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我们讲的《哥林多后书》第七章。《哥林多后书》第七章讲得真好,所以现在呢,我们就把这章中给大家带来困惑的地方,再逐一给大家进行解答。《哥林多后书》第七章的主题是《我们既有这等应许,就当竭尽自己得以成圣》。我们现在收集一下大家的问题,大家赶紧预备,我先回答一下客栈上的问题。大家用过客栈吗?客栈里面的东西挺好啊,我想我得常常在客栈里回复才对。
Q1: 有个人的问题是耶稣基督的爷爷名字叫什么?在马太福音和路加福音里都记载了耶稣基督的家谱,但是约瑟的爸爸记载不一致,哪一个是对的呢?
答:其实咱不管这个,因为在上户口的时候,可能他起了一个小名也说不定。你比如说我认识一个牧师,有一天有人给他一个名字,他叫Joseph,周瑟夫,这个名字挺好啊,圣经里的约瑟。过了一段时间,又有一个有名的大牧师,他说你不应该单单叫Joseph,我再给你一个名字,叫David。所以他的名字叫做Joseph David Abraham 。
后来又来了一个牧师,这个牧师挺有意思。他说我看到一个异象,你应该叫巴拿巴斯。然后就来了,周瑟夫·戴维德·巴拿巴斯。那你说,周瑟夫、David和巴拿巴斯是不是一个人呢?都是一个人。只不过他起了好几个名字,像洋人的名字他可以一直往下累加。其实大家千万别搞错啊,圣经里头有好几个耶罗波安。
就跟我们今天那个王啊,他就是什么呢?就是亨利,他爷爷也是做王的,也叫亨利,所以叫亨利一世。到他这呢,叫亨利三世。他爸也叫亨利,他也叫亨利。
坏了,都是亨利,不知道是哪个亨利,所以就叫亨利一、亨利二、亨利三。别以为这东西奇怪啊,它里头记载了俩爷爷的名不一样啊,其实都是他,他不可能出俩爷爷是不是,就是这个耶稣的爸爸叫约瑟,约瑟的爸爸有俩名,这很正常。
Q2: 神的旨意是让人管理全地,但如今的趋势是智能机器人逐渐取代人工,先是工厂机器人,然后是无人驾驶,保姆机器人,种地机器人,后来机器人公务员,事情都让机器干了,人的存在还有意义吗?科技研发毕竟是少数人,那大多数人怎么活?最后只是为一个结局就是灭绝吗?老师,这种科技发展的方向,符合神的旨意吗?
答:我跟你讲,神是不是个创造的神?是个创造的神,现在人工智能的发展,人们在研究人工智能时就发现,原来人工智能比不上人,那人工智能是人创造的,后来人们就发现,原来人肯定是一个照物主造的,太精妙,太精妙。
那我就跟你说一下人啊。你想想看,你在切菜的时候,手指被割了一个小口子,过几天它就愈合了。那你在机器上面割一个口子,它能愈合吗?它愈合不了,听明白了吗?所以人的身体很奇妙。就是今天的相机,再先进也比不上人眼,大家知不知道,相机比不上人眼睛。如果要想制造一个像人眼一样发达的相机,那绝对是极其复杂的技术。所以说神的旨意是人要创造,那人创造了,我问机器人是不是一个创造,是一个创造。那可以创造越来越多,越来越多,越来越先进的。
那现在问题就来了,很多人不会创造,很多人傻得要命。那神是创造的神,人没有神同在,他怎么可能创造呢?所以神的属性有创造的属性,人就应该有创造的属性。如果要恢复,今天咱们每一个弟兄姐妹都开始相信,相信什么呢?相信神与你同工,你会成为一个有创造力的人,你里边会有很厉害的创造力。
大家就慢慢琢磨,其实我有创造力啊,再这么下去我就成废物了,要没创造力可真就是个废物了。那今天咱们弟兄姐妹,开始逐渐了解什么样的工作是好工作,记住,每天都日复一日、年复一年、干着重复的活儿,这叫机器人的活儿。是不是啊?你整天干这活儿,机器取代你就指日可待,为什么呢?你干的活儿还干不过机器,这不是个废物了吗?是不是?很快就成为废物。
所以说什么样的活儿是好活儿呢?经常去深入探索,了解有创造的。那你说我复杂的机器我创造不了,其实需要创造复杂的机器吗?需要吗?不需要。比如说你做饭,你能不能创造出来,从俩小时变成一个小时。前段时间有个姐妹煮饭用了俩小时,后来我说你怎么就能用两小时呢?我都不理解,后来她变成一个小时了,其实再改就成个半个小时了,再改就变成二十分钟就干完了。听明白了吗?所以我想,今天我们里面需要创造的东西太多了。
今天如果你要打扫一个厕所,要花多长时间呢?洗一个厕所花多长时间?哎呀,老师,我打扫个厕所要一个小时,我两分钟搞定,那一个小时和两分钟差多少,三十倍。
那为什么呢?因为有创造力、脑子好使。所以说问题在哪儿呢?什么样的工作好?重复的工作不好,有创造价值的工作就好。如果你在你所做的事情上,不断地创造,会发生什么事?会发生一件事,就是机器人取代不了你。所以神的旨意是要让你成为一个有创造力的人。
Q3:老师,我婶的妈妈今年一百零一岁了,摔跤八次,外皮都没受点伤,完好无损,她是有神同在吗?
答:不知道,或许有神同在,或许有一些其他的神灵,我们也不知道。大家别把这些事儿扯到一起,我告诉你,有神同在的人,他一定是一个有命定的人。我不知道你婶儿的妈妈,一百零一岁到底是个啥命定。
Q4:老师,现在的高科技,大部分都是创造杀人的武器,这是神的心意吗?
答:其实在现在这个世代,有很多该隐的后代,听明白了吗?该隐的后代也创造了很多东西。创造了啥?铜铁利器,所以现在的杀人武器呢,都是这些属该隐的人,走上了该隐的路,这些就是强人的逻辑体系。所以说现在的高科技,还有之前的高科技,我觉得洪水之前的高科技也很厉害。
那洪水之前的高科技应该比现在发达,现在人的工作经验,你活一百岁有八十年的工作经验,就很了不起了。亚当那些年他学了八百年,八百年的工作经验,那能学到老些个东西了。是不是?第一代人传到第二代人,还没传几代,那科技就已经非常发达了。
咱这么说,亚当那些年代的人,研究数学,研究了八百年,你说他得拿多少个诺贝尔奖啊,厉害啊。所以那个年代其实也很发达,但是问题来了,就是这个世界,你不要以为这世界上的人都活在神的旨意当中,这世界上很多人都活在鬼的旨意当中。所以这是啥心意?但是这世上,人攻打人,国攻打国,其实也是神的设计。最后人就往灭亡里头奔。
Q5:老师,现在风声鹤唳,感觉都是冲着中国来了,三战会打起来吗? 中国打败的话会怎么样?我们作为基督徒要怎么做?
答:咱们基督徒也不靠这个啊,他打他的,你活你的啊。我想今天咱们这个这个世界啊,打来打去。
那第三次世界大战肯定会打起来,一旦第三次世界大战打起来,你就要知道基督徒被提的日子近了。那基督徒被提,教会被提的日子是怎么一回事呢?就是第三次世界大战打完了,然后敌基督在这全世界建立了一个国家。
那谁有资格建立这个国家呢?大概中国,所以这个全球成为一个国家了,全球成为一个国家现在叫联合国,以后叫联合省,就不叫联合国了。以后呢,我告诉你会发生什么事,教会就被逼迫,两个传道人被杀,这个时候号角吹响,然后我们就被提到空中与主相遇。
那在这之前神要预备神的仆人,神的百姓要被印,有印记的,在这个过程当中绝对不会遭遇灾难,没有印记的。那就辛苦喽,核战争啊,是不是?所以印完了,接着就是第三次世界大战,现在大概就是印记的时刻。
然后呢,第三次世界大战完了以后,教会被逼迫,两个传道人被杀,大家都在网上观看,然后两个传道人从死里复活,踩着云升天,耶稣降临,我们所有人被提到空中。如果没被提的还留在这地上,会发生什么事儿?就会在你额头和手上做一个印记,然后你身上印了魔鬼的印记,就完蛋了。
如果你不想印印记,你就得殉道,如果没提,你还可以选择殉道,殉道以后也回到神那里去了,就是这么个过程。那你说如果没有被提印了印记,那跟我没关系了,玩吧,随便玩。就那么地吧,看他的造化吧。我解释得清楚吗?所以现在别去准备什么罐头啊,什么水,没有用啊,最好是有神的印记。那个印记就是得胜。
Q6:老师,让人得益处,首先得自己先被洁净,可是老师得洁净到什么程度,才可以有资格服侍人呢?因为人里面的东西实在太肮脏污秽了,不是一时半会儿可以对付好的。
答:其实我告诉你,什么叫一会儿半会儿?瞬间就可以对付好,只要人选择,活着是虚空,从此以后为神而活,就这么一个简单的选择。当然一旦选择如今活着的,不再是我活在,我里面的是耶稣基督,是耶稣基督活在我里面,这就解决问题了。
那再到达这个层次,这个过程不是一时半会儿能解决的吗?其实也不是,可能是一天,也可能是一辈子,还有一辈子也解决不了。为什么?人老在这世上抓,抓得满手,最后能抓到啥?抓得都是屎。那天我做了一个梦,梦见我认识的一个人,是离开教会的。他抓一手大便,他抓一手大便,哎呀,那个臭,那个脏啊,好恶心啊。
我就觉着这世上的人,拼命能抓,能抓到什么呢?所以说让人得益处,自己在被洁净,其实就从自私,在乎自己这点小屁事里头走出来,很快神就洁净你。如果根基不对,永远都不会对,根基就是耶稣基督。耶稣基督怎么走,走上十字架,我们也怎么走。
Q7:老师,洪水之前的人,寿命都比现在的长多了,是不是越来越识别善恶,所以人就越来越短命呢?
答:不太清楚诶,可能是,可能是。其实洪水以后,也活好几百岁那时候啊,但是这个,越来越短命,大概是人越来越恶吧。是吧?你看啊,干一件事儿,就是折寿,又干一件损事儿又折寿,然后这个折寿还传给他下一代,下一代又接着折寿,就现在折到今天这样了啊,就折到了一百岁算是长命。
Q8:老师,哥林多教会悔改后,与神合一,我想了解当时教会,一定有不少神迹伴随吧。后来初代教会的传统,被教皇或者哪一代教会又败坏了。这些教会历史进入中世纪的黑暗,可能是什么原因呢?
答:原因很简单,就是把这个福音给改了,改了福音了,福音给改了那不是要了命,信错了福音不受咒诅吗?是不是,你问信啥?我信马利亚,信啥?我信彼得,彼得,整个教会,那个福音被更改得越来越多,教会一定要恢复纯正的福音。
Q8:懒惰为耶和华行事的,必受咒诅,禁止刀剑不经血的,必受咒诅,什么意思?老师,是指属灵争战说的话吗?
答:这是哪来的话啊?今天咱们读哥林多后书啊,哥林多后书好像没有这句话啊,这句话,这是哪来的,你有没有出处啊?懒惰为耶和华行事的必受咒诅,禁止刀剑不经血的,必受咒诅。不知道从哪儿来的啊。前面那句懒惰为耶和华行事的必受咒诅。其实我告诉你啊,神杀了很多人,千万不要以为神是圣诞老人,神杀了很多人,如果你拦着神杀人,那其实拦不住啊,是不是?
你比如说在摩西啊,摩西在山上,后来下山一看,以色列人拜金牛犊,结果利未人拿着刀,就杀了很多以色列人,结果神的愤怒就止息了。后来,米甸人引诱以色列人犯罪,带着米甸人的女子到营里。后来呢,有一个叫非尼哈的,就刺死了这样的以色列人,然后瘟疫就止住了。所以很多时候大家不要以为,不要以为神不可怕。
这个地方讲了什么呢?讲了一个叫做恐惧,人需要敬畏神啊,人需要敬畏神,人需要有点恐惧啊。你不要以为随便行事没事儿啊,没有挺好啊。好,今天咱们就到这儿。我们答疑到这儿,然后别忘了,不断地竭尽自己,这才是关键。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7장의 주제는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가졌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에 이르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가졌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최고의 약속입니다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주 중요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불운이 닥치면 자신의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직면하는 문제는 항상 자신보다 큽니다. 게다가 사람이 이 헛된 일생 동안 수고하며 살다가 멸망에 이른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약속입니다. 이것은 보통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학생들이 종종 소그룹 팀을 짜서 프로젝트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뒤에서 발목 잡는 사람입니다. 프로젝트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모든 일을 혼자 다 떠맡게 만드는 엉망인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까?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그 사람을 찾아가 함께 프로젝트를 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 합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면, 당연히 최고 점수를 받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최고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약속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미 소망이 끊어진 사람들입니다. 원래 인생은 헛된 것이며, 멸망과 수고뿐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 "와, 여기에 약속이 있네! 여기에 아주 좋은 길이 있구나,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이구나!"라는 약속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모든 귀신도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하나님과 동역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전히 신분이 상승하여 복을 누리는 것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알고 난 후,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지극히 귀한 보물로 삼은 이후 지금까지도 그분은 참으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속이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나 좋은데,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어떤 형제자매들을 보면 날마다 그들을 위해 근심이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할까요? 본인의 그 작은 능력과 몇 안 되는 잔재주밖에 없으면서도 무슨 큰 재주가 있는 줄 압니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면 또 모르겠지만, 별것도 아니면서 깡충거리며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려 합니다. 특히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을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자기의 보잘것없는 수단에 의지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볼 때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동역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약속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을 가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약속이 있는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육과 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온갖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제 강의를 들으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분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듣다가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을까 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녹음을 텍스트로 옮길 때 제가 반복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더군요. 저는 '반복해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데, 반복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육신과 영에 수많은 오염과 잘못된 생각을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 내면의 가치관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 안의 가치관 중에 당당하게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혹시 눈치채셨습니까?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왜 괴롭습니까?"라고 물으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왜 말을 못 합니까?"라고 물으면, 말하면 너무 '급이 낮다(low)'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부끄럽다는 것을 압니다. 당당히 꺼내 놓을 수 없는, 말하는 순간 부끄러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항상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올 생각만 가득한데,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너무나 피곤한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을 남에게 털어놓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겉으로는 아주 그럴듯하게, 착한 사람처럼 꾸미고 다니지만, 사실 육과 영 속에는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합니까?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확률적으로 상당히 맞아떨어집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극단적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얼마간 물들지 않겠습니까?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까요. 나중에 보니 그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고, 그 사람을 보니 또 자폐증이나 다른 증상을 가진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대체로 확률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타고난 본성부터 말하는 논리 자체가 올바른 논리가 아닙니다.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온통 더러운 것투성이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가정환경, 어릴 때 자란 환경은 그 사람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에 영향을 줍니까? 세상에 대한 관점,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가치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입니다. 결국 이러한 관점들이 수많은 왜곡과 오염을 낳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머릿속이 이토록 더러운데, 그가 낳은 자녀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사역자라고 해서 괜찮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역자들도 머릿속이 똑같이 더럽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사역을 안 하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역을 안 하면 위선이라도 떨지 않을 것 아닙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사역자가 되면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럴듯한 신학적 논리까지 지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머릿속은 참으로 더러웠습니다. 사람이 왜 옹졸해집니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 옹졸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과의 관계까지 틀어지고 싸우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그들의 잘못된 신학적 관점을 바로잡으려 했고, 그들의 나쁜 습관과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다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자 관계가 굳어지고 틀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린도후서》를 쓸 때쯤에야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깨닫기 시작했고, 마음속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을 때 속으로 '바울, 저 사람 정말 못됐네. 내 속마음을 다 까발려 놓다니! 온 동네에 우리 고린도 사람들은 형편없고 자기만 잘났다고 떠벌리고 다니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식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야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지 않으신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더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동역하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역하지 않으시는데도 고치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분과 동역하겠습니까? 귀신이 동역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이러한 더러운 것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거하시는지 조금 나누어 봅시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많은 손해를 보게 하시고, 많은 고생을 겪게 하시고, 많은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영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마음과 생각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육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나 육의 일만을 생각하니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게 왜 잘못됐어?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맞습니다. 다들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 세상 자본의 본질은 매우 더럽습니다. 자본은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추악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자본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되 이윤을 남기지 못하거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올바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닙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맞지 않으면 벤처 투자를 받을 때 투자자가 물어봅니다.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입니까?" "제 모델은 대단합니다." "어떻게 대단합니까?" "이 방안이 실행되면 질병과 고통이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투자는 물거품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투자는 확실하게 무산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어렵게 고객 한 명을 유치했으면 그의 돈을 완전히 탈탈 털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머니를 싹 비우게 만들어야 투자하겠다고 나섭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케팅이란 무엇입니까? 똑똑한 사람이 덜 똑똑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 똑똑한 사람이 덜 똑똑한 사람을 속이는 방식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진작부터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의 셈을 못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는 사람은 이미 그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고, 마음이 더러워집니까?
오늘날 선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부동산 거품에 갇혀 최고가에 매입하고 한 번에 800만 위안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800만 위안의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습니까? 누가 800만 위안의 대출 압박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는 부동산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동산의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높낮이가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결국 집을 산 뒤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사람도 투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덫에 걸려들겠습니까? 듣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근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도 어렵게 집을 팔았는데 150만 위안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평생 살면서 150만 위안을 몇 번이나 벌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150만 위안을 모으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이 더러우니 거짓말을 믿게 되고, 거짓말을 믿으니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의 머릿속은 결코 깨끗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봅시다. 우리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우리의 육과 영을 깨끗하게 합시다. 최고의 보장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할 때, 예수님은 최고의 의사이시며, 최고의 회계사이시며, 최고의 엔지니어이시며,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완전한 보장이 되십니다. 세상의 것을 붙잡으려 애써봐야 소용없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재물 때문에 생명을 대가로 치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오늘 재정적 자유를 얻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오늘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재정적 자유 따위를 맹신하지 마십시오. 때로 사람들이 제게 물어보면 저도 재정적 자유에 대해 몇 마디 하지만, 저의 진정한 자유는 재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 말을 엉뚱하게 알아듣습니다.
"목사님은 병원에도 돈을 안 쓰고, 인테리어업자에게도 안 뜯기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돈 안 들이고, 학교에도 돈 안 쓰니 엄청 아끼셨네요." 아닙니다. 잘못 들은 것입니다. 제가 돈을 많이 아꼈다고 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자유롭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저는 아주 자유롭습니다! 저는 돈이 조금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고효율 체질입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을 많이 하며 가치를 많이 창출하지만 소비는 적습니다. 온몸이 보배입니다.
돼지도 버릴 것 하나 없이 온몸이 보배라고 하지만, 제 보배와 돼지의 보배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놀라운 약속이 있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들으셨습니까? 이런 놀라운 약속이 있음에도 하나님의 요구에 맞추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아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누가 찾아옵니까? 귀신이 찾아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덮치자 그는 정신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믿지 않다가 정신병이 낫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병이 다 나았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3. 마음을 넓히십시오
바울의 이 말은 꽤 직설적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마음을 넓히십시오, 여러분은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왜요? 제 속이 좁습니까? 제 마음은 좁지 않습니다. 저는 선전에서 제일 통이 큰 사람이고, 상하이에서 제일 통이 큰 사람입니다." 이러면 선전과 상하이 사람들을 다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마음이 넓은가 아닌가는 우리 내면의 깨끗함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마음을 넓혀 우리를 받아들이라).
우리를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속이 좁쌀만 하다면, 마음이 땅콩만 하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차라리 참깨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참깨만 한 마음을 가졌다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녹두만 한 작은 일에도 좁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말하길,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를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받아들이고 본받으십시오. 우리가 이기적인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사람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까, 아니면 망치기 위함이었습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려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자신도 그르치고 남도 그르치는 것이었습니까? 요즘 여러분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의 마음속이 참으로 더럽습니다. 최근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어린 소녀를 섬겼습니다. 어떤 사역자의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마침 상처를 입고 자기 집에 머물게 된 그 소녀를 보고는, 그 아이를 세워줄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며느리로 삼을 궁리만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물론 그 사역자 본인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라고 느끼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과 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넓어져야 하며, 남의 것을 탐내거나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불의를 행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역자가 머릿속으로 늘 남의 것을 빼앗을 생각만 하고 있다면, 지나가는 개도 알아차릴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가운데 한 자매를 섬겼는데, 그 부모가 시골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귀신을 불러들였으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넓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마음이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는 늘 선악을 분별해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분별하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면 되지 않습니까? 선악을 따지는 이 악한 습관과 마음의 더러운 오염을 벗어버릴 수 없습니까? 이기심을 버립시다. 만약 여러분이 날마다 어머니의 유익만을 구한다면, 어머니가 선악을 따진다고 해서 여러분까지 맞서서 선악을 따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 즉시 거룩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칼을 내려놓으면 곧바로 부처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칼을 내려놓는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며느리 삼을 궁리나 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을 때 사람의 마음은 넓어집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의 정결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더럽고 추한 것이 들어올 때마다 괴로움을 느낍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괴로워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으로 인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고린도후서》 7:3)
무슨 뜻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제 마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선택한 사람은 형제자매가 넘어지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습니다. 형제자매의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여러분의 섬김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지고 오직 마귀만 함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넓히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것이야말로 깨끗해지는 지름길입니다.
4. 바울 마음속의 염려와 낙심
바울 마음속의 염려와 낙심.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왜 낙심이 되는지 아십니까? 바울이 피땀 흘려 섬겨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는데, 그 사람들이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파당을 짓고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아볼로를 따르고, 어떤 이는 게바(베드로)를 따르고, 어떤 이는 바울을 따르며 교회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괴로웠겠습니까, 안 괴로웠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사람들은 괴로워했을까요?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죄를 짓고 중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계모를 아내로 삼는 등 온갖 추잡한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바울이 정말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은혜를 입고도 사람에게 미혹되고 귀신에게 미혹되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니 육신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온갖 염려로 가득 찼습니다. 바울이 왜 염려했겠습니까? 자기 자신 때문이었을까요? '4대 보험도 없는데 어쩌나' 하고 걱정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4대 보험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보험도 없었지만, 예수님이 가장 확실한 보험이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넘어지고, 교회가 더러워지고, 형제자매들이 미혹당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듯 괴로웠습니다. 때로는 "하나님!" 하며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반드시 구원받고 강건하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하다가도, 저쪽에서 또 교회가 엉망이 되고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믿음을 선택했다가도 낙심이 찾아오고, 다시 믿음을 붙들었다가도 또 흔들리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놓고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너무 심하게 썼나? 그들이 읽고 감당할 수 있을까?' 믿음과 염려 사이를 오갔습니다. 편지를 쓴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너무 근심하여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교회가 완전히 무너질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늘 기쁘기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 환경을 보고, 교회의 연약함을 보고, 사람들의 수많은 문제와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고통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꺼져가는 등불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육신이 편치 못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엎치락뒤치락했을 것입니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가도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고린도 사람들을 깨끗하게 해 주옵소서. 고린도 교회가 정결한 교회, 거룩한 교회, 하나님과 동역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 일행 때문에 율법적으로 변질되어 엉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괴롭지 않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으나..." 내가 괴로우니 너희도 한번 괴로워봐라는 뜻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정결해지고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편지 때문에 여러분이 근심하게 된 것과, 육신적인 괴로움이 어찌 같겠습니까? 다릅니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 아주 호되게 썼을 것입니다. "이 멍청한 자들아!"라고 썼다가 지우고, 다른 표현이 없어서 다시 "어리석은 아이들아, 참으로 미련한 자들이로다"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런 논리였을 것입니다. 그 엄한 편지는 당시 너무 직설적이라 차마 성경 정경에 포함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후 300년대에 서신서들을 모아 성경으로 편찬할 때, 그 편지도 분명 존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교회가 돌려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읽어본 많은 사람들이 "이게 어찌 하나님의 종이 할 소리인가? 마음이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하다고 쓰여 있네"라며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만 남았지만, 그 중간의 편지는 실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이전에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7:8-9)
5.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복잡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편지를 읽고 고린도 사람들이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했고, 디도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바울의 편지가 참으로 훌륭했다고 믿습니다. 비록 엄하게 썼지만 간절한 마음을 다 쏟아부은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진심을 다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원문을 다 읽어볼 수 없어 아쉽지만, 만약 읽어본다면 아마 제가 전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목자로서 제 말이 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 내면의 더러운 것들을 무너뜨려야만 육과 영이 모두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사소하고 하찮은 일, 좁쌀만 한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까? 온통 그런 일들뿐이고 마음이 좁으니, 문제를 처리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들고 괴롭습니까?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린도후서》 7:6)
왜 그렇습니까? 디도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님, 그들이 사도님의 편지를 읽고 울었습니다. 옷을 찢으며 통곡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는 양들을 볼 때 목자의 마음은 가장 기쁩니다. 오늘 여러분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저는 진심으로 기쁠 것입니다. 낙심하고 낙담하여 포기할 뻔했습니다. '아이고, 고린도 교회가 다 끝났구나' 싶었지만, '안 된다,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돌이켜 주옵소서' 하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바울을 위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읽기만 해도 마음이 찔리는 그 편지를 통해 순식간에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의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에서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어 야곱을 영접하게 하셨는지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야곱이 위기를 겪었을 때 사방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쫓지 못하게 막으신 역사도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기묘하십니다! 주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이하여 우리의 생각과 간구를 뛰어넘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보낼 때 "가라, 가면 그들이 반드시 회개할 것이다"라고 담대하게 보냈지만, 속으로는 자기 말조차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디도야, 내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가라. 그들의 마음은 착하니 분명 깨끗해지길 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속으로는 불안해했습니다. 이것이 인간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디도에게는 큰소리를 쳐놓고, "고린도 사람들은 똑똑해서 편지를 읽으면 반드시 회개할 거야"라고 해놓고는, 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떠나자마자 '아, 사람을 보내 편지를 다시 회수해야 하나?' 하며 후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 하나님과 동역하여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헌신한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과 동역하고자 하는 자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결코 엄격함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은혜와 선물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빚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역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오셨으니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이 사무엘과 동역하셨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먼저 계획하신 일뿐만 아니라 사무엘이 선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위해 이루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날까지 여러분이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믿음으로 늘 여러분을 신뢰하기로 선택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결국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고린도후서》 7:4)
이해가 되십니까? 고린도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자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 온전히 변하지 않았을 때에도 믿음으로 자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가 임하여 너무나 아름답게 역사하고 계셨고,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고린도후서》 7:8-13)
자세히 읽어보시면 여러 번 반복해서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이미 완벽하게 깨끗해졌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까? 누군들 원치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연약함에 넘어집니다. 선을 행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행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책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오늘 왜 또 이렇게 연약하게 무너졌는가?' 얼마나 간절하며, 두렵고, 사모하며, 열심을 내며 자책합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우리가 어찌 또 연약해질 수 있는가?' 이러한 감정은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처럼 느끼게 하고, 감정적인 절망뿐만 아니라 도덕적 곤경에 빠뜨립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감정과 행동에 스스로 환멸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스로 자책하고 미워하며 뉘우칩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거룩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니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누구나 거룩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연약함이 불쑥 찾아올 때 누군가 옆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형제가 눈이 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눈이 고침을 받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유를 받고 난 후에도 종종 연약함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형제의 중심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도 간절히 원하지만 다만 연약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에게 전화를 걸어 "목사님, 저를 한 번만 더 호되게 꾸짖어 주실 수 있나요?"라고 합니다. 꾸지람 듣기를 자청하다니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나중에 제가 《고린도중서》라도 녹음해서 들려주어야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욱 간절해지고, 스스로 돌아보며, 거룩한 두려움과 사모함과 열심으로 본받으려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본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소그룹 목자들과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까? 양육받는 모든 이들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양육받는 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내면의 양심과 열심을 다시금 나타내십시오. 제가 이렇게 말할 때 여러분은 "맞습니다, 제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타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행동으로 옮기면 또 넘어질까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섬기는 사역자로서 때로 낙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히 세우셔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반면에 세상의 근심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얽매여 근심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다면 하나님의 영이 어찌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회개에 이르는 것은 참으로 복된 감정입니다. 우리 가운데 빚을 진 분들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하루속히 그 빚을 다 갚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빚에 매여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죄와 어리석음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무지하고 어리석어 사람들에게 속았고, 선전의 집값이 오르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세상 법칙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일어나는 후회는 세상적인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회개여야 하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시는데 어찌 빚에 얽매여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데 어찌 번성하는 삶을 살지 못하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을 보십시오. 번성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들은 번성하였으나 결코 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7. 이제 기뻐하며, 모든 일에 너희를 신뢰하노라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린도후서》 7:16)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식함을 얻었음이라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정정이 더욱 깊었으니 (《고린도후서》 7:13-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비전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얽매는 세상의 죄를 벗어던졌습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로 작정했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쁩니다.
이제 모든 일에 여러분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제가 여러분을 두고 자랑했던 모든 말이 참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고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의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던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그런 은혜를 누립니까? 바로 이 세상에서, 이 더럽고 추악하며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는 자들입니다.
거룩함을 이루어 하나님께 열납되는 자가 되십시오. 모든 형제자매가 이 길을 향해 달려간다면, 저는 더 이상 여러분의 부채 문제로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더러움과 오염 때문에도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심전력을 다해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 길을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훗날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저는 "아, 당신도 여기에 와 있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