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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무엘상 9장 - 하나님은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2022-08-17 53,709 撒母耳记上 合神心意 神的带领 神的拣选 硬着颈项 尊贵名分 合神心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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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上09章-扫罗见撒母耳
  • 1 有一个便雅悯人,名叫基士,是便雅悯人亚斐亚的玄孙,比歌拉的曾孙,洗罗的孙子,亚别的儿子,是个大能的勇士(或译:大财主)。
  • 2 他有一个儿子,名叫扫罗,又健壮、又俊美,在以色列人中没有一个能比他的;身体比众民高过一头。
  • 3 扫罗的父亲基士丢了几头驴,他就吩咐儿子扫罗说:“你带一个仆人去寻找驴。”
  • 4 扫罗就走过以法莲山地,又过沙利沙地,都没有找着;又过沙琳地,驴也不在那里;又过便雅悯地,还没有找着。
  • 5 到了苏弗地,扫罗对跟随他的仆人说:“我们不如回去,恐怕我父亲不为驴挂心,反为我们担忧。”
  • 6 仆人说:“这城里有一位神人,是众人所尊重的,凡他所说的全都应验。我们不如往他那里去,或者他能将我们当走的路指示我们。”
  • 7 扫罗对仆人说:“我们若去,有什么可以送那人呢?我们囊中的食物都吃尽了,也没有礼物可以送那神人,我们还有什么没有?”
  • 8 仆人回答扫罗说:“我手里有银子一舍客勒的四分之一,可以送那神人,请他指示我们当走的路。”(
  • 9 从前以色列中,若有人去问 神,就说:“我们问先见去吧!”现在称为“先知”的,从前称为“先见”。)
  • 10 扫罗对仆人说:“你说的是,我们可以去。”于是他们往神人所住的城里去了。
  • 11 他们上坡要进城,就遇见几个少年女子出来打水,问她们说:“先见在这里没有?”
  • 12 女子回答说:“在这里,他在你们前面。快去吧!他今日正到城里,因为今日百姓要在邱坛献祭。
  • 13 在他还没有上邱坛吃祭物之先,你们一进城必遇见他;因他未到,百姓不能吃,必等他先祝祭,然后请的客才吃。现在你们上去,这时候必遇见他。”
  • 14 二人就上去;将进城的时候,撒母耳正迎着他们来,要上邱坛去。
  • 15 扫罗未到的前一日,耶和华已经指示撒母耳说:
  • 16 “明日这时候,我必使一个人从便雅悯地到你这里来,你要膏他作我民以色列的君。他必救我民脱离非利士人的手;因我民的哀声上达于我,我就眷顾他们。”
  • 17 撒母耳看见扫罗的时候,耶和华对他说:“看哪,这人就是我对你所说的,他必治理我的民。”
  • 18 扫罗在城门里走到撒母耳跟前,说:“请告诉我,先见的寓所在哪里?”
  • 19 撒母耳回答说:“我就是先见。你在我前面上邱坛去,因为你们今日必与我同席;明日早晨我送你去,将你心里的事都告诉你。
  • 20 至于你前三日所丢的那几头驴,你心里不必挂念,已经找着了。以色列众人所仰慕的是谁呢?不是仰慕你和你父的全家吗?”
  • 21 扫罗说:“我不是以色列支派中至小的便雅悯人吗?我家不是便雅悯支派中至小的家吗?你为何对我说这样的话呢?”
  • 22 撒母耳领扫罗和他仆人进了客堂,使他们在请来的客中坐首位;客约有三十个人。
  • 23 撒母耳对厨役说:“我交给你收存的那一份祭肉现在可以拿来。”
  • 24 厨役就把收存的腿拿来,摆在扫罗面前,撒母耳说:“这是所留下的,放在你面前。吃吧!因我请百姓的时候,特意为你存留这肉到此时。”当日,扫罗就与撒母耳同席。
  • 25 众人从邱坛下来进城,撒母耳和扫罗在房顶上说话。
  • 26 次日清早起来,黎明的时候,扫罗在房顶上。撒母耳呼叫他说:“起来吧,我好送你回去。”扫罗就起来,和撒母耳一同出去。
  • 27 二人下到城角,撒母耳对扫罗说:“要吩咐仆人先走(仆人就先走了);你且站在这里,等我将 神的话传与你听。”

《答疑解惑》

하나, 서론

  1. 하나님은 늙은 엘리를 찾으셨고, 또 사무엘을 찾으셨으며, 사울을 찾으셨고, 또 다윗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2.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곧 잊어버리거나,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이전처럼 살아갑니다.

둘, 나귀를 찾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1. 사람의 일생에는 우연한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깊이 생각하시며, 늘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2. 사람은 평생의 길을 자주 눈먼 사람처럼 걸어가지만, 모든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나귀를 찾은 것처럼 말입니다. 겉으로는 맹목적으로 찾는 것 같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셋, 사람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돌보신다

  1. 사람은 여러 번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금세 하나님을 내려놓습니다. 세상의 삶으로 돌아오면 눈앞에는 살아가는 자질구레한 일들만 가득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길고 넓고 높고 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하나님을 경험하여 그분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왕이 되시도록 기꺼이 내어 드려야 하며, 목이 곧은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넷, 사람의 일생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다

  1. 사람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맹목적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를 정리하여, 사람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2. 사람이 구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구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섯, 당신의 배경은 하나님의 선택을 막을 수 없다

  1. 하나님 앞에서는 출신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배경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의 선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출신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지만, 경험하고 난 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낼 수 있는지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섯, 하나님은 우리에게 존귀함을 주신다

  1.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며, 원망 없이 기꺼이 섬겨야 합니다. 위에서 권세를 부리고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2. 사람이 섬김을 받고 존귀함을 얻었을 때, 절대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자신이 한때 나귀를 찾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성이 무엇인지도 잊지 마십시오.

일곱, 정리해 내면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

  1. 사람이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목을 곧게 세우지 않고, 자신의 작은 계산을 내려놓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일을 선택하여 행하게 됩니다!
  2. 이제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난 세월 동안 걸어온 경험을 정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낼 수 있습니까? 멸망의 길에서 계속 질주하지 마십시오.

핵심 단어

  1.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함
  3. 사람의 배경
  4. 하나님의 안배
  5. 하나님의 인도
  6. 하나님의 선택
  7. 구하는 사람
  8. 하나님을 자주 경험함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무엘상》 9장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려고 할까요?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저는 《사무엘상》과 《사무엘하》가 어떤 주제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무엘상》과 《사무엘하》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반드시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함께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제가 생각했던 주제는 왕 같은 제사장, 왕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틀 동안 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각 장에서 생각하는 주제도 우선 이 중심축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책의 중심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왕이든 제사장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앞에는 늙은 엘리가 있었고, 나중에는 사무엘을 찾으셨습니다. 앞에는 사울 왕이 있었고, 나중에는 다윗 왕을 찾으셨습니다. 후에 다윗은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을 선택하고 계십니다. 어떤 때는 한 사람을 선택하셨는데 잘 선택한 것 같고, 어떤 때는 잘 선택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찾으실까요?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사실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시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9장은 나귀를 찾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를 보면 《성경》에 기록할 만한 일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신화 이야기 같기도 하며, 노인들이 손주에게 “옛날 옛적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속에 절이 하나 있었단다…”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이 나귀 찾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정리해 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하나님을 자주 경험합니다. 이 이야기가 그것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저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잊어버린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잊어버리거나, 잊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갑니다.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뒤돌아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이런 태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사람이 하나님께 심판받을 때 완전히 변명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런 변명도 없습니다. 사울 왕이든 다윗 왕이든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께 선택받아 왕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역시 하나님께 선택받았습니다. 여러분과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는 장차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때 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해서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변명할 수 없을까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많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종이 말했습니다.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그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반드시 응합니다. 우리가 그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그가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지도 모릅니다.”(《사무엘상》 9:6)

여러분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사무엘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의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모두가 알고 있었고, 무엇인가를 구하거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떤 일을 물으려는 사람은 모두 사무엘에게 왔습니다. 또한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사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시며, 모든 사람에게 계시를 주시고 모든 사람이 영적인 일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경험하지 않은 척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야기해 보면 경험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장차 하나님께 심판받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 대답하겠습니까? 사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늘 잊어버립니다.

나귀를 찾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나귀를 찾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병에 걸리는 일에서는 더욱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병에 걸리고 하나님을 경험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직장을 찾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울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기스가 나귀 몇 마리를 잃어버리고 아들 사울에게 나귀를 찾으러 가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나귀를 찾는 일이란 여기저기 찾아다니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일도 참 재미있습니다. 사울은 계속 걷고 또 걸어 아주 먼 곳까지 갔습니다.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갔을까요? 겉으로는 그가 스스로 간 것 같지만, 사실은 찾고 또 찾다가 사무엘, 곧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당시 어떤 일을 만나서 계속 찾고 또 찾다가 결국 화인 사명신학을 만나게 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화인 사명신학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삶에서 어떤 일을 만나면 찾기 시작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며칠 전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몇 년 전부터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우리 가운데 오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 사람을 섬겼을까요? 사실 그다지 제대로 된 목회자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우리 가운데 온 뒤 “18선의 작은 목회자”에게 섬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선 도시, 이선 도시처럼 등급을 나눈다면 18선은 아마 작은 마을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8선의 작은 목회자였는데, 나중에 제가 정말 누구인지 물어보았더니 실제로 18선의 작은 목회자였습니다. 그 사람이 섬긴 후에 정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지금 아이가 몇 살 되었는데, 정말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나귀를 찾는 일, 아이를 갖는 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배 속의 근육이 당기고, 어떤 사람은 등에 있는 근육이 당기며, 어떤 사람은 다리의 근육이 당기고, 어떤 사람은 목의 근육이 당깁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많습니다.

제가 섬기던 한 사람은 목 양쪽의 근육이 단단히 당겨져 머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려면 몸 전체를 돌려야 했습니다. 머리를 돌리면 그 근육이 철사처럼 팽팽하게 당겨져서 매우 무서웠습니다. 제가 한 번 기도했지만 낫지 않았고, 또 기도해도 낫지 않았으며, 여러 날 기도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것이 좀비의 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릴 때 귀신 영화를 보고 무서워서 이불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부터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보고, 보고 나면 또 무서워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또 보았습니다. 목의 두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져 목이 뻣뻣해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좀비는 몸이 뻣뻣하고 머리를 돌릴 수 없어서, 머리를 돌리면 몸도 함께 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비의 영을 쫓아냈습니다. 그 사람이 좀비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 좀비의 영이 나타났고, 그 사람의 등 근육이 모두 뒤틀렸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그 근육 가운데 난 틈에 술병을 끼울 수 있을 정도로 심했고, 근육이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좀비의 영이 쫓겨난 후 그의 목은 나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 그 경험을 정리하는 것은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청하건대 선견자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바로 선견자요. 너희는 나보다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오늘 너희가 나와 함께 먹을 것이며, 내일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 주고 네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리라. 사흘 전에 잃어버린 나귀들은 마음에 두지 말라. 이미 찾았느니라.”(《사무엘상》 9:18-20)

사울이 나귀를 찾은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찾고 또 찾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사무엘은 어떻게 이 일을 알고 있었을까요? 나귀를 찾는 작은 일 하나를 보면서, 여러분은 사람의 일생에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우연한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일생 가운데 늘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조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신화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사무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전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한 베냐민 사람이 너에게 올 것이니, 내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나귀를 찾는 일에서 왜 하나님을 경험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알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장차 왕이 된 후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는 한 가지를 정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왕을 폐하시고 왕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왕의 자리는 여러분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출애굽의 길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 중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진 빚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 빚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깊이 생각하시며, 선택하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경험하고 난 뒤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때때로 제가 과거에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한 무더기씩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 하나님을 버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그런 사람의 일생에는 저주가 매우 깊습니다. 제가 그를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주의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사실 제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여전히 저주 가운데 살며, 나아지지 않고, 평생 매우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을 지나갔으나 찾지 못하였고, 사알림 땅을 지나갔으나 나귀가 거기에 없었으며, 베냐민 땅을 지나갔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사무엘상》 9:4)

어디까지 돌아다닌 것입니까? 저도 참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나귀 몇 마리를 찾으러 백 킬로미터도 넘게 돌아다녔다는 것입니까? 나귀가 그렇게 멀리 갈 수 있습니까? 더구나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자면, 사람은 평생의 길을 자주 맹목적으로 걸어갑니다. 여러분은 맹목적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걷고 또 걷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나귀를 찾는 길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돌보신다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느니라.”(《사무엘상》 9:16)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시는 것을 싫어했고, 하나님께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셨는데, 그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사람들은 왕을 세우며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지기 시작하신다면 끝이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을 얼마나 자주 버립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돌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을 버립니다. 언제나 상사를 두려워하고, 일을 두려워하고, 프로젝트를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은 쉽게 내려놓습니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하나님만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변이 새고, 대변이 새고, 장이 새고, 이것저것 새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세상에! 얼마 지나지 않아 코가 안 되고, 머리가 안 되고, 귀가 안 되고, 다리가 안 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됩니다. 몸의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충분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 제가 가장 놀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좋으십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백성을 돌보십니다. 아, 하나님은 정말 좋으십니다! 항문이 새고 소변이 새며 몸의 체계가 좋지 않아도,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저는 이런 일을 우리가 맡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맡았다면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하면서 몇 사람은 때려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하지만,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는데, 싱가포르에서 직장을 구하면서 허가증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에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거절당했습니다. 그 후 우리 가운데 와서 모두가 그를 위해 기도했는데, 다시 제출하자 곧바로 허가가 나왔습니다. 허가가 나온 뒤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제 직장 문제도 해결해 주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면,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더욱 잘 도와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버립니다. 사람은 이렇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 기도하여 아이를 낳고 나면, 곧바로 하나님을 한쪽에 내팽개칩니다. 정말 늘 이렇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것을 버립니다. 제가 왜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자주 경험한다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서 “제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변명조차 없게 하십니다. 변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주 많이 경험했지만, 매번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사무엘서》까지, 《사무엘서》에서 《느헤미야서》까지, 느헤미야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예수 그리스도에서 오늘날까지 사람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눈앞에는 고작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만 보입니다. 예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절망한 뒤 하나님을 찾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나귀 하나도 찾지 못하고 나귀를 찾을 능력도 없던 사람이 왕이 되었다고 능력이 생긴 것입니까? 나귀도 못 찾는데 무엇을 찾겠습니까? 나귀를 찾는 일, 아이를 낳는 일, 직장을 구하는 일, 무엇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까? 저도 예전에 직장을 구할 때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정말 좋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돌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길고 넓고 높고 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면 자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면 하나님을 버리거나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무엇을 찾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셨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에 합하지 않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무엘, 모세, 다윗과 역대의 모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본받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왕이 되시도록 기꺼이 내어 드리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무엘은 평생 정말 좋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늙을 때까지 순탄했고, 평생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꿈에서라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창세기》의 요셉도 평생 얼마나 좋았습니까! 노예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죄수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으며, 총리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이 계시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요? 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까요? 우리를 그분의 마음에 합한 백성으로 만들고, 하나님 앞에서 왕자와 공주가 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이어 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부터 회개하십시오. 더 이상 하나님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제멋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내일도 제멋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모레도 제멋대로 하나님을 버리면 목이 곧은 백성이 되고 마는데, 마지막에 잘될 수 있겠습니까? 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돌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돌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크게 돌보시겠습니까! 제가 말한 것을 인정하십니까? 인정한다면 하나님께 잘 돌아가고, 절대로 목을 곧게 세우지 마십시오. 세상의 논리 체계에 따라 살면서 이 사람도 기쁘게 하고 저 사람도 기쁘게 하려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만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병이 많아지면 “하나님!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소변도 새고, 대변도 새고, 장도 새고, 위도 새고 난 뒤에야 하나님을 찾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도대체 어디까지 새야 하겠습니까?

사람의 일생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길을 여러분이 스스로 맹목적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귀를 찾는 길에서도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울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끄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가운데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입니다. 걷고 또 걷다가 화인 사명신학에 이르렀고,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늘 의문을 가집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을까?”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어리석게 행동합니다.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면 생리통이 다시 생기고, 뒤쪽의 근육도 당기며, 배 속의 장기도 당기고, 온갖 일이 한꺼번에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평생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 나귀는 찾았습니까? 찾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고, 여러분이 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구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제 마침 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기도할 때 《요한복음》 9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있었는데, 후에 예수님께서 그가 보게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나중에 보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습니까? 사람마다 반응이 매우 달랐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묻되, 그가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하였어도 듣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너희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요한복음》 9:26-27)

얼마 후 바리새인들이 다시 이 맹인에게 물었습니다. “네 눈이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 맹인이 말했습니다. “제가 방금 이미 말씀드렸는데, 왜 또 묻습니까?”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말했습니다.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요한복음》 9:28-29)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 사울이 나귀를 찾은 일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 전체에서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목을 곧게 세우지만 않는다면 계속 놀랍게 인도하십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되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한복음》 9:25)

창세 이래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된 일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눈이 멀어 가던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섬기고 나서 눈이 나았습니다. 눈은 나았지만 또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려 합니까?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계속 여러분을 돌보셔야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의 길이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안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좋은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어느 때는 나귀가 사라지고, 어느 때는 직장이 사라지고, 어느 때는 무언가가 사라집니다. 천천히 정리해 가십시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간증하면서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찾고 또 찾다가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했더니 열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열쇠를 찾고 난 뒤 무엇을 정리해 냈습니까?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잘 정리하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선택하려 하셨습니다. 사울이 신청했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이 선거에 출마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울의 배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배경은 하나님의 선택을 막을 수 없다

사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베냐민 지파 전체가 거의 멸망하여 수백 명만 남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 수백 명이 조금씩 번성하여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도 큰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작은 지파의 작은 가문이라는 배경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배경이 보잘것없고 지식도 많지 않으며 학문도 깊지 않아서 평생 나귀나 한 마리 찾을 수 있을 정도라 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존귀함을 경험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출신이 중요하지 않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신 후 베드로처럼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하셨고, 이방인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도 베드로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일을 망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바울을 선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배경이 보잘것없습니까? 어부 출신이든 농부 출신이든,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뜻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왕자와 공주의 신분을 가진 존귀한 사람들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하찮고 더러운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자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가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의 작은 가게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우리의 태도를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머릿속에 쓰레기가 너무 많으니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반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는데, 우리 안은 변화되었습니까? 우리 안에 존귀한 왕자와 공주의 사명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롯처럼 되려고 합니다. 롯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롯은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그는 아브라함을 따라 하란을 떠났고, 아브라함을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본래 아브라함의 이름 아래에서 아브라함의 양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굳이 소돔에 들어가 장사하여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질과 위생 조건을 중시했고, 롯도 아내와 한마음이 되어 가정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음란한 소돔 성에서 자녀들을 꽤 잘 교육했지만, 그런 곳에 왜 들어갔는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음란한 소돔 성에서 무엇을 그렇게 중시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그런 곳에서도 처녀였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것을 칭찬할 만합니까? 칭찬할 만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술 한 병뿐이었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후에 롯을 칭찬했던 베드로는 본래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하신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존귀한 신분과 사명을 바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가 포기한 것입니까? 하지 않은 것입니까? “왜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도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도 누가 알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바울을 선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다행히 바울에게는 그런 성품이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바울이 가르친 대로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가고 있습니다.

들었습니까? 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부 출신인지 나무를 베던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간단해집니다. 여러분은 평생 하나님을 자주 경험했는데, 무엇을 정리해 냈습니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지요? 여러분이 경험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보다 여러분이 더 많습니다.

때로 저는 형제자매들을 보며 가슴을 졸입니다. 그렇게 많이 경험하고도 돌아서서 “사실 선생님, 제가 경험한 것은 선생님보다 적어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그때 하나님을 경험한 것은 나귀를 찾은 일이 아니라 직장 하나를 찾은 일이었어. 나는 작은 나귀처럼 직장을 하나 구해서 나 자신을 먹여 살리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장을 주셨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이 적다고 말하지만, 우리 가운데 죽고 사는 것처럼 심각한 병을 앓은 사람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보다 적게 경험했습니까?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하시고 존귀함을 경험하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존귀함을 주신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 사울을 내가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을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고, 가장 존귀한 제물의 고기를 가져다가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물러났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매우 컸습니다. 다시 말해 사무엘이 여러분 앞에서 여러분을 존귀하게 한다면, 여러분이 받는 존귀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좀 어리석었습니다! 나귀를 찾던 성격에 외모는 꽤 잘생겼지만, 머리는 그다지 잘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존귀함을 주셨고, 우리에게도 존귀함을 주십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나는 가장 작은 지파 출신이고 가장 보잘것없는 가정 배경을 가진 나귀 찾는 인생인데, 오늘 내가 존귀함을 받게 되다니.”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로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먼 곳에서 비행기표를 사서 저를 만나러 옵니다. 제가 여러분을 정말 만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저는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대접하고, 차를 몰고 여기저기 데려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제가 꼭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사실 저도 그럴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왜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싶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종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여러분이 섬김을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제가 섬기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절대로 순서를 뒤집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듣고도 골치 아픈 말을 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섬겨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전화하면 언제든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네가 전화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지 않았느냐? 나도 일을 하나씩 처리해야 하지 않느냐?” 마치 내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제 마음이 힘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섬기며 양심에 하나님께 거리낌이 없도록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섬기듯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여러분이 제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생겼습니까? 제가 설교에서 한 말은 저 자신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여러분 자신에게 요구해야지 제게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정말 여러분을 한 대 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먹을 꽉 쥐고 정말 사람을 때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게 도대체 무슨 엉망진창입니까! 제가 여러분을 책망하고 나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설교할 때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참 재미있고, 꽤 엉뚱합니다! “그렇게 섬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내는데 왜 답장하지 않습니까?” 목회자가 하루에 받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데, 하나씩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거기서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에게 다윗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요? 목회자를 사울처럼 대하는 것입니까? “나는 사무엘을 본받아야지!” 목회자를 늙은 엘리처럼 대하는 것입니까? “나는 요셉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가 되면 무슨 요셉입니까! 목회자가 여러분에게 빚진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전부 거꾸로 이해하고, 자기 일만 중요하게 여기다가 갑자기 존귀함을 받으면 자신의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사울이 왕이 된 뒤 자신이 사울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예전에 나귀를 찾던 사람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그저 나귀를 찾는 인생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존귀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머리가 어디 있습니까?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갑자기 존귀함을 받더라도 절대로 버릇이 나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의 종과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섬기기를 원한다 해도, 일을 마친 뒤 자신의 성이 무엇인지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배경이 보잘것없더라도, 우리는 여러분이 사업가이기 때문에, 또는 돈이 많고 적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존귀한 왕자와 공주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지, 위에서 권세를 부리며 섬김을 받고 사람들에게 발을 씻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기꺼이 섬기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습니다. 섬긴 후에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어도 선악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는 여러분은 더욱 선악을 분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쓰레기 더미 속의 쓰레기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왕자와 공주의 신분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돌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내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자주 경험하는 것은 여러분이 한 가지 원리를 알고 정리하기 시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원리를 정리해 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평생 경험한 일들을 정리할 수 있습니까? 60세라면 지난 60년의 일을 정리하고, 50세라면 지난 50년의 일을 정리하며, 70세라면 지난 70년의 일을 정리해 보십시오. 무엇을 정리해 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냈다면, 계속 목이 곧은 백성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사람을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도 내리시고 저주도 내리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꺼이 자신의 작은 계산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사명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다면 사무엘처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에 옳은 일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많고, 경험하는 영광이 얼마나 풍성합니까! 저는 매우 감탄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굳이 목을 곧게 세우고,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합니까? 이쪽에서 새지 않으면 저쪽에서 새는 정도까지 갑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자신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했냐 하면, 기침만 해도 소변이 흘러내릴 정도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소변이 새는 사람도 있습니까? ‘찔끔찔끔 소변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계속 기저귀를 차야 하는 것, 소변이 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사랑입니까? 온몸에 세상을 사랑하는 나쁜 습관이 가득합니다! 얼마 전 제가 그 자매의 목회자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소변이 샙니까?” 목회자가 말했습니다. “소변이 새는 것은 나았습니다.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육체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는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지 1~2년이 아니라 3년, 5년, 7년, 8년, 9년, 10년 된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경험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경험하고 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소변이 새는 지경까지 갔습니까? 얼마 전 제가 그 자매를 섬기면서 한바탕 책망했습니다. “대변도 새고 싶습니까? 소변도 새고 대변도 새면 소변이 새는 것은 기저귀 한 장이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대변이 새면 어떻게 합니까? 흙과 섞어야 합니까?” 듣기만 해도 너무 역겹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사명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존귀하게 하며, 하나님께 존귀함을 받는 왕자와 공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은혜가 사울보다 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보다 더 많이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부터 잘 고쳐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됩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잘 정리하여 어리석은 것들을 내버리십시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것은 적은 일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의 영적인 시각이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정말 얼마 전 한 사람을 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에게 이 부분을 누르고 저 부분을 누르게 했습니다. 그곳의 혈자리를 누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틀 후 그가 돌아와 저에게 질문했는데, 그 질문을 듣고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정말 불편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기도하면서 이 부분도 누르고 저 부분도 누르게 하셨는데, 그 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이쪽저쪽에 침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효과가 없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헌금을 하라고 했더니 한의사에게 헌금하고, 집 뒤의 마사지 가게에 헌금하고, 그 한의원에 헌금했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이지, 이곳저곳 누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악령까지 붙어 있다면, 당신에게 또 무엇인가를 더하게 될 것이니 더욱 고생하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영적인 사람이 되고, 이런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곳을 누르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한의원에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까? 저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침술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마사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정리해 낸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여러분이 나귀를 찾는 길까지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더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정말 하늘의 벌을 받고 땅의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가득 채우십니다! 나귀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후에는 잘 정리하기를 권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교회관에 대해 자주 가르치지만, 많은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반드시 교회관을 세우지는 못하고, 그저 혼란스럽게 한바탕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 골절된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발등의 뼈 세 개가 부러져 원래는 수술해야 했는데, 기도하고 나서 나았고 모두 다시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또 암에 걸린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원망 없이 그를 섬기며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사랑이 많으세요!” 마치 제가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별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조금 하고 저렇게 조금 하다가 또 맹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이 멸망의 길에서 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저는 간곡히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배우고, 더 이상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9장 말씀

9:1 베냐민 사람 기스가 있었으니 그는 베냐민 사람 아비엘의 현손이요, 브고랏의 증손이요, 스롤의 손자요, 아비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큰 용사였습니다.〔또는 큰 부자〕 9:2 그에게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준수하고 잘생겼으며,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습니다. 키도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습니다. 9: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나귀 몇 마리를 잃어버리자, 그의 아들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종 한 명을 데리고 가서 나귀를 찾아라.” 9:4 사울이 에브라임 산지를 지나고 살리사 땅을 지나갔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또 사알림 땅을 지나갔으나 나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베냐민 땅을 지나갔으나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9:5 숩 땅에 이르자 사울이 자신을 따르는 종에게 말했습니다.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내 아버지가 나귀보다 우리를 걱정하실까 두렵다.” 9:6 종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그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그가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지도 모릅니다.” 9:7 사울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간다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릴 수 있겠느냐? 자루의 양식도 다 먹었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도 없으니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느냐?” 9:8 종이 사울에게 대답했습니다. “제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고, 그가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게 합시다.” 9:9 (옛적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물으러 갈 때에 “선견자에게 가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선지자라 부르는 사람을 옛적에는 선견자라고 불렀습니다.) 9:10 사울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네 말이 옳다. 가자.”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갔습니다. 9:11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물을 길으러 나오는 소녀 몇 명을 만나 물었습니다. “선견자가 이곳에 있느냐?” 9:12 소녀들이 대답했습니다. “있습니다. 그가 여러분보다 앞서 가셨으니 빨리 가십시오. 오늘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그가 오늘 성읍에 오셨습니다. 9:13 그가 산당에 올라가 제물을 먹기 전에 여러분이 성읍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오시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못하고, 그가 먼저 제사를 축복한 후에야 초대받은 사람들이 먹습니다. 그러니 지금 올라가십시오. 바로 이때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9:14 그들이 올라가 성읍에 들어가려 할 때에 사무엘이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그들을 향해 나오고 있었습니다. 9:15 사울이 오기 하루 전에 여호와께서 이미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9: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느니라.” 9:17 사무엘이 사울을 보았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다. 그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9:18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청하건대 선견자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9:19 사무엘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바로 선견자요. 너희는 나보다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오늘 너희가 나와 함께 먹을 것이며, 내일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 주고 네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리라. 9:20 사흘 전에 잃어버린 나귀 몇 마리는 마음에 두지 말라. 이미 찾았느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사모하는 것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9:21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사람이 아닙니까? 나의 집은 베냐민 지파의 모든 집안 중 가장 작은 집안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9:22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종을 객실로 인도하여 초대받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앉혔습니다. 초대받은 사람은 약 삼십 명이었습니다. 9:23 사무엘이 요리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맡겨 두었던 그 한 조각 제물 고기를 지금 가져오너라.” 9:24 요리하는 사람이 보관해 두었던 넓적다리를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았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보라, 이것은 남겨 둔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어라. 내가 백성을 초대할 때부터 이 고기를 특별히 너를 위해 이때까지 남겨 둔 것이다.” 그날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먹었습니다. 9:25 사람들이 산당에서 내려와 성읍으로 들어간 후, 사무엘과 사울은 지붕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9:26 다음 날 아침 동이 틀 무렵 사울이 지붕 위에 있자, 사무엘이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어 돌아가게 하겠다.” 사울이 일어나 사무엘과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9:27 그들이 성읍 끝으로 내려갔을 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종에게 먼저 가라고 명령하여라.” (종이 먼저 갔습니다.) “너는 이제 여기 잠시 서 있어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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杨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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