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这次我们讲的《创世记》第六章是升级版,我觉得比好几年前讲的清楚多了。至少我们把这一章的主题,就是遭毁灭还是蒙拯救这事讲得明明白白。今天你不用觉得你儿子或者你女儿混得不好,就是丢了你的脸了,那都是强人的逻辑。我们开始把这些事一点一点地从理论上梳理明白。虽然离落实还有点距离,但没关系。
如果你孩子在学校考试考得好,你要像我妈对我似的:孩子,这不重要。那多好啊!孩子考得好,高兴得要命;孩子考得不好,比你们邻居家低一分,在那纠结半天:你怎么考的?怎么就比不上人家呢?就那一分,非得比在人家下面啊?你看,你生下来五根手指头,你就不如人家邻居,人家都是六根。六根好啊?惨。六根不是有毛病吗?五个不挺好吗?你要多少个?你要五个?六个?七个?八个?那你比不上千手观音,千手观音生下来浑身都是手。
如果浑身都是眼睛多厉害呀,千眼、千手。你要这么比的话没完了。如果人家有一千只手的话,你有九百九十九只,还在纠结怎么还比人家差一只呢!你说这都是什么脑子!我们大家就琢磨一下,咱不比这个了。这些事你还真得跟我妈学,我妈把这事还看得挺明白的。为什么我妈把这事看得挺明白的?我妈老说这话,哎呀,这人就这个命。一下子把压力全给解决了。是不是挺有意思的?然后就开心了。
Q1:老师,我学校要举行歌剧选段的演出,然后我和同学一起唱重唱,我把要唱更多、更重要的角色让给了我同学,因为我跟她唱的水平差不多。但是自从给出去,我时常会想起这件事,然后一想起来,第一反应就是自己心里不平衡,有点后悔。但又每次自己说服自己,要做一个给出去的人。老师,是不是每次都跟自己讲一遍,想清楚了,再遇到这样的事情,这种感觉就没了?
对,其实人对付这种逻辑体系需要时间。这不重要!如果你认为这东西就值一分钱、一毛钱,OK啦,给别人了就给别人啦。我不会因为给你一毛钱或者一块钱记一辈子的,脑子有毛病啊?我也不记那个。几块钱、十块钱我都不记着,更何况一块钱、一毛钱、一分钱。人如果知道了那个价值,活一辈子可容易了。最重要的是神祝福你,没有神的祝福就麻烦了,最后都成了遭毁灭的器皿有什么意义呢?
Q2:人渴慕把事情越做越好,是渴慕强人的逻辑吗?
不是,强人的逻辑是,我的是我的,你的也是我的,我要把你的抢过来。你不能比我好,你要比我好,我就整你。强暴就是强人的逻辑,强盗的逻辑。但是你把事情做好,建一个方舟,把方舟建好。神怎么吩咐,你就怎么行。不是说非得攀比、争竞、嫉妒,因为这样人活得很辛苦。
Q3:老师,中医里的经络、穴位是不是灵界的事?
人身体的经络是谁造的?神造的!穴位是谁造的?神造的!邪灵在人身体里头运行的规律跟经络、穴位应该是紧密相关的。人的身体是很奇妙的。我后来发现,《黄帝内经》是研究邪灵在人身体里的运作规律。但如果你有时间研究《黄帝内经》,还不如把《圣经》研究好。《圣经》研究的是赶鬼的规律,是靠着圣灵对付邪灵。
Q4:老师,研究《易经》是不是行邪术?
如果你能看明白,你也挺厉害,你就慢慢研究吧。我也读过,可是我是看不太明白。后来我发现,还是我们的神厉害,比《易经》可厉害多了。咱研究一个比《易经》还厉害的《圣经》,那不是挺好吗?
以前我还研究过《山海经》,神拦阻了我。信主之前我研究过《易经》,信主之后就没再没碰过。研究《山海经》的时候,神的灵跟我说别研究那个。我说,为什么?祂说,那个是魔鬼的灵界,不是神的灵界。所以咱要进到神的灵界,别进到魔鬼的灵界。
Q5:老师,您好!我们难免跟那些拜偶像的公司做业务,透过他们赚利润,钱财本来是不义的钱财,是不是不必顾虑?
是他们拜偶像,你管不着,也不用怕。做好你的服务,创造点价值。记住,做工好好做!什么拜偶像不拜偶像的,把钱赚来,才是重要的。别做啥赔啥,那就麻烦了。当然了,如果你做的业务好像是卖军火,卖毒品,这些事咱就别去干。但如果正经生意,不违法,那就好好干。
Q6:老师,现代的教育都是让学生学习历史上的强人,学习英雄人物,勇争第一,搞得老师与老师之间,学生与学生之间内卷厉害,如何破除这些教育理念?
不用破除,人家整人家的,你整你自己的。咱自己整明白了,咱就不卷了。
Q7:老师,为什么神赐福人都是生养众多,遍满全地,赐福大卫是王位不会旁落,这说明神也看重这些吗?直接赐下神的灵,让人一生喜乐平安多好。
神不是这样赏赐的。我想问大家,挪亚在那个世代昌不昌盛?能够在那个世代建一个方舟,犹如今天差不多是六万吨排水量级别的航空母舰,说明挪亚造船的技术还是很了得的。也就是说神在我们身上的旨意是生养众多,繁茂昌盛,遍满全地。但是神没有让我们透过属世界的逻辑体系达成这个,而是透过亲近神,爱神,与神同行,建立以神为中心的生活方式得着赏赐的。
不是为神而活着就老纠结了,这辈子就过穷日子了,这辈子除了喜乐,啥也没有。不是这么回事!大家不要把这事对立起来。除了喜乐啥也没有,除了属灵的啥也没有,那不是神说的。我看你这里面的逻辑体系得调啊。
Q8:有时候有种感觉就是我给出去了,但神好像没给我。这是自己的错误思想呢,还是自己不是真信心呢?
我看你给的时候都有点问题!你给的时候就惦记着什么时候给下来,发现第二天怎么没有啊?第二天又给出去一点,第三天发现怎么什么也没发生呢?你给出去的根基就错了!你给出去是指望得着什么,这还是一个自私的动机。神给我们是很确定的,一旦我们没得着就认为不好使,怀疑老师是在忽悠我呢,这就麻烦了。
如果我们给出去是没想得着什么,但是结果却得着了;如果我们给出去是想得着什么,结果却什么也得不着。这肯定会给大家制造困扰了!因为你光听见得着了,所以就带着这样一个心态。这不是一个祝福人的心态,而是想得着什么的心态。
比如说我们奉献,奉献完以后得着没?得着了!但是如果对方光听到得着了这事,那就麻烦了。但是神不是这样的神。我们建立的那套逻辑体系才是最重要的。我们如果用很片面,很狭隘的眼光看这种问题,那不是神的心意,应该要调整。
Q9:老师,《易经》是不是鬼的灵界?
应该是,我不是特别确定。
Q10:最近看《量子力学》,《双缝实验》,《量子纠缠》,《波粒二象性》,发现世界真的神奇,科学解释太有限了。不能研究《山海经》,能看看《量子力学》吗?
当然能看《量子力学》,如果你用属灵的眼光去看,你看得更清楚。
Q11:老师,我妹妹也在传统教会信耶稣,她觉得算卦的曾仕强很厉害。妹夫说他泄露了天机,所以得癌症死了。我想知道这种算卦的是不是都是邪灵?
不一定,巴兰就是个术士,他算卦靠的全是神的灵。原来神的灵也整这些事,邪灵也整这些事,弟兄姐妹千万别被这些东西忽悠了。咱不要去研究人家这些事,研究曾仕强,说人家算卦,泄露天机啊,咱最好说咱不知道。咱就知道咱应该走一条蒙拯救的路,研究这个没整对,那个没整对,研究完了你要干啥呀?咱只需要研究一件事,研究哪条路是对的。比如写程序,怎么写才是对的,就完事了。研究怎么写才能写错,研究完了干啥?不知道。咱只要研究对的就好了。至于人家是不是泄露了天机,研究完了好像也是瞎说,咱别管闲事!
Q12:老师,《道德经》又是怎么回事?是悟出了一点神的道吗?
《道德经》我觉着写得不错,其实《易经》、《道德经》里头都有它自有的逻辑。这世上的人不管老子也好,还是谁也好,他们对人活在世上这件事研究很多,他们有一套自己的看法。这个看法或许有一些东西是合乎神的道的。就算是今天我们读的属世界的这些逻辑,也有一些是合乎神的道的。
我们千万别以为都是错的,我说的意思是当作参考书看一看是可以的。但是我鼓励大家还是好好了解神的道,耶稣的道是最高的道。直到今天,真正要解决问题还得靠耶稣,因为耶稣的道是赶鬼的道,耶稣的福音是赶鬼的福音,耶稣的路是有效的路。
Q13:老师,我想教导孩子好好学习,长大有出息,也能荣耀神,这也是强人逻辑吗?
是强人逻辑!教导孩子好好学习,听起来没什么问题。什么叫好好学习?什么叫有出息?考第一名,算有出息吗?那考第二名,第五名算有出息吗?如果人家只给前五名颁奖,你考了个第六名,那怎么办?就容易被卷进去。那卷进去以后,还嘱咐他要好好学习,长大有出息。不就更卷了吗?
每个人都追求好学历,但是你如果研究一下有好学历的人,活得还不如你们没有好学历的,我们只是盲目相信某种东西而已。我想一个信靠神的人,教导孩子好好信靠神,好好脚踏实地。咱不去争竞,神也一定会祝福你,这多好啊。
如果你对孩子说,好好学习,不能没出息,你看人家颁奖给前五名,你考第六名,太没出息。完了,把孩子给毁了。咱能不能告诉孩子,这事不重要!我就是这么教的,我是教孩子今天如何信靠神。但他信不信那是他的选择。我们今天总会不自觉地用属世界的逻辑体系去解决问题,那能解决吗?解决不了,反而把问题弄得更复杂,这就是问题所在。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은 《멸망과 구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진리를 계시해 줍니다. 멸망과 구원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을 통해 우리에게 멸망에 이르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 주시고, 또한 구원받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두 종류의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한 종류는 멸망을 당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구원받는 사람입니다. 멸망을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주 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 살아가면 됩니다. 구원받고 싶다면 구원받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가운데에는 멸망을 당한, 그 시대의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낍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매우 초조해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가 공부를 아주 잘하고 공부의 엘리트인 것을 보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공부의 엘리트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거의 조사하지 않습니다. 별로 잘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사해 본 뒤에도 여러분은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조사하는 것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많이 조사해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은 노아와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시대의 용맹하고 이름나며 폭력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계시하는 이러한 논리를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경쟁에 휘말려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는 두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멸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겠습니까? 며칠 전에 여러 지역의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를 묘사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많은 수석 합격자들이 평생을 잘 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 일을 조사해 본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잘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타격도 견디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수석인데 내일은 더 이상 수석이 아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6:1-6)
그러면 멸망의 길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먼저 그들은 육체에 속하고 혈기에 속한 사람들이며 매우 강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행동과 생각이 모두 부패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결합하여 자식을 낳고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은 그들 안에 영원히 거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받는 길을 간 사람은 오직 노아 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영에 속했는가, 육체에 속했는가
사람이 영에 속했는지 육체에 속했는지가 그가 멸망을 당할 사람인지 구원받을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육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살아 있는 동안 육체에 속한 일을 도모한다면, 아무리 도모하고 또 도모해도 결국은 멸망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사람이 살다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더 이상 육체에 속한 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도 먹고 마시지만 자기 육체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받는 세례가 목욕탕에서 받는 세례든, 수영장에서 받는 세례든, 도랑에서 받는 세례든, 아니면 비행기표를 사서 아주 먼 요단강까지 가서 받는 세례든, 그런 것들이 유익합니까? 별로 유익하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분이 육체와 혈기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영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의 삶의 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누군가가 그의 생활을 위협하고, 육체를 위해 살아가는 일을 위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내가 살아가는 것을 위협하면 내가 여러분을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과 라멕의 모습이며, 결국 그들도 죽었습니다. 육체와 혈기에 속했는지, 영과 하나님께 속했는지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장차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더 이상 살기 위해 살지 않고, 살아 있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온종일 육체에 속한 일을 준비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어디에 살지, 무엇을 사용할지, 투자와 재테크를 비롯해 온갖 것을 준비한 다음 은퇴와 계획, 재정적 자유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멸망의 그릇인가, 구원의 그릇인가? 구원의 그릇인 사람은 반드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논리입니다.
제가 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에 속한 일에는 매우 큰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영적인 일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된 지 20년이 되었는데 성경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주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는 “20년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교회에 가서 형제자매들에게 밥을 해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밥을 해 주는 것은 꽤 육체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에게 밥을 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 번 시작하면 20년 동안 밥을 해 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분명히 알지 못하고,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일을 꿰뚫어 봅니다. 그가 가장 먼저 꿰뚫어 보는 것은 생사입니다. 살아 있는 것에 큰 관심이 없으며, 영에 속한 사람에게 육신이 살아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영적인 일과 생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화인(华人) 명정신학을 계승했다면, 살아 있는 일을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고, 돈을 버는 것도 아주 간단한 일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은즉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창세기》 6:3)
강한 사람인가, 연약한 사람인가
우리 자신이 강한 사람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연약한 사람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고, 고대의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것은 멸망의 그릇이 되는 길입니다. 자신이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필요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강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 시대에는 20세기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왜 전쟁을 했는지 아십니까? 돈을 위해서, 세상의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까? 돈을 위해서였습니다. 모두 살아가는 일을 위해서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범이 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도조 히데키나 히틀러 같은 사람들입니다. 승자가 왕이 되고 패자는 도적이 되는 세상입니다. 만약 도조 히데키와 히틀러가 이겼다면 연합군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습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들은 돈과 자원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모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강한 사람의 논리입니다.
학교에서 공부의 엘리트를 숭배하고, 게임이나 공부에서도 그들을 이기지 못하면 자신을 매우 괴롭히고 우울하게 하며 힘들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강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이 강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말이 멸망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사람이 연약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 하나님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강한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며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실 저는 이 일을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강한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고대의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런 방향 전환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갈량 같은 사람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눈썹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꼽아 계산하다가 묘책을 생각해 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유비와 조운에게 세 개의 비단 주머니를 주고, 승상이 모든 일을 귀신같이 예측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평생 동쪽과 서쪽으로 정벌을 다니고, 여섯 번 기산으로 출정한 뒤, 오장원에서 50여 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자기 아이가 제갈량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강한 사람의 논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이가 손중모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매우 숭배합니다. 이것은 이 시대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진시황은 매우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진시황보다 더 오래 살았고, 제갈량보다도 더 오래 살았습니다. 제가 그들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60세를 넘겨 산다면 모두 그들보다 오래 사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말하려는 뜻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제갈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만 생각하고 있다면 끝난 것입니다! 멸망의 그릇이 된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홍수에 휩쓸려 갔고, 오직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연약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폭력적인 사람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읽어 보면서, 그들 안에 있는 논리 체계를 알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논리 체계는 무엇입니까? 아내를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을 믿었으므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칼을 의지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 안에 있는 논리 체계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며 강한 사람의 논리가 아닙니다. 이삭 역시 강한 사람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우물을 사람들이 빼앗아 가면 빼앗아 가게 두었습니다. 다시 빼앗아 오지 않고 우물을 또 팠습니다. 또 빼앗아 가면 또 하나를 팠습니다. 또 빼앗아 가면 또 하나를 팠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마침 그해에 흉년을 만났지만, 흉년 중에 백 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가인과 라멕처럼 자신의 육체를 의지하는 강한 사람의 논리 체계를 따르는 것이 좋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공부의 엘리트가 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대단하면 그냥 대단한 대로 두십시오. 우리까지 할 일 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경쟁에 휘말리지 맙시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처럼 대단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선생님처럼 영리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겠습니까?” 여러분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의 영리함은 연약한 영리함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네가 내 옷깃을 잡으면 나도 네 머리카락을 잡겠다’고 하는 모습을 언제 보았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사람들의 손에는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었고, 볼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고개를 숙이고 다녔을까요? 함부로 둘러보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의 생활 환경은 너무 거칠었습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의 깡패들이 많았습니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 누군가 “뭘 봐?”라고 묻습니다. 제가 “너를 보면 안 돼?”라고 받아치면 큰일이 납니다. 그런 불량배들은 칼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해쳤습니다. 저는 연약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약한 사람의 영리함입니다!
제가 연약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저보다 공부를 잘해도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험 점수가 저보다 높아도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왜 신경 쓰겠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강한 사람은 경쟁에 휘말리는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 휘말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 때문에 경쟁에 휘말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늘 저에게 “얘야, 너무 지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공부도 그다지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부는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대학에 들어간 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도 갈 수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그걸 하러 가서 뭐 하겠니? 대학을 졸업했으면 됐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매우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아이가 자기관리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경쟁 속으로 몰아넣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려는 뜻은 이것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이 계셨던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평생 연약한 사람이었고,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저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축구공 하나씩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한 경기를 다 뛰어도 공을 한 번도 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공을 빼앗지 못해서 ‘한 사람에 공 하나씩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입니다. 보통 아이였다면 경쟁에 휘말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공을 차지 못해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제 안에는 어릴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연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말입니다! 저처럼 연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투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저를 매우 안심하고 대하셨습니다. 제가 밖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다른 사람을 쳐다보며 “뭘 봐? 너를 보면 안 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제 동급생 한 명이 정말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저는 타고나기를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 제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후 하나님을 보배로 여기게 되었고, 연약했던 제가 강해졌습니다. 강해졌지만 다른 사람과 맞서 싸우지는 않았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고, 경쟁하거나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직장에 할 일이 있고 아무도 하지 않으면 저에게 맡겼고, 저는 그것을 잘했습니다. 그 결과 이것이 영리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강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강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지 마십시오. 강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여러분도 멸망의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해야 하며, 자신의 강함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근본으로 삼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육체에 속한 연약함을 영에 속한 강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멸망과 구원을 결정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우리의 논리 체계라고 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멸망을 당할지 구원받을지를 결정합니다. 만약 머릿속으로 ‘나는 칭기즈칸이 되겠다. 나는 진시황이 되겠다. 나는 한무제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진시황과 한무제를 포함해 그들 모두를 뛰어넘겠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가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역사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으로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합니다.
‘모두 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머릿속에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얻어야 해. 나는 저것을 얻어야 해. 얻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여러분이 얻으면 나는 얻지 못합니다. 반에서 1등은 한 명뿐입니다. 그가 1등이면 여러분은 1등이 아닙니다. 이것이 목숨을 걸 만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장군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병사는 좋은 병사가 아니다’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군대가 좁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경쟁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강물에 빠졌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화인 명정신학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고 싶다. 그 사람을 축복하고 싶다. 그에게 유익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점차 이해하게 되면 이것이 혼란스럽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화인 명정신학은 체계를 갖춘 신학입니다. 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의 논리 체계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지구는 이렇게 넓을 뿐이고, 석유는 이렇게 많을 뿐이며, 천연가스도 이렇게 많을 뿐이다. 네가 더 많이 빼앗아 가면 내가 얻는 것은 줄어들고, 네가 적게 얻으면 내가 빼앗아 온 것은 많아진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제로섬 게임이라는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시장은 일정한 크기밖에 없으므로 더 많은 시장을 얻으려면 경쟁자가 일부 시장을 잃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으로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아니라면 어떤 논리입니까? 저의 논리는 계속해서 내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어 주면 누가 나에게 주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시스템은 폐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개방된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배가되는 게임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안에 자원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자원까지 모두 계산한다면 땅에서는 더 이상 제로섬이 아니라 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화인 명정신학에 오면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의 자원이 여러분에게 열려 있고, 여러분의 손에는 천국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교회를 정의하실 때 천국의 열쇠를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열쇠는 무엇에 쓰는 것입니까? 열쇠로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열쇠 하나가 아니라 한 꾸러미입니다. 여러분이 관리인으로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문을 열었는데, 창고 안에 온통 금이 있고, 또 다른 창고를 열었더니 온통 은이라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천국의 열쇠를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무엇을 하라는 뜻입니까? 하늘의 자원을 가져다 쓰라는 것입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로는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천국의 열쇠라는 논리를 형성한다면, 땅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자원은 무한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천국의 자원을 땅으로 가져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겠다. 내가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축복할수록 하늘의 자원을 더 많이 얻게 된다. 내가 더 많이 얻을수록 더 많이 내어 주게 된다. 더 많이 내어 줄수록 천국의 것을 더 많이 얻게 된다.’ 여러분, 그러면 머릿속에 온통 악한 생각만 하게 되겠습니까?
왜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내어 주지 않을 수 있을까?’만 가득합니까? ‘저 사람을 축복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물건이 왜 저 사람 손에 있지? 내가 빼앗아 와야겠다. 이 포도원이 좋은데 내가 차지해야겠다. 이 유전이 좋은데 내가 차지해야겠다. 이 천연가스가 좋은데 내가 차지해야겠다. 이 철광석 같은 천연자원이 좋은데 내가 차지해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좋다고 여기며 모두 땅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어느 나라의 땅이 더 많은지, 어느 나라 땅에 자원이 더 많은지를 따집니다. 아,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기를 갈망합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자원을 빼앗기를 갈망합니까? 우리는 분명한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놀라운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석유가 어느 해가 되면 다 고갈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0년이 지나자 뉴스에서 어느 지역에서 유전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수십억 톤의 석유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후에는 또 30년 뒤면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30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또 유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석유가 부족하다고 이미 논증하지 않았나?’ 당시에는 실제로 이곳저곳에 구멍을 뚫고, 여기저기 조사했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이 땅에는 석유가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또 석유가 생겼습니까? 자원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시면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의 석유가 부족할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지구의 인구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지구의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14억 명이 있어도 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지구에 인구가 100억, 200억 명 더 늘어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원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가 임신한 뒤 저에게 와서 울었습니다. 저에게 왔을 때도 계속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제가 “왜 우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 아이가 태어나면 저와 함께 고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돈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양식과 급료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머릿속에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으려고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하늘의 자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집의 자원은 무한합니다. 특히 설교자의 마음은 가난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가 여러분의 헌금으로 부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원은 너무나 많습니다. 만일 교회가 여러분에 의해 부양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아는 한 사업가는 돈을 전부 잃었습니다. 왜 전부 잃었습니까? 가난한 설교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업을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난한 설교자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것이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가난한 것입니다. 그는 말씀 없는 설교자들을 부양하려고 했고, 결국 돈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화해서 “제 돈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돈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돈을 위해 무엇을 기도합니까?”라고 하자, 그는 “제 돈을 전부 잃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유하시다는 것을 모를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어리석어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돈으로 설교자를 부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이것을 하나의 논리 체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왜 폭력적이었습니까?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왜 자원을 차지했습니까? 잘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잘 살지 못했습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예로부터 길은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하나는 멸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복을 받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길을 걷는지는 머릿속에 무엇을 생각하는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사람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큰일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얼마 전 매우 부유한 사람이 병에 걸려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먼 길을 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가장 좋은 약과 치료를 사용하고 싱가포르에서 가장 비싼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결국 수백만 위안에 해당하는 백만 위안 이상의 돈을 썼지만 그래도 죽었습니다. 약이 아무리 좋아도 보십시오. 여러분, 돈이 정말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까? 돈은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면 행동도 결코 올바를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동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창세기》 6:12)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노아가 행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입니까, 행동입니까? 사람의 생각이 사람의 행동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 저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고 하나님을 매우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제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듣고 나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사람을 속이는 논리입니다! 돈은 아끼면서 목숨은 아끼지 않는 것입니까? 돈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하나님께 드려 목숨이 없어지면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저는 그에게 “다른 곳에 가서 마음껏 사랑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10억이 있으면 전부 너에게 주겠다. 1억이 있어도 전부 너에게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이 “그럼 당신 차를 나에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건 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 차를 줄 수 없습니까? “내가 실제로 그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가진 것은 줄 수 없고, 없는 것은 마음대로 말할 수 있지요. 어차피 나에게 10억은 없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논리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논리 체계를 가지고 멸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멸망과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회를 찾아온 것입니다.
영매의 세계
영매의 세계에 관한 일을 사람들이 마지막에 한마디로 정리한 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영계가 매우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매우 실제적이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배우가 되겠다. 백룡왕을 찾아가 조언을 받아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배우로서의 경력이 아주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영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사업가들 가운데 제사를 지내거나 점을 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 도시에 간 적이 있는데, 차를 타고 그 거리를 지나가며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 거리 양쪽의 건물들이 모두 어느 회사에 의해 매입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대단하구나. 이 사람의 자산이 수조 위안이나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수조 위안 자산가가 회사 안에 커다란 우상당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에는 우상들이 가득했고 직원들은 모두 가서 절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대형 부동산 회사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을 숭배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장은 그에게 “반드시 내가 만든 이 우상에게 절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업이 잘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까?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의 그리스도인은 큰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영계라는 것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계가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영생이 있다는 것은 모릅니다. 모두 현생을 위해 준비합니다. 언젠가 결국 재가 되어 사라지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가는 연기처럼 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숭배합니다. 그들은 모두 현생의 일을 위해 살아가며, 온갖 영매의 세계와 우상 숭배, 귀신을 기르는 일 같은 것을 합니다.
영계는 사람과 소통하기를 좋아합니까? 영계도 좋아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 매우 위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선생님, 왜 저 사람은 저 우상을 숭배하는데 효과가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효과가 있으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영계의 것들도 사람을 찾아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대에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들 가운데에는 손가락이 여섯 개이고 발가락도 여섯 개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윗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다윗이 죽인 골리앗도 거인으로서 용사에 속했습니다. 손가락만 여섯 개인 것이 아니라 양발의 발가락도 모두 여섯 개였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의 거인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온몸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스물네 개나 있었고, 모두 몸집이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합하여 자식을 낳았고, 그런 자식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영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모두 용맹하고 이름난 매우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영매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영계와 소통하면 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부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이웃이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여러분의 집을 자기 집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결국 쫓겨나게 됩니다. 여러분의 땅도 자기 땅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그와 싸울 수도 없고 그를 당해 낼 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매우 곤란해집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에 이르렀을 때 땅에는 영계와 소통하는,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양바이라오처럼 가난에 찌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여러분이 가난한지 부유한지 신경 쓰겠습니까? 그는 자기 자신만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조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계의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조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 사탄도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매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노아도 영계와 소통했습니다. 노아가 소통한 것은 하나님의 영계였고, 이 사람들이 소통한 것은 마귀의 영계였습니다. 마귀의 영계와 소통한 결과 멸망의 그릇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계와 소통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는 노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멸망을 자초했는지를 분명히 보아야 하며,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용맹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노아를 괴롭혔습니까?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이 시대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다른 사람이 그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하면 그 사람이 도리어 괴로워져서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 없습니다. 한 목회자가 나중에 체포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가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저는 그 목회자의 동창을 알고 있는데, 그 동창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 목회자는 교회에 ‘방언 기도를 금지한다’는 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방언 기도를 금지했으니 하나님께서 정부를 보내 그를 처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결국 그는 감옥에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누가 그를 처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처리하신 것입니다. 귀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강한 사람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통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으므로 그들은 노아를 해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 영계와 소통하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영계와 소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서 계신다면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나눈 《창세기》 6장은 이전에 나눈 내용과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나눔을 정리하면서 천사에 관한 것만 다루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형제자매 여러분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강한 사람의 논리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온 세상이 멸망할 때에도 여러분은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영토를 넓히고, 노아는 여전히 작은 땅 한 조각만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영토를 넓혔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려고 힘껏 게임을 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될 때까지 열심히 운영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잘 동행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살아가는 일을 아주 간단한 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공부의 엘리트가 아니고, 기업계의 강한 사람도 아니며, 정치계의 강한 사람도 아닌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저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배우면 됩니다. 더 이상 칼을 의지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그러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도 자신을 보호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셔서 구원받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결론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선택입니다.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이 멸망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누구를 멸망시키고 누구를 구원할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아이가 국제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의 아이는 영적인 학교에 다닙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는 가장 좋은 과외를 받지만 우리의 아이는 과외가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는 세계 챔피언이지만 우리 아이는 어떤 챔피언도 아닙니다. 아주 좋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현생의 이런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 않은데 우리가 왜 경쟁하겠습니까? 공부는 저희 어머니처럼 하면 됩니다. 저희 어머니는 늘 저에게 “얘야, 지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 말씀드리고 나니 우리 가운데 어머니들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더 이상 아이들을 몰아붙여 그런 것들을 하게 하지 마십시오. 지치게 하지 마십시오. 아이가 너무 육체에 속해 있다면 그것은 대처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이를 괴롭고 힘들게 만들며 계속 경쟁 속으로 몰아넣지 맙시다. 원래 조금 더 잘할 수 있어서 60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경쟁에 휘말리면 20점이 됩니다. 원래 80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경쟁에 휘말리면 이런, 40점밖에 받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형제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의 큰아들은 원래 미국에 가서 대학을 다니려고 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돈을 아주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코로나19가 왔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일을 꽤 잘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대학에 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삼류 대학에서 삼류 학생이 되어 졸업한 뒤 무엇을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빨리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 낫습니다. 예전에 2 더하기 3을 8이라고 하던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도 지금은 일을 하고 있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하게 두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예전에는 두 줄로 눈물을 흘리며 뚝뚝 멈추지 않고 울었지만, 오늘 우리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격려합시다. 멸망을 당하는 그릇이 아니라 구원받는 그릇이 되게 합시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계속 걱정할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뭘 봐?” “너를 보면 안 돼?” 하다가 결국 돌아와 머리에 흉터 몇 개를 더 남기게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건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가면 빼앗아 가게 두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빼앗으려고 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넓은 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편해졌습니다. 직장에서도 다른 사람과 얽혀 다투지 않게 됩니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것과 비교하지도 않고 저것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서의 사람이 매우 대단한 것을 보고 우울해집니다. 그런데 다른 부서의 사람이 또 오면 더욱 우울해집니다. 여러분, 이것이 도대체 무슨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시원합니까!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걸읍시다.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우리도 행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6장 성경 본문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매、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9 노아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10 노아는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6:11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6:15 그 방주는 이같이 만들라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죽으리라。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