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讲的《哥林多后书》的十一章,洋洋洒洒让我讲了一个小时。三分之二讲的是我自己,三分之一讲的是人家使徒保罗,所以我也成了愚妄人。十一章的主题叫做:“断绝那些寻机会人的机会”。这个是答疑解惑的时间,大家把你的问题发过来。我试试看,不一定有那么清晰的好答案。
Q1:老师,“他们是希伯来人吗?我也是。他们是以色列人吗?我也是。他们是亚伯拉罕的后裔吗?我也是”。这其中他们是指谁呢?
哇,很好的问题啊,你问的问题太好了。这个问题就是他们是谁呢?我告诉你,他们就是彼得和彼得的那些小爪牙。那这些人跟着彼得,然后可能其中也有雅各。
那这些人都是谁呢?我告诉你。你比如说彼得在加拉太这个地方的时候﹐然后从雅各那个地方一来人﹐彼得就在那里开始装假。也就是说这些犹太人、法利赛人混进了教会,结果他们的势力是非常的强大。我们也不知道他们怎么就跟彼得呀,雅各呀,都上了一条船了。然后他们那个势力大到什么程度呢?连彼得都害怕。
我也觉得很奇怪。你是老大,或者起码也是个老二,害怕下面的人。我就觉得这是什么逻辑?那这些人狐假虎威啊。把谁搬出来了呢?把他们曾经欺负的彼得给搬出来,这是大使徒,所以你们得听他的。
那耶路撒冷教会好啊?穷得叮当乱响的。所以这些人就是典型的犹太人、法利赛人。那这些人,我跟你讲,人家说的我们是希伯来人啊,我们是以色列人啊,那你们这些人都是外邦人,我们才是正统啊。
他们忘了保罗也是犹太人,保罗也是以色列人,保罗也是亚伯拉罕的后裔。他们忘了,他们以为他们是正统。而且我跟你讲,他们法利赛人的袍子还穿着,有的时候那个发型梳得也像耶稣似的,然后穿那个棕色的袍子穿得也跟耶稣似的。就那样,然后走过来了。我就觉得哎呦,这得多牛啊!是吧?
一说彼得,人家是真正跟过耶稣的,保罗没跟过耶稣都不知道。那是耶稣升天的时候,人家彼得在下面。是不是?那圣灵降临的时候,五旬节是彼得在那讲道。一讲道五千人信主,一讲道五千人信主,厉害!可厉害了。后面那些很朽的事儿他就不说了。
今天咱们大家这么说,我就想起当年,当年其实我们是在一个教会的下面,一个小分堂。我们教会当中的一个会友啊,写信给总部的大师。说我讲的不对,哎哟,洋洋洒洒写了一大篇。为啥?因为他觉着那个是正统。人家也有资格做正统,所以我们呢,充其量就是一小统。一个小统,但没关系,我告诉你,人得好好读《圣经》,不能把这些东西当做什么东西来证明。听明白了吗?
而且我这个人说话言语粗俗,经常让人听了以后不舒服。有些人花了好几年的时间才习惯我说的那句话,这什么脑子?一脑子稀屎。那你怎么还骂人呢?这不是骂人,这就是说了句实话。所以说我想今天咱们弟兄姐妹,别指望把什么人搬出来能说明啥,是不是啊?啥也说明不了,如果他是以扫,亚伯拉罕的孙子,以撒的儿子以扫,没有用。
Q2:老师好,如果一个人身上还没有得释放,还能为别人祷告吗?
能。我告诉你,一个人身上没有得释放,但他奉耶稣的名服侍人,那不是因为他做的,是耶稣做的。是神的灵做的。其实人服侍不是因为人够好,是因为人够烂。包括我服侍你,不是因为我够好,是因为我够烂。我知道我有多烂。
所以大家不要被这种谎言所迷惑,这个问题本身就是一个谎言。原来那些教会其实直到今天仍然活在谎言当中。那么这种谎言是怎么说的呢?他们说你看啊,你要服侍人,你不能有破口。如果你有破口,服侍完了,鬼会上到你身上。听过这话吗?听过。那么这话是神的话吗?其实不是。
保罗训练的人也好,还是耶稣年间训练的人也好,训练了一段时间就成圣人了?没有破口了?然后出去传福音,鬼就听他们的了?不是的。他们是奉耶稣的名,所以鬼听了他们。鬼听了他们,是因为耶稣厉害。所以今天咱们弟兄姐妹千万不要以自己的生命来传福音。就你的那个生命就算了吧,别用你的生命来传福音了。
你看我信主信得多好。不信主的人一看,哎呀,你身上还有这毛病、那毛病。大家得知道我曾经得出过一个很清楚的结论,大家小心啊。如果你要想卖房子也好,做啥也好,找中介别找基督徒。听明白了吗?基督徒这玩意儿烂得特别多。为啥?做事不上道,不靠谱。
如果他说你跟我一起做生意吧,咱俩一起开店吧。为啥呢?我是基督徒,你也是基督徒。拉倒吧,别开。开了肯定完蛋!所以要知道,小心。我以前请过员工,请的基督徒全是烂的。然后满口的哈利路亚,我真也是服气呀。
所以说人身上没有得释放,就服侍,我告诉你这也很正常啊。因为你是奉耶稣的名服侍。但是很多基督徒,他是个假的呀。他自己不行还觉着很高傲。我是基督徒,我是什么,其实不是这么回事。我好像回答问题回答偏了啊。别相信这些什么破口不破口。我告诉你啊,我们直到今天,浑身都是破口多得像筛子似的啊。
Q3:人总是喜欢偏邪,总爱负面。我也有这方面的问题。但很多时候我不知道,还觉得自己很对,还想去掰别人。怎么能从这里走出来?
哎呀,这话很有意思啊。我告诉你啊,如果你整的那些事不是有神的话,就算了吧,就觉着自己天然的就不对。别上来觉着自己对,其实又不知道哪里对。如果你不知道哪里对,不知道神的话是怎么说的,你那个那就算了,就是错的,天然的就当做错的。如果不是从学神的话来的,那我看啊,就别觉着自己对了。所以就容易走出来。
如果人一旦不知道自己说的是对是错,又找不到神的话,然后还觉着自己是对的,那就坏了。几乎百分之百都是人的意思。
Q4:《哥林多后书》十一章第十六节到十八节“我再说,人不可把我看作愚妄的,纵然如此,也要把我当作愚妄人接纳,叫我可以略略自夸。我说的话不是奉主命说的,乃是向愚妄人放胆自夸。既有好些凭血气自夸,我也要自夸了”。这里保罗是不是在讲反语,不是很理解,能不能再解释一下?
其实这话,我问你,保罗他真的觉得自己是愚妄人吗?不是。是因为哥林多人觉得他是愚妄人:你看你看,又开始讲这种话了。如果你跟别人对话,我们表明是耶稣基督的仆人。别人说:你看你看,又开始讲愚妄话了。
所以说保罗写这话是先堵住他们的口,就算我是愚妄人,你把我的信读明白,是吧?先暂且接纳我这个愚妄人。然后读明白了,你就知道我略略自夸,我夸的是啥?是不是?那些人凭血气自夸,凭什么血气?他是以色列人,他是法利赛人,他是法利赛教们的。我跟你讲那些人很坏,为什么呢?因为他们是守摩西的律法,他们不是信耶稣基督。
那守摩西律法这个事儿,是谁做老大的?耶稣基督的肉身的弟弟雅各,就是写《雅各书》的雅各,哇,他把那个摩西的律法捧得老高了,他把他哥哥耶稣给弄得老低了,就全整颠倒了。然后正合法利赛人的胃口,所以就来败坏教会了。是不是?
你看一个是耶稣的弟弟,一个是使徒彼得,所以这是凭血气。他们能够自夸,我也要自夸。但是他们自夸的那些东西是啥呢?他们把几个忧郁症释放了呢?不过是守摩西律法夸口而已,凭着血气夸口,凭着守律法而已。直到今天教会推崇道德观念,跟这是如出一辙的。所以弟兄姐妹你要知道,保罗说的愚妄。是说,我先把我自己说成是个愚妄人,只要你们接纳我,读明白了我的书信,你就知道我说的是啥。
Q5:老师,我对这个亏欠还不是很清楚,是羊还是牧者?
你要让你牧养的羊常觉得亏欠,他就好受了,听明白了吗?他跟牧者识别善恶,那就是眼看着就要败亡了。但如果他不觉着亏欠你,那败亡得快。如果他觉着亏欠你,他败亡得就慢一点儿,听明白了吗?
那我们做牧者的,要告诉他,要像保罗这样告诉他,我们没有占你的便宜。其实我们也真不占人便宜。真的要谨守啊,凡事谨守。如果我们当中的小牧者要想占便宜,过来占我的便宜,我不怪你啊。这就是关键,不要向下占便宜。那保罗甘心让他们这些人占便宜正常,是他牧养的嘛。在后的将要在前,在前的将要在后。大的服侍小的,不是小的服侍大的。
Q6:老师,我的家族里奶奶、父亲、叔叔都是癌症去世的,我也是很偏邪,一遇到事儿就往负面去想,怎么从偏邪里走出来?
这是个好问题。第一要效法耶稣,然后效法亚伯拉罕、以撒、亚格、约瑟。为什么我们要读《圣经》?就是因为读了这些东西以后,我们知道要效法谁。
然后一定要开始看透人活着是咋回事。癌症是活在迷思当中啊。癌症不可能把活着这事看透。为什么老负面?因为你觉得那事很重要。如果那事不重要,你还看重吗?就不看重了嘛,你还会负面吗?比如说你,有人拿了你一分钱,现在可能找不到一分钱,拿了你一毛钱,你会难受吗?你不会难受。因为那一毛钱对你来讲好像可有可无。有那一毛钱也不会富有,没那一毛钱也不会穷,是不是?那人为什么常常负面呢?因为常常觉得那事儿很重要。
人一旦要看透了活着是咋回事儿,就好办了。我看见癌症是看得最不透的,一辈子活在迷思当中。还有一种人,看透了以后,人这一辈子什么本事也没有。没有能力赚钱,没有能力养活自己,总想靠着人吃,趴在人身上吃。如果人不给你机会啃他,要么啃老,要么啃老公,要么啃老婆。就是没有机会啃的时候就难受。为啥?因为没能力赚钱,做啥啥不行。听明白了吗?
所以说人要活着,又要活下去,又干啥啥不行,又没有钱,又穷,所以很多事儿就都是事儿。所以最后归根到底,就是人一旦都很努力地想活下去就成问题了。如果你很努力的死,很努力的看透,比如说明天就要死了,你今天肯定看透了。是不是?你还偏邪吗?所以人之将死,其言也善。就是这么个逻辑。所以人一定要看透。然后这个效法《圣经》里这些人物,这些人都是看透的。我告诉你啊。因为我们里面装满了属世界的逻辑,所以他就偏邪。
今天我们就答疑到这儿。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고린도후서》 1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장을 읽어보셨다면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될 텐데, 바로 이 장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가 아직 돌아서기 전에 기록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회가 완전히 돌아서기 전에 쓴 서신이 《고린도후서》 안에 그대로 수록된 것입니다.
이 장의 말씀을 읽고 나서 당시의 상황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전에 저는 미숙했을 때 《고린도후서》 11장을 읽으면서 바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저는 바울이 한 말이 사람들을 마귀의 거짓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사실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보십시오, 내가 당신을 이렇게 섬겼고 이렇게 고생했습니다"라고 밝히는 것은 사실 듣기에 매우 어색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정말이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목양을 해보지 않았을 때는 이 구절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목양을 하면서 어떤 형제자매들이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왜 그리도 악하고 기괴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종종 매우 이상한 음성들이 불쑥 떠오릅니다.
저는 지난 수년 동안 수많은 영적 전쟁을 치렀고, 단언컨대 저는 정말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말을 하면서까지 사람을 그 속에서 간신히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사도 바울이 한 말을 깊이 이해합니다.
이 장의 제목은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라"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역사합니까? 마귀는 어떻게 일할까요? 분명 사람을 통해서 일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기회를 엿보며, 교회를 무너뜨릴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기회를 엿봅니까? 바로 교회에 숨어 들어온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분별하지 못할 때 철저히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제 안에 이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성경 내용을 비교적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보며 그들에게 결코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상태로 교회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권면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대화하는 그 형제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속의 귀신이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분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여러분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온 사람이 온몸에 귀신을 달고 와서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영적 전쟁은 싸우기가 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 속에 거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겠습니까? 바로 사람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하나씩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제가 총명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다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 때마다 더 깊은 감회가 밀려오며, 매번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목회자라면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좋은 사람 노릇만 하려 든다면 이런 말을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1. 마귀는 사람을 무너뜨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마귀는 당신을 무너뜨릴 기회를 놓치지 않는데, 귀신이 당신을 무너뜨리러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회자는 반드시 한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마귀가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아십니까? 마귀는 교회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고 느끼게 하고, 목회자가 당신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꼭 빚진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목회자에게 빚진 느낌을 들게 만드는 그 수법을 저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서 마귀에게 어떠한 틈도 주어서는 안 되며,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목회자는 마귀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만약 목사가 교인에게 빚을 지고 교인에게 돈을 빌린다거나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음 날 마귀가 그 사람 속에 거짓말을 퍼뜨릴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빚진 것이 없어도 마귀는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빚진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바늘 하나 취한 적이 없고, 어떠한 이득도 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었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값없이 주었음에도 마귀는 그러한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목회자가 실제로 성도에게 빚을 졌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퍼뜨리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들이 항상 목회자에게 빚진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해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늘 사랑의 빚진 자로 여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이 늘 제게 빚진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쪽에서 여러분에게 늘 빚진 자의 마음을 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이 '목사님이 내게 진짜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여긴다면 정말 큰일 납니다."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고린도후서 11:1-6)
한번은 우리 중 한 자매가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다른 자매가 "목사님, 그 자매를 더 이상 책망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더 말하면 안 됩니까?"라고 묻자, 그 자매는 "보세요, 그 자매는 이미 목사님께 너무 면목 없어 하고 빚진 마음을 갖고 있는데, 계속 책망하시면 더 빚진 마음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정말 내게 미안하고 빚진 마음이 있다면 그런 굳은 표정을 짓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말들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런 말로 저를 속이려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늘 본질을 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왜 제 앞에서 언짢은 표정을 지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제게 빚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자기에게 섭섭하게 대하고 빚을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며칠 뒤 폭발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자신에게 큰 빚을 졌다고 느껴 폭발 직전까지 갔고, 마침내 마음속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 광경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귀신에게 어떤 기회도 줄 수 없습니다. 제 말씀의 검으로 본격적으로 맞선다면 귀신은 반드시 굴복해야 합니다. "이들은 내가 목양하는 형제요, 자매다. 귀신아, 너는 반드시 물러가라! 거짓말은 반드시 떠나가라!"
나중에 이 자매가 마침내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내가 뭘 어쨌기에 내게 굳은 표정을 짓습니까? 내가 뭘 했기에 이렇게 화를 냅니까?" 그러자 자매가 "목사님은 늘 저를 쏘아붙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내가 당신을 어떻게 쏘아붙였습니까?"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물었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을 쏘아붙였습니까?" 자매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어제 쏘아붙였습니까?" "아니요." "그럼 지난주에 쏘아붙였습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섬기느라 온갖 궂은일, 힘든 일을 다 도맡아 했는데, 결국 내가 당신을 쏘아붙인 게 됩니까?"
여러분, 기괴하지 않습니까? 귀신이 얼마나 간교한지 보십시오. 제가 배후의 귀신을 완전히 몰아세웠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서서히 제게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은 발악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죽이려 했는데 왜 안 죽지? 왜 내 말을 안 믿고 저 사람의 말을 믿는 거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온 힘을 다해 이 자매를 섬겼기 때문에 귀신의 거짓말은 제게 통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도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온 힘으로 맞서보려 해도 저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대가를 치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한 자매를 섬길 때 하마터면 마귀의 궤계에 빠질 뻔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 중에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상태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그렇습니다. 그 자매가 와서 말을 꺼냈을 때 저는 듣자마자 알아차렸고 귀신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당신 늘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지? 그럼 오늘 당신이 대가를 치르게 해줄까?"라는 식입니다. 덤벼보라는 것입니다.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당연히 힘듭니다. 연약해질까요, 안 연약해질까요? 당연히 연약해집니다. 마음이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당연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깁니다.
만약 제 육신의 생각대로였다면 갈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쳤을 것입니다. 제 평생의 치명적인 성향 중 하나가 바로 어리석음을 몹시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꺼내기만 하면 빗나가고, 핵심을 짚지 못하며, 방금 말을 해놓고도 요점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데로 끌고 갑니다. 온몸에 귀신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게 빚진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빚지지 않았는데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길 때 여러분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제 모든 힘을 다해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흠을 잡는다면 제게 빚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상대로 선악을 분별하며 따진다면 제게 큰 빚을 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소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하는 섬김이 있다면 제게 가져오십시오." 모든 사람이 제게 찾아오는 것이 두려울까요? 모든 목양의 문제를 제게 가져오면 어떻게 할까요?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한 사람씩 해결해 나갈 것이며, 결국 다 처리해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제게 늘 빚진 마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게 빚진 자로 느끼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덕을 세우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는데도 귀신이 거짓말을 퍼뜨리는데, 만약 제가 실제로 빚을 졌다면 다 속아서 미혹당하지 않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이 무엇으로 고린도 교회를 속였습니까? 지극히 큰 사도들을 내세웠습니다. 가장 큰 사도들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 빚진 것이 있었다면 완전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위하여 품는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이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내면에 거룩한 분노와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분개합니다. 귀신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은 실로 눈이 뒤집혀 덤벼드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품는 분노는 본래 하나님의 분노와 열심과 같은 것입니다. 왜일까요? 귀신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속이고, 속인 후에는 멸망으로 끌고 가며, 그러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열정이 솟구칠 때 귀신은 반드시 엎드러져야 하고, 마귀의 거짓말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정결한 처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꾸만 삐뚤어지고 빗나가기를 좋아하는데, 그 삐뚤어짐은 매우 악합니다. 여러분은 자신 안의 빗나간 성향을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 암 환자 내력이 있어서 아버지가 암 환자였고, 고모가 암 환자였고, 삼촌이 암 환자였다면, 뼛속에 이러한 어둠의 요소가 남아 있어 성인이 아닌 이상 단번에 깨끗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빗나가기를 좋아해서 생각만 하면 삐딱해집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생각만 하면 부정적으로 흘러갑니다. 며칠 전 섬겼던 한 자매도 그랬는데, 참으로 악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다 변화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탄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이러한 악령의 결박에서 반드시 해방하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어떤 자매가 머리가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길래 제가 "그러면 진통제 두 알 드세요, 기도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왜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기 싫으신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길거리에서 처음 들어온 사람도 제가 온 힘을 다해 섬기는데, 우리 교회에서 수년 동안 양육해 온 소목자, 대목자, 목구장에게 제가 어찌 섬기기 싫어하고 기도해주기 싫어하겠습니까?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 안에서 이런 삐뚤어진 음성이 들리고 왜곡된 생각이 올라올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읽어보면, 사람들은 정말로 쉽게 빗나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고, 제가 "이 사람은 참 세상을 사랑하는구나"라고 판단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여러분을 그곳에서 끄집어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를 따르고자 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에게 빚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모든 힘을 다해 이런 빗나간 것들을 박살 낼 것이며, 마귀에게 거짓말할 틈을 주지 않고, 마귀가 우리 형제자매들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3.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저는 베드로를 자주 언급합니다. 그는 가장 큰 사도였지만 어쩌란 말입니까? 그것 역시 거짓말의 빌미가 될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와 함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들먹인다 한들, 제가 거기에 휘둘릴 것 같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며 "주 예수님은 이러이러하셨는데 목사님은 사랑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해봤자 제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제 말이 비록 거칠지라도 지식은 거칠지 않습니다. 제 지식뿐만 아니라 제가 전하는 도(말씀) 역시 거칠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풀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고린도후서 11장을 성경공부하고 계시는데 어째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립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왜일까요? 그가 가장 큰 사도이든 누구이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목사를 들먹여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비록 이름 없는 작은 목사일지라도 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제게 맡겨지고 이 사람이 제 손에서 목양을 받는 한, 저는 분명 마음을 다해 섬길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 모두가 저를 위해 간증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섬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가 얼마나 온 마음으로 섬겼는지 알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저는 여러분을 마귀의 거짓말에서 끄집어내어 마귀가 여러분을 무너뜨릴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며,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니 아니니, 크니 작으니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도 바울처럼 전심전력으로 섬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 안에서 여러분은 도리도 배울 수 있고 지식도 배울 수 있지만, 대가를 치르는 일만큼은 쉽게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렇게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정말로 힘듭니다. 자랑하려거든 오직 우리 주 예수님으로 자랑할 뿐입니다. 제게 이러한 중심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한 말은 참으로 힘이 넘치고 당당합니다.
사람의 직함이나 명성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핵심은 발을 땅에 딛고 진실하게 배우고 본받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가운데 있는 소목자들과 목구장들은 진정으로 저를 본받아 참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새벽 두세 시에도 여전히 섬기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 단체 대화방에 함께 있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들이 여전히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녹아내릴 듯 감동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이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빚진 마음이 든다면 지금부터 이 길을 걸으며 우리를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길로 나아가십시오. 만약 오늘 여러분이 빚에 눌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빚을 탕감해 주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치우쳐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도 위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고린도후서 11:7)
4. 값없이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다
우리가 오늘날 단호하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서 유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도록 많은 유익을 받았고, 이는 제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유익을 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이 저를 본받아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에게서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나 사무엘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노년에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내가 너희의 것을 취한 적이 있느냐, 신발 끈 하나라도 취한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바울은 동일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어떠한 이득을 취한 적이 없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이 죄가 되느냐?" 귀신은 거짓말을 퍼뜨려 바울이 큰 이득을 노리고 밑밥을 깐 것이라고 고린도인들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신은 온갖 이야기를 다 지어냅니다.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고린도후서 11:8)
다른 교회들, 즉 마게도냐 성도들이 바울의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바울이 자기 손으로 자신과 동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의 공급을 두고 다른 교회, 즉 마게도냐 교회에 빚을 지고 삯을 받아 너희를 섬겼다고 한 것은 그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에게도 결코 폐를 끼치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마게도냐에서 먼 길을 찾아와 바울을 방문할 때 약간의 물품을 가져온 것, 그뿐이었습니다. 바울이 누구에게 빚을 졌습니까? 그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지혜로운 화법입니다.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고린도후서 11:9)
왜 이렇게 했을까요? 여러분이 무너질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무너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목회자가 형제자매에게 신세를 지거나 이득을 취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제가 참 탄식했던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공동체에 온 한 자매가 이전 교회의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교회에 갑자기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유력 인사이자 개국공신의 손녀사위라는 자가 왔다고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제게 왔다면, 저는 제 가장 좋은 것인 화인사명신학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진짜인지 사기꾼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손녀사위라는 자는 목사를 명품점으로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사게 했고, 결국 그 목사는 그 사람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저는 너무나 의아했습니다. 왜 그 목사는 그 사람에게 돈을 썼을까요? 왜 저는 돈을 쓰지 않을까요? 저는 그 사람에게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어떠한 관계를 맺거나 그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낼 기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왜 돈을 썼을까요? 장차 그 사람에게서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며, 어떠한 사리사욕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때로는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종종 제가 자기에게서 무언가를 바란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분명히 밝히건대,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으로 충분하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자인데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의 것을 취한 적도 없고, 이득을 취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베풀고 주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며, 늘 사람들에게 거룩한 빚진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빚진 마음을 절실히 필요로 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제게 빚진 마음을 갖든 안 갖든 저는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빚진 마음을 갖게 된다면, 마치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고린도후서》를 읽고 변화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갑자기 번쩍 깨달은 것입니다. "아, 우리가 바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구나!" 이 말이 비록 듣기 거북할지라도,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마귀와 싸워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하고자 한다면, 《고린도후서》 11장의 어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주 알려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들의 빚진 마음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고린도인들에게 빚졌음을 일깨워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돌이키지 못하고 결국 마귀에게 무너질 기회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늘 사람들을 섬기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차별 없이 온 마음으로 섬깁니다. 물론 "저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시험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겪어보고 나서, 제가 치를 수 있는 대가에 비해 자기는 시간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그를 섬길 수 있지만, 그는 제 섬김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피를 흘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받을 수 있고, 억울함을 겪을 수 있고, 수고와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이러한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 바울과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도전을 받아 사도 바울을 본받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5.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내다
값없이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며, 세상에 대하여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유독 좋아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세상을 떠난 이를 보러 갈 것 같은데, 육십 대의 한 좋은 친구가 세상을 떠나 감회가 깊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저는 이미 여러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고작 수십 년의 인생이 허무하기 그지없음을 봅니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반드시 생사를 초월하여 꿰뚫어 본 사람입니다. 세상의 이 하찮은 일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반은 세상을 사랑하고 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고린도후서》 11장을 전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왜 괴롭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괴로워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넘어질까 염려하여 괴로워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의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여깁니다. 저는 "어머니의 돈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어머니가 쓰고 싶은 대로 쓰시는 거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참 기가 막힌 사람이 있었는데, 제 동창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데도 어머니의 연금이 자기 돈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형님 댁으로 가서 살겠다고 하자, 그는 어머니에게 "기억하세요, 어머니가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 얼마가 남아야 하는지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는 그 돈이 자기 돈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냅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命定)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더 이상 의심하고 시험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와서 제가 말한 그대로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수도 없고, 여러분을 정결한 처녀처럼 그리스도께 드릴 수도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린도후서 11:23-29)
이 구절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우리 마음에 푯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이 말이, 만약 여러분이 그저 가끔 복이나 얻으러 오는 일반 교인이라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이런 무리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참 특이하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거룩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려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화인사명신학은 은혜신학입니까? 화인사명신학은 도대체 어떤 신학입니까?" 화인사명신학은 대가를 치르며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는 신학입니다! 무엇을 추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기꺼이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제 마음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왜일까요? 그들 모두 제가 일찍이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라고 권면했던 이들이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열매를 맺지 못했을지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해야 할 바를 다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과 열흘 전에도 저는 병원에 가서 그 친구를 병문안했습니다. 병원에서 저는 동역자 한 명을 데리고 갔는데, 제가 섬기는 모습을 본 동역자가 "목사님, 아직도 그를 이렇게까지 섬기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저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이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책을 읽었는데, 사람이 영적 정상에 올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활짝 열리고 길이 평탄해진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번민하고 괴롭고 몹시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내려놓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약 반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제 안에서 불현듯 책에 묘사된 것과 같은 평안과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문득 큰 감동이 임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염려하기 시작하고, 여러분을 위해 품는 분노가 하나님의 질투 어린 열심과 같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확 트이고 평안하며,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어느 한순간 마귀에게 속았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로 말미암아 마귀가 엿보던 기회의 길은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여 저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여기까지 들으시고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니 대단해졌구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6.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편안한 느낌이 아니며, 실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안에 타오르는 그 애타는 심정 때문에 나오는 말의 어조조차 달라지며, 그 말들은 마치 《고린도후서》 11장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상태에 이르면 마음이 평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일까요? 자기 자신의 하찮은 일들은 다 내려놓고, 도리어 교회의 일들을 짊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실족하는데 애타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애타고 안타깝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묵묵히 기도할 뿐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러한 짐들이 날마다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임을 압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사도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깨달을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영적 전쟁터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승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돌이켰습니까? 돌이켰습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바울이 참으로 이런 사람이었음을 발견하고 "우리가 어찌 바울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도가 편지를 들고 고린도로 갔고, 고린도 교인들은 이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디도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고린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섰다고 전했습니다. 마귀의 궤계는 다시 무너졌고, 마귀가 노리던 기회의 줄은 다시 끊어졌습니다.
7.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 조심하였고 앞으로도 조심하리라
승리했습니까? 승리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모든 걸음을 조심하며 신중하게 내딛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마귀에게 틈을 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하여 모든 일에 스스로 조심하고, 앞으로도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러한 조심함과 신앙의 정신은 계속해서 계승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수백 년간 굳건히 지켜왔으나 나중에는 점점 쇠퇴하여 중세에 이르러 교회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왜일까요? 교회가 로마 제국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로마 제국을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로마 제국에 물들어 오염된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가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말이 됩니까? 마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날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다시 사도 바울의 시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대가나 유익을 바라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바라야 하며 세상의 유익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익을 탐하는 순간 마귀에게 틈이 생겨 교회를 이리저리 흔들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교회가 여전히 혼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때로는 뒤돌아보면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도처에 함정이 널려 있고, 빠지는 순간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무너뜨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소목자이거나 목구장이라면 자신을 깊이 돌아보십시오. 어리석고 흐리멍덩하게 대충 넘어가며 매사에 조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조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그 거짓말이 거대한 그물처럼 사람을 얽어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물, 분주함, 이런 것들이 다 올무입니다.
8.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제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으니, 여러분이 저의 이 어리석은 모습을 용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울의 어법입니다.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바울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고린도후서 11:1)
그들이 용납했습니까? 처음에는 용납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용납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쁨으로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했던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린도후서 11:16-21)
이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누가 자기 얼굴에 금칠하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어찌 나를 보고 그리스도의 종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이 말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한 말이 아니라고 하며, 예수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바울 자신이 한 말이라고 밝힙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욕되게 하면서까지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화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욕되게 하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자랑하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에 불과하니 나의 이 어리석음을 용납하라"는 뜻이며, 실상은 역설적인 반어법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어법은 사실 그의 마음 깊은 곳의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 떼를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 오는 목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뜻을 사로잡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영적 전쟁터에서 사람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자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너희가 감히 자랑하니 나도 몇 마디 자랑하겠다." 본래 예수님께서 시키신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제게 "목사님, 또 자랑하시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당당히 선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30)
무엇이 약한 것입니까? "나는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이득을 탐하지 않는다. 기꺼이 고난을 받는다. 이것이 나의 약함이다. 나는 너희에게서 아무것도 취하고 싶지 않다." 남들은 여러분을 착취하고 이용해 먹으니 얼마나 대단하고 강해 보입니까! 바울은 "차라리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1:31)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증언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위해 증언하십니다. 오늘 단단히 결단하십시오. 이 말들이 듣기 좋든 듣기 싫든, 모든 일에서 사람을 세워주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고, 자기만의 안일한 삶에서 벗어나며, 썩어질 것에서 벗어나고, 거짓말에서 벗어나며, 헛된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후 고린도인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우리는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