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这个题目真好,我费了九牛二虎之力才挖出来的,可把我辛苦得够呛。我说这是在讲啥呢?东一撇西一划的。你知道我在什么时候整明白的吗?我在睡觉的时候整明白的,就在半睡半醒之间播《箴言》11章,我前前后后听了一百来遍,听着听着,有的时候中间断了一会儿就睡着了,睡着了醒了又接着听,听完了又听。
听完了以后我就苦思冥想,我有我的章法。我开头的时候就教大家抓那些关键字、重复的字都是很重要的字。这一章不照重复的字走的,是照重复的规律走的,什么规律呢?这样的人做这样的事,就得这样的结局,那样的事就有那样的结局 。这个规律一找到:啊!明白了!这作者挺坏,把这事藏得挺深!哪怕开头的时候你告诉我一下,我要讲的就是观察为人的结局 ,不对!他没讲,这不是挖坑吗?这个挖坑挖得好,寻求的人就得着。
我这事跟大家讲完了以后,我真的想唱一首诗歌,真的很想来首诗朗诵,智慧人啊!听起来大概就是这个味,黄河啊!母亲!但这不是我的风格。如果讲道讲成这样,把人都吓跑了,还以为是诗朗诵。我想这篇洋洋洒洒讲了好长,三十多节,我只要能达成一个目标,这个目标就是大家读了以后,能够观察出来这样的人有这样的结果。咱就做一个聪明人,为什么要往灭亡里走呢?
我让大家谁也别指望,就指望神,就是单单指望神。大家一定要知道,咱们弟兄姐妹,不管你是岁数大还是岁数小,你在神的眼里、在我的眼里都是宝贝,所以不用担忧。一定不要担忧,神看你如同宝贝。关键咱们得有智慧。我们有了智慧,然后照神的话去落实,一生什么好处都不缺!
有一次很有意思,我小学同学聚会,四十年没见过的同学坐在一起吃饭。我就坐在大圆桌子这边,我抬头一看,看到了我的一个女同学。我抬头一看,神的灵跟我说了一句话:她有很多的病。我说:为什么她有很多的病呢?神的灵就说:她在家照顾她的爸爸妈妈很辛苦的。我也不知道啊,我上哪知道这事?吃完了饭以后,我就跟她握握手。那个年代也没有新冠。我就和她握手,我另一只手就在她的肩膀上拍了一下。
第二天,她发了一个信息给我。她说:老同学,你这人很神啊!我跟你们吃饭的时候,我的肩膀好像要掉下来,疼了好多年了。你走的时候,你这只手握着我的手,你那只手拍了我的肩膀一下,我的肩膀就好了,到现在也没疼啊!我说,哇,神人啊!这真是很帅的事。多神啊!我自己也觉得有神真好!这真不是我吹牛。
后来我知道她很辛苦,我就给她打了一个电话,知道她爸爸妈妈瘫痪在床。两个老人瘫痪在床上七年了!一个人瘫痪,你照顾,你试试看;她照顾两个瘫痪老人,我挺佩服她的,真是孝顺的女儿啊!谁养这样的女儿谁有福啊!但是还是不如养我这样的儿子有福,为啥?我妈就不会瘫痪七年,因为有神哪。
她跟我讲了很多,我听了都想流泪啊!后来老公也没了,家人也没了,没有人陪她过这日子,这日子咋过?两个瘫痪的老人,一人在床上拉一泡屎,我跟你讲这是拉一泡,如果拉两泡呢?那屋还能待吗?你说这个世代是不是人很需要神?我心里说:如果她爸她妈认识神,何必这样呢?就算是有这个好女儿,咱也遭不起这个罪啊!更何况你没有,感慨!
所以我说咱们当中不管你七十岁、八十岁、还是九十岁,把你的盼望放在神的身上。前两年疫情之前,有一位老人家九十多岁到我这来,是我们当中的一个姐妹的外婆。我服侍她以后,她的腿能够站起来行走,她来的时候我开车去接她,是坐着轮椅出来的,那轮椅陪着她应该十年了吧。碰到了我,大概我服侍了她一个多月,可以站起来行走了。那如果碰到了你,也这样情况的话,你也可以祝福很多人。
我说的意思是啥?咱最重要的是要有神啊!但愿大家都能够醒悟过来,所以我告诉大家,就算是我没时间,我也把时间挤出来给神,我把别的东西放下,这是我的逻辑。我不是跟大家这么说,我做工的时候也这样。我告诉你,我每天的工作都是堆得像山一样多!那是海量的工作,天天干也干不完啊!但是我选择放下,我去服侍神,其中服侍的就是那个自私的家伙,因为他要死要活的。后来工作没了,没了就没了,我继续服侍,我感谢神,也不知道是神使我有这样的心志,还是我就有这样的心志。但不管怎样,我选择要做这样的人,后来我就成了这样的人。
最重要的就是我的神,我什么都可以放下,但是我得抓住我的神,为什么?我也不指望什么儿女。我也不指望钱财,我指望神。我一辈子必有神的恩惠慈爱随着我,一生一世,不管多么艰难,神永远是我的神。我从来不抱怨神,我只抱怨我自己,我永远都认为我自己没有搞对。我信靠我的神,只要活着一天就侍奉祂。
Q1:老师,我对这句话不理解,义人得脱离患难,有恶人来代替他。
这世上的患难,义人脱离了,就有恶人去承受患难去了。很简单,就是这个意思。你是让我多解释一下,很容易的,义人遇到了患难,后来脱离了患难。恶人遇到了同样的患难能脱离吗?那是脱离不了的。或者是义人脱离了那个患难,恶人就来顶上这个坑。如果是一个萝卜一个坑,就把患难的那个坑给恶人。大家读东西的时候,我知道大家有坏习惯,就喜欢只见树木不见森林,一定要养成看整体的习惯,就是有一两句不清楚也OK,不影响抓主要意思。
Q2:为外人作保的,必受亏损;恨恶击掌的,却得安稳。 这句话怎么理解?
外人,大家知道什么叫外人吗?不是你的弟兄姐妹,就是外人,外人就是跟你没有太大关系的人。即使是你牧养的,我也不鼓励作保,咱们不需要作保,咱干不了的事咱就不干。为外人就更不应该作保了,必受亏损。假如说有一天有人说:来,你要保证我的安全!我就说算了,我保不了。我怎么保你安全啊?我自己的安全都保不了,怎么保你啊?就不要保这些,你保不了。为什么你保不了?因为只有神能保。
他自己要知道自己所走的路,你保不了。意思就是咱们干不了的事,非要干;买不起的东西,非要买,所以就得找担保的人。我告诉你:你别来找我给你担保,你要是找我给你担保,我就告诉你别干了。这事保啥?啥也别保。你保完了以后,人家走了,银行来找你来了,你说你倒霉不倒霉呀?因为那是个外人,你上哪找他去?如果那是你妈你爸,那你就好好保。
Q3:我以前总听到一个名词:隐藏的骄傲,好像就是说神如果不启示,自己就意识不到自己里面这种隐藏的骄傲。老师,请问怎么对付这隐藏的骄傲呢?
我不知道这是啥,我只知道好好读神的话,神一定会一步一步引导你,让你不断地认识神的话和认识神的真理。其实认识神的真理是这样认识的,就是你读了一点神的话,然后再去行;你又读了一点又再去行,行了又去读,然后你就会螺旋式上升。然后走到哪个步骤就说哪一步骤的话,这是我给大家的交待,咱们还没有走到那一步就说那一步的话,没有用。
比如说我读小学一年级心想:将来我读大学的时候,我能读得懂吗?这脑袋不是有毛病了吗?小一还没读完呢,你说这能学习好吗?小一的时候把小一的事整了,小二的时候把小二的事整了,如果小二你学得快,你学完就把小三的课学了,小三你学完了,你如果能跳级跳到小四去,你就去到小四再学小四的课。
走到哪一步咱就说哪一步的话,这个比较实在吧!什么叫隐藏的骄傲?扯犊子。我告诉大家,基督徒喜欢扯这种东西,眼前的不去行,非得整一大堆不能行的。那咱走在这个地步了,比如说属灵的生命成长到三岁了,那三岁咱就干三岁的事。大学毕业了,咱就说大学毕业该干的事儿。我说的意思是:属灵的生命成长到什么程度,就干什么程度该干的事。
愿神使弟兄姐妹都成为一个合神心意的人,在神眼里是个正直人,在神眼里是个义人,在神眼里是一个有智慧的人,然后常常观察、考察、认识神,认识神所定的属灵的规律。
愿神祝福大家!
1. 서론
단편적이고 고립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며, 사람을 점점 더 어리석게 만든다.
사람은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사물의 기본적인 법칙을 찾아내며,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고방식이다.
2. 사람을 이중적인 기준으로 대하지 말라
이중적인 기준이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눈의 티는 보는 것이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다.
사람은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제거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흠잡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야만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3. 교만하고 오만하지 말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이 오면 수치도 따라온다.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은 지혜이다. 결코 오만하지 말라. 사람이 자랑하려면 여호와를 자랑해야 한다.
4. 이기적이고 인색하지 말라
자신이 이기적이고 인색한지, 한 푼도 내놓지 않는 사람인지 관찰해 보라. 이기적이고 인색한 것은 마귀의 형상이며, 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은 궁핍을 불러온다.
중국인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내어주는 것이며 대가를 치르는 곳이지, 다른 사람이 이익을 가로채도록 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넉넉함을 살아 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내야 한다!
5. 결론
우리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기셔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어리석지 말고 겸손해져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며,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영적인 길을 달려가면 아름다운 결말을 얻게 될 것이다!
핵심 단어
어리석은 사고방식
단편적이고 고립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봄
사람을 이중적인 기준으로 대함
교만과 오만
겸손하게 살아감
이기적이고 인색함
내어줌
대가를 치름
서론
《잠언》을 읽으면 사람이 지혜로워진다. 사람이 지혜로운지 지혜롭지 않은지는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잠언》 11장을 다 읽고 나면 조금 혼란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장은 여러 방면에 걸쳐 아주 넓고 많은 내용을 말하고 있어서, 그 안에서 하나의 주제를 찾기가 실제로 조금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제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핵심 단어를 잡는 법을 배우게 한다. 어떤 단어들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읽을 때 그 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반복률이 높은 문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문장 외에도, 반복해서 표현되는 내용 역시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큰 줄기이며,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틀’이다. 이 개념을 붙잡는 법을 배우면 주제를 찾기가 쉬워진다. 《창세기》 1장의 내용을 예로 들어 보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대로 되니라”, “각기 종류대로”라는 몇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하나의 틀을 세우면, 이것이 1장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된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는 법을 배우면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울 때 훨씬 간단해진다. 사람이 이렇게 배우는 것은 자세히 읽고, 자세히 관찰하며, 자세히 생각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이 방식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또 다른 예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잠언》 11장이다. 이 장은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패턴’이라고 부르며, 영어로는 pattern이다. 여러분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안에 있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잠언》 11장의 주제는 사람의 행위가 가져오는 결말을 자세히 관찰하라는 것이다. 이 장은 서로 다른 일을 하면 서로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전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관찰하지 못하면 사물이 발전하는 법칙을 볼 수 없고, 이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도 볼 수 없다. 결국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다가 결말이 닥치면 뒤집을 힘이 없게 된다.
사람의 행위가 가져오는 결말을 자세히 관찰한다는 이러한 관념은 중국인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 신학의 전체 체계를 관통한다. 중국인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 신학 체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물의 법칙과 본질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깨닫고, 주제와 개념을 붙잡으며,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붙잡고, 완전한 틀을 세우며, 사물의 기본적인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혜로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지혜로워진다! 사람이 어떻게 어리석어지는가? 사람은 단편적이고 고립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편적이고 고립되게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칠 수 있다. 우리는 기독교의 변혁을 가져오려 한다. 왜 그런가? 기독교가 마귀에 의해 매우 단편적이고 고립된 모습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무신론보다도 못하다. 경직되고 고립되며 단편적인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단편적이고 고립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모든 일을 매우 황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관념은 현대 기독교 신학 안에 극도로 널리 퍼져 있다. 너무 널리 퍼져서 사람들은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지는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말만 생각하면서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을 바꾸려 한다면 얼마나 큰 도전이 되겠는가? 어느 시대든, 어떤 신앙이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단편적이고 고립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사람을 이중적인 기준으로 대하지 말라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내게 장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저울대를 속여서 사람을 등쳐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저울은 물건을 달 때 사용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저울이 매우 비싼 도구였기 때문에 보통 가정에는 저울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상인들이 저울대를 속였다. 저울대에 거짓을 심어 놓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 저울대에는 저울추가 있고, 반대편에는 쟁반이 있으며, 쟁반 쪽으로 기운 곳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리가 있다. 물건을 달 때 물건을 쟁반에 올리고 저울추를 저울대의 한 근 눈금까지 옮긴다. 저울대가 수평이 되면 물건이 한 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저울추가 작은 추라면, 조금만 작아도 달아 나온 물건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게 외삼촌뻘 되는 친척 한 분이 계셨는데 장사를 하셨다. 그 집안의 장사는 해방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었고, 매우 부유한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 친척이 1960년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당시에는 큰길에도 차가 몇 대 없었는데, 그분은 차에 치여 죽었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리고 그 친척의 아내, 곧 외숙모도 평생 숨이 짧아서 자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매우 고생하다가, 나이가 많지 않은데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전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이 귀신에게 사로잡혔다. 내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내게 말했다. “네게 외삼촌뻘 되는 친척이 한 분 있지. 다들 차에 치여 죽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죽인 것이다. 그 아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도 알고 있지? 그것도 내가 한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이런 논리가 있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기만 하면 귀신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과연 귀신은 그들을 그렇게 괴롭힌 이유가 그들이 장사를 하면서 저울대를 속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 귀신은 내가 상당히 쫓아냈고,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그 친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기억하라. 장사하는 일은 매우 영적인 일이다. 장사에서 유일한 기준은 돈을 벌었느냐, 벌지 못했느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면 정말 곤란해진다. 여러분이 자세히 관찰해 보라. 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추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내 친구인 한 부부가 있었는데 자주 다투었다. 아내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머리도 나쁘지 않았다. 어느 날 부부가 다툰 뒤 아내가 내게 하소연했다. 남편은 자신의 문제를 볼 때는 현미경으로 보면서, 자기 문제를 볼 때는 확대경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천 배 현미경과 열 배 확대경을 사용하면 한순간에 만 배의 차이가 난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자매의 눈에 있는 티는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이중적인 기준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도 그렇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사람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면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평한 추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형제자매들은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이든, 부부 사이의 다툼이든, 부모와 자녀 사이의 다툼이든 기준은 모호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는 하나의 기준을 적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혹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까다롭다. 그러나 이런 일들의 결말을 살펴보면 결국 부패와 파괴만 보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야가 짧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일단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결과를 가져오고 비극이 일어난다.
자신이 늘 다른 사람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중적인 기준을 가진 것이다. 자신에게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낮은 기준을 요구하면 괴롭겠는가? 사람이 괴로운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로채고도 몰래 입을 다물고 있으면 더더욱 괴롭지 않다. 누구도 한가하게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로챘다고 큰 소리로 떠들며 자신이 괴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가로챈 이익을 돌려주라고 하면 그는 더욱 괴로워할 것이다.
어느 날 한 자매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자매의 친한 친구가 내게 그 자매가 늘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닙니다! 정말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잘 배우고 진지하게 일하면 됩니다. 우리도 잘 도와주고 가르쳐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 자매는 우리가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물으러 온 사람은 “그럴 리가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하면서 괴로워하겠습니까?” 사실 그 자매는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이다. 사람이 괴로운 것은 사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쉽다. 늘 저울대를 들어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말고, 자주 저울대를 들어 자신을 달아 보아야 한다. 먼저 우리 눈의 들보를 제거한 다음 다른 사람 눈의 티를 보아야 한다.
교만하고 오만하지 말라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1:2)
중국 사람들은 “겸손하면 사람이 발전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귀신을 보내 그를 괴롭히신다! 그러므로 교만은 정말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사람은 왜 교만해지는가?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교만을 위해 살아간다. 나는 한 성도에게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저보다 못한 사람도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남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잘 지내느냐고 물었는데, 그 사람이 잘 지내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물은 사람이 “그럼 안심이네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잘 살까 봐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힘들고 괴롭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만이 오면 수치도 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당연하다!
한때 헤롯 왕이 설교를 했는데, 아래에서 박수가 십여 분 동안 계속되었다. 어떤 사람이 “헤롯 왕이시여!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입니다!”라고 말했다. 헤롯 왕 자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벌레에게 한 번 물린 뒤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교만이 오면 수치도 온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교만해지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수치가 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절대로 애굽의 바로처럼 자신이 세계 최강국의 왕이며 아무도 자신의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결국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의 장자와 처음 난 가축까지 모두 죽게 하셨다! 사람은 결코 교만하거나 오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지혜가 없다는 표시이고, 얻는 것은 수치뿐이다. 사람이 자랑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잠언》 11:3)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고, 마음속에 오만과 교만도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순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다. 내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사하고 패역한 사람은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을 멸망시킨다. 이것이 영적 세계에서 작동하는 법칙이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잠언》 11:4)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는 재물이 소용없다. 사람이 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다. 탐욕스러웠던 내 친척처럼 큰길에 차가 거의 없는데 걷다가 차에 치여 죽는다면, 이것이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귀신이 한 일이며, 사실 귀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지해서 귀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는 아무리 많은 돈도 소용없다. 그때도 재물을 의지한다면 정말 비극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반드시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전쟁을 살펴보면 거의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 가령 내가 무기상이라면 전쟁이 일어나는 곳마다 기쁠 것이다. 전쟁만 나면 즉시 미사일 천 발을 팔 수 있다. 미사일 한 발에 10만 달러라면 천 발은 1억 달러다. 전쟁은 모두 돈과 연결되어 있다. 왜 전쟁을 하는가? 모두 돈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돈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오직 공의만이 사람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태어났고,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변혁을 맞이했다. 이 변혁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잔혹하며 피비린내 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돈을 의지해야 하겠는가? 돈은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계속 돈만 의지한다면 소용이 없다. 돈은 의지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었는데 자녀도 곁에 없고, 노후를 위해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지 걱정한다. 자녀가 곁에 있어도 의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재물과 자녀가 모두 똑같이 무익하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지 말고, 이중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말며, 자신의 재물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 정직한 사람의 순전함으로 자신을 인도하고,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재물이 무익하나 오직 공의만이 사람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다. 완전한 사람의 의는 그의 길을 인도하지만 악인은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잠언》 11:4-5)
많은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공의를 추구한다. 많은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이상한 행동 방식이 있다.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공의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다. 또 많은 사람이 선행을 하기를 좋아한다. 중국에 다샤오량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매우 가난하다. 많은 기독교인이 그곳에 돈을 뿌리러 가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곳 사람들을 타락시켰다. 그곳 사람들은 해마다 이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점점 더 게을러지고 일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인가? 그렇지 않다! 정말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한다면 그곳 사람들을 저주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정직한 사람의 의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의다.
이기적이고 인색하지 말라
정직한 자의 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악인이 죽을 때에 그의 소망은 끊어지며 죄인의 소망도 끊어지느니라. (《잠언》 11:6-7)
악인의 모든 소망은 매우 황당하다.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왜 악덕 상인이 되고, 관직에 있으면서 왜 부패한 관리가 되는가? 모두 이런 황당한 소망 때문이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사람 안의 이기심을 해결한 사람은 없다. 부패한 관리들은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결국 그 부패한 관리들도 멸망하고, 악덕 상인들도 사라진다. 왜 그런가?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서 이기심과 독선과 어리석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말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일이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그를 대신하여 넘어지느니라. 악인의 입은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나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인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잠언》 11:8-11)
이 모든 말씀은 사람이 행한 대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해야 한다. 사람이 조금만 마음을 쓰고 《사사기》를 읽어도, 사람들이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하나님께서 애써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자신의 나라를 세우셨지만, 결국 나라는 멸망했다. 모두 개인이 자기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선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선거는 카니발처럼 매우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선거에 나온 사람은 수천, 수만 명 앞에 서서 연설하며 온갖 화려한 말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도시가 무너진다. 도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도 무너진다. 그런 사람들을 뽑은 것은 누구인가? 천천히 자세히 보라. 한 사람을 뽑았더니 나중에 그 나라가 내리막길을 걷고, 또 한 사람을 뽑았더니 그 악인의 입으로 도시와 심지어 국가까지 무너지게 된다.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지혜가 없거니와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잠언》 11:12)
이 시대에는 《성경》의 이러한 말씀을 자세히 곱씹어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눈을 뜨고 사방을 바라보며 세상의 정세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의 이러한 말씀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웃을 자꾸 건드리는데, 그 이웃이 권투 선수라면 언젠가는 쌓이고 쌓여 주먹을 휘둘러 당신을 때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손을 잡기를 미워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은혜를 베푸는 여인은 존영을 얻고 포악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잠언》 11:13-16)
포악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불완전하게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한 가정이 화목한 것은 주로 그 집의 아내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것은 대개 그 여자와 관련이 있다. 가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많은 어리석은 여성이 직접 자기 가정을 무너뜨린다.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잠언》 11:17-19)
여기서는 모두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의’라는 글자를 다시 강조하겠다. 절대로 잘못 이해하지 말라.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한다. 의인이란 무엇인가?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악인이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고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느니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잠언》 11:20-22)
돼지가 코에 구멍을 뚫고 금고리를 끼운 채 큰길을 비틀비틀 걸어가면 매우 우스워 보인다. 여자가 아름답지만 분별력이 없다면 비극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못생긴 것보다 물론 좋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분별력이 있는지가 핵심이다!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희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끼는 것도 가난하게 되느니라. (《잠언》 11:23-24)
나는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한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욱더 더해 주셨다. 나는 인색하지 않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은 도리어 궁핍하게 된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관찰해야 한다. 우리에게 지나치게 인색한 습관이 있는가? 우리는 나누어 주는 사람인가?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람을 세운다. 이것이 하나의 법칙이다!
어떤 사람은 매우 인색했다. 그는 우리 교회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자기의 많은 질병이 우리 가운데서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나 인색했는가? 내 사무실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방금 딩타이펑 만두를 먹고 왔습니다.” 이게 무슨 생각인가? 딩타이펑 만두를 먹었으면 몇 개라도 내게 가져다주지 그랬는가? 그런데도 내게 와서 말하다니! 정말 몹시 인색해서 한 푼도 내놓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부유해지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 운명이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물론이고,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도 이렇게 인색하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25)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는가? 내가 하는 일은 내어주고, 사람을 윤택하게 하며,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나의 핵심 사역이다. 우리는 사람을 큰 소리로 할렐루야만 외치는 얼빠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훈련한다. 내가 이런 기독교인들을 얼빠졌다고 표현하는 것을 탓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내가 아는 경직되고 인색하며 극도로 이기적인 기독교인은 매우 많다. 그들도 교회에 다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자세히, 천천히 관찰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이곳은 나누어 주는 곳이고, 사람을 축복하는 곳이며, 내어주는 곳이다. 모두 이해했는가? 자신에게 유익한 일조차 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섬기겠는가? 섬길 수 없다! 이곳은 대가를 치르는 곳이지, 이익을 가로채는 곳이 아니다.
여러 해 전 나는 통닭, 오리구이, 간장 소고기로 많은 먹보들을 끌어들였다. 그들은 먹으려고 교회에 왔다. 나중에 나는 이런 먹보들이 이렇게 많이 와서 무엇을 하겠는가 생각했다.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교회에서는 도시락만 제공했다. 도시락은 점점 과일 한 접시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그 과일 한 접시도 없어졌다. 나는 생수를 한꺼번에 많이 사 놓고, 마시려면 1위안을 넣어야 한 병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내가 인색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곳은 반드시 사람이 헌신하는 법을 훈련받는 곳이어야 한다.
당신이 매우 인색한 사람이라면 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다! 하루 종일 자신의 일과 아들, 손자 같은 사소한 일들로 바쁘고,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 왜 그런가? 자신이 기대하는 목표와 어긋나고 시간상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집안의 사소한 일들을 잘 관리하게 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건대, 우리가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반드시 풍족해지고, 반드시 더해지며, 반드시 윤택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이 번성하리라. (《잠언》 11:27-28)
우리 가운데 새로 온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당신은 어머니나 가족에게 보여 주기 위해 믿는 사람인 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머릿속에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하고, 이전에 걸어온 길이 막다른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런가? 자기 이익만 구하고 재물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정말 비참하다. 서른이 넘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빚을 잔뜩 지고, 그 빚을 예순 살이 되어도 다 갚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애타하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이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잠언》 11:30-31)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는다. 물고기를 얻는다는 말이 아니다. 보라. 의인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하물며 악인과 죄인은 얼마나 큰 심판을 받겠는가? 정말 비참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얼마나 비참한가! 사람이 관찰하지 않고 함부로 일을 처리하고 엉망으로 처리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나는 그를 위해 애가를 불러 주고 싶다.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는 바람을 상속하고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잠언》 11:29)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이기적이 되고 어느 정도까지 재물을 의지하면 자기 가정을 해치게 된다. 그러면 결국 바람을 상속받게 된다. 홀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있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높은 건물을 보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양쪽을 바라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면 저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것이 비극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이기적이 되면 자기 가정을 해친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넉넉함을 살아 내고,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모습을 살아 내야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며, 죽은 뒤에는 하나님께 돌아가게 될 것이다. 사람이 평생 이기적이고 편협한 상태로 살아간다면 귀신의 형상을 살아 내게 된다. 귀신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귀신 하나를 보내 당신을 괴롭히실 것이며, 당신은 저주 가운데 살게 된다.
결론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한다. 넉넉한 사람이 된다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넉넉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인색하게 살다가 하루 넉넉하게 살고는 그것으로 무언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평생 넉넉하게 살아왔는데도 오늘날 여전히 이렇다. 그런데 당신이 하루 넉넉하게 산다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형제자매들은 어리석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관찰을 마친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보고,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많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당신이 성장했다는 뜻이다. 사실 당신도 예전에는 그들과 같았지만 자신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우스운 일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지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다음, 하나님을 잘 의지하며 이 인생의 길을 달려가야 한다.
아름다운 결말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