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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전서 9장 -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024-04-10 29,509 哥林多前书 哥林多前书09章 哥林多前书第九章 多救一些人 服侍是神的赏赐 追求这福音的好处 照着神的意思服侍

相关经文

哥林多前书09章-使徒的权利
  • 1 我不是自由的吗?我不是使徒吗?我不是见过我们的主耶稣吗?你们不是我在主里面所做之工吗?
  • 2 假若在别人,我不是使徒,在你们,我总是使徒,因为你们在主里正是我作使徒的印证。
  • 3 我对那盘问我的人就是这样分诉:
  • 4 难道我们没有权柄靠福音吃喝吗?
  • 5 难道我们没有权柄娶信主的姐妹为妻,带着一同往来,仿佛其余的使徒和主的弟兄并矶法一样吗?
  • 6 独有我与巴拿巴没有权柄不做工吗?
  • 7 有谁当兵自备粮饷呢?有谁栽葡萄园不吃园里的果子呢?有谁牧养牛羊不吃牛羊的奶呢?
  • 8 我说这话,岂是照人的意见;律法不也是这样说吗?
  • 9 就如摩西的律法记着说:“牛在场上踹谷的时候,不可笼住它的嘴。”难道 神所挂念的是牛吗?
  • 10 不全是为我们说的吗?分明是为我们说的。因为耕种的当存着指望去耕种;打场的也当存得粮的指望去打场。
  • 11 我们若把属灵的种子撒在你们中间,就是从你们收割奉养肉身之物,这还算大事吗?
  • 12 若别人在你们身上有这权柄,何况我们呢?然而,我们没有用过这权柄,倒凡事忍受,免得基督的福音被阻隔。
  • 13 你们岂不知为圣事劳碌的就吃殿中的物吗?伺候祭坛的就分领坛上的物吗?
  • 14 主也是这样命定,叫传福音的靠着福音养生。
  • 15 但这权柄我全没有用过。我写这话,并非要你们这样待我,因为我宁可死也不叫人使我所夸的落了空。
  • 16 我传福音原没有可夸的,因为我是不得已的。若不传福音,我便有祸了。
  • 17 我若甘心做这事,就有赏赐;若不甘心,责任却已经托付我了。
  • 18 既是这样,我的赏赐是什么呢?就是我传福音的时候叫人不花钱得福音,免得用尽我传福音的权柄。
  • 19 我虽是自由的,无人辖管;然而我甘心作了众人的仆人,为要多得人。
  • 20 向犹太人,我就作犹太人,为要得犹太人;向律法以下的人,我虽不在律法以下,还是作律法以下的人,为要得律法以下的人。
  • 21 向没有律法的人,我就作没有律法的人,为要得没有律法的人;其实我在 神面前,不是没有律法;在基督面前,正在律法之下。
  • 22 向软弱的人,我就作软弱的人,为要得软弱的人。向什么样的人,我就作什么样的人。无论如何,总要救些人。
  • 23 凡我所行的,都是为福音的缘故,为要与人同得这福音的好处。
  • 24 岂不知在场上赛跑的都跑,但得奖赏的只有一人?你们也当这样跑,好叫你们得着奖赏。
  • 25 凡较力争胜的,诸事都有节制,他们不过是要得能坏的冠冕;我们却是要得不能坏的冠冕。
  • 26 所以,我奔跑不像无定向的;我斗拳不像打空气的。
  • 27 我是攻克己身,叫身服我,恐怕我传福音给别人,自己反被弃绝了。

《答疑解惑》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고린도전서》 9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9장까지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사람들과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기 위함이라!”입니다. 이 장이 쓰인 이유는 바울에게 질문한 사람들이 있었고, 바울이 자신을 위해 변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1.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따져 물은 문제들

우리가 고린도 사람들이 물었던 구체적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앞부분에서 물었던 것들은 아내를 얻는 것, 딸을 시집보내는 것, 계모와 결혼해도 되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지 등 온통 이런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비교해 보면 오늘날 우리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의 관심사는 다 이런 것들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따져 물었던 문제처럼, 예를 들어 게바는 사도인데 바울은 사도가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니 예전에 어떤 부부가 단기 신학 과정을 들으러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신학 강사는 제 눈에 정말 차지 않았는데, 학생들의 질문에도 명확히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제가 사람들에게 베푸는 세례가 효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누가 세례를 베풀든 다 효력이 있으며, 효력이 있느냐 없느냐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황당한 일입니다. 세례나 결신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지만, 시내산에 이르러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면 홍해를 건너기 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물었던 질문들도 그 단기 신학교에 갔던 부부가 한 말과 대략 비슷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적이 있는지, 그들의 고린도에 와서 교회를 세운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게바와 다른 사도들은 다 아내를 데리고 고린도 교회에 오는데 바울은 아내를 데리고 오지 않아 매우 의아하다는 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며 바나바도 아내를 데려오지 않았으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수상한 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전서》 9:2-6)

고린도 사람들은 스스로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며, 바울이 과연 사도가 맞는지 의심했고, 자신들을 섬기는 것이 돈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를 쥐어짜도 바울이 왜 그렇게 대가를 치르며 자신들을 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들의 돈을 받지 않자, 그들은 바울이 나중에 한 몫 크게 챙기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먼저 먹여 살려 살찌운 뒤에 잡아먹으려는, 큰 물고기를 낚으려고 긴 낚싯줄을 드리우는 격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도, 아무 대가 없이 자신들에게 그렇게 잘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믿지 못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도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쉽게 삐딱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저 역시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매우 조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그렇게 섬기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바울이 바란 것은 그저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23)

바울은 이 세상에서 이득을 얻고자 하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는 어떤 유익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읽을 때 행간을 통해 고린도 사람들의 수준을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한다면 분명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일 테니, 바울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뜻을 헤아리는 격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악합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훨씬 지혜로워졌습니다. 상대방이 삐딱하게 생각할 것 같으면 딱 알아보고, 먼저 엉뚱한 생각 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많은 목사들이 이런 것을 탐내며 사역하기 때문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흐리는 수준이 아니라, 솥 전체가 쥐똥으로 가득 찬 격입니다.

바울이 쓴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고린도 사람들이 대략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도 경각심을 줍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여러분에게 저를 무조건 믿지 말고 시험하고 검증해 보라고 자주 권면했습니다. 제가 늘 “나를 믿어야 합니다”라고만 한다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믿어야 하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검증하여 제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는 정말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특히 고린도 사람 같은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역 중에 종종 ‘작은 고린도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쉽게 오해하고 비뚤어지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자극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저는 다 감수합니다. 목회자로서 진정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 일은 정말 해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길게 쓴 것은, 자신이 왜 이렇게 사역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 바울이 왜 그렇게 행했는지 설명하다

저는 바울이라는 인물을 참 좋아합니다. 심지어 나중에 천국에서든 어디서든 바울을 만나게 된다면, 그와 악수하며 형제라고 부르고 함께 커피 두 잔을 마시고 싶다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바울은 설명할 때 논리가 매우 정연했습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자신의 목표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행한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밝힌 것입니다. 그들 ‘작은 고린도인’들의 좁은 소견으로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처럼 형편없지 않았고, 그들처럼 육신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수준이 너무 낮았습니다.

앞 장들에서 바울은 아내를 얻는 일, 먹고 마시는 일 등 수많은 질문에 대해 매우 인내심 있게 답변했고, 이어서 자신의 전략이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그가 목표를 이루고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 위해 사용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밝힌 것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는 것이지, 썩어 없어질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주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주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실 때 그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때의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제부터 마음을 정하고 이 하늘에 속한 영광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깊이 확신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우리 가운데서 복만 좀 받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조금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조금씩 얻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전하고자 한 목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며,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이 한순간의 연기 같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매우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최근에 제가 돌보던 한 자매님이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그녀의 오빠가 폐암에 걸려 곧 죽게 생겼는데, 보통 폐암 환자는 대략 3~4개월 정도 생존합니다. 자매님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오빠가 하나뿐이기 때문인데, 저는 그녀의 오빠와 아버지 둘 다 섬겨본 적이 있어서 그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집은 삼 남매였는데, 오빠 부부가 아버지의 유산을 몽땅 가로챘고, 다른 여동생이 유산을 달라고 찾아와도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더니, 이제 폐암에 걸린 것입니다.

제가 오늘 헤아려 보니, 제 동역자 중 한 사람의 삼촌도 외할머니의 재산을 탐내다가, 결국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삼촌 본인이 폐암에 걸렸습니다. 또 다른 자매님의 아버지도 폐암에 걸렸는데, 재물을 탐내는 마음을 지금은 제가 해결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남의 흉을 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그저 땅의 유익만을 좇다 보면, 폐암이 아니더라도 다른 암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재산을 탐내는 자들의 말로는 모두 비참합니다. 그 자매님은 제게 오빠가 병에 걸린 이유가 무슨 일이든 마음에 담아두고 삭여서 그렇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저는 그녀의 오빠를 알고 있기에 그 말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가 한 짓들은 떳떳하게 내놓을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만약 저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설령 아버지가 이미 유언장에 재산을 전부 저에게 준다고 써놓으셨다 해도, 저는 5남매가 한 몫씩 똑같이 나누도록 수정하라고 설득할 것입니다. 제 남동생과 여동생이 비교적 가난하니, 제 몫은 반씩 쪼개어 그 둘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의 아버지는 유산을 아들에게 100% 다 주겠다고 썼는데, 이 일이 어떻게 성사되었을지는 여러분도 생각해 보면 다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노후를 이 아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점을 악용하여, 유산 분배를 기필코 자기 뜻대로 작성하게 만들었고, 아버지 역시 노후를 돌봐주지 않을까 두려워 감히 거역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 역시 참으로 잘못된 분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거래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은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부모를 봉양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은 은혜이지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돈을 주어야 부모를 모신다면 그것은 자녀라고 할 수 없으며, 그렇게 살다가 암에 걸려도 자업자득입니다.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바울처럼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린도전서》 9:1)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매우 자유로우며 그들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바울이 기필코 사도 노릇을 하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나요? 사도 노릇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도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이 이미 갈피를 못 잡고 혼란에 빠져 있었기에 바울이 그들을 끌어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그의 전략과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3. 바울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린도전서》 9:24)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왜 이렇게 열심을 내고 공을 들이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제가 갈수록 더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바로 이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5-27)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목표는 매우 분명했으며, 왜 이렇게 행해야 하는지 먼저 확고히 정했습니다. 제가 만든 원리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다른 누군가 이미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말했어도 제가 읽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고안해 낸 원리는 바로 ‘목표의 명확성, 전략의 분명함, 방법의 적절함’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 세 가지만 확실히 정리되면 일은 반드시 성사됩니다. 저 같은 사람은 목표를 확고히 세운 뒤 푯대를 향해 곧장 달려가는 것을 좋아하며, 그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도 기꺼이 치러냅니다.

그러므로 이 명확한 목표란 바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는 것이며,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듯 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는 것이며, 곧 저 하늘의 상급을 얻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입으로는 영생을 말하지만, 스스로는 이생에 갇혀 살며 이생의 일에만 마음을 둡니다. 그러니 그런 이들이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바와 겉으로 남들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이 다르다면, 그것은 사기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돈을 믿으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고 남들에게는 영생을 믿으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기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영생을 좇으라고 하면서 제 자신은 돈을 좇는다면, 제가 행하는 일들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고 모순될 것입니다.

이른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란, 사람의 앎과 행함이 반드시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목사가 저를 찾아와 자기 교회의 암 환자를 저에게 외주로 떠넘기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왜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저에게 외주로 넘기지 않고, 이제 와서 일은 나보고 하고 돈은 자기가 챙기려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제가 한 시간 사역하면 그 목사도 따라서 한 시간 사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프로젝트 투자를 제안하면서 기업이 1원을 내면 정부가 1원을 보조해 주듯이 말입니다. 저는 정부의 방식을 배운 것뿐인데, 그의 대답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자기 성도가 지난 세월 동안 그 교회에 다녔는데, 암에 걸려 가장 사역과 돌봄이 필요할 때 목사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암에 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바로 그런 교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사는 사역을 은혜로 여기지 않고 돈만을 은혜로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지행합일입니다. 그 사람 내면의 인식과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지극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즉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속 생각이 다른 것이니, 말은 청산유수이나 사기꾼의 입이야말로 가장 번지르르한 법입니다.

바울은 목표를 분명히 세운 후, 자신이 이 영광의 면류관을 좇고 있음을 굳게 믿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제가 죽는 것에 대해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의 죽음도 개의치 않는데, 여러분이 죽든 여러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든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며 기도해 줄 수 있느냐고 묻기에 보니, 결국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 어머니더러 그렇게 삶에 집착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는 것에 집착하지만 저는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있을 때 어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꿰뚫어 보시길 권합니다. 일찍 깨달을수록 앞으로의 삶을 참으로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온갖 역경과 난관을 뚫고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비결 덕분입니다. 내 안에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에,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영이며, 나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니 이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죽으면 안 된다고, 제가 죽으면 자기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여러분을 돌봐줄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하늘에서 여러분을 축복하겠습니다”라고 말할 텐데, 이것이 바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하고 육신을 따르는 목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을 데리고 어떤 교회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왜 이렇게 행하는지 설명하며, 자신이 좇는 것은 복음의 유익이며, 이 복음의 유익이란 하늘의 영광스럽고 썩지 아니할 면류관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제 평생의 추구이자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며, 저는 제 생명을 드려 이 일을 행할 것이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것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바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을 때 고린도 사람들은 읽고 나서 멍해졌습니다. 다들 그런 추구와 목표가 없었기에,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바울과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완전히 저버렸고, 바울로 하여금 다시 해산의 수고를 겪게 만들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가 아무리 훌륭하게 쓰였어도, 지금까지 고린도전서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

그것은 바로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바울의 마음에 원치 않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자신의 뜻대로 사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하여, 기어이 사람들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코 고린도 사람들을 속인 것이 아니며, 고린도 사람들 스스로가 너무나 수준이 낮았을 뿐입니다.

4. 바울에게는 명확한 전략이 있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9)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작은 고린도인’ 무리를 얻고, 기꺼이 그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꺼이 그들의 종이 된 것이 죄라도 됩니까? 그는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기쁨으로 이 사람들을 섬겼으니,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가 바란 것은 저 하늘의 유익뿐이었습니다. 바울의 명확한 전략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고 사람을 얻으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사람의 돈을 얻는 것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지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기 시작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12)

이것이 바로 바울의 전략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종이 된 것은, 그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도로서 높이 앉아 그들에게서 돈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기꺼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하며 자신과 동역자들을 부양했고, 고린도 사람들에게서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전략이 있었으니, 곧 마땅히 누릴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사람을 얻는 목적이 그들의 재물을 탐하기 위함이라면, 당사자뿐 아니라 지나가는 개도 알아챌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계속해서 검증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훗날 어느 날 주 예수님 앞에 함께 서서, 이 영광의 면류관을 함께 누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제가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일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뛰어난 역량을 지녔기에 대학에 가서 교수를 할 수도 있었지, 온갖 일을 도맡아 하며 파김치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긴 낚싯줄로 큰 물고기를 낚으려 했다고요? 바울은 물고기를 낚으려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섬길 때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며, 오직 상대방이 유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그저 사람들이 유익을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이 어쩌면 어떤 곳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잘못한 것뿐이니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본받아 저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으면 됩니다. 사람의 일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며 대단한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종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전략입니다.

5. 바울에게는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19-22)

바울에게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그의 방법이 참으로 탁월하지 않습니까? 그가 이중인격자 노릇을 했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은 결국 방법에 불과하며, 목표와 전략 아래 굴복되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종이 되는 전략을 선택했다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섬길 때 교만하게 굴거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를 멸시하며, 자신이 유대인이고 할례를 받아 더 우월하다고 으스대지 않았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을 만나자마자 할례부터 받아야 한다고 들이댄다면, 사람을 얻기는커녕 시작부터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그런 것들로 자랑하지 않고, 율법이 없는 자들 앞에서 율법을 내세워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가졌으니 하나님의 선민이라며 남들과 우열을 다투려 했습니다.

상대가 약하면 우리는 약한 자가 되어 그 약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며, 두 얼굴이니 여러 얼굴이니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역할 때 자신을 올바른 위치에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 소그룹 목회자들이나 심지어 교구장들 중에서도, 사람들이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며 다그치는 고질병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상대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가르쳐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상대를 얕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의 연약함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어떤 방식으로 섬겨야 효과가 있을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 역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자랑하려거든 주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편만함을 전하여 오직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멀찍이 물러서야지, 억지로 구걸하듯 매달려 친한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며, 그것은 사람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하하는 짓입니다.

6. 사역은 바울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15-18)

이 구절은 언뜻 불평 섞인 어조처럼 들립니다. 바울은 사실 이 일을 자의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원하여 기꺼이 행하면 상이 있고, 자원하지 않는다 해도 화가 미치니, 득실을 따져보아 잘 감당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사명이 이미 그에게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이 복음의 유익을 함께 얻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 일을 유별나게 좋아해서, 마치 이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하는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 가서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목수가 될 수도 있고, 프로그래밍을 하러 가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의 선택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행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게 이 책임을 맡기셨고 여러 사람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계산이 딱 나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고린도 사람들이 그가 어떻게 셈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유익을 얻고 상급을 얻고자 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길에 들어섰다면 결코 하나님께 버림받아서는 안 되며, 기꺼이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이어야만 바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자는 결국 폐암에 걸리는 길을 택하고 맙니다. 여러분은 제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일을 명확히 이해하고 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이 복음의 유익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는 것이지, 사람을 적당히 속이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역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과 형제자매들은 모두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기당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순간에 십만, 팔만, 심지어 수십만 위안을 사기당하곤 합니다. P2P 금융 사기를 당했던 어떤 사람은 최근에야 겨우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는 드디어 빚을 다 갚았다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빚을 다 갚았다고 해서 자랑할 일이 아니니, 올바른 선택을 하여 부디 다시는 속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7. 사역은 나의 상급이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18)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고 이것이 상급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십니까? 저 역시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어서 여기서 일단 어설프게나마 설명해 봅니다. 사역 그 자체가 상급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역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으며, 사역 그 자체가 상급이지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도 사람들을 섬기며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역 자체가 이미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지난 몇 년간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가면서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의 한 평신도로서 성경책을 몇 권씩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현장에 뛰어들고 나니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했고, 영적 진리를 끊임없이 깨달으며 위를 향해 전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역이 없었다면 그저 어느 성전을 찾아가 아침에 일어나 12시간 동안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었을 것입니다. 무릎에 굳은살이 박여 늙은 낙타 무릎처럼 된다 한들 아무 소용도 없으며,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의 필요를 보았기에, 예컨대 춘절 기간에도 여러분에게 주도적 학습에 대해 강의하고, 매일 강의가 끝나면 다음 날 강의안을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그 며칠 동안 정말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 준비도 없이 청산유수로 말을 술술 풀어내는 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오랜 시간 공들여 정리하고 다듬은 끝에야 마침내 명확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역은 상급입니다. 저는 사역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은퇴한 노인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거나 식당에서 음식 접시를 나르겠습니까? 아니면 바둑 둘 사람을 찾아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커피나 마시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 자취를 감추겠습니까? 그런 삶은 너무나 무료합니다. 어떤 이는 제게 개를 키워보라고 권했지만, 그런 것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을 참으로 잘 이해하셔서, 일 외에는 아무런 취미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역은 상급이자 은혜입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하면 청중이 생기고, 제 자신이 가장 빠르게 성장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고자 하신다면, 저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동참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문서 사역, 편집 사역, 광둥어 사역, 003, 002, 001 사역 등 수많은 사역이 있습니다. 자원하여 소그룹 반장이 되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훈련 과정도 마련되어 있으니 먼저 참관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러분 또한 저처럼 다른 이들이 여러분과 함께 이 복음의 유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 평생의 추구입니다. 아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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