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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전서 6장 -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아는가?

2024-03-20 34,835 哥林多前书 哥林多前书06章 哥林多前书第六章 与主合一 要多给出去 我们非常尊贵 神的国里不缺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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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前书06章-在不信主的人面前求审
  • 1 你们中间有彼此相争的事,怎敢在不义的人面前求审,不在圣徒面前求审呢?
  • 2 岂不知圣徒要审判世界吗?若世界为你们所审,难道你们不配审判这最小的事吗?
  • 3 岂不知我们要审判天使吗?何况今生的事呢?
  • 4 既是这样,你们若有今生的事当审判,是派教会所轻看的人审判吗?
  • 5 我说这话是要叫你们羞耻。难道你们中间没有一个智慧人能审断弟兄们的事吗?
  • 6 你们竟是弟兄与弟兄告状,而且告在不信主的人面前。
  • 7 你们彼此告状,这已经是你们的大错了。为什么不情愿受欺呢?为什么不情愿吃亏呢?
  • 8 你们倒是欺压人、亏负人,况且所欺压所亏负的就是弟兄。
  • 9 你们岂不知不义的人不能承受 神的国吗?不要自欺!无论是淫乱的、拜偶像的、奸淫的、作娈童的、亲男色的、
  • 10 偷窃的、贪婪的、醉酒的、辱骂的、勒索的,都不能承受 神的国。
  • 11 你们中间也有人从前是这样;但如今你们奉主耶稣基督的名,并藉着我们 神的灵,已经洗净,成圣,称义了。
  • 12 凡事我都可行,但不都有益处。凡事我都可行,但无论哪一件,我总不受它的辖制。
  • 13 食物是为肚腹,肚腹是为食物;但 神要叫这两样都废坏。身子不是为淫乱,乃是为主;主也是为身子。
  • 14 并且 神已经叫主复活,也要用自己的能力叫我们复活。
  • 15 岂不知你们的身子是基督的肢体吗?我可以将基督的肢体作为娼妓的肢体吗?断乎不可!
  • 16 岂不知与娼妓联合的,便是与她成为一体吗?因为主说:“二人要成为一体。”
  • 17 但与主联合的,便是与主成为一灵。
  • 18 你们要逃避淫行。人所犯的,无论什么罪,都在身子以外,惟有行淫的,是得罪自己的身子。
  • 19 岂不知你们的身子就是圣灵的殿吗?这圣灵是从 神而来,住在你们里头的;并且你们不是自己的人,
  • 20 因为你们是重价买来的。所以,要在你们的身子上荣耀 神。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핵심을 찾기는 다소 쉽지 않은데, 바울이 기록한 내용이 매우 다양한 방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여기서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내는가는 여러분 안에 있는 논리 체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논리 체계는 말씀을 읽고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체계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세상에 속한 체계이며,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전통적인 속담들이 이러한 체계에 속합니다. 어제 한 옛 친구가 남의 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는 스스로 웃었습니다. 이 논리를 보십시오. 자신의 돈줄을 끊으면 마치 자기 부모를 죽인 것과 같다는 것인데, 오늘날 사회에서 이러한 논리는 매우 보편적이며 삶의 모든 영역에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두 가지 체계를 통해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1년 반 동안 머물다 떠난 후에 매우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아볼로와 게바 베드로가 가자, 고린도 교회가 받아들인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 준 것과 다른 사람들이 전해 준 것이 한데 뒤섞여, 고린도 교회는 시장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장판이라고 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수산시장이라고 한다면 온통 비린내가 진동하는 꼴이었습니다. 난장판이 되어 엉망진창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계모를 아내로 삼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이 장을 읽으면서 여러분에게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가 도대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처음에 바울은 교회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요구했고, 우리 화인사명신학(华人命定神学)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저와 허튼소리로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기준을 낮추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기준을 낮춘 뒤 고린도 교회에는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기도는 효력을 잃었으며, 병은 고침받지 못했고,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신나게 사업을 하다가, 나중에 갈등이 생기자 서로 고발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세상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떠난 뒤 베드로가 왔기 때문이라는 대담한 추측을 해 봅니다.

베드로가 전한 관념은 여전히 《사도행전》 시절의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교회를 이렇게 세워서는 안 되며, 자기가 예전에 사람들을 인도했을 때처럼 한 번 기도하면 5천 명이 주를 믿고, 설교 한 번에 3천 명이 주를 믿었던 것처럼 해야 얼마나 부흥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부흥이 아니었으며, 교회는 결국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예전에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모두가 물건을 팔아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성찬을 할 때 그렇게 조그마한 떡 한 조각을 떼는 것은 안 되며, 차라리 한 사람당 커다란 떡 한 덩이씩을 먹고, 성찬 포도주도 큰 잔으로 포도즙을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린도 사람들은 그 방식을 따랐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장의 주제는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아십니까?”입니다. 만약 이를 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이러한 난장판 같은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로 존귀합니까? 온 산과 바다, 온 하늘과 땅을 다 품을 만큼 존귀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체계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바울은 이것이 존귀한 복음이며, 주를 믿는 것은 존귀한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것은 하나님께서 값진 대가를 치르고 사신 것이며, 모두가 보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꽤 긍휼이 있어 보였지만, 그것은 육신에 속한 긍휼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세울 때 쓰레기를 안으로 들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목회자들은 그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세상적인 체계를 처리해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우리에게 와서 치유를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르면, 그러한 일들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데, 그 안에 여전히 세상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가 제게 전화를 걸어와 자기 아내가 수년 동안 아팠고, 장인과 장모도 돌봄이 필요한 등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자리나 채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야겠습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러 온 것이 아니라면, 성전 밖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해도 되고,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아도 벌금을 물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뜰에 있고, 어떤 사람은 바깥뜰의 바깥뜰에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러 온 것이며, 어떤 사람은 입을 열기만 해도 그가 저주 가운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듣기 좋은 말이나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저주 가운데 계속 살기를 원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알고 있는지만을 물을 뿐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진 대가를 치르고 속량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쓰레기를 사시겠습니까? 저는 쓰레기를 사지 않습니다. 발뒤꿈치로만 생각해도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사는 사람이 있다면 병든 것입니다. 제 동창 중에 자주 술에 취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나 정신없이 취했던지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와서 집 거실에 놓아두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누가 쓰레기통을 가져왔느냐고 물으며, 자기가 가져왔다는 사실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연세가 좀 있으신 자매님들 중에는 다른 사람이 이사하며 버린 소파나 식당의 철제 쟁반, 쇠숟가락 같은 것을 집으로 가져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본인에게 그깟 얼마의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기어이 쓰레기 같은 고물을 집으로 가져옵니다. 사실 여러분은 그런 낡은 소파, 찌그러진 쟁반, 쇠숟가락보다 훨씬 더 귀중합니다.

저는 집에 이런 물건들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가져와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알 수 없고, 그럴 돈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중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서 집으로 가져가는데, 온 집안에 휴지를 가득 채운다 한들 얼마의 가치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존귀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오늘도 존귀하지 않고 내일도 존귀하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오늘 자신이 얻은 구원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저는 너무나 애가 탑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기에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온종일 돈 벌 생각만 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져서, 거울을 보면 얼굴이 말상처럼 변해 있고, 조금만 더 길어지면 여주(쓴오이)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진 대가를 치르고 속량하신 존재이며, 이 값진 대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셔서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면, 얼마나 보배롭겠습니까? 그저 돈만 벌려는 자들은 남의 돈줄을 막는 것이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안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그렇게 중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장차 우리가 부활하여 영원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쓰레기들은 모두 쓰레기장에 던져져 불태워질 것이나, 보배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거두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구속함을 얻었으며,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으니, 우리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병원만을 바라보는 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 알지 못합니다. 의사를 믿지만, 의사 자신조차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에게 강한 믿음을 가지지만, 의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사람은 자신이 지극히 존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우리가 평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어 평생토록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몸의 질병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고치실 수 있습니다. 고치실 수 없다면,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 말씀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한 이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20)

우리의 영혼만을 사고, 육체는 돼지고기를 팔듯 근당 10위안에 팔아넘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신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몸입니다. 즉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으니, 이 구속에는 몸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바쁘게 뛰어다녀 봐야 헛수고일 뿐이며,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속량하셨음에도 사람은 믿지 않고, 뼛속에 그 비뚤어진 고집이 박혀 있어서 깨닫지 못하기에, 베드로 게바의 방식을 끌어들여 쓰레기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쓰레기라면 저 역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바울을 아주 똑같이 본받고 있습니다. 저를 탓하지 마시고, 탓하려거든 바울을 탓하십시오. 바울이 바로 그렇게 행했습니다. 자신이 존귀한 줄 모른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천하게 여겨, 근당 10위안짜리 고기로 얼마나 팔 수 있겠습니까? 돼지고기 값만도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시고, 그분의 구원을 얻게 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한 영이 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게 하시니, 진실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제게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답할 것이며,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보배로우냐고 묻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보배롭다고 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사실입니다.

2. 우리는 이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자들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린도전서 6:3)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알고 보니 이 세상과 천사들을 우리가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심판을 받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하고, 영적 세계를 심판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끊임없이 묵상했습니다. 베드로의 눈에 천사는 큰 권능을 가진 존재였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으신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으신 권세를 다 우리에게 주실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매우 천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전하고 있을 뿐, 존귀함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매우 존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망하게 됩니다. 두 형제가 서로 네 머리채를 잡고 내 머리채를 잡으며, 네 멱살을 잡고 내 멱살을 잡는 것은 자신이 존귀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두 사람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멱살을 쥐고 싸우는 것을 보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결국 관청까지 가게 되는데, 이는 사람이 자신이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자임을 알지 못하여 귀신에게 붙들려 극히 천해졌기 때문입니다. 근당 10위안에 팔아도 비싸고, 솔직히 말해 5위안에 내놓아도 아무도 사 가지 않을 지경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이 복음이 얼마나 존귀한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얼마나 존귀한지를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만약 파출소까지 가며 치고받고 싸울 사람이라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을 원치 않으며,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여야 하며,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수 있으며, 영적 세계에서 천사보다 더 존귀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신분과 명분이 있다면, 사람과 멱살을 잡고 파출소까지 갈 이유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얼마나 잘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것은 자신이 존귀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이종사촌 형제들처럼 하찮은 일로 온종일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해서 자리가 다른 테이블로 나뉘었는데도 서로 맞붙어 싸우며, 동생은 심지어 깨진 술병 조각을 형에게 찔러 넣으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는 여전히 존귀하지 못한 자들이 많아서, 사기꾼이 속이면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 안에 결핍이 심각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사기를 당하는데, 듣고 있으면 웃음거리 같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돈을 사랑합니까? 우리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영계의 일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면, 이생의 일 역시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린도전서 6:1-5)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니, 당장 구덩이라도 파고 숨어야 할 판입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아 주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린도전서 6:6-8)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 교회는 이미 사람들에 의해 엉망으로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베드로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를 정결하게 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빈둥거리며 시간이나 때우려 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지극히 존귀한 곳이며, 이 구원은 지극히 존귀한 구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기서 어영부영 지내려 한다면, 저는 여러분을 이방인의 뜰로 보내어 거기서 어영부영하게 할 것입니다. 천사도 심판할 수 있는 자들이 온종일 사람들과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돌고 돌아 결국 다 돈 때문입니다. 고작 약간의 손해를 본 것뿐인데, 기꺼이 손해를 보지 못하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이런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헌금이 줄어들까 두려워서이며, 헌금을 걷지 못하면 어떻게 대출금을 갚겠습니까?

저는 헌금을 걷고 싶지 않으며,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헌금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이곳은 돈이 부족하지 않으며, 지극히 존귀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했다고 해서 제게 알릴 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자기가 먹여 살리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조금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제 안이 매우 존귀하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나를 위해 대가를 치르실 만큼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게 할 정도라니, 이 얼마나 존귀합니까? 만약 존귀하지 않다면, 예수께서 여러분을 위해 치르신 대가는 분명 헛된 낭비였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결코 술에 취해 쓰레기통을 집으로 끌고 와 쓰레기를 거두시는 분이 아님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3. 우리는 평생토록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까요? 본문에는 그런 말이 직접적으로 없는 듯하지만, 단지 그들이 형제가 형제를 고발했다고 하니, 결국 돈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판사를 찾아간 것은 결코 자기 것을 상대방에게 판결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 뼛속에 매우 부유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간의 우애를 매우 중하게 여깁니다. 농담이 아니라, 저는 평생 돈이 아쉽지 않습니다. 물론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이 너무 융통성 없이 굴지는 마십시오. 가족 간에 반드시 분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법원의 조정을 거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은 존귀함을 잃어서는 안 되며, 가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사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하며, 교회를 세우는 목적은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거짓이 없으며, 여러분을 결코 현혹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더 많은 은혜를 얻게 할 수 있을까만을 골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늘의 창을 여시고 그분의 복을 우리에게 쏟아부으사, 평생토록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한번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풍성한 은혜가 있는지, 그 은혜에 얼마나 풍성한 영광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것은 은혜를 받기 위함이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기 위함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얼마나 풍성합니까? 이제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으니, 늘 더 많이 베풀 생각을 해야 합니다.

4.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6:9-10)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민을 가려거든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세상이 살기 좋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황량한 곳으로 이민을 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중 어떤 분들은 초기에 잠비아로 이민을 갔고, 얼마 전 한 친구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여동생은 아르헨티나로 시집을 갔다고 했습니다. 그 나라는 지금 정세가 불안정하여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크라이나로 이민을 간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곳으로 이민을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는 풍성한 은혜와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 안으로 아직 이민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목청을 높여 다 함께 들어가자고 외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부모를 돌봐야 한다며 들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결핍된 것은 바로 이러한 존귀한 감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지속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혜택을 누릴 뿐만 아니라, 이생의 삶에서도 만족을 얻고 영생에서도 만족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좋은 것이 우리에게 임하며, 그곳에는 질병도 없고 병원도 없는데, 병원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도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자본 운용이 필요치 않으며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면, 하나님께는 지혜와 총명이 넘쳐나므로 이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마침 《고린도전서》 6장을 성경공부하고 있기에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제게 그곳에 가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저 그 좋은 것을 아주 조금 맛보았을 뿐인데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다고 답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진실로 고단하며,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을 건사해야 하니, 결핍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내면에 가난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결코 부유해질 수 없으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는 없는데, 이 땅의 사람들은 본성상 이기적이어서 온종일 서로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치고받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5. 우리는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되었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린도전서 6:17)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우는 것은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되기 위함이며, 같은 마음과 생각을 품고, 동일한 꿈과 비전과 사명을 가지는 것, 곧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 제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제 것이므로 가로채는 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저와 주님의 관계가 참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마땅히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가로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주님과 남남처럼 집안을 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으면서도 우리의 것이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것이 우리의 것임을 알지 못하여, 주님께 쓸데없이 예의를 차리며 걸핏하면 주님과 갈라서려는 듯이 굽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이방인의 뜰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때우며 제멋대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께 속한 보배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여, 함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워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장차 새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들로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눈물이 없을 것이며, 발전기도 필요 없을 것인데, 하나님의 전능하신 영광이 새 예루살렘 안을 환히 비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시겠습니까? 사도 요한도 새 예루살렘에 대해 조금 기록했을 뿐 아주 명확하게 다 쓰지는 못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이 안식할 처소를 찾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눈에 보배로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기를 바라시며,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우리를 따라다니며 복이나 좀 챙기려 하지만,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안에서부터 밖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우리의 생명과 호흡은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성전이므로, 쓰레기통을 들고 들어온 자는 그 사람을 쓰레기통에 도로 넣어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이 추구하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며,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들을 축복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왜 더 이상 세상적인 자선 사업을 하지 않는가 하면, 우리는 가장 큰 자선을 행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가난의 저주 가운데 살고 있든 질병의 저주 가운데 살고 있든, 저는 여러분을 자유케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게 할 것이니, 이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은혜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함이 없이 주님과 연합한다면, 여러분의 것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것은 여러분의 것이 되며, 저와 함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워 가는 비할 데 없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6. 더 이상 얽매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6:12)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얽맬 수 없으며, 더 이상 돈을 사랑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과 다투고 빼앗을 필요도 없으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도 얻었으므로 영적 세계에서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습니다. 하찮은 귀신은 고사하고 사탄조차 우리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이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오늘 이미 얻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의 방식은 지극히 존귀하니,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에게 직장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여러분만을 위해 맞춤형 직장을 마련해 주실 수 있고, 손님이 부족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객을 보내 주실 수 있으며,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업을 잘되게 도우사 문전성시를 이루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단, 전제 조건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답시고 흐지부지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어 버린다면 큰일이니, 여러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저는 늘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바로잡아 주고자 하는데, 그러한 생각들이 모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복을 그토록 중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눈에 돈만 보이고 온몸에 돈 냄새만 풍기는데 어디서 존귀함이 나오겠습니까? 돈줄을 끊는 자는 부모를 죽인 원수와 같다는 따위의 생각을 가지고는 결코 잘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안팎으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우리가 얻은 은혜에 얼마나 풍성한 영광이 있는지를 명확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7. 결론

이번 결론은 오직 한 문장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지극히 존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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