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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후서 11장 -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으라

2024-08-21 34,934 哥林多后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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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11章-保罗和假使徒
  • 1 但愿你们宽容我这一点愚妄,其实你们原是宽容我的。
  • 2 我为你们起的愤恨,原是 神那样的愤恨。因为我曾把你们许配一个丈夫,要把你们如同贞洁的童女,献给基督。
  • 3 我只怕你们的心或偏于邪,失去那向基督所存纯一清洁的心,就像蛇用诡诈诱惑了夏娃一样。
  • 4 假如有人来另传一个耶稣,不是我们所传过的;或者你们另受一个灵,不是你们所受过的;或者另得一个福音,不是你们所得过的;你们容让他也就罢了。
  • 5 但我想,我一点不在那些最大的使徒以下。
  • 6 我的言语虽然粗俗,我的知识却不粗俗。这是我们在凡事上向你们众人显明出来的。
  • 7 我因为白白传 神的福音给你们,就自居卑微,叫你们高升,这算是我犯罪吗?
  • 8 我亏负了别的教会,向他们取了工价来给你们效力。
  • 9 我在你们那里缺乏的时候,并没有累着你们一个人;因我所缺乏的,那从马其顿来的弟兄们都补足了。我向来凡事谨守,后来也必谨守,总不至于累着你们。
  • 10 既有基督的诚实在我里面,就无人能在亚该亚一带地方阻挡我这自夸。
  • 11 为什么呢?是因我不爱你们吗?这有 神知道。
  • 12 我现在所做的,后来还要做,为要断绝那些寻机会人的机会,使他们在所夸的事上也不过与我们一样。
  • 13 那等人是假使徒,行事诡诈,装作基督使徒的模样。
  • 14 这也不足为怪,因为连撒但也装作光明的天使。
  • 15 所以他的差役,若装作仁义的差役,也不算希奇。他们的结局必然照着他们的行为。
  • 16 我再说,人不可把我看作愚妄的。纵然如此,也要把我当作愚妄人接纳,叫我可以略略自夸。
  • 17 我说的话不是奉主命说的,乃是像愚妄人放胆自夸;
  • 18 既有好些人凭着血气自夸,我也要自夸了。
  • 19 你们既是精明人,就能甘心忍耐愚妄人。
  • 20 假若有人强你们作奴仆,或侵吞你们,或掳掠你们,或侮慢你们,或打你们的脸,你们都能忍耐他。
  • 21 我说这话是羞辱自己,好像我们从前是软弱的。然而,人在何事上勇敢,(我说句愚妄话,)我也勇敢。
  • 22 他们是希伯来人吗?我也是。他们是以色列人吗?我也是。他们是亚伯拉罕的后裔吗?我也是。
  • 23 他们是基督的仆人吗?(我说句狂话,)我更是。我比他们多受劳苦,多下监牢,受鞭打是过重的,冒死是屡次有的。
  • 24 被犹太人鞭打五次,每次四十减去一下;
  • 25 被棍打了三次;被石头打了一次;遇着船坏三次,一昼一夜在深海里。
  • 26 又屡次行远路,遭江河的危险、盗贼的危险、同族的危险、外邦人的危险、城里的危险、旷野的危险、海中的危险、假弟兄的危险。
  • 27 受劳碌、受困苦,多次不得睡,又饥又渴,多次不得食,受寒冷,赤身露体。
  • 28 除了这外面的事,还有为众教会挂心的事,天天压在我身上。
  • 29 有谁软弱,我不软弱呢?有谁跌倒,我不焦急呢?
  • 30 我若必须自夸,就夸那关乎我软弱的事便了。
  • 31 那永远可称颂之主耶稣的父 神知道我不说谎。
  • 32 在大马士革的亚哩达王手下的提督把守大马士革城,要捉拿我,
  • 33 我就从窗户中,在筐子里,从城墙上被人缒下去,脱离了他的手。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고린도후서》 1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장을 읽어보셨다면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될 텐데, 바로 이 장의 내용은 고린도 교회가 아직 돌아서기 전에 기록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회가 완전히 돌아서기 전에 쓴 서신이 《고린도후서》 안에 그대로 수록된 것입니다.

이 장의 말씀을 읽고 나서 당시의 상황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전에 저는 미숙했을 때 《고린도후서》 11장을 읽으면서 바울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저는 바울이 한 말이 사람들을 마귀의 거짓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사실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보십시오, 내가 당신을 이렇게 섬겼고 이렇게 고생했습니다"라고 밝히는 것은 사실 듣기에 매우 어색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정말이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목양을 해보지 않았을 때는 이 구절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목양을 하면서 어떤 형제자매들이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왜 그리도 악하고 기괴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종종 매우 이상한 음성들이 불쑥 떠오릅니다.

저는 지난 수년 동안 수많은 영적 전쟁을 치렀고, 단언컨대 저는 정말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말을 하면서까지 사람을 그 속에서 간신히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사도 바울이 한 말을 깊이 이해합니다.

이 장의 제목은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라"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역사합니까? 마귀는 어떻게 일할까요? 분명 사람을 통해서 일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기회를 엿보며, 교회를 무너뜨릴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기회를 엿봅니까? 바로 교회에 숨어 들어온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분별하지 못할 때 철저히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제 안에 이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성경 내용을 비교적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보며 그들에게 결코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상태로 교회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권면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대화하는 그 형제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속의 귀신이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분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여러분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온 사람이 온몸에 귀신을 달고 와서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영적 전쟁은 싸우기가 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 속에 거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겠습니까? 바로 사람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하나씩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제가 총명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다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 때마다 더 깊은 감회가 밀려오며, 매번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목회자라면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좋은 사람 노릇만 하려 든다면 이런 말을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1. 마귀는 사람을 무너뜨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마귀는 당신을 무너뜨릴 기회를 놓치지 않는데, 귀신이 당신을 무너뜨리러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회자는 반드시 한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마귀가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아십니까? 마귀는 교회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고 느끼게 하고, 목회자가 당신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꼭 빚진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목회자에게 빚진 느낌을 들게 만드는 그 수법을 저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서 마귀에게 어떠한 틈도 주어서는 안 되며,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목회자는 마귀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만약 목사가 교인에게 빚을 지고 교인에게 돈을 빌린다거나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다음 날 마귀가 그 사람 속에 거짓말을 퍼뜨릴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빚진 것이 없어도 마귀는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빚진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바늘 하나 취한 적이 없고, 어떠한 이득도 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었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값없이 주었음에도 마귀는 그러한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목회자가 실제로 성도에게 빚을 졌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퍼뜨리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이 목양하는 성도들이 항상 목회자에게 빚진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해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늘 사랑의 빚진 자로 여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맞습니다! 여러분이 늘 제게 빚진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쪽에서 여러분에게 늘 빚진 자의 마음을 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이 '목사님이 내게 진짜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여긴다면 정말 큰일 납니다."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고린도후서 11:1-6)

한번은 우리 중 한 자매가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다른 자매가 "목사님, 그 자매를 더 이상 책망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더 말하면 안 됩니까?"라고 묻자, 그 자매는 "보세요, 그 자매는 이미 목사님께 너무 면목 없어 하고 빚진 마음을 갖고 있는데, 계속 책망하시면 더 빚진 마음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정말 내게 미안하고 빚진 마음이 있다면 그런 굳은 표정을 짓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말들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런 말로 저를 속이려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늘 본질을 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왜 제 앞에서 언짢은 표정을 지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제게 빚졌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자기에게 섭섭하게 대하고 빚을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며칠 뒤 폭발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자신에게 큰 빚을 졌다고 느껴 폭발 직전까지 갔고, 마침내 마음속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 광경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귀신에게 어떤 기회도 줄 수 없습니다. 제 말씀의 검으로 본격적으로 맞선다면 귀신은 반드시 굴복해야 합니다. "이들은 내가 목양하는 형제요, 자매다. 귀신아, 너는 반드시 물러가라! 거짓말은 반드시 떠나가라!"

나중에 이 자매가 마침내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내가 뭘 어쨌기에 내게 굳은 표정을 짓습니까? 내가 뭘 했기에 이렇게 화를 냅니까?" 그러자 자매가 "목사님은 늘 저를 쏘아붙이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내가 당신을 어떻게 쏘아붙였습니까?"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물었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을 쏘아붙였습니까?" 자매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어제 쏘아붙였습니까?" "아니요." "그럼 지난주에 쏘아붙였습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섬기느라 온갖 궂은일, 힘든 일을 다 도맡아 했는데, 결국 내가 당신을 쏘아붙인 게 됩니까?"

여러분, 기괴하지 않습니까? 귀신이 얼마나 간교한지 보십시오. 제가 배후의 귀신을 완전히 몰아세웠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서서히 제게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은 발악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죽이려 했는데 왜 안 죽지? 왜 내 말을 안 믿고 저 사람의 말을 믿는 거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온 힘을 다해 이 자매를 섬겼기 때문에 귀신의 거짓말은 제게 통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도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온 힘으로 맞서보려 해도 저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대가를 치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제가 한 자매를 섬길 때 하마터면 마귀의 궤계에 빠질 뻔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 중에 반은 사람이고 반은 귀신인 상태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그렇습니다. 그 자매가 와서 말을 꺼냈을 때 저는 듣자마자 알아차렸고 귀신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당신 늘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지? 그럼 오늘 당신이 대가를 치르게 해줄까?"라는 식입니다. 덤벼보라는 것입니다.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당연히 힘듭니다. 연약해질까요, 안 연약해질까요? 당연히 연약해집니다. 마음이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당연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깁니다.

만약 제 육신의 생각대로였다면 갈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쳤을 것입니다. 제 평생의 치명적인 성향 중 하나가 바로 어리석음을 몹시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꺼내기만 하면 빗나가고, 핵심을 짚지 못하며, 방금 말을 해놓고도 요점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데로 끌고 갑니다. 온몸에 귀신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게 빚진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빚지지 않았는데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길 때 여러분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제 모든 힘을 다해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흠을 잡는다면 제게 빚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상대로 선악을 분별하며 따진다면 제게 큰 빚을 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소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하는 섬김이 있다면 제게 가져오십시오." 모든 사람이 제게 찾아오는 것이 두려울까요? 모든 목양의 문제를 제게 가져오면 어떻게 할까요?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한 사람씩 해결해 나갈 것이며, 결국 다 처리해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제게 늘 빚진 마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게 빚진 자로 느끼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덕을 세우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는데도 귀신이 거짓말을 퍼뜨리는데, 만약 제가 실제로 빚을 졌다면 다 속아서 미혹당하지 않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이 무엇으로 고린도 교회를 속였습니까? 지극히 큰 사도들을 내세웠습니다. 가장 큰 사도들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 빚진 것이 있었다면 완전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위하여 품는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이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내면에 거룩한 분노와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분개합니다. 귀신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은 실로 눈이 뒤집혀 덤벼드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품는 분노는 본래 하나님의 분노와 열심과 같은 것입니다. 왜일까요? 귀신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속이고, 속인 후에는 멸망으로 끌고 가며, 그러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열정이 솟구칠 때 귀신은 반드시 엎드러져야 하고, 마귀의 거짓말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섬김의 목적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정결한 처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꾸만 삐뚤어지고 빗나가기를 좋아하는데, 그 삐뚤어짐은 매우 악합니다. 여러분은 자신 안의 빗나간 성향을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 암 환자 내력이 있어서 아버지가 암 환자였고, 고모가 암 환자였고, 삼촌이 암 환자였다면, 뼛속에 이러한 어둠의 요소가 남아 있어 성인이 아닌 이상 단번에 깨끗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빗나가기를 좋아해서 생각만 하면 삐딱해집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생각만 하면 부정적으로 흘러갑니다. 며칠 전 섬겼던 한 자매도 그랬는데, 참으로 악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다 변화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탄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이러한 악령의 결박에서 반드시 해방하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어떤 자매가 머리가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길래 제가 "그러면 진통제 두 알 드세요, 기도하는 데 지장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왜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기 싫으신가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길거리에서 처음 들어온 사람도 제가 온 힘을 다해 섬기는데, 우리 교회에서 수년 동안 양육해 온 소목자, 대목자, 목구장에게 제가 어찌 섬기기 싫어하고 기도해주기 싫어하겠습니까?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 안에서 이런 삐뚤어진 음성이 들리고 왜곡된 생각이 올라올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읽어보면, 사람들은 정말로 쉽게 빗나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고, 제가 "이 사람은 참 세상을 사랑하는구나"라고 판단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여러분을 그곳에서 끄집어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를 따르고자 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에게 빚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모든 힘을 다해 이런 빗나간 것들을 박살 낼 것이며, 마귀에게 거짓말할 틈을 주지 않고, 마귀가 우리 형제자매들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3.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저는 베드로를 자주 언급합니다. 그는 가장 큰 사도였지만 어쩌란 말입니까? 그것 역시 거짓말의 빌미가 될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와 함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들먹인다 한들, 제가 거기에 휘둘릴 것 같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며 "주 예수님은 이러이러하셨는데 목사님은 사랑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해봤자 제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제 말이 비록 거칠지라도 지식은 거칠지 않습니다. 제 지식뿐만 아니라 제가 전하는 도(말씀) 역시 거칠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풀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고린도후서 11장을 성경공부하고 계시는데 어째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립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왜일까요? 그가 가장 큰 사도이든 누구이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목사를 들먹여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비록 이름 없는 작은 목사일지라도 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제게 맡겨지고 이 사람이 제 손에서 목양을 받는 한, 저는 분명 마음을 다해 섬길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 모두가 저를 위해 간증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섬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가 얼마나 온 마음으로 섬겼는지 알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저는 여러분을 마귀의 거짓말에서 끄집어내어 마귀가 여러분을 무너뜨릴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며,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니 아니니, 크니 작으니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도 바울처럼 전심전력으로 섬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 안에서 여러분은 도리도 배울 수 있고 지식도 배울 수 있지만, 대가를 치르는 일만큼은 쉽게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렇게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정말로 힘듭니다. 자랑하려거든 오직 우리 주 예수님으로 자랑할 뿐입니다. 제게 이러한 중심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울이 한 말은 참으로 힘이 넘치고 당당합니다.

사람의 직함이나 명성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핵심은 발을 땅에 딛고 진실하게 배우고 본받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가운데 있는 소목자들과 목구장들은 진정으로 저를 본받아 참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새벽 두세 시에도 여전히 섬기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 단체 대화방에 함께 있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들이 여전히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녹아내릴 듯 감동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이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빚진 마음이 든다면 지금부터 이 길을 걸으며 우리를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길로 나아가십시오. 만약 오늘 여러분이 빚에 눌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빚을 탕감해 주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치우쳐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도 위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고린도후서 11:7)

4. 값없이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다

우리가 오늘날 단호하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서 유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도록 많은 유익을 받았고, 이는 제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유익을 주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이 저를 본받아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에게서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나 사무엘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노년에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내가 너희의 것을 취한 적이 있느냐, 신발 끈 하나라도 취한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바울은 동일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어떠한 이득을 취한 적이 없다.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이 죄가 되느냐?" 귀신은 거짓말을 퍼뜨려 바울이 큰 이득을 노리고 밑밥을 깐 것이라고 고린도인들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신은 온갖 이야기를 다 지어냅니다. 바울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고린도후서 11:8)

다른 교회들, 즉 마게도냐 성도들이 바울의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바울이 자기 손으로 자신과 동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의 공급을 두고 다른 교회, 즉 마게도냐 교회에 빚을 지고 삯을 받아 너희를 섬겼다고 한 것은 그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에게도 결코 폐를 끼치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마게도냐에서 먼 길을 찾아와 바울을 방문할 때 약간의 물품을 가져온 것, 그뿐이었습니다. 바울이 누구에게 빚을 졌습니까? 그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지혜로운 화법입니다.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고린도후서 11:9)

왜 이렇게 했을까요? 여러분이 무너질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마귀에게 미혹되어 무너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목회자가 형제자매에게 신세를 지거나 이득을 취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제가 참 탄식했던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공동체에 온 한 자매가 이전 교회의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교회에 갑자기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유력 인사이자 개국공신의 손녀사위라는 자가 왔다고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제게 왔다면, 저는 제 가장 좋은 것인 화인사명신학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진짜인지 사기꾼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손녀사위라는 자는 목사를 명품점으로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사게 했고, 결국 그 목사는 그 사람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저는 너무나 의아했습니다. 왜 그 목사는 그 사람에게 돈을 썼을까요? 왜 저는 돈을 쓰지 않을까요? 저는 그 사람에게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어떠한 관계를 맺거나 그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낼 기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왜 돈을 썼을까요? 장차 그 사람에게서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며, 어떠한 사리사욕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때로는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종종 제가 자기에게서 무언가를 바란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분명히 밝히건대,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으로 충분하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자인데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의 것을 취한 적도 없고, 이득을 취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베풀고 주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며, 늘 사람들에게 거룩한 빚진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빚진 마음을 절실히 필요로 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제게 빚진 마음을 갖든 안 갖든 저는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빚진 마음을 갖게 된다면, 마치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고린도후서》를 읽고 변화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갑자기 번쩍 깨달은 것입니다. "아, 우리가 바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구나!" 이 말이 비록 듣기 거북할지라도,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마귀와 싸워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하고자 한다면, 《고린도후서》 11장의 어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주 알려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들의 빚진 마음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고린도인들에게 빚졌음을 일깨워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돌이키지 못하고 결국 마귀에게 무너질 기회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엿보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늘 사람들을 섬기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차별 없이 온 마음으로 섬깁니다. 물론 "저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시험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겪어보고 나서, 제가 치를 수 있는 대가에 비해 자기는 시간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그를 섬길 수 있지만, 그는 제 섬김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피를 흘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받을 수 있고, 억울함을 겪을 수 있고, 수고와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이러한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 바울과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도전을 받아 사도 바울을 본받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5.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내다

값없이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며, 세상에 대하여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유독 좋아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세상을 떠난 이를 보러 갈 것 같은데, 육십 대의 한 좋은 친구가 세상을 떠나 감회가 깊습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저는 이미 여러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고작 수십 년의 인생이 허무하기 그지없음을 봅니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반드시 생사를 초월하여 꿰뚫어 본 사람입니다. 세상의 이 하찮은 일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반은 세상을 사랑하고 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고린도후서》 11장을 전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왜 괴롭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아직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괴로워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넘어질까 염려하여 괴로워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의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여깁니다. 저는 "어머니의 돈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어머니가 쓰고 싶은 대로 쓰시는 거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참 기가 막힌 사람이 있었는데, 제 동창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데도 어머니의 연금이 자기 돈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형님 댁으로 가서 살겠다고 하자, 그는 어머니에게 "기억하세요, 어머니가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 얼마가 남아야 하는지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는 그 돈이 자기 돈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냅니다. 무슨 뜻입니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命定)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더 이상 의심하고 시험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와서 제가 말한 그대로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수도 없고, 여러분을 정결한 처녀처럼 그리스도께 드릴 수도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린도후서 11:23-29)

이 구절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우리 마음에 푯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자 합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이 말이, 만약 여러분이 그저 가끔 복이나 얻으러 오는 일반 교인이라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이런 무리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참 특이하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거룩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려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화인사명신학은 은혜신학입니까? 화인사명신학은 도대체 어떤 신학입니까?" 화인사명신학은 대가를 치르며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는 신학입니다! 무엇을 추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기꺼이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제 마음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왜일까요? 그들 모두 제가 일찍이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라고 권면했던 이들이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열매를 맺지 못했을지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해야 할 바를 다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과 열흘 전에도 저는 병원에 가서 그 친구를 병문안했습니다. 병원에서 저는 동역자 한 명을 데리고 갔는데, 제가 섬기는 모습을 본 동역자가 "목사님, 아직도 그를 이렇게까지 섬기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저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이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책을 읽었는데, 사람이 영적 정상에 올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활짝 열리고 길이 평탄해진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번민하고 괴롭고 몹시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내려놓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약 반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제 안에서 불현듯 책에 묘사된 것과 같은 평안과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문득 큰 감동이 임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염려하기 시작하고, 여러분을 위해 품는 분노가 하나님의 질투 어린 열심과 같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확 트이고 평안하며,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어느 한순간 마귀에게 속았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로 말미암아 마귀가 엿보던 기회의 길은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여 저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여기까지 들으시고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니 대단해졌구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6.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편안한 느낌이 아니며, 실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안에 타오르는 그 애타는 심정 때문에 나오는 말의 어조조차 달라지며, 그 말들은 마치 《고린도후서》 11장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상태에 이르면 마음이 평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일까요? 자기 자신의 하찮은 일들은 다 내려놓고, 도리어 교회의 일들을 짊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실족하는데 애타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애타고 안타깝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묵묵히 기도할 뿐이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러한 짐들이 날마다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임을 압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사도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깨달을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영적 전쟁터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승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돌이켰습니까? 돌이켰습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바울이 참으로 이런 사람이었음을 발견하고 "우리가 어찌 바울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도가 편지를 들고 고린도로 갔고, 고린도 교인들은 이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디도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고린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섰다고 전했습니다. 마귀의 궤계는 다시 무너졌고, 마귀가 노리던 기회의 줄은 다시 끊어졌습니다.

7.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 조심하였고 앞으로도 조심하리라

승리했습니까? 승리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모든 걸음을 조심하며 신중하게 내딛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마귀에게 틈을 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하여 모든 일에 스스로 조심하고, 앞으로도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러한 조심함과 신앙의 정신은 계속해서 계승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수백 년간 굳건히 지켜왔으나 나중에는 점점 쇠퇴하여 중세에 이르러 교회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왜일까요? 교회가 로마 제국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로마 제국을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로마 제국에 물들어 오염된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가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말이 됩니까? 마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날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다시 사도 바울의 시대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대가나 유익을 바라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바라야 하며 세상의 유익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익을 탐하는 순간 마귀에게 틈이 생겨 교회를 이리저리 흔들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교회가 여전히 혼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나타내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때로는 뒤돌아보면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도처에 함정이 널려 있고, 빠지는 순간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무너뜨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소목자이거나 목구장이라면 자신을 깊이 돌아보십시오. 어리석고 흐리멍덩하게 대충 넘어가며 매사에 조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조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그 거짓말이 거대한 그물처럼 사람을 얽어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재물, 분주함, 이런 것들이 다 올무입니다.

8.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제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으니, 여러분이 저의 이 어리석은 모습을 용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울의 어법입니다.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바울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고린도후서 11:1)

그들이 용납했습니까? 처음에는 용납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용납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쁨으로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했던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린도후서 11:16-21)

이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말이 무엇을 뜻합니까? 누가 자기 얼굴에 금칠하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어찌 나를 보고 그리스도의 종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이 말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한 말이 아니라고 하며, 예수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바울 자신이 한 말이라고 밝힙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욕되게 하면서까지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화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욕되게 하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자랑하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에 불과하니 나의 이 어리석음을 용납하라"는 뜻이며, 실상은 역설적인 반어법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어법은 사실 그의 마음 깊은 곳의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 떼를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 오는 목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뜻을 사로잡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영적 전쟁터에서 사람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자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너희가 감히 자랑하니 나도 몇 마디 자랑하겠다." 본래 예수님께서 시키신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제게 "목사님, 또 자랑하시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당당히 선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30)

무엇이 약한 것입니까? "나는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이득을 탐하지 않는다. 기꺼이 고난을 받는다. 이것이 나의 약함이다. 나는 너희에게서 아무것도 취하고 싶지 않다." 남들은 여러분을 착취하고 이용해 먹으니 얼마나 대단하고 강해 보입니까! 바울은 "차라리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1:31)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증언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위해 증언하십니다. 오늘 단단히 결단하십시오. 이 말들이 듣기 좋든 듣기 싫든, 모든 일에서 사람을 세워주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고, 자기만의 안일한 삶에서 벗어나며, 썩어질 것에서 벗어나고, 거짓말에서 벗어나며, 헛된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후 고린도인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우리는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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