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神为什么要让摩西脱了脚上的鞋呢?
把鞋脱下来很简单,因为这个地方有神的同在,这块地是神圣的。如果你走在一个很神圣的地方,你是不是要多沾点回去?神的意思就是好不容易站在有神同在的地方,这个地方是圣洁的,所以脱下鞋子来赶紧多沾点。大家别以为我胡说、瞎掐、胡掰,其实不是,我告诉你遇到有神同在的地方,能多沾点就多沾点。
脱了鞋就不污秽了?脱了鞋更污秽!如果我碰到一个脚臭的我还拜托别脱鞋!我相信摩西的脚也够臭的,整天放羊出了汗,汗加上泥都沾一块儿长嘎巴了,我相信也好不了,那能好的了吗?然后神让他把鞋脱了,这是我自己瞎掰,你也许接受这个解释,也许不接受,但没关系,如果你让我碰到有神同在的地方,当然不能脱光,多不雅观,但是要能多沾点就赶紧多沾点,是不是?脱了鞋赶紧沾一点。所以说弟兄姐妹,我们得明白要多沾神的光。有时候我们碰到耶稣,赶紧按手,按一按摸一摸,弄一弄其实挺好!
Q2:神说不要近前来,请问这怎么理解?因为我们太污秽了,太近了,会被击杀?是这样吗?
大家一定要知道,我们一定要披戴耶稣才能近前来。如果说是我们需要披戴耶稣才能够近前来,就是耶稣基督的宝血会洁净我们的过犯。大家要知道在摩西那个时候,如果人擅自靠近神,结果人就会被击杀。因为人身上不圣洁,而神是圣洁的。所以神让摩西不要近前来,那后来怎么开始又能够跟摩西靠得那么近了呢?
我们里面就会有困惑是不是?我想大家一定要知道,圣洁跟不圣洁跟什么东西有关?跟我们里面的信心有关,这个时候其实摩西对神的信心也是非常的薄弱,摩西对自己没有信心,然后其实对神也不是很有信心。甚至出了埃及之后,还有相当长的一段时间神都在造就摩西的信心,所以后来到了山上以后,那个时候摩西就完全信靠神了。记住一个人有信心完全信靠神,他就会成圣,义人因信而生就是这个意思,所以人里面不相信神那是一个很麻烦的事。
Q3:在工作上如果我努力地做工觉得自己在依靠自己,如果不努力做工觉得自己脑懒惰,怎么办?
这话其实就是悟性不太通的人说的,工作上我努力做工就是依靠自己?我努力做工难道不能是依靠神吗?依靠神就是在那坐着等着掉馅饼吗?不是,人做工可以是依靠自己,也可以是依靠神,人奉献可以是依靠自己也可以是依靠神,人做服侍可以依靠自己也可以依靠神,人做牧师可以依靠自己也可以依靠神,听明白了吗?人如果觉得不努力做工就是依靠神,那是极大的迷思,人不是说努力做工,不努力做工是依靠自己还是依靠神,人是依靠神就是依靠神,如果不努力做工觉得自己脑懒惰,那不是脑懒惰是啥?如果不努力工作你以为不是脑懒惰那是啥?要好好努力做工。
Q4:大摧毁大使用,小摧毁小使用,是这样吗?
不是,神要使用一个人都得大的摧毁,你慢慢地了解,凡是属肉体的都是要被摧毁的,因为那种东西都是很败坏人的,所以不要说什么大的摧毁还是小的摧毁,《罗马书》写得很清楚,人属肉体神没有办法使用,更何况人的自信是一个很属肉体的东西。
Q5:为什么神向摩西说话的时候要显个荆棘火焰没烧坏的神迹?为什么不能就直接跟摩西说话?
我们的神老幽默了,幽默是很好的素质,故事讲起来挺好听的。如果神的显现是像火箭一样从摩西那边落下来,显现在摩西面前,或者是神一下子从耳朵掏出个定海神针,一下子就整出个什么来,对摩西说我是耶和华你的神,我觉得那是《西游记》,但是《圣经》里的这位神很特别。
为什么要用这个把摩西吸引来观看这件事呢?其实神迹自古以来都扮演很重要的角色,但是神行神迹的方式很特别。我觉得神就这么干了效果挺好的,你说神能不能在一个山顶上点一把大火,摩西带着一群羊爬山拼命爬上去看也有可能,但是这个事情就有点遥远了,所以神还是在附近整了一个灌木丛就在那里烧啊。我的回答好像不太像一个回答,但是我觉得我们的神就是一个那么幽默的神。
Q6:耶和华在荆棘里呼叫说摩西,摩西说我在这里。《出埃及记》第一章和第二章,从来没讲摩西认识神,摩西在逃难他岳父的那段日子也从来没有跟神说过话,摩西怎么就能知道那是神在叫他?为什么摩西蒙上脸,害怕神?
当时摩西是不太知道,后来不就知道了吗?《出埃及记》是摩西在后来认识了神之后才写的,后来肯定已经知道是神了。何况,人家摩西在荆棘听到有人喊他名字,他觉得自己是个狗屎,那就答应一下呗。死也无所谓了,就答应了,当时摩西不知道是神喊他,但是后来他成为了写书的人,这是他已经把以色列人从埃及带出来之后才写的。如果这个故事发生在这里,后来也什么事情都没有发生,对于摩西而言就是什么事情都没有发生,那他就不会写《出埃及记》了啊。
Q7:摩西不是为了以色列人都打死埃及人,逃离埃及那么多年,神叫他去带埃及人出来,怎么摩西还退缩了,一直推脱?这不是摩西的梦想吗?
就是他靠自己梦想破灭的时候,神开始使用他。其实人对自己很有信心的时候,神很难使用。人对自己没有信心的时候,再在这个根基上建造对神的信心,才能被神所使用。我们需要好好揣摩一下,摩西的梦想在做王子的时候,是凡事都靠自己的能力,但是神从来也不喜欢人靠自己的肉体,就是基督徒也不能靠自己的肉体做基督徒。所以不要靠肉体做基督徒,属肉体的梦想也没多大用处,靠自己的肉体是不行的。
Q8:神为什么给以色列人在出埃及考验之前还要告诉摩西,以色列人必听他的话,告诉他埃及王不会容他出埃及,还会告诉他们神即将要行的神迹?神为什么要做预告?
神做事都是先启示,然后发出预言,神要预先告诉人未来的事。读《以赛亚书》这样说:谁能告诉你未来的事呢?假神是不能告诉你未来的。祂说:我是耶和华,我是你的神。神做事都是把未来的事预先告诉我们。直到今天,神也在把未来的事告诉我们,神要毁灭这世界呀,神要怎么做呀,都早就告诉我们了。一定有预言,预言会成为我们道路上的明灯。
Q9:神怎么还手把手教摩西这么细致的东西。教他跟以色列人怎么说,教他跟埃及王怎么说。神咋教的比摩西他妈还细?神在生活中都会怎么教我呀?祂也会啪一下跟我说话,或者啪一下放一个心思意念给我教我吗?
其实我们的神是这样的。你以为我们的神像有的老板?坐在一个大桌子旁,大椅子里,像一个小人一样,觉得自己很气派,说:你干这个,你干那个,想怎么干就怎么干。如果你做老板做成这样,我想,你会有点小麻烦。大家知不知道真正的领袖应该做成啥样?真正的领袖是对事物的拿捏非常准确。神把这些事告诉摩西,就是想让摩西明白,神怎么说,摩西就该怎么做。这是非常要命的素质,就是神让他这么说,他就这么说,神让他这么做,他就这么做。
有些人不是,最难找的就是这样的人,你让他往东,他往西,找个听话的人很难的。有一些人你让他这样牧养,他偏不。倒是要有效果啊,他就要这么干,继续这样干。这是什么脑子啊?有的人就会说:我怎么就不能实现我的想法啊?我就什么也不说了。有的人脑袋就往墙上撞,那就撞呗,看你脑袋硬还是墙硬。咱们读东西要掌握事物的发展规律,其实掌握事物的发展规律很重要。我也不是说我整的东西都对,但是我的东西有效。
神教人是很细的,就是关于建造教会,神在《圣经》上指示我们,早就在《圣经》上描述清楚了。有几个牧师照着做了?我观察到的结果,使我非常诧异。就是在原来的教会常常干很多事,就是我说的:耶稣做的他不做,耶稣不做的,他做一大堆。耶稣做的最多的就是医治释放。轮到今天的牧师就说:我没有这个恩赐。这叫什么话呀?我说:你做的像耶稣吗?像耶稣有几个?他的理由一大堆,干脆开个理由站得了。
我就奇怪,建造教会不是很简单的事吗?《启示录》里提到了七个教会,得胜的怎么样,得胜的怎么样。他不这样做,反而说:我就要做一个失败的教会。这是什么脑子?神说:一网撒下去,一网打上来,好的挑在器具里,不好的丢掉。有的牧师专门把不好的收在器皿里。我就感慨啊。
最近有一件事很有意思,有个姐妹以前的牧师,专门去骚扰一些离开的弟兄姐妹。你看耶稣什么时候去骚扰离开耶稣的人?耶稣去挨家挨户请人回来?没有啊。而且留下来的,耶稣还问:你们也要离开吗?你看这话讲的?但是教会怎么就变成这样了?因为你自己整一套!所以我就借这话说:神教摩西教的很细。《圣经》里哪一个地方不细呢?耶稣教他的门徒不细吗?
比如我跟一个牧师说:耶稣训练了十二个门徒,训练完了,出去传福音,医病赶鬼。后来又训练了七十个门徒,也是出去传福音,医病赶鬼。如果一直训练到2021年会是怎么样?2021年训练完了,出去传福音,医病赶鬼。人家给我来了一句,那是得救的记号吗?把我给噎的半天都说不出话来。
人家有一套,不是耶稣那一套,你不觉得奇怪吗?你什么时候听耶稣说:这是得救记号吗?听完之后闹心。他说:你怎么会闹心呢?你的生命怎么这么烂呢?我告诉他,如果保罗在世上听完之后也闹心,耶稣听了也闹心。只有一个人欢心,那就是撒但。他说:撒但是人吗?我一看他就是个杠精。
神怎么说就怎么做,怎么这么难呢?你慢慢就明白了,神不让吃识别善恶树的果子,非得吃,还挨家挨家地发,要命啊。神说:要拆毁属肉体的。不这样做,非得养着一个大肉体,你说邪门不邪门啊。今天的牧者都是圣诞老人型牧者,就差穿着一个大红袍子,戴个圣诞老人帽,背个袋子,里面有好多礼物。谁需要这些呀?那有什么用啊?
1. 하나님은 자아가 허물어진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에서 이끌어 내어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어렵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는 완전히 믿음을 잃고 오직 하나님만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람의 자아를 철저히 깨뜨리고 허무셔서, 그 안에 하나님만 있게 하신다.
정말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그렇게 화를 내지 않고, 남을 트집 잡거나 상처받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할 수 있다.
2.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함께하시는가? 자신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이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섬김에도 큰 열매가 맺힌다!
자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사람이 자신을 믿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3. 결론
하나님께서 지금 완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택하고 계신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만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한평생 살아가는 일을 모두 꿰뚫어 보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만 추구하라!
핵심 단어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택하심
자아를 허무심
겸손
하나님을 신뢰함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출애굽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느덧 3장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이 장의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지만 모세와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게 하신다》입니다. 여기서 “너”는 우리 각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택하시든, 하나님의 목적은 여러분을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0)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어디로 데려가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3장은 그중 일부를 말하고 있으며,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2장의 내용은 《사람마다 자신의 운명이 있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점을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운명이 있다”는 말이 꽤 매력적으로 들리지요! 그러나 아무리 계산해도 근본까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부 관료이면서도 하루 종일 관상을 보고 점을 치다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계산해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왜 하루 종일 점을 보러 갈까요? 미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마다 자신의 운명이 있다”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낙담합니다. 사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선택된 사람은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많은 사람이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는지,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정말 알고 싶다면 2장의 성경공부를 들어 보십시오. 2장에서는 많은 경우 결국 우리의 선택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아가 허물어진 사람을 사용하신다
3장을 아무리 보아도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처럼 선택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읽어 낼 수 있습니까? 3장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양을 치고 내일도 양을 치며 해가 거듭되더니, 어느덧 40년 동안 양을 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을까요? 모세에게는 탄식과 체념만 남았고, 자신이 언젠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유머러스하시며, 우리가 가진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을 자주 하십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을까요? 모세는 광야에서 떨기나무 한 무더기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불꽃이 세차게 타오르는데도 나무는 계속 타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모세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끝났구나. 내 평생의 운명은 양 치는 것이구나.”
모세가 애굽에서 왕자였을 때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다. 보라, 수많은 아이가 죽었지만 나만 살아남았다. 나는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애굽 왕궁에서 왕자가 되었다. 애굽의 학문이라면 무엇이든 통달했고, 공부로는 일등이었다. 나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내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다!” 그러나 모세는 한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도망하기 시작했고, 미디안 제사장이 거주하는 곳까지 도망하여 미디안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미디안 제사장은 하루 종일 이방 신들을 섬겼고, 모세가 사는 곳은 온통 멸망받아야 할 것들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니, 집안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자신을 위해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지만, 아내가 너무 강해서 모세를 억눌렀습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느꼈지만, 나중에는 억눌려서 억울하다는 감정조차 사라졌습니다.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고 10년, 20년이 흘렀습니다.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자기 운명을 아는 나이에서 운명을 체념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길 때에는 자신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시고, 사람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 사람을 만나 주신다.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려면, 우리는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리고 콧구멍이 하늘을 향한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평생 이 정도일 것이라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가서 보려고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출애굽기》 3:4-6)
하나님께서는 만나자마자 자신을 소개하셨는데, 모세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두려워 곧바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부끄럽게 느꼈던 것입니다. 만일 40년 전, 애굽에서 왕자였던 모세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려는구나. 먼저 떨기나무를 헤쳐서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보자.” 그러나 지금의 모세는 40년 동안 철저히 타격을 받아 완전히 자아를 잃었고, 심리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크게 여기고, 자신이 대단하며 천하제일이라고 느낄 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모세는 자신에 대해 완전히 믿음을 잃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믿음을 잃은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세워지고 나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됩니다. 자신을 크게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사람이 자신이 그저 한 무더기의 개똥과 같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늘 자신을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기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것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좋지요! 오십시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탄식했습니다. “이것이 나를 도와 교회를 세우는 것인가? 분명히 교회를 정결하게 하는 것을 도와준 것이구나!” 어떤 사람의 자신감과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그 사람은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도 그를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너무 믿는 사람은 자신의 육감이 매우 정확하다고 자주 말합니다. 사실 그 육감은 모두 귀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을 매우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자매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따져 묻습니다. 남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말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했어?” 그러자 여자가 말합니다. “어젯밤 꿈에서 당신이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는 걸 봤어.” 남편이 말합니다. “나도 네 꿈속에 들어간 적이 없는데!” 그러자 여자가 말합니다. “내게 말하지만, 내 느낌은 아주 정확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겠습니까! 꿈을 하나 꿨다고 해서 남편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신을 너무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늘 자신의 느낌을 믿는데, 그러면 언제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사용하시려면 반드시 그 사람 안에 있는 이러한 자신감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완전히 허무십니다!
여러분께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면, 저도 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우습게 보였고, 정말 잘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저를 호되게 다루셨고, 제가 그저 한 무더기의 개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때까지 다루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한 번 노려보아도 괜찮습니다! 저를 한바탕 욕해도 괜찮습니다! 욕하려면 하라고 하십시오.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나를 존중하겠습니까?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쓸모없는 종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제 마음속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면, 제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이미 꿰뚫어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 형제자매가 여럿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은 그 가정에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왜 자신이 이 가정에서 존중받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데,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당신을 존중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이 제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해당한다고 느낀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해 주었는데 사람들이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마음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그럼 저는 왜 그런 느낌이 있는데 선생님은 없습니까?”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때에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란 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그저 한 무더기의 개똥에 불과하고, 쓸모없는 종일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해 놓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감사하시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시기 어렵습니다. 이때 모세는 완전히 무너져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양을 치는 운명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도 잊었고,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바로를 만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바로를 만나기는커녕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날 때에도 허리를 굽혀야 했습니다.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다. 나는 이미 80세인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몸이 아직 건강한 것 외에는 양이나 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모세는 자신이 한 무더기의 개똥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조금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사명조차 없다고 여겼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상처받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은 상처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상처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칼과 창도 뚫지 못하고 선악을 분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시고 사용하실 때에는 모두 이렇게 하십니다. 천천히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목회자는 걸음걸이부터 부자처럼 보이고, 마치 조직폭력배 두목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양을 쳤습니다. 10년째가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또 1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은 여전히 강했지만, 결과는 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30년이 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믿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믿음은 쓸모가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때까지 기다려야 비로소 쓸모가 있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근심을 알고 (《출애굽기》 3:7)
이 말을 들으면 선악을 분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기지 않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계획하셨습니다! 500여 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넘게 노예로 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군대를 세우시기 위해 모세의 자아를 허무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자아가 없어지고 자신을 완전히 잊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때에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노예로 살았지만, 그들 안의 자아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은 모두 자신의 사소한 일들이었습니다.
모세를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 그는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세를 모함하고 비방하고 헐뜯었는데도 그는 별다른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모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있을 때에는 많은 지식을 배우고 학문에도 뛰어났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완전히 자아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자아를 마음껏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자아를 포기한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모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완전히 자아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상처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이 온통 자아로 가득해서 다른 사람이 한마디만 해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능력은 없고, 예민하며, 자존심은 강하고, 성질은 몹시 사납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애굽에서 왕자로 살며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운 모세처럼 능력이 있다면, 수학·물리학·화학을 배우고 원자폭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원자폭탄은커녕 찻잎 달걀 하나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고 말하고, 온 세상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신이 한 무더기의 개똥과 같다고 여기면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나를 사랑하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니, 화낼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세의 성질과 자아는 모두 닳아 없어졌고,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비결을 나누겠습니다. 이것을 ‘개똥 비결’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개똥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노려보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해 주었는데 다른 사람이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힘을 다했는데도 다른 사람이 오히려 불평을 늘어놓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좋아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큰 사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그 땅에서 이끌어 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려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어 바로를 만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어떻게 보내실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택하시려 한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일련의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무너졌고, 더 이상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자아가 완전히 없어졌고,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이때 모세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바로를 만나러 가도 바로가 어떻게 자신을 상대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사진이 남아 있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이미 왕자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손에는 굳은살이 박였으며 옷은 낡고 해어졌고, 세월의 풍상이 모두 얼굴에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애굽 왕 바로를 만나러 간다면 바로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그를 무시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기운이 넘치는 모습으로 바로를 만나기를 바라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먹고살게 해 주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늙은 농부의 얼굴이 무엇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낮추고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인류 역사에서 모세와 사무엘은 가장 유명한 두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믿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행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수많은 귀신을 쫓아냈고, 마귀와 원수들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저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그대로 행합니다!
우리 웹사이트에서 한 사람이 도우미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는 그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행복 소그룹을 세우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우리를 찾아왔고, 그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곤경에서 이끌어 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쫓아내야 할 귀신이 이렇게 많고, 기도하여 치유해야 할 병이 이렇게 많으며, 재정의 억압을 받아 해방되어야 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행복 소그룹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특성을 여러분과 제가 모두 이어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대로 행하고, 절대로 하나님과 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고 하시는데 닭을 잡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목회자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반대로 가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으라고 하시는데 쫓아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하루 종일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에게 쫓기는 일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내가 날마다 바로를 만났지만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은 40년 동안 양을 쳤습니다. 지금 내 얼굴을 보십시오. 내가 바로를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 같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군대를 훈련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여러분은 그 말이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가 왕자였을 때 이런 말을 했다면 예의상 하는 말이었겠지만, 지금 그가 한 말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진실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개똥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를 날마다 간절히 기다렸고, 그때에는 믿음이 충만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한 무더기의 개똥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고,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도 부족하고 하나님도 능력이 없다고 여기면서 겸손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진정한 겸손은 ‘나는 부족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반드시 능히 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진정으로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기념이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돌보아 보았고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라
너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우리에게 광야로 사흘 길쯤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입히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12-22)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능히 하실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사실 지금까지 모세가 하나님을 얼마나 위대하신 분으로 여겼는지는 모세 자신에게도 이미 매우 모호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4장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나님께 가지 않겠다고 사양했습니다. 모세의 본성은 철저히 짓밟혀 완전히 자아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자신이 지극히 겸손하다고 말한 사람이 세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세이고, 또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며, 세 번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이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한 것은 일부러 겸손한 척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평생의 섬김도 모세와 같았습니다. 완전히 자아가 없어지고 그 안에 하나님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모세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데 자신은 공부를 못해서 자신감이 모두 사라졌습니까?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적지 않은데, 평생 빛나는 성취나 경험은 전혀 없고 쓰라린 일만 잔뜩 있습니까?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을 택하고 계십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자신의 운명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완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택하고 계신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처음에는 여러분에게 믿음이 그다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가 반드시 여러분을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수가 300만 명이 아닐 수도 있고, 30만 명이나 3만 명, 3천 명도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300명뿐일 수도 있습니다. 300명이나 30명도 없고 세 명뿐일 수도 있습니다.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려는 계획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믿음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때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농담으로 생각합니다. 제 학력도 낮지 않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그것을 의지한 적이 없습니다! 환경에 의해 일정한 정도까지 타격을 받고 짓밟혀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섬김에 큰 열매가 있는 이유입니다. 왜 제 섬김에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가 있습니까? 저는 결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제 능력은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이 유익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제 섬김에 큰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제가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많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감을 짓밟으시고 모두 없애 버리셨습니다. 제가 그저 한 무더기의 개똥이라고 느꼈을 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니, 얼마나 영광스럽게 나타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출애굽기》를 읽을 때 모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신감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그것은 별로 큰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제가 섬길 때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의 자신감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말도 매우 거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자신을 믿는 믿음은 아무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자신이 그저 한 무더기의 개똥이며 쓸모없는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남을 트집 잡겠습니까? 트집 잡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면서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여전히 상처받겠습니까? 상처받기 어렵습니다! 제가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지금 여전히 그것을 다루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시려면, 여러분이 오늘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던 모세와 같은 심리 상태가 되었는지를 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제가 마음이 매우 괴롭고 힘들었던 때에 한 선지자가 제게 손을 얹고 예언했습니다. 그는 제가 매우 어두운 통로를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멀리에는 작은 빛 한 줄기만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도 저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나왔을 때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저는 그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고 하나님께 짓밟히며,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자아가 없어진 사람입니다! 저는 기쁩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염려하는 것, 형제자매들이 세워지고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외에는 돈과 같은 다른 일들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론
신약성경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딤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4-10)
이런 일들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읽으면서 발견하는 것은 바울에게 완전히 자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졌는데 자신을 위해 은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졌는데 자신에게 충분한 저축이 있는지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여러분 모두가 반드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과 모세처럼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일을 모두 꿰뚫어 보아야 다른 일들이 쉬워집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0-14)
이 말씀을 듣고 혼란스러운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는 아직 사도 바울의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추구한 것은 우리 보통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이미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높이에서 이런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높이에 서서 여전히 재정이 회복될지, 몸이 건강할지 등 수많은 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다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하십시오. 억지로 자신을 그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가운데서 재정의 회복과 건강의 회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장차 여러분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사도 바울처럼,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며,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능력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