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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누가복음 6장 - 우리는 하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상편)

2020-11-18 32,240 路加福音 咒诅 安息日 怜悯 救恩 智慧 重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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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加福音06章-安息日的问题
  • 1 有一个安息日,耶稣从麦地经过。他的门徒掐了麦穗,用手搓着吃。
  • 2 有几个法利赛人说:“你们为什么做安息日不可做的事呢?”
  • 3 耶稣对他们说:“经上记着大卫和跟从他的人饥饿之时所做的事,连这个你们也没有念过吗?
  • 4 他怎么进了 神的殿,拿陈设饼吃,又给跟从的人吃?这饼除了祭司以外,别人都不可吃。”
  • 5 又对他们说:“人子是安息日的主。”
  • 6 又有一个安息日,耶稣进了会堂教训人,在那里有一个人右手枯干了。
  • 7 文士和法利赛人窥探耶稣,在安息日治病不治病,要得把柄去告他。
  • 8 耶稣却知道他们的意念,就对那枯干一只手的人说:“起来!站在当中。”那人就起来,站着。
  • 9 耶稣对他们说:“我问你们,在安息日行善行恶,救命害命,哪样是可以的呢?”
  • 10 他就周围看着他们众人,对那人说:“伸出手来!”他把手一伸,手就复了原。
  • 11 他们就满心大怒,彼此商议怎样处治耶稣。
  • 12 那时,耶稣出去,上山祷告,整夜祷告 神;
  • 13 到了天亮,叫他的门徒来,就从他们中间挑选十二个人,称他们为使徒。
  • 14 这十二个人有西门(耶稣又给他起名叫彼得),还有他兄弟安得烈,又有雅各和约翰,腓力和巴多罗买,
  • 15 马太和多马,亚勒腓的儿子雅各和奋锐党的西门,
  • 16 雅各的儿子(或译:兄弟)犹大,和卖主的加略人犹大。
  • 17 耶稣和他们下了山,站在一块平地上;同站的有许多门徒,又有许多百姓,从犹太全地和耶路撒冷,并推罗、西顿的海边来,都要听他讲道,又指望医治他们的病;
  • 18 还有被污鬼缠磨的,也得了医治。
  • 19 众人都想要摸他;因为有能力从他身上发出来,医好了他们。
  • 20 耶稣举目看着门徒,说:“你们贫穷的人有福了!因为 神的国是你们的。
  • 21 你们饥饿的人有福了!因为你们将要饱足。你们哀哭的人有福了!因为你们将要喜笑。
  • 22 人为人子恨恶你们,拒绝你们,辱骂你们,弃掉你们的名,以为是恶,你们就有福了!
  • 23 当那日,你们要欢喜跳跃,因为你们在天上的赏赐是大的。他们的祖宗待先知也是这样。”
  • 24 “但你们富足的人有祸了!因为你们受过你们的安慰。
  • 25 你们饱足的人有祸了!因为你们将要饥饿。你们喜笑的人有祸了!因为你们将要哀恸哭泣。
  • 26 人都说你们好的时候,你们就有祸了!因为他们的祖宗待假先知也是这样。”
  • 27 “只是我告诉你们这听道的人,你们的仇敌,要爱他!恨你们的,要待他好!
  • 28 咒诅你们的,要为他祝福!凌辱你们的,要为他祷告!
  • 29 有人打你这边的脸,连那边的脸也由他打。有人夺你的外衣,连里衣也由他拿去。
  • 30 凡求你的,就给他。有人夺你的东西去,不用再要回来。
  • 31 你们愿意人怎样待你们,你们也要怎样待人。
  • 32 你们若单爱那爱你们的人,有什么可酬谢的呢?就是罪人也爱那爱他们的人。
  • 33 你们若善待那善待你们的人,有什么可酬谢的呢?就是罪人也是这样行。
  • 34 你们若借给人,指望从他收回,有什么可酬谢的呢?就是罪人也借给罪人,要如数收回。
  • 35 你们倒要爱仇敌,也要善待他们,并要借给人不指望偿还,你们的赏赐就必大了,你们也必作至高者的儿子,因为他恩待那忘恩的和作恶的。
  • 36 你们要慈悲,像你们的父慈悲一样。”
  • 37 “你们不要论断人,就不被论断;你们不要定人的罪,就不被定罪;你们要饶恕人,就必蒙饶恕(饶恕:原文是释放);
  • 38 你们要给人,就必有给你们的,并且用十足的升斗,连摇带按,上尖下流地倒在你们怀里;因为你们用什么量器量给人,也必用什么量器量给你们。”
  • 39 耶稣又用比喻对他们说:“瞎子岂能领瞎子,两个人不是都要掉在坑里吗?
  • 40 学生不能高过先生;凡学成了的不过和先生一样。
  • 41 为什么看见你弟兄眼中有刺,却不想自己眼中有梁木呢?
  • 42 你不见自己眼中有梁木,怎能对你弟兄说:‘容我去掉你眼中的刺’呢?你这假冒为善的人!先去掉自己眼中的梁木,然后才能看得清楚,去掉你弟兄眼中的刺。”
  • 43 “因为,没有好树结坏果子,也没有坏树结好果子。
  • 44 凡树木看果子,就可以认出它来。人不是从荆棘上摘无花果,也不是从蒺藜里摘葡萄。
  • 45 善人从他心里所存的善就发出善来;恶人从他心里所存的恶就发出恶来;因为心里所充满的,口里就说出来。”
  • 46 “你们为什么称呼我‘主啊,主啊’却不遵我的话行呢?
  • 47 凡到我这里来,听见我的话就去行的,我要告诉你们他像什么人:
  • 48 他像一个人盖房子,深深地挖地,把根基安在磐石上;到发大水的时候,水冲那房子,房子总不能摇动,因为根基立在磐石上(有古卷:因为盖造得好)。
  • 49 惟有听见不去行的,就像一个人在土地上盖房子,没有根基;水一冲,随即倒塌了,并且那房子坏的很大。”

제1부 녹음(누가복음 6:1-26):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누가복음 6장을 살펴봅시다. 6장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한 단락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주 산만해 보이고,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저자가 아주 형편없어서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독자는 그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저자가 표현하려는 내용은 아주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가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자인 우리에게 핵심은 저자가 표현하려는 뜻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편지를 썼는데, 여러분이 읽어 낸 것이 모두 혼자 추측한 것이라면 그 사람의 의도를 붙잡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언어 능력이 부족하면 사실 큰 손해를 봅니다.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분명히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해 주려는 것인데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고 속이려 하는데도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엉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6장 전체는 조금 긴데, 여러분 모두 이미 읽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읽어 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장의 주제를 찾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했지만, 제가 찾은 것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주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정말 그런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큰 단락에서 저자 누가는 무엇을 설명하려고 할까요? 누가는 사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의 관점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고, 본래 하늘 아버지처럼 부유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에는 귀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었고, 라멕은 더욱 심각한 정신적 질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거의 모두 크고 작은 정신적 질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각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의 메시지를 받고도 상대방이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처럼 되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 같은 분이 몇 명이나 된다고요? 제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사실 이것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부유해지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분명히 “부유해지고 싶습니다! 꿈에서도 부유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하늘 아버지처럼 부유해지고 싶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하늘 아버지처럼 부유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모두 하늘 아버지처럼 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귀신처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탐하거나, 다른 사람의 집을 탐하거나, 어쨌든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처럼 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선택해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고 저도 예수님을 믿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왜 예수님처럼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노력으로 금식하고 채식을 하고 경을 외우면 무엇인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많은 일을 해도 사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야만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본래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지워 주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천국이 가까이 왔고, 이 구원이 우리에게 임했으며, 여호와의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더라도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면 여러분과 저는 모두 하늘 아버지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이루어 낼 것인지 이루어 내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것인지 행하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내 왼뺨을 때렸는데 오른뺨도 내민다면, 그것은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것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하늘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의 본래 의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창조하실 때 주셨던 영광의 형상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이 되도록 회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유한 사람으로 회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회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되어 하늘 아버지의 능력을 가지도록 회복하고 계십니다!

안식일은 인자를 위하여 세워졌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렇게 하매 그 손이 회복되니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니라. (누가복음 6:1-11)

첫 번째 이야기는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삭을 조금 잘라서 껍질을 벗겨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는 내용입니다. 그 곡식은 꽤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이 예수님께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은 것은 왜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두 다윗을 존귀하게 여겼고 다윗의 행동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윗이 한 일은 옳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실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일어나 우리 가운데 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시고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자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인자를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의 제정이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하나님께 안식일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안식일이 매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식일에는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믿은 후 오히려 믿음에 눈이 멀었고, 성경을 읽은 후 오히려 성경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고, 선을 행하는 것조차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해치려고까지 했으니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바리새인처럼 경직되어 있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매우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십니다. 주님을 믿은 후 오히려 믿음에 눈이 멀어 상식조차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하늘 아버지의 형상이 아닙니다.

전에 한 전도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주변 친구들은 모두 그 전도자를 사회적 장애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알리페이도 사용할 줄 모르고, 위챗도 사용할 줄 모르며, 비행기표도 살 줄 몰랐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은 기도하고 방언을 하는 것뿐이었으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반적인 상식을 가져야 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다가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안식일에 이삭 몇 개를 잘라 먹은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은 《안식일 지키기》였습니다. 그 책에는 주일에는 돈을 써서도 안 되고 일해서도 안 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주일에는 감히 숙제도 하지 못하고, 일요일 밤 12시가 지나서야 숙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이 치료받은 것은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삭 몇 개를 자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손 마른 사람이 치료받은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믿은 후 경직되어 버린 상태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의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처럼 은혜와 긍휼이 충만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특정한 시간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큰 유익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나가서 일해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대체휴일 때문에 주일에 초과근무를 해야 하지만 다음 주에 쉴 수 있어서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상식을 끊임없이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이 들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행하지도 못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행하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떠듭니다.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병은 치료받지 못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경직성과 교조주의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데에는 아주 능숙합니다.

하늘 아버지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과 능력이 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에서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으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누가복음 6:17-19)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된다면 하늘 아버지처럼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에게서 능력이 나가 병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늘 하늘 아버지처럼 되기를 갈망합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제 손을 통해 치료받은 사람이 많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치료받은 후 제가 오순절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깊이 설명합니다. 복음 자체가 하늘 아버지처럼 은혜와 긍휼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전에 이런 견해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능력은 있지만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거나, 능력은 없지만 여러분을 매우 사랑한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모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능력도 있어야, 우리의 하늘 아버지처럼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능력도 있으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있을까요? 제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지 못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를 돕기 시작하셨고, 저의 좋지 않은 상황을 뒤집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도우셨을까요? 하나님께는 긍휼과 은혜와 사랑이 있으시며, 제가 그런 형편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저를 괴롭혔지만, 결국 저를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하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합니다. 긍휼과 은혜만 있을 뿐 아니라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든 예수님께서는 모두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을 떠날 것도 아셨고, 자신의 제자가 되지 않을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매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저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값없이 베푸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런 병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을 겪습니다. 동역자들이 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치료해 주세요.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대로 하게 두세요!”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가기를 원한다면 함께 달려가면 됩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억지로 묶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도 모두 하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과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저는 능력 있는 복음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능력 없는 복음은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다녔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제 아내가 병들었을 때 우리에게 아주 비싼 의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돈은 많이 썼는데 병은 낫지 않았으니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이것이야말로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때부터 지금까지 능력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며, 능력 없는 믿음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능력 없는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가복음 6장에 이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하며, 긍휼과 자비를 가질 뿐 아니라 능력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치유와 축사를 행하기》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첫 번째 글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처럼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능력 있는 복음은 은사가 아닙니다. 순수한 복음은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처럼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긍휼한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능력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만 있어도 안 됩니다. 마술사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술사는 사실 매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제가 막 주님을 믿었을 때, 동남아시아의 한 도박왕을 알게 되었고 그를 우리 교회에 초청하여 간증을 나누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꾼이었고, 그 역시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 지식도 없고 교양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도박왕으로 만들겠다!” 그 음성이 그의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속임수 도박 기술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돈을 걸고 도박을 했고, 도박을 할 때마다 반드시 이겼습니다. 원래는 형편없는 패를 뽑았는데, 패를 펼쳐 보면 좋은 패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뽑은 패가 아니었습니다. 영계의 것들은 매우 강력해서 패를 바꾸어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농촌에서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굿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향 한 다발에 불을 붙였습니다. 원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고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었는데, 악령이 그 몸에 붙자 생수를 마시듯 고량주 두 근을 마시고 생고기 한두 근을 먹었습니다. 향은 산소를 불어넣은 것처럼 아주 세차게 타올랐습니다. 이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영계의 일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점쟁이들이 그렇게 정확하게 점치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당이나 주술사도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도(道)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에는 모두 이치가 있습니다. 저는 지식인이라서 어떤 일이 논리적으로 들리지 않으면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논리는 매우 좋고 간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귀신이 제게 합법적으로 역사하여 저를 망가뜨렸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피 흘려 희생하며 죽으셨고, 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더 이상 합법적으로 저를 망가뜨릴 수 없고, 저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들어 보아도 매우 합리적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은 모두 좋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피 울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너희 지금 굶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너희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 있을진저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6:20-26)

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매우 비슷하지만, 듣기에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과 굶주린 사람과 슬피 우는 사람이 모두 복이 있을까요? 배부른 사람에게는 왜 화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제가 죄로 고통받은 적이 없고 매일 좋은 음식을 먹으며 아주 편안하게 살았다면, 제가 주님을 믿었을까요? 아마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 안에서 귀신에게 너무 심하게 괴롭힘을 받아 매우 고통스러웠고, 너무 가난했으며, 매일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진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에는 살아 있는 의미를 찾게 됩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하루하루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고, 세상에 하나님이 계신지 알고 싶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좋게 말하지 않으면, 저는 귀신과 가난과 굶주림과 슬픔에 떠밀려 교회에 갔던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후 가난한 사람은 부유해졌고, 굶주린 사람은 배부르게 되었으며, 슬피 울던 사람은 웃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면 더 많은 진리를 찾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다가 진리를 찾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주식시장과도 같습니다. 지금 지수가 얼마인지는 상관없이 오르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가난은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 제가 이해한 방식입니다.

사람은 배고플 때 무엇을 먹어도 맛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매일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그에게 무국 한 그릇을 끓여 주었습니다. 그는 그 국이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황제가 된 후에도 매일 무국을 먹고 싶어 했고, 전국을 다니며 예전에 자신에게 무국을 끓여 주었던 노인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 노인을 찾자, 노인은 예전과 똑같이 무국을 끓여 주었습니다. 황제가 그것을 먹은 후 노인에게 왜 이렇게 맛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자신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무국을 끓였는데 왜 지금은 맛이 없다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지금 황제가 배부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에 있으면 아래로 떨어지고, 아래에 있으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주식시장이 3분의 1 정도 떨어졌을 때 서둘러 사십시오. 반드시 오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우존스 지수가 18,000포인트에서 30,000포인트까지 오르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유하면 복이 있고, 배부르면 복이 있으며, 웃으면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슬퍼하다가 기쁨을 누리게 되면 그 느낌이 매우 강렬합니다. 그러나 매일 기뻐하면 기쁨에 대한 감각이 이미 무뎌집니다.

사람의 인생은 오르내림의 연속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퍼하는 상황에 있다면, 살아 있음의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왜 복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의 도를 찾고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주님을 믿느냐고요? 저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연구해 왔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사람은 쉽게 교만해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된다

솔로몬이 쓴 한 구절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는 지혜와 교만과 어리석음을 마음을 다해 탐구했다.” 그는 지혜와 교만과 어리석음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역자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대답이 정말 다양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자기 자신에 대해 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재판할 때 한 말은 모두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이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바 여왕은 많은 금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스바가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라고 전해집니다. 에티오피아의 여왕이 솔로몬을 만난 후 솔로몬의 아이를 임신하여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에티오피아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면 매우 교만해집니다. 어느 정도로 교만해질까요? 어떤 사람은 아내 한 명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데, 천 명이 넘는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내를 맞이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리석음에 빠졌습니다. 솔로몬은 궁전을 짓기 시작했고, 왕궁의 후궁들과 함께 우상을 숭배하면서 우상을 숭배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교만해진 후 어리석어지고, 어리석어진 후 오히려 겸손해져 전도자가 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혜와 교만과 어리석음을 마음을 다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람이 부유해지면 교만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입에 담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다가 결국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늘 자신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왜 목사님도 그렇게 자신을 낮추며 살아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도 정말 자신을 낮추며 살고 싶습니다. 큰소리치고 싶지 않고,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으며, 그저 착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예전에 제가 교만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저는 매우 어리석었습니다. 저에게 지혜가 있느냐고요?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으면 교만해질 자본도 생깁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지혜가 사라지고 어리석어집니다. 마치 아주 맛있는 고기도 상하면 냄새가 지독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사실 부유하고 웃고 먹고 마시며 즐길 때 재앙에 가까워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법칙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매우 교만했고, 그 결과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먹으며 광야에서 짐승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알게 되면 하늘 아버지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교만하신 모습을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언제 하늘 아버지께서 교만하신 모습을 보았습니까? 역시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소목자들은 사실 꽤 교만합니다. 저는 그들의 믿음을 세워 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나치게 세워 주면 그들이 교만해져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목양하는 사람들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의를 주려는 것입니다.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뭐 대단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붙들어 주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기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처럼 되기를 갈망하면 우리 안에는 그런 교만과 자만과 어리석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지혜로우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른 손을 한순간에 회복시키셨지만, 우리는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만하신 모습을 보았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거만하게 걸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사명신학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신학입니다. 여호와의 산을 오르는 일이 끝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도를 알아 가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절대로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한 것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며, 부유한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가난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모두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부유해집니다. 그런데 부유해지면 교만해지기 시작하고, 교만해지면 다시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순환과 같습니다. 믿어 가다가 사람이 교만해지고 고난을 겪은 후, 다시 자신이 가난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굶주림에서 배부름으로, 배부름에서 다시 굶주림으로, 슬픔에서 웃음으로, 웃음에서 다시 울음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순환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이 파도와 같은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 하나님을 알아 가며, 결국 우리가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

계속해서 아래 내용을 이야기하면 매우 길어질 수 있으므로, 몇 가지를 먼저 예고해 드리겠습니다. 27절부터 36절까지는 부유한 마음가짐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부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십니다. 37절부터 42절까지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고, 43절부터 45절까지는 맺은 열매를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며, 46절부터 49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다음번에는 방금 언급한 네 가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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