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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후서 7장 - 우리가 이 약속을 가졌으니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024-07-24 26,010 哥林多后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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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07章-保罗为教会悔改而欢乐
  • 1 亲爱的弟兄啊,我们既有这等应许,就当洁净自己,除去身体、灵魂一切的污秽,敬畏 神,得以成圣。
  • 2 你们要心地宽大收纳我们。我们未曾亏负谁,未曾败坏谁,未曾占谁的便宜。
  • 3 我说这话,不是要定你们的罪。我已经说过,你们常在我们心里,情愿与你们同生同死。
  • 4 我大大地放胆,向你们说话;我因你们多多夸口,满得安慰;我们在一切患难中分外的快乐。
  • 5 我们从前就是到了马其顿的时候,身体也不得安宁,周围遭患难,外有争战,内有惧怕。
  • 6 但那安慰丧气之人的 神藉着提多来安慰了我们;
  • 7 不但藉着他来,也藉着他从你们所得的安慰,安慰了我们;因他把你们的想念、哀恸,和向我的热心,都告诉了我,叫我更加欢喜。
  • 8 我先前写信叫你们忧愁,我后来虽然懊悔,如今却不懊悔;因我知道,那信叫你们忧愁不过是暂时的。
  • 9 如今我欢喜,不是因你们忧愁,是因你们从忧愁中生出懊悔来。你们依着 神的意思忧愁,凡事就不至于因我们受亏损了。
  • 10 因为依着 神的意思忧愁,就生出没有后悔的懊悔来,以致得救;但世俗的忧愁是叫人死。
  • 11 你看,你们依着 神的意思忧愁,从此就生出何等的殷勤、自诉、自恨、恐惧、想念、热心、责罚(或译:自责)。在这一切事上,你们都表明自己是洁净的。
  • 12 我虽然从前写信给你们,却不是为那亏负人的,也不是为那受人亏负的,乃要在 神面前把你们顾念我们的热心表明出来。
  • 13 故此,我们得了安慰。并且在安慰之中,因你们众人使提多心里畅快欢喜,我们就更加欢喜了。
  • 14 我若对提多夸奖了你们什么,也觉得没有惭愧;因我对提多夸奖你们的话成了真的,正如我对你们所说的话也都是真的。
  • 15 并且提多想起你们众人的顺服,是怎样恐惧战兢地接待他,他爱你们的心肠就越发热了。
  • 16 我如今欢喜,能在凡事上为你们放心。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7장의 주제는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가졌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에 이르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약속을 가졌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최고의 약속입니다

지난 장에서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주 중요한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불운이 닥치면 자신의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직면하는 문제는 항상 자신보다 큽니다. 게다가 사람이 이 헛된 일생 동안 수고하며 살다가 멸망에 이른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약속입니다. 이것은 보통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학생들이 종종 소그룹 팀을 짜서 프로젝트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뒤에서 발목 잡는 사람입니다. 프로젝트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모든 일을 혼자 다 떠맡게 만드는 엉망인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까?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그 사람을 찾아가 함께 프로젝트를 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 합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면, 당연히 최고 점수를 받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최고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약속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미 소망이 끊어진 사람들입니다. 원래 인생은 헛된 것이며, 멸망과 수고뿐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 "와, 여기에 약속이 있네! 여기에 아주 좋은 길이 있구나,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이구나!"라는 약속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모든 귀신도 여러분보다 작아집니다. 하나님과 동역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전히 신분이 상승하여 복을 누리는 것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알고 난 후,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지극히 귀한 보물로 삼은 이후 지금까지도 그분은 참으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속이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나 좋은데,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어떤 형제자매들을 보면 날마다 그들을 위해 근심이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할까요? 본인의 그 작은 능력과 몇 안 되는 잔재주밖에 없으면서도 무슨 큰 재주가 있는 줄 압니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면 또 모르겠지만, 별것도 아니면서 깡충거리며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려 합니다. 특히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을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자기의 보잘것없는 수단에 의지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볼 때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동역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약속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을 가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약속이 있는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육과 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온갖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제 강의를 들으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분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듣다가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을까 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녹음을 텍스트로 옮길 때 제가 반복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더군요. 저는 '반복해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데, 반복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육신과 영에 수많은 오염과 잘못된 생각을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 내면의 가치관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 안의 가치관 중에 당당하게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혹시 눈치채셨습니까?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왜 괴롭습니까?"라고 물으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왜 말을 못 합니까?"라고 물으면, 말하면 너무 '급이 낮다(low)'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부끄럽다는 것을 압니다. 당당히 꺼내 놓을 수 없는, 말하는 순간 부끄러워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항상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올 생각만 가득한데,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너무나 피곤한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을 남에게 털어놓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겉으로는 아주 그럴듯하게, 착한 사람처럼 꾸미고 다니지만, 사실 육과 영 속에는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합니까?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확률적으로 상당히 맞아떨어집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극단적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얼마간 물들지 않겠습니까?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까요. 나중에 보니 그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고, 그 사람을 보니 또 자폐증이나 다른 증상을 가진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대체로 확률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타고난 본성부터 말하는 논리 자체가 올바른 논리가 아닙니다.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온통 더러운 것투성이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가정환경, 어릴 때 자란 환경은 그 사람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에 영향을 줍니까? 세상에 대한 관점,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가치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입니다. 결국 이러한 관점들이 수많은 왜곡과 오염을 낳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머릿속이 이토록 더러운데, 그가 낳은 자녀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사역자라고 해서 괜찮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역자들도 머릿속이 똑같이 더럽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사역을 안 하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역을 안 하면 위선이라도 떨지 않을 것 아닙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사역자가 되면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럴듯한 신학적 논리까지 지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머릿속은 참으로 더러웠습니다. 사람이 왜 옹졸해집니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 옹졸하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과의 관계까지 틀어지고 싸우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그들의 잘못된 신학적 관점을 바로잡으려 했고, 그들의 나쁜 습관과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다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자 관계가 굳어지고 틀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린도후서》를 쓸 때쯤에야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깨닫기 시작했고, 마음속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을 때 속으로 '바울, 저 사람 정말 못됐네. 내 속마음을 다 까발려 놓다니! 온 동네에 우리 고린도 사람들은 형편없고 자기만 잘났다고 떠벌리고 다니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식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야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지 않으신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더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동역하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역하지 않으시는데도 고치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분과 동역하겠습니까? 귀신이 동역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이러한 더러운 것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거하시는지 조금 나누어 봅시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많은 손해를 보게 하시고, 많은 고생을 겪게 하시고, 많은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온갖 더러운 것을 제해야 합니다. 영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마음과 생각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육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나 육의 일만을 생각하니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게 왜 잘못됐어?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맞습니다. 다들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 세상 자본의 본질은 매우 더럽습니다. 자본은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추악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입니다. 자본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되 이윤을 남기지 못하거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올바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닙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맞지 않으면 벤처 투자를 받을 때 투자자가 물어봅니다.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입니까?" "제 모델은 대단합니다." "어떻게 대단합니까?" "이 방안이 실행되면 질병과 고통이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투자는 물거품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투자는 확실하게 무산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어렵게 고객 한 명을 유치했으면 그의 돈을 완전히 탈탈 털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머니를 싹 비우게 만들어야 투자하겠다고 나섭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케팅이란 무엇입니까? 똑똑한 사람이 덜 똑똑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 똑똑한 사람이 덜 똑똑한 사람을 속이는 방식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진작부터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의 셈을 못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는 사람은 이미 그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고, 마음이 더러워집니까?

오늘날 선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부동산 거품에 갇혀 최고가에 매입하고 한 번에 800만 위안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800만 위안의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습니까? 누가 800만 위안의 대출 압박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는 부동산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동산의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르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높낮이가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결국 집을 산 뒤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사람도 투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덫에 걸려들겠습니까? 듣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근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도 어렵게 집을 팔았는데 150만 위안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평생 살면서 150만 위안을 몇 번이나 벌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150만 위안을 모으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이 더러우니 거짓말을 믿게 되고, 거짓말을 믿으니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의 머릿속은 결코 깨끗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봅시다. 우리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우리의 육과 영을 깨끗하게 합시다. 최고의 보장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할 때, 예수님은 최고의 의사이시며, 최고의 회계사이시며, 최고의 엔지니어이시며,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완전한 보장이 되십니다. 세상의 것을 붙잡으려 애써봐야 소용없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재물 때문에 생명을 대가로 치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오늘 재정적 자유를 얻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오늘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재정적 자유 따위를 맹신하지 마십시오. 때로 사람들이 제게 물어보면 저도 재정적 자유에 대해 몇 마디 하지만, 저의 진정한 자유는 재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 말을 엉뚱하게 알아듣습니다.

"목사님은 병원에도 돈을 안 쓰고, 인테리어업자에게도 안 뜯기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돈 안 들이고, 학교에도 돈 안 쓰니 엄청 아끼셨네요." 아닙니다. 잘못 들은 것입니다. 제가 돈을 많이 아꼈다고 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자유롭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저는 아주 자유롭습니다! 저는 돈이 조금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고효율 체질입니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을 많이 하며 가치를 많이 창출하지만 소비는 적습니다. 온몸이 보배입니다.

돼지도 버릴 것 하나 없이 온몸이 보배라고 하지만, 제 보배와 돼지의 보배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놀라운 약속이 있으니 마땅히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들으셨습니까? 이런 놀라운 약속이 있음에도 하나님의 요구에 맞추지 않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아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누가 찾아옵니까? 귀신이 찾아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덮치자 그는 정신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믿지 않다가 정신병이 낫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병이 다 나았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3. 마음을 넓히십시오

바울의 이 말은 꽤 직설적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마음을 넓히십시오, 여러분은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왜요? 제 속이 좁습니까? 제 마음은 좁지 않습니다. 저는 선전에서 제일 통이 큰 사람이고, 상하이에서 제일 통이 큰 사람입니다." 이러면 선전과 상하이 사람들을 다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마음이 넓은가 아닌가는 우리 내면의 깨끗함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마음을 넓혀 우리를 받아들이라).

우리를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속이 좁쌀만 하다면, 마음이 땅콩만 하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차라리 참깨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참깨만 한 마음을 가졌다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녹두만 한 작은 일에도 좁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말하길,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를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받아들이고 본받으십시오. 우리가 이기적인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사람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까, 아니면 망치기 위함이었습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려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자신도 그르치고 남도 그르치는 것이었습니까? 요즘 여러분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사역자들의 마음속이 참으로 더럽습니다. 최근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어린 소녀를 섬겼습니다. 어떤 사역자의 아들이 병에 걸렸는데, 마침 상처를 입고 자기 집에 머물게 된 그 소녀를 보고는, 그 아이를 세워줄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며느리로 삼을 궁리만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물론 그 사역자 본인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라고 느끼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과 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넓어져야 하며, 남의 것을 탐내거나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불의를 행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역자가 머릿속으로 늘 남의 것을 빼앗을 생각만 하고 있다면, 지나가는 개도 알아차릴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가운데 한 자매를 섬겼는데, 그 부모가 시골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귀신을 불러들였으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넓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마음이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는 늘 선악을 분별해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분별하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면 되지 않습니까? 선악을 따지는 이 악한 습관과 마음의 더러운 오염을 벗어버릴 수 없습니까? 이기심을 버립시다. 만약 여러분이 날마다 어머니의 유익만을 구한다면, 어머니가 선악을 따진다고 해서 여러분까지 맞서서 선악을 따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 즉시 거룩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칼을 내려놓으면 곧바로 부처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칼을 내려놓는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며느리 삼을 궁리나 하고 있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을 때 사람의 마음은 넓어집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의 정결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더럽고 추한 것이 들어올 때마다 괴로움을 느낍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괴로워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심으로 인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고린도후서》 7:3)

무슨 뜻입니까? 바로 여러분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제 마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선택한 사람은 형제자매가 넘어지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습니다. 형제자매의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 여러분의 섬김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는 사라지고 오직 마귀만 함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넓히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것이야말로 깨끗해지는 지름길입니다.

4. 바울 마음속의 염려와 낙심

바울 마음속의 염려와 낙심.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왜 낙심이 되는지 아십니까? 바울이 피땀 흘려 섬겨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는데, 그 사람들이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파당을 짓고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아볼로를 따르고, 어떤 이는 게바(베드로)를 따르고, 어떤 이는 바울을 따르며 교회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괴로웠겠습니까, 안 괴로웠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사람들은 괴로워했을까요?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죄를 짓고 중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계모를 아내로 삼는 등 온갖 추잡한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바울이 정말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은혜를 입고도 사람에게 미혹되고 귀신에게 미혹되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니 육신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온갖 염려로 가득 찼습니다. 바울이 왜 염려했겠습니까? 자기 자신 때문이었을까요? '4대 보험도 없는데 어쩌나' 하고 걱정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4대 보험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보험도 없었지만, 예수님이 가장 확실한 보험이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넘어지고, 교회가 더러워지고, 형제자매들이 미혹당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듯 괴로웠습니다. 때로는 "하나님!" 하며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이 반드시 구원받고 강건하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하다가도, 저쪽에서 또 교회가 엉망이 되고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믿음을 선택했다가도 낙심이 찾아오고, 다시 믿음을 붙들었다가도 또 흔들리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놓고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너무 심하게 썼나? 그들이 읽고 감당할 수 있을까?' 믿음과 염려 사이를 오갔습니다. 편지를 쓴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너무 근심하여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교회가 완전히 무너질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늘 기쁘기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 환경을 보고, 교회의 연약함을 보고, 사람들의 수많은 문제와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고통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꺼져가는 등불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육신이 편치 못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엎치락뒤치락했을 것입니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가도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고린도 사람들을 깨끗하게 해 주옵소서. 고린도 교회가 정결한 교회, 거룩한 교회, 하나님과 동역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 일행 때문에 율법적으로 변질되어 엉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괴롭지 않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하였으나..." 내가 괴로우니 너희도 한번 괴로워봐라는 뜻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정결해지고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편지 때문에 여러분이 근심하게 된 것과, 육신적인 괴로움이 어찌 같겠습니까? 다릅니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 아주 호되게 썼을 것입니다. "이 멍청한 자들아!"라고 썼다가 지우고, 다른 표현이 없어서 다시 "어리석은 아이들아, 참으로 미련한 자들이로다"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런 논리였을 것입니다. 그 엄한 편지는 당시 너무 직설적이라 차마 성경 정경에 포함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후 300년대에 서신서들을 모아 성경으로 편찬할 때, 그 편지도 분명 존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교회가 돌려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읽어본 많은 사람들이 "이게 어찌 하나님의 종이 할 소리인가? 마음이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하다고 쓰여 있네"라며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만 남았지만, 그 중간의 편지는 실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이전에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7:8-9)

5.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복잡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편지를 읽고 고린도 사람들이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했고, 디도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바울의 편지가 참으로 훌륭했다고 믿습니다. 비록 엄하게 썼지만 간절한 마음을 다 쏟아부은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진심을 다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원문을 다 읽어볼 수 없어 아쉽지만, 만약 읽어본다면 아마 제가 전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목자로서 제 말이 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 내면의 더러운 것들을 무너뜨려야만 육과 영이 모두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사소하고 하찮은 일, 좁쌀만 한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까? 온통 그런 일들뿐이고 마음이 좁으니, 문제를 처리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들고 괴롭습니까?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린도후서》 7:6)

왜 그렇습니까? 디도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님, 그들이 사도님의 편지를 읽고 울었습니다. 옷을 찢으며 통곡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는 양들을 볼 때 목자의 마음은 가장 기쁩니다. 오늘 여러분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저는 진심으로 기쁠 것입니다. 낙심하고 낙담하여 포기할 뻔했습니다. '아이고, 고린도 교회가 다 끝났구나' 싶었지만, '안 된다,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돌이켜 주옵소서' 하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바울을 위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읽기만 해도 마음이 찔리는 그 편지를 통해 순식간에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의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에서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어 야곱을 영접하게 하셨는지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야곱이 위기를 겪었을 때 사방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쫓지 못하게 막으신 역사도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기묘하십니다! 주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이하여 우리의 생각과 간구를 뛰어넘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보낼 때 "가라, 가면 그들이 반드시 회개할 것이다"라고 담대하게 보냈지만, 속으로는 자기 말조차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디도야, 내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가라. 그들의 마음은 착하니 분명 깨끗해지길 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속으로는 불안해했습니다. 이것이 인간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디도에게는 큰소리를 쳐놓고, "고린도 사람들은 똑똑해서 편지를 읽으면 반드시 회개할 거야"라고 해놓고는, 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떠나자마자 '아, 사람을 보내 편지를 다시 회수해야 하나?' 하며 후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 하나님과 동역하여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헌신한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과 동역하고자 하는 자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결코 엄격함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더 큰 은혜와 선물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빚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역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오셨으니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이 사무엘과 동역하셨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먼저 계획하신 일뿐만 아니라 사무엘이 선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위해 이루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날까지 여러분이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믿음으로 늘 여러분을 신뢰하기로 선택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결국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고린도후서》 7:4)

이해가 되십니까? 고린도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자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 온전히 변하지 않았을 때에도 믿음으로 자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가 임하여 너무나 아름답게 역사하고 계셨고,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고린도후서》 7:8-13)

자세히 읽어보시면 여러 번 반복해서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이미 완벽하게 깨끗해졌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까? 누군들 원치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연약함에 넘어집니다. 선을 행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행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책합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오늘 왜 또 이렇게 연약하게 무너졌는가?' 얼마나 간절하며, 두렵고, 사모하며, 열심을 내며 자책합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우리가 어찌 또 연약해질 수 있는가?' 이러한 감정은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처럼 느끼게 하고, 감정적인 절망뿐만 아니라 도덕적 곤경에 빠뜨립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감정과 행동에 스스로 환멸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스로 자책하고 미워하며 뉘우칩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거룩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니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누구나 거룩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연약함이 불쑥 찾아올 때 누군가 옆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형제가 눈이 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눈이 고침을 받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유를 받고 난 후에도 종종 연약함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형제의 중심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도 간절히 원하지만 다만 연약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에게 전화를 걸어 "목사님, 저를 한 번만 더 호되게 꾸짖어 주실 수 있나요?"라고 합니다. 꾸지람 듣기를 자청하다니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나중에 제가 《고린도중서》라도 녹음해서 들려주어야겠습니다. 그것을 듣고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욱 간절해지고, 스스로 돌아보며, 거룩한 두려움과 사모함과 열심으로 본받으려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본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소그룹 목자들과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까? 양육받는 모든 이들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양육받는 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내면의 양심과 열심을 다시금 나타내십시오. 제가 이렇게 말할 때 여러분은 "맞습니다, 제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타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행동으로 옮기면 또 넘어질까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섬기는 사역자로서 때로 낙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히 세우셔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반면에 세상의 근심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얽매여 근심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다면 하나님의 영이 어찌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회개에 이르는 것은 참으로 복된 감정입니다. 우리 가운데 빚을 진 분들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하루속히 그 빚을 다 갚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빚에 매여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죄와 어리석음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무지하고 어리석어 사람들에게 속았고, 선전의 집값이 오르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세상 법칙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일어나는 후회는 세상적인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회개여야 하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역하시는데 어찌 빚에 얽매여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데 어찌 번성하는 삶을 살지 못하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을 보십시오. 번성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들은 번성하였으나 결코 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7. 이제 기뻐하며, 모든 일에 너희를 신뢰하노라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린도후서》 7:16)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식함을 얻었음이라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정정이 더욱 깊었으니 (《고린도후서》 7:13-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비전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얽매는 세상의 죄를 벗어던졌습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로 작정했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쁩니다.

이제 모든 일에 여러분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제가 여러분을 두고 자랑했던 모든 말이 참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고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의 말이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던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그런 은혜를 누립니까? 바로 이 세상에서, 이 더럽고 추악하며 혼탁한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는 자들입니다.

거룩함을 이루어 하나님께 열납되는 자가 되십시오. 모든 형제자매가 이 길을 향해 달려간다면, 저는 더 이상 여러분의 부채 문제로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더러움과 오염 때문에도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심전력을 다해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 길을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훗날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저는 "아, 당신도 여기에 와 있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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