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인 사명 신학의 배움의 태도: 끝없는 추구
힘써 위를 향해 올라가며, 끝없이 나아가다
- 힘써 위를 향해 올라가며, 끝없이 나아가는 것은 화인 사명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배움의 태도이며, 일반 성도나 목회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 배움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핵심 통로이며,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 배움은 우리의 생각을 명확하고 활력 있게 만들어 게으름과 관련된 질병(예: 치매)을 피하게 하고, 스스로 이미 얻었다고 여기는 것을 경계하며 지속적으로 추구하게 합니다.
- 배움은 우리가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한 옛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새로운 체계를 세우도록 돕습니다.
성장의 중요성과 목양의 핵심
- 화인 사명 신학 안에서는 성장하지 않으면 압박을 받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목적을 회복할 수 있는지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 참된 목양은 외적인 결혼이나 일상의 사소한 일이 아닌, 사람의 성장에 관심을 둡니다. 사람의 문제는 관계와 목양 속에서만 드러나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 《창세기》를 여러 번 상고할 수 있듯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모든 진리를 다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계시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 됨됨이를 배우고 지혜를 살아내다
- 삶 속의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은 모두 머릿속에 담긴 ‘쓰레기’, 곧 육에 속한 논리 체계에서 비롯됩니다.
-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살아가는 법’은 배워야 하는 것이지 날 때부터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배움의 목적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유익과 덕을 얻는 것입니다.
- 화인 사명은 소목회자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목회자는 사람을 훈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예전 원고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갱신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2. 화인 사명 신학: 끊임없는 갱신과 진보의 특징
지속적으로 갱신되며, 결코 굳어지지 않는다
- 화인 사명 신학은 몇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세상의 유행 신학과 달리, 끊임없이 갱신되고 끊임없이 진보하는 신학입니다.
- 이견이 있는 부분에 직면할 때, 우리는 논쟁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이는 우리가 비판을 수용하고 끊임없이 조정해 나갈 수 있게 만듭니다.
- 과거의 잘못된 이해와 실천, 특히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교회 개척 및 건축의 이념에 대해서는 제때에 무너뜨리고 결코 거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개선은 일상이며, 더욱 정확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적중해야 합니다.
변명하는 악습을 버리고, 개선에 집중하다
- 변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개선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모든 에너지를 개선하는 데 쏟아야 합니다.
- 과거의 성취에 안주하지 말고 비판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조정해야 합니다. 목양 체계는 더욱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조정되어야 합니다.
3. 문제 해결은 배움의 원동력: 끝없는 연구 개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곧 온전히 배우지 못한 것이다
-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한, 그것은 우리가 아직 온전히 배우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우리가 행하는 바를 훨씬 뛰어넘으므로, 우리는 ‘한계선’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모든 문제는 우리의 **‘연구 과제’**입니다.
실천 속에서 이론을 조정하다
- 치유와 축사 사역의 신학 체계가 끊임없이 버전을 갱신하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비전과 사명, 핵심 가치 역시 끊임없이 정리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이는 실천 속에서 이론을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항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배우고 진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미지의 영역을 솔직히 마주함과 교회의 정체성
- 질문에 막혀 대답하지 못할 때 체면을 구겼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알아낸 뒤에 다시 와서 알려주어야 합니다.
- 교회는 연구 개발 및 훈련의 기관(심지어 ‘기업’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곳)이며, 그 핵심 목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 일을 잘 해내는 것은 결코 ‘세상적인 것’이 아니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쓰레기’ 같은 관념입니다.
4. 측정 기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는가
하나님을 알아감에는 끝이 없다
-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스스로를 측정하는 기준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언행이 예수님을 닮지 않은 이유는, 머릿속이 온통 세상적인 논리 체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기까지 끊임없이 추구하다
- 나이가 많든 적든 추구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며, 힘써 위를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 목회자의 중점은 사람들의 헌금 액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몰아붙이며 교회의 하나 됨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준’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편안함이나 선호가 아니라, 그분을 기준으로 삼아 스스로를 평가해야 합니다.
- 우리의 구원관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더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빛 가운데서 자신의 ‘더러움’을 보다
-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의 ‘더러움’을 더 똑똑히 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더 더러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거룩한 대비 기준이 생겨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족함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기며 자신의 더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러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5. 신학과 생명의 무한함
신학은 끝없는 바다이다
- 하나님께서 《성경》을 계시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신학 체계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끝이 없는 지식입니다.
- 과학도 끝이 없는데, 하물며 신학은 더욱 끝이 없지 않겠습니까?
‘시간 때우기식’ 문화를 경계하다
- 시간을 때우는 문화는 조만간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우리 내면의 더러움과 게으름, ‘적당히 시간을 때우려는’ 태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 성장하지 않고 그저 ‘종교적인 몇 가지 잔재주’에만 의지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인재 양성 기관’으로서 교회의 사명
- 교회는 사람들을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 훈련하는 데 전념합니다.
- 소목회자이든 대목회자이든 모두 이처럼 ‘일하는’ 사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는 **수많은 ‘연구 과제’**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배우려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훈련 내용은 끊임없이 온전해질 것이며, 이는 끝없는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