셨나요?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가지다. 두 제자가 무덤에 가서 보니 관과 세마포가 예수를 두르매 하나는 여기 두고 하나는 저기에 두니라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지 않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몸을 옮겼다는 것만 믿었을 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의 의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 두 제자는 너무 더디 믿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었습니다. 울면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를 두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습니다.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다: 여자여, 왜 울고 있습니까? 그녀는 말했다: 누군가가 주님을 옮겼기 때문에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하고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그녀에게 "여자여, 왜 우느냐?" 누구를 찾고 계십니까? 마리아는 정원지기인 줄 알고 "주인님, 저를 데려가시면 어디에 두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예수가 말했다: 마리아. 마리아가 돌이켜 그에게 히브리어로 말했다: 라보니! (랍보니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만지지 마십시오.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한복음 20:11-17")

알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한 가지, 즉 그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 그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가지, 즉 이 영적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본래 영이시는데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부활의 방법으로 영의 세계가 실재함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실 때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왜 기적을 사용하여 증명할 수 있습니까? 기적은 영적 세계의 실재를 증명할 수 있고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그분이 하나님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교회를 세우려면 기적을 행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달려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그들의 반응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나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을 보지 않고 떠났는데, 당신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복음 20:19)

예수님은 어떻게 들어가셨습니까? 그것은 벽을 통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벽을 통과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이것은 자연과학과 너무 모순된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그렇게 단조롭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을 몸에서 썩지 않는 몸으로, 육체적 몸에서 영적인 몸으로, 영화롭게 되지 않은 몸에서 영화롭게 된 몸으로 벽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간증은 영광스러운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줍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적을 믿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기적을 믿으려면 이 기적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을 믿습니까? 당신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믿거나 말거나 당신도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조금 어렵다고 느끼면 즉시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은 태초에 우리를 창조하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찌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을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거짓 증인인 것이 분명하도다 죽은 사람이 부활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되고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의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도 망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생의 소망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더 가련한 자입니다. (고전 15:12-19)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을 믿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과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성육신자이시며 시험을 받으셨으나 이기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고통을 당하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부활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사람이 부활하지 못한 것이요, 사람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것이 아니니, 무슨 뜻입니까?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뿌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한 여인이 죽어 가매 자기의 세 아들을 불러 맏아들에게 잘자요 둘째에게 잘자요 셋째에게 잘가라 하고 세 번째 아이가 말했습니다. 왜 그들은 잘 자라고 말하고 나는 작별 인사를 하는 거죠?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과 영원히 헤어져 있고, 당신의 형제들과 나는 장차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며, 우리는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후 셋째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영원히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기 시작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은 불신앙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생명은 죽음에 갇힐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실제로 음부와 지옥에 떨어지셨고, 음부와 지옥에서 사망의 영을 이기시고 승리하여 그의 영혼이 다시 그의 몸으로 돌아간 다음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는 신약의 말씀을 확증합니다. (요 6:63) 너희가 살아 있을 때에 너희의 영적 생활을 준비하라 영원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생명은 죽음에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참된 의미니라 삶은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능력은 성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며 천박한 것으로 심고 영광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하게 다시 살아나며 영적인 몸. 육체가 있다면 영적인 몸도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42-44)

주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형태인 영화롭게 된 몸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영의 세계는 육신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영화롭게 된 몸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가 부활하여 어떤 모습일지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가로 4천 킬로미터, 세로 4천 킬로미터, 높이 4천 킬로미터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모든 돌은 살아있는 돌이며 모든 돌은 보석이다. 너는이 의미를 아니? 우리 각자는 개별적이며 유기적 전체이며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 전체가 우리에 의해 건축됩니다. 우리는 돌로 짓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짓습니다. 즉, 부활 이후의 상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경에 땅에서 하늘에서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영계에서 활동하는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바다의 한 방울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이때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만 하셨습니다. 많은 전통 교회들은 이때 성령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성경 전체를 함께 읽으면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권능을 받을 것이요, 권능을 받아야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심을 의미할 수 있고,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권능과 성령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언제 받았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우리가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권능이 우리의 삶에 있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땅에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합니다. 나와 여러분이 땅에서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는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늘에서 그분의 권세를 행사할 것입니다. 뭐라고 해요?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을 하나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치의 상태에 이르면 우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하면 그들의 죄가 용서되고 우리가 누구의 죄를 그대로 두어도 그들의 죄는 남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위대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고, 이 위대한 정체성이 한 가지를 결정합니다. 즉, 우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행사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표하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성령.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9")

당신과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보고 믿는 자가 반드시 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람산에서 예수와 함께 오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500명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그곳에서 기도한 사람은 120명뿐이었습니다. 삼백 팔십 명은 어디로 갔습니까? 집에 가서 농사를 지으세요!

오늘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개념을 주겠다. 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느냐?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그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후회는 없다! 그 사람들에게 큰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자신이 그 기적의 주인공이라 해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훗날 이 사람들이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런 사람들은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에 가버나움에서 이르시되 만일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그들이 나의 행한 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요 도마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님의 옆구리와 손바닥의 못자국을 만져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랐는지 아십니까? 베드로가 나병에 걸렸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것도 아니고, 베드로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는 할 일도 없고 매일 고기만 잡고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운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형제들아 내가 내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자랑으로 강력히 말하노니 내가 날마다 죽기를 각오하노라 내가 보통 사람처럼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운다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먹고 마시자! 내일은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31-3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이 있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니 그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이 길을 걷기 시작하여 표적과 기사가 우리를 따르게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소망이 땅에 없으며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붙잡을 수 없음을 믿읍시다.

답장을 남기다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