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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7장 - 진리를 말하는 자가 박해를 받는다

2023-07-05 32,854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七章 使徒行传07章 刮骨疗毒 对付自己 说真话的受逼迫 认识人的本质

相关经文

使徒行传07章-司提反当众申诉
  • 1 大祭司就说:“这些事果然有吗?”
  • 2 司提反说:“诸位父兄请听!当日我们的祖宗亚伯拉罕在美索不达米亚还未住哈兰的时候,荣耀的 神向他显现,
  • 3 对他说:‘你要离开本地和亲族,往我所要指示你的地方去。’
  • 4 他就离开迦勒底人之地,住在哈兰。他父亲死了以后, 神使他从那里搬到你们现在所住之地。
  • 5 在这地方, 神并没有给他产业,连立足之地也没有给他;但应许要将这地赐给他和他的后裔为业;那时他还没有儿子。
  • 6  神说:‘他的后裔必寄居外邦,那里的人要叫他们作奴仆,苦待他们四百年。’
  • 7  神又说:‘使他们作奴仆的那国,我要惩罚。以后他们要出来,在这地方侍奉我。’
  • 8  神又赐他割礼的约。于是亚伯拉罕生了以撒,第八日给他行了割礼。以撒生雅各;雅各生十二位先祖。
  • 9 “先祖嫉妒约瑟,把他卖到埃及去; 神却与他同在,
  • 10 救他脱离一切苦难,又使他在埃及王法老面前得恩典,有智慧。法老就派他作埃及国的宰相兼管全家。
  • 11 后来埃及和迦南全地遭遇饥荒,大受艰难,我们的祖宗就绝了粮。
  • 12 雅各听见在埃及有粮,就打发我们的祖宗初次往那里去。
  • 13 第二次约瑟与弟兄们相认,他的亲族也被法老知道了。
  • 14 约瑟就打发弟兄请父亲雅各和全家七十五个人都来。
  • 15 于是雅各下了埃及,后来他和我们的祖宗都死在那里;
  • 16 又被带到示剑,葬于亚伯拉罕在示剑用银子从哈抹子孙买来的坟墓里。
  • 17 “及至 神应许亚伯拉罕的日期将到,以色列民在埃及兴盛众多,
  • 18 直到有不晓得约瑟的新王兴起。
  • 19 他用诡计待我们的宗族,苦害我们的祖宗,叫他们丢弃婴孩,使婴孩不能存活。
  • 20 那时,摩西生下来,俊美非凡,在他父亲家里抚养了三个月。
  • 21 他被丢弃的时候,法老的女儿拾了去,养为自己的儿子。
  • 22 摩西学了埃及人一切的学问,说话行事都有才能。
  • 23 “他将到四十岁,心中起意去看望他的弟兄以色列人;
  • 24 到了那里,见他们一个人受冤屈,就护庇他,为那受欺压的人报仇,打死了那埃及人。
  • 25 他以为弟兄必明白 神是藉他的手搭救他们;他们却不明白。
  • 26 第二天,遇见两个以色列人争斗,就劝他们和睦,说:‘你们二位是弟兄,为什么彼此欺负呢?’
  • 27 那欺负邻舍的把他推开,说:‘谁立你作我们的首领和审判官呢?
  • 28 难道你要杀我,像昨天杀那埃及人吗?’
  • 29 摩西听见这话就逃走了,寄居于米甸;在那里生了两个儿子。
  • 30 “过了四十年,在西奈山的旷野,有一位天使从荆棘火焰中向摩西显现。
  • 31 摩西见了那异象,便觉希奇,正进前观看的时候,有主的声音说:
  • 32 ‘我是你列祖的 神,就是亚伯拉罕的 神,以撒的 神,雅各的神。’摩西战战兢兢,不敢观看。
  • 33 主对他说:‘把你脚上的鞋脱下来,因为你所站之地是圣地。
  • 34 我的百姓在埃及所受的困苦,我实在看见了,他们悲叹的声音,我也听见了。我下来要救他们。你来!我要差你往埃及去。’
  • 35 这摩西就是百姓弃绝说‘谁立你作我们的首领和审判官’的; 神却藉那在荆棘中显现之使者的手差派他作首领、作救赎的。
  • 36 这人领百姓出来,在埃及,在红海,在旷野,四十年间行了奇事神迹。
  • 37 那曾对以色列人说‘ 神要从你们弟兄中间给你们兴起一位先知像我’的,就是这位摩西。
  • 38 这人曾在旷野会中和西奈山上,与那对他说话的天使同在,又与我们的祖宗同在,并且领受活泼的圣言传给我们。
  • 39 我们的祖宗不肯听从,反弃绝他,心里归向埃及,
  • 40 对亚伦说:‘你且为我们造些神像,在我们前面引路;因为领我们出埃及地的那个摩西,我们不知道他遭了什么事。’
  • 41 那时,他们造了一个牛犊,又拿祭物献给那像,欢喜自己手中的工作。
  • 42  神就转脸不顾,任凭他们侍奉天上的日月星辰,正如先知书上所写的说:‘以色列家啊,你们四十年间在旷野,岂是将牺牲和祭物献给我吗?
  • 43 你们抬着摩洛的帐幕和理番神的星,就是你们所造为要敬拜的像。因此,我要把你们迁到巴比伦外去。’
  • 44 “我们的祖宗在旷野,有法柜的帐幕,是 神吩咐摩西叫他照所看见的样式做的。
  • 45 这帐幕,我们的祖宗相继承受。当 神在他们面前赶出外邦人去的时候,他们同约书亚把帐幕搬进承受为业之地,直存到大卫的日子。
  • 46 大卫在 神面前蒙恩,祈求为雅各的 神预备居所;
  • 47 却是所罗门为 神造成殿宇。
  • 48 其实,至高者并不住人手所造的,就如先知所言:
  • 49 ‘主说:天是我的座位,地是我的脚凳;你们要为我造何等的殿宇?哪里是我安息的地方呢?
  • 50 这一切不都是我手所造的吗?’
  • 51 “你们这硬着颈项、心与耳未受割礼的人,时常抗拒圣灵!你们的祖宗怎样,你们也怎样。
  • 52 哪一个先知不是你们祖宗逼迫呢?他们也把预先传说那义者要来的人杀了;如今你们又把那义者卖了,杀了。
  • 53 你们受了天使所传的律法,竟不遵守。”
  • 54 众人听见这话就极其恼怒,向司提反咬牙切齿。
  • 55 但司提反被圣灵充满,定睛望天,看见 神的荣耀,又看见耶稣站在 神的右边,
  • 56 就说:“我看见天开了,人子站在 神的右边。”
  • 57 众人大声喊叫,捂着耳朵,齐心拥上前去,
  • 58 把他推到城外,用石头打他。作见证的人把衣裳放在一个少年人名叫扫罗的脚前。
  • 59 他们正用石头打的时候,司提反呼吁主说:“求主耶稣接收我的灵魂!”
  • 60 又跪下大声喊着说:“主啊,不要将这罪归于他们!”说了这话,就睡了。扫罗也喜悦他被害。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7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장은 스데반이 거침없이 설교를 한 편 전하고, 설교를 마친 후 죽임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하며, 무조건 상대방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누가는 스데반이 전한 이 긴 설교를 훨씬 줄여서 창세기부터 다윗까지, 그리고 예수님까지 전하고 끝낼 수도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한 과정을 누가가 직접 현장에서 보았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누가가 직접 지어낸 것인지조차 우리는 고증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사실 이 일을 통해 한 가지 주제, 즉 《진실을 말하는 자가 박해를 받는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교회이든, 기업이든, 정부이든 진실을 말하는 자는 박해를 받게 마련이며, 마치 이런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것들이 이미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교회의 관리에 있어 지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나누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본질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본질에 대한 저의 견해는 상당히 부정적인데, 사람은 누구나 별 볼 일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양할 때 본능적으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부정적인 인식대로만 섬기거나 섬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더욱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사람은 다 별 볼 일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꽤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그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질문과 대답을 몇 번 주고받다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자신들이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결코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본질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바로 진실을 말하는 자가 박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듣기 거북하기 때문입니다.

관리는 반드시 사람 마음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

다른 것을 볼 것도 없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교회의 역사만 보아도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면 마치 자신에게 크나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며, 이는 대단히 모순적이고 풍자적입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 누가는 한 가지 핵심을 부각시켰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다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조차도 당시에는 별 볼 일 없었으며, 그때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을 당할 때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기뻐할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진실을 말씀하시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스데반이 진실을 말하자 사람들이 돌로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무리가 정작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형편없지만, 저는 여전히 그들에게 충분한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결국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일단 갈등이 생기면 틀림없이 선악을 분별하는 앞잡이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모두가 아무 일 없이 지내지만, 누군가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사도행전 7:1)

이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자인데, 그는 스데반에게 이런 일이 정말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살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행전 7:2-4)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사도행전 7:5-8)

사실 누가가 이렇게 긴 분량을 들여 스데반의 말을 기록한 것은, 사람 마음의 진상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한 가지 관점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넘겼다고 언급했는데, 그것은 바로 요셉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악합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었지만, 지파라 할지라도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열두 사도이든 열두 지파이든 사람 마음의 실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다시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사도행전 7:9-15)

여기에는 역사상 매우 추악한 한 가지 사건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다른 지파의 조상들, 즉 자신의 형들이 저지른 악행을 아버지 야곱에게 자주 고자질하곤 했고, 결국 일러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자질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사실 고자질한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그러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관리 가운데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 팔아넘겼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그 형들은 비록 요셉을 해치려 했으나 해치지 못했고, 훗날 요셉은 온 가문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쳐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사도행전 7:20-28)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고,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를 일으키셨습니다. 모세는 태어나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었고, 40세가 되었을 때 우연히 이스라엘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다음 날 거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모세가 이를 중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스라엘 사람은 통제를 따르지 않고,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자신도 죽이려 하느냐고 모세에게 따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은 참으로 다스리기 어려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후 모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80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다시 이집트로 보내져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누가 모세를 이스라엘의 우두머리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사람은 이토록 악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광야로 이끌었음에도, 이 조상들은 순종하지 않고 마음으로 이집트를 향했습니다.

사실 스데반이 이 모든 것을 말한 이유는 사람 마음의 실상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는 여기서 당시 베드로가 세운 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세워지는 교회들과 비교해 보아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세울 때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가지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이끌어 들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이곳에서 엉거주춤 머물 필요가 없으며, 떠나려면 떠나도 좋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행전 7:41-43)

결국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 너머로 옮겨졌고, 끝내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습니다. 그 시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과 양식이 없어 가죽띠를 삶아 먹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자신들의 배설물을 먹고 마셔야 했으며, 이 장막은 다윗의 시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누가는 한 가지를 결론짓고자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무리는 진실을 듣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이처럼 진실은 듣기 거북한 법이며, 예수님께서도 진실을 말씀하셨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사도행전 7:45-48)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사도행전 7:49-52)

무리는 진실을 듣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진실은 듣기 거북한 것이며, 예수님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을 때도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저는 늘 진실을 말하지만, 진실은 정말로 듣기 거북합니다. 제가 직접 목양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든 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 허물을 들추어내려 할 때 이 사람들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주된 원인은 제가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해 말했기 때문이며, 육에 속한 사람은 다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 마음의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 마음의 진상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했는데, 성경 외에도 다른 경로를 통해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앙(商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 안의 넘치는 에너지를 바른 일로 이끌어내지 않으면 사악하고 비뚤어진 짓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90년대 초반, 사람들은 돈 벌 시간은 없어도 패싸움하고 싸울 시간은 있어서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빈번했던 것과 같습니다. 제 여동생이 이를 두고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저기 또 한 사람 죽었는데, 경찰만 빼고 온 도시 사람이 다 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모든 문제의 핵심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고치려 하겠지만, 사람은 모두 자신의 기호와 육신의 성향을 따라 행합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자매에게 먼저 이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 자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 마음은 서늘해졌습니다. 그녀가 저에게서 받은 은혜는 이루 다 셀 수 없는데도, 단 한마디 진실을 말했다고 해서 다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목양 원칙은 아주 단순합니다. 바로 당신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깨닫게 만드는 것이며, 이 점에서 저는 바울을 꽤 닮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때,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일단 당신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이런 일들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는 너무나 많고 그 어떤 문제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저를 찾아오기 전에는 기세등등하여 자신이 아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점점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당신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은 당신 자신을 해치는 일입니다. 저는 당신을 자신을 해치는 상태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며, 당신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스스로의 유익을 위함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제가 진실을 말하는 것 역시 당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결코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신은 자신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의 논리를 다시 조정할 수 없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문제가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는(刮骨疗毒)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진정으로 변화되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고쳤으며, 어떻게 고쳤습니까? 그것은 특정한 상황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그 본색이 다시 드러납니다. 훈련을 받고 다루어지기만 하면 이를 갈며 험악한 표정을 짓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어온 길은 인생의 참된 축소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나 옳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평소에는 감히 말하지도 못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일을 엉터리로 하는 것을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당신이 정말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일을 제대로 할지 고민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했는지 자랑할 생각만 합니다. 이를테면 공로는 없어도 수고는 했다는 식입니다. 실제로는 바닥과 화장실조차 깨끗이 청소하지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어서 일이나 제대로 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일들은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들이며, 누가가 전하는 내용도 바로 이를 위한 기초를 놓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모아들인 이 무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갓 나왔을 때나,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을 때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와 똑같으며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대로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한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만약 모두가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늘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여긴다면, 옳은 것이 어떤 것인지 궁리하게 될 것이고 문제는 간단해집니다. 이 한마디를 저는 매일같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합니다. 잔소리를 많이 하다 보면 성질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듣는 사람이 "아, 내가 잘못했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라고 반응한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입니다. 사실 저는 바로 이러한 결과를 얻고 싶을 뿐인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은 미련해서 거짓된 논리만을 믿어버립니다.

사람 뼛속 깊이 박힌 것은 고치기 어렵다

"돼지를 고를 땐 우리를 보고, 말을 살 땐 어미를 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살 때는 망아지의 어미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아야 하고, 새끼 돼지를 잡을 때는 어미 돼지의 상태를 보아야 합니다. 저도 목회자들에게 목양 대상자의 고향이 어디인지 자주 묻곤 합니다. 목회자들은 산둥, 동북, 베이징, 톈진 등이라 대답하는데, 지역마다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또 그 목양 대상자의 어머니가 어떠한지 물어야 합니다. 만약 그의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대답이 나오면, 저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돼지를 살 때 우리를 보고 말을 살 때 어미를 보는 것이 절대적인 황금률은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어머니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단지 본인만 모를 뿐입니다. 만약 어머니의 문제점이 늘 눈에 거슬린다고 불평한다면, 사실 그 사람 자신도 어머니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뼛속 깊이 박힌 것은 타고난 것이며, 하나하나를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얼마 전 제가 방문한 곳에 '마작 거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엇비슷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작을 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이처럼 사람의 습성이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고 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 뼛속 깊이 박힌 것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우며, 저마다 자기만의 틀이 있어 바꾸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결코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육신에 속한 거짓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굳게 믿어온 일련의 체계는 모두 가문, 지리적 위치, 지역 문화의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사는 것은 타고난 본능과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 뼛속의 것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일곱 살에 장래를 보며, 스무 살이면 더욱 분명해지고, 서른 살이 되면 평생이 그대로 굳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장이란 무엇이며 훈련이란 무엇입니까? 태어나서부터 사람과 사물과 하나님에 대한 내면의 인식을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는데, 여러분의 목은 얼마나 뻣뻣합니까?

제가 기도를 인도하기만 하면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목이 곧은 백성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왜곡된 고집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은 천성적으로 이과 공부를 할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도대체 누가 가르쳐 준 것입니까? 타고나기를 문과 공부만 해야 한다고 여겨 문과를 공부하고도 문과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보다 못하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대학을 헛다닌 것 아닙니까? 졸업하고 나서는 번민만 더 늘어날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릴 적 자라온 배경을 조심하고, 우리 내면에 깊이 숨겨진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함정에 빠져 선지자를 죽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6)

뼛속에 박힌 것은 고치기 어려우므로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배우면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며, 케케묵고 타고난 옛 논리 체계 안에서 계속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들은 모두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확신하는 것이 옳은지 목회자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목회자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조정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돈을 탐내고 있다면, 그가 진심으로 당신의 노후를 책임져 주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정말로 노후를 보살펴 줄 것이라 믿는다면, 저는 차라리 그 생각을 접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 안에는 이처럼 어리석은 생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이 하려는 일은, 끊임없는 조정과 가르침, 관리를 통해 모든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지각 가운데 하나님을 충만히 알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이는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축복을 받으려면 손에 쥔 얼마 안 되는 돈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그 돈을 가로채 가면 여러분은 끝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타고난 옛 체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사울 역시 진실을 말하는 자가 죽임당하는 것을 마땅히 여겼다

사울은 스스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데반이 전한 이 말들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모든 구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역사였는데, 왜 귀담아듣지 않았을까요? 사울은 이미 선입견을 품고 있었고, 그들이 모세가 아닌 예수님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사울, 즉 훗날의 바울 역시 당시에는 이러한 미혹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지만, 그들은 스데반의 말이 잔혹하다고 느끼며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고, 마침내 쌓인 돌더미가 스데반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51-55)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도행전 7:56-60)

교회는 또다시 동일한 웅덩이에 빠진 것은 아닌가?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이미 진실을 듣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를 속이고 말았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던 사울조차도 그러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스데반조차도 천사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구전되던 말들을 그대로 따르는 면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것이 그들에게 성령 충만함을 받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또다시 동일한 웅덩이에 빠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제 자신이 너무 대단하다고 여기거나,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기 시작하여 완전히 망쳐버릴까 봐 늘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려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훗날 사울은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행전 20:20)

바울은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는 과정을 거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그의 눈을 비추시자 그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사람이 바울을 데리고 기도해 주었을 때, 그의 눈에서 물고기 비늘 같은 것들이 벗겨져 나왔습니다. 사람의 눈은 이처럼 늘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더 이상 거짓이나 허상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또다시 동일한 웅덩이에 빠지게 될까요?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교회의 형편을 보면 사람들이 진실을 듣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난쟁이 앞에서 키 작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 사람들을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문이 낮고 넓어서 보기 흉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사람에게는 낮고 넓적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까마귀가 검고 지저분해서 보기 흉하다고 말하자 곁에 있던 피부가 검은 사람이 듣고는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 줄 알고 참지 못하는 격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퍼진 그러한 독소는 대단히 깊어서, 입만 열면 "주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떤 식의 사랑입니까?

그 사람에게 백 위안만 빌려달라고 해보면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인 우리는 목회자다워야 하고, 양육을 받는 자들은 완고해질 것이 아니라 강건해져야 하며, 완악해지지 말고 장부답게 강건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도량을 땅콩만 하게, 머리를 호두 알갱이만 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하고 영원하며 영광으로 가득한 이 길을 걸어가려면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듯 자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어머니가 매우 까다로운 분이라면, 여러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하며, 우리 마음의 진상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계속해서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자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사도행전 7:38-41)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고 말했습니다. 이름은 같을지 몰라도 본질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세대의 사람들을 싫어하사 그들을 광야에서 모두 멸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목이 곧은 그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타고난 사고의 논리 체계는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모두 무익하며, 성령의 불로 태워진 후에 남은 것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자 참된 영적 자녀입니다! 목이 곧았던 우리 백성들은 이제 모두 바로잡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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