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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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십 년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2024-01-28 13,629 神同在系列 敬畏神 信靠神 一无所缺 人是神养的 贫穷的心态 不要惧怕打仗

《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나눌 제목은 조금 긴 편입니다. 사실 이 성경 구절이 길어서인데요, 제목은 바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입니다. 오늘 이 주제는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지난주에 우리가 잠시 다른 말씀을 다루느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대해 전하지 못했는데, 이번 주에는 이어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 그중에서도 성전을 관리하던 자들은 이러쿵저러쿵하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결핍(부족함)'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보았던 황스런과 양바이라오 이야기처럼, 그 양바이라오는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 가난한 와중에도 설을 쇠어야 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양바이라오라는 노인은 결국 딸아이에게 붉은 머리끈 하나만 사주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핍이며, 그 결핍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가난의 마인드'입니다. 사람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가난의 마인드입니다. 만약 사람이 평생 자신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음을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 평생에 부족함이 없고, 서른 살 때도 부족함이 없고, 마흔 살 때도 부족함이 없고, 쉰 살 때도 부족함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얹혀살며 부족함 속에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없고, 귀신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귀신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귀신이 당신을 괴롭히고 농락하는데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겠습니까? 평생 일어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귀신을 끌어들이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을 모셔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 채 걸핏하면 염려합니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갑자기 저를 찾아왔습니다. 부부가 왜 찾아왔겠습니까?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부부가 저를 찾아온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니 남편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래요?"라고 묻자, 그는 "일주일 내내 울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 일주일 내내 울면서 왜 진작 절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눈이 판다처럼 퉁퉁 부었네요. 판다처럼 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사람이 한심해지면 이렇습니다. 그래서 "왜 우는데요?" 하고 물으니, 아내가 임신을 해서 곧 아빠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데 왜 웁니까?"라고 하니 "돈이 없어서요"라고 했습니다. 부부 둘 다 수입이 매우 적어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아이는 하나님이 먹여 살리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이는 이 세상에 올 때 자기 먹을 양식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모가 키우는 줄 압니다. 물론 '이건 하나님이 키운 게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라며 온갖 사례를 들 수 있겠지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아이는 하나님이 먹여 살리십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는 기뻐하며 웃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훌쩍 컸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공동체에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먹여 살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로 염려합니다. 많은 일들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기이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집은 아이 둘을 키우며 가난하게 살고, 어떤 집은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도 가난하게 살지만 다 살아갑니다. 중국 사람들만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초원의 사자나 하이에나도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므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 아이가 자란 후 우리를 떠나게 되었는데, 왜 떠났을까요? 싱가포르 영주권이 계속 나오지 않고 신청할 때마다 거절당했기 때문입니다. 신청이 거절되자 아이는 이쪽으로 올 수 없어서 계속 국내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아이의 취학 문제로 염려하기 시작하며 아이가 이곳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실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먹여 살리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늘 이것저것 염려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하고 고생스럽습니까.

예를 들어 노인성 치매를 보십시오. 치매는 어떻게 걸립니까? 노인이 돈을 세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큰일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머지않아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고, 곧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관찰해 보셨습니까? 관찰해 보셨다면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왜 돈을 셀까요? 살아가는 데 돈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속에서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이 귀신이 얼마나 악질입니까?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돈을 세고 또 세다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치매에 걸립니다. 얼마 전에도 돈을 세던 한 노인이 세상을 떠났고, 그 전에도 돈을 세던 또 다른 노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염려가 대부분 쓸데없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이 염려한다고 해서 수명이 15분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염려하지 않는다고 해서 15분 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가 되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현상을 발견하셨습니까? 가만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6백만 위안을 빚졌습니다." 제가 "무슨 일인데요?"라고 묻자, "돈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갚지 마세요. 남의 돈을 빚졌는데 당신이 왜 초조해합니까? 돈을 빌려준 쪽, 돈을 받아야 할 상대방이 초조해야지요." 그가 "듣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위로를 참 잘하지 않습니까? 결국 그가 그 고비를 넘겼을까요, 못 넘겼을까요? 넘겼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직 살아있네요?"라고 하니,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가 또 저를 찾아와 "선생님, 또 돈을 못 갚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빚이 얼마 남았는데요?"라고 물으니 "3백만 위안 남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 6백만 위안에서 3백만 위안으로 줄었는데 왜 조급해합니까? 이미 3백만 위안이나 갚았잖아요. 남은 3백만 위안은 천천히 갚으면 되지, 뭐가 급합니까?" 이렇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6백만 위안의 빚에서 3백만 위안으로 줄어들 때까지 버텨냈고,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무엇이 급합니까? 얼마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아직도 살아있네요?" 그가 "무슨 뜻입니까?" 하길래, "빚쟁이들한테 맞아 죽지 않았네요? 아직 살아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도 감히 그를 때려죽이지 못합니다. 죽여버리면 어디서 돈을 받겠습니까? 그가 살아있어야 돈을 받을 기회라도 있지만, 죽어버리면 기회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참 재미있는 일 아닙니까? 다 살아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합니까?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십 년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중에 제가 보니, 그가 처음에 6백만 위안을 빚지고 나중에는 3백만 위안을 빚졌는데, 왜 늘 돈이 부족할까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을 긁어모으려 안달하고, 늘 자기 돈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미래에 필요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해 이쪽에서 30만 위안, 저쪽에서 20만 위안, 또 다른 곳에서 100만 위안을 뜯기다 보니 합쳐서 6백만 위안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천천히 갚아야지요. 사실 사람이 왜 기를 쓰고 돈을 움켜쥐려 할까요?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부족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니, 결국 결핍해지고 사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 말의 영(老马)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여러분에게 최근 큰 승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을까요? 이 말의 영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삶, 육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다 말의 영의 관할 영역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 말의 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치매에 걸려 돈을 세는 노인을 보십시오. 왜 돈을 셀까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말의 영 안으로 빠져든 것이고, 결국 말의 영에 의해 치매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온갖 영역의 것들이 우리 뇌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깊어서 다 뽑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금씩 밖으로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것은 다 말의 영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열이 났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찾아오기만 하면 제가 "말의 영입니다"라고 하니까, 속으로 '에휴, 저 사람한테 말의 영 이야기 듣느니 차라리 여기서 약이나 먹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에 공감하십니까? 여러분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밤에 열이 40도까지 오르자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역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제가 자매를 이끌고 기도하는데, 기도하자마자 안에서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말의 영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자매가 속으로 '거봐, 기도 부탁만 하면 또 말의 영이라고 하네'라고 생각할 테니, 말을 꺼내지 않고 꾹 참았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자매님, 혹시 삶이나 돈과 관련된 일들을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묻자 자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딱 맞추셨네요. 제 손에 수십만 위안이 있는데, 제가 죽고 나면 이걸 누구에게 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손에 수십만 위안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도 안 하는데, 손에 수십만 위안이 있으니 죽은 뒤에 누구에게 줄까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그런 생각을 하니 말의 영을 불러들였고, 생각 끝에 열이 났으며, 열이 나니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다 정리했을까요?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쉽게 정리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며 그것을 끊어내고 거절하자, 곧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더니 열이 내렸습니다. 비록 이번에 말의 영의 뿌리를 하나 잘라냈지만, 아직 얼마나 많은 뿌리가 남아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성도 여러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이생의 것,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말의 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말의 영의 체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데, 자기만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자기가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고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들 자기가 자신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러분이 먹여 살린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두 손의 칼에 의지하여 살아가다가 결국 저주 가운데 살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하늘이 당신을 먹여 살리고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며, 돈이 있어도 하나님이 먹여 살리십니다. 여러분, 돈이 많아지면 사람은 '아이고, 내가 평생 수고해서 모은 이 재물을 누구에게 물려주나?' 하고 속으로 갈등하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절망에 빠집니다. 《전도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수많은 값진 것들을 모아놓고 '내가 훗날 이것을 누구에게 물려주겠는가?'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절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이생의 논리 체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살아가며 제가 깨달은 이치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사실 그리 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소용이 있다면, 그 분주함 가운데서, 수고하는 중에 수고를 누리는 것뿐입니다. 겨우 그것뿐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가지며 결국 바쁘게 살아보지만, 사실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떠나 살 수는 없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좀 어렵지 않습니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또 너무 현실에 얽매이다 보면 다시 억압에 빠지고 하나님을 신뢰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하늘이 먹여 살리고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모르면 망하게 됩니다. 무엇을 걱정합니까? 무엇을 염려합니까? 염려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오늘 모임에 오셨지요? 제가 묻겠습니다. "아직 살아계시지요?" 어제부터 오늘까지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돈이 있어서 오늘까지 살았고,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오늘까지 살았으며, 빚이 있는 사람도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내일까지 살 수 없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염려합니까? 제발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내려놓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썩 듣기 좋은 소리 같지 않을지 몰라도 진실입니다. 사람이 이생과 세상, 육체의 체계에 빠지면 피곤하고 비참해집니다! 오직 먹고살기 위해 사는 것, 그것은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제 말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자매가 있는데, 부모님이 게으른 데다 약간 미련하기까지 한데 돈을 벌겠다고 하다가 쿵! 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이 딸은 타지에서 일했는데, 원래 10년 동안 일하면서도 빈털터리였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방법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었더니 돈을 좀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돈을 조금 모았더니 부모님이 또 사고를 쳐서 큰 구멍을 냈습니다. 부모님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일자리를 세 개나 뛰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식당에서 접시 닦고 서빙까지 하며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오늘은 부모가 작은 구멍을 냈으니 서빙하고 접시 닦아서 갚아줄 수 있다 쳐도, 내일 큰 구멍을 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신 운구하는 일을 하러 가는 게 낫습니다. 시신을 옮기는 일이 식당 서빙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법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왜 그런 무서운 말을 하십니까?"라고 하겠지만, 시신 운구는 정말 돈이 됩니다. 시신 메이크업을 해주는 일도 돈을 꽤 많이 법니다. 무서워하지만 않는다면 죽은 사람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수월합니다.

또 다른 자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가 그 자매의 신분증을 가져다가 사채를 썼는데, 한 번에 수십만 위안씩 빌렸고 결국 그 돈마저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별의별 부모가 다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들 먹고살 생각만 합니다.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하고 속이 터집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늘 여러분에게 남의 도박 빚을 갚아주지 말고, 마약 빚도 갚아주지 말며, 사업하다 진 빚도 갚아주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돈을 빌릴 때는 갚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다 큰 성인이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다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갚을 능력이 안 되니 자식이 갚아주기만을 바라는 것인데, 처음에 돈 빌릴 때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입니까? 오늘 작은 구멍을 냈다고 갚아주면 내일 더 큰 구멍을 낼 텐데, 평생 부모 구멍 메우는 일만 하다가 끝낼 셈입니까?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고, 입을 옷이 없다면 그런 것은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뚫어놓은 구멍은 자기가 직접 메워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가족 관계라는 덫에 꽁꽁 묶여서 하나님을 사랑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한 가지 문제를 보여줍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될까요?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소홀히 여겨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그게 밥 먹여주나?' 하면서 하나님을 팽개쳐 버립니다. 여전히 이생의 논리 체계에 머물러 있으니 결국 귀신을 불러들이게 되고, 마지막에는 모두 허무한 인생이라는 동일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평생 하나님을 의지할 때 결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증명해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하나의 시험을 행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시험을 하셨습니까?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도 짓지 않고 추수도 하지 않은 채 광야를 40년 동안 배회했지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돈을 벌었습니까? 안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족함이 없었을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상합니까? 사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틱톡을 하루 종일 보다가 저한테 혼이 났고, 어떤 사람은 일주일 내내 보다가 혼이 났으며, 어떤 사람은 몇 달 동안 보다가 혼이 났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몇 달 동안 틱톡만 보았는데도 살아있지 않습니까? 단지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없었을까요? 하나님이 먹여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스러운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시험을 겪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안다면, 30만 위안, 40만 위안, 100만 위안씩 사기를 당하겠습니까?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오늘 부족함이 있었겠습니까? 왜 사기를 당했을까요?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것이 대박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결핍에 빠진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강렬한 허무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선생님도 그런 걸 느끼세요?"라고 하겠지만, 우리 모두 사람이지 않습니까! 얼마나 강렬한가 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하루이틀을 보냈지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기에 사기를 당하지도 않았으니 천만다행입니다. 만약 뭔가를 해보겠다고 설쳤다면 사기까지 당해 훨씬 나빠졌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돈과 공허 속에 있었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먹여 살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침대 곁에 '나는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다!'라고 적어두십시오. 그러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 세상의 길을 속히 달려가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분의 은혜 안에 거하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영광에 소망을 두십시오. 그러면 평생토록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걱정할 것은 걱정하지 마시고, 염려할 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가 실직했습니다. 실직한 후 매달 들어가는 돈이 많다 보니 수중의 돈이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었습니다. 제가 "어쩌겠습니까? 빨리 커리어 컨설턴트를 찾아서 코칭을 받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바닥나기 전에 그 자매는 새 직장을 구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그 자매가 성장했습니까? 별로 성장한 것도 없고 성격의 문제점도 예전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왜 직장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왜 헌금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존재이지, 당연히 그 월급을 받아야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월급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이생의 염려라는 말의 영의 논리 체계에 빠지지 마십시오.

광야의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세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먹여 살리셔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우리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어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먹여 살리셨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오늘 우리 안의 관념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며, 밑바닥에 깔린 논리 체계를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시며, 반드시 우리를 먹이실 것입니다. 아멘! 이 시간 저와 함께 선포합시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므로 내게 결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농사를 조금 잘 지어도 부족함이 없고, 조금 못 지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살아봤자 얼마나 쓰겠습니까? 얼마 쓰지도 못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지셨습니까? 어제 하루 종일 누워 지냈는데, 오늘 이 설교를 들으니 '어제 뒹굴거리며 낭비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에 큰 위로가 되네' 싶으실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누워 지냈어도 오늘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왜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살아가십시오! 살면서 이 세상의 길을 속히 완주하십시오!

2. 본문 말씀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주의하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신명기 2:1-7)

3. 기도

하나님, 오늘 저희가 주님 앞에 나아가 저희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선포합니다! 하나님, 저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를 떠나지 마시고, 주님의 임재가 늘 저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평생에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희의 생각과 뜻을 변화시켜 주시고, 저희 내면 밑바닥의 논리 체계를 바꾸어 주옵소서. 오늘 저희에게 부족함이 없는 것은 저희가 무언가를 행했거나 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오늘 저희가 주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여러분에게 편히 쉴 기회를 드리는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푹 쉬고 나서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나님이 날 먹여 살리신댔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루쯤 푹 쉬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온종일 누워만 지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걸어 다녔으니, 여러분도 할 일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1년 넘게, 거의 2년 가까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무슨 훈련을 받았을까요? 장막을 치고 성막을 짓는 훈련이었습니다. 성막을 다 짓고 나서 어떤 위대한 일을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철거하고 출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짐을 싸서 이동했습니다. 하루 이틀 걷다가 하나님이 "멈춰라!" 하시면 무엇을 합니까? 장막을 칩니다. 다 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철거하라!" 하십니다. 걷었다 쳤다, 쳤다 걷었다 하니, 제가 생각할 때 이것이 대체 웬 헛고생인가 싶습니다. 손에 익지 않았으니 철거와 설치가 완벽하게 숙달될 때까지 계속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결국 40년 동안 이 고생을 반복했습니다.

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철거하고 이동하고, 이동을 마치면 멈춰 서서 다시 장막을 설치하고, 머문 지 며칠 안 되어 다시 짐을 싸서 이동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광야에서 할 일 없이 헛되이 고생만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훈련이었습니다. 무엇을 훈련했습니까? 사람을 그렇게 굴리며 훈련하신 것입니다. 장사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돈을 벌었습니까? 아닙니다. GDP가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40년 동안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종일 이 일만 했고 어떤 경제적 가치도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광야의 땅에 농사를 지을 수나 있습니까?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매일 변함없이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식사 시간이다!" 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가서 만나를 주웠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짐을 싸고 풀며 광야를 걸었을 뿐인데, 40년 동안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겨울이라 발이 시려 털 깔창을 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발 깔창이 닳아 떨어지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참으로 놀랍게도 40년 동안 신발이 닳지 않아 40년 전의 신발을 그대로 신고 다녔습니다. 옷도 해어지지 않았고 먹을 것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증명하고자 하신 한 가지 사실은 "너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여전히 너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존재임을 아십니까? 이제 아셨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하루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보면 알 것이고, 한 달쯤 쉬어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실 아까 말씀드린 그 자매가 왜 실직했을까요? 자기가 대단해서 금방 취업할 줄 알고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압박감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것 또한 한 가지를 증명합니다. 비록 몇 달 동안 일을 쉬었지만 살아있었고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사람이 평생 자신이 하나님께 양육 받는 존재임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트레스도 적고, 쉬고 싶을 땐 쉬고, 일어나고 싶을 땐 일어나며,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쉴 때는 편히 쉬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온종일 갈등하면서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쉼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골치 아파집니다.

동남아시아에는 아주 흥미로운 원주민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한 가지 특징은 회사를 차려서 일꾼으로 고용하면 우리 화교들처럼 돈을 저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돈을 모으지 않고, 오늘 급여를 받으면 내일은 출근하지 않습니다. 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출근합니다. 저도 이곳에 온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논리로도 평생을 사는데, 저는 사람이 어떻게든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싱가포르 해변에 가보면 화교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말레이계 사람들이 돗자리 하나 펴놓고 소박한 음식을 차려놓고 소풍을 즐기며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화교들은 돈 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너희가 살아가는 것은 너희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언가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이 40년이 지난 후 죽을 자들은 다 죽었고, 남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약속의 땅은 사람이 싸워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고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출발하여 세일 산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세일 산이 누구의 땅인지 아십니까? 바로 에서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은 내가 에서에게 준 땅이니, 너희는 이 땅을 차지할 수 없다." 알고 보니 에서의 후손들도 하나님이 먹여 살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먹고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 자신은 스스로 먹고산다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에서의 이 땅을 건드리지 말라. 내가 에서에게 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갈 때 돈을 주고 양식을 사 먹고 돈을 주고 물을 사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만나가 있는데 왜 사 먹어야 할까요? 세일 땅을 지나갈 때는 사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이 40년 동안 쓰면 줄어들 텐데요. 에서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며 돈을 쓸 것을 알았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웠을까요? 씌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 한 병에 얼마요?" 하면 에서의 후손들은 "20달러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1달러짜리 물을 20달러에 파는 것입니다. "내 땅을 지나가니 바가지 좀 쓰시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바가지를 썼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1근에 15달러 하는 고기, 10달러 하는 곡식을 100달러, 200달러에 팔아도 그냥 샀고, 그래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가니 에서의 후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겠습니까!

세일 산을 지난 후에는 암몬 족속의 땅을 지나야 했는데, 암몬과 모압은 롯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땅도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라 롯의 자손에게 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바가지를 썼습니다. 사람의 논리로 보면 그렇게 계속 바가지를 쓰다가는 얼마를 가지고 있든 파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파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비록 바가지를 썼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먹여 살리실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팍! 하고 돈을 꺼내 주었는데, 다음 날 주머니를 열어보니 돈이 줄어들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이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번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의 땅을 지날 때도 온통 돈을 쓰며 턱없이 비싼 값을 치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백만 명이 한 지역으로 몰려드는데 물가가 오르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오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헤스본 왕 시혼을 지나갈 때, 결국 단번에 헤스본 왕 시혼을 멸망시키고 과거에 바가지 썼던 것을 다 되찾아왔습니다. 헤스본 왕의 모든 재물이 이스라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40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믿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존재이며, 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큰 평안이 임하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꽤 큽니다. 우리 사역자나 성도들 중에 "선생님, 요즘 사역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는 분이 있으면, 저는 "그럼 하지 마세요. 뭘 하고 싶은데요?"라고 묻습니다. "놀러 가고 싶어요" 하면 "그럼 가서 노세요"라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아무것도 지장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우리의 호흡과 생명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모든 자원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하며 GDP를 전혀 창출하지 못했음에도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던 것은 여러분과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 아닙니까?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은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에서의 후손들이 세일 산을 차지했는데, 그 세일 산을 그들이 정복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에서의 후손에게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이끄셔서 그 땅을 에서에게 주신 것입니다. 훗날 모압과 암몬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 땅으로 인도하셔서 주신 것이며, 모든 자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그곳에도 거인들이 있었지만, 암몬과 모압과 에서의 후손들의 모든 자원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차례였습니다. 훗날 이 무리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까?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먹여 살리신다'는 이 교훈을 배웠습니까?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두 손과 칼을 의지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은 이 본문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뒤에 모세가 기록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5. 재물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사람들이 재물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이 유독 많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세일 산을 지나고, 암몬 사람의 땅을 지나고, 모압 사람의 땅을 지나며 세 번이나 바가지를 쓰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바가지를 쓰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습니다. '1달러짜리 물을 20달러나 받다니! 돈은 낼 수 있지만 자존심이 상하고 바가지 쓰는 기분이 너무 더럽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분을 느껴보셨습니까? 바가지를 쓰는 기분은 참으로 불쾌합니다. 그래서 내면에 수많은 갈등이 생기고 염려가 들이닥쳤습니다. '세일 산을 지날 때도 이러더니, 앞으로 모압과 암몬 사람들에게 가면 또 이럴 텐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도착할 때쯤엔 완전 알거지가 되겠구나. 그럼 무엇으로 투자하나?' 무슨 투자입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투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 사람들이 갈등을 겪은 끝에 결국 물 한 병을 샀습니다. 돈이 중요합니까, 물이 중요합니까? 목이 타들어 가는데 당연히 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일 산을 지난 후 주머니를 열어 만져보니 "어라? 돈이 왜 안 줄었지?"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참 재미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좌를 확인할 때 분명 2만 위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1만 위안밖에 없지 하며, 늘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적다고 느낍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계좌를 확인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있다고 느낍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장을 보면 생각보다 돈이 많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 돈이 적다고 느낍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왜 그럴까요? 곰곰이 음미해 보십시오. 뼛속 깊이 결핍감이 박혀있는 사람은 온종일 염려하기 때문에 확인하면 적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재물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염려하고,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염려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공급하십니까? 아주 흥미롭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성전세를 걷으러 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없었습니다. 세금은 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무엇으로 내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물고기를 낚아라." 베드로가 가서 고기를 낚아 입을 열어보니 정말로 은화 한 세겔이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재물에 대해 염려가 생기면 말의 영의 논리 체계에 빠져버려 망하게 됩니다. 걱정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이 세상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재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하면 말의 영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염려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계좌를 확인할 때마다 뜻밖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참 신기합니다. 며칠 전 저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은행 계좌를 해지하러 갔습니다. 돈이 들어있는 줄도 몰랐는데 직원이 "7천여 위안이 들어있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몇백 위안이나 있을 줄 알았는데 참 감사했습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셈입니다. 통장 카드도 어디 뒀는지 잊어버렸었는데 말입니다. 재물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염려하면 돈이 줄어들고, 신경을 덜 쓰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립니다.

6. 자원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여러분, 자원이라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교훈을 주셨을까요? "보았느냐? 에서는 내가 저주한 자이지만, 그를 위해서도 세일 산이라는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에서는 저주받은 자가 아니던가? 저주받은 자에게도 하나님이 자원을 예비해 주셨는데, 하물며 이스라엘인 너희에게 하나님이 예비해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예비하신 곳은 바로 가나안 복지였으며, 그곳은 세일 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땅이었습니다. 롯의 후손인 모압과 암몬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땅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민족인들 하나님이 예비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예비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거주의 경계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늘 결핍된 마음이 있습니다. 결핍된 마음이란 참 묘해서, 오늘은 이 땅을 차지하고 내일은 저 땅을 차지하며 늘 남의 땅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렇게 많은 땅을 가져서 무엇하겠습니까? 사람은 늘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자원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정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신뢰하지 않는 민족에게도 하나님이 거처를 마련해 주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찌 준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토지 자원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적 자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적 자원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사업을 하다가 직원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툭 하고 한 직원이 퇴사했다고 칩시다.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양육 받는 존재임을 명확한 지각으로 깨닫고, 이런 것들로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예비하십니다!

형편이 좋고 큰 집에 살면 기쁘게 사십시오. 집이 좀 작아도 기쁘게 사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의 길을 속히 달려가 주님 곁으로 돌아가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 땅에서 매일 발을 땅에 딛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무엇을 하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듯 하여, 훗날 하나님 앞에 서서 결산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으십시오. 아직도 걱정되십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고, 우리 지역은 경제가 안 좋아요"라고 해도, 경제가 안 좋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먹여 살리실 수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지역은 경제가 너무 발전했는데 집값이 너무 비싸요"라고 해도, 하나님은 당신을 먹여 살리실 수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동네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숨이 막혀요"라고 해도, 하나님은 당신을 먹여 살리실 수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쪽에 새로운 정책이 또 나왔어요"라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먹여 살리실 수 있습니다. 아멘!

7. 영적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이르렀을 때, 시혼은 이스라엘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가게만 해주시오. 생수 한 병에 20달러씩 바가지를 씌워도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바가지를 써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스본 왕은 머리가 나빠서 장사꾼 기질이 없었습니다. 지나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헤스본 왕이 "절대 못 지나간다!" 하니 이스라엘은 "이 녀석 봐라, 안 비켜줘? 맛 좀 봐라!" 하고는 헤스본 왕과 그의 모든 땅을 빼앗고 헤스본 왕을 전멸시켰습니다. 그 사람도 참 안타깝게 완악하게 굴다가 이스라엘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습니다. 헤스본 왕이 강했습니까? 강했습니다. 헤스본 왕의 그 땅도 과거에 하나님이 주셨던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하나님이 그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셨을까요? 그들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미 한바탕의 싸움을 예비해 두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원수를 노략할 수 있는 싸움이 놓여 있습니다. 말의 영아, 네가 완악하게 구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말의 영을 노략할 것이다! 오늘 성도 여러분, 똑똑히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노략할 수 있는 싸움을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셨습니다! 재정적인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이겨낼 때마다, 말의 영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따를 때마다 재정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은 과거에 빼앗기고 바가지 썼던 모든 것을 되찾아오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 싸움입니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고단합니까? 힘듭니다. 비록 힘들지만 그에 따르는 보상도 큽니다.

8.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신뢰하라

사람이 왜 하나님을 신뢰하기 어려워하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내면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러면 큰일 납니다! 비록 당신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도 하나님은 먹여 살리시겠지만, 인생이 너무나 고달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던 그 세대를 광야에서 다 멸절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며 그들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보았느냐? 교훈을 얻었느냐? 아직도 보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제대로 배워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 헛되이 바쁘게 삽니까? 그러므로 오늘 자신을 혹사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분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더 이상 스스로를 옭아매지 마십시오. 당신이 결핍을 느끼는 이유는 경외함과 신뢰함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시험을 행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나 경외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자는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진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멸절당한 그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절되었느니라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신명기 2:14-18)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결코 생각이 흔들려 저쪽으로 기울어지지 마십시오. 저쪽으로 기울어지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께 멸절당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9. 결론

오늘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신명기 2:7)

만약 마음에 결핍이 있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하나님의 복을 담지 못하고 부족하지 않을 것도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까? 비록 지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지냈을지라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더 이상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믿음으로 일어나 매일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십시오. 과거에 갈등하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더라도 오늘부터는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일을 완벽히 해내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먹여 살리셨습니다. 마음의 압박감을 내려놓고, 평온하고 안온하게 서서 발을 땅에 딛고 배우며, 일하고, 성장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오늘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찬양 한 곡을 부르고 오늘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오늘 전하신 말씀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기 쉽겠네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늘 누워만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잠시 누워 쉬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잠깐이라도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누워 쉴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사역자들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다시 불일듯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워 있으면서도 속으로 자책하고 갈등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버리니, 차라리 마음 편히 쉬는 것만 못합니다. 갈등과 번민은 떠나갈지어다! 갈등이나 낙심, 괴로움이 아니라 평안함과 안온함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먹여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에게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비록 제가 든 많은 예화가 우리 정서와 조금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먹여 살리시며, 제게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안의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마음, 갈등과 낙심과 경쟁의 마음은 모두 떠나갈지어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겠나이다. 하나님, 늘 저희와 함께하셔서 저희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달려가는 동안 늘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함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갈등과 낙심과 고통은 떠나갈지어다! 나는 평온하고 안온하게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며, 나의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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