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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27장 - 바울은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하며, 함께 항해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 네게 주셨도다!

2023-11-22 78,191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二十七章 使徒行传27章 得救 为神而活 侍奉神为命定 渴望让人经历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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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传27章-保罗坐船往罗马
  • 1 非斯都既然定规了,叫我们坐船往意大利去,便将保罗和别的囚犯交给御营里的一个百夫长,名叫犹流。
  • 2 有一只亚大米田的船,要沿着亚细亚一带地方的海边走,我们就上了那船开行;有马其顿的帖撒罗尼迦人亚里达古和我们同去。
  • 3 第二天,到了西顿;犹流宽待保罗,准他往朋友那里去,受他们的照应。
  • 4 从那里又开船,因为风不顺,就贴着塞浦路斯背风岸行去。
  • 5 过了基利家、旁非利亚前面的海,就到了吕家的每拉。
  • 6 在那里,百夫长遇见一只亚历山大的船,要往意大利去,便叫我们上了那船。
  • 7 一连多日,船行得慢,仅仅来到革尼土的对面。因为被风拦阻,就贴着克里特背风岸,从撒摩尼对面行过。
  • 8 我们沿岸行走,仅仅来到一个地方,名叫佳澳;离那里不远,有拉西亚城。
  • 9 走的日子多了,已经过了禁食的节期,行船又危险,保罗就劝众人说:
  • 10 “众位,我看这次行船,不但货物和船要受损伤,大遭破坏,连我们的性命也难保。”
  • 11 但百夫长信从掌船的和船主,不信从保罗所说的。
  • 12 且因在这海口过冬不便,船上的人就多半说,不如开船离开这地方,或者能到非尼基过冬。非尼基是克里特的一个海口,一面朝东北,一面朝东南。
  • 13 这时,微微起了南风,他们以为得意,就起了锚,贴近克里特行去。
  • 14 不多几时,狂风从岛上扑下来;那风名叫“友拉革罗”。
  • 15 船被风抓住,敌不住风,我们就任风刮去。
  • 16 贴着一个小岛的背风岸奔行,那岛名叫高大,在那里仅仅收住了小船。
  • 17 既然把小船拉上来,就用缆索捆绑船底,又恐怕在赛耳底沙滩上搁了浅,就落下篷来,任船飘去。
  • 18 我们被风浪逼得甚急,第二天众人就把货物抛在海里。
  • 19 到第三天,他们又亲手把船上的器具抛弃了。
  • 20 太阳和星辰多日不显露,又有狂风大浪催逼,我们得救的指望就都绝了。
  • 21 众人多日没有吃什么,保罗就出来站在他们中间,说:“众位,你们本该听我的话,不离开克里特,免得遭这样的伤损破坏。
  • 22 现在我还劝你们放心,你们的性命一个也不失丧,惟独失丧这船。
  • 23 因我所属所侍奉的 神,他的使者昨夜站在我旁边,说:
  • 24 ‘保罗,不要害怕,你必定站在凯撒面前,并且与你同船的人, 神都赐给你了。’
  • 25 所以众位可以放心,我信 神他怎样对我说,事情也要怎样成就。
  • 26 只是我们必要撞在一个岛上。”
  • 27 到了第十四天夜间,船在亚得里亚海飘来飘去。约到半夜,水手以为渐近旱地,
  • 28 就探深浅,探得有十二丈;稍往前行,又探深浅,探得有九丈。
  • 29 恐怕撞在石头上,就从船尾抛下四个锚,盼望天亮。
  • 30 水手想要逃出船去,把小船放在海里,假作要从船头抛锚的样子。
  • 31 保罗对百夫长和兵丁说:“这些人若不等在船上,你们必不能得救。”
  • 32 于是兵丁砍断小船的绳子,由它飘去。
  • 33 天渐亮的时候,保罗劝众人都吃饭,说:“你们悬望忍饿不吃什么,已经十四天了。
  • 34 所以我劝你们吃饭,这是关乎你们救命的事;因为你们各人连一根头发也不至于损坏。”
  • 35 保罗说了这话,就拿着饼,在众人面前祝谢了 神,擘开吃。
  • 36 于是他们都放下心,也就吃了。
  • 37 我们在船上的共有二百七十六个人。
  • 38 他们吃饱了,就把船上的麦子抛在海里,为要叫船轻一点。
  • 39 到了天亮,他们不认识那地方,但见一个海湾,有岸可登,就商议能把船拢进去不能。
  • 40 于是砍断缆索,弃锚在海里;同时也松开舵绳,拉起头篷,顺着风向岸行去。
  • 41 但遇着两水夹流的地方,就把船搁了浅;船头胶住不动,船尾被浪的猛力冲坏。
  • 42 兵丁的意思要把囚犯杀了,恐怕有洑水脱逃的。
  • 43 但百夫长要救保罗,不准他们任意而行,就吩咐会洑水的,跳下水去先上岸;
  • 44 其余的人可以用板子或船上的零碎东西上岸。这样,众人都得了救,上了岸。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사도행전》 27장을 나누겠습니다. 이 장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장으로, 유라굴로 광풍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풍랑을 겪어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지 못하고, 늘 자기가 대단한 인물인 줄 착각하다가도 일단 풍랑을 겪고 나면 즉시 겸손해집니다. 동일한 풍랑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만 보더라도, 암이라는 두 글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제가 대입 시험을 치르던 해에 어머니는 겨우 마흔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삶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분이셨는데, 이 말을 들으면 ‘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차라리 죽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이라, 삶을 사랑했던 어머니와는 완전히 천지 차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자리보전하고 누워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온 가족은 물론 이웃들까지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의사가 찾아와 사람을 착각했다며 암에 걸린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셨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높이뛰기 선수처럼 날렵하고 민첩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마작판을 차리고 단숨에 네 시간 동안 마작을 치셨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는 사람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닥쳤을 때의 반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 거울에 자신을 비춰본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라굴로 광풍을 겪어보면 그 사람의 반응을 통해 실상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여러분에게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하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사명을 갖는다는 것을 허황된 이야기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는 자기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장난이 아닙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한 후에도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정작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비로소 뼈저리게 알게 될 것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도입부일 뿐이며, 이번 장의 주제는 ‘네가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하겠고, 또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다 네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처음 부르셨을 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심지어 황제에게까지 나아가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황제 앞에 가서 증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유라굴로 광풍을 통과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바울이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하며, 바울과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다 주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자는 복이 있다

사람이 사명이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복입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만난 후 삶의 궤적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는 결코 허풍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자매에게도 ‘당신이 나를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 생은 끝장났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에게는 ‘암에 걸리기 쉬운 성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고모와 고모부도 모두 암에 걸렸으며, 본인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집안 전체에 이 병이 내력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세 들어 살던 방에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 심장병이 발작했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져 서둘러 병원으로 보내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걸어와 저와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우리 모두 몹시 긴장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쪽에서 그녀를 이끌며 기도하는데, 전화기 너머로는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의 소리가 들려왔고 심장 통증이 극심했습니다. 집주인은 연신 문을 열고 들어와 119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한 끝에, 심장이 깨끗이 나았다는 감격스러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발작이 일어났지만, 그때는 한 시간 기도하여 나았습니다. 그다음 발작 때는 몇 분 만에 나았고, 나중에는 단 몇 초 만에 나았습니다. 그 후로는 그녀가 몸에 조금 이상을 느끼고 저에게 전화를 걸려고만 해도 심장병 배후의 귀신이 감히 틈타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녀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이 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녀가 은혜를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저는 저희 집안에서 가정을 지키는 보배일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가정에서도 가정을 지키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사명이 있는 사람이며, 여러분도 모두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온 가족을 여러분에게 맡겨주실 것이며, 여러분이 믿음으로 가정을 돌보아 갈 때 집안에서 여러분의 위상은 분명 높아질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 이를 위해 태어나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세상에 왔고, 이를 위해 죽는다면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는 자는 누구나 복을 받게 되며, 모두가 그에게 은혜를 입게 됩니다. 부디 저에게만 빚진 자가 되려 하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빚진 자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권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이가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저를 찾아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다만 체력에 한계가 있어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못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9-25)

바울이 황제 앞에 나아가 증언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의 사명인데 하나님께서 모른 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울이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은 아무것도 아니며, 사명이 있는 사람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사명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날뛰지 못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어떤 풍파도 능히 견뎌냅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은 유라굴로 광풍을 통과하면서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백부장과 천부장도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머물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목을 삐었거나 다리가 상한 사람은 바울이 손만 얹어도 나았고, 온갖 난치병에 걸린 자들도 바울에게 오기만 하면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천부장과 백부장 역시 바울에게 큰 신세를 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바울에게 그토록 호의를 베풀었겠습니까? 백부장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제 손을 통해 치유받은 사람이 많지만,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사명이 있는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사명 있는 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훨씬 더 복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사명 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만남으로 복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의 본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명의 길을 향해 달려가며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함께 여호와의 산에 오릅시다. 비록 힘든 과정이지만, 오르지 않는 삶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짓눌리는 고통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처음 몇 단계를 오를 때는 마귀의 화살이 날아와 꽂힐 수 있습니다. 얼굴은 산을 향하고 등은 마귀에게 온전히 노출되어 있어, 기어오르면서 화살을 휙휙 맞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사명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산을 오르다가 죽지 않습니다. 설령 등이 고슴도치처럼 화살로 뒤덮인다 해도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이때 계속해서 위를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 화살은 더 이상 닿지 않으며 그때부터는 귀신을 제압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귀신에게 쫓겼지만, 우리 모두 다양한 일을 겪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고지를 향해 힘써 올라가야 합니다. 산에 오르지 않는 삶은 괴롭기 때문에 반드시 사명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 있는 자가 되어, 나를 보고 여러분을 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해야 합니다.

백부장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었다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여 황제에게 심문과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다른 죄수들도 동행했는데, 가이사랴에서 백부장으로 재직한 세월이 적지 않았으므로, 그는 과거 바울을 구해내고 바울이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직접 보았던 바로 그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해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하더니 (《사도행전》 27:3)

이 백부장은 바울을 후대하며 친구들을 만나 보살핌을 받는 것까지 허락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도망칠까 염려하지도 않았고 군사를 붙여 감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이 백부장에게 분명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이전에 백부장 등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황제 앞에 가서도 반드시 증언할 것임을 확신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곁에 있는 사람들도 압니다.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드렸기에 결코 함부로 도망치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이전에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지만, 바울을 보면서 비로소 안목이 생겼습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리자면, 여러분도 저를 보면서 안목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진정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실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돈을 위해 살고 그저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지난 몇 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백부장과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누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전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사업을 크게 하든 작게 하든, 청소하시는 분을 만나더라도 금세 허물없이 어울리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흥미진진하고 의미 있는 간증들입니다. 이 백부장이 안목이 있었던 이유는 사명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안심이 됩니다. 다른 이들은 백부장에게 곤란을 안겨줄지 모르나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변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사도행전》 27:6-11)

바울과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백부장은 때로는 믿고 때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비록 전문 뱃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영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듣지 않고 출항을 강행하자, 결국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겪다

바울은 더 이상 항해해서는 안 되며 배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과거 베드로가 고기를 잡던 때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아본 적도 없는 예수님이 고기잡이를 가르치려 한다며 속으로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던지자 배가 가득 차도록 잡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호의 선주와 선장, 그리고 백부장은 오랜 항해 경험만을 믿고 바울의 말을 듣지 않은 채 항해를 계속했고, 결국 유라굴로 광풍을 겪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엘니뇨를 아십니까? 태풍이나 바람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참 흥미롭습니다. 산투스니 망쿳(Mangkhut)이니 하는 식입니다. 바람마다 이름이 붙어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이름들이 꽤 그럴듯합니다. 바울 시대에도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있었고, 바울 일행이 바로 그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광풍은 참으로 지독해서 배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풍랑을 겪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밥도 넘기지 못하지만, 바울 같은 사람은 평소처럼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께서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지경인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안히 주무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성해야 합니다. 풍랑이 닥치기 전에 미리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풍랑이 닥칠 때까지 사명 없이 지내다가, 풍랑이 몰아치자 갑자기 ‘나에게 사명이 생겼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았다’며 하나님께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지 마십시오. 풍랑을 겪어봐야 누가 바지를 입지 않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썰물이 빠져나가야 누가 발가벗고 있는지 알게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두 표현 모두 비슷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다만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평소에 우쭐대며 자기 자신만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배에 있는 사람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도행전》 27:37)

배에는 총 276명이 타고 있었는데, 바울 외에도 아리스다고와 누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누가와 아리스다고도 함께 동행했을까요?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딜 가나 친구가 많았고, 저 역시 어딜 가나 친구가 많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증언하러 간다는 것은 사실상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재판받는 길에 동행하며 유라굴로 광풍까지 함께 겪었습니다. 저는 누가와 아리스다고 역시 바울처럼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지 않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명 있는 자들이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겪는 동안 배 안의 다른 사람들은 하루가 여삼추 같았습니다. 배는 성난 파도에 떠밀렸고, 파도가 배보다 높았으니 배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 속에서 배가 요동치는 것은 돈 한 푼 안 내고 목숨을 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격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꺼내 보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앞에서 바다에 목숨을 묻어야 할 판국이니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겠습니까? 당시에는 전화할 수도 없었으니, 죽음을 앞두고 남겨진 미련과 집착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사람에게 사명이 없다면,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지탱목은 세상에 대한 집착뿐이며, 백부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날 동안 사람들은 먹지 못했고, 로마로 운송하려던 배 안의 화물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평소처럼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이 있는 자와 사명이 없는 자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죽을 위기에 처해서야 비로소 걱정하기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때 가서는 걱정해도 소용없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이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누구를 봐주겠습니까?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고 해서 봐주지 않습니다. 그런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소 사명을 떠올리지 마시고, 평소에 진작 사명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누가 운전하든 차에 타면 안전벨트를 매고 잘 때가 되면 그냥 잡니다. 어떤 사람은 “운전자가 방금 면허를 땄는데 걱정되지 않으세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저는 똑같이 마음이 평안합니다. 유난을 떨며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다가 오히려 딱지를 떼이게 만드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저는 정말 위험하게 운전할 때에만 입을 열어 가르칩니다. 면허도 없는 사람이 운전자 옆에 앉아 면허 있는 사람에게 운전을 지시하는 것은 혼란만 더할 뿐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 여러분의 반응은 과연 어떠합니까?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누가 운전하든 편안히 잠을 자고 눈을 감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결국에는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제가 권면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저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며, 풍랑이 닥치든 그렇지 않든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되어 늘 전전긍긍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떤 이의 말처럼 이미 차에 탔는데 어쩌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저와 함께 같은 배를 타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끊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떠올리기보다는, 소망이 있을 때부터 세상에 대한 헛된 소망을 내려놓는 편이 낫습니다.

왜 제가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큰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더 큰 집을 사기를 바라고, 으리으리하게 꾸며 졸부처럼 행세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세속적인 냄새로 가득합니다. 그런 것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제 어머니처럼 검사 결과지 한 장에 주저앉아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유라굴로 광풍을 겪어봐야 비로소 자신에게 사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겪기 전부터 이미 풍랑 속에 있는 것처럼 자신을 훈련하고 사명을 품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절에 가서 부적을 구해 주머니에 넣어 차고 다니다가 외출할 때 깜빡 잊고 안 챙기면 몹시 불안해하는데, 그런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왔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에게 나누는 가장 큰 은혜는 사명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매우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며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소망이 끊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사명을 떠올리지 마십시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기 전에 미리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우며 삶도 단순해집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사도행전》 27:23-24)

바울이 보니 사람들이 열흘 넘게 먹지 못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평소에 금식 훈련을 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14일 동안 금식하게 되었으니 몸이 견뎌낼 리 없었습니다.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력이 다한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사명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 곁에 섰는데, 어쩌면 이 사자가 바로 유라굴로였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 땅의 모든 풍랑은 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276명을 태울 수 있는 배라면 결코 작은 배가 아니었을 것이며, 적어도 1,000톤급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모든 사람이 바울의 영적 보호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죽지 않는다면 그들도 죽지 않습니다. 이 276명을 다 바울에게 주셨으므로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언급하는데, 바로 ‘모두 구원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구원이라고 하면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

함께 배에 탄 사람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지만 그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 목숨을 건졌다는 의미에서 ‘구원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부터 성경을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나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녀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뜻합니다.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은 바울로 인하여 이 모든 사람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래 다 죽을 수밖에 없던 자들이었지만, 배 안에 바울이 있었기 때문에 유라굴로 광풍을 뚫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기도하여 재앙이 지나가고 질병이 떠나간 것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제게 맡겨주셔서 구원을 한 번 경험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 질병이나 문제에서 건짐을 받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구원’이라는 단어를 깊이 헤아려야 합니다. 번역상의 한계로 오해하기 쉬운데, 영혼의 온전한 구원은 ‘Salvation’이고 위험에서 살아남는 것은 ‘Save’입니다. 성경에서는 둘 다 구원으로 번역되기도 하므로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사람이라면 수많은 사람의 문제를 능히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한 배를 탄 사람들, 곧 함께 군 생활을 했거나, 함께 공부했거나, 함께 직장 생활을 했거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사람들을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에게 맡겨주셔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기를 사모합시다. 평소에 사명을 품는 훈련을 많이 하십시오. 집에서 풍랑을 겪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십시오. 의자에 올라앉아 유라굴로가 몰아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이들 놀이처럼 거친 파도 속을 뚫고 지나가는 모습을 그리며, 만약 이대로 바다에 수장되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지 느껴보십시오. 그때가 되면 여러분의 모든 사랑과 미움, 집착과 갈등도 다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전염병 사태를 마주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곳곳에 다니며 간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로 인하여 여러분에게도 구원을 경험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간증을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겪으며, 사명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황제에게 가서 증언하다

이 배에는 바울이라는 사람이 타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황제에게 가서 증언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황제에게 증언하러 가야 하니 황제를 알현하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었습니다. 죽더라도 증언을 다 마친 후에야 죽을 수 있었기에 하나님은 바울을 지키셨습니다. 바울이 죽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 배를 탄 사람들도 다 죽지 않으며, 바울만 살려두고 다른 이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배 안에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광풍을 향해 잠잠하라고 꾸짖었다면 파도가 가라앉지 않았을까요?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았습니다. 처음에 바울이 이미 출항해서는 안 된다고, 출항하면 배가 파선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불신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누누이 말씀드려도 어떤 사람들은 제 말대로 하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여깁니다. 일은 누가 하고, 월세는 누가 내며, 월급은 누가 주느냐며 온갖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는데, 이는 생각의 틀이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기도하지 않은 까닭은 이미 그들에게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풍랑 속에서도 태연하게 지냈습니다. 만약 배 안에 귀한 술이라도 있었다면 바울은 평소처럼 마셨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누가 믿지 말라고 했습니까? 날이 갈수록 모두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야 비로소 바울이 나섰습니다. 바울은 황제에게 증언하러 가야 하니 모두 안심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는 온 배의 사람들을 바울에게 주셨다는 뜻이며, 곧 사람들의 마음이 바울에게로 온전히 향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사명이 있었고, 황제에게 가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반드시 표적과 기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황제에게 증언하는 삶이었습니다. 황제에게 증언하러 가는데 명확한 이유와 경위가 적혀 있지 않다면 황제가 그를 만날 리도 없고, 바울의 간증을 들을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거대한 로마 제국의 황제가 친히 재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이며, 이것이 바로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강하고 담대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디 대소변이 잘 안 나온다거나, 밥을 넘기지 못한다거나, 소변을 참지 못하겠다는 등의 문제로 늘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찾아오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다 세상을 사랑하다가 생겨난 연약함들입니다. 사람은 사명이 있어야 참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명을 갖고 싶지만 월세가 걱정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명이 있는 사람이 월세를 걱정하겠습니까?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까지 가는 뱃삯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오늘날에는 교통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동 비용이 많이 저렴해졌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싱가포르에서 베이징까지 비행기 표 한 장이 1만 위안이 넘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훨씬 더 열악했으니 뱃삯이 기본 수만 위안에 달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아리스다고, 누가가 함께 로마로 가는 여비는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사람은 물질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사명이 없기 때문에 늘 월세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더 이상 이러한 혼란과 염려 속에 머물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권면하건대, 집에 가서 의자에 앉아 유라굴로 광풍을 한번 겪어보며 구원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느껴보십시오. 결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만약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둔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늘에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네가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하겠고 또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포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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